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의 이야기

깨달음이란-1

통융 2017. 2. 1. 20:21


 

###  깨달음은 무엇인가?

 

* 깨달음 그런 거 없다.

-그럼 왜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이 깨달았다고 합니까?


*부처나 조사들은 스스로 깨달았다고 한적이 없는데 그대가 말하고 있다.<知無生死>

  깨달음은 말로 있다, 없다고 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그 자체일 뿐이다.

 

* 良久! (침묵)

<이 이치는 언어도단. 불립 문자,무상의 세계, 상대적 세계, 그대 생각(空,色) 이전의 세계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

 

*정히 깨달음을 알고 싶다면

1, 옴!..........

 

2, 뿌리 없는 나무에 꽃이 피고  입 있는 돌새가 노래를 한다.(無根樹開花 有口石鳥歌)

< 1,2 이 이치을 설명하자면 공의 도리를 깨달아 나타낸 것이다. 절대적 세계, 진리의 '나툼'이다. 열반의 세계.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

  조주는 '무'로 임제선사는' 할!' 덕산의 방망이로, 구지선사는 일지(一指)로  그 도리(一如)를 알려줌이네.<契無生死>

 

*그래도 알지 못했다면

당신  손을 들고 바라보십시오.

대중이 손을 들어 바라본다..;;;;;  손을 보는 순간이 깨달음이다.

창밖에서 개가 '멍멍' 짓는 소리가 들린다....그 '멍멍' 듣는 순간이 깨달음이다.  

이 이치를 설명하자면  '보임' '들음'을 말한다. 완전한 세계, 두두 물물이 부처아닌 것이 없다는 뜻, 내가 부처임을 앎이다. >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동산스님은 '마서근', 운문선사는 '똥막대기'로 이미 있는 그대로(如如)의 도리를  다 들어내 보인다.

<體無生死>

 

* 그래도 알지 못했다면

1, 당신 손에 똥이 묻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손을 닦을 것을 찾아 닦아 내거나 물로 씻어야 한다…….

(이 말은 진리를 이해한다는 말 일 뿐이다……그렇게 생각하고 말한다고 손에 묻은 똥이 닦여지지는 안는다.

이것은 진리를 이해하는 정도다.

설명하고 분석해서 지식인 머리로 아는 것을 깨달았다고 착각 하는 것이다. 이것을 가진리(假眞理)라고 한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당신의 문제인 손에 똥을 없앨 수 있을까요.

참진리(眞理=불법)는 직접적이고 지금 일어나는 작용성이다.

말이 필요 없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직접 휴지를 찾아 닦거나 물을 찾아 씻는 행동이다.

'배 고프면 밥먹고 잠오면 잠자는 것이다.'

 

*2 , 내가 배가 고프다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빨리 밥을 먹으세요, 혹은 빨리 먹을 것을 찾아 드세요'라고 한다면.... 이것도 참진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가()진리로 방편 진리일  뿐입니다.

이 것도 하나의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직접적인 진리가 되지 못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손가락을 진리하고 할 수는  없는 거와 같다.

진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배부를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이러한 것이 진리를 깨닫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언설(言舌)로 세상을  구원하고 교화 한 것 같이 착각을 한다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지 참된 진리는 아니다

부처가 깨닫고 40년간 길 위에서 맨발로 다니며 84천 법문을 설()했지만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고 <금강경>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삼처전심<三處傳心> 살아 있는 법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도 십자가에 스스로 죽임을 당하는 것도 진리를 말로 하고 기적을 보여도 알지 못하니 바로 보여준 실례(實例)이다.

실천이 동반하지 않는 진리는 영화 속에서 맛있게 보이는 음식이 가득하지만 내가 먹을 수 없는 거와 같은 것이다

팔만사천법문의 경전이나 성경도 뜻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는 장난감이요 찢어서 쓰는 휴지 밖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3, 나에게 음식을 구해 주거나 직접 음식을 먹여준다면 ……그 행동이 최상의 깨달음이다....참 진리는  작용성만 있을 뿐이다.

진리의 쓰임은 나눔이라는 자비만 있을 뿐이다

설명이나 말이 필요 없다고 해서 "오직 행할 뿐!'  '오직 모를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뜻과 행동이 함께하기 때문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손가락도 달도 모두가 참 진리가 된다.

<위에 1,2,3의 이치를 설명하자면 진리의 '쓰임'으로 연기의 완성된 중도(中道)의 진리가 된다.

보살(菩薩)의 세계대승의 참된 진리인 바라밀(波羅蜜) 행이며, 요익중생(饒益衆生)이며 자비와 사랑이다.> 

조주가 말한 '밥을 먹었으면 발우나 씻게나', 백장의 '불매인과', 조주가 짚신을 머리에 이고 밖을 나간 소식 , 이러한 도리가 모두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진리를 즉여(卽如)로 '쓰임'  이사무애(理事無碍)의 도리다. <用無生死>

 

*** 덧말***

* 깨달음은 있다고 하는 자에게는

깨달음은 없다.

있다고 하면 무엇을 있다고 하는 것인가?그 무엇을 말하려는 순간 벌써 이해이고 마음이다.

마음이니 이해니 온갖 언설로 옷을 입히는데

허공사람에게 어떻게 옷을 입히고,  마음 없는 사람에게 어디에 점심(點心)을 찍을 수 있겠는가.

 

* 깨달음은 없다고 하는 자에게는

깨달음은 있다. 

 유무에 집착한 분별 심으로 없다고 하는지는 진리를 부정하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빠져 허무주의를 이야기 하게 된다.

임어당 같은 사람들이 나온다.

나는 지금도 숨 쉬고 배고프면 밥 먹고 잠 오면 잠자고 잘 살고 있는데 어떻게 없다고 하느냐.

똑똑히 봐라!

귀신인지 사람인지 하하하.

       

* 깨달음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말하는 순간 깨달음은 어긋난다.

사과의 맛을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과를 직접 먹을 때와 사과를 먹고 나서 맛을 설명하는 차이다.

사과를 먹고 나서 아무리 정확한 논리로 언설을 유창하게 사과의 맛을 설명해도 그것은 설명일 뿐이다(假眞理)

실용(實用)이 되지 않는다.

 

* 깨달음은 스스로 앎이다.

누가 어떻게 해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남이 대신 깨달아 줄 수도 없다.

 내 삶이 연기성(緣起性) 임을 자각하여 매 순간 순간 쓰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우리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쓰고 있으면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ᆞ

늘 당신은 '지금' 부처로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

부처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지 과거나 현재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짜이다.  

 

이렇게 앎을 보였는데도 어려우면 참선(參禪)수행을  직접 경험 해야 한다.

그리고 잠 진리(眞理=모든 삶을 통한 깨달음)에 대한 교학(敎學)적인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돈오(頓悟)를 돈수(頓修)니 점수(漸修)니 싸우지 마라.

돈수와 점수가 각 개인에 깨달음의 선후 문제이고 따로인 것 같지만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단박에 돈오로 깨진 사람은 전생에 돈수가 있었을 것이고, 지금 점수하여 공부한 사람도  몰록 깨닫는 순간은 돈수이다. 

그래서 돈오 오후수행인 돈수가 또 있다.

즉 돈수 없이 점수가 있을 수 없고 점수 없이 돈수가 있을 수 없는 쌍차쌍조(雙遮雙照)로 이해 함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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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깨달음이 필요한가.

 

1, 왜 사느냐

   사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누인가?

인간 본질(生老病死)의 의문을 바르게 앎으로

행복하게 사는 人間이 된다.

 

2, 진리를 바로 알면 세상을 쓰고 만드는 창조자(주인공)가 된다.

3, 비현실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고 진실해 진다.

4, 세상은 인연(因緣), 결과(結果)로 만들어 졌음을 알기 때문에 온전히 사랑과 자비의 나눔이 실천 된다.

5, 오직 지금이 삶의 전부 임을 알고 과거나 미래에 근심과 걱정을 덜게 되어 늘 여유 있게 된다.

6, 중생심의 욕심인 생사해탈이니 극락이니 지옥이니 천당이니하는 말덫에서 벗어나 늘 자유롭다.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임을 안다.

배 고프면 밥을 먹고 잠오면 잠을 잔자.

 

꿈꾸던 자가 잠을 깨면 어떠냐?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되겠느냐?

배고픈 자가 밥을 먹고 나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와 같은 자신의 경험을  기억하며 질문하지만 그 답은 직접 체험하는 수 밖에 없다.

깨달음도 이와 같다.

깨닫지 못한 생각이나 지식으로 깨달은 다음의 뜻을 상상하거나 '그럴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결정 짓지마라.

 

육조해능의 사형인 혜명이 혜능에게 '무엇이 깨달음 입니까?' 라고 물으니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이러한 때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不思善 不思惡 本來面目)”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혜명이 즉각 깨달아서 하는 말이

여인음수 냉온자지(如人飮水 冷溫自知) 어떤 사람이 물을 마시면서 차고 뜨거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즉 참된 나 자신을 찾아서 옳은 길과 옳은 판단으로 옳은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습니까?

 

불교의 공부는 자기 마음을 깨닫는데서 시작이다.

내가 본래 깨달은 부처이다

그래서 누구나가 노력하면 본래의 본성을 확인(海印)한다는 믿음에서 시작하라.

나는 '중생인데 깨달아 부처가 될 것이야'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콩씨를 심어놓고 사과가 열리기를 바라는 거와 같다.) 

본래 부처가 어떻게 부처가 되겠다고 생각하느냐.

부처인지 모르는 생각만 버리면 된다그 생각이 망념들이다.  

깨달음을 지식으로 머리 굴려 분석하고 방법을 찾아서 이렇게 하는 거야 저렇게 하는거야 하는 생각들이 아니.

자신이 하는 어떤 수행(話頭)이든 철저히 하나가 되어보라.

그래서 오직 할 뿐! 이며 오직 모를 뿐!이라  하지 않았나.

 

"마음이 일어나면 상대적 세계, 마음이 없어지면 절대적 세계, 마음이 그대로 비추면 완전한 세계가 되어 보살도를 행하게 된다."고 숭산스님이 말을 했다.



 - 門열면 밝은 世上- 통융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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