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담마(Abhidhamma)란 무엇인가
아비담마(Abhidhamma)는‘법(法)’으로 번역되는 dhamma에다 ‘위로, ~에 대하여, 넘어서’를 뜻하는 접두어‘abhi-’가 첨가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래서 일차적인 의미는‘법에 대한 것, 법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석서에서는‘abhi-’를‘뛰어난, 수승한’, 즉‘넘어선’의 의미로 해석한다. 붓다고사는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인 『앗타살리니』에서‘abhi-’라는 접두어는‘뛰어나다, 특별하다’라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아비담마는 ‘수승한 법’이란 뜻이고(주: ayam pi dhammo dhammaatirekadhammavisesa.t.thena abhidhammo ti vuccati. - DhsA) 그래서 중국에서는‘승법(勝法)’이라 옮기기도 했다.
아비담마라는 단어에서 키포인트는 무엇보다도 담마(dhamma, 法)이다. dhamma(Sk. dharma)는 인도의 모든 사상과 종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쓰이는 술어이며 또한 방대한 인도의 제 문헌들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술어 중의 하나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불교 문헌에서도 예외 없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술어 중의 하나이다. 빠알리 삼장에 나타나는 담마(dhamma)의 여러 의미를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는 『앗타살리니』에 나타나는 붓다고사 스님의 주석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스님은 dhamma를 ① 빠리얏띠(pariyatti, 교학, 가르침) ② 헤뚜(hetu, 원인, 조건) ③ 구나(guṅa, 덕스러운 행위) ④ 닛삿따닛지와따(nissatta-nijjiivataa, 개념이 아닌 것)(주: nissatta-nijjiivataa의 문자적인 뜻은 ‘삿따(중생, satta)도 아니고 영혼(jiiva)도 아님’이다. 즉 중생이라는 개념(빤냣띠, pannatti)이나 영혼이라는 개념이 붙을 수 없는 궁극적 실재(빠라맛타, paramattha)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개념이 아닌 것’으로 옮겼다. (궁극적 실재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1장 §2의 해설을, 개념은 8장 §29를 참조할 것.)의 넷으로 분류하고 있다.(주: dhamma-saddo pana ayam pariyatti-hetu-guna-nissattanijjiiavatadiisu dissati. DhsA.38.)
이것을 다시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⑴ 부처님 가르침(=진리=덕행)으로서의 법과
⑵ 물·심의 현상으로서의 법(개념이 아닌 것)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요즘 서양학자들은 전자를 대문자 Dhamma로 후자를 소문자dhamma로 표기한다. 그러므로 아비담마라는 용어도 이런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아비담마는 첫째, 부처님 가르침(Dhamma)에 대한(abhi-) 것이다.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법문(法門)을 하셨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에서 法門이라 번역한 원어는 빠알리어로 담마 빠리야야인데 빠리야야는 다른 말로‘방편’이라고도 번역되었듯이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게 설해진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초기경에서 보듯이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 법을 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주로 재가자들)에게는 보시와 지계와 천상에 나는 것[施·戒·生天] (주: daanakathaaa siilakathaa saggakathaa. D1/i.3; M1/i.56 등)을 설하셨고 법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사람의 근기에 맞게 다양하게 법을 설하셨다. 이렇게 세간적이거나 출세간적이거나 높거나 낮은 단계의 수많은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없으면 자칫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놓치거나 오해하고 호도할 우려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핵심만을 골라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제자들 사이에서 아주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있어왔다. 이런 노력이 자연스럽게 아비담마로 정착된 것이다. 그러므로 듣거나 배우는 사람의 성향이나 이해정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즉 아무런 방편을 붙이지 않고 설한 가르침이 아비담마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비담마는‘빠리야야(방편)가 아닌 닙빠리야야 데사나(nippariyaaya-desanaa, 비방편설)’라고 논장의 주석서들에서는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주: abhidhammakathaa pana nippariyaayadesan? - DhsA.222)
그래서 붓다고사 스님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뛰어난 법과 특별한 법’으로 아비담마를 정의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승법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비담마는 부처님께서 [아무런 방편을 쓰지 않고] 제일 먼저 천상의 신들에게 가르치신 것이라고 신화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둘째, 아비담마는 물·심의 여러 현상(dhmma)을 대면하여(abhi-) 그것을 잘 분석하여 그것이 유익한 것[善法, kusala-dhamma]인지 해로운 것[不善法, akusala-dhamma]인지, 그런 현상들은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지를 철저하게 알아서 저 고귀한 열반을 증득하게 하는 가르침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장 스님이 구사론에서 대법(對法)이라 옮긴 것이 돋보인다.
물·심의 여러 현상을 법이라 한다고 했다. 이를 아비담마에서는 더욱더 정확하게 정의한다. 가장 잘 알려진 법에 대한 정의가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에 나타난다. 붓다고사 스님은‘자신의 본성(사바와, sabhaava, 고유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을 법이라 한다'(주: attano pana sabhaavam dhaarentii ti dhammaa. DhsA.39)고 정의하고 있는데 법에 대한 정의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다. 여기에 대해서 아난다 스님은‘전도되지 않고 실제로 존재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본성이다’라고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주: bhaavo ti avipariitataa vijjamaanataa, saha bhaavena sabhaavo - DhsMT.25)
이것을 종합하면 본성(sabhaava)이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자기 고유의 성질’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법(dhamma)은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최소단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최소 단위로 하나의 마음(citta), 52가지 마음부수(cetasika), 18가지 물질(ruupa), 하나의 열반으로 모두 72가지를 들고 있다.(주: 28가지 물질 가운데서 10가지 추상적인 물질(anipphanna-ruupa)은 최소단위로 취급하지 않는다. 72가지 구경법에 대해서는 6장 §4 해설 참조.)
예를 들면‘사람, 동물, 산, 강, 컴퓨터’ 등 우리가 개념지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법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다시 여러 가지의 최소 단위로 분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최소 단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은 개념(빤냣띠, pannatti)의 영역에 포함된다. 이들이 존재하는 방식은 개념적인 것이지 사실 그대로가 아니다. 강이라 하지만 거기에는 최소 단위인 물의 요소(aapo-dhaatu)들이 모여서 흘러감이 있을 뿐 강이라는 불변하는 고유의 성질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음이 만들어낸(parikappanaa) 개념이지 그들의 본성(sabhaava)에 의해서 존재하는 실재는 아닌 것이다.
물론 법(dhamma)이란 의미를 광의로 해석하면 이런 모든 개념(pannatti)들도 모두 법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최소단위로서의 법은‘궁극적 실재, 혹은 구경법(paramattha)’으로 강조해서 부른다. 그러나 아비담마 전반에서 별다른 설명이 없는 한 법(dhamma)은 구경법을 뜻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비담마는‘나’밖에 있는 물·심의 현상(dhamma)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초기경에서부터 부처님께서는 dhamma를 제 육근인 마노(mano, 意)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계신다.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감각기능[前五根]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현상일지라도 사실 마노(mano, 意)가 없으면 판독불능이고 그래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겠다.(주: 본서 4장 인식과정의 길라잡이’ 참조.) 일단 전오식(前五識)에 의해서 파악된 외부의 세계도 받아들여지고 나면 그 즉시에 마노의 대상인 dhamma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외부세계도 일단 나의 대상이 되어 내 안에 받아들여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에서는 외부물질을 다섯 감각기능[根]들의 대상으로서만 파악하고 있으며 이름도 고짜라(gocara)라고 붙이고 있는 것이다.
고짜라는 소(go)가 풀을 뜯기 위해서 다니는(cara) 영역이나 구역을 의미하는데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알음알이[前五識]가 움직이고 다니고 의지하는 영역이라는 말이다. 대상이란 보는 것 등의 기능[根]이나 그런 알음알이[識]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술어라 하겠다.
이처럼 아비담마의 주제는‘내 안에서’ 벌어지는 물·심의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불교에서 강조해서 말하는 법(dhamma)이다. 이렇게 법을 내 안에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불교를 이해하는 핵심중의 핵심이다. 이런 제일 중요한 측면을 놓쳐 버리면 법은 나와 아무 관계없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물심의 현상인 법에 대해서 배우고 사유하고 고뇌하고 찾아내어 이를 바탕으로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튼튼한 기초를 다져야 하거늘 오히려 법은 나하고는 별 상관이 없는 저 밖에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래서 밖으로만 신심을 내어서 무언가를 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다가 잘 안되면 법은 그냥 불교지식이나 불교상식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매찰나를 법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법을 내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비법에 온갖 관심을 쏟아 붓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법(dhamma)을 이렇게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면 그 순간부터 부처님 가르침(Dhamma) 역시 의미를 잃고 만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Dhamma)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심의 현상(dhamma)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궁극적으로 법은 오직 하나의 의미뿐이다.
이런 부처님 말씀을 골수에 새기고 내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dhamma)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관찰하고 사유하여 무상·고·무아인 법의 특상을 여실히 알아서 괴로움을 끝내고 불사(不死[열반])를 실현하려는 것이 아비담마이다.
아비담마 문헌의 전개와 발전
아비담마는 어떻게 발전되어왔는가를 간략히 살펴보자.
부처님의 생애를 보면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기 시작하시면서부터 후반 20여 년간은 법의 체계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근본 가르침은 문답식으로 이미 정착화 되었다. 이런 노력의 흔적은 특히 『상응부(상유따 니까야, Sam*yutta Nikaaya)』에서 볼 수 있다. 『상응부』나 『중부(맛지마 니까야, Majjhima Nikaaya)』 경들의 절반 정도가 기원정사에서 설해졌다는 것은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율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하나하나 제정하여 점점 체계화되어왔으며 부처님 재세시부터 이미 「빠띠목카 숫따(Paatimokkha Sutta)」로 정착이 되어서 학습계(sekhiya)를 제외한 150여 조목은 비구들이 우뽀사타(포살)일에 함께 합송하여왔음이 분명하다. 한편 『숫따니빠따』의 4장과 5장에 해당하는 앗타까왁가와 빠라야나왁가 특히 앗타까왁가는 부처님 재세시에도 아주 일찍부터 비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암송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일차 결집에서 법(Dhamma)과 율(Vinaya)이란 타이틀로 합송되어서 전승된 것이다.
특히 부처님께서 강조해서 사용하신 무더기[蘊, khandha], 장소[處, aayatana], 요소[界, dhaatu], 진리[諦, sacca] 등의 술어는 이미 『중부』의 여러 경들에서 체계화되어서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부처님 후반부와 불멸 직후에는 이런 중요한 용어와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특히 중요시되었으며 『장부(디가 니까야, Diigha Nikaaya)』의 33번 경과 34번 경인 「상기띠 숫따」와 「다숫따라 숫따(Dasuttara Sutta)」에서는 많은 법수(法數)들이 체계화되어서 나타난다. 이런 전통은 자연스럽게 남방 칠론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형태를 간직한다고 여겨지는 『위방가[分別論]』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경장과 율장에서는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abhivinaya)로 부르고 있다. 먼저 『중부』에는 “두 비구가 법에 대하여(abhidhamme) 다른 교설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로 나타나며 이럴 경우에 뜻(attha)과 문장으로 두 사람의 견해를 화합시켜야 한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굴릿사니 경(Gulissaani Sutta, M69)」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숲 속 거주를 하는 비구는 abhidhamma와 abhivinaya에 몰입해야 한다고 대중들을 경책하고 있다. 그 외 율장과 『증지부(앙굿따라 니까야)』에서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라는 단어는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법과 율을 배우고 공부하고 지니는 것을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로 부르고 있으며 이런 경향이 불멸후에는 자연스럽게 아비담마라는 문헌군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비위나야 문헌은 발전이 되지 못했는데 그것은 율장 자체에서 이미 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논모(論母)로 옮기고 있는 마띠까(Maatikaa)로 자연스럽게 발전되었다고 본다. 마띠까는 문자적으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matrix(자궁, 모체)란 말과 같은 어원인데 어머니를 뜻하는‘maataa’의미이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나 계율의 조목을 요약한 것이다. 이 마띠까는 사실 율장에서 제일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에 율장에서는 빠띠목카(戒目)를 마띠까로 불렀다. 뒤에는 부처님 말씀도 법수(法數)나 주제별로 분류해서 마띠까로 전승되어 오다가 여기에 설명을 붙이면서 아비담마 체계로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3차 결집 때부터 이런 마띠까에 대한 정의와 상세한 주석과 분석을 시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장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이렇게 해서 지금과 같은 남방칠론이 정착된 것이다. 지금의 남방 아비담마 칠론(七論)이 최초로 완성된 형태로 언급되는 곳은 남방 소전의『밀린다빤하(밀린다왕문경)』의 서문 부분이다.
논장에 포함되어야 할『빠띠삼비다막가(無碍解道)』가 경장의 『소부(小部, Khuddaka Nikaaya)』에 포함된 것은 『빠띠삼비다막가』가 결집되었을 때에는 이미 논장이 닫혀 칠론으로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열려 있는『소부』의 바구니(pitaka)에 넣은 것이다.(Ibid. 60.) 그리고 경장에 포함되어야 적당할 『뿍갈라빤냣띠(人施設論)』가 결집되었을 때에는 경장에서는 4부 니까야가 완성되어 있었고 『소부(Khuddaka Nikaaya)』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장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대로 『빠띠삼비다막가』가 늦어도 2세기 경에는 결집된 것이라면 지금 형태의 논장은 늦게 잡아도 2세기 전에는 완전히 고착이 된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아비담마 칠론(七論)
논장(Abhidhamma Pitaka)의 칠론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자.
⑴ 『담마상가니(Dhammasangani, 法集論)』
『담마상가니』는 아비담마의 원천이 되는 책이다. ‘법의 모음’이라는 제명이 암시하듯이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를 다 열거하고 있는 책이다. 『담마상가니』의 중요성은 특히 아비담마의 전체 골격을 드러내어 주는 그 마띠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담마상가니』의 마띠까는 선/불선/무기로 시작하는 삼개조(tika)로 된 22개의 목록과 두개조(duka)로 된 100개의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전체 법수를 일관성 있게 개괄한 것이다. 이렇게 전체 마띠까를 열거하고 나서 『담마상가니』는 유익한 법[善法]과 해로운 법[不善法]과 판단할 수 없는 법[無記法]의 순서로 욕계에서부터 시작해서 열거하고 있다. 『담마상가니』는 비록 아비담마의 제일 처음 책이지만 꼭 제일 먼저 결집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Hinuver, 68.) 오히려 아비담마에 관계된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결집하면서 이들을 요약하고 총괄하는 형식으로 제일 처음에 둔 책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⑵ 『위방가(Vibhanga, 分別論)』
vibhanga라는 단어는 vi(분리해서)+√bhaj(to divide)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분석, 분해, 해체, 분별’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주요 가르침을 무더기[蘊], 장소[處], 요소[界], 기능[根], 연기, 염처(念處) … 의 18가지 장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이미 『중부』 등의 경에서도 다수 등장하고 있는데 부처님 재세시부터 법을 분류하고 분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불자들의 가장 큰 관심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자연스럽게 『위방가』로 결집된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위방가』의 원형은 칠론 중에서 제일 먼저 결집되었다고 간주하며 3차결집이나 그 이전에 결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방가』의 18장은 대부분 각각 경에 따른 분별(Suttantabhaajaniiya)과 아비담마에 따른 분별(Abhidhamma-bhaajaniiya)과 교리문답(Panha-pucchaka)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숫딴따 바자니야는 경에 따른 법의 해석이며 이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중부』 등의 경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아비담마 바자니야는 법들을 더 엄밀한 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으며 교리문답은 법수(法數)를 『담마상가니』에 나타나는 마띠까의 구조 안에서 설명하고 있다.
⑶ 『다뚜까타(Dhaatukathaa, 界論)』
‘요소(dhaatu)들에 관한 가르침(kathaa)’으로 번역되는 『다뚜까따』는 여러 가지 법들이 무더기[蘊, khandha]/장소[處, aayatana]/요소[界, dhaatu]의 세 가지 범주에 포함되는가 되지 않는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를 교리문답 형식을 빌려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짧은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논서는 이런 온/처/계의 분석으로 자아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척파하기 위한 것이다.
⑷ 『뿍갈라빤냣띠(Puggalapannatti, 人施設論)』
제목이 암시하듯이 여러 형태의 인간에 대해서 일부터 열까지의 법수로서 논의하고 있다. 빤냣띠는 아비담마의 근본주제가 아닌 세속적인 ‘개념’이나 ‘명칭’을 뜻하며 그래서 시설(施設)이라고 한역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유형의 인간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법수에 따라서 모아져 있으며 그래서 형식상 『장부』의 상기띠 숫따(D33)와 다숫따라 숫따(D34)나 『증지부』와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결집된 형태나 내용으로 봐서 논장에 포함되기보다는 경장에 포함되어야 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K.R. Norman, 102.)
⑸ 『까타왓투(Kathaavatthu, 論事)』
칠론 중에서 부처님이 설하지 않으신 것으로 전승되어온 책이다. 이 논서는 삼차 결집을 주도한 목갈리뿟따 띳사(Moggaliputta Tissa) 장로가 다른 부파의 견해를 논파하고 상좌부의 견해를 천명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으로 알려졌으며 부파불교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자료이다.
⑹ 『야마까(Yamaka, 雙論)』
아비담마의 전문술어의 애매하고 잘못된 사용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집된 논서이며 문제 제기를 항상 쌍(yamaka)으로 하기 때문에 『야마까(쌍론)』라 이름지었다.
⑺ 『빳타나(Patthaana, 發趣論)』
미얀마 아비담마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논서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마하빠까라나(Mahaapakarana, ‘큰 책’이라는 뜻)라고 부르기도 하며 총 5권의 2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담마상가니』에 나타나는 삼개조(tika)로 된 22개의 목록과 두개조(duka)로 된 100개의 마띠까(논모) 전체에 대해서 24가지 조건(paccaya)을 적용시키고 있는 난해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미얀마 스님들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지적인 유산이라 자부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 중요한 날들에 우리나라 절에서 철야기도를 하듯이 이 『빳타나』를 암송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연속적으로 여러 스님들이 번갈아가면서 읽어 총 80시간 이상을 독송해야 전체를 다 읽어낼 수 있다.
아비담마의 주석서들
방대한 아비담마 논서들은 다시 붓다고사 스님에 의해서 5세기경에 세 권의 주석서로 장엄이 되었다. 이 가운데서 『앗타살리니(Atthasaalinii)』는 칠론의 첫 책인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이고 『삼모하위노다니(Sammohavinodanii)』는 두 번째인 『위방가』의 주석서이다. 세 번째인 『빤짜빠까라나 앗타까타(Pancappakarana Atthakathaa)』는 말 그대로 나머지 다섯 가지(panca) 책(pakarana)의 주석서이다.
전통적으로 이들 주석서들은 모두 그 이전에 있었던 싱할리 주석서들과 안다라(Andhara, 인도의 안드라쁘라데시와 타밀나두 지역)의 주석서(Andhaka-atthakathaa)(K.R. Norman, 121.) 등을 토대로 붓다고사 스님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서양 학자들은 붓다고사 스님의 편찬이라는데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 세 아비담마의 주석서들은 『청정도론』을 위시한 네 가지 경장의 주석서들과 견해가 다른 부분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논장의 이 세 주석서들은 붓다고사의 감수 하에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특히 『앗타살리니』는『마하왐사(Mahaavamsa)』등의 빠알리 역사서에 근거하여 붓다고사가 인도에 있을 때 지은 것인데 후에 스리랑카로 건너와서 대사(Mahaavihaara)파의 싱할리 주석서들을 참고하면서 다시 개작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 세 주석서들이 붓다고사 스님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청정도론』을 참고할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 『청정도론』에서 이미 설명한 부분은 주석을 깊이 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붓다고사 스님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은 확정적인 증거가 없다. 오히려 주석서라는 문헌의 성격이 주석을 다는 그 책의 내용에 따라서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붓다고사 스님이 지은 방대한 양의 모든 주석서들이 한 부분에서도 견해를 달리하지 않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붓다고사 스님 시대가 그 이전에 남방에서 전승되어오던 모든 다른 견해들을 빠알리 주석서로 정착화 시키는, 어찌 보면 온갖 견해가 난무하던 때라서 주석서마다 다른 견해가 나타날 가능성은 아주 많을 것이다. 또한 붓다고사 스님 스스로도 세월이 가면서 자신의 견해나 관점이 더 정교해지면서 초기에 결집한 주석서가 후대에 결집한 것과 다른 견해를 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석서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통해서 밝혀질 것이다.
붓다고사 스님의 저술이든 아니든 이 아비담마 주석서들은 아비담마가 남방에서 정교한 틀로 정착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책이라는 점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들은 칠론에 버금갈 정도로, 아니 어쩌면 칠론보다도 더 중요하게 취급될 수 있는 책들일지도 모른다. 이 주석서들을 정확한 한글로 옮기면서 바르게 이해하고 소개하는 것이야말로 남방 아비담마의 방대한 체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남방 아비담마가 완성된 체계로 정착되기까지 있었던 무수한 견해들을 우리나라 불교학계가 소화해내는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이 논장의 주석서들에 대한 복주서(tika)들은 붓다고사 스님과 몇 십 년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아난다(aananda) 스님에 의해서 역시 세 권으로 쓰여졌다. 아난다 스님은 붓다고사의 정통 견해와는 다른 여러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난다 스님의 복주서들은 빠알리로 쓰여진 문헌들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책에 속한다고 정평이 나 있으며 띠까 문헌들 중에서도 최초의 책들이다. 그래서 『물라띠까(Muulatiikaa)』라 불린다. 물라(muula)란 근원이나 뿌리라는 말이다. 이 책들은 다시 아난다 스님의 제자이거나 적어도 영향을 많이 받은 스님이라고 여겨지는 대 주석가 담마빨라(Dhammapaala) 스님이 아누띠까(Anutiikaa)로 주석하였다. 상좌부의 본산인 대사(Mahaavihaara)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붓다고사 스님의 견해와 상충되는 아난다 스님의 견해들을 논박하고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방 아비담마 불교는 완성이 되기에 이르렀고 남방 상좌부의 세 파들 가운에서 대사파가 완전히 교리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담마빨라 스님의 안목이 큰 역할을 했다. 역자(대림 스님)는 담마빨라 스님이 지은 『청정도론』의 대복주서인 『빠라맛타만주사(Paramatthamanjusa)』를 읽으면서 담마빨라 스님의 예지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주해1>
담마빨라(Dhammapaala)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분분하다.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다, 세 사람이다, 대승논사이며 날란다 대학의 총장이기도 했던 Dharmapaala와 같은 사람이다, 아니다 등이 그것이다. 지금은 담마빨라와 다르마빨라는 동일인이 아니라는 쪽으로 굳어졌으며 담마빨라가 두 사람이냐 한 사람이냐를 두고 아직 완전히 판명되지는 않았다. 담마빨라가 지었다고 전해오는 주석서들은 크게 『소부』의 시로 된 7가지 경, 즉 『우다나(Udaana)』 『이띠웃따까(Itivuttaka)』 등에 대한 주석서와 『장부』 『중부』 『상응부』의 띠까와 『위숫디막가』의 『마하띠까』와 세 가지 논장의 주석서에 대한 『아누띠까』 등의 복주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서 7가지 『소부』의 앗타까타를 지은 담마빨라와 나머지 띠까들을 지은 담마빨라가 같으냐 다르냐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근(1996)의 견해(Hinuber, 168)에 의하면 주석서를 지은(at*t*hakathaa-kaara) 담마빨라와 복주서를 지은 담마빨라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역자들도 몇 가지 이유로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 역자(대림 스님)의 박사학위 청구논문 ‘A Study in Paramatthamanjuusa’의 서문에 학계의 연구성과가 반영되어 있으니 참조할 것.
<주해2>
Mahaavihaara(大寺)와 Abhayagirivihaara(無畏山寺)와 Jetavanavihaara의 세 파가 스리랑카에서 각축을 벌였다. 붓다고사 이전에는 한때 무외산사파가 큰 위력을 떨쳤으며 무외산사파에서는 Vimuttimagga(解脫道論)를 내놓을 정도로 학문과 수행의 깊이와 체계를 갖추었다고 생각된다. 12세기에 뽈론나루와로 도읍을 옮긴 빠락까마바후(Parakkamabaahu) 1세 왕에 의해서 무외산사파와 제따와나파의 승려들은 모두 대사파로 강제 흡수되어 이 두 파는 불교역사에서 사라져버렸고 그 문헌들조차 남아 있지 못하다.(Hinuber, 22 참조)
아비담마 개설서들
아비담마 논서들은 주석에 주석을 거듭하면서 방대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런 남방 칠론과 주석서와 복주서와 위숫디막가 등 방대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문헌을 접하면서 아비담마를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초심자에게는 현애상을 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아비담마의 모든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책이 아주 절실하게 요구되었으며 그에 따라 이미 5세기 때부터 많은 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서 최초는 아마 붓다고사 스님과 동시대 스님으로 알려진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이 지은 『아비담마 아와따라(Abhidhammaavataara, 아비담마 입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담마빨라 스님의 『빠라맛타만주사』에서도 언급되고 있다.(abhidhammaavataara-sumataavataaraadi viya.(Pm.1) 이렇게 해서 칠론과 그 주석서들과 복주서들과 관계없는 독립된 아비담마 개설서들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아비담마의 나라라고 말하는 미얀마에서는 다음 9권의 아비담마 책을 들고 있다.(CMA. 15.)
⑴ 『아비담마 아와따라(Abhidhamma-avatara)』
⑵ 『루빠 아루빠 위방가(Ruupaarupa-vibhaaga)』
위 두 책은 붓다고사와 동시대의 스님으로 알려진 대 주석가 붓다닷따(Buddhadatta) 스님의 저술이다.
⑶ 『삿짜 상케빠(Sacca-sankhepa)』
쭐라 담마빨라(Cuula, 작은 Dhammapaala)라 알려진 스님의 저술이며 387개의 운문으로 저술되었다.
⑷ 『케마 빠까라나(Khema-pakaran*a)』
나마루빠 사마사(Naamaruupasamaasa)로도 알려진 이 책은 케마 스님이 지은 산문 위주의 간단한 책이다. 12세기에 이 책에 대한 주석서가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봐서 그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간주된다.
⑸ 『아비담맛타 상가하(Abhidammattha Sangaha)』
⑹ 『나마루빠 빠릿체다(Naamaruupa-pariccheda)』
아누룻다 스님의 저작으로 13장에 총 1845개의 운문으로 되어 있다.
⑺ 『빠라맛타 위닛차야(Paramattha-vinicchaya)』
이 책 역시 아누룻다 스님의 저술로 알려졌다. 책의 후기에 남인도의 깐찌뿌라(Kancipura)에 있는 까위라(Kaaviira)라는 읍에서 태어난 자가 지었다는 내용을 근거로 아누룻다 스님은 인도 출신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유명한 학승이셨던 붓다닷따 스님은 이 책의 저자 아누룻다 스님과 『아비담맛타 상가하』와 『나마루빠빠릿체다』의 저자인 아누룻다 스님은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⑻ 『모하 윗체다니(Moha-vicchedanii)』
이 책은 12세기 뽈론나루와 불교시대의 거장이었던 깟사빠(Kassapa) 스님의 저술로 알려졌다.
⑼ 『나마짜라 디빠까(Naamacaara-diipaka)』
이 책은 15세기에 미얀마 바간(Bagan)에 거주하던 삿담마 조띠빨라(Saddhamma-Jotipaala) 스님이 쓴 책이다.
이 외에도 그 이름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아비담마 개설서들이 스리랑카와 태국, 특히 미얀마에서 저술되었다. 이렇게 아비담마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기라성 같은 대가 스님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음미되면서 체계화되었고 후학들에게 전승되었다. 사실 이런 아비담마의 모든 책들을 다 섭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후대로 내려오면서 특히 미얀마에서는 『아비담맛타 상가하』 한 권만을 집중해서 가르치고 있다. 이런 모든 아비담마의 서적들 가운데서 아비담마의 주제를 체계적이고 간결하면서도 빠짐없이 서술한 책으로 본서를 능가할 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 깟짜야나 문법서와 본서를 강원에서 반드시 외워야 하는 책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아비담맛타 상가하』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출처] 아비담마 문헌의 전개와 발전 |작성자 byuns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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