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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과 죽이는 살인검(殺人劍)

통융 2014. 12. 11. 20:38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과 죽이는 살인검(殺人劍)

 

 

 

 근대 한국 선()의 달마로 불리는 경허(鏡虛, 1849~1912) 스님의 제자인 혜월(慧月,1861~1937) 스님이

부산 선암사에 계실 때의 일화다.

스님은 대중법회 때 마다 나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과 사람을 죽이는 사인검(死人劍)인 두 자루의 명검이 있다”고 했다.

스님이 가지고 계신다는 두 자루의 명검은 어느 누에게도 실제로 보여주지 않고 신비의 베일 속에 쌓여 있었다. 천하 명검에 대한 소문은 신도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갔다.

마침 경상도 전역에 부임한 일본인 헌병대장이 이 명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명검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  그 명검을 확인하기위해 선암사로 올라갔다.

혜월스님을 직접만난 헌병대장은 적잖이 실망했다.

명검을 지닌 선사라면 풍모가 그럴 둣 하리라고 상상했었는데 선사의 모습은 너무나 온순한 노승에 불과했던 것이다.

헌병대장은 실망감을 감추고 물었다.

스님께서 활인검, 사인검을 가지고 계신다기에 그걸 구경하러 왔습니다.”

그러신가. 그럼 보여줄 테니 나를 따라 오시게.”

혜월스님은 섬돌 축대위로 성큼 올라섰다.

헌병대장도 스님의 뒤를 따라 섬돌 축대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스님이 돌아서더니 느닷없이 헌병대장의 뺨을 후려쳤다.

헌병대장은 순식간에 축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당황하는 그를 스님이 한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방금 전 당신의 뺨을 때린 손이 죽이는 칼이요,

지금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손은 살리는 칼이오.”

 

불교의 선()가에서 스님들이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 한 물건을 가지고 오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이뭐꼬?'화두(話頭)를 잡고 골똘히 참구하며 정진하고 있다. 그 한 물건을 칼로도 비유하는데 칼이란 분별심인 번뇌망상의 싹을 잘라버리거나 경계심인 벽을 허물거나 소통하게 하는 마음으로 비유해서 쓴다.

즉 모든 사람들은 자가 칼을 가지고 있다. 그 칼이 활인검이 될지 살인검이 될지는 스스로 갈고 닦아서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사음수성도 우음수성유)

智學成菩提 愚學成生死(지학성보리 우학성생사)

같은 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며 지혜로운 배움은 깨침이 되고 어리석은 이의 배움은 생사를 이룬다. 보조국사의 계초심학인문에 나오는 말이다.

즉 같은 법이라도 어떻게 배우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람 살리는 활인검인 부처가 되는 것이요. 잘 못 쓰면 생사에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의 살인검이 되는 것이다.

 

그대는 지금 어떤 칼을 갈고  닦아 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