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기본입문

고성염불

통융 2016. 6. 29. 20:58

*** 염불 소리에 숨겨진 비밀 - 왜 고성염불을 해야하는가?

장엄염불 가운데 고성염불십종공덕이 나온다.

큰 소리로 염불하면 열가지 공덕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열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능히 잠을 없애주는 공덕이 있다.

수면(睡眠)은 잠이다. 불교에서는 수면을 본능적 번뇌의 일면으로 보고 있다.

즉 수면은 업력의 소산에 의한 습관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면이 지나치면 불성 계발의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염불을 하면 수면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밝은 각성이 고조되고 수면이 적어짐으로써 정신 활동을 고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고성염불의 첫 번째 공덕이다.

 

둘째는 천마가 놀래고 두려워하는 공덕이 있다.

()는 마라-빠삐마라는 범어의 줄인 음역이다. ‘마라죽이는 것’, ‘죽게끔 하는 것을 말하고, ‘빠삐마()’이라 번역한다.

그러므로 마라-빠삐마는 생명을 죽게 하고 악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선가(禪家)에서는 마라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로 보고 있다. 큰 소리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는다. 이 때에는 온갖 번뇌가 사라진다. 즉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번뇌, 즉 마라가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천마가 놀래고 두려워 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셋째는 염불 소리가 온 시방에 두루 퍼지는 공덕이 있다.

일체의 염불은 묘음(妙音)이다. 따라서 염불의 소리는 자신의 수많은 신경과 세포에 진자(震子) 운동을 시킬 뿐만 아니라, 공간을 진동시켜 기를 맑게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음파의 전달로 감동을 주고 마음을 가라앉게 해준다.

 

넷째는 삼도의 고통을 쉬게 하는 공덕이 있다.

삼도(三途)란 지옥·아귀·축생을 말한다. 삼도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표출될 때 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하지만 염불은 불을 끄고 화를 가라앉히고 응어리를 삭게

하는 소염제다.그러므로 부처님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큰 소리로 외우면

참회와 서원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삼도의 고통이 사라지게 된다.

 

다섯째는 다른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 공덕이 있다.

염불 시에는 입으로는 큰 소리로 칭명하지만 귀로는 자신의 소리를 관()하게 된다. 그러면 외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고 마음이 집중된다. 이러한 원리로 큰 소리로 염불하면 그 사람의 귀에는 염불 소리밖에 다른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여섯째는 염불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공덕

이 있다. 큰 소리로 염불하면 염심(念心)이 흩어지지 않는다.

생각 생각이 떠나지 않는 마음(念念不離心)’, ‘생각 생각이 이어지는 마음(念念相續心)’이 염불이다.

앞서 말한 바깥 소리外聲가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일도경(一道境)에 든다면 그는 반드시 염심이 흩어지지 않아 삼매(三昧)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일곱째는 용맹 정진하는 공덕이 있다.

일념으로 염불을 꾸준히 매일매일 반복하다 보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마음이 생겨 더욱 정진하고자 하는 용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용맹정진으로 궁극의 목적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여덟째는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시는 공덕이 있다.

부처님을 일념으로 생각하며 그 명호를 부르는데 어찌 불보살이 기뻐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일심으로 부처님을 칭명하면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시겠지만, 실제는 염불하는 자신의 마음이 순일(純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게 된다. 염불을 하는 동안에는 자기 자신이 곧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삼매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덕이 있다.

삼매는 무명이 없어지고 맑고 밝은 마음이 또렷또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삼매는 세 가지가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즉 탐((() 삼독심(三毒心)이 잠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탐심이 자면 베푸는 마음이 생기고, 진심(嗔心)이 자면 자비심이 생기고, 치심(癡心)이 자면 선정과 지혜가 생긴다.

 

열째는 정토(淨土)에 가서 태어나는 공덕이 있다.

염불 수행자가 목숨을 마친 뒤 정토에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염불 수행자는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에 의해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앙은 타력적이다.

그러나 불교의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한 방법의 차이에 불과할 뿐,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오직 일념으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그 이치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 를타야 훔* 이 진언은 부처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지혜의 힘으로 새로운 태어남을 얻게 하는 신령스러운 힘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깊은 죄업과 짙은 어두움이 마음을 덮고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광명속에 들어가면 저절로 맑아지고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 이 진언을 외워 영험을 얻는 원리이다.>에서 이의덕을

만일 중생이 이 진언을 두 번이나 세 번, 또는 일곱 번을 귀로 듣기만 하여도 모든 죄업이 없어지게 된다. 또 중생이 십악과 사역죄와 사중죄를 지어 죽은 다음 악도에 떨어질지라도 이 진언을 외우면 능히 해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그릇에 흙이나 모래를 담아놓고 이 진언을 108번 외워 그 모래를 시신위에 흩거나 묘지 또는 묘탑 위에 흩어주면 비로자나 부처님의 광명이 망인에게 이러 모든 죄업을 소멸시켜 줄 뿐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연화대로 인도하게 된다. 모래를 묘위에 흩는 것만으로도 극락왕생하거늘, 하물며 진언으로 옷을 지어 입고 소리를 내어 외우면 어떠하겠는가? 모래를 흩는 공덕보다 진언을 외우는 공덕이 더 수승함은 말할 것도 없다.

원효대사는 항상 가지고 다니던 바가지에 강변의 깨끗한 모래를 담아 광명진언을 108번 외운 다음 그 모래를 묘지나 시신 위에 뿌려 영가를 천도했다고 한다.

우리 불자들도 성묘 또는 묘사를 지내러 갈 때 이러한 모래를 준비하여 조상들의 묘위에 뿌려줌이 좋으리라. 그리고 집안에 상을 당했을 때, 절에서 49재를 지냄과 동시에 그 49일 동안 집안에서 매일 광명진언을 외워주면 매우 좋다.  

광명진언은 우리 자신이 만든 모든 부정적인 악업의 진동을 부처님의 지혜 광명으로써 소멸시키고 빛의 상태로 변형시킴으로써 이 진언을 듣는 영가님들은 모든 죄업을 소멸하고 극락 왕생케 하며, 우리의 의식 속에 잠재 되어있는 악업의 때를 소멸시킴으로써 모든 일이 원만대조화의 상태로 있을 수  있게 하는 제불보살의 총주이다.

이 광명진언은 올바른 의식 상태에서 제대로 발성하면 내부 에서부터 정묘한 진동을 일으켜 우리 자신을 정화시킨다. 그러므로 성급한 마음으로 아무 의미 없이 외우지 말고.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염송하면 그에 응한 효과는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광명진언을 외울 때  ,,,, 몸의 오관적 감각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감각을 초월한 세계에서는 엄청난 빛의 파동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稱名)과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염불(念佛)은 원래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칭명과 염불을 구별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염불이라고 하면,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하여 오직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염불수행은 원래 정토종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선사상(禪思想)과 결합하여 새로운

염불관(念佛觀)이 형성되었다.

 

즉 선과 정토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접목으로 선가(禪家)에서는

자성미타(自性彌陀)와 유심정토(唯心淨土)를 부르짖게

되었다.

이러한 염불관을 조선시대의 청허 선사(淸虛禪師)

그대로 계승하였다.

청허 선사는 그의 저서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윤회를 벗어나는 첩경이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자가 마음으로는 아미타불의 경계를

생각하여서 잊지 말며, 입으로는 아미타불의 명호를

칭송하여서 분명하게 흩어지지 말아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서로 상응하는 것을 염불이라고

이름한다.”라고 했다.

이어서 아미타불은 시방삼세에 제일인 부처님의 명호이다.

이는 인행시(因行時)에 법장(法藏) 비구로서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앞에서 48대원을 세우면서

내가 부처를 이룰 때에 시방에 한량없는 세계의 인천들이

나의 명호를 열번만 불러도 반드시

나의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전통에 의해 선을 표방하고 있던 한국의

사찰에서도 조석으로 장엄염불을 염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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