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과정
*불교수행이란?
불교의 수행이란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근본적인 실천은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三學) 즉,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세가지 수련을 그 기본원리로 하고 있습니다.
계율이란 일상생활 속에 지켜야 하는 자발적인 도덕 규법들로 제가신자들이 받아 지니는 오계(五戒)를 위시한 십선계(十善戒), 팔재계(八齋戒) 등, 계율들을 통해 절도 있는 생활을 습관화 시켜 나감으로서 마음속에 들끓고 있는 헛된 욕망을 제어하여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
선정이란 좌선(坐禪)과 같은 정신집중의 수행을 의미하는 것. 본래 선정은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인 요가의 일종으로 삼매(三昧)라고도 하는데,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고 의식을 한곳으로 통일 시키는 수련법. 산란한 마음이나 동요된 마음, 분노 따위를 제어하여 마음속에 지혜를 일으킬 터전을 마련.
중국의 선종(禪宗)에서는 이와 같은 선정수행을 특히 중요시 했다.
지혜는 사물의 이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기르는 수행으로, 우리의 몸이나 감각등에 대해 덧없고 괴로우며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관찰하고 연기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는 것.
우리들은 이와 같은 지혜의 수행을 통해 진리를 통찰하게 되면 마음속에 아무런 두려움이나 걸림이 없는 열반을 성취.
이 삼학은 초기 불교에서 강조된 것으로 이것이 근본이 되어 대승불교에서는 6바라밀과 10바라밀의 수행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계와 선정, 그리고 지혜를 구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남방에서 주로 수행하는 위빠사나, 대승 불교권에서 하는 참선, 염불, 주력 등이 있다.
*수행의 종류를 보면
1,사마타-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것인데 이것을'samatha'라고하고, 한문으로 번역하여 '지'
2,위빠사나- 집중된 마음을 가지고 법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것을 'vipassana' 라 하고 '관'
불교의 선정은 이 둘을 함께 수행하는 것을 다른 이름으로 '지관(止觀)'이라 한다.
지'를 통해 안정된 것을'정'이라하고 '관'을 통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을 '혜'라고 한다.
보조국사가 주장한 '정혜쌍수"는 바로'지관'을 말한다.
3, 선수행- 선(dhyana)은 원시불교에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삼학의 하나로서 중요시되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좌선수행법도 함께 전래되었으며, 북방불교에서 발달한 선불교로 선종의 발흥과 더불어 깨달음에 달마를 초조로 조사선,묵조선, 간화선인 화두선 등으로 변해 왔다.
4, 밀교수행- 밀교는 ‘비밀불교(秘密佛敎)’의 줄인 말로 대승불교의 전통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불·보살의 신체적 모습과 진언과 다라니, 또는 부처님의 삼매 등에 대해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의 범주에 입각해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밀교의 수행은 불상이나 만다라를 관하면서, 수인(手印)을 결하고, 진언을 외움으로써 수행자의 의식을 부처님의 지혜로 상승시키는 것에 근본 목적이 있다.
염불,사경, 주문 등의 모든 수행이 이에 포함된다.
밀교는 교리적으로 대승불교의 중생구호 이념을 배경으로 중관사상과 유식사상 등을 계승하여 성립된 것으로 8세기 경 인도의 붓다구히야 논사는 대승불교의 수행을 바라밀문과 진언문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진언문은 밀교의 다른 명칭으로 당시 인도불교의 논사들은 밀교를 대승불교의 교리적, 실천적 전통에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밀교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이들은 밀교를 주술이나, 마술, 비밀한 의식을 행하는 종교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밀교의 수행 가운데 성교를 통해 성불(成佛)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좌도밀교(左道密敎)가 밀교의 주류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오해는 근대의 일본 및 서구의 학자들이 불교의 전통에 기인한 밀교와 힌두딴뜨리즘(Hindu-tantrism)을 혼돈한데서 비롯된다. 근본적으로 ‘밀교(密敎)’란 용어 자체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의 한자문화권에서 유행한 밀교를 정의하는 것으로 이들 지역의 밀교는 인도에서 성립된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양부경전을 중심으로 화엄과 천태, 선(禪) 등의 사상과 결합된 지역적 특성을 보인다.
딴뜨리즘은 8세기경 인도종교에 유행한 ‘딴뜨라(Tantra)라는 경전 군에 나타난 사상적 조류를 가리키는 말로 불교와 힌두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진언과 천문학, 의학, 점성술을 비롯한 비밀한 의식과 노골적인 성속(性俗)을 주제로한 한 수행을 담고 있다. 따라서 밀교와 딴뜨리즘은 인도종교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공통점은 찾아볼 수 있지만 시대나 지역적으로 다른 사상체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 딴뜨리즘이 반영된 밀교경전이 등장하는 시기를 인도 후기밀교시대로 구분하고, 이러한 경전군을 티벳경전의 분류방식에서 ‘무상유가(無上瑜伽)딴뜨라’로 지칭하고 있다.
*초기불교의 수행과정 9차제정
*9차제정(九次第定)- 색계의 4선, 4무색정(四無色定), 멸진(滅盡)정이다.
먼저 '4선'은8정도(八正道) 중 정정(正定)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의의를 지니는데, 곧 석가모니 생존시사문(沙門)이라 불린 자유사상가들이 실천하고 있던 선정이 그 원형으로, 이것을 불교의 관념적 세계관인 삼계(三界)에 적용시켜 수정하여 편성한 것이 4선이며, 이는 색계(色界)에 해당된다.
1. 초선(初禪)
우리가 사람 몸을 받아 욕계에 사는 것은 다섯가지의 장애 - 또는 업 - 에 지혜가 덮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오개(五蓋)라고 하는데
(1). 식욕,감각적 용망 : 글자 그대로 먹는 욕심,성욕
(2). 성냄 : 화내는 것.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화를 벌컥 내는 사람, 지기 싫어해서 화내는 사람....등등...]
(3). 혼침,해태 : 잠을 자는 것. 게으름
(4). 도거,회의 : 들뜸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생각 저생각이 항상 쉬지 않고 일어나는 것을 뜻. 선정의 힘이 쌓이면 그렇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됨.
(5).의심 : 욕망과 어리석음에 덮여서 지혜가 없으니 인간을 뛰어넘어 대자유인이 되는 바른 길을 알려줘도 의심만 하고 수행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 참선을 통해서 선정의 힘이 쌓이면 위의 다섯 개의 덮임은 모두 사라지고 식이 맑아지면서 '초선'에 든다.
2. 제2선
이 단계는 사량분별로 알려고 하는 것이 끊어지는 과정.
즉 초선에서의 오개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선정의 힘이 약해 지혜가 익지 않아서 분별심이 남아있는데 그러한 분별심마저 참선을 통해서 끊어지는 단계.
분별심이란 무엇입니까?
아직도 선정의 힘을 통해서 지혜를 기르려고 하지 않고 알음알이로만 즉 지식으로만 분별해서 알려고 하는 것.
제2선정은 이렇게 남아있는 분별심을 끊는 것.
3. 제3선
이 단계는 이미 수행을 통해서 제2선정까지 올라왔으므로 마음에 환희심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러한 환희심 - 즉 선정에 들었을 때의 즐거운 마음 - 때문에 그동안 닦은 선정의 힘이 깨지므로 참선을 통해서 더욱 선정의 힘을 길러 이러한 환희심에 빠지지 않게 한다.
4. 제4선
수행을 통해서 이미 제3선정까지 왔지만 아직도 외부에서 오는 경계를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마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참선을 통해 선정의 힘을 길러서 계속 수행을 해 나가면 이러한 즐거움을 느끼는 마음도 사라진다.
제 4선정은 이렇게 오근의 경계를 통해서 오는 것에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욕계에서는 수승한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제4선정까지 오면 더 이상 욕계에 태어나거나 머물지 않는다.
즉 욕계를 초월한다는 것.
다음 단계는 4무색선정(四無色禪定).
이 단계는 욕계와 색계를 떠나 무색계에서 닦는 선정.
물론 인간의 몸으로 수행을 통해서 이 생에서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단계.
1.공무변처정 : 이 선정에 들면 공간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다. 선정에 들어 끝이 없는 공간에 자유자재 왕래를 할 수 있다는 말.(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이 자유자재로 하늘을 왕래한 아함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2.식무변처정 : 과거,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아는 것. 즉 이 선정에 들면 삼세의 모든 일을 걸림이 없이 알 수가 있다. 능엄경에 과거 8만겁을 알 수가 있다고 나온다.(참선을 통한 선정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가 있을 것.)
3.무소유처정 : 물질계에 걸림이 없는 경지. 나는 가진 것이 없는 무소유 상태지만 대상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누구보다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질에 마음을 내지 않음으로써 그 물질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지가 되는 것.
4.비상비비상처정 : 생각이 없어지고, 생각 아님도 없는 경지다.
이 경지에서는 일체 만가지를 다 주관할 수 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라고 본다. 3계 중생의 최고점에 자리한 경지로 (중생 가운데는 가장 수승한 중생), 생각이 없으므로 외도들은 이를 참다운 열반처로 본다. 그러나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므로 불교에서는 이것 역시 생사윤회하는 중생의 경지라고 본다.
다음 단계는 멸진정이다.
「상지멸정」이란 곧 구경열반에 드는 자가 성취하는 定으로, 이 정은 마음속의 모든 고통의 원인인 무명(의식의 자아와 말나식의 자아 그리고 이로 인한 무지와 사견)과 근본 무명(아뢰야식의 유루)을 끊어서 쉼에 드는 경지로서 불교에서 추구하는 구경처이다.
멸진정은 모든 번뇌가 다한 경지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나함'의 경지다.
이 경지에 들면 다시는 이 사바세계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불환과'라고도 한다.
마지막 단계가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의 단계다.
부처님을 뜻하는 말 '응공'-공양받아 마땅하다는 말 -을 아라한에게도 똑같이 쓰고 있다.
아라한이 바로 부처의 경지라는 말이다.
.1.초선(初禪)을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범신천」에 가서 나게 된다.
범신천이란 어떠한 경계를 일컫는가? 색계 초선천에 이르는 중간 단계 하늘로서 욕계를 막 벗으난 경계를 일컫는 것이다. 그럼 초선은 또 어떠한 경지인가? 욕계의 악을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경지, 즉 이생희락(離生喜樂)의 경지이다. 그러니까 초선의 경지를 성취한 마음은 최소한 범신천의 경계로 비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초선의 마음은 욕계를 떠난 경지이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에서 이 설법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12종의 욕계중생과 22종의 색계 중생, 그리고 4종의 무색계 중생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하고자 한다(이에 대해서는 장아함의「세기경」<도리천품> 참조).
첫 번째로 욕계 중생에는 12종이 있는데,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4왕천 . 도리천 . 염마천 . 도솔천 . 화자채천 . 타화자재천 . 마천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지옥 . 아귀 . 축생을 일러 3惡道라 하고, 4왕천에서부터 타화자재천에 이르는 여섯 하늘을 일러 6욕천이라 한다. 그리고 6욕천을 일러 그냥「천」으로 통칭하여 지옥에서부터 천상까지 왔다갔다하며 윤회하는 것을 6道윤회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그가 짓는 업에 따라 3악도로 떨어질 수도 있고 또 6욕천의 어느 하나에 날 수도 있으며, 색계 . 무색계의 어느 하늘에 날 수도 있고 무색계를 초월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성문4과 중 수다원과를 성취한 사람은 앞으로 영원히 3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되며, 욕계를 7번 오간 뒤에 열반(무색계 초월)에 든다. 그리고 사다함과를 성취한 사람은 이 욕계를 1번 오간 뒤에 열반에 들게 되며, 아나함과를 성취한 사람은 색계 이상의 어느 하늘에 나서 열반에 들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사람은 현재에, 즉 지금 이 욕계의 몸으로 무색계까지 초월하여 열반에 들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태어난다」는 말은 胎를 통하여 난다는 뜻으로 축생 . 인간에게만 사용 가능한 말이고 나머지 경계들은 다 化生이라고 표현해야 옳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옥이나 아수라 . 6욕천 . 색계 하늘 . 무색계 하늘에 날 때에는 화생을 통하여 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색계 중생에는 22종이 있는데, 범신천 . 범보천 . 범중천 . 대범천 . 광천 . 소광천 . 무량광천 . 광음천 . 정천 . 소정천 . 무량정천 . 변정천 . 엄식천 . 소엄식천 . 무량엄식천 . 엄식과실천 . 무상천 . 무조천 . 무열천 . 선견천 . 대선견천 . 아가니타천이 그것이다. 이것은 색계 4선천인 18천과 그 나머지 4천으로 분류 되는데, 색계 4선천이란 初禪 3천 . 2선 3천 . 3선 3천 . 4선 9천을 말하며, 그 나머지 4천이란 각 禪天으로 들어 가는 중간 단계 하늘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초선천은 범보천 . 범중천 . 대범천이고, 2선천은 소광천 . 무량광천 . 광음천, 3선천은 소정천 . 무량정천 . 변정천, 4선천은 소엄식천으로부터 아가니타천에 이르는 9하늘, 기타 4천은 범신천 . 광천 . 정천 . 엄식천이다.
마지막으로 무색계 중생에는 4종이 있는데 공처천 . 식처천 . 무소유처천 . 비상비비상처천이 그것이다.
2.제2선을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황욱천」에 가서 나게 된다.
「황욱천」이란 하늘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을 못 해봤으나 색계 2선천의 경지인 2선천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 하늘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한다. 즉 황욱이란 말의 의미를 보아서 아마도「광천」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제2선의 경지는 어떠한 것이기에 이것을 성취하여 머물면 황욱천에 나게 된다고 하는가? 즉 제2선의 경지는 안으로 고요하여 어지러운 생각도 세밀한 생각도 없으며 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경지, 즉 정생희락(定生喜樂)의 경지로서 이 경지는 황옥천의 경지와 같으므로 이러한 경지를 성취한 사람은 색계 2선천까지 비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3.제3선을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변정천」에 가서 나게 된다.
「변정천」이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색계 3선천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하늘로서, 이 경계는 제3선의 경지와 같으므로 제3선의 마음을 성취한 사람은 이곳에 가서 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변정천의 경지, 즉 제3선의 경지는 어떠한 경지인가? 곧 기쁨까지도 떠나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함이 없어 바른 지혜와 바른 생각에 머무는 경지, 즉 억염사락(憶念捨樂)의 경지이다.
4.제4선을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과실천」에 가서 나게 된다.
「과실천」이란 색계 4선천 가운데 하나인 엄식과실천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경계는 제4선의 경지와 같으므로 제4선의 마음을 성취한 사람은 이곳에 가서 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제4선의 경지란 어떠한 경지인가? 즉 모든 기쁨과 괴로움을 멸하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청정한 마음의 경지, 즉 호염청정락(護念淸淨樂)의 경지이다.
5.공처(空處)를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 공처천에 가서 나게 된다.
「공처천」이란 무색계의 첫째 하늘로서, 이 경지는 공처(공처定)를 성취한 사람의 경지와 같으므로 공처정의 마음을 성취한 사람은 이곳에 가서 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공처정이란 어떠한 경지인가? 곧 물질을 싫어하고 가없는 허공의 자재함을 기뻐하며 空이 가없다는 것을 아는 경지이다.
6.식처(識處)를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 식처천에 가서 나게 된다.
「식처천」이란 무색계의 둘째 하늘로서, 이 경지는 식처(식처정)를 성취한 사람의 경지와 같으므로 식처정의 마음을 성취한 사람은 이곳에 가서 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식처정이란 어떠한 경지인가? 곧 공을 떠나서 식과 상응하여 마음이 고정되어 움직이지 아니하고 3世의 식이 다 定中에 나타나 청정하고 적정한 경지이다.
7.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 무소유처천에 가서 나게 된다.
「무소유처천」이란 무색계의 셋째 하늘로서, 이 경지는 무소유처(무소유처정)를 성취한 사람의 경지와 같으므로 무소유처정의 마음을 성취한 사람은 이곳에 가서 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소유처정이란 어떠한 경지인가? 곧 식을 떠나 모든 인연이 실체가 없다고 관조하는 경지이다.
8.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그 경지에 머물면 목숨을 마친 뒤에 비상비비상처천에 가서 나게 된다.
「비상비비상처천」이란 무색계의 마지막 하늘로서, 이 경지는 비상비비상처(비상비비상처정)를 성취한 사람의 경지와 같으므로 비상비비상처정의 마음을 성취한 사람은 이곳에 가서 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비상비비상처정이란 어떤 경지인가? 곧 3계 중생의 최고점에 자리한 경지로 (중생 가운데는 가장 수승한 중생), 생각이 없으므로 외도들은 이를 참다운 열반처로 본다. 그러나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므로 불교에서는 이것 역시 생사윤회하는 중생의 경지라고 본다.
9.상지멸정(想知滅定)을 성취하여 거기에 머물면 모든 漏를 끊고 괴로움의 끝을 보게 된다.
「상지멸정」이란 곧 구경열반에 드는 자가 성취하는 定으로, 이 정은 마음속의 모든 고통의 원인인 무명(의식의 자아와 말나식의 자아 그리고 이로 인한 무지와 사견)과 근본 무명(아뢰야식의 유루)을 끊어서 쉼에 드는 경지로서 불교에서 추구하는 구경처이다.
총정리하면, 이 경은 각종 선정을 성취하여 머물면 이러이러한 경지에 가서 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 상지멸정을 성취하면 구경열반을 얻게 된다고 설함으로써 상지멸정 성취를 위해 정진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은「아함경」의 내용이 너무 중복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내용이 정말로 같은 경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설법 내용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단 소재가 같은 설법은 많다. 예를 들어 초선으로부터 상지멸정에 이르는 선정에 대한 설법은 많은데 그 각각의 설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심득(心得)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이다.
또 욕계천 . 색계천 . 무색계천에 대한 설법이 많이 나오나 각각의 심득 역시 다르다.
예를 들면 장아함의「세기경」<도리천품>에서 얻어 지는 심득과 이 경에서 얻어지는 심득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 잡아함에서 반복되고 있는「5온 무아」에 대한 설법 또한 기실 자세히 읽어 보면 거기에서 얻어지는 심득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잡아함에서 반복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37수도법과 계 . 정 . 혜3학 등에 대한 설법들이나 잡아함에서 거듭 설명되고 있는 3독심 . 10선행 . 10악행 등에 대한 설법들도 기실 서로 다른 심득을 주고 있다.
우리는「아함경」을 읽을 때 하루 빨리 그 골자만 쏙 뽑아서 알고자 하는 급한 마음을 먹어서는 안된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아함경을 모두 다 섭렵하지 않는 한(상근기는 제외하고) 아함경에서 이야기 하는 바를 깊이 있게, 유기적 .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즉 아함경의 교설이 내 것으로 소화 . 흡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태교상구조
교판이라고 하는 것은 교상판석을 줄인 것으로, 교상 즉 불타의 경교를 분류하여 해석한다는 뜻이다.
불교경론이 인도에서는 발전적으로 성립했기 때문에 경론의 선후관계가 성립순서가 자연스럽게 구별되었으나 중국에는 여러 경론이 뒤섞여 유입되었기 때문에 각자의 견해에 따른 교상판석이 나타나게 되었다.
천태지대사도 자신의 교판을 세우고 있는데 그것이 5시 8교이다.
<5시>
대사는 경전의 현의를 밝힐 때, 항상 5중현의 즉 다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해석하였다.
이 5중현의 라고 하는 것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명(名), 체(體), 종(宗), 용(用), 교(敎)이다.
이 5중현의는 대사의 연구와 강설의 주제였다.
그런데 이것을 보면 우리가 알고있는 천태교학과 큰 차이를 느끼게 한다.
그것은, 천태교리라는 것이 천태의 대표적인 교판인 5시8교로 조직되어 있으므로 5시8교는 바로 교리라는 등식으로 이해해 왔는데 5중현의를 통해서는 교상이 5중현의에 포함되는 하위개념이고 양적으로 분류하면 전체 교리 가운데 일정한 영역만을 점하고 있는 부문임을 알 수 있다.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는 석가모니의 일생의 가르침인 여러가지 불경들을 중국으로 한꺼번에 몰려 들어와 각 경전에 의거 하여 시기별로 5시時와 가르침의 방법으로 8교敎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5시時라고 하는 것은 시기별로 다섯 시간대로 나누었으니 다음과 같다.
제 1時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직 후 최초 3*7, 21일간 화염경에 설한 시기인 화엄시華嚴時이다.
제 2時는 부처님게서 화엄경을 설하신 후, 녹야원에서 12년간 소승의 아함부 경전인 장, 중, 잡, 증일 4가지 아함경을 설한 시기인 녹원시鹿苑時이다.
제 3時는 부처님께서 아함부 경전을 설하신 후 8년간을 유마경, 사익경, 능가경, 능엄삼매경, 금광명경, 승만경 등의 대승 경전을 설한 방등시方等時이다
제 4時는 부처님께서 방등경전을 설하신 후 약 22년간 반야부의 경전인 마하반야, 광찬반야, 금강반야, 대품반야 등의 반야경을 설한 반야시般若時이다.
제 5時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8년간 진실한 지견을 열어 보이고 깨달아 들어 가게 하기 위해 묘법연화경(법화경)과 대반열반경 등의 열반경을 설한 법화法華ㆍ열반涅槃時이다.
5시時는 또 소에서 나오는 우유의 맛이 변해 가는 단계인 유미乳味, 낙미酪味, 생소미生酥味, 숙소미熟酥味, 제호미醍醐味의 다섯가지에 비유하여 5미味라고도 한다.
<8교>
화의사교(化儀四敎)
돈교(頓敎)란 것은 붓다가 자기가 깨달은 것을 그대로 설시한 것을 말한 것이다. 5시에서 말하면 제1화엄시가 이것에 해당된다.
점교(漸敎)라고 하는 것은 불타가 깨달은 그대로를 이해할 수 없는 자를 이끌기 위한 방편시설이다.
5시의 교판에서 말하면 아함, 방등, 반야의 3시가 모두 점교에 해당된다.
비밀교(秘密敎)는 비밀부정교의 약칭이다. 앞의 돈점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병용하거나 청중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방법을 말한다.
비밀교의 설법은 어느 경우라도 설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기도 없고 일정한 경전도 없는 것이다.
부정교(不定敎)라고 하는 것은 현로부정교를 말한다.
앞의 비밀교와 같이 돈점 두 가지 태도를 병용하는 설법이나 다만 다른 것은 듣는 이가 서로 다른 청중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 법화를 제외한 4시의 가르침만이 돈, 점, 비밀, 부정의 화의에 속한다고 하고 법화는 화의4교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법화설법을 비돈, 비점, 비비밀, 비부정이라 하여 4교의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순일무잡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화법사교(化法四敎)
장교(藏敎)는 소승의 삼장교를 말한다.
장교의 '장'은 경장, 율장, 논장의 삼장에서 따온 말이지만 소승에 한정시켜 쓰고 있다.
4교 모두를 4제로 설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교만을 4제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멸제에 이르기 위한 수행방법으로 간략하게 계정혜로 자세히는 37도품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장교의 수행단계를 성문, 연각, 보살로 나누고, 성문은 4제, 연각은 12인연, 보살은 6바라밀을 닦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통교(通敎)는 앞의 장교와 뒤의 별교나 원교에 통한다는 뜻으로서 대승 초입의 법문을 가리킨다.
장교에서는 색심의 모든 법을 분석하여 아공법유를 설명하는데 통교에서는 일체공의 법을 체득한다.
공을 파악하는 수행의 단계를 10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3승은 각각 한계가 있다.
별교(別敎)는 이승과 다르고 원교와도 다르다는 뜻으로서 보살에게만 통하는 대승법문을 가리킨다.
별교의 보살이 수행하여 단계적인 깨달음을 거쳐가는 가르침이다.
수행단계는 52위(位)로 설정되어 있다.
원교(圓敎)는 원만하다는 뜻으로서 석존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수승한 가르침을 가리킨다.
인간적 작위를 뛰어 넘은[無作] 경지가 원교이다.
별교와는 달리 원교는 원융삼제를 제일의 원리로 삼고 있다. 관심문에서도 일심삼관의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법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천수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원교의 수행단계는 52위 앞에 오품제자위가 설정된다.
이상 화법4교는 불교사상의 내용을 분류한 것이니 대사의 불교분류론이며 교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3관에 입각하여 불교사상을 종합한 것이다.
* 대승불교의 수행 과정의 단계를 보면
중생의 깨달음을 구하는 성질과 능력에 따라 세 가지로 깨달음의 도가 나누어지는데, 이 세 가지의 분류를 삼승(三乘)이라 합니다. 삼승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을 말하며 모두 부처님의 일불승(一佛乘)에 귀일하게 됩니다.
성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라는 뜻으로, 본래는 부처님의 제자를 일컬었습니다. 그러나 연각과 보살의 의미와 대조적으로 쓰일 때는 부처님의 교설에 따라 수행해도 자신의 해탈만을 목적으로 하는 출가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성문을 위한 가르침을 성문승이라 하고 이런 가르침을 설한 경전을 성문장이라 합니다. 성문승은 연각승과 함께 모두 소승에 속합니다. 『법화경』에는 성문이 마음을 바꿔 대승으로 전향한 경우의 성문을 대승성문이라 합니다. 이때 대승성문은 사성제와 팔정도를 닦고 타인을 구제하기 위한 교설을 행합니다.
연각은 대승불교의 3승의 교의에 따르면, 연각승(緣覺乘)은 12연기를 현관하는 것을 말한다.독각(獨覺) 또는 벽지불(벽支佛) 등으로도 표현되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수행하여 깨달았지만 적정한 고독을 좋아하여 설법교화하지 않는 성자를 가리킵니다. 성문과 함께 이승(二乘)이라 합니다. 연각인은 오로지 자리행(自利行)만을 닦고 이타심(利他心)이 없기 때문에 자비심으로 중생을 교화하지 못하므로 불과(佛果)에는 도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대자비심(大慈悲心)을 갖추고 있는 길인 6바라밀을 통해서는 부처가 될 수 있지만 다른 유정의 깨달음을 돕는 실천이 결여된, 즉 재시 · 법시 · 무외시의 보시바라밀이 결여된, 즉 대자비심(大慈悲心)이 결여된 4제현관이나 12연기의 현관만을 통해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보살(菩薩)은 보리살타(菩提薩)를 줄인 말로, 보리는 깨달음이란 뜻이고 살타는 중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무상보리를 구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여러 바라밀행을 닦아 미래에 부처님의 깨달음을 열고자 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특히 무상보리를 구하는 대승의 수행자를 보살마하살이라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성문승과 연각승보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보살승을 매우 수승하게 봅니다.
성문4과(聲聞四果)의 단계
수행자가 오온(五蘊)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지혜(洞察智慧) 수행으로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를 통찰하여 위파사나의 16단계의 지혜 중에 14~15단계에서 모든 탐(貪), 진(瞋), 치(癡)가 소멸한 열반을 체험하면 성인의 대열에 든다.
그러나 그 수행자가 소멸해버린 족쇄(足鎖)의 내용에 따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4단계로 나눈다. 족쇄는 중생을 윤회(輪回)에 묶어주는 모두 10가지로 오상분결(五上分結) 5가지와 오하분결(五下分結) 5가지이다.
*오하분결- 중생을 욕계에 묶어주는 족쇄로, 1) 유신견(有身見: 自我에 집착), 2) 계금취견(戒禁取見: 계율과 의식으로 해탈할 수 있다는 삿된 견해), 3) 의심(疑心), 4) 감각적 욕망(快樂), 5) 악의(惡意)
*오상분결- 욕계는 벗어났지만 색계나 무색계에 묶어주는 족쇄로, 6) 색계욕(色界欲: 감각적 욕망을 벗어났지만 순수 물질세계(색)와 그 느낌에 대한 집착, 7) 무색계욕(無色界欲: 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지만 순수 정신세계(산냐 sañña, 想, 인식)에 대한 집착, 8) 아만(我慢), 9) 들뜸(昏沈), 10) 어리석음(無明)
* 수다원(預流果, Srotapanna)...예류과, 2선정
불교의 성자 가운데 첫 단계.
성인의 길에 들었다고 하여 입류라 하기도 하고, 흐름(=8정도)에 들어선 존재라는 뜻으로 預流라고도 합니다.
10가지 족쇄중 유신견, 계금취견, 의심은 소멸되고, 아주 거친 감각적 욕망과 중간 정도의 감각적 욕망과 악의와 같은 7가지 족쇄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거친 탐심과 진심(嗔心)이 없어 계율을 지키게 되므로 4악도에 떨어질 행위가 없어져 일곱 생 이내에 아라한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정신과 물질의 모든 현상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발생하고, 조건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연기의 이치에 눈이 열린 사람이므로, 색성향미촉법의 물질경계로부터 자유로워져 어떤 형상에도 끄달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지를 부처님께서는 '법의 눈(法眼)'이라 표현하셨고, "견해를 구족하고, 관통을 갖춘 자"라고도 하셨다. 그들에게 남은 괴로움은 멸진하고 해소되어 이들에게 남은 번뇌의 양은 이전의 괴로움의 무더기에 비하면 십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수다원만 성취하여도 큰 즐거움을 누리게 되지만, 남아 있는 습을 끊지 못했으므로 일곱 번 더 인간으로 와야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사다함(一來果, Sakrdagmin),,,일래과 , 사선정
한번만 이 세상에 다시 와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사다함이라 합니다.
오하분결은 거의 소멸되고 미세한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만, 오상분결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하여 한 번 더 욕계(欲界)에 윤회하여 그 생에 수행을 마쳐 아라한에 들게 됩니다.
실제로는 이미 옴도 감도 상관을 하지 않는 경지 입니다.
* 아나함(不還果, Anagamin)...불환과, 비상비비상처정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고 천상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아나함이라 합니다.
대부분의 족쇄가 소멸되거나 아주 미세한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만, 색계욕과 무색계욕은 아직 남아 있어 정거천이라는 천상으로 윤회하여 거기에서 수행하여 아라한에 이르게 됩니다.
욕계로 돌아오진 않지만 아직 윤회를 끊지는 못했습니다.
* 아라한(阿羅漢果, Arhan),,,멸진정
탐진치를 완전히 소멸시킨, 통찰지로 '존재의 소멸'이 열반임을 깨달은 성자를 말합니다. 열 가지 족쇄가 모두 다 소멸되어 더 이상 태어남이 없는 상태. 즉, 윤회하지 않게 되는 不生 不死의 문에 들어선 것을 말합니다.
아라한향(阿羅漢向)은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이르기까지의 위계(位階)이다. 아라한과에 이르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하였으며, 해야 할 바를 다하였고, 윤회에서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간다고 생각되었다.[1] 무학위를 간단히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아라한과 이전의 단계를 통칭하여 유학위(有學位: 배울 것이 있는 계위) 또는 유학(有學)이라고 한다.
예류과인 성문-------------------수다함 (욕계를 7번 오간 뒤 무색계정)
일례과인 연각-----------------------사다함(1번 오간 뒤에 열반)
불환과인 보살-----------------------아나함 (색계이상의 나라에서 열반)
아라한의 과정을 거쳐야 법안을 통해 6신통이 열리며 부처의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성문의 구별은 수행의 단계나 계위로서 설명이 되고 있으나, 머리로 이해하기에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들 입니다. 직접 수행을 통해 체득하기 전에는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는 깨달음의 과정을 52단계로 나눴는데
10신의 과정은 5온을 깨달은 범부각이며 신해행정의 단계이며 능가경에서는 성소작지이며, 10주,10행,10회향,,초지단계는 18계 의식의 단계로 부처와 비숫한 상사각인 성문 연각의(수다함,사다함,아나함) 묘관찰지이다.
여기까지는 심안을 깨달아 아는 단계이며 탐진치심과 교만 의심 삿된견해에서 벗어난 2선정의 단계이다.
10지의 2지에서 7지까지는 7식인 말라식으로 아라한의 단계이며 분수에 따라 깨달아 아는 수분각이며 평등각지인 몽중일여의 혜안의 단계이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과 아공(아만 아치 아견 아해)이 평정된다.
제8아뢰야식의 함장식인 미망과 미혹에서 벗어난 8지에서 10지까지는 구경각이며 멸진정에 드는 등각의 오매일여 숙면일여의 단계가 된다.
대원경지이며 진여이다.
제9식인 아타나야식은 묘각과 불각으로 진여일심인 소소영영한 깨달음에 들어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깨달음의 과정이다.
* 능가경, 유가 행식파 전식득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식(識)을 바꾸어서 지(智)를 득한다'이다- 성소작지-묘관찰지-평등각지-대원경지
전5식이 성소작지(成所作智)로- 눈·귀·코·혀·피부 등의 5관으로 느끼는, 전5식(前五識)이 변하여 이루는 지혜로 완전히 변형되는 것을 말한다.
제6식인 의식이 묘관찰지(妙觀察智)로-모든 법의 실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설법을 베풀고 중생의 의혹을 끊는 데 사용하는 지혜
제7식인 말나식이 평등성지(平等性智)로-모든 것을 알게 됨으로써 자타(自他)가 평등하며 둘이 아니라[不二]는 것을 여실히 아는 지혜로서, 이 지혜에서 발현되는 마음은 평등(平等)과 불이(不二)의 앎에서 조건 없이 일어나는 대자비심(大慈悲心), 즉 무연대비(無緣大悲: 인연이 없어도 자비를 베풀음, 즉 유위법이 아닌 무위법으로서의 자비심),
제8식인 아뢰야식이 대원경지(大圓鏡智)로-일체종지(一切種智) 즉 우주의 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佛智] 즉 진여의 무분별지(無分別智)
* 깨달음이 올 때에 일어나는 현상
화엄경(華嚴經)뿐 아니라 법화경(法華經) 보살본생경(菩薩本生經)에서 깨달음이 올 때나 상서로운 기운이 바뀔 때 느끼는 六種十八相(육종십팔상)에 震動(진동)으로 몸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1,진동개오(震動開悟)라 온 몸이 지진 나는 것처럼 움직인다. 가슴에서 큰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것처럼 혹은 온 몸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나 온 몸이 떨림이 온다.
2,소리가 온몸으로 움직이며 몸 전체로 듣는다. 여시아문이 내 몸으로 듣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3,허공에 구름한 점 없이 사라졌는데 푸른 하늘에 멀리 멀리 사무쳐 보이는 것처럼
4,잠 잘 때 깨어나는 것처럼
5,연꽃이 밤에 닫혀 있다가 낮이 되면 확 피는 것 같이 연화장 세계를 경험한다.
* 종범스님의 깨달음의 3요소… 自淨·自見·自用”
자정자기 (體)-안다고 하는 생각을 멈추는 것
자견자기 (相)- 바라봄 ,자정한 마음으로 그냥 바라볼 뿐,
자용자기 (用)- 자기를 스스로 스는것 자수용 삼매
첫째는 자정자기(自淨自己, 스스로 본인을 깨끗하게 하는 것)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하는 것. 색수상행식이 곧 자기인데 이것을 집중하고 연마하는 게 아니라 그 생각 자체를 깨끗하게 한다. 그래서 자정기심(自淨己心)·자정기신(自淨己身)하는 거다.
생각이 앞을 가리면 깨달음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 비우는 것을 그칠 정(定)이라 하고 생각을 자꾸 쫓아가는 게 아니라 멈추는 것.
지식은 다른 것들은 생각을 움직여야 하는데 깨달음은 멈춰야 한다.
그래서 아는 길하고 깨닫는 길하고는 전혀 다르다. 한 생각이라도 헛된 생각이 남아 있으면 그게 자기를 가려서 깨달음이 안온다. 스스로의 습관 때문에 어려운 거지 깨닫는 것 자체에는 어려움이 없다.
둘째는 자견자기(自見自己, 스스로를 보는 것). 봄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는 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자기 자신을 보는 것.
셋째는 자용자기(自用自己). 견성한 도인들이 하루 종일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 그분들이 뭘 하고 있을까?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 앉으면 앉은 대로, 서면 선 대로, 보면 보는 대로 수용하는 것이 자용자기다.
용-보신과 화신은 진짜가 아니고 임시적인 것이다.
체-법신만이 청정하게 온 우주에 두루해 있다.
천 개의 강에 물이 있으면 천 개의 달이 비치고 만리 창공에 구름이 없으면 만리가 그대로 하늘이다.바다에 비유하면 광대무변한 바다 그 자체는 법신法身이고 바다에 곽 차있는 물은 보신報身이고 그런 바다에서 일어나는 거품이나 파도는 산이나 내[川]나 사람이나 모든 존재는 화신化身입니다.
달에 비유하면 달 자체는 법신인 것이고 달 광명은 보신인 것이고, 또는 달그림자는 화신인 것이다.
* 숭산 스님의 4여(如)
무여(無如)- 우리의 생노병사는 싣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하다. 량구(良久) 하늘 나무나 바위 등 실제 세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ㅡ있는 것은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무상의 세계> 돌고 돌는 세계로 부처님이 최초로 깨달은 이치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일여(一如)-체(體). <진리의 세계인 열반의 세계>. 생각을 끊어버리면 하나 되는 본래의 자리가 된다. 나와 나 아닌 것이 멸한 자리를 말한다. 생각 이전으로 돌아가면 생각을 끊으면 마음이 공간처럼 맑고 고요해 진다. 거울처럼 그대로 비친다.
본체인 공의 세계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나와 나 아닌 것이 멸하면 거기에는 거대한 하나가 남는다. 사실 거대한 하나, 남는다는 것도 실체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거대한 하나이기에 하나라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누군가는 한 물건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진아 라고도 한다.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본래무일물이다. 얻을 것도 없고 얻은 바도 없다-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다.
여여(如如)-상(相). <진리의 세계>,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것들 옷은 노랗고 빨갛고 회색이고 등 관찰 대상이 모두가 진리이다. 한 물건이라 불리는 또는 진아 라고 불리는 그 거대한 하나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말한다. 산의 모습으로, 물의 모습으로, 나무의 모습으로, 새의 모습으로 드러난 세계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삼라만상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오직 일 뿐! .
실상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일체개고(一切皆苦)
아뇩다라삼략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무상정득정각)-부처는 무엇인가.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즉여(卽如)-용(用). 삼라만상은 거대한 기계처럼 하나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삼라만상은 특정 상황 속에서 특정 관계를 맺으며 특정 기능을 다하고 있다. 진리의 올바른 수용이 올바른 삶, 오직 행 할뿐!인 자리, 순간순간 올바른 삶으로 살아가는 것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가자 가자 저 언덕을 넘어 열반의 세계로 가자ᆞ. 대승불교의 육바라밀행이다.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보살의 경지---- 바로 이와 같다. 수용의 세계- 산은 높고 물은 흐른다.
즉여에는 주관적 즉여와 객관적 즉여가 있다.
주체는 함께 하는 것이라면 배고프다고 하면 나도 같이 배고프게 그냥 있는 것은 주체 즉여라면 배고픈 것을 고프지 않게 밥을 주는 행위는 객체즉여 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상대적세계, 마음이 꺼지면 절대적세계, 마음이 그대로 비추면 완전한세계
불교는 나 자신을 찾아서 옳은 길과 옳은 진리와 옳은 생활을 갖자는 것이다.
나 자신을 찾으려면 상대적세계, 절대적세계, 완전한세계를 깨달아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 禪圓(The zen circle)
0도-89도까지 : 소아,집착과 고통과 욕심의 영역, 이름과 모양에 집착한 분별심의 영역.
오온에 의한 탐진치의 苦聖諦이다. 책은 책이고 연필은 연필이다.
90-179도 : 업의 영역, 나라는 집착에서 오는 마음의 영역, 지식적인 이해의 영역, 색즉시공공즉시생이 된다는 것을 아는것.
모든 것은 마음으로 만드어 졌다는 것을 이해한다. 공하다는 것도 이해한다. 集聖諦다. 책은 연필이고 연필은 책이다.
180-269 : 무자아의 공의 영역, 깨달음의 영역, 말과 언어가 필요업다. 불입문자의 영역, 할!,방망이, 탕! 온전한 색즉시공 공즉시색,
滅聖諦이다. 공에 집착해서 무기공에 빠지면 안된다. (책도 아니고 연필도 아니다. ) 말이 필요없다.
270-359 : 자유의 영역, 시공간에 장애를 벗어난 완벽한 신비의 경험의 영역, 초능력,도인행동, 기적을 행하는 것,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된다.
자유에 집착하면 안된다. 이런 기능을 쓰는 사람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스승이 될 수 없다.道聖諦의 초기단계. 연필이 웃고 책이 난다.
360-0 ; 완전한 하나의 자리, 如如한 상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주객관이 없다. 無碍, 한 찰나에 올바른 상황과 판단과 실천이 이루어진다.
道聖諦의 완숙단계. 책은 책이고 연필은 연필이다. --- 책은 노랗고 연필은 붉다.
* 육조 혜능스님은 지통스님에게
<대원경지(大圓鏡智)>란 성(性)품이 청정(淸淨)한 것이오<평등성지(平等性智)>란 마음에 병(病)이 없는 것이며<묘관찰지(妙觀察智)>란 본것을 공(功)으로 삼지 않는 것이오<성소작지(成所作智)>란 원경(圓鏡)과 같아지는 것이니라.고 설명을 한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아라한과)- 불안과
* 법구경 372계송
無禪不智 無智不禪 道從禪智 得至泥洹무선부지 무지불선 도종선지 득지니원
선정이 없으면 지혜가 없고 지혜 없이 선정 또한 닦을 수 없네. 도는 선정과 지혜를 따르나니 거기서 비로소 열반에 이르리.
定慧雙修 -선정이 없으면 지혜가 아니 지혜가 없으면 선정이 아니다.
*삼매을 얻으려든지 무엇을 깨달으려는 마음이 있을 때는 절대 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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