대방광불화엄경 왕복서(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
청량국사가 오대산에 계시면서 화엄경연구를 깊이 하였고, 청량소, 또는 화엄경소라고도 불리는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를 편찬하면서 그 서문에 화엄경의 내용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그 첫구절이 ‘왕복(往復)이 무제(無際)나’로 시작하기 때문에 통칭 왕복서라고 부른다.
이 글과 쌍벽을 이루는 서문으로는 금강경오가해의 서문인 함허스님의 일물서(一物序)가 있다. 선(禪)의 기운이 빛나는 일물서는 그 시작이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로 되어있기 때문에 통칭 일물서라고 한다. 함허스님은 고려말 조선초의 우리나라 스님으로 깨달음의 안목이나 글도 뛰어난 분이다.
일물서나 왕복서는 모두 뛰어난 글이지만 왕복서를 더 명문으로 친다.
왕복서는 불교 최고의 안목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법계의 내용이 이러한데, 화엄경은 그 깊고 오묘한 이치를 이렇게 밝혔다’라고 하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부처님의 안목이다. 부처님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이 세상을 누가 무엇을 통해서 표현했는지, 그를 통해서 우리 중생들에게 깨우쳐 준 것은 무엇인지 하는 깊은 내용들이 샅샅이 밝혀져 있다. 그러한 내용들은 모두 화엄경 안에 숨어있는 내용들이다. 화엄경이 경전이다 보니 그것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왕복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딱 부러지게 집어서 명확히 말하고 있다.
당(唐) 청량산(淸凉山) 대화엄사사문(大華嚴寺沙門)
청량산은 중국 오대산을 일명 청량산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강원도에 있는 오대산은 중국에 있는 오대산과 그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오대산이라고 이름 지은 것인데 이 역시 청량산이라고도 부른다.
두 산은 그 모양이 아주 닮았지만 우리나라 오대산이 훨씬 더 잘생겼다. 산이 수려하고 잘 생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오대산인 청량산이 있고, 중국에도 청량산인 오대산이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국 불교의 4대성지 중에 하나인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항상 거주한다고 하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 오대산에 가면 중심에 대화엄사가 있다.
청량국사가 주석하면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화엄경을 가르치고 화엄경으로써 평생을 전파한 곳이다. 나도 젊어서 건강할 때 오대산에 가본 적이 있다. 대화엄사는 화엄종찰로서 그 옛날 화엄의 분위기가 아직도 그대로 곳곳에 남아있었다. 중앙 건물의 현판이나 주련에 화엄경이 설해진 7처9회의 명칭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감격스러웠다.
화엄경이 설해진 일곱 곳의 이름인 보리장, 보광명전, 도리천, 야마천과 같은 이름이 법당마다 붙어있었는데 ‘이 절에 들어온 여러분들은 지금 바로 화엄경 속에 들어왔습니다’ 라고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러분들이 화엄경을 공부하고나서 중국 오대산으로 성지순례를 가면 그 중심에 있는 편액들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우리가 공부한 내용들이 바로 여기 이렇게 있구나’하고 반가울 것이다. 사찰은 이런 특징이 있어야 되고 그 특징을 몇 천 년이 흐르더라도 살려야 된다.
우리나라는 범어사, 해인사, 부석사가 모두 화엄사찰이다.
화엄사찰 중에서도 본사가 부석사이므로 부석사 같은 데서는 365일 화엄경이 설해져야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사찰을 세운 의미를 살리는 것이 되고 그를 통해 수행과 불교에 대한 지식이 확보된다.
나는 스님들에게 경전을 강의하면서 스님들이 혹시 개인적으로 절을 짓는다면 불교적인 경전이나 어록 중의 하나를 선택해서 그 사상에 초점을 두고 사찰을 세우면 의미가 있으리라고 말하곤 한다. 절을 지을 때나 그 절을 설명할 때나 그 절 자체를 통해서 신도들이나 스님이 항상 공부가 되는 것이다.
징관(澄觀) 청량국사(淸涼國師) 찬(撰)
역사적으로 화엄경공부를 가장 깊이 하고 화엄경에 대한 저술이 제일 많은 분은 청량국사다. 청량스님의 이름은 징관(澄觀)이다. 청량산에서 화엄경을 공부하였고, 국사까지 되었다고 해서 청량국사(淸凉國師 國師)라고 한다.
청량국사는 머리가 워낙 뛰어난 분이라 세속 학문을 다 하고 불교경전을 다 보았다. 그런데 화엄경을 보고 ‘득기사소(得其死所)’라는 표현을 했다. ‘내가 죽을 곳을 얻었다’는 뜻이고 곧 ‘내가 이 화엄경에서 죽어야겠다’는 말이다.
얼마나 화엄경에 감동을 했으면 이런 표현이 나왔겠는가. 나는 청량스님의 득기사소라는 구절을 읽고 감동하여서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런 청량스님은 102세까지 사셨다. 여러분들이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내가 죽을 곳을 얻었다. 화엄경에 내가 죽어야지’라고 해도 102세는 거뜬히 살 것이니 걱정하지 않고 화엄경 공부에 매진해도 된다.
이 분은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아홉 분의 황제를 거쳤다. 요즘으로 치면 이 분 생애에 대통령이 아홉 명 지나간 것이다. 옛날에는 수명이 짧았고, 왕도 자주 바뀌었으니 102년동안 왕이 아홉 명이 되는 일이 가능하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청량스님이 그 중에 일곱 왕의 왕사(王師)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아홉 분의 황제가 거쳐갔는데 그 중 일곱 황제의 국사(國師)노릇을 했다. 청량국사라는 호칭이 익숙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고 왕이 죽어서 새 왕이 등극하면 ‘우리 할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국사지 나에게는 내가 모시는 스승이 따로 있다’고 해서 국사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일곱 왕의 국사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은 청량스님이 얼마나 훌륭한 스님이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왕들이 청량국사에게 ‘화엄경의 요지를 이야기 해주십시오’라고 청하는 내용도 청량스님의 글에 있다. 또 어떤 왕은 ‘화엄경제목만 좀 설명해 주십시오’하고 묻는 이도 있어서 화엄경의 제목만 설명한 글도 있다.
10문(門)
왕복서는 화엄경을 해제하는 짧은 서문이다. 이 왕복서의 내용이 심오하여 왕복서를 세밀하게 분해하기 위한 초도 무수히 많다.청량국사 자신도 원문의 10배 이상이나 되는 초를 냈다.
전통적으로 왕복서는 해석하는 방법에 있어서 네 단락으로 나눠서 해석하는 방법과 10문으로 나눠서 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그중에 10문이라고 해서 열 가지 과목으로 나눠서 왕복서를 해석하는 방법으로써 왕복서를 공부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네 단락으로 나누는 것보다 훨씬 세밀하고 구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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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법문은 십십(十十)법문이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들고 나오면 그 이야기를 열 번을 한다. 예를 들어서 선지식하면 선지식에 대해서 열 번을 이야기한다.열이라는 숫자는 꽉찬 만수(滿數)이고 모든 것이 원만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우리 인생은 불만 투성이다. 남편 잘못 만났고 아내 잘못 만났고 자식 잘못 만났고 부모 잘못 만났고 세월 잘못 만났고 대통령 잘못 만났고 우리 동네 동장 잘못 만났고 온갖 것이 불만이다.
나도 불자들을 위한 화엄경을 시작하는 첫날 날씨가 하도 추워서 ‘아이고 오늘 화엄경 시작하는 날 날씨를 잘못 만났구나’하고 염려를 많이 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성황을 이뤘다. 그대로 완전한 것이다. 추우면 추운 그대로가 하늘이 하는 일이고 대기가 돌아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불만스러워하는 내 마음이 잘못되었다. 내 부모가 나를 가난한 집에 태어나게 했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 인연으로서 완전한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가 자기 인연으로서, 자기 복으로서는 더도 덜도 아니고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다. 퍼펙트(perfect)한 것이다.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경이 십십(十十)법문이고 왕복서도 아홉 문도 될 수가 있고 열두 문도 될 수가 있겠지만 10門으로써 말한 것은 이 원만한 십이라는 숫자에서 깨달으라는 뜻이다. ‘넉넉하구나, 원만하구나, 완전하구나’ ‘모든 것은 현재 있는 그대로 완전무결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고 사실이 그러하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화엄경이고 화엄경을 통해 우리는 이 완전성을 깨달아야 한다.날씨가 춥다고 탓하는 대신 자기가 옷을 하나 더 입으면 된다. 날씨는 날씨대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거기에 맞추어서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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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다. 불교의 안목은 우선 내 눈부터 고쳐놓고 나의 안목을 바꾸는 것이다. 현상적인 나머지는 인연에 따라 고치면 좋고, 못 고치면 못 고치는 대로 상관이 없다. 그것은 그것 그대로 좋다. 다만 나의 안목을 바꾸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다. 내 안목을 바꾸는 것이 불교적인 안목이다. 나의 안목을 불교적인 안목으로 바꾼 후에 인연 따라서 불사도 하고 집도 짓고 길도 내는 것이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현상 먼저 고치려고 하는 세속의 안목과 불교의 안목이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