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간화선) 집중수행

간화선

통융 2016. 9. 8. 21:32


조사선과 간화선은 비록 이름은 다르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
일한 구조이다. 그래서 조사선과 간화선은 시대적 의미가 부여되어
구분된 한갓 이름에 불과하다고 볼수도 있다.


대혜 선사는 이
마음을 한 마디 말끝에 바로 깨닫는 것’ 이 중요하다고 했다. 영가
현각泳뚫玄覺 665~713) 선사도 깨달음의 노래’ 인 「증도기證헨f\J에서
‘한마디 말끝에 밝게 깨달아백억 가지 법문을훌쩍 뒤어넘는대래
7然超百f턴 "고했다.



조사선에서는 스승이 법을 설하고, 고함을 치고, 눈셉을 치켜
올리며, 방망이를 휘두르는 행위를통해 마음을 바로 보고 깨닫는다.
또는 청허 휴정(淸虛f爛 1520~160찌 선사처럼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
닫기도한다.


이같은모든행위나기연은언어와사랑을떠 나 살아있는마음
의 당처를 바로 보여주는 법문이다. 그것을 바로 알아차리는 수행자
는 바로 깨닫게 된다. 이 것을 b염을 바로 가리켜(直指人心) 본래 성
품을 보고 깨닫게(見|땐k佛) 함’ 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깨달음의 법
이 스승과 제자 λJ-õ j 에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끊이지 않게 되는 것
이다.


언하변오言下便" 펌의 강조
조사선의 두 번째 조사인 혜가 선사는 초조인 달마 선사가 ‘불
안한 마음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자 그 자리에 깨친다. 육조 혜능 선
사도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 라"라는 『금강경』 구절을
듣는순간에 깨달았고, 혜능 선사의 제자들도 스승의 설법을 듣고 그
말블에 바로 깨달았다. 이렇게 ‘말끝에 바로 깨닫는 것’을 ‘언하변
오’ 라 한다. 그 밖에 선의 종장들도 이렇게 선문답이나 설법을 듣고
말끝에 깨달았다. 머뭇거리면 안 된다. 바로 지금 이 자리 에서 한 마


조사선에서도 조사가 던진 한 마디 말끝에 바로 깨닫지 못할 경
우에는 조사 스님의 말씀을 두고두고 의심하기 마련이다. 간화선에
서도 순간 깨침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조사선과 간화선은 수행의
방법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조사들이 제자들에게
질문을하든지 선지식이 제자에게 회두를주든지 그것은그순간본
래면목을 깨치라고 하는 것이고 깨침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화두로 의심해 들어가는 것이다.




은 계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를 도공계道#威라 한다. 도를 통해 부처
님처럼 되면 계가 그냥 따라오게 된다. 참선 수행과 계행은 함께 완
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몸과 말과 행동이 익어서 추호도
어긋남이없다.


화두는 의식과 생각으로 헤아려서는 안 된다. 생각으로 헤아리
는 것을 ‘알음알이’ 라 한다. 알음알이의 한자말은 지해鋼¥이다. 우
리나라 절의 일주문에 보통 ‘입차문래 막존지해λ比門來 莫存知쐐 라
는 글이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문 안으로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는뭇이다.


발심發心은 발보리심發환뽑心의 줄임말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
닫고자 히는 간절한 목마름이다.

선은바로여래의경지에들어가는문이다.그것을 ‘일초직입여
래지 -超-뱉如來뼈’ 라한다. 단도직입댄刀直入한다.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들은한결같이 말씀한다.
”스승 없이 홀로 깨닫기 (無師自↑펌)란 만萬에 하나도 드물다"
“스승 없이 홀로 깨닫는 자는 천마외도天魔댄다”라고 말이다.



진여(眞如)(산스크리트어-타타타)에는 4가지의 뜻

 

무여(無如)- 량구(良久) 하늘  나무나 바위 등 실제 세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이 없는것

일여(一如)-생각을 끈ㅎ어버리면 하나되는 본래의 자리가 된다.  생각 이전으로 돌아가면 생각을 끊으면 마음이 공간처럼 맑고 고요해 진다. 거울처럼 그대로 비친다. 하늘은 파랗고 ,개는 짓고 새들은 날고 여여한 세상이라한다. 영화를 보듯이 모든 것이 그냥 비춰 보여질뿐이다.

여여(如如)-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것들 옷은 노랗고 빨같고 회색이고 등 관찰 대상이다.여여가 깊어지면 자비가 된다. 다른 사람이 슬프면 같이 슬프고 기쁘면 같이 기쁘다. 다른 사람의 의식을 그대로 비친다.이것이 가장 소중한 관심갖기다.그것이 깊어지면 행동하게 되는데 그것이 즉여이다. 진리의 세계

즉여(即如)- 완전한 의식으로 상대가 배고프면 밥을 주고 목마르면 물을 줍니다. 여여없이는 즉여가 없다. 상대와 분리된 생각일 때는 자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작용하는 세계 즉여는 오직 할뿐, 목탁이 치면 법등으로 갈뿐, 차 소리가 나면 그냥 날뿐, 여여라는 관찰의 자리에 있을 뿐이다.

즉여에는 주체즉여와 객체즉여가 있다.주체는 함께 하는 것이라면 배고프다고 하면 나도 같이 배 고프게 그냥 있는 것은 주체 즉여라면 배고픈것을 고프지 않게 밥을 주는 헹위는 객체즉여입니다. 물에 바진 사람을 구해주는 행위 등 같이 물에 바지면 주체가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