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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뭣고

통융 2017. 9. 26. 10:42


[K스포츠장기= 통융 스님] 장기판에서 읽는 법문 한 소식


이뭣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신에게 수없는 생각과 의문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것이 ‘Who am I? 나는 누구인가?’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이고득락(離苦得樂)에 대한 의문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바로 깨달아 이웃과 자비공덕을 나눔하며 참살이 하는 것이 불교이며 그 자성을 깨닫는 방법 중에 화두(話頭) 참선이 있다.

시심마(是甚麽) ‘이것이 무엇인가?’ 혹은 ‘그대 본래의 면목이 무엇인가?‘를 경상도 말로 줄여서 ‘이뭣고‘라는 화두가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판 인생을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찾는 것이다.

 

소승은 장기를 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법을 공부하는 수행자다. 그런데 본지에서 기고를 부탁받고 망설였으나 장기판 위에서 불법을 읽어내어 함께 나눔 하는 것도 귀한 일이라 생각되어 박심(薄心)을 내기로 했다.

 

장기 한 판 두는 것이 우리의 생사 인연법(因緣法)을 깨닫는 수행의 도리(道理)로 본다면 너무 과장된 뜻일까!

우리 인생이 긴 시간 무대(時臺) 위에서 한 판의 삶이라면 장기 한 판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장기를 두는 기사(棋士)들을 보면 참선방에 납자(衲子)들이 좌선을 하고 앉아 ‘이뭣고’ 화두를 골똘히 참구하듯, 장기 한 판이 흡사 선불장(選佛場) 같다.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자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라는 <법구경>의 말처럼 치열한 자신과의 한판 승부를 펼치고 있으니 말이다.

 

당나라의 선승인 임제(臨濟)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入處皆眞)이라 어느 곳에 있든 스스로 주인이 되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다.

상황과 처지에 끌려 다니면서 자신을 잊어버리지 말고, 지금 그대가 주어진 순간을 주인공으로 가장 철저하게 인식하고 오직 할 뿐! 이뭣고로 자각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대는 앉은 자리 혹은 장기판 위에서 온전한 한 판 우주가 만들어지고 전체를 꿰뚫는 안목이 생긴다. 이것이 철저히 살고 철저히 죽는 전기생 전기사(全機生 全機死)이며,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삶이다. 오자병법에도 ‘사필즉생 요행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 죽을 각오로 하면 살고 요행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불법은 늘 지금 이 순간을 깨어서 살아가는 이치다.

오직 한 순간 순간이 소중한 인생이기 때문에 오직 할 뿐!이며 ‘이뭣고?’로 깨어서 참구하는 현장이 장기가 아닐까!

단순히 승패의 게임이나 놀이가 아닌 한 판 인생과 삶을 볼 줄 아는 지혜를 키우고 깨달음을 얻는 한바탕 멋진 삶이 장기 한 판이 아닐까……. 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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