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진실은 무엇인가?
내가 백프로 나일 때다.
가만히 나의 삶을 들어다 보라
내가 어디에 흔들려 가고 있는지
나의 생각을 멈춘 나일 때
나와 생각은 나와 다르다.
내가 듣는다.
내가 본다.
내가 생각한다고 한다.
그 '내'라는 나의 존재는 분명 다르다.
그 나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
중도의 연기실상으로
고정된 내가 없기 때문이지만
그것을 원융한 법성이라 한다..
보고 듣고 생각할 때 그 대상을 아는 것과 앎은 다르다.
아는 것은 주객이 구분되는 것
즉 5온6근경계에 의해서 알아차리고 난 뒤의; 것은 내가 보는 것이고, 내가 듣는 것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이차적인 나,가아假我라면
앎은 주객이 하나되는 상태인
보고 듣고 생각하는 찰나
즉 볼 뿐, 들을 뿐,생각 할 뿐은
일차적인 앎인 나이다.
앎은 오직 모를 뿐이기도하다.
이것을 깨어 있음이라고도 한다.
실지실견悉知悉見 즉견여래卽見如來라 한다.
이것을 주인공 진아 본성 참나 불성 이라 한다.
이러한 것을 설명하자면
진리의 본체라하고 반야지라 한다.
이렇듯 나라고 하는 것은 진아眞我와 가아假我로
이차적인 나의 상태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의 구분된 내가 있고
그 이차적인 나의 상태 이전의 나로 구분됨을 알 수 있다.
물론 가아나 진아는 설명을 위한 구분이지 진아에서는 煩惱즉 菩提라 번뇌가 그대로 보리이다.
생사즉 열반과 같다.
인.연.과 (因.緣.果)의 실상을 확철한 앎이 없으면 이해가 어여울 수 있다.
無와 空을 혼돈하는 경우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색신에 의해서 살기 때문에 색신에 집착하여 나타난 수상행식인 이차적인 나를 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착각(무지)이며 중생심衆生心의 본질이다.
이 중생심이 탐진치심으로 4고8고의 번뇌로부터 벗어나 이고득락離苦得樂 하려는 것이며 참 나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色인 몸이 없이 나는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귀신이다.
색신色身을 가지고 잇는 상태의 하나된 나에 머뭄이다.
색즉시공이며 공즉시색이다.
색이 空하면 수상행식이 공함이 된다.
그렇다고 수상행식이 공하다고 색이 공하지는 않다.
촛불이 양초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지만 촛불이 없다고 양초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이치다.
色과 受想行識이 나눠진 이유다.
내가 100% 나일 때는
반야般若의 지헤가 작용하는 순간인데
내가 100%는 실체인 空性이고
나일 때는
그 실체가 실유불성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실용을 반야 바라밀이라 한다.
이것이 크고 확실한 진리이기에 마하 금강 반야 바라밀(摩訶般若波羅密)이라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순간을 어떤 생각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를 점검하라.
지금 내가 숨 쉬고 살아 있는 것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어떠한 티끌이 끼지 않는 순간
가장 완벽하게 내가 백프로 나로써 깨어 존재하는 상태
내가 우주를 완변하게 장악하는 순간
그 어떤 누구도 어떤 힘도 외부의 기운이 접근하지 못한 순순한 나
어떤 잠념으로 오염되지 않는 상태로 있는 나.(응무소주이생기심)
오직 도올하여 작용하는 나
그럴 때
如是如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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