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유영모와 김흥호목사

김흥호 목사

통융 2017. 7. 8. 20:04

진정한 웨슬리언 김흥호 목사는 “철학을 모르면 ‘나’를 모르고, 과학을 모르면 ‘물질세계’를 모르고, 예술을 모르면 ‘아름다움’을 모르고, 종교를 모르면 ‘생명’을 모른다. 그러니 철학도, 과학도, 예술도, 종교도 알아야!

 

 

다들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말하는데 ‘삶의 스승’을 가진 이들이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삶의 스승을 가진 행복한 이들 300여명은 이화여자대학교 연경반 강의실에서 ‘스승의 은혜’를 불렀다. 그들의 스승은 바로 현재(鉉齋) 김흥호 목사였다. 이날은 지난 45년간 매주 주일 아침마다 ‘연경반’ 강의를 했던 김흥호 목사(90세)의 마지막 강의가 있던 날이었다. 김흥호 목사는 “나는 평생 철학 선생이었다”고 말하지만 수많은 제자들은 그를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연경반 강의에 대해 “평소 공부한 걸 발표하는 자리일 뿐 누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진리에 목말라하는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그의 가르침에 저절로 고개를 떨군다.


 

김흥호 목사의 발자취

김흥호 목사는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김성항 목사(감리회)로 황해도에서 3·1만세 운동을 지도하다 체포, 3년간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고문후유증으로 별세했다. 김성항 목사는 평양 대동강에 두로도라고 하는 섬에 감리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나왔다고 한다. 김성항 목사는 그곳에 대광학교(초등학교)를 세웠고, 안창호 선생은 대성학교(중학교)를 세워 각별한 교류를 하며 지냈었다고 회고했다.


김흥호 목사는 평양고보를 나온 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고당 조만식 선생의 권유로 황해도 용강군에 용강중학교를 설립했다. 공산정권의 압박이 심해 1947년 남한으로 내려왔고, 당시 천막에서 예배하던 이들과 함께 대신교회(담임 홍원영 목사)를 창립했다. 김흥호 목사는 위당 정인보 선생의 소개로 국학대학에서 철학교수로 근무했고, 정인보 선생에게서 양명학을 배우고, 춘원 이광수 선생의 소개로 오산학교 교장인 다산 유영모 선생을 만나 성리학을 배우게 되면서 동양고전에 대한 그의 지식은 더욱 폭넓고 깊어졌다.

 

수복 후 정인보 선생의 주선으로 백낙준 선생이 총장으로 있던 연세대에서 5년간 동양철학을 가르쳤고,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의 요청을 받아 이대에서도 철학개론을 강의했다. 김활란 총장은 그에게 ‘교목’이 필요하니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해오면 좋겠다고 부탁, 미국 웨슬리감리교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곳에서 전 미국 감리교단의 감독이며 한국 감리교 명예 감독이었던 레인즈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를 받고 미국 인디아나주 감리교회의 정회원목사가 됐다. 이후 김흥호 목사는 한국으로 돌아와 이대의 교목으로 있으면서 종교철학, 기독교문학 등을 28년간 가르쳤고,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15년간을 주역, 양명학, 선불교 등에 대해 강의했다.  
 
시간제단, 새로 태어남 경험

김흥호 목사는 7살 때 하나님을 만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다리를 꼭 안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너무 높아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그 꿈이 구순의 나이임에도 아직도 생생히 기억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암울한 식민지 체제의 현실에서 10대 후반의 김흥호에게 있어 유일한 활력은 부흥회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이후 20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나가노에 있는 한국감리교회를 담임하면서 와세다대학을 다녔다. 그 당시 대학 내에 우찌무라 간조가 세운 무교회주의자들의 제자들이 하는 성경강의가 있었다. 그들과 교류하고 무교회주의자 선생들의 전집을 탐독하면서 신앙적으로 눈뜨게 된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다석 유영모 선생을 만나면서 비로소 어릴 때부터 품어온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풀게 된다. 바로 35세 되던 1954년 3월 17일 오전 9시 5분에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했다. 이후 그의 삶이 크게 바뀌었다. 그는 이 경험을 시간 제단(時間際斷, 시간의 끊어짐)이라고 표현했다. 다석 유영모 선생에게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는 설명을 듣고 귀가 뚫리는 경험을 했다. 그는 성경의 어려운 말 가운데 도무지 머리로 알 수 없던 말이 십자가, 성육신, 부활이었다고 한다.

 

“그날 선생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게 ‘길이요’ 할 때, 그것이 ‘십자가’라는 것을, ‘생명이요’ 할 때 ‘부활’을, ‘진리요’ 할 때 ‘성육신’ 이라는 것임을 알아채게 된 거지요. 십자가의 도(道)와 부활의 생명과 성육신의 진리를… 성육신의 진리라는 것은 성령의 진리이고, 부활의 생명이란 그리스도의 생명이며, 도(道)라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지요. 결국 십자가, 부활, 성육신이라는 이 세 마디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라는 말과 같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된 거예요.”

 

그 체험이 있은 직후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써주는 것처럼 글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단단무위자연성(斷斷無爲自然聲) 즉심여구토성불(卽心如龜兎成佛) 삼위부활영일체(三位復活靈一體) 천원지방중용인(天圓地方中庸仁)’. 일종의 오도송(悟道頌, 깨달음을 얻고서 짓는 시)이다. 당시 이걸 본 스승 유영모 선생은 “이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글이다”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 글에 각 종교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했다. “도교에선 ‘무위자연’, 불교에선 ‘즉심성불’, 기독교는 ‘삼위일체’, 유교는 ‘중용’이다. 내가 배우고 생각해오던 모든 진리가 이 네 가지 말로 요약되고 체계화된다. 이걸 하늘이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김흥호 목사는 “시간제단은 이전의 이기주의적인 내가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 새것이 되는 경험이었다. 나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 그것이 믿음” 이라고 말했다.

 

45년간 1일1식(一日一食)의 삶

김흥호 목사는 35세 이전에는 ‘내 힘’으로 살았다면, 35세 이후에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대상적으로만 존재하던 예수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내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산다’(갈2:20)는 것을 그 때 알게 됐습니다.”

 

“내 안에 있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그걸 매순간 느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 아무리 믿지 않으려 해도, 안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흥호 목사는 시간제단 경험이후 45년간 ‘1일1식(一日一食)’을 해 왔다. “올해로 45년이 넘었다. 몸이 약해 사람들은 내게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1일1식’한 뒤로 병이 없어졌다. 오히려 내 안에서 에너지가 샘솟는다.”

 

스승인 다석 유영모 선생도 1일1식을 했다. ‘다석(多夕)’이란 호도 ‘夕(석)+夕(석)+夕(석)=多夕(다석)’해서 ‘하루 세 끼를 한 번(저녁)에 먹는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유영모 선생은 인도의 간디가 ‘1일1식’했다는 얘길 듣고 “비결이구나”라며 시작했다고 한다. 석가도 ‘1일1식’을 했다고 한다. 

 

김흥호 목사가 파악한 다석의 실천(道)은 ‘일좌(一坐) 일인(一仁) 일식(一食) 일언(一言)’의 ‘하루살이’이다. 즉 새벽에는 일어나 꿇어앉아 공부하고, 낮에는 열심히 농사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저녁에는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며, 밤에는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다석은 하루를 곧 일생처럼 살았다. 밤마다 십자가에 달리고, 아침마다 부활했다. 김흥호 목사도 스승이 삶에서 실천해 보인 그 길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걸어왔다.
 
‘기독교 도인(道人)’, 동·서 철학 꿰뚫어

목사이면서도 유·불·선, 동양 삼교를 꿰뚫고 동서양 철학에 막힘이 없다 보니 그를 ‘도인(道人)’, ‘철인(哲人)’이라고도 불린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나’를 알기 위해서다. 과거 우리 역사에는 도교도 있고, 불교도 있고, 유교도 있었다. 그게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바로 조상의 삶이었다. 나도 모르는 나의 의식 속에는 유교도, 불교도, 도교도 있다. 그래서 ‘나’를 알기 위해서 공부했다”면서, “퇴계와 율곡, 원효와 의상을 바로 알려니 공자와 주자, 화엄경과 법화경도 공부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다른 종교의 경전도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것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말한다. “불교와 유교, 도교를 깊이 알게 되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나는 기독교를 사랑한다. 내 평생 찾은 것도 기독교다.”

 

그는 법화경, 원각경, 화엄경, 양명학 등 다른 경전에 대한 책도 많이 썼다. 그의 경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미국에 선불교를 알린 스즈키 다이세쓰 선사의 제자로 미국 시카고 젠센터 소장인 마쓰나가가 70년대 초 한국의 선사들을 만나러 왔었다. 마쓰나가는 통역과 안내를 찾다 그를 소개받아 함께 전국의 사찰을 돌며 선승과 대화를 나눴다. 떠나기 전 서울 동국대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 때 선문답과 같은 어려운 질문이 쏟아졌다. 그때 마쓰나가는 김흥호 목사에게 대신 답할 것을 요청했다. 함께 다니면서 그의 경지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김흥호 목사는 청산유수처럼 법담을 쏟아냈다. 마쓰나가는 훗날 일본의 불교신문에 한국의 선불교 경험을 쓰면서 “목사인 김흥호씨가 구경각(究竟覺)의 경지를 노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적고 있다.

 

“설교는 기쁨을 전하는 것이다. 장자, 노자도 기쁨을 전하는 것이었다. 하이데거도 기쁨을 전했다. 기쁨이라는 것은 듣는 자도 기쁘다. 기독교의 핵심은 기쁨이다. 노자, 장자의 핵심도 기쁨이다. 그들도 진리를 깨달아서 가르치는 것이 기쁨이다. 모든 종교의 핵심은 기쁨이다. 진리를 깨달은 것이 기쁨이다. 설교는 기쁨을 전하는 수단이다. 웨슬리도 기쁨이 넘쳤다. 웨슬리를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까닭이다. 4만 번 설교했다는 것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설교가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김흥호 목사는 감리교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나는 웨슬리를 참 좋아한다. 그가 로마서 서문을 듣고 성령체험한 후 자기의 것을 나눠 어려운 이웃을 돕고 4만 번의 설교를 한 위대한 인물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힘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웨슬리가 끼친 영향은 정말 크다. 웨슬리가 없으면 나도 없다.”

 

기독교인, 사명 깨달아야

“요즈음 사람들은 개인구원을 추구하는데, 안창호, 조만식 선생은 개인구원보다 나라구원을 위해 사신 분들입니다. 내가 성경 강의하는 것도 나라를 위해서 살리자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나 자신의 구원보다 나라가 구원받고 아시아, 세계가 구원받는 것으로 가야 합니다. 그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김흥호 목사는 세계구원의 역사를 한국이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웨슬리도 세계를 개혁하겠다는 것이었다. 웨슬리의 꿈은 세계를 새롭게 하겠다는 것이었지 영국이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면서 “한국도 한국만의 행복이 아니라 세계행복을 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기독교는 개인의 깨달음에 보탬을 줘야지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식의 기복(祈福) 신앙에 머물러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복신앙을 염려하면서 말했다. “기독교의 복은 하늘의 숭고한 뜻과 하나님을 만나는 데 있습니다. 팔복 안에 돈 얘기는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기독교의 복과 한국의 복은 개념이 다릅니다.”

 

김흥호 목사는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버려할 것 세 가지를 지적했다. 바로 당파싸움, 사대주의, 우상숭배이다. “감리교회 뿐 아니라 한국 전체가 싸우니 문제다. 당파싸움은 이조를 망치게 했다. 사대주의도 벗어나야 한다. 독립을 방해하는 것이 사대주의이다. 큰 것 섬기는 것은 안 된다. 우상숭배하지 말라. 교회를 크게 짓는 것은 교회가 우상이 되고 만다.”

 

이 시대의 큰 스승이자 진정한 웨슬리언 김흥호 목사. 일평생 배우고 가르치기를 넘나들며, 그의 제자들의 가슴에 깊은 흔적을 새겨놓은 그의 큰 가르침은 이 시대를 밝히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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