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
동삼아!
예!
<길안능금나무 볼펜 그로키 40*30>
*각각 다른 곳에 집을 둔 주인이 머슴을 각각 두면
주인이 하나인 두 머슴은 각각 자기가 바라보는 주인이 이렇다며 싸운다.
無始無終
마흔 여섯 해가 되는 아침에 언뜻
내가 온 곳을 알지 못하니
어찌 가는 곳을 알겠나.
<솔바람 화선지 수묵담체 70*70cm>
* 누가 무소유를 소유하라 했던가.
소유도 무소유도 모두가 소유이니 그러한 분별심이 없을 때 그대는 진정 무소유 한 것이네.
그대는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소유한 것을 잊으시게 그러면 진정 그대는 세상을 소유한 것이네.
소유하지 않으면 서도 마음 자체가 소유이니 진정 그대는 무엇을 또 소유 할 것인가.
때
아침에 일어나 뭘 먹을까
생각하다 한 나절이 가고
하루 종일 뭘 할까 주저하다
일년이 가네.
<자화상 켄퍼스 유화 10호>
*시간은 가고 옴이 없다 늘 그 자리에 있을 뿐 그대들 스스로 때를 기다리며 기회를 바라지 말라. 오직 그대 지금 생각이 소중한 때이니라. 지금 일어나는 일은 지난 전생(前生)에 내가 만든 인(因)에 의해서 일어난 과(果)의 일이요, 지금 내가 하는 일(業)이 내일의 인과(因果)를 만드는 것이니 인과는 오차가 없다 다만 시차만 있을 뿐. 전생(前生)이란 어제도 10년전도 나에겐 전생이다.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일이 지났는데도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느냐? -마루틴 부버(유태교 신비주의자) -
소소영영
비는 마당에 내리는데
방안에 앉은 내
마음이 비에 졌네.
<정물 수채화 45*30cm>
없는 것을 있다고 하니 거짓말이 되고
없다고 하니 있는 것에 거짓이 되고.
그래서 부처님은 중도(中道)라 했다. 본래(本來)의 자성(自性)은 청정무구(淸靜無具)하여
공(空)한데 분별심(分別心)이 중생을 만든다고..
*파올클레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라.
*니이체 -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라.
경봉景峰의 소
경봉 어디 한 번 소를 타고 나타나 웃어봐라
내 코뚜레를 해서 끌고 다니게.
<조선소 종이위에 아그릴 50*30cm>
사람이란 태어날 때 각자 한권의 연극 각본을 갖고 탄생한다. 그 각본의 저자도 자기요. 감독도 자기요. 주연도 자기다.
그리고 그 각본대로의 한마당 연극이 사람의 일생이다. 이왕 연극할 바에는 멋들어지게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경봉스님
*훌륭한 여행자는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노자의 도덕경에
깨어라
어리석은 자여
지식知識을 추앙하다
노예가 되느니라.
<푸른 솔 이야기 도자기 35*25cm>
* 融(융)대사 - 눈먼 개가 우거진 띠 잎을 보고 짓자 눈먼 소경은 도둑이라 외쳤으니 이는 소리 따라 헛갈리게 되었으니 진실로 눈으로 견(見)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자신의 편견이 많은 사람에게 우를 범할 수도 있음을 알라.
아름아리는 자신의 본성(本性)을 눈멀게하고 이웃을 혹세문민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삼소 굴(三笑窟)
큰 산 밑에
큰마음 놀다 가다나
달빛에 그림자 없어도
三笑窟*앞 늙은 매화나무에
봄빛은 여전히
붉게 할喝!
타오르네.
<영취산 화선지 수묵담체 70*30cm>
*三笑窟삼소굴: 양산 통도사 극락 암에 경봉 큰스님이 기거하던 곳.
*양산 통도사 뒷산이 영취산이다. 본래 산 이름은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형상이라하여 취서산(鷲栖山) 이었으나 부처님이 고행하던 산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통도사에서도 극락암은 선방이 있는 곳으로 경봉스님이 계시던 곳이다. 지금도 세번 웃는다는 삼소굴에는 경봉스님은 자취도 없지만 뜰앞 늙은 매화꽃은 세월을 희롱하고 봄을 즐기고 있다.
중도中道
나무잎이 흔들린다.
바람이 나무잎을 흔드는가?
육조는 그대 마음이 흔든다고 했는데
그 마음은 내어 놔 바라!
<여여 화선지 수묵담체 70*30cm>
*선종(禪宗)의 제6대 조사인 혜능(慧能)이 광동성 법성사를 찾아을 때 깃발이 흔들리는 걸보고 두 학승이 깃발이 흔들린다. 바람이 흔든다라 고 서로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에 해능이 깃발도 바람도 아니라 그대들 마음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마땅히 머무를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낸다는 )금강경(金鋼經)에 언구이라.
계룡산 국제선원 한철 안거 때 이 화두를 가지고 3주간을 골똘하다 문듯 아하!....
*보고 듣는 것에 생각을 더하지 말라. 가만히 조견照見하라. 오온이 개공도 되면 견성하리라.
조견하고 있는 자를 알려 하지말라.
바로보고 바로안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인 나이며 중도(法性)이다.
할喝
누가 부처를 이야기하면서
자꾸 마음을 닦으라 한다.
<토함산 켄퍼스 유화 10호>
*할喝-당나라 시대 임제(?-867) 의현이 학인들을 맞이하여 그들의 공부를 점검할 때 큰 소리를 내지르는 ‘할(喝)’을 많이 쓰고 덕산(780-865) 스님은 주장자로 후려치는 ‘방(棒)’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 유명한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을 <벽암록>에서 “덕산 스님이 사정없이 내려치는 주장자의 모습은 마치 소나기 빗방울 쏟아지듯 하고, 임제 스님의 고함소리인 ‘할’은 천둥이나 벼락 치듯 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을 <선가귀감> 79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臨濟喝 德山棒 皆徹證無生 透頂透底 大機大用 自在無方 全身出沒 全身擔荷 退守文殊普賢大人境界 然據實而論 此二師 亦不免偸心鬼子>. 생멸이 없는 도리를 철저하게 증득하여 생사의 맨 꼭대기에서 맨 밑바닥까지 온갖 인연을 꿰뚫고 아우르면서 법을 쓰는 것이 거침없고 자유자재하여 일정한 법칙이 없는 것이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이다. 온몸으로 부처님의 법을 드러내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며 온몸으로 부처님의 세상을 책임지면서 문수와 보현의 경계를 지켜내기도 한다. 그렇더라도 사실대로 말하자면 임제와 덕산 또한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도깨비가 됨을 면치 못한다.
*마음자리가 보이지 않는 다고 지식의 설명으로 모든 것을 이렇다 저렇다 유혹하지 말라.
여러 사람들이 식견으로 업을 쌓게되면 그대는 더 큰 죄을 짓는 업이 되니라.
사람들도 늘 참 자신의 성품을 바로알고 허황 된 기대나 머리로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지 말라.
머리는 의식을 전달하는 수단인 방편임을 명심하라.
부처는 돌덩어리고 경전은 닥나무로 만든 지(紙)임을 안다면....
자성견自性見
솔가지가 햇살에 기대어 말을 한다.
내가 들을 수 없는 만큼 가만히
<솔가지 종이위에 스켓치 30*20cm>
*지혜란 불을 밝히는 것이고 밝은 불은 본성인 참나이다.
불을 밝히는 방법은 지식이나 그 방법을 갖고 논쟁을 하지 말라.
부처의 등과 가섭의 등과 혜능의 등과 그대 자신의 등에 모습은 각각 다르지만 밝혀진 불은 같다.
또한 불을 밝히는 지혜가 필요하나 그렇다고 지혜에만 집착하면 경전을 암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발이 땅에 닫아 있는데도 밧줄(진리)를 잡고 있는 격이니라.
가고오는가
희양산 아래
서암(西庵)집이
낡아서 이사를 할 때가 되었나.
*희양산(曦陽山)- 경북 문경 가은과 충북 괴산 연풍과의 경계인 희양산(998m)을 조계종 최고 선원인 봉암사 (鳳巖寺)를 품고 있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지증 도헌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선종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이다. 매년 안거때에는 수백여명의 납자들이 참선 공부를 하는 곳이다.
* 서암(西庵) -1914년 경북 풍기생 19세에 불문에 들어 2003년 3월 29일 봉암사에서 열반. 스님들이 입적할 때 열반송(涅般訟)을 한마디씩 하는데 스님께 열반 게송 한마디를 얻기 위해 제자가 집요하게 묻자 "열반송 없다 … 노장 그렇게 살다 갔다 해라"하신 스님은 평생을 참선으로 한국불교 중흥을 이끈 선지식이였다. 필자가 '솔거가 그린 솔을 찾아 길 다니던 중에 봉암사 조실 이셨던 큰스님을 뵙고 싶었으나 노환으로 만날 수 없다 기에... 2달후에 열반하심
허상虛想
저 후박나무 그림자는 온 종일 해를 보지 못하는구나.
*명상은 대상이 있는 객관적 행위이고
참 자아탐구는 대상이 없는 주관적인 행위이다.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
* 이름과 모양에 집착 없고 가진 것 없으면 다시는 고뇌에 쫒기지 않으니라.
모든 생각 다 끊어버리고 끊었다는 생각초차 잊어버려라. 몸과 마음이 허공과 같을 때 비로소 고요한 광명이 빛나리라 -법구경
관음觀音
밤새 울던 핑경소리 어디로 갔나 했더니
저 댓잎 우에 앉아 있네.
*모든 관계는 스쳐 지나는 인연(만남)일 뿐 소유(머무름)는 아니다.
숨 한 번 크게 쉬고 눈 한 번 끔벅 하는 것이 관자재 행심반야바라밀이니 어찌 부처가 아니겠는가.
적요寂寥
문 밖에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사람인 것을 안다.
*적요(寂寥)-적적하고 고요함
*공자는 도의 문을 만들었고 노자는 현빈玄牝의 문을 열었고 나는 그 문없는 문을 넘나들며 한가하네.
부처와 중생의 차이는 부처는 망상이 없는 적요함이요 중생은 분별심내는 적요함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니사르 가다타 마하라쉬
사사자 삼층석탑 앞에서
예까지 연기緣起의 장삼자락을
밟고 온 마음이
돌탑 안에 고여 저리도 따스할까.
*四獅子 三層石塔 :구례 화엄사에 있는 국보 제35호로 높이 54.5m. 화엄사에 있는 3층석탑이며 사리탑(舍利塔)이라고도 불린다.
사사자삼층석탑은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을 이루는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그 형식면에서도 아주 독특하다. 기본 구조형은 2층기단 위에 삼층석탑의 기본형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에서 특이한 의장(意匠)을 보인다. 하층기단면에는 3구씩의 안상을 조각하여 그 안에 도합 12구의 천인상(天人像)을 양각하였고 모두 보관(寶冠)과 영락(瓔洛)으로 몸을 장식했다. 삼층기단은 우주(隅柱)를 대신하여 좌형(坐形)의 암수 두 쌍의 사자를 배치하고 두상에는 연화대를 얹어 갑석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기단에 비해 비율이 작은 느낌이 드나 층급(層級: 받침)은 5단이고 1층 탑신 사면에 문살형을 모방하여 조각하고 그 좌우로 인왕상(仁王像), 양측면에 사천왕상, 배면에 보살상을 양각했다.
석탑 바로 앞은 544년 백제성왕22년 신라진흥왕5년에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緣起祖師)의 어머니인 비구니의 모습이라고 하며, 석등의 무릎을 꿇어 앉아 있는 숭상은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던 연기조사가 차공양을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귀성歸性
돌아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
내 얼마나 좋은가.
* 그대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고향이 어디인지를 아시는가.
그대 부모 미생전 본래면목(夫母未生前 本來 眞面目)을 찾아보시게...
*이뭐꼬? -한국 선종의 대표적인 화두(話頭)로 시심마(是甚磨 - 이것이 무엇인가?를 경상도 말로 줄여서 하는 참선 구(句)이다.
나는 누구인가?
선식禪食
발우*에 햇살 하나 담고
산바람 하나
물소리 산새 소리까지 담아
아침 공양을 드네.
* 발우(鉢盂): 스님들이 음식을 담는 그릇
공양을 올리는 손길과 발우 속에 담겨진 인연과 하나 되는 우리를 기억하는가.
감사하라! 흙을 살리는 농부의 땀방울과 식솔을 먹여 살리는 그릇 빗는 아비의 손길을 기억하며. 쌀 한 톨 나물 하나에도 온 우주가,
산 빛과 새들 어우러진 바람과 별빛에 반짝이는 계곡물의 웃음까지 담겨 있는 공양이 아닌가,
사랑하라! 발우 안에서 온전히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고 춤추는 그 소식의 기억들을,
존경하라! 법계(法界)의 우주심(宇宙心)이 내 안에 가득한 블성(佛性)이고 그 깨달음에 자명등(自明燈)을 밝히게 한 바리때의
소식이 배고픔을 채워주는 밥임을
선정禪定
달은 말 없이 서성이다
산을 넘어가네.
*삶은 한 순간도 존재치 않는다는 것을 알면 스스로 겸손한 그대가 되느니라.
*생사(生死는 )육신(肉身)의 오고감이 아니라 마음의 생멸(生滅)임을 알라. 육신의 생멸은 공간을 이동하는 작용 일 뿐
텅
길에서 만난 마음 하나씩
주워 담아 무겁더니만
희양산 아래 서니
큰 산 하나로 텅 비어버리네.
*길 떠나는 나그네여! 그대 여행 중에 너무 많은 것들을 탐하지 마시게.
그대 걸망에 짐이 무거워지면 걸음이 고통스러울 테니.....
우리 인생이 길위에 잘돌뱅이가 아닌가, 이장 저장 기웃거리며 업보따리 팔고사며 여행하는 나그네가....
돌탑
저 돌탑 봄비에 젖어도
핑경 소리엔 물들지 않네.
*늘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에고age=自我)에게서 일어나는 인간적인 의식(意識)에 속지 말라.
*한 글귀가 정신에 물들면 반드시 장차 부처가 될 것이고 두 글귀가 귀에 스치면 일곱 세상 동안 잠기지 않으니라.-영명(永明)선사
어!
어슬렁거리던 산 그림자
해를 업고
산문 안으로 들어가네.
* 그대 인생은 어디로 어떻게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는가,
그대는 과연 회귀(回歸)하여 돌아갈 곳을 아는 삶의 진리를 깨닫고 있는가.
生불
有
體
不
有 心 不 處
*몸은 있되 마음이 없고, 마음은 있되 곳이 없구나,,,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