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나 신앙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이다.
왜냐하면 오직 지금 내가 살아서 작용하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 의하거나 어떠한 원리나 힘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의 완전한 상태인 지금을 깨어서 사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연기실상으로 생성소멸하는 이치를 알게 된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 지나친 욕심이나 욕망이 없어진다.
가장 완벽하게 자신을 깨어서 보고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곳에는 분별없는 상태 온전한 나만이 뚜렷하게 나툰다.
세상은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 이웃이 또 다른 나임을 알게 된다.
나만의 삶을 생각치 않고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눈,코,입 나의 몸 나의 손 모든 것은 나의 것이지 내가 아니다.
나의 집은 내 것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나의 것은 아니다.
인연되어 내가 살 때는 내 집이라고 하지만 이사를 하거나 집이 팔리면 나의 것이 아니다.
내 옷도 그렇고 내 신발도 그렇고
모든 소유의 사물은 내가 가지고 있을 때는 나의 것이라고 하지만
나를 떠나면 너의 것이 된다.
즉 사물의 존재는 모두가 나의 것이면서 너의 것이다.
그렇듯 내 몸도 내가 아니듯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은 나의 것으로 잠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착각을 한다.
영원한 나의 것이라고....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그냥 객관화 되어 있는 상태인 존재이다.
어디에도 소속되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생멸법이라고 한다.
나의 몸도 그렇다. 나의 것을 찾기 위해 쪼개고 쪼개면 미진중하면 일미진중 함시방이다.
원자 힉스의 입자가 나이다.
그 입자는 서로서로 연기되어 생성소멸을 쉼없이 하고 있는 상태가 나이다.
그러한 입자의 미진중은 모든 물질이 같다. 일체진중 역여시다.
그것을 빛이라고도 하는데 빛은 형상을 구분하기 때문에 대일여래, 무량광수, 부량광불 등으로 쓰는 말이다.
결국 빛이 나이며 너이며 우리이다. 나의 것 너의 것 우리의 것으로 쓴다.
소리가 나면 누가 듣느냐?
내가 듣는다.
귀가 듣는 것이라 하지 않는다.
꽃을 본다 누가 보느냐?
내가 본다. 눈이 본다고 하지 않는다.
지금 일어 나고 있는 모든 작용을 보고 듣고 말하고 냄새 느낌 생각하는 모두가 누가 하느냐?
어떤 대상인 눈 코 입 피부 마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
그 내라는 나는 어디에 존재하느냐?
마음이라고 하는 것에 존재한다고 한다.
왜냐면 기억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이 있으니까. 저 깊숙한 심해 속에 저장된다고 한다.
서양 심리학자 프로이드나 융 같은 사람들은 에고, 슈퍼에고 이드 혹은 의식,무의식 등으로 나누고
불교에서는 안이비설신인 5식 제6의식과 제7말라식 제8아뢰야식 등으로 구분하여 마음의 본질을 설명한다.
존재하는 그 마음들을 매 순간순간 인연된 작용일 때 나타나고 소멸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생성소멸하는 것이기에
그 마음 또한 어디에도 머물러 존재하는 곳이 없다고 한다.
종소리를 듣는 것은 원래 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종과 망치와 공기 등의 인연된 작용에 의해서 소리가 나면
그 소리를 내가 듣는다.
소리가 끝나면 듣는 것도 끝이다.
이렇듯 인연되어 나타났다가 소멸하는소리를 듣는 것이 나이다.
나는 무엇인가?
뎅!!!!!
설명하자면 소리가 나일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순간에 살아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고 몸이 없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아느냐?
각각의 몸이 서로 연기되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알 수 있는 법이다.
잠을 자면서도 나는 내가 잠을 자는 것을 아느냐?
그렇지 못하다.
꿈을 꾸면서도 나는 꿈을 꾸는 지를 알 수가 없다. 혹은 알 수도 있다.
몸이 있으니 꿈을 꾸는것이지 몸이 없는데 꿈은 있을 수 없다.
꿈 속에서는 내 몸을 보면서 안다. 그 아는 것이 마음이다.
그렇듯 나는 내 몸과 마음은 동시에 존재하면서도 따로 구분 됨을 알 수 있다.
빛이 형상을 통해서(반사나 투과) 빛이 있음을 아는 것이지 빛 그 자체로는 볼 수가 없는 것과 같다.
만약 내 몸이 없이 나타나는 내가 있다면 그것은 귀신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이 소멸하면 6식과 제7식인 말라식 까지는 함께 소멸하게 되는데 제8식의 무의식인 아뢰야식은 흩어지지 못하고 그대로 원결이 되어 남아 있으면 이것을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중생심의 업장인 무의식이 응집된 기운으로 윤회하는 요소이다.
그 기운은 몸이 없이는 사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몸을 다시 받는 윤회를 한다고 불교에서 설명한다.
우리가 생각으로 달을 보며서 달나라에 갈 수 없듯이 그냥 마음은 마음일 뿐이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생각이나 의지가 행동을 만드는 것은 몸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할 뿐.
만약 귀신이 되어서 나타난 적이 있느냐?
귀신을 본다 형상을 본다는 것은 산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지
죽은 사람이 스스로 몸을 나투고 쓸 수는 없다.
단지 산 사람들의 몸을 빌리거나 마음을 통해서 나타낼 수는 잇다.
산 사람이 잠시 몸을 이탈하거나 환상을 보면서 마음의 작용을 경험한 사람들은 있지만 영원히 몸이 죽어 없어진 사람이 스스로 나타난 것은 없다.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환각적인 현상을 볼 뿐이다.
몸도 때가 되면 지수화풍으로 사대가 환원되어 흩어지는데 하물며 뿌리도 없는 마음이야 더욱이 흩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자연법을 따르는 것이 순리에 맞는 이치다.
역행하지 않는것.
지체하지 않는것.
집착하지 않는것,
공상하지 않는 것,
이러한 것들이 연기의 자연법임을 바르게 사유(思惟)하는 것이 불법의 핵심이다.
정확한 원인과 정확한 과정과 유용한 쓰임을 바로 깨닫는 것
그래서 불법이 무엇입니까? 하니
평상심이다. 뜰 앞에 잣나무다. 똥막대기다.
조고각하, 그대 발밑을 조심하라.
손가락을 세워보이는 것, 등의 답이 나오니 말이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
연기소생이며 공한 이치 속에서 불생불멸하는 찰나적 존재다.
내 몸과 생각에 끄달리지 않고 자유로이 깨어 있을 때
나는
우주 전체가 나이며 나라고 하는 독립된 존재 자체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우주의 순환작용이며
위대한 창조이며 기적이다.
우리는 나를 위해서 산다고 한다.
내 몸과 생각을 위해서 먹고 자고 공부한다고 한다.
나의 소유물을 갖기 위해서 일하고 노력한다고 한다.
나의 가족과 나와 인연된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를 한다고 한다.
나의 이름을 위하고 나의 가문을 위해서 출세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나라는 별개의 조건 주어진 존재인 상이 나타나면.
인간은 그러한 조건 속에서 나를 위해서 산다고 한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와 싸움과 살인과 강도 강간 등 나만을 위한 조건의 충동을 위한 행동이 나타난다.
힘과 권력과 재물과 계락이 상대를 제압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들
이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한다.'
인간들의 역사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늘 자신보다 강한 외부의 두려운 힘의 공포로부터 고뇌한다.
갈등과 번뇌로 자신들을 자책한다.
그래서 그러한 갈등과 고통을 해결 해줄 것을 찾는다.
자신들의 힘과 능력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귀의하고 추앙을 하게 된다.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다양한 신앙과 종교가 만들어 졌다.
하지만 그러한 외부의 신앙과 종교의 힘에 의해서 복종하고 숭배 해 보지만 결국 내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자아의 본성을 완벽하게 찾아서 보호하고 행복할 수 없다.
자신의 내면안에서 작용하는 어떤 힘
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는 의지
그러한 의지의 원천은 행복함과 안락에 있다는 것을 충족하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불안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 안에 있는 마음, 혹은 내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지 못한 이상은 늘 불행하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불교는 이 질문에 답을 제시하고
가장 확실하게 자신의 내면에서 요구하는 답을 찾아주고 해결하는 방법을 재시한다.
영혼의 영원한 자유와 고통의 삶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만끽하게 해 준다.
불교의 진리를 바로 알면...........
내가 이 세상에 주인공이고,
우주이며
대자유인이라는 것.
오늘은 무술년 설날이다.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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