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호 목사는 한국 기독교계의 대표적인 영성가다. 그는 35세 때 ‘시간제단(時間際斷·시간의 끊어짐)’을 체험했다고 한다. 40년 넘게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 유교의 경전까지 줄줄이 관통하며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을 55년째 행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구약성경 중 ‘시편’을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놀랍다. 성경 속 메시지가 그의 목청을 통해 꿈틀대는 메아리, 살아있는 생명으로 쉴새없이 밀려온다. 14일과 21일, 두 번에 걸쳐 강의를 마친 그와 마주 앉았다. 김 목사는 담담하게, 또 단호하게 물음에 답했다. 김 목사와의 인터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해 청중에게 ‘시편 강의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난 참인데 병이 났다고 들었다.
-어떤 수술이었나.
“폐의 5분의 1을 도려내는 수술이었다. 의사는 ‘수술하면 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시편’ 강의를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을 받았다.”
-목사님은 한국 기독교계에서 손꼽히는 영성가다. 폐암이라니 뜻밖이다.
“나는 담배 먹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는 나도 상당히 의심했다. 내가 왜 폐암에 걸렸을까. 요전에 ‘동물의 왕국’이란 TV프로그램을 봤다. 수십 년간 돌고래를 연구한 학자가 그러더라. 돌고래는 본래 자연이기 때문에 병이 없다. 우리가 앓다가 낫는 것도 몸이 하나의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암에 걸린 돌고래가 꽤 있다고 그 학자는 설명했다. 인류가 자연을 너무 학대해 돌고래까지 암에 걸려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며 (암의 이유에 대해) 위로를 받는다.“
-‘시편’ 강의를 위해 수술까지 했다. 왜 ‘시편’인가.
“마르틴 루터(1483~1546, 독일의 종교개혁가)는 ‘시편은 나의 전부요, 내 심장이다’라고 했다. 시(詩)가 뭔가. 사람의 가슴이 폭발하면서 터져나오는 게 시다. 가슴이 터지면서 나오는 생명을 적은 게 시다. 김소월의 시도 그렇고, 윤동주의 시도 그렇다. 그래서 ‘시편’을 읽으면 하나의 생명을 읽게 된다.”
-그 ‘시편’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나.
“‘시편’은 우리의 가슴을 터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해보라. 한 번도 가슴을 터뜨리지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한스럽겠나.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혼자서 가슴을 터뜨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부르고,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 가슴을 한번 터뜨려보는 거다. 그래서 종교가 있는 거다.”
-목사님은 35세 때 ‘시간제단’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 순간이 가슴이 터지는 순간이었나.
“그렇다. 깨닫는다는 건 시간이 끊어지는 거다. 왜 시간이 끊어지느냐. 시간과 공간이 곱해지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 모두가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다만 죄의식이 인간을 3차원 공간에 가두고 있을 뿐이다.”
1919년생인 김흥호 목사는 ‘가슴 터짐’을 ‘일제로부터의 해방’에 빗댔다. “우리가 해방을 맞았을 때 얼마나 기뻤나. 그럴 때도 가슴이 터졌다.” 그는 교회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도 만났고, 조만식 선생도 만났다. 그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애도 썼다. 김 목사는 “성경을 놓고 말하면 진리를 깨달을 때 가슴이 터진다. 그때는 한없이 기쁜 거다”라고 말했다.
-누구는 가슴이 터지고, 누구는 터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누구나 가슴이 터질 수 있다. 그러니 준비를 해야 한다. 공자는 15년 동안 거기에 몰두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몰입했다. 그걸 『논어』에선 ‘발분망식(發憤忘食·끼니마저 잊고 힘쓰다)’이라 했다. 그냥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예수도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저 놀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진리를 깨닫는 건 아니다. 내가 몰두를 해야 한다. ”
-몰두하면 어찌 되나.
“몰두하면 ‘나’라는 게 없어지고 만다. 그때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고 찬양하게 된다. ‘발분망식’하면 ‘나’가 없어진다. 그럴 때 기쁨이 나온다. 기쁨은 항상 무아(無我)에서 나온다. ‘나’가 있으면 기쁨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6년간 ‘유선생, 유선생’하면서 다석 유영모(1890∼1981) 선생을 좇아 다니며 몰두했다. 몰두가 중요한 거다.”
-보통 생활인에게 몰두는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기쁨은 90%가 진리탐구에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진리탐구가 없다면 어디서 기쁨을 찾겠는가. 진리는 깨닫는 거다. 지식으로는 안 된다. 아는 것으로는 안 된다. 지식보다는 시와 노래가 더 직접적이다. 그래서 ‘시편’에서 ‘할렐루야!’하는 거다. 할렐루야가 뭔가.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깨달을 때 나오는 찬양이다. 그럴 때 하루를 살아도 영원을 사는 거다. 그래서 어제도 할렐루야, 오늘도 할렐루야, 내일도 할렐루야다. 운문 선사는 그걸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고 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고, 불교의 핵심이다.”
백성호 기자
◆김흥호 목사=1919년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기독교 목사였다. 평양고보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 시절, 무교회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해방 후 귀국해 용강중학교를 설립, 교장을 맡았다. 조만식 선생의 제자로 활동했으며, 다석 유영모 선생 밑에서 6년간 공부했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와 교목실장, 감리교 신학대학 종교철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46세 때부터 이화여대 대학교회 강당에서 기독교를 비롯해 유·불·선 경전을 풀어내는 ‘연경반 강의’를 시작했다. 연경반 강의는 누구나 들을 수 있으며 무료다.
지난달 21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김흥호(90) 목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여름 폐암 수술을 받았고 회복 중에 강단에 섰다. 올해 3월부터 6월말까지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 강의실에서 구약성경의 ‘시편’을 강의했다. 150여 청중이 일요일 아침마다 그를 찾았다. 그는 44년째 서는 연경반 강의에서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유교·도교의 경전까지 깊은 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김 목사의 폐암 수술에 대한 CT촬영 결과는 8월 초순에 나온다. 김 목사는 “그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걸로 (연경반 강의가) 끝나야 하는 거고, 결과가 좋으면 다음 학기에 ‘바울’을 강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35세 때 ‘시간제단(時間際斷·시간의 끊어짐)’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때 글도 썼다. ‘단단무위자연성 (斷斷無爲自然聲) 즉심여구토성불 (卽心如龜兎成佛) 삼위부활영일체 (三位復活靈一體) 천원지방중용인 (天圓地方中庸仁)’. 일종의 오도송(悟道頌·깨달음을 얻고서 짓는 시)이다. 당시 이걸 본 스승 유영모는 “이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글이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이 글에 각 종교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했다. “도교에선 ‘무위자연’, 불교에선 ‘즉심성불’, 기독교는 ‘삼위일체’, 유교는 ‘중용’이다. 내가 배우고 생각해오던 모든 진리가 이 네 가지 말로 요약되고 체계화된다. 이걸 하늘이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목사님은 기독교인이다. 왜 불교와 도교, 유교 경전을 강의하나.
“내가 왜 불교를 자꾸 얘기하느냐. 기독교보다 불교가 이론적으로 정리가 잘 돼 있기 때문이다. 유교도 참 정리가 잘 돼 있다. 30세 입(立), 40세 불혹(不惑), 50세 지천명(知天命), 60세 이순(耳順) 등 내가 살아보니까 그대로더라. 그런데 기독교에는 40세에 뭘 하고, 50세에 뭘 하라는 말이 없다. 그러니 유교한테는 그런 걸 배우는 거다. 나는 노자의 무위자연을 ‘나알알나(나를 알면 앓다 낫는다)’로 표현했다. 무위자연을 그렇게 한 마디로 풀면 무척 알기 쉬워진다. 그래서 불교도 배우고, 유교도 배우고, 도교도 배우는 거다.”
-그게 기독교와 충돌하진 않나.
“기독교에는 한없는 진리가 내포돼 있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는 길과 진리와 생명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럼 불교를 믿지, 왜 기독교 믿느냐?’고 반문한다. 그런 게 아니다. 불교와 유교, 도교를 깊이 알게 되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나는 기독교를 사랑한다. 내 평생 찾은 것도 기독교다.”
-진리의 내용이 뭔가.
“진리의 내용은 눈을 뜨는 거다. 지식하곤 다른 거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눈을 떴다고 여긴다. 그런데 실은 눈을 못 뜨고 있다. 석가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했다. 그게 뭔가. 진리에 눈을 뜨는 거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진리에 눈을 뜨고, 일어서고, 걸어가야 한다.”
-그럼 그리스도란 뭔가.
“눈을 뜬 사람이다. 그리스도가 눈을 뜬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일어선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걸어간 사람이다. (진리와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 눈 뜨는 게 통일, 일어서는 게 독립, 걸어가는 게 자유다.”
-예수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했는데 .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나의 십자가가 돼야 한다. 예수의 부활이 아니라 나의 부활이 돼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성숙해진다. 성숙해지면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되고 만다. 그게 거하는 거다.”
-목사님 말씀이 참 귀하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계의 중심부에는 왜 서지 못하는가. 어찌 보면 기독교계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현실적인 교회가 어떻다는 생각은 안 한다. 다만 우리 교회가 좀 더 높아졌으면 한다. 교회는 진리를 찾는 곳이다. 그러니 와서 설교만 듣고 가는 교회가 돼선 안 된다. 사람들은 더 깊이 예수의 말씀을 짚어보고, 더 깊이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
- 유영모 선생에게 배울 때는 어땠나.
“그때 유영모 선생이 YMCA 강당에서 강의를 했다. 그런데 청중이 한 명도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럼 함석헌 선생과 내가 번갈아가면서 강의실에 홀로 앉았다. 그럼 유 선생은 ‘한 명이 아니라, 반쪽이 와도 공부를 해야지’라며 강의를 했다. 유영모 선생 때는 5명 정도 강의실에 모였는데 내 강의는 100명 내지 200명이 모인다. 나는 굉장히 성공한 거다.”
이 말끝에 김흥호 목사는 웃었다. 그는 교회의 사람 수, 강의실의 사람 수에 연연하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철학회에서도 유영모 선생이 한국 철학의 핵심이라며 떠받들고 야단이다. 결국 진리는 아무 때고 가면 빛나는 거지, 그 사람이 죽었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예수도 젊어서 죽었다. 후계자가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나중에 바울이 나타나고, 기독교가 2000년 동안 이어졌다.”
-기계적으로 교회에 가고, 세례를 받고, 성경을 읽으며 죄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있다.
“그게 다 자기 죄인의 마음이다. 나도 그랬다. 15년 동안 그냥 교회를 다녔다. 그런데 도무지 죄사함을 받은 것 같지가 않더라. 죄사함을 받아야 믿음인데 말이다. 그래서 무진 애를 썼다. 어떻게 하면 나는 믿음을 얻을까. 그렇게 몰두하다 35세 때 ‘탁’ 눈을 떴다.”
-한국 사회는 다종교 사회다. 그런데 불교도는 기독교를 모르고, 기독교도는 불교를 모른다.
“성인은 모두 눈을 뜬 사람이다. 예수도, 공자도, 석가도 다 눈 뜬 사람이다. 눈 감고 사람을 인도하는 건 없다. 나는 석가를 사랑한다. 불교도가 석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조금 더 사랑한다. 그래서 『법화경』과 『원각경』, 『화엄경』에 대한 책도 썼다. 기독교인도 알아야 한다. 불교를 깊이 알면 기독교에 대한 이해도 쉬워진다.”
백성호 기자
◆김흥호 목사의 저서와 강의
현재(鉉齋) 김흥호 목사는 1978년부터 2007년까지 29년간 총 44권의 책을 출간했다. 사색출판사는 7월부터 총 150여 종에 달하는 ‘김흥호 사상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기독교’ ‘다석 유영모 사상’ ‘한국사상’ ‘유교사상’ ‘불교사상’ ‘노장사상’ ‘서양철학’ ‘수상집’ 등의 순으로 책이 나온다. 김흥호 목사의 사상을 알리고 연구하는 모임인 ‘현재학회’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 www.hyunjae.org’다 . 저서 구입 문의 070-8265-9873, ‘연경반’ 강의 문의 010-3017-8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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