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의 글에서
프랑스의 뗄렘수도회원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실행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에 일어나 의욕을 느끼는 대로 음식을 들고 일을 하며 또 잠을 잤다.
수도회의 유일한 법이자 명령이란 다름 아닌 -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는 것이었다.
국선도의 계율은 오직 하나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그러나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버려라!'이다.
그래서 청산 사부께서는 "국선도는 행복도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계율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깔려있다.인간의 삶은 늘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전자는 주로 본능적이고 이기적이며, 후자는 주로 도덕적 사회적이다.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렬하다.
경험해 보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끌림이 강력하다.
거기에 신비로운, 매우 좋은 어떤 것이 있을 것 같다.
그것을 경험하여 알기까지는 그 욕구를 버리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알고 나면 욕구의 김이 빠져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버리기가 쉽다.
모를 때 특별한 것이지 알고 나면 별것이 아니게 된다.
별것이 아니니 쉽게 버려진다.'하고 싶은 것'이 비도덕적이거나 비사회적일 때는 양심과의 부딪침이 일어나고, 인간관계에서의 부딪침이 일어나서 '자연스럽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양심의 거리낌이나 인간관계의 부조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하고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인간의 욕구는 억압하면 할수록 더 강렬해진다. 마치 스프링이 누를수록 반탄력이 쎄지듯. 적절히 경험하여 김을 빼주면 그것의 무상함을 알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쉬어진다.
물론 경험하지 않고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경험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 가장 좋을 것이다.
도인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같을 것이다.
자연인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대인은 욕구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범인은 욕구가 일어나면 그것을 경험하고 버릴 수 있을 것이며 소인은 욕구가 일어나고 그것을 경험하고 그것에 빠져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