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경덕 전등록

통융 2018. 5. 28. 21:58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선종(禪宗)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서로 널리 읽히고 있는 전등록 전 30권은 북송(宋)의 도원(道源)이 1004년(경덕 元年)에 지은 불서(佛書)이다. 경덕이란 송 진종시대의 연호로 전등록이 편찬된 시대를 나타낸다.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 석가모니불을 거쳐 달마(達磨)에 이르는 인도 선종(禪宗)의 조사(祖師)들과, 달마 이후 법안(法眼)의 법제자들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의 전등법계(傳燈法系 ; 52대 1천 7백명 선사들의 행적과 법어. 게송, 선문답, 법맥)를 밝혔다.

저자로 알려진 도원은 생몰연대 ·경력 등이 모두 미상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문헌을 찾아 대단히 상세한 승전(僧傳)을 기술하고 있어 선종(禪宗) 승전으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권1에서 권3까지는 과거칠불로부터 인도 ·중국의 33조사를 서술했고,

권4에서 권26까지는 육조(六祖) 혜능(慧能)에서 분파된 5가(家) 52세(世)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이상에서 1,712명을 기록하였는데, 이 중 954명은 어록(語錄)이 있고, 다른 758명은 이름만 남아 있다.

27에는 보지(寶誌) ·선혜(善慧) ·혜사(慧思) ·지의(智) 등 10명과 제방(諸方)의 잡거(雜擧) ·징(徵) ·염(拈) ·대(代) ·별(別)을,

권28에는 혜충(慧忠)에서 법안 문익(文益)까지 12명의 광어(廣語)를,

권29에는 찬(讚) ·송(頌) ·시(詩)를,

권30에는 명(銘) ·기(記) ·잠(箴) ·가(歌)를 실었다. 본서가 완성되어 송나라의 진종(眞宗)에게 봉정(奉呈)되었는데, 칙명에 따라 양억(楊億) 등이 간삭(刊削)을 가한 후 대장경에 편입시켜 간행하였다.

전등록의 구성은 권수 : 양억의 서문. 선종의 연원과 전래를 밝히는 연표 수록.

 제1,2권 : 과거7불과 제1조 마하가섭으로부터 제27조 반야다라까지의 행적과 법어. 게송. 전법.

제3권 : 달마. 혜가. 승찬. 도신. 혜능이 행적과 법어. 게송. 전법.

제4권 : 보리달마의 선으로부터 파생된 우두종. 북종선. 정중종 선사들의 행적과 법어, 게송, 전법.

제5권 : 6조 혜능과 그의 제자들

제6권 : 6조 혜능의 법을 이은 마조도일, 백장회해 등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7권 : 마조도일의 제자 마곡보철, 아호대의 선사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8권 : 남전보원 등 선사 54명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9권 : 백장회해의 법을 이은 선사 30명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0권 : 남전보원의 법을 이은 조주종심 등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1권 : 위앙종의 개조, 위산영우와 그 제자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2권 : 임제종의 개조, 임제의현과 그 제자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3권 : 하택종 선사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화엄종이 징관과 종밀의 전기도 수록.

제14권 : 석두희천과 그의 법계에 속하는 약산유엄과 운암담성 등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5권 : 조동종의 개조, 동산양개와 그 제자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6권 : 운문종의 고조사인 덕산선감과 그 제자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7권 ; 조동종 선사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18,19권 : 설봉의존과 그의 제자 현사사비 등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20권 : 조산본적 선사와 그의 법계에 속하는 선사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21권 : 현사사비 그의 법계에 속하는 선사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22, 23권 : 운문종의 개종, 운문문언과 그제자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24,25,26권 : 법안종이 개조 법안문익 선사와 그 제자들이 행적, 법어, 게송, 전법

제27권 : 선종의 법계에는 속하지 않지만 그 이름이 알려진 선문달자들의 행적, 법어. 게송

제28권 : 선종이 유명한 법어를수록, 즉 남양혜충. 하택신회. 마조도일. 약산유엄. 대주혜해. 대달무업. 남전보원. 조주종심. 임제의현. 현사사비. 나한계침. 법안문익이 법어 등.

제29권 선문의 유명한 찬. 송. 게. 시를 수록. 지공화상의 대승게, 12시게, 14과송, 백거이의 8점게 등 모두 17종의 작품을수록.

제30권 선문의 유명한 명. 기. 잠. 가를수록. 부대사이 심왕명. 3조 승찬의 신심명. 우두법융의 심요. 식심명. 보리달마의 이입사행론. 하택신회이 현종기, 석두희천의 참동계, 징관의 심요, 오운화상의 좌선잠. 영가현각의 증도가 등 모두 23종의 작품을수록.

특히 제30권에 수록된 작품들은 선의 사상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 받고 있다.

우리나라 선문에서는 일찍부터 전등록을 선문염송과 함께 전통강원의 전과정을 마치고 학인 자신이 특수연구 분야를 의미하는 수의과의 교재로 읽혀져 왔다.


법화경·선문염송 禪門拈頌등과 함께 예로부터 불교전문강원의 최고과정인 수의과(隨意科)에서 학습되어 왔다.

송나라의 도원(道源)1006년에 저술했으며, 30권에 이른다. 과거칠불(過去七佛)로부터 역대 선종의 조사들, 오가(五家) 52()에 이르기까지 법등(法燈)을 전한 법계(法系)를 차례로 기록한 책이다.

1권에서 제26권까지는 7불을 비롯하여 가섭(迦葉)에서 행사(行思) 아래의 제11세에 해당하는 법제(法齊)까지 1,727명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 998명은 기록이 나타나 있고 나머지 729명은 이름만 있을 뿐 전등에 관한 사항은 전하지 않는다.

27권에는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존경받고 있는 보지(寶誌선혜(善慧혜사(慧思지의(智顗승가(僧伽법운(法雲풍간(豐干한산(寒山습득(拾得포대(布袋) 10명의 응화현성(應化賢聖)에 관한 전기와 함께 여러 선문(禪門)에서 중요시했던 말들을 수록하였다.

28권에는 혜충(慧忠) 12명의 광어(廣語)를 실었고, 29권에는 지공화상대승찬 誌公和尙大乘讚10수 등 찬··(시를 적었으며, 30권에는 신심명 信心銘을 비롯하여 중국 및 우리 나라 선승(禪僧)들의 귀감이 되었던 명···() 24편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우리 나라 선승들의 전등에 관한 기록이 있어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권별로 살펴보면 제9권에는 신라의 도의(道義혜철(慧徹홍척(洪陟무염(無染현욱(玄昱각체(覺體) 6, 10권에는 도균(道均품일(品日가지(迦智충언(忠彦대모(大茅) 5명이 실려 있다.

그리고 제11권에는 언충(彦忠), 12권에는 순지(順支), 16권에는 흠충(欽忠행적(行寂(청허(淸虛) 4, 17권에는 금장(金藏청원(淸院서암(瑞巖백암(伯巖대령(大嶺) 5, 19권에는 무위(無爲), 20권에는 운주(雲住경유(慶猷()3, 26권에는 고려의 영감(靈鑒)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선문염송과 함께 고려 및 조선시대의 승과(僧科) 선종선(禪宗選)의 시험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선승들은 이 책의 내용을 문답식 공개시험에서 해독해야만 대선(大選)의 법계(法階)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우리 나라 선원에서의 선문답도 이 책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고려 중기에 혜심(慧諶)선문염송을 찬술할 때 중요한 저본이 되었다.

이 책의 고간본으로는 1550(명종 5)에 평안도의 화장사(華藏寺)에서 간행하여 표훈사(表訓寺)로 옮긴 표훈사판 일부와, 1614(광해군 6)에 충청남도 논산시 쌍계사에서 개판한 쌍계사판이 있는데, 쌍계사판은 언제 이장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그 완판이 해인사 사간판각(寺刊板閣)에 보관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1. 저자와 찬술에 대하여 /[傳燈錄. 동국역경원. 김월운 옮김]

 

30권으로 되어 있는 이 전등록의 본래 이름은 景德傳燈錄으로서, 책 이름에 이와 같이 경덕이라는 연호가 붙은 것은 편자인 도원이 남송의 황제 진종에게 바친 해가 경덕 원년(1004)이기 때문이다. 즉 도원이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여 언제 완성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황제에게 바친 때를 이 전등록이 완성된 때로 간주하여 그때의 연호를 머리에 붙여서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도원이 편찬한 그대로 세상에 유포된 것이 아니다. 양억의 경덕전등록서에 의하면, 도원으로부터 이 책을 봉정 받은 진종은 도원이 이룩한 업적을 칭찬하고 기뻐하였으나 장차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유포될 것을 생각해서 한림학사 양억과 병부원 외랑 이유, 그리고 대상승 왕서 등을 시켜 내용을 교정해서 가감하게 하였다. 또한 중간경덕전등록장에 따르면, 원의 연우 2(1315)에 구본이 없어져 중간한 사실이 있으며, 그 이전인 경우 원년(1034)에는 왕수가 刪定해서 30권을 15권으로 엮어 전법원으로 하여금 入藏시키고 있음을 불조통기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이후에 명본이 간행되면서 수정이 가해졌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보건대 양억 등이 본래의 전등록을 교정하고 가감했을 뿐만 아니라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수정이 가해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양억 등이 교정한 이후에는 내용에 있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구본의 오자만을 거의 교정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학자들은 도원이 편찬한 본래의 전등록은 양억 등이 수정해서 지금까지 되고 있는 현행의 전등록보다 분량이 더 많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편자인 승천 도원에 대해서는 양억의 경덕전등록서에 동오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법안종의 개조 법안 문익의 법사인 천태 덕소의 법을 이었고, 법안 문익의 문하 3세에 해당하며 덕소에게서 법을 이어받은 뒤 소주의 승천사에 머문 것을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가 승천사에 머문 기록은 1252년에 성립된 오등회원에 아주 간단하게 수록되어 있다.

한편 도원이 전등록을 찬술한 저자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도원이 걸출한 선사가 아니라는 점과 함께 전등록을 찬술하게 된 동기 등을 알 수 있는 전기가 없을 만큼 선문의 주목을 끄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과, 양억의 서문 이외에는 도원의 공적을 기술한 글이 없다는 점, 그리고 그가 편찬한 전등록자체에서 자신이 법을 이어받은 천태 덕소의 법사 속에 자신을 기록하고 있지 않은 점 등이 도원을 전등록의 편자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도원이 겸양으로 자신이 찬술한 전등록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전등록6권에 실린 선문규식을 후세 사람들이 도원의 저술이기보다는 양억의 창작이라고 보는 견해가 강하듯이, 도원이 본래 찬술한 전등록에 대한 양억 등의 첨삭이 너무 큰 폭이어서 도원의 공덕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앙은 소홍 2년 임자(1132)에 쓴 경덕전등록발에서 전등록의 편자는 공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덕전등록발에 의하면 공진은 전등록을 완성하여 진종에게 바치기 위해 서울고 가고 있었다. 가는 도중에 한 행각승을 만나 동행을 하게 되어 그에게 전등록을 보였는데, 그날 밤 그 행각승이 그것을 가지고 달아났다. 공진이 서울에 도착해서 알아보니, 도원이 이미 그 책을 황제에게 바치고 상을 탄 뒤였다. 공진은 나의 뜻은 불조의 도를 밝히려는 것인데, 일은 이미 시행되었다. 이름이야 누구에게 있건 한 가지이다. 내가 어찌 명예를 위하겠는가하고 다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발문에 의하면 도원은 공진의 저술을 훔친 것이 된다.

그러나 공진이 찬술했다고 하는 설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수산 성념 곡은 온총 금산 담영 서여 공진으로 법맥이 이어진다고는 하나, 그의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전등록이 황제에게 바쳐진 경덕 원년에 그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때 그의 스승인 금산 담영의 나이가 16세라는 점이다. 16세면 아직 제자를 둘 나이가 아니며 그렇다면 담영이 제자를 둘 수 있는 나이에 공진이 제자가 되어 그 밑에서 전등록을 찬술하기 위해서는 전등록이 황제에게 바쳐진 1004년보다 훨씬 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공진의 찬술이라고 하면 마땅히 수록했어야 할 내용이 빠져 있는 점으로 보아 공진이 찬술했다고 하는 설도 신빙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전등록의 수록 내용 중 공진의 선맥인 남악계는 남악으로부터 10세가 되는 수산 성념까지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점이 그것이다. 공진이 편저자라고 하면 마땅히 자기 문파를 드러내기 위해서 성념의 법사인 곡은 온총을 성념 밑에 기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온총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도원의 선맥인 청원 계통은 청원으로부터 12세까지 수록하고 있고, 천태 덕소의 법사로서 그와 동문인 49인의 이름을 들고 있으며, 그 중 30인의 어록을 기술하고 있다. 또 법계에 있어서 도원에게는 사질에 해당하는 5인까지도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사질에 이르는 12세까지를 수록하고 있는 점과 함께 도원이 법을 이어받은 천태 덕소를 보면, 도원에게 전등록찬술의 역량이 있음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천태 덕소는 말할 것도 없이 천태교학에 힘을 기울인 법안 문하의 빼어난 인재로서 널리 투자 대동용아 거둔 등 54인의 선장들을 찾아 참문한 인물이다. 그러한 그에게서 법을 이어받은 도원에게 전등록편찬의 역량이 있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원이 편자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전등록이 황제의 명에 의해서 양억 등에 의해 교정되어 완성될 때, 양억이 쓴 서문이 도원을 본래의 찬술인으로 못 박고 있는 점이다.

[傳燈錄. 동국역경원. 김월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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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禪籍史書

전등록은 과거 7천축의 28진단의 초조 보리달마와 그 후대로 이어지는 인도와 중국의 두 나라와 드물게 등장하는 우리나라 중국 유학승 등 선문의 선장들을, 전등상승의 차례에 따라 열거하고, 다시 각 조사와 선사의 속성, 속가, 가계, 출생지, 수행의 경력, 주석한 곳, 입적한 연대, 세수, 시호 등을 밝혀 史傳的 기술을 하고 있다.

특히 전등록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의도적인 편집에 의해 선맥을 확립하였다는 것이다. , 2권에서는 인도의 7불과 28조의 상승설을 기술하고, 3권에서는 보리달마를 진단의 초조로 기술하여 중국을 잇게 해서 달마를 중국 선종의 초조로 삼음으로써 중국의 선종이 인도의 7불 이래 면면히 사자상승한 불교로서의 권위를 확립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이같은 인도의 7불과 28조 상승설이 중국에 있어서 선종의 자리가 굳혀지는 8 ~ 9세기에 의도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달마로부터 선이 전해졌다고 하는 주장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각 권의 개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등록은 매우 폭넓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천성광등록』ㆍ『종문연등회요』ㆍ『가태보등록』ㆍ『오등회원과 같은 선의 법등을 전한 사서 중에서 제일의 위치에 놓여 있는 근본 사료로서 존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송의 대천 보제는 20권의 오등회원에 그 긴요한 것만을 간추려 다시 엮기기도 하였으나 오늘에 와서는 옛날에 이미 잃었던 것으로 간주되었던 여러 가지 선적들이 발견됨으로 해서 그 위치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해인사 고려대장경에 수록된 조당집이 과거 7불과 28조와 중국의 청원의 문하로는 8대까지, 남악의 법사로는 6대까지 열거하고 있고, 그에 따른 약전어구를 기록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초기의 선종사를 아는 사료가 되고 있다. 이 밖에도 돈황의 사계사 석실에서 발견된 능가경의 사자상승을 기록한 능가사자기』ㆍ『전법보기』ㆍ『역대법보기』ㆍ『신회어록』ㆍ과 아주 오래된 육조단경, 그리고 중국 산서성의 광승사에서 발견된 보림전등이 조당집과 같이 초기 선종사의 사료를 제공하고 있고, 이들 선적들은 모두가 전등록보다 훨씬 먼저 성립되었으며, 훨씬 많은 史實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선적들과 비교할 때 전등록은 초기 선종의 사적에 있어서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고, 또 오류도 범하고 있다. 그한 예로 조당집이 임제 의현의 법사를 열거한 다음에 부가한 은산을 전등록에서는 마조의 법사에 붙이는 등, 부당하게 마조의 문하가 번창한 것으로 기록한 것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전등록을 엮은 의도가 엿보이는 일례이다.

근대의 학자들은 전등록이 저자의 고의성과 그에 따른 결함과 오류, 그리고 앞에서 든 고선적보다 성립 연대가 매우 후대라는 점을 들어 초기의 禪史를 취급한 부분에 대해서 그것의 史的 가치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앞에서 든 여러 고선적보다 성립 연대가 훨씬 후대라고 하는 것은 전등록史實이 발생한 시대로부터 너무 멀다는 뜻이며, 사실이 발생한 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저술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전등록逸失되었다고 믿어졌던 앞의 고선적들이 설했다고 하는 전언이나 그 영향을 입은 예로부터의 통설을 채용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고의적으로 과장하거나 미화하고 혼합하고 있고, 이것이 전등록의 최대의 결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초기 선종의 사실을 기록함에 있어서 전등록이 결여하고 있는 그래서 초기 선종의 사적을 전하는 선의 사서로서 그 위치를 약화시키고 있는 점을 고선적과 비교하여 보면, 신수와 혜능의 갈등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오늘에 이르도록 거의가 신수의 북종과 혜능의 남종의 대립은 확고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능가사자기의 홍인과 혜능의 전기에 의하면 신수와 혜능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 대립과 갈등을 전하지 않고 있어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없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전등록에는 능가사자기가 전하고 있는 보당종(오조의 법사 자주지지 - 자주 처적 - 익주무상 - 보당무주)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직도 전등록이 의연히 선의 사서로서, 그리고 또 선적으로서 귀중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조당집이 취급하고 있는 시대의 하한에 해당하는 현사 사비 이후, 그리고 임제 의현의 문하인 관계 지한 이후의 선장들의 가풍을 아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전등록이 특색으로 삼는 공안의 집록임을 말해 준다.

[傳燈錄. 동국역경원. 김월운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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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안의 서

조당집이 취급한 시대의 下限 이후라고 하였으나 전등록이 예부터 선문에 있어서 참선수학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침서로서 귀중하게 여겨진 것은 史書로서의 가치를 존중해서라기보다 수록된 17백 공안과 師資 사이의 接化의 기연 때문이다. 때문에 선의 법등을 전하는 기록 가운데 대표적인 다섯 가지 선적, 즉 오등이라고 묶어서 말하는 전등록』ㆍ『천성광등록』ㆍ『속등록』ㆍ『종문연등회요』ㆍ『가채보등록의 다섯 중에서 제일로 존중하여 온 것이다.

그것은 1장에서 언급한 공진의 말이 타나내듯이 전등록편찬의 목적이 선문의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진 접화와 깨달음의 계기와 그 어구 등을 전하는 데 있어 17백 공안을 비롯한 어록의 집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선사의 이름은 들고 있으나 기연이 없어 어구를 기록하지 않음이라고 하는 서술의 자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기가 분명하지 않은 선사의 경우 어구만을 싣고 있고, 또 전기의 부분이 많은 경우도 전기만을 서술하지 않고, 반드시 어구를 기록하고 있다. 그 어구는 수행상의 문답과 상량의 어구이며, 오도의 어구나 게송이며, 스승의 접화와 제자의 깨우침에 관한 기연의 어구이며, 그러한 상황에 관한 서술이 대부분으로 전기의 서술로 끝난 경우는 하나도 없다. 때문에 전등록은 선을 알고 實修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지침서로서 존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전등록이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얽힌 기연은 자연히 제자를 접화하기 위해서 스승이 장치하는 기관을 공안과 함께 크게 드러내게 된다.

17백 공안이라고 하는 말은 전등록521701인의 이름을 들어 그 어구를 수록한 데서 나오게 되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며, 선에 있어서 스승이 제자를 접화하기 위하여 장치하는 기관이 성행한 것은 10세기 경의 새로운 선풍을 타고서이다. 이 시대는 전등록이 편찬되기 바로 앞의 시대이며, 중국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변동이 있었던 시대이다.

10세기의 초엽인 907년 대에 당이 멸망하고 그로부터 960년 송이 건국하기까지 5대의 전란을 겪는 10세기에는 정치경제사회종교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큰 변동이 일어나고, 특히 송대에 들어와서는 서민계급이 크게 일어나 그 이전 귀족 중심이었던 사회를 뿌리로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하였다. 불교에 있어서는 당이 멸망되기 반세기 전 845년 무종에 의한 회창의 법난으로 당대에 번창했던 화려한 여러 종파가 자취를 감추고 송대의 새로운 시대의 사조에 힘입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선과 정토교가 인도불교의 굴레를 벗어나 중국불교로 변모하는 과도기에 속한다.

선은 이러한 과도기를 5대의 전란이 미치지 않은 양자강 이남의 평화로운 땅에서 공안을 상량하는 새로운 선풍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물론 공안을 상량하는 가풍은 운문 문언의 무렵부터 시작되었으나 그것이 선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설두송고를 지은 설두 중현(980 ~ 1052)의 시대부터라고 할 것이다.

공안의 상량을 통하여 학인을 접화하는 수단이 선에 정착하기 시작한 같은 시기에 스승이 학인을 지도하기 위하여 종요라든가 수행의 계차수도의 지침과 用心 등을 간결하게 조직화하고 기초화한 기간이 선문에 활발하게 도입되었다. 이러한 기관을 사용한 예는 회창의 법란을 전후한 시기에 위산 영우(771 ~ 853)임제의현( ~ 867)동산 양개(807 ~ 869)를 들 수 있으며,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를 통하여 성행해서 남송의 굉지 정각(1091 ~ 1157)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관이 잇달아 창출되고 사용되어 송대의 선에 한 특색을 더하였다.

단적으로 말해서 선의 종지를 지극히 간결한 형태로 집약한 공안과 기관은 이윽고 간화선과 묵조선이라고 하는 커다란 두 개의 선풍을 낳게 되며, 이같이 禪史에 있어서나 선의 내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의 선풍을 전등록은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점이 전등록을 오늘에 이르도록 불후의 존재로 있게 하는 까닭이라고 할 것이다.

전등록이 성립된 이래 1천 년 동안 선종의 근본종전으로서 그 위치를 간직하고 믿었던 고선적이 발견되지 아니하여 5등의 제일서인 전등록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 상황 이외에도 위에서 든 바와 같은 그러한 이유로 해서 능히 수긍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