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의 종류 조사선(祖師禪)이란 깨달음을 완성한 모든 조사들이 본래 이뤄져 있는 깨달음의 세계를 바로 눈앞에 들어 보인 법문이다. 이 법문에 들면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스스로가 본래 부처임을 명확히 깨달아 어디에도 걸리지 않은 자재한 삶을 누리게 된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는 말이 있다. 가을바람에 잎이 다 떨어지면 나무의 본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에 맑은 가을바람이 충만한 것을 표현한 말이다. 이와 같이 누구라도 조사선의 법문을 들으면 말과 생각이라는 자아의 존재방식이 허물어져 법계의 참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조사선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마흔다섯 해 동안 길에서 길로 다니며 쉼 없이 가르침을 펴다가 마침내 스스로 체득하신 깨달음의 세계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마하가섭 존자에게 전하니, 이 일의 기연(機緣)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한 송이 연꽃을 들어 많은 대중 앞에 보이셨는데, 그 대중 가운데 오직 마하가섭 존자만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부처님께서 연꽃을 들어 마음을 보이시자 가섭 존자가 그 마음을 바로 깨닫고 미소로 화답해 드린 것이다. “꽃을 드시자 빙그레 웃네.” 이른바 ‘염화미소(拈華微笑)’가 바로 이것이다. 선(禪)은 염화미소의 뜻 깊은 기연으로 탄생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 염화미소의 기연 밖에도 두 번 더 이심전심의 방법으로 가섭 존자에게 마음을 전하였으니 이것을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전해 주신 법은 그 뒤로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끊임없이 계승되었다. 인도에서 스물여덟 번째로 이 법을 물러받은 분은 보리 달마 조사이다. 달마 조사는 중국으로 건너와 부처님의 진정한 선법(禪法)을 전하여 동토(東土)의 첫 조사(祖師)가 되었던 것이다. 간화선은 부처님과 역대 조사께서 이르신 한 마디 말이나 순간적으로 보이신 짧은 행위 끝에 백억 가지 법문을 뛰어넘어 바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이다. 이것은 캄캄한 방에 불이 켜지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확’ 밝히는 이치와도 같다. 간화선은 이와 같이 단박에 뛰어넘어 바로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一超直入如來地)이다. 간화선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인도와 중국을 거치면서 자성을 깨닫는 여러 가지 참선법 가운데 가장 발달된 수행법으로 자리 잡았다. 간화선이 뛰어난 점은 마음의 당처를 바로 들어 보인 선사들의 갖가지 화두를 타파하여 그 자리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 때문이다. 화두란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말이다.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졌기에 근기가 뛰어난 사람은 이 화두를 받자마자 단박 그 자리에서 깨닫는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화두를 들고 의심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화두의 실례를 들어 화두를 어떻게 참구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다음은 조주(趙州 779-897) 선사의 무자(無字) 화두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없다[無].” 여기에서 수행자는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 스님은 어째서 없다[無]고 했는가?’ 이렇게 의심해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무자(無字)화두를 참구하는 요령이다. 또한 예를 들면, 어떤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운문 선사가 대답했다. “마른 똥막대기이니라.” 수행자는 부처님은 지고한 깨달음을 이룬 분인데 운문 스님은 ‘왜 똥막대기라 했을까’하고 간절히 의심해야 한다. 화두는 이렇게 수행자로 하여금 큰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리하여 수행자의 마음이 온통 의심 덩어리가 되게 하여 마침내 그 의심 덩어리가 툭터지는 경지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화두는 또한 사유할 수 있는 모든 출구를 철저히 차단한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다. 사방이 은산철벽으로 차단되어 바람 한 점 지나지 못하는 철의 장막 한 가운데서 있는 것과 같다. 다시 예를 들어 보자. [무문관(無門關]에 나오는 법문이다. 수산 성념 선사가 죽비를 들고 대중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것을 죽비라고 부르면 집착이요, 죽비라고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 <평창>무문혜개 선사가 말했다. “죽비라 부르면 집착이고 죽비라 부르지 않으면 등지게 된다.”고 하니, 말이 있어도 안 되고 말이 없어도 안 된다. 속히 말해 보라. 속히 말해보라. 긍정도 안 되고 부정도 안 된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 그렇다고 또 다른 무엇을 갖다 대도 안 된다. 도저히 접근할 길이 없다. 어느 쪽의 길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길이 끊어진 언어도단(言語道斷)이요, 마음의 자취 또한 끊긴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이 자리에서 의문 덩어리인 화두가 활활 살아난다. 간화선이라 할 때, 그 간(看)하는 대상으로서의 화두는 대상화해서 객관적으로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커다란 의심을 일으켜 끝없이 몰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화두는 주관과 객관을 근거로 하는 생각의 길이 끊어진 곳에 있다. 여기에는 단지 커다란 의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화두에 깊이 들어간다는 뜻으로 참구(參究)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역대 조사들은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의심해 들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화두가 수행자에게 커다란 의심으로 다가왔을 때 화두는 비로소 생사심(生死心)을 끊는 취모검(吹毛劍)이다. 이때 화두는 더 이상 알음알이[知解]로 분별하는 대상이 아니며, 탐구의 대상도 아니다. 온몸을 던져 의심하고 의심하여 의심이 단단히 뭉쳐 오도 가도 못할 때, 이 의심 덩어리[疑團]을 깨뜨려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간화선의 생명은 철저한 의정을 통해 깨치는 데 있다. 화두는 일상적인 분별의식을 불태워 스스로의 본성을 깨닫게 한다. 사람들은 보통 주변의 사물이나 일에 대해서 그것을 대상화하고 양변(兩邊)으로 나누어 판단하면서 살아간다. 그것도 자신의 의식 속에 채색된 주관적인 선입견으로 분별하고 추리하여 이런 저런 것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우리의 분별의식은 이렇듯 자신의 색안경을 낀 채 대상을 보고 사유판단하기 때문에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맹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날로 그 불완전성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의식이 ‘나’라고 하는 생각을 축으로 세상을 이리저리 재단해 보는 알음알이로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먹고 마시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성의 구조란 게 본래 이와 같다. 문제는 자신의 본래 성품이 이러한 분별의식에 가려 그 바른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데 있다. 오직 분별의식을 타파해야만 자신의 본성이 밝게 드러나게 된다. 본래면목을 밝히려면 화두를 들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간절하고 사무치게 의심해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지극히 의심해 들어가다 보면 화두 하나만 또렷이 남게 되는데, 이 때 어떤 계기를 만나 화두를 타파하면 마침내 자신의 본래 보습을 몰록 깨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면서 일편단심으로 눈 뜨기만을 바라던 장님이 어떤 부딪친 계기로 번쩍 눈을 뜨는 것과 같다. 또한 이것은 백년 천년 동안 막혀 있던 체증이 한순간에 내려가고 짊어지고 있던 물통의 밑바닥이 탁 빠져버린 상황과도 같다. 하지만 눈을 떠 보면 그러한 깨달음이 스스로에게 본래 갖춰져 있었던 것임을 확인할 따름이다. 그러니 새로 얻은 것도 깨달은 것도 없는 것이다. 조사선과 간화선은 비록 이름은 다르나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한 구조이다. 그래서 조사선과 간화선은 시대적 의미가 부여되어 구분된 한갓 이름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나뉘었을 뿐 간화선에는 조사선의 정신과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만 수행방법상 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것을 강조했기에 간화선이라 부른 것이다. ‘화두’라는 것도 이미 조사선 속에 있던 내용이다. 간화선은 다만 그것을 정형화하고 체계화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조사선과 간화선은 같은 맥락이라 봐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간화선의 성립의 의의는 역대 조사들의 정신을 다시 회복하는데 있다. 송나라 시대에 이치로 해석되던 조사들의 말씀과 행위를 역대 조사들의 본래적 삶 자체로 생생하게 되돌려 놓는 것이다. 간화선은 당나라 때 선문답이나 어록 또는 여러 가지 기연을 통해 조사 스님들이 보여준 본래면목에 대한 여러 형태의 지시어를 화두로 삼아 본분 자리를 밝히는 혁신적인 수행법이다. 그러므로 간화선은 조사선의 정신을 잘 이어받은 바로 질러가는 탁월한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조사선
일반적으로 祖師禪이라면 唐代의 傑僧 馬祖道一(709-788)이 조사선의 정의라고 할 수 있는 [平常心是道]라는 주장처럼, 수행이 필요없는 일상 생활 그대로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종교로 안이하게 간주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조사선의 본질을 한마디로 [日常性의 종교] 혹은 [생활속의 종교] [자각의 종교]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 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먼저 馬祖道一이 주장한 [平常心是道]라는 조사선의 정의를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마음이 곧바로 다름아닌 부처]라고 하는 [卽心是佛]의 주장은 이러한 생각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간주되어 왔다. 사실 唐代의 조사선에서는 마조의 설 법에서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道不用修)]라는 주장을 비롯하여, {寶林傳}에서나 {臨濟錄}에서도 [수행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無修無證)]이라는 주장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언뜻 생각하기에는 수행과 깨달음의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는 주장도 보인다. 그리고 {傳燈錄}이나 당대의 禪語錄을 보면, 조사들은 대게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깨달음을 체득하기도 하고, 스승과의 일상 대화(禪問答)나 일상의 作務(勞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게된 機緣을 많이 전하고 있기 때문에 선수행의 기본이 되는 좌선의 실천은 하지 않았다고 간주되기도 한다. 사실 馬祖道一이 南嶽에서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 수행을 하고 있을 때, 懷讓禪師가 [그대가 좌선수행으로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은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이 되도록 하는 것 과 같다]고 좌선 수행을 실날하게 비판하고 있는 逸話에서 좌선 수행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몇가지 특수한 경우의 事例와 그 선문답에대한 내용의 의미를 잘 못 파악하여 조사선의 본질과 참된수행 정신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필자는 조사선의 본질적인 정신과 수행 체계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이에 대한 오해와 실천 수행에 착오가 없도록 제시해야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제기하여 조사선의 수행체계를 논해 보고자 한다. 회양선사는 왜 좌선 수행 하여 부처가 되려고 하는 마조의좌선을 비판하고 있는가 ? 조사선에서 좌선 수행은 무의미한 것인가? 또한 마조는 왜 平常心이 道라고 하면서 [道는 수행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道不用修)]주장하고 있는가? 그가주장하는 平常心은 어떤 마음이며, 平常心이 道라고 주장하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면 조사선의 수행체계는 어떻게 이루어 졌으며, 平常心이 道인 그 사실과 [道는 수행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 사실을 어떻게 체득하여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간화선
간(看)은 보는 것을, 화(話)는 화두를 의미한다. 이는 인도의 선정(禪定)과는 매우 다른 중국 선종만의 독특한 수행 양식이다. 점수(漸修)를 주장하는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돈오(頓悟)를 주장하는 혜능(慧能)의 남종선(南宗禪)으로 분파되었는데, 안녹산의 난 이후 혜능의 제자인 신회(神會)의 활약으로 남종선이 주류가 된다. 남종선은 다시 임제종(臨濟宗)ㆍ조동종(曹洞宗)ㆍ법안종(法眼宗)ㆍ운문종(雲門宗)ㆍ위앙종(?仰宗)의 오가(五家)로 분파하게 된다. 이 중 가장 융성하여 선종의 정통으로 남은 것은 임제종이다. 간화선은 당대 조주종심(趙州從?)선사의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라는 말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송대에 임제종의 정통을 계승한 대혜종고(大慧宗?) 선사는 화두를 퍼뜨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고요히 앉아서 좌선하는 조동종의 묵조선에 반대하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간화선은 임제종의 정통적인 수행법이 되었으며, 임제종이 융성함과 동시에 널리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간화선을 받아들인 사람은 고려시대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최초이며,〈간화결의론 看話決疑論〉을 저술하여 널리 퍼뜨렸다. 이후 제자인 진각국사 혜심(惠諶) 등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선수행의 정통적인 방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묵조선
당대(唐代) 조동종(曹洞宗)의 굉지 정각(宏智正覺) 선사가 창도했던 선풍(禪風). '묵'은 침묵한 채 마음을 오롯하게 하여 좌선(坐禪)하는 것을 뜻하며, '조'는 지혜로써 본래 깨끗한 마음의 성품을 비추어보는 것을 뜻한다.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의 상(相)이고, 진심(眞心)은 무심(無心)의 심(心)이며, 진득(眞得)은 무득(無得)의 득(得)이고, 진용(眞用)은 무용(無用)의 용(用)이라고 하여, 굳건하게 자리를 정하고 앉아 모든 잡생각을 비워버리는 태도로 침묵한 채 고요히 비추어볼 뿐이며, 반드시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을 기약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무소득(無所得)·무소오(無所悟)의 태도로 좌선할 것을 주장했다. 이 선풍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임제종(臨濟宗)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으며, 묵조사선(默照邪禪)·무사선(無事禪)·고목사회선(枯木死灰禪)이라고 폄칭되었다. 간화선(看話禪)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비판에 대해 정각은 묵조명(默照銘)이라는 글을 지어 묵조선만이 지혜의 작용을 활발하게 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마음의 근본을 꿰뚫어 비출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부처와 조사들이 전해온 참된 선법이라고 주장했으며, 종고의 간화선풍은 공안(公案)에 얽매여 있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지눌(知訥) 이후 임제종의 간화선이 정통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지눌 자신이 정혜쌍수(定慧雙修)나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의 수행법 속에서 묵조선을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또한 고려말의 승려 경한 경한(景閑)은 묵조선 계통의 무심선(無心禪)으로써 많은 문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간화선을 대신해 정통의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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