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스님 법문

숭산스님 법문

통융 2016. 4. 6. 20:43

숭산스님의 범문

 

여러분은 아침 먹고 이 자리에 왔다. 늘 자신은 변한다. 세포가 변한다. 오늘 아침에 내가 아니다. 어제 나가 아니고 십년전도 아니다.

부처님도 사람이 태어나서 생노병사가 있어 세상이 무상하기 때문에 그렇다 했다.

 

무상의 세계다.-상대적 세계

이 세상이 무상하기 때문에 그렇다

100년전에 이 자리에 한분도 있었던 사람 하나도 없다 몸둥이 하나 받아서 태어났다.

100년 뒤에는 모두가 이 자리에 없다. 백년 뒤에 이 자리에 있을 사람 손들어봐라?

하나도 없다.

천당이 지옥이요 지옥이 천당이다. 이름과 모양을 가있는 것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없어진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없는 것이요. 있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산이 물리고 물이 산이다.

이름과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여 없어진다.

 

열반의 세계다-  절대적 세계 , 본체

무아의 세계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 생각이 일어나면 내가 있는데 그 생각을 귾어진 자리

모양과 이름이 없다. 텅빈자리로 돌아간다.

본성품,마음이요 우주의 근본체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일체의 자리다.

이 세계는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고 공이다. 산도 공했고 물도 공했다.

산도 물도 공했다.

모양과 이름을 따지면 있었다 없었다 하겠지만

여러분의 본체 우주의 본제 근본을 찾아가면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고 모든 것이 상대가 끊어진 세계다.

산도 공했고 물도 공했다. 모양과 이름을 다지면 있었다. 없었다 하겠지만

상대가 끊어진 세계다..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얻을 것도 없고 얻지 않을 것도 없고 얻은 바도 없다.

근본은 열반의 세계다. 얻는 거도 없고 얻은 바도 없는 일체가 공한 세계다

공했다 해도 맞지 않다. 일체가 공했다는 열반의 세계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간다.

왔다갔다하는 존재는 있다.

생각이 모두 끊어진 세계 몸둥이를 끌고 다니는 그놈은 어디러 갔다.

대우주가 하나된자리다.

이것이 본체다.

 

 

실상의 세계-

진리의 세계 -무아의 경지에서 대아각 된다. 시간은 시간이요 공간은 공간이다.

모양과 이름을 초월해서 진리의 세게.

나라는 생각을 없에고나면 큰 나가 있을 때 시간은 공간은 그대로 있다.

이 소식은 천당은 그대로 천당이요 지옥은 그대로 지옥이다. 찰나의 세계다.

이 지구가 돌지만 잠깐 멈추는 세계다. 무한대의 일체의 세계, 찰나의 세계다.

'아욕다라 삼약삼보리' 무상정득정각의 세계다.

찰나의 세계에서 전부를 볼 때 산은 산 데로 물은 물 데로 전체가 실상이 아닌 것이 없다.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본대로 들은 대로 전체가 실상 아니 것이 없고 진리 아닌 것이 없다.

 

세 가지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어서 올바른 수용을 할 때 참 된 불자가 된다.

무상의 세계-산이 물이 된다는 물이 산이 된다는 돌고 도는 세상 색즉시공 공즉시색

열반의 세계-본체의 세계 모두가 공했다는 무지여구득 이무소득고

실상의 세계-보고 듣는 것이 전체가 진리다 하늘은 푸르고 물은 흘러가고 가는 것은 가는 것이요 오는 것은 오는 것이요. 개는 멍멍 산은 산이요 설탕은 달고 아뇩다랴삼먁삼보리

어느 것이 바른 세계인가를 찾아서 공부하는 것이 불자의 가는 방향이다.

 

무상, 열반, 진리  어느 세계가 옳으냐?

차 대중 가운데 이 세계를 찾아도 못 찾아도 주장자로 30방씩 맞는다.

반드시 옳은 세계가 있을 텐데 어째서 그러한가?

 

!

 

법문은 이것으로 다 마쳤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데 몰라, 귀에 듣기는 들었는데 본뜻을 잘 모르겠다.

지금부터 이야기 하는 것은 그것을 해석하는데

뱀을 그리고 다리 붙이고 신발을 신기고 옷을 입히는 격이다.

꼴 불견이다.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본래가 다 부처인데

 

본래 부처가 무엇이냐? 마음을 깨닫 것이 부처다

모두가 마음이 있지요?

마음은 어디에 있지요? .머리에 가슴에 어디에도 없다 어떻게 생겨냐?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 망상이다.

본래 마음이 없다 .그런데 그 마음을 만들어서 스스로 있다고 없다고 망상을 피운다.

빈손으로 왔다가는데 욕심이 덩어리가 그냥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간다.

죄업만 남는다.

모든 중생이 지옥에 떨어지니 지장보살이 그 불쌍한 중생위해 정토 극락을 안내하는 보살이다

원력을 세우고 자꾸 보시 한다. 자꾸 보시한다. 옷도 뭐든 다한다.

땅으로 감췄다.. 죽으면 땅에 묻히니까 지장보살이다.

 

관세음보살 대자대비 세상 사람들이 욕심 대문에 고통 않받는 사람없다. 모든 욕심부리고 욕구를 들어주는 것을 다 어려움과 욕구를 들어주는 것이 대자대비

문수보살 대지혜 보살 욕심으로 고통 받는 것을 지혜 가르켜서 자신의 고통에서 구원해주는 받지 않게 하는 보살이다. 당장 그 자리가 극락세계가 되는 도리를 가르켜 준다.

보현보살 대원본존 행동을 그렇게 해야 한다. 행동을 가르쳐주는 보살

그렇게 해도 지옥에 떨지지니 고통받는 그 중생을 구원하려는 원력을 세운 분이 대원본존 보살이다.

그 사대 보살은 우리 한마음 가운데 있다.

그 보살을 찾아서 써야 한다.

남방불교는 보살이라는 말이 없다. 대승불교에서 팔만 사천 보살과 부처와 지옥이 나온다.

선에 와서는 부처 조사가 나타나면 부처 조사를 죽인다. 모두가 마음에 있는 생각인 부처 조사이기 때문에 생각을 죽이고 죽이다 보면 본바탕이 나타난다. 그것을 선이라 한다,

 

대원력을 가져라.

좋은 일을 하면 선업이 저 세상에 갈 때 노자가 된다. 지옥으로 가지 않고 천당 극락으로 가는 노자가 된다.

4대보살처럼 대자대비 지혜를 열고 실행을 하고 대 원력을 세워서 생활할 때  부처의 길이다.

 

 

불교의 근본 목적이 뭐냐?

나 자성을 깨달아서 진리를 모두 내 껏으로 만들어서 일체 중생을 제도 하는데 있다.

그 목적을 세워놓고 살아야 한다.

이 찰나가 극락이요 부처님의 세계다.

 

 

<송나라 때 경을 가르치는 큰절이 구지스님 일대강사다. 700명 대중이 공부를 했다.

소나무 밑에 앉아 있는데 육환장 실제비구니와 천용스님

참말은 개는 멍멍 고양이는 야옹야옹......

사람은 참 말은 뭐냐?

자신의 참 말도 모르면서 무슨 부천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말인가.---->일화

 

이 세상에 와서 공부를 해서 빚을 갚아야 한다.

마음 바탕을 깨달아서 모든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일체 중생의 광명이 되어야 하겠다.

그대로 본대로 다 부처인데 우리는 우리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진리를 보면서도 진리를 모른다.

 

실상- 부처가 무엇입니까?

운문스님의 권시궐, 동산스님의 마서근, 같으냐 다르냐?

구지선사의 손가락 하나, 덕산의 방맹이 , 임제선사의 할이 같으냐 다르냐?

수용-차나 한 잔 마시고 가거라.

 

원공법계 제중생도 동입미타 대원래 합시다. 나무아미타불

진미래제 도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합시다. 나무아미타불

 

상대적세계(색즉시공 공즉시색, 산이 물이되고 물이 산이되는 세계)

절대적세계(본체, 산도 공했고 물도 공한세계, 부처도 없고 나도 없고, 열반의 세계)

 

오직 일 뿐!

완전한세계(실상,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본대로 들은대로 비추이는 대로 부처아닌 것이 없는 자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어떤 세계가 참되고 옳은 세계인가.

 

오직 할 뿐 ! 

 이라는세계(용, 용심의세계, 찰나의세계, 산은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마음이 일어나면 상대적세계, 마음이 꺼지면 절대적세계, 마음이 그대로 비추면 완전한세계

 

불교는 나 자신을 찾아서  옳은 길과 옳은 진리와 옳은 생활을 갖자는 것이다.

나 자신을 찾으려면 상대적세계, 절대적세계, 완전한세계를 깨달아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고, 태어나서 불법만나기 힘들고,  

불법만나서 올바른 선지식만나기 힘들고, 선지식 만나서 옳게 깨닿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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