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담마

법에 대한 이해와 5위75법

통융 2018. 5. 5. 18:44

담마의 용어는

불교 형이상학은 근본적으로 '법'이라는 존재를 가정한다.

법이란 우주 요소와 사건들로서 각자의 과거 행위의 영향을 받아 순간순간 결합해 그 사람의 삶의 흐름을 형성하며, 그 사람은 이 흐름을 자신의 인격 또는 경력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법의 존재론적 실재에 대해 초기 불교의 여러 학파 사이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했다. 그중에서 설일체유부의 논사들은 당시 대부분의 불교도들과 마찬가지로 유심론에 경도되어 경험적인 모든 존재는 환상이라고 간주하면서도 법이라는 요소들은 영원히 존재하는 실재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사상에 의하면, 법들은 순간순간 작용하여 경험적 현상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이 경험세계는 환상이며 법은 이 경험세계 너머에 존재한다. 설일체유부의 교리는 대승불교의 유식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 사전적 의미


초기불교의 핵심: 법(法, dhamma, dharma)

 

⑴ 초기경의 도처에서 부처님은 법을 강조하셨다.

① 법을 의지하여 머무르리라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참으로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는가?”(A4:21)

앙굿따라 니까야「우루웰라 경」1(A4:21)에 나타나는 세존의 성찰이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아직 아무에게도 자신의 깨달음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때에(주석서에 의하면 세존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다섯 번째 7일이라고 한다. - AA.īi.24)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앉아서 과연 나는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를 두고 진지하게 사유하셨다. 경에 의하면 세존께서는 자신이 의지할 자를 찾아서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사문․바라문을 포함한 하늘과 인간의 모든 세상 모든 존재를 다 살펴보셨지만 세존께서 구족한 계(戒)와 삼매[定]와 통찰지[慧]와 해탈보다 더 잘 구족한 자를 그 누구도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세존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결론지으신다.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리라.”(A4:21)

 

② 법의 바퀴를 굴리다

이러한 법을 전개하시는 것을 불교에서는 전법륜(轉法輪, dhamma-cakka-pavattana)이라하며 최초에 팔정도를 중심으로 중도를 천명하신 가르침을 초전법륜경(S56:11)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법을 근본으로 하셨다.

그리고 “법을 의지하여 머물리라.”는 이러한 부처님의 태도는 부처님이 전법과 교화를 하신 45년간 내내 “법을 의지처로 삼고[法歸依] 법을 섬으로 삼아라[法燈明].”는 가르침과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自歸依] 자신을 섬으로 삼아라[自燈明].”는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첫 번째 유훈도 바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난다 존자도 세존께서 반열반하신지 얼마 뒤에 고빠까 목갈라나 바라문과 나눈 대화에서, 비구들은 법을 의지처로 한다고(dhamma- paṭisaraṇa) 바라문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M109/īi.9)

 

③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

“왁깔리여, 그만 하여라. 그대가 이 썩어문드러질 이 몸을 봐서 무엇을 하겠는가? 왁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왁깔리여, 법을 볼 때 나를 보고 나를 볼 때 법을 보기 때문이다.”(왁깔리 경(S22:87) §8)

그리고는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설하시고 염오-이욕-해탈-해탈지를 설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일어나지 않은 도를 일으키신 분이고 생기지 않은 도를 생기게 하신 분이고 설해지지 않은 도를 설하신 분이고 도를 아시는 분이고 도를 발견하신 분이고 도에 정통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가면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됩니다.”(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 §5)

 

④ 마지막 유훈 ―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선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것이다.”(「대반열반경(D16) §6.1)

 

이처럼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직후에도 스스로 깨달은 법을 의지해서 머물리라고 하셨고, 45년간 제자들에게 설법하실 때에도 법을 강조하셨으며 이제 사바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시는 반열반의 마지막 자리에서도 법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 유훈하셨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반열반하고 계시지 않는 지금에 사는 우리가 뼈가 시리고 가슴이 사무치게 존중하면서 배우고 궁구하고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법(dhamma)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부처님께서는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결집에 참석한 500 아라한들은 일단 법의 바구니(Dhamma-Pitaka = Sutta-Pitaka, 經藏)와 율의 바구니(Vinaya-Pitaka, 律藏)라는 두 개의 바구니를 먼저 설정하였다. 그 가운데서 율의 바구니부터 먼저 채우기로 결의하였는데 합송에 참석한 아라한들은 “마하깟사빠 존자시여, 율은 부처님 교법의 생명(āyu)입니다. 율이 확립될 때 교법도 확립됩니다. 그러므로 율을 첫 번째로 합송해야 합니다.”라고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요약]

담마(Dhamma, 법): 온처계근제연 37조도품

아비담마(Abhidhamma, 對法, 勝法): 아비담마 칠론:『담마상가니(Dhammasaṅgaṇī, 法集論),『위방가(Vibhaṅga, 分別論)』,『다뚜까타(Dhātukathā, 界論)』, 『뿍갈라빤냣띠(Puggalapaññatti, 人施設論)』,『까타왓투(Kathāvatthu, 論事)』,『야마까(Yamaka, 雙論)』, 『빳타나(Paṭṭhāna, 發趣論)』

위나야(Vinaya, 律): 두 가지 위방가(Sutta-vibhaṅga, 경의 분석, 비구계목과 비구니계목을 뜻함)

아비위나야(Abhivinaya, 對律): 대품, 소품, 부록(附錄):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서는 이 둘을 아비위나야(Abhivinaya)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라는 술어는 이미 초기경전에 나타난다.(디가 니까야 합송경(D33) §3.3과 앙굿따라 니까야 망아지 경(A3:137), 망아지 경(A9:22) 등)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아비담마(abhidhamma)와 아비위나야(abhivinaya)에 대해서’란 담마(法)와 아비담마(對法)와 위나야(律)와 아비위나야(對律)의 네 가지라고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서 담마(法)는 경장이요 아비담마(對法)는 칠론(七論)이요 위나야(律)는 [비구계와 비구니계의] 두 가지 분별이고 아비위나야(對律)는 칸다까(Khandhaka, 犍度)와 빠리와라(附錄, 補遺)이다. 혹은 경장과 논장이 담마(법)이고 도(道)와 과(果)는 아비담마(대법)이며, 모든 율장은 위나야(율)이고 오염원을 가라앉게 하는 것이 아비위나야(대율)이다. 이처럼 담마와 아비담마와 위나야와 아비위나야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DA.īi.1047)

아비담마는 법에 대한 것[對法]이란 뜻이고 아비위나야는 율에 대한 것[對律]이란 뜻이다. 주석서의 설명처럼 일반적으로 담마(법)는 경장을, 아비담마(대법)는 논장을, 위나야(율)는 율장의 경분별(비구계목과 비구니계목)을, 아비위나야(대율)는 율장의 대품과 소품과 부록을 말한다. 아비위나야는 따로 독립된 장으로 결집하지 않고 율장에 포함시켰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그 때부터 마지막 반열반에 드시는 순간까지 법을 생명으로 여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법을 생명으로 삼아야한다.

 

법이란 무엇인가?

① 교학으로서의 법: 청정도론을 위시한 주석서들은 교학으로서의 법을 온/처/계/근/제/연(蘊處界根諦緣)으로 정리하였다.

온(蘊, 무더기, khandha): 5온 = 물질[色, rūpa], 느낌[受, vedanā], 인식[想, saññā], 심리현상들[行, saṅkhārā], 알음알이[識, viññāṇa]의 다섯 가지 무더기이다.

처(處, 감각장소, āyatana): 12처 = 눈/귀/코/혀/몸/마음(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內處]와 형색/소리/냄세/맛/감촉/마음(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 대상[六外處]인 12가지 감각장소이다.

계(界, 요소, dhātu): 12처의 마음(마노)에서 여섯 가지 알음알이를 독립시켜서 모두 18가지가 된다. 즉 눈/귀/코/혀/몸/마음(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와 형색/소리/냄세/맛/감촉/마음(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와 눈의 알음알이[眼識], 귀의 알음알이, 코의 알음알이, 혀의 알음알이, 몸의 알음알이, 마노의 알음알이[意識]의 여섯을 합하여 18가지가 된다.

근(根, 기능, indriya): 모두 22가지가 있다. 22가지는 아래 제13강의 자료를 참조할 것.

제(諦, 진리, sacca): 4제 =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고성제),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집성제),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멸성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도성제)의 네 가지 진리이다.

연(緣, 조건발생, paccaya, pat(iccasamuppāda): 12연기를 말한다.

 

① 수행으로서의 법: 주석서들은 37조도품(助道品, 菩提分法, bodhipakkhiya-dhammā)을 들고 있다.

4념처(마음챙김의 확립), 4정근(바른 노력), 4여의족(성취수단), 5근(기능), 5력(힘), 7각지(깨달음의 구성요소), 8정도의 일곱 가지로 분류되며 법수로는 모두 37가지가 된다.

 

 

이러한 불교의 기본법수들을 불교에서는 법(dhamma/dharma)이라 한다. 불교교학에서 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존재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고유성질을 가진 것)를 뜻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전자는 Dhamma로 후자는 dhamma로 구분해서 표기하기도 한다. 위에서 나열한 온처계근제연과 37조도품은 부처님 가르침으로서의 법(Dhamma)이다. 아비담마에서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을 법(dhamma)이라고 정의한다...... 각묵스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산스크리트어: सर्वास्तिवाद sarvâsti-vāda 사르바스티바다)는 부파불교 시대의 종파 또는 부파들 중에서 가장 유력한 부파이며, 부파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파이다. 줄여서 유부(有部)라고도 한다.

음역하여 살바다부(薩婆多部)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모든 법(一切法)이 존재하다()고 설명하는 부파(), "과거, 현재, 미래의 3세에 걸쳐 법의 실체가 존재한다. , 법의 실체는 항상 존재한다"라는 뜻의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을 대표하는 명제이다.

 

설일체유부의 대표적인 논서는 2세기 중엽 인도에서 카니슈카(재위 127~151)의 보호 아래 500인의 아라한이 편찬한[3]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4세기에 세친(316?~396?)이 설일체유부의 설을 근간으로 하면서 필요시 경량부(經量部)의 설로 설일체유부의 설을 비판한 구사론(俱舍論)으로, 구사론에서는 일체법을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으로 설명하고 있다.


[4위 82법, 5위 75법, 5위 100법]

이러한 법들은 크게 몇 가지 범주로 무리 지어져 있는데 이 범주를 위(位)라고 부른다. 그래서 5위라는 말은 이러한 제법은 다섯 가지 큰 범주로 분류된다는 뜻인데, 그것은 마음(心, 心王),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심리현상들(心所), 마음과 함께 하지 않는 현상들(心不相應行), 물질(色), 무위(無爲)의 다섯이다. 한편 가장 오래된 체계인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마음과 함께 하지 않는 현상들(心不相應行)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4위가 된다.


오위칠십오법


설일체유부가 일체법을 5가지 범주[五位]로 나누고, 그 각각의 범주에 해당하는 법(dharma)들을 75가지로 분류한 것. 일체법이란 5온·12처·18계를 말하고, 5가지 범주와 75가지 법들이란 각각 색법(色法) 11가지, 심법(心法) 1가지,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14가지, 무위법(無爲法) 3가지를 말한다.                        

    개설   불교에서 경험적 세계를 분석하는 3가지 방식인 온(蘊)·처(處)·계(界)의 분류는 단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지적 욕구 때문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루법(有漏法)을 무루법(無漏法)으로 전환시키고, 유위법(有爲法)으로부터 무위법인 열반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이에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이하 유부)는 5온(色·受·想·行·識蘊)을 중심으로 색온과 식온은 그대로 색법과 심법으로, 행온은 마음과 상응하는 행과 상응하지 않는 행으로 나누어서 전자는 수(受), 상(想)을 포함하는 심소법에, 후자는 따로이 독립시켜 심불상응행법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 생성과 소멸의 작용이 없는 것을 무위법이라 하여, 이른바 5위75법의 체계를 수립했다.

    1. 오위칠십오법의 구분

    유부는 일체법을 5위75법으로 분류함에 있어 인과의 유·무에 따라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번뇌의 유·무에 따라 유루법과 무루법으로 구분하였다.

    1)유위법과 무위법

    ①유위법(saṃskṛta): 유위란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조작된 것을 말한다. 즉 인연화합으로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5위75법 중에서 무위법을 제외한 72법을 말한다.

    ②무위법(asaṃskṛta): 조작되지 않은 것, 생성과 소멸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것을 말한다. 즉 앞의 72법을 제외한 3가지 무위법인 택멸(擇滅), 비택멸(非擇滅), 허공(虛空)을 말한다.

    2)유루법과 무루법

    ①유루법(sāsrava-dharma)

    번뇌 또는 고(苦)의 누출을 증장시키는 상태나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는 법들을 유루(有漏, sāsrava) 또는 유루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번뇌와 유루는 구분된다. 즉 번뇌란 그 자신을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언제나 유루이다. 하지만 유루란 세간이나 출세간의 선법(善法)으로 이끌지 않고, 그대로 두면 번뇌를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는 모든 법들을 통칭한다. 예를 들어, 4성제(四聖諦) 가운데 집제(集諦)는 번뇌 그 자체를 말하므로 유루이고, 고제(苦諦)는 번뇌 그 자체는 아니지만 번뇌를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유루이다. 반면에 도제(道諦)는 번뇌를 끊고 선법을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유위법이지만 무루에 해당한다.

    ②무루법(anāsravah-dharma)

    유루법이 도제를 제외한 유위법이므로 무루법은 유위법 가운데서 도제, 그리고 3가지 무위법인 허공, 택멸, 비택멸을 말한다.

    2. 5온과 5위75법

    유위법과 무위법이 조작과 인과 법칙에 따른 생멸의 유·무에 따른 구분이라면, 유루법과 무루법은 번뇌의 유무에 의한 구분이다. 모든 유루법은 유위법이고 모든 무루법은 무위법이지만, 모든 유위법이 곧 유루법은 아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도제의 경우와 같다. 또한 마찬가지로 5온은 유위법이고 유위법은 곧 5온이지만, 5온 가운데는 무루의 행(行)도 포함되므로 5온이 그대로 유루법은 아니다.

    5온과 5위72법의 관계를 보면, 색온과 식온은 그대로 색법과 심법에 해당한다. 그리고 행온은 마음과 상응하는 것과 상응하지 않는 것으로 나눠지는데, 전자는 수온과 상온의 2온을 포함하는 심소법에, 후자는 따로 독립시켜 심불상응행법으로 분류했다. 따라서 5위는 무루와 유위로써 색법과 심법, 그리고 심소법과 심불상응행법을 건립하고, 무루와 무위로써 3가지 무위법을 건립해서 5위 75법을 이룬다. 그 각각의 상세한 분류와 특징은 다음과 같다.

    1)색법(色法) : 물질적 존재

    불교에서는 물질을 색(rūpa)이라고 하는데, 이것에는 광의와 협의 2가지 의미가 있다. 광의의 의미는 5온에서의 색온을 말하고, 협의의 의미는 12처 중의 안·이·비·설·신의 5처인 5근(根)과 색·성·향·미촉의 5처인 5경(境)을 말한다. 따라서 유부에서의 색법은 협의의 색인 5근과 5경을 말한다.

    그리고 유부는 색법의 하나로 무표색(無表色, avijñapti-rūpa)을 들고 있다. 무표색은 말 그대로 “드러나지 않은 색”이라는 뜻으로, 무표업(無表業)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유부만의 독특한 용어이자 교의로, ‘드러난 행위 또는 동작’이라는 뜻의 표업(表業)에 상대되는 말로써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신체적인 행위와 언어적인 행위를 말한다.

    유부에 따르면, 마음이 외부로 표출된 신체적인 행위인 신표업(身表業) 또는 외부로 표출된 언어적인 행위인 어표업(語表業)을 지을 때나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그 행위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소조색(所造色, 물질) 또는 물질적 실체를 낳는다고 한다. 이러한 물질적 실체를 무표색(無表色) 또는 무표업(無表業)이라고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인 무표색은 그 행위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남아 있어서 마음에 계속하여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즉 유부는 무표색을 매개로 하여 신업과 구업의 결과를 업설과 관계 짓는다. 유부에서의 색법은 모두 물질의 최소 단위인 극미(極微)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무표색만은 극미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공간적 점유성도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특성상 나무가 움직일 때 그림자가 움직이듯이 4대종(大種)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에 색법에 포함시켜 제6의식의 대상[법처(法處)에 포섭되는 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2)심(心) : 인식 주체

    마음은 심왕(心王)·심소(心所)라고 하는 경우의 심왕에 해당한다. 12처에서는 의처에, 18계설에서는 의계(意處)와 안식계부터 의식계의 6식계에 해당하지만, 마음 자체는 단일하다. 다만 그 작용하는 상태에 따라 각기 달리 불릴 뿐이다. 즉 심(心, citta)이라고 하는 경우는 의식 작용[心所]이나 신(身)·구(口)·의(意)의 3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집기(集起)라고 한다. 또한 사(思, manas)라고 하는 경우는 생각하고 헤아리기 때문에 사량(思量)이라고 하며, 식(識, vijñāna)이라고 하는 경우는 사물을 식별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요별(了別)이라고도 한다.

    3)심소법(心所法) : 마음 작용

    심소법이란 ‘마음에 소유된 법’이라는 뜻이다. 즉 마음인 심왕에 의지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마음 작용이란 마음이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상태를 말하지만, 유부는 모든 법들인 75가지 법을 각각 개별적 실체로 인정하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 작용을 구별한다. 이에 유부는 구체적인 마음 작용으로 46가지 심소법을 들고 있다.

    ①대지법(大地法): 마음과 동시에 일어나는 10가지로 수(受), 상(想), 사(思), 촉(觸), 작의(作意), 욕(欲), 승해(勝解), 염(念), 정(定), 혜(慧).

    ②대선지법(大善地法): 선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10가지로 신(信), 불방일(不放逸), 경안(輕安), 사(捨), 참(慚),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불해(不害), 근(勤).

    ③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염오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6가지로 치(癡), 방일(放逸), 해태(懈怠), 불신(不信), 혼침(昏沈), 도거(掉擧).

    ④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불선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2가지로 무참(無慚), 무괴(無愧).

    ⑤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염오한 마음의 일부와 함께 일어나는 10가지로 분(忿), 부(覆), 간(慳), 질(嫉), 뇌(惱), 해(害), 한(恨), 첨(諂), 광(誑), 교(憍).

    ⑥부정지법(不定地法): 선, 불선, 무기의 어떠한 마음과도 함께 생겨날 수 있는 의식 작용의 8가지로 심(尋), 사(伺), 수면(睡眠), 악작(惡作), 탐(貪), 진(瞋), 만(慢), 의(疑).

    이상의 46가지 심소는 마음과 작용함에 있어 반드시 동시생기적 관계에 놓여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난 경우, 그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구조는 인식주체인 심과 더불어 10가지 대지법, 2가지 대불선지법, 8가지 부정지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10가지 소번뇌지법 중의 분노[忿]의 심소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심을 비롯한 총 22가지의 동시적 상호관계 속에서 찰나적으로 발생함을 말한다.

    4)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힘 14가지로 득(得), 비득(非得), 동분(同分), 무상과(無想果),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盡定), 명근(命根), 사상[四相: 생(生)·주(住)·이(異)·멸(滅)], 명(名)·구(句)·문(文)이다.

    이상의 심불상응행법과 관련해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개념을 보면, 우선 득과 비득은 유정(有情)들로 하여금 자신이 상속한 유위법이나 택멸, 비택멸의 무위법을 획득 및 성취하게 하는 힘을 말한다. 즉 성자와 범부의 차이는 이 득과 비득의 힘에 있다고 한다. 범부는 무루법의 비득을 본질로 하는 유정을, 성자는 유루법의 비득을 본질로 하는 유정을 말한다. 또한 마음의 상태 역시 이 득과 비득의 관계로 설한다.

    다음으로 동분[衆同分]이란 유정을 유정이게끔 하는 동류상사성(同類相似性)을 말한다. 예컨대 소를 축생이라고 하고 갑돌이를 인간이라고 할 때, 그들은 각각 축생과 인간의 공통된 원인을 갖기 때문에 구별 가능하다고 하는 경우이다.

    끝으로 4상(相)이란 유부의 찰나 개념이다. 즉 유부는 한 찰나에 4상의 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또한 이것 4상의 찰나적 작용으로 인해 제법은 삼세에 실유하고 그 법들은 항유한다는 이론적 근거로 삼는다. 다시 말해 모든 유위법인 72법은 삼세에 그 자체의 성질[自性]을 갖고 있지만, 그것들은 미래에서 현재로, 그리고 과거로 찰나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삼세는 있으며, 그 개개의 법들인 법체는 항상 있다는 것이다.

    5)무위법

    어떤 조작이나 인과법칙에 놓여있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유위법의 반대 개념.

    ①택멸(擇滅): 택멸은 해탈 또는 열반의 동의어이다. 즉 무루이면서 유위법인 도제에 의해서 무루혜의 간택력을 획득하여, 반야의 지혜를 얻는 것을 말한다.

    ②비택멸(非擇滅): 조건[緣]의 결여로 영원히 미래에 머무는 법을 말함. 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일체의 존재[법]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쳐 실재하는데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미래의 법이 현재화된다. 반면 그 같은 조건이 결여되면 영원히 미래에 머물게 되는데, 이러한 법들은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멸하지도 않는 불생불멸의 존재로 보기 때문에 비택멸이라고 한다.

    ③허공(虛空): 공간적 점유성이나 장애성을 지니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무애(無礙)를 본질로 하는 공간, 즉 절대 공간을 말한다. 이 절대 공간은 인연의 화합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무위법이라고 한다.

    의의와 평가

    유부의 범주론적 존재론인 5위75법에서의 법이란 곧 달마로써,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법이란 ‘dravyataḥ sat’, 즉 실유(實有)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성질을 지닌 것(svalakṣaṇa-dhāranad dharmaḥ, 任持自性)이므로 자성(自性)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자성이란, 다른 것의 존재 방식에 대해 그것과는 구별되는 그 자체의 존재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고, 현상의 기저에 있는 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유부가 주장하는 75가지 법이란 자신만의 고유한 성질을 가지며, 변화지 않는 실체로서 삼세에 무수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법들은 지금 4상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를 현재, 작용이 끝난 상태를 과거, 작용이 아직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미래라고 하여, 유부의 명제인 “삼세실유(三世實有)·법체항유(法體恒有)”의 이론적 바탕이 된다. 또한 이러한 법들은 삼세에 있어, 인(因)·연(緣)·과(果)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유부에서는 이것을 6인·4연·5과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유부에서는 연기(緣起)를 보다 분석적으로 이해하여 6因, 4緣, 5果로 해석하였다. 모든 원인을 6종으로 분류하여 6因이라고 하며, 마찬가지로 일체의 원인을 4종으로 분류하여 4緣이라고 한다. 인(因)과 연(緣)은 결과에 대한 원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불교 용어에서는 구별되어 사용된다. 인(因)은 결과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연(緣)은 간접적으로 결과가 생기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조건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분류방법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유부에서 인(因)은 법과 법의 관계가 아니라 법이 갖는 힘이다. 6因이란 능작인(能作因), 구유인(俱有因), 동류인(同類因), 상응인(相應因), 변행인(遍行因), 이숙인(異熟因)이다. 능작인은 자신을 제외한 일체법은 능작(能作)의 힘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구유인은 인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로서, 서로 因이 되고 果가 되는 경우이다. 동류인은 같은 성질의 법이 다른 성질의 법을 생기(生起)하는 因이 되는 것이다. 상응인은 심(心)과 심소(心所)의 상응관계를 말한다. 변행인은 동류인 가운데 특수한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특정의 강력한 번뇌가 두루 심(心)과 심소(心所)를 물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숙인은 다른 성질의 법이 법을 생기(生起)하는 因이 되는 것이다. 이숙이란 因과 果가 다르게 성숙한다는 의미로, 因은 선악이지만 果로서의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라는 것이다.

    5果란 이숙과(異熟果), 증상과(增上果), 등류과(等流果), 사용과(士用果), 이계과(離繫果)이다. 이숙과는 이숙인에 대응하는 것이다. 선악의 업과 그 果의 관계로 因이 선행하고 후에 果가 생기하며 因과 果가 동류가 아니다. 증상과는 뛰어난 果라는 의미로서 능작인의 果이다. 동류인과 변행인은 등류과를 가져온다. 구유인과 사응인의 果를 사용과라고 한다. 이계과란 깨달음을 말한다. 이는 수행의 힘에 의해 증득되는 것이다.

    4緣이란 인연(因緣), 등무간연(等無間緣), 소연연(所緣緣), 증상연(增上緣)이다. 등무간연은 물질에는 없고 심법과 심소법에만 있는 것이며, 심과 심소가 연속하여 일어나는 경우에 앞의 심과 심소가 멸하는 것이 다음의 심과 심소가 일어나는데 조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前찰나의 심과 심소를 등무간연이라고 한다. 소연연은 인식의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증상연은 6因 가운데 능작인과 같다. 인연은 6因 가운데 능작인을 제외한 5因을 통합한 것이다.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12연기가 윤회의 상태를 밝히는 것이라고 보고 12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해석했으며, 또한 연기에 대해서는 6因, 4緣, 5果로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적 이해는 오히려 본래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법의 성품이란 理(空)와 事(色)의 결합체입니다.

    무명무상 절일체 (일체 모든 생각이 끊어진 眞空상태)에서 

    증지소지 비여경 (무엇을 증하고 알아야 하는가?, 비여경이란 물질의 경계입니다)  따라서

    불수자성 수연성 (물들지 않는 가운데 인연따라 이루워지는 물질의 경계 中道를 말합니다)

    즉, 모양의 경계  (色卽空 = 중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반쪽의 사마타 공입니다.

     

    다만, 證智所知는 見을 모르는 사람의 글자입니다.  證智가 아니고 見(눈)입니다. 證見!

    풍수 역시 자연을 따르는 수연행입니다. 풍수를 집착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지 중요합니다.

    눈뜬이는 물웅덩이를 피해가듯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물이 있으면 피해가고, 바람이 불면

    언덕을 의지하지만 물은 항상하지 않고, 바람 역시 항상 같은 방향으로 불지 않는 것를 알기

    에 정해진 풍수를 잡착하지 않을 뿐입니다. 時 時 때 때에 알맞게 중요합니다.


    戒定慧 三學이란 法身 報身 化身을 말하니

    戒定慧 三學을 모르거나 닦지 않으면 올바른 깨달음이 아닙니다.

     

    戒定慧 三學이란  戒의 몸인 노사나불이  

    定, 멈춘 마음으로 자신의 色身(體)를 볼 줄 아는 智慧를 말합니다.

    따라서 戒定慧 三學이란 각각이 아니고 하나로 돌아갑니다. /草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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