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스님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였으며, 20세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난 후, 율장을 정밀하게 연구하고 성종과 상종의 여러 경전의 깊은 뜻을 두루 통달한 뒤에 항상 금강반야바라밀경을 공부하면서 깊이 있게 교학(敎學)을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반야6백부 경전에 깊이 심취되어 끝내는 금강경(金剛經) 에 주석을 달 정도로 금강경에 통달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언제나 금강반야를 강의하였기에 덕산스님을 주금강이라고 불리웠으니, 이렇게 주금강(周金剛)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유명한 강백스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방에 다녀온 한 스님이 말하기를 양자강 남쪽의 남방오랑캐들이 불입문자 교외별전 견성성불 한다고 하질 않나,,,,, 극의 묘처는 언어도단이요, 심행처멸 하며, 실상이언 하다고 하질 않나,,,,, 하는 소리를 전해들은 덕산스님은
" 이런 마구니(마귀)같은 놈들이 있나, 내가 당장 내려가서 그 마구니떼를 소탕해버리겠다."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호언장담하고는 남방의 선종 스님들을 찾아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에게
“한 터럭이 바다를 삼켜도 바다의 성품은 손상되지 않고, 겨자씨를 칼끝에 던져도 칼끝은 움직이지 않는다. 배울 것과 배우지 않을 것을 내가 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내용으로 보면 불법에 대한 덕산스님의 조예도 가히 짐작 할 만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덕산스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 마음이 편안치 못하니 어찌 지체할 수가 있겠는가? 하고 말을 하고는, 바랑에 장안의 청룡사 도인스님이 지은 금강경소(疏)를 짊어지고 그날로 발걸음을 재촉해 촉나라로 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덕산스님은 남방에서는 불입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등으로 부처가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들에게 금강경을 전법하고자, 바랑에 금강경소를 챙겨 넣고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노파: “스님, 바랑 속에 웬 물건이 많이 들어 있어 무거워 보입니다. 대체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덕산: “금강경에 내가 직접 주석을 단 금강경소입니다.”
노파: “아, 그래요? 금강경에 대해 그렇게 잘안다면, 내가 하나 묻겠습니다. 만약에 내 질문에 대답을 하면 떡을 공짜로 드리고 만약에 대답을 하지 못하면 떡을 팔지 않겠습니다.”
덕산: “예, 좋습니다. 무엇이든 물어 보십시오.”
노파: “금강경에 과거심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스님께서는 지금 어느 마음에 점심(點心)을 할 것입니까?”
덕산: ......
덕산은 말을 못하고 점심을 굶고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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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노파가 덕산에게 질문한
過去心不可得(과거심불가득) :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가 없고
現在心不可得(현재심불가득) :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가 없고
未來心不可得(미래심불가득) :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가 없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디에 점심을 찍어서 즉
어떻게 답을 해야 떡을 얻어먹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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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스님은 그 길로 용담원에 들어가 이런 말을 합니다.
덕산: “용담에 못은 있으나 용은 없구나!”
용담: “용담에 잘 왔네!”
덕산 스님이 용담 선사에게 가던 날 밤 용담 선사의 방에서 밤이 깊었다.
용담 선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그만 내려가 보게나."
덕산 스님이 쉬려고 발을 걷고 나가다가 바깥을 보니 캄캄하였다. 돌아서서 말하였다.
"화상이시여, 바깥이 캄캄합니다." ( 이 소식은 진리에 어둡다는 비유어이다.)
용담 선사가 촛불을 켜서 건네주다가 (촛불은 지식의 어둠을 밝히는 물리적인 지혜<금강경>이다)
덕산 스님이 막 촛불을 잡으려고 하는 찰나에 곧바로 촛불을 불어서 꺼버렸다. ( 진리는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의 자성을 밝힘이어야 한다.)
덕산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캄캄하고 온 세상이 텅 비워버렸다.
순간 덕산이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지금부터는 다시는 천하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노라."라고 하고
드디어 금강경의 소초들을 가져서 법당 앞에 쌓아두고는 횃불을 높이 들고 크게 외쳤다.
"모든 현묘한 이치를 다 지식으로 알아도 마치 터럭 하나를 저 허공에다 두는 것과 같고,
세상의 온갖 중요한 일을 다 말하더라도 마치 물 한 방울을 큰 바다에 던지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금강경소초를 들고 말하였다.
"그림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라고 하고는 곧바로 태워버렸다.
그리고 용담 선사에게 예배를 올리고 떠나버렸다.
용담이 등불을 훅 불어 꺼트린 것은 진리가 지식이 아님을 보여주는 법문이다.
진리는 모두가 그대로 살아 있는 존재 그 자체이며 실상이다.
진리를 설명하고 말로써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벌써 주객이 구분되어 본질의 청정성을 잃는다.
진리는 실전이다.쓰임이다.
어둠 자체가 진리이다.
밝음은 밝음 자체가 진리이다.
어떻게 지식으로 어둠을 밝힐 수 있겠는가.덕산이 깨달은 진리다.
금강경의 이치에 통달을 해도 어둠앞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지식이 진리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어둠을 밝힐 수는 없는것 처럼.
조고각하가 진리다.
물리적인 것은 등불이 진리다.
진리를 설명은 잘 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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