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摩訶止觀』 음입계(陰入界)에서 역연대경수(歷緣對境修)에 대한 고찰(考察)
금강대학교 대학원 수업레포트 통융
목 차
Ⅰ. 서론
Ⅱ. 음입계경(陰入界境)에서 역연대경(歷緣對境)에 대한 이해 .................. 2
1. 연(緣)에서 6작(六作)의 관행(觀行) ................................................ 3
1)역연(歷緣)의 십승관법(十乘觀法))
(1) 불가사의경(不可思議經)
(2) 기자비심(起慈悲心)
(3) 교안지관(巧安止觀)
(4) 파법편(破法遍)
(5) 식통색(識通塞)
(6) 수도품(修道品)
(7) 지차위(知次位)
(8) 대치조개(對治助開)
(9) 능안인(能安忍)
(10)무법애(無法愛)
2. 경(境)에서 6진(六塵)의 관행(觀行) .................................................. 8
1)대경(對境)의 십승관법(十乘觀法)
(1) 불가사의경(不可思議經)
(2) 기자비심(起慈悲心)
(3) 교안지관(巧安止觀)
(4) 파법편(破法遍)
(5) 식통색(識通塞)
(6) 수도품(修道品)
(7) 지차위(知次位)
(8) 대치조개(對治助開)
(9) 능안인(能安忍)
(10)무법애(無法愛)
3. 역연대경(歷緣對境)의 득실삼비(得失三譬) ..................................... 10
Ⅲ. 결론 ........................................................................................... 11
<참고문헌>
Ⅰ. 서론
천태대사 지의(智顗)는 원돈지관(圓頓止觀) 수행에서 10가지의 수행관법(十乘觀法)을 설명한다. 그리고 지관수행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음입계(陰入界)를 대경(對境)으로 10경(十境) 하나하나에 십승(十乘)관법이 행하여 짐을 밝히고 있다.
관법은 앉아서 하는 좌중수지관(坐中修止觀)과 그렇지 않은 좌외수지관(坐外修止觀)으로 크게 구분하여 앉아서 마음을 대경으로 지관하는 좌관관심(坐觀觀心)과 모든 행을 하면서 경계를 대하며 관을 닦는 역연대경(歷緣對境)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역연대경은 10승관법(十乘觀法)을 설하고 나서 마음 이외의 여러 가지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어(語), 작(作)의 6작(六作)의 역연(歷緣)과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6진(六塵)의 대경(對境)으로 논한다.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역연(歷緣)과 그에 나타난 다양한 대경(對境)이 ‘조건 따라 생긴 법’인 연기와 연기법(緣起法)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경(緣境)은 음입계(陰入界)에 동시에 작용하는 도량(道場)이며 방편이 아닌 직접적인 불사(佛事)의 수행법이다.
본 논고는 이러한 음입계의 역연대경수(歷緣對境修)를 『마하지관』과 『법화수행의 묘해』의 내용을 중심으로 대경에 6작(作)과 6진(塵)의 연기작용(緣起作用)의 실제(實際)인 지관수행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비교 분석해서 연구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역연대경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와 득실을 ‘역연대경에 대해 지관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수행하는 마음에 생사의 집착하는 업이 생기게 되어 이루고자 하는 불법과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일체시(一切時)에 항상 정혜를 닦는다면 필히 일체 불성에 통달할 수 있다고 설명하듯 그 수행의 득실의 내용도 논고에서 고찰해 보겠다.
Ⅱ. 음입계경(陰入界境)에서 역연대경(歷緣對境)에 대한 이해
음입계(陰入界)를 대경으로 10승관법을 하는 것에 대해 좌관심법(坐觀心法)과 역연대경(歷緣對境)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음입계경(陰入界境)은 10경(十境) 가운데 최초로 닦는 역연대경수(歷緣對境修)로 처음에 제시된 이유를 보면 늘 눈앞에 펼쳐져 현전(現前)하고 수행인 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경계를 관하는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연(緣)에 의하여 나타난 경계(境)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마음의 음입계로 설명할 수 있다. 『대품경』에서 ‘성문은 사념(四念)처를 따라 도(道)를 행하고 ’보살은 먼저 색을 관한 다음 모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따른다‘. 그리고 모든 장(章)마다 모두 그러한 까닭에 경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 관(觀)하고 나중에 다른 상(相)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러한 음입계의 구조를 보면 오음(五陰)과 십이입(十二入)과 십팔계(十八界)로 무명과 다르지 않은 법성이고 일체법으로 우리에 삶의 전부가 수행이며 수행 도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몸이 도량이라 한다, 아래의 도표로 확인해 본다.
도표1 <음입계(陰入界)의 구조>
음입계(陰入界)에서 음(陰)의 뜻을 간략히 살펴보면 ‘음(陰)이라는 것은 선법(善法)을 가리고 덮는 것이다. 이것은 원인에 대한 이름이고 또한 음(陰)은 생사를 거듭 반복하여 쌓이는 적취(積聚)로 이것은 결과에 대한 이름이다. 그리고 입(入)은 섭입(涉入)으로 수문(輸門)이라 이름하고, 계(界)는 계별(界別)로 성분(性分)이라 한다. 『비바사론』에서는 음입계(陰入界)의 개합(開合)이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음(陰)을 구역(舊譯)에서는 음(陰)으로 신역(新譯)에서는 온(蘊)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특히 규기는 『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에서 음(陰)이 아닌 온(蘊)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설명한다. 세친도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온(蘊, skandha)의 뜻을 '온갖 유위법의 화합(和合) · 적취(積聚)'라고 정의하고 『대승의장』에서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5가지를 음(陰)이라고 하며 다수의 법이 쌓인 적취(積聚)도 음이며, 다시 중(眾)이라고 했다.’ 이처럼 음(陰)과 온(蘊)은 보편적으로 같은 의미로 쓰이나 신역 이후는 온(蘊)으로 많이 쓰인다.
이러한 음입계의 역연대경(歷緣對境)은 6연(緣)과 6경(境)으로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는데 연(緣)은 자작(自作)으로 육작(六作)을 만들고, 그에 종연(種緣)은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작(作), 어(語) 등이다. 이러한 6연이 무명(無明)과 각 행연(行緣), 주연(住緣), 좌연(坐緣), 와연(臥緣), 작연(作緣), 어연(語緣)과 합하여 음입계를 생한다. 경(境)은 연(緣)의 결과로 일어나는 수자(受者)로 육진(六塵)이 있다. 6진경(塵境)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등이다. 안근(眼根)이 색을 대할 때(色塵)에 대하여 음입계를 생하듯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이 각 음입계를 생한다 이 둘은 음입계에서 동시에 작용하는데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연(緣) | 경(境) | ||
육작(六作)-자작(自作) | 육진(六塵)- 수작(受作) | ||
육종연 (六種緣) |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작(作) 어(語) |
육진경 (六塵境) |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
도표2 <역연대경(歷緣對境)의 6작(六作)과 6경(六境)>
수행자가 이러한 열두 가지의 일 가운데서 ‘조건 따라 생긴 법인 연(緣)을 행하며 경(境)계’의 지관을 닦는 역연대경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1. 연(緣)에서 6작(六作)에 대한 이해
음입계경(陰入界境)은 연(緣)에서 자작(自作)인 육작(六作)이 있고 육종연(六種緣)은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작(作), 어(語) 등이다. 이러한 6연이 무명(無明)과 각 행연(行緣), 주연(住緣), 좌연(坐緣), 와연(臥緣), 작연(作緣), 어연(語緣)과 합하여 음입계를 생한다.
이러한 작자(作者)의 연(緣)에서 육작(六作)의 육종연(六種緣)이 10승관법과 어떤 관행(觀行)이 일어나 수행하는지를 알아본다.
1) 역연(歷緣)의 십승관법(十乘觀法)
수행자는 행동하며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행(行) 가운데 관(觀)을 닦지 않는다면 진리와 속히 상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행 가운데는 10승관법을 닦아야 한다.고 했다. 걷는 행법을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음(識陰)으로 걷는 행동을 연기적 실제(實際)로 확인해 본다.
발을 들었다가 내리며 발은 색법(色法)이고 색(色)은 마음에 의해 이곳저곳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마음은 색에 의거한다. 따라서 행(行)이 곧 색음(色陰)이 있다. 이러한 행(行)이 곧 수음(受陰)이고, 행하는 것이 나(我)라고 아는 것이 곧 상음(想陰)이다. 혹은 선행(善行)이나 악행(惡行)을 하는 것이 행음(行陰)이 있다. 행 가운데 마음은 곧 식음(識陰)이다. 이처럼 행연(行緣)은 5음을 생한다. 또한 의(意)와 색(色)의 2입(二入)이고, 의(意)와 색(色) 그리고 의식(意識)의 3계(三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발을 올리고 내리는 사이에 5음과 12입 그리고 18계를 모두 구족한다.
또한 천태대사의 『소지관』』에서는 6종연(種緣)의 지관(止觀) 수행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간략하게 살펴보면 가는 행위 가운데 일체 어떤 법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을 분명히 알면 곧 망념의 마음이 쉰다(定). 이것을 ‘지(止=三昧,Samādhi))를 닦는다’고 한다. 이것은 법이 공적(空寂)함 즉 법의 실체(實體)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서 가는 마음을 관하여도 그 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假). 마땅히 알라. 가는 이와(色) 가는 행위(受想行識) 가운데 모든 법(一念三千法)은 필경 공적한 것(空)이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慧)을 ‘관(觀,Vipaśyanā)을 닦는다’라고 한다고 했다. 이것은 법의 실상(實相)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음입은 무명(無明)의 행연이 합하여 음입계를 낳으니 무명과 다르지 않고 무명이 법성(法性)이고 법성즉 법계(法界)로 걷는 행 가운데 일체법(一切法)이 일어남을 원돈지관 수행에서 확인한다. 즉 법성은 본래 청정하여 일어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이러한 행연(行緣)의 지관 수행과 같이 주연(住緣), 좌연(坐緣), 와연(臥緣), 작연(作緣), 어연(語緣)이 오음(五陰)의 합으로 각 음입계를 생한다. 각 십승(十乘)관법들은 어떻게 관행(觀行)하는지 고찰해 본다.
(1) 불가사의경(不可思議境)
지관수행을 통해 일체법을 포섭하여 불가사의한 일념삼천(一念三千)과 삼제원융인 일념(一念)을 관하는 것이 관불가사의경이다. 미혹과 산란을 파하여 지혜를 개발하고 선정을 이루기 위해 일심삼관(一心三觀)을 해야 하며, 일심삼관은 한 찰나의 중생심 즉 무명에 근거한 마음에 공가중(空假中)의 삼제가 동시에 갖추어져 있으므로 가능한 것이다.고 했다. 즉 무명(無明)의 일념(一念)은 인연(因緣)으로 생긴 법이다. 이는 곧 즉공, 즉가, 즉중인 것이다. 또한 일념심이 삼제를 구족하고 있어 일관을 체달하면 이것이 삼관을 구족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아래 도표로 확인해 본다.
행연(行緣) | 사불생(四不生) | 사실단(四悉壇) | 쌍차쌍조 (雙遮雙照) |
||||
색(色) | 발 | 불타생 (不他生) |
발 | 연생(緣生)타생(他生) | 발 | 관불가사의경 (觀不可思議境) 구불가설 (俱不可說), 구가설 (俱可說) |
|
수(受) 상(想) 행(行) |
4대 (地水火風) |
마음 | 불자생 (不自生) |
4대 | 인생(因生)자생(自生) | 4대 | |
불공생 (不共生) |
발.4대 | 공생(共生) | 발.4대 | ||||
불무인생 (不無因生) |
마음 | 리생(離生)무인생 (無因生) |
마음 | ||||
식(識) | 의 (意) |
불가설 (不可說) |
발.4대 마음도 아니다 |
불가득 (不可得) |
발,4대 마음 모두다 |
행(行)할 뿐!(實際) | |
삼관(三觀) 삼제(三諦) |
공관(空觀). 공제(空諦) | 가관(假觀). 가제(假諦) | 중관(中觀) 중제(中諦) | ||||
일념(一念) 일법(一法) |
일체심일심 (一切心一心) 일체법일법 (一切法一法) |
일심일체심 (一心一切心) 일법일체법 (一法一切法) |
비일비일체 (非一非一切) 비일비일체법 (非一非一切法) |
||||
정관(正觀) | 일념삼천(一念三千), 일심삼관(一心三觀), 삼제원융(三諦圓融),일찰나(一刹那) |
도표3 <관불가사의경(觀不可思議境)에서 행연(行緣)의 역연대경수(歷緣對境修)>
이처럼 걷는 행 가운데 불가사의경(不可思議境)이며 일체법이 행으로 나아가며 행을 넘지 않는다. 일음계(一陰界)는 일체음계(一切陰界)에 들어가고 일다불(一多不)은 일불다(一不多)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일념(一念) 일심(一心) 일법(一法) 일계(一界)는 일 찰나의 한마음으로 법성(法性)이며 일체(一切)의 념(念), 심(心), 법(法), 계(界)는 실상(實相)인 삼천법(三千法)이다. 이것이 행(行) 가운데 불가사의경(不可思議境)이며 불가사의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기적 실제(實際)이다
(2) 기자비심(起慈悲心)
불가사의한 경계를 통달하고 나서 다른 중생을 위해 발고(拔苦) 여락(與樂)의 발보리심을 내고 자비(慈悲)의 4홍서원을 세우는 것이 기자비심(起慈悲心)이다. ‘무량겁 이래로 음입계로 인해 미혹됐으나 지금 중생이 모두 일승임을 깨달아 알기 시작한다. 그런데 무명에 취해 전도되어 매우 가엽게 여겨진다. 무명을 파하고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기를 서원한다. 그리하여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자비심을 일으킨다’. 이것이 역연(歷緣) 가운데 기자비심이다.
(3) 교안지관(巧安止觀)
자비심을 바탕으로 서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지관 수행인 교안지관(巧安止觀)은 서원을 채우기 위하여 상구보리의 자행안심(自行安心), 하화중생의 화타안심(安心)의 정혜(定慧)로서 법계를 적조(寂照)한다. 공가중의 삼제가 아니면 안심할 곳이 없고 지관이 아니면 안심법이 없다. 이것이 역연(歷緣) 가운데 교안지관이다.
(4) 파법편(破法遍)
일념혹심에서 대해 삼혹을 파하여 공가중을 관하는 것 즉 전도(傳導)를 파하여 전도하지 않게 하는 것인 파법편(破法遍)은 마음이 이미 안정되었으면 견사혹(見思惑)과 진사혹(塵沙惑) 그리고 무명혹(無明惑) 등 3제의 장애를 두루 파한다.
(5) 식통색(識通塞)
파하는 가운데 무생(無生)으로 통(通)하는 것과 막히는 색(塞)을 잘 알 수 있는 식통색(識通塞)은 통과 색을 잘 알아서 중간에 끝내지 않는다.
(6) 수도품(修道品)
도와 멸이 통(通)하는 것과 고와 집의 색(塞)을 알고 나서는 도품을 닦는 수도품(修道品)은 원교의 무작도품을 잘 알아서 4념처(四念處)는 법계(法界)로 마음이 일어날 때 법성이 일어나 일체법을 포섭하고 4정근, 4여의족, 5근, 5력, 7각지, 8정도에 연계되어 있는데 이를 닦아서 반열반(般涅槃)에 들어간다.
(7) 대치조개(對治助開)
장애를 없애는 대치(對治)는 특정 방법이 없고 무량하다. 막힘을 파하여 3해탈문에 들어간다. 행 가운데 6폐(간탐,파계,진애,해태,산란,우치)가 일어나면 6도(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로서 대치하여 열반문을 여는 것을 돕는다.
(8) 지차위(知次位)
지차위(知次位)은 수행계위를 깊게 알아서 자신의 행이 아직 성인(聖人)과 같지 않으면 참회하고 더욱 열심히 닦으며 쉬지 않는다. 이것이 역연(歷緣) 가운데 지차위이다.
(9) 능안인(能安忍)
참고 나아가는 것으로 보살행을 하는 데 있어서 나와 남을 알아야 하는 능안인(能安忍)은 행 가운데 명예와 권속 등 외래연적(外來軟賊)을 피하고 번뇌(煩惱)와 업(業) 등 내래강적(內來强賊)을 파하여 안인(安忍)으로 부동한 힘이 생기면 수행계위를 잘 알아서 행(行)하는 능안리이다.
(10) 무법애(無法愛)
안과 밖의 영욕(榮辱)을 참아 중도법(中道法)에도 법애(法愛)에도 빠져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정타(頂墮)에서 빠져나와 법애를 파하고 집착을 버려 일체종지를 얻어 초주(初住)에 들고 구경에는 묘각(妙覺)에 이른다.
이러한 10승관법으로 역연(歷緣)에 따라 관법을 살펴 발을 들어 올리고 내리면서 도량 가운데 와서 불법을 구족하듯이 주연(住緣), 좌연(坐緣), 와연(臥緣), 작연(作緣), 어연(語緣) 등도 각각 관법으로 불법을 구족한다.
2. 경(境)에서 육진(六塵)에 대한 이해
10승관법으로 음입계경(陰入界境)의 대경(對境)은 색경(色境)이다. 경(境)에는 육진(六塵)이 있다. 진(塵)에 대해서는 연(緣)의 결과로 일어나는 수자(受者)라고 한다. 6진경(塵境)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등이다. 안근(眼根)이 색을 대할 때(色塵)에 대하여 음입계를 생하듯 이근(耳根)은 소리를 대할 때(聲塵), 비근(鼻根)이 향기를 대할 때(香塵), 설근(舌根)은 맛을 대할 때(味塵), 신근(身根)은 느낌을 대할 때(觸塵)를 의근(意根)이 마음이 법을 대할 때(法塵)도 음입계를 생한다. 『천태소지관』에서도 이러한 12가지에 따라 모든 행(行)을 하면서 모든 경계(境界)를 대할 때 지관(止觀)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1) 대경(對境)의 십승관법(十乘觀法)
이러할 대경에서 색경(色境)은 안(眼)으로 색을 보고 받아들이므로 색음(色陰)과 수음(受陰)이 있다. 색경(色境)을 하여 나(我)를 헤아리므로 상음(想陰)이고, 선견(善見)하거나 혹은 악견(惡見)을 하므로 행음(行陰)이 있다. 보고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은 식음(識陰)이다. 이처럼 색진(色塵)은 오음(五陰)을 생한다. 안(眼)과 색(色) 이입(二入)과 안식(眼識)의 삼계(三界)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안으로 항상 색을 대할 때 삼관일심의 무감수(無減修)를 구족하며 하나의 눈이 다섯 가지 힘을 ‘明見來入門’갖춘다. 이러한 십경(十境) 하나하나에도 십승(十乘)관법이 색경(色境)하는 것을 살펴본다.
(1) 불가사의경(不可思議經)
먼저 경(境) 가운데 불가사의경(不可思議經)을 살펴보면 안(眼)이 색(色)을 대하면 안식(眼識)의 일심념(一心念)이 일어난다. 일심념은 곧 법계(法界)로 일체법을 구족하며 즉공즉가즉중(卽空卽假卽中)이다. 일심념은 사불생(四不生)으로 보면 불가득으로 즉공(卽空)이고, 사실단(四悉壇)으로 보면 무량겁(無量劫)을 구족하여 즉가(卽假)이다. 가(假)는 부정가(不定假)이고, 공(空)은 부정공(不定空)으로 비공비가(非空非假)이며 쌍조공가(雙照空假)이다. 일체법이 이와 같다. 이것이 색경(色境)에 따른 불가사의경이다.
부처님께서는 5안(五眼)인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을 가지고 계시고 보리 일심(一心)에 구족 한다. 이것은 범부의 농혈(膿血)로 된 육안이 아니며 제천(諸天)이 가진 천안(天眼)이 아니며, 이승(二乘)이 가진 침공(沈空)의 혜안(慧眼)도 아니며, 보살의 분별안(分別眼)도 아니다. 공가중 일심에 있는 삼관일심(三觀一心)을 무감수(無減修)라 한다. 비록 동(動)하지만 적(寂)하고 적이 동을 방해하지 않으며 비록 적하지만 동하고 동이 적을 방해하지 않는다. 비록 견(見)하지만 불견(不見)하고 불견하지만 견하다. 추색(麤色), 세색(細色), 색공(色空), 색가(色假), 색중(色中)의 5경이 모두 실상(實相)이다. 이러한 실상은 비록 불가견(不可見)이지만 또한 견(見)이다.
안(眼) | 육안(肉眼) | 천안(天眼) | 혜안(慧眼) | 법안(法眼) | 불안(佛眼) |
인연(因緣) | 인연추색 (因緣麤色) |
인연세색 (因緣細色) |
인연색공 (因緣色空) |
인연색가 (因緣色假) |
인연색중 (因緣色中) |
무안(無眼) | 농혈(膿血) | 제천(諸天) | 침공(沈空) | 분별안 (分別眼) |
실상(實相) |
색경(色境) | 추색(麤色) | 세색(細色) | 색공(色空) | 색가(色假) | 색중(色中) |
관불가사의경 (觀不可思議境) |
불가견(不可見)이며 견(見), 일심념(一心念), 실상(實相) |
도표4 < 색경(色境)에서 오안(五眼)의 역연대경(歷緣對境)>
(2) 기자비심(起慈悲心),
기자비심(起慈悲心)의 경(境)에는 불안(佛眼)과 중생안(衆生眼)은 무이무별(無二無別)하다. 중생은 이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따라서 자비를 일으켜 그들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을 한다. 이것이 대경(對境)의 기자비심이다.
(3) 교안지관(巧安止觀)
자비심이 바탕인 서원에 따른 행인 교안지관(巧安止觀)은 서원을 만족하기 위하여 상구보리로 자행안심과 하화중생의 화타안심으로 법성에 안주한다.
(4) 파법편(破法遍)
그 행이 교묘해지면 두루 파할 수 있는 파법편(破法遍)의 경(境)은 능히 지관(止觀)으로 견사혹(見思惑), 진사혹(塵沙惑), 무명혹(無明惑) 등 3제의 장애를 두루 파한다.
(5) 식통색(識通塞)
파하는 가운데 무생(無生)으로 통(通)하는 것과 막히는 색(塞)을 잘 알 수 있는 식통색(識通塞)의 경(境)은 안(眼)으로 색(色)을 대하는 가운데 통(通)과 색(塞)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전도를 파하여 전도되지 않게 한다.
(6) 수도품(修道品)
통하는 것과 막히는 것을 알고 나서는 도품을 닦아 앞으로 나아가는 수도품(修道品)의 안(眼)으로 색(色)을 대하는 가운데 사념처(四念處)를 닦아서 반열반에 들어간다.
(7) 지차위(知次位)
도품을 진행해 가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조도법으로 길을 여는 지차위(知次位)의 경(境)은 여러 가지 대치법을 배워서 3해탈문을 여는 것을 돕는다.
(8) 대치조개(對治助開)
경(境)은 육즉(六卽)의 계위를 명백히 인식한다. 아만을 내지 말고 참회하며 열심히 수행한다. 이것이 경(境)의 대치조개이다.
(9) 능안인(能安忍)
보살행을 하는데 있어서 나와 남을 알아야 하는 능안인(能安忍)의 경은 명예와 권속 등 외래연적과 번뇌(煩惱)와 업(業) 등 내래강적에 대해 안인(安忍)한다.
(10) 무법애(無法愛)
안과 밖의 영욕(榮辱)을 참아 중도법(中道法)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 무법애(無法愛)의 경은 법애(法愛)를 일으키지 않아서 체류하지 않는다. 대백우거(大白牛車)를 타고 곧바로 도량에 이른다. 이것이 대경(對境)의 무애법이다.
이처럼 점(漸)으로 보는 것은 보현관(寶賢觀)과도 같고 돈(頓)으로 삼천 대전 세계를 보는 것은 상불경(常不輕)과도 같으며 돈점(頓漸)으로 보면 육근의 작용이듯 안근(眼根)으로 색경(色境)에 대하여 널리 불사(佛事)를 하는데, 이근(耳根)으로 성경(聲境), 비근(鼻根)으로 향경(香境), 설근(舌根)으로 미경(味境), 신근(身根)으로 촉경(觸境), 의근(意根)으로 법경(法境)에 대하여 불사를 한다. 그리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구경락(究竟樂)을 얻게 한다.
3. 역연대경(歷緣對境)의 득실삼비(得失三譬)
『마하지관』에서는 역연대경의 10승관법을 행하여 얻는 것과 행하지 않고 잃는 것에 대하여 세 가지의 비유를 설명하고 있다. 학선자(學禪者)는 지(止) 또는 관(觀)의 어느 한 법을 알아서 적은 선정(禪定)을 얻거나 적은 악(惡)을 파하여 적은 권속을 얻는 데 만족한다. 대선사(大禪師)는 10법의 지관을 배워서 그 의취(義趣)를 통달하며 육연경에 대해 적용하여 대번뇌(大煩惱)를 파하고 무량한 선법을 드러내어 그 인연에 이익을 준다. 한 법을 배워 적은 약을 파하는 학선자는 하나의 칼과 하나의 화살을 사용하여 하나 또는 둘의 적을 파하고 적은 상을 받는 필부(匹夫)의 병사(兵士)와 같다. 역연대경의 십승관법을 배워 대번뇌를 파하는 대선사는 무문를 자라고 휘장 속에서 계략을 세워 만리(萬里)를 무찌르고, 배운 것이 매우 깊어 파하는 것 역시 커서 녹을 받는 대장(大將)과 같다. 또한 선학인은 하나의 술법을 배워 한 사람을 구할 뿐인 야무(野巫)와 같다. 대선사는 여러 가지 치료법을 알고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여 많은 사람을 구하는 대의(大醫)와 같다. 학선자는 배우는 뜻이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대답을 하는데 소학자와 같고 대선사는 외우고 이해하는 것이 많으며 종횡(縱橫)의 질문(質問)에 답하는 대학자와 같다. 이것을 도표로 설명해 본다.
도표5 <역연대경(歷緣對境)의 득실삼비(得失三譬)>
학선자(學禪者) | 대선사(大禪師) | ||
병사(兵士) | 일도일전(一刀一箭) 파일구적(破一寇賊) |
대장(大將) | 광지병법(廣知兵法) 소파심대(所破甚大) |
야무(野巫) | 유해일술(㫿解一術) 구조일인(救助一人) |
대의(大醫) | 변견중치(遍覽衆治) 광료제질(廣療諸疾) |
소학(小學) | 학의지욕(學義止欲) 일문일답(一問一答) |
대학(大學) | 암해처다(諳解處多) 답종횡문(答縱橫聞) |
이상에서 원돈의 10승관법(十乘觀法)으로 역연대경의 수행법과 득실에 대한 것들을 확인해 보았다.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손 한 번 들고 머리를 조금 숙여도 최상의 도와 보리행으로 개이성불한다’고 하듯, 늘 지금 일체불성에 깨어 있으면 삼제원융(三諦圓融)의 실상을 깨달아 초주(初住)의 계위에 오르며 구경에는 묘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고찰해 보았다.
Ⅲ. 결론
원돈지관 수행인 역연대경수(歷緣對境修)는 일상의 삶 속에서 몸과 마음이 경계에 부딪히며 수행을 닦는 도량임을 확인했다. 늘 깨어 있는 평상심(平常心)이 실제(實際)인 연기작용이며 개시오입(開示悟入)이라 할 수 있다. 즉 방편 사용이 없이 원돈(圓頓)으로 원중(圓中)에 깨달아 얻을 수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역연대경(歷緣對境)의 경계에서 모든 수행자가 불가사의한 수행(不可思議境)으로 일찰나(一刹那)에 일심삼관(一心三觀)하여 깨달으면 좋지만 수행자의 근기가 다르므로 부족한 나머지 9승관법의 수행을 해야 함을 찾아보았다.
모든 지관수행 목적이 삼제원융(三諦圓融)의 실상인 구경열반(究竟涅槃)에 있듯 역연대경수(歷緣對境修)도 3덕을 밝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바라밀행으로 부처님과 중생이 함께 일체종지(一切種智)에 귀의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논거(論據)로 다양한 논지(論旨)를 연구하지 못해 아쉬움을 가지며 본고를 마친다.
<참고문헌>
鳩摩羅什 譯, 『妙法蓮華經』T9
智顗 說, 『妙法蓮華經玄義』 『大正藏』33,
智顗, 『摩訶止觀』 『大正藏』46
智顗, 『修習止觀坐禪法要』 大正藏 46
遠法師撰, 『大乘義章』 大正藏, 44
基撰, 『大乘法苑義林章』 大正藏第 45
玄奘譯, 『大般若波羅蜜多經』 大正藏 (第401卷)
광도스님, 『법화수행의 묘해』, 대한불교천태종, 2021.
광도스님 譯 『초심자를 위한 지관』 금강대학출판부 논산 2016
붓다고사編 대림스님譯 『청정도론』 초기불교연구원 울산 2004
空緣 金無得 註解 『大止觀坐禪法 (摩訶止觀)』 운주사 1994
'대학원 > 천태삼부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상용(體相用)으로 화두3실문(話頭三實門)과 「적본문10묘」의 비교 (0) | 2022.09.22 |
---|---|
25방편 중 「행5법」에 관한 이해-천태지의 「지관수행」을 중심으로- (0) | 2021.12.18 |
천태불교 자료 (0) | 2021.08.04 |
천태4교의 (0) | 2021.08.04 |
「적문10묘(迹門十妙)」와 「본문10묘(本門十妙)」의 비교 연구(硏究) (0) | 2021.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