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

통융 2020. 5. 20. 14:02


-대지도론 제1권-에서

용수(龍樹)1) 지음, 후진(後秦) 구자국(龜玆國) 구마라집(鳩摩羅什)2) 한역, 김성구 번역


2. 초품(初品) 중 여시아문일시(如是我聞一時)를 풀이함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 [] 모든 불경(佛經)에는 어찌하여 첫머리에 이와 같이[如是]’라고 말하는가?

[] 불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고 지혜로 건널 수 있다. ‘이와 같이’179)라고 함은 곧 믿음이니, 만약에 마음속에 믿음이 청정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불법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이 없다면 불법에 들어갈 수가 없다. 믿지 않는 자는 이 일은 이와 같지 않다하니, 이는 믿지 않는 모습이거니와 믿는 이는 이 일은 이와 같다한다.

마치 쇠가죽이 부드러워지기 전에는 꺾어 구부릴 수 없는 것과 같나니, 믿음이 없는 사람 역시 그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쇠가죽이 이미 부드러워진 뒤에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나니, 믿음이 있는 사람 역시 그와 같다.

또한 경에서 믿음에 대해 손과 같다하셨는데, 마치 손이 있는 사람은 보배산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보물을 취하는 것과 같다. 믿음이 있는 사람 역시 이와 같아서 불법의 무루180)의 근()181)()182)각도(覺道)183)선정(禪定)184)이라는 보배산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취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이는 마치 손이 없는 것과 같다. 손이 없는 이는 보배산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취할 것이 없는 것과 같이, 믿음이 없는 이는 불법의 보배산에 들어가도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이 사람은 나의 큰 법의 바다에 들어와서 사문의 과위를 얻어 헛되지 않으리라. 머리 깎고 물든 가사185)를 입었지만 만약에 믿음이 없다면 이런 사람은 나의 법의 바다 속으로 들어올 수가 없느니라. 마치 죽은 나무가 꽃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사문의 과위를 얻지 못하리니, 비록 머리를 깎고 물든 옷을 입고 갖가지 경전을 읽고 갖가지 진리를 묻거나 대답할 수 있어도 불법 가운데에서는 전혀 얻는 바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이와 같이라는 구절[]이 불법의 첫머리에 있나니, 좋은 믿음의 상징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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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범어로는 evaṃ.

180) 범어로는 anāsrava.

181) 범어로는 indriya.

182) 범어로는 bala.

183) 범어로는 bodhimārga.

184) 범어로는 dhyāna.

185) 범어로는 kāṣāya. 가사의(袈裟衣)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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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불법은 깊고도 멀어서 부처님이라야 비로소 알 수 있나니,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비록 당장에 부처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믿음의 힘 때문에 불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범천왕(梵天王)이 부처님께 최초의 법륜을 굴려 주시기를 청하면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염부제(閻浮提)에서 먼저 벗어나셨으니

온갖 부정한 법이 많습니다.

바라건대 감로186)의 문을 여시어

청정한 도법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에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의 법은 매우 어려워서 얻기 어려우나

능히 모든 번뇌를 끊나니

3()187)에 애착심이 있는 이는

이 법을 알지 못한다.

 

범천왕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덕188)이시여, 세간의 지혜는 상등중등하등이 있는데, 곧은 마음을 잘 익힌 이는 쉽게 제도하려니와 이 사람이 불법을 듣지 못하면 온갖 악난(惡難)에 물러나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비유하건대 물속의 연꽃이 어린 것도 있고 성숙한 것도 있으며, 물 밖에 나온 것도 있고 물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것도 있는데, 이들이 모두가 햇빛을 받지 못하면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 역시 그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로써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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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범어로는 amṛta.

187) 욕계색계무색계의 셋을 말한다. 욕계는 식욕과 성욕을 지닌 존재가 머무는 곳으로 위로는 6욕천, 중앙에는 인간, 아래로는 지옥이 있다. 색계는 식욕성욕을 떠난 존재들이 머무는 물질로 이루어진 곳이며, 무색계는 마음만으로 이루어진 비물질의 세계이다.

188) 범어로는 bhada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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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과거미래현재의 3세의 부처님들께서도 모두가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하여 법을 설하셨으니, 나 역시 마땅히 그렇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시고는 범천왕 등 여러 신들의 청을 받아들여 법을 설하기로 하셨으니, 여기에서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답하셨다.

 

나 이제 감로법189)의 문을 여노니,

누군가가 믿기만 하면 기쁨 얻으리.

모든 사람 가운데 묘한 법 설함은

남을 괴롭히려 함이 아니라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 가운데 보시하는 사람이 환희를 얻는다 하시지 않았고 또한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를 행하는 사람이 환희를 얻는다고도 하시지 않으신 채 오직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뜻은 다음과 같으리라.

나의 제일가는 심히 깊은 법은 미묘하여서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하고 흔들리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190) 집착되지 않고 얻을 수 없는 법이어서 일체지(一切智)를 얻은 이가 아니면 알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불법에는 믿음의 힘으로써 첫머리를 삼으니, 믿음의 힘으로써야 들어갈지언정 보시지계선정지혜 등으로써 불법의 첫머리를 삼거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 마음이 흔들려

복된 과보만을 좋아하고

복의 원인은 심지 않으니

()만을 구하고 멸()은 구하지 않네.

 

앞서부터 삿된 견해의 법을 들어

마음에 집착하여 깊이 들어갔나니

나의 이 심히 깊은 법은

믿음이 없고서야 어찌 들어가리오.

 

제바달(提婆達)191)의 큰 제자인 구가리(俱迦梨)192) 등은 가르침을 믿지 않는 까닭에 나쁜 길에 떨어졌으니, 이 사람은 불법에 대해서 믿음이 없이 스스로 지혜를 부려 구하였지만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불법은 매우 깊기 때문이다.

범천왕이 구가리를 가르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한량없는 법을 헤아리려 하나

지혜로운 이는 헤아리지 않네.

한량없는 법을 헤아리려 하면

이 사람, 스스로를 묻어버리리.

 

또한 이와 같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마음이 착하여 곧게 믿으면 이 사람은 법을 들을 수 있거니와 만일 그러한 모습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듣는 이는 단정히 바라보며

목마른 이가 물을 마시듯

일심을 기우려

말씀 속의 이치로 들어가네.

 

법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하나니

이러한 사람이라야

마땅히 말해 줄 수 있다네.

 

또한 이와 같이라는 말씀이 부처님 가르침의 첫머리에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이로움이나 뒷세상의 이로움이나 열반의 이로움 등 모든 이로움의 근본이 믿음을 큰 힘으로 삼음을 말한다.

또한 온갖 외도로서 출가한 사람들은 나의 법은 미묘하고 청정하고 제일이다하나니,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가 행하는 법은 찬탄하고 남이 행하는 법은 헐뜯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서로 치고 싸우다가 후세에는 지옥193)에 떨어져서 갖가지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자기의 법을 사랑하는 물듦 때문에

다른 이의 법을 헐뜯나니

비록 계행을 지키는 사람이라도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리.

 

이는 불법 안에서 모든 애착과 모든 소견과 모든 아만을 버리고 남김없이 끊어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벌유경(筏喩經)194)너희들이 나의 뗏목의 비유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이때에 착한 법도 버려야 하겠거늘 하물며 착하지 못한 법이겠는가하신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반야바라밀에 대해서도 생각하거나 의지하지 않으셨거늘 하물며 의지할 다른 법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불법의 첫머리에 이와 같이라고 한 것이니, 부처님의 뜻은 다음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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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범어로는 amṛta-dharma. 불사(不死)의 가르침을 말한다.

190) 범어로는 anāśraya.

191) 범어로는 Devadatta.

192) 범어로는 Kokālika, Kokāliya. 제바달과 함께 석존의 교단을 떠났다고 한다.

193) 범어로는 naraka.

194) 범어로는 Kolopama-sū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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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제자는 법에 애착하지 않고, 법에 물들지 않고, 패거리를 짓지 않고 오직 괴로움을 여의어 해탈하기만을 구해 모든 법의 모양을 희론하지 않는다.’

아타바기경(阿他婆耆經)195)에서 마건제(摩揵提)196)가 게송으로 따져 물었다.

 

결정적인 모든 법에서

어지러이 갖가지 생각을 냈다가

안팎의 모든 것을 모두 버리고는

어떻게 도를 얻을 수 있으리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결코 듣고 알고 느끼는 것도 아니요

계를 가짐으로써 얻는 것도 아니고

보고 듣는 것 아님도 아니며

계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도 아니네.

 

이와 같은 논의 모두 버리고

()197)와 내 것(我所)198) 모두 버리어

모든 법상 취하지 않아야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으리.

 

마건제가 물었다.

 

보고 듣는 것도 아니요

계를 지켜서 되는 것도 아니요

보고 들음 아님도 아니요

계를 지니지 않음도 아니라면

내가 관찰해 생각건대

벙어리의 법이라야 도를 얻으리.

 

부처님께서 대답했다.

 

그대는 사견의 문에 의지해 있나니

나는 그대의 어리석은 길을 아노라.

그대가 망상을 보지 않는다면

그때엔 저절로 벙어리가 되리라.

 

또한 나의 법은 진실이고 다른 법은 망어이다, 나의 법은 제일이고 다른 법은 진실치 못하다 한다면 이는 투쟁의 근본이다. 이제 이와 같다고 하는 뜻은 사람들에게 다툼 없는 법을 보임이니, 남이 말한 바를 듣고는 그 말한 사람에게 머묾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서 이와 같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다는 이치를 이상으로써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이제 나[]라고 함을 설명하리라.

[] 불법에서는 모든 법이 공하여 모든 것에 나라 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불경 첫머리에 내가 들었다고 하는가?

[] 비록 부처님의 제자들이 나 없음을 알기는 하나 세속의 법을 따라 나라 할지언정 실제의 나는 아니다.

비유하건대 금화로 동화[銅錢]를 사더라도 아무도 비웃을 이가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사고파는 법이 의례 그렇기 때문이다. 나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무아(無我)의 법 가운데 나를 말함은 세속을 따르는 까닭이니, 힐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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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범어로는 Arthavargiya-sūtra.

196) 범어로는 Mākandika.

197) 범어로는 ātman.

198) 범어로는 ātmī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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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경(天問經)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어떤 나한 비구199)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라고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아라한 비구가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최후의 마지막 몸에도

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네.

 

세간의 법[世界法]에서 나라고 함은 제일의제의 진실한 뜻 가운데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공하여 나가 없으나, 세계의 법에 따라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세간의 말에는 세 가지 근본이 있으니, 첫째는 삿된 소견이요, 둘째는 교만이요, 셋째는 이름이다.

이 가운데서 두 가지는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한 가지는 깨끗하다. 모든 범부들은 세 가지 말을 하니, 삿된 소견과 교만과 이름이 그것이다. 견도(見道)의 학인200)은 두 가지 말을 하니, 교만과 이름이요, 성인은 한 가지 말만 하니, 이름이 그것이다.

속마음으로는 진실한 법을 어기지 않으나 세간의 사람을 따르는 까닭에 더불어 이러한 말로 의사를 전한다. 하지만 세간의 삿된 소견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세속을 따라도 다툼이 없다.

이런 까닭에 두 가지 부정한 말의 근본을 제거하고 세속을 따르는 까닭에 한 가지 말만을 사용한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나라고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나 없는 형상에 집착되어 이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는 거짓말이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당연히 그대여,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나 없음이거늘 어찌하여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하는가?”라고 힐난 받으리라.

이제 모든 불제자들은 모든 법이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고 여기에 집착되지도 않는다. 또한 모든 법의 실상에 집착되었다고도 말할 수 없거늘 하물며 나 없는 법에 마음이 집착되리오. 그러므로 어찌하여 나라고 말하는가?”라며 힐난해서는 안 된다.

중론(中論)201)에서 게송으로 말했다.

 

공하지 않은 바가 있다면

의당 공한 바가 있으려니와

공하지 않은 바도 없거늘

어찌 하물며 공함을 얻으랴.

 

보통 사람들은 공하지 않음을 보고

또한 다시 공함도 보지만

보는 것이 곧 보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열반임을 보지 못한다.

 

불이(不二)의 안온 법문이

모든 사견을 깨뜨리나니

부처님들이 행하시는 경지라야

이를 무아(無我)의 법이라 한다.

 

나라는 뜻을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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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범어로는 arhat-bhikṣu. 나한은 아라한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200) 처음으로 무루지(無漏智)를 내어서 진리를 비춰보게 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견도(dṛṣṭimārga)3() 가운데 하나이다.

201) 범어로는 Madhyamaka-śāstra. 관행품(觀行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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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듣는다’202) 함을 설명하리라.

[] 듣는다는 것은 어떻게 듣는가? [耳根]로 듣는가, 귀의 의식[耳識]203)으로 듣는가, 뜻의 의식(意識)으로 듣는가? 만일 귀로 듣는다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만일 귀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귀의 의식은 한 생각뿐이기 때문에 분별치 못하며 또한 듣지 못한다. 만일 뜻의 의식으로 듣는다면 뜻의 의식 또한 듣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5()204)5() ='205)을 안 뒤에야 뜻의 의식이 알기 때문이다. 뜻의 의식은 현재의 5진을 알지 못하고 오직 과거와 미래의 5진만을 아나니, 만일 뜻의 의식이 현재의 5진을 알 수 있다면 소경이나 벙어리도 빛과 소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뜻의 의식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귀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요, 귀의 의식이나 뜻의 의식으로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니다. 여러 인연이 화합함으로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니, 한 법이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고, 식은 무색(無色)?무대(無對)?무처(無處)인 까닭에 역시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소리 자체는 감각이 없고 감관도 없기 때문에 또한 소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귀가 망가지지 않고, 소리가 들을 수 있는 곳에 이르렀고, 뜻으로 듣고자 한다면 정()과 진()과 뜻[]206)이 화합하였기 때문에 이식이 생기며, 이식이 생기기만 하면 의식이 갖가지 인연을 분별하여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까닭에 누가 소리를 듣는가?”라며 힐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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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범어로는 śrutam.

203) 범어로는 vijñāna. 식별작용을 가리킨다.

204)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말한다.

205) 5식의 대상인 색촉을 말한다.

206) ()()() 삼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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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에도 어느 한 법이 짓거나 보거나 아는 일이 없나니, 이런 게송이 있다.

 

업도 있고 과도 있지만

업과 과를 짓는 이가 없다.

이는 가장 높고 심히 깊으니

이 법은 부처님만이 아신다.

 

공하지만 단절됨[]은 아니요

상속하지만 항상함[]도 아니다.

죄와 복 또한 잃지 않으니

이런 법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들었다함을 간략히 풀이하여 마친다.

이제부터 어느 때[一時]’207)라 함을 설명하리라.

[] 불법 가운데에는 수효[]208)나 시간 등의 법이 실로 없나니, ()209)()210)()211)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어느 때라 하는가?

[] 세속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때라 하여도 허물이 없다. 마치 진흙이나 나무를 조각해서 신상[天像]212)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그 신상을 생각하기 때문에 예를 올려 절을 한다 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어느 때라 한 것도 이와 같으니, 실제에는 어느 때라 할 것이 없지만 세속을 따라 어느 때라 말하여도 허물이 되지 않는다.

[] 어느 때라 함이 없을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한 사람이 세간을 벗어나면 여러 사람이 즐거움을 얻는다하셨다. 이는 누구를 가리킨 말이겠는가? 바로 불세존이시니, 게송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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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범어로는 ekasmin.

208) 범어로는 saṁkhya.

209) 범어로는 skandha.

210) 범어로는 āyatana. 이른바 심심작용의 의지처를 말한다.

211) 범어로는 dhātu.

212) 범어로는 devapratim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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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은 스승의 보호가 없고

하나에 뜻을 두어 동행자가 없으며

하나의 행을 쌓아 부처의 경지를 얻으니

자연히 성스런 도에 통한다.

 

이러한 뜻을 부처님은 곳곳에서 말씀하셨으니, 마땅히 어느 하나[]’란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한 법이 화합했기 때문에 그 물건을 하나라 한다. 만일 진실로 한 법이 없다면 어찌하여 한 물건에 대해서는 한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셋이 생기지 않는가? 또한 두 물건에 대해서는 두 마음만 생기고 하나나 셋은 생기지 않으며, 세 물건에 대해서는 세 마음만 생기고 둘이나 하나가 생기지 않는가?

만일 진실로 모든 수효가 없다면 어느 한 물건에 대해서도 두 마음이 생겨야 할 것이요, 두 물건에 대해서도 한마음이 생기기도 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미루어 3456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결정코 알게 되니, 한 물건 안에 한 법이 있고, 이 법이 화합하기 때문에 한 물건에서 한마음이 생기리라.

[] 만일 어느 하나와 물건이 하나라든지 혹은 하나와 물건이 다르다든지 한다면 이 둘에는 모두 허물이 있다.

[] 어느 하나가 있은들 무슨 허물이 되는가?

[] 가령 하나의 병()이라 하면 이는 하나의 이치가 된다. 마치 인제리(因提梨)213)와 석가(釋迦)214)가 역시 하나라는 이치가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어디에나 하나가 있는 곳엔 응당 모두가 병이어야 된다. 비유하건데 인제리가 있는 곳마다 석가가 있는 것과 같다. 지금 옷 따위의 모든 물건도 모두가 병이어야 하리니, 하나의 병과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다면 곳곳마다 하나는 모두 다 병이어야 하리니, 병의 경우와 같이 옷 따위들도 모두가 한 물건이어서 다른 차별이 없어야 한다.

또한 하나가 수효에 속하는 법이라면 병도 역시 수효의 법이어야 한다. 병의 몸[]에는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병에도 다섯 가지 법이 있어야 한다. 병에는 모양도 있고 몸[]도 있으므로 하나에도 모양과 몸이 있어야 한다.

만일 어디서나 하나를 병이라 할 수 없다면 이제 병과 하나라는 수효는 하나로서 같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라고 한다면 병이 포함되지 않고 병이라고 한다면 하나가 포함되지 않나니, 병과 하나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를 말하려면 병을 말해야 되고 병을 말하려 해도 역시 하나를 말해야 되리니, 이와 같다면 혼돈이 생긴다.

[] 하나라 할 때의 허물이 그렇다면 다르다 할 때는 어떤 허물이 있는가?

[] 만일 하나와 병이 다르다면 병은 하나가 아닐 것이요, 병과 하나가 다르다면 하나는 병이 아닐 것이다.

만일 병과 하나가 합친 것을 하나라 한다면 이제 하나와 병이 합친 것은 어찌하여 하나라 하지 않고 병이라 하는가? 그러므로 병은 하나와 다르다 할 수 없다.

[] 비록 하나라는 수효와 합하기 때문에 병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가 병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 모든 수효의 첫머리가 하나이다. 하지만 하나는 병과 다르니, 그러므로 병을 하나라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가 없기 때문에 많음도 없다. 왜냐하면 먼저가 하나이고 나중이 많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름 가운데서는 하나라는 것도 없다. 그러기에 두 부문에서 한 법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거늘 어떻게 음?입의 경지에 속하겠는가?

다만 불제자들은 세속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고 하거니와 실제로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수효의 법이나 명자[名字]가 있다고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법에서는 한 사람, 한 스승, 어느 한때라 하여도 삿된 소견의 허물에 빠지지 않는다.

어느 하나를 풀이해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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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범어로는 Indra.

214) 범어로는 śa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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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15)에 관해서 설명하리라.

[] 천축(天竺)에서 시간을 말할 때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가라(迦羅)216), 또 하나는 삼마야(三摩耶)217)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찌하여 가라로 말씀하시지 않고 삼마야로 말하는가?

[] 가라로 말한다 하여도 역시 의문이 있다.

[] 가볍고 쉽게 말하기 위해서는 가라로 해야 된다. 가라는 두 음절이요 삼마야는 세 음절이니 말이 겹치고 어렵기 때문이다.

[]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온갖 천지의 좋고 나쁜 것은 모두가 때[]로써 원인을 삼는다고 말했으며, 시경(時經)218)에서는 이렇게 게송으로 말하고 있다.

 

때가 오면 중생이 익어지고

때에 이르면 재촉을 하고

때가 능히 사람을 깨우친다.

그러므로 때가 원인이 된다.

 

세계는 수레바퀴 같아

때가 변함은 바퀴가 굴러감과 같으니

사람도 수레바퀴와 같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 어떤 사람은 비록 천지의 좋고 나쁜 모든 물건을 때가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때는 변치 않는다. ()은 실제로 있는 것이나 때의 법칙[時法]은 섬세하여서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꽃이나 열매 따위의 결과에 의하여 때가 있음을 안다. 작년이나 금년의 오래고 가깝고 더디고 빠른 모습을 보기만 하면 때는 보지 못하더라도 때가 있음을 알 수는 있다. 왜냐하면 결과를 보면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의 법칙이 있나니, 때의 법칙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항상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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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범어로는 samaye.

216) 범어로는 kāla. 실시(實時)라 의역하기도 한다.

217) 범어로는 samaya. 가시(假時)라 의역하기도 한다.

218) 범어로는 Kāla-sū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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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 덩어리는 현재의 때[], 흙이나 먼지는 과거의 때요, ()은 미래의 때다. 때의 모습이 항상한 까닭에 과거의 때는 미래의 때가 되지 못한다.

그대들의 경서(經書)의 법에서 때는 한 물건이라 했다. 그렇기에 과거의 세상은 미래의 세상이 되지 못하고 역시 현재의 세상도 되지 못한다. 잡된 과거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세상에는 역시 미래의 세상도 없으니, 그렇기에 미래의 세상이 없다. 현재의 세상 역시 그러하다.

[] 그대가 과거의 흙과 먼지의 때를 용인하는 경우, 만일 과거의 때가 있다면 반드시 미래의 때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때의 법칙은 실제로 있다.

[] 그대는 내가 이미 말한 것을 듣지 못했는가? 미래 세상은 병이요, 과거 세상은 흙과 먼지이다. 미래의 세상은 과거 세상을 만들지 못하니, 미래 세상의 모습에 떨어진다면 이는 미래 세상의 모습의 때[相時]이거늘 어찌 과거의 때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과거의 때도 없다.

[] 어찌 때가 없는가? 반드시 때가 있다. 현재에는 현재의 모습이 있고, 과거에는 과거의 모습이 있고, 미래에는 미래의 모습이 있다.

[] 만일 세 세상의 때에 모두 자상(自相)219)이 있어야 한다면 모두가 현재의 세상일 뿐이요, 과거나 미래의 때는 없어야 한다. 만일 지금 미래가 있다면 미래라 부르지 않고 응당 현재라 일컬어야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맞지 않다.

[] 과거의 때와 미래의 때는 현재의 모습 속의 행이 아니다. 과거의 때는 과거의 세상에서 행해지고, 미래의 세상은 미래의 때에서 행해진다. 그러므로 각각의 법상(法相)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 만약에 과거가 다시 지나갔다고 한다면 곧 과거의 모습을 깨뜨리게 되며, 과거가 비과거라면 과거의 모습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자상(自相)이 버려지기 때문이다. 미래의 세상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때의 법이란 진실함이 없거늘 어찌 하늘과 땅의 좋고 나쁜 것들과 꽃 열매 등 모든 물건을 내겠는가?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삿된 소견을 제하기 위하여 가라로 말하지 않고 사마야로 말한 것이다.

()과 계()와 입()의 생멸을 보고서 거짓으로 때라 말했으나 달리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방위와 때, 여읨과 합함, 하나와 다름, 긺과 짧음 따위의 명칭이 나오매 범부는 마음으로 집착해서 이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라고 한다.

이런 까닭에 세간의 명칭과 언어의 법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 만일 때가 없다면 어찌하여 때에 맞는 음식은 먹어도 좋다 하고 때에 맞지 않는 음식은 먹지 말라 함이 곧 계()가 되는가?

[] 나는 이미 세간의 명칭의 법에는 가 있지만 실제의 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대는 따져 묻지 말라.

또한 이 비니(毘尼)220) 가운데 결계(結戒)의 법은 세속의 법으로서 실제로 있지만, 제일의제의 실다운 법[實法]의 모습은 아니다. 나라는 법의 모습은 실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사람이 가책하는 까닭이며, 또는 불법을 보호하여 오래 보존시키고자 해서 제자들의 예법을 제정하려는 까닭에 삼계(三界)의 세존께서는 모든 계를 제정하셨다. 그러니 여기에서 어떠한 진실이 있는가, 어떠한 명칭이 있는가, 어떤 것이 상응(相應)하는가, 어떤 것이 상응치 않는가, 어떤 것이 법[是法]으로서 여실한 모습인가, 어떤 것이 법으로서 여실치 않은 모습인가?”라고 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일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만약에 때에 맞는 음식221)때에 맞는 약222)때에 맞는 옷223)이 모두 가라가 아니라고 한다면224) 이들은 어찌하여 사마야로 말하지 않는가?

[] 이것은 비니 가운데 설해진 것으로, 속인[白衣]225)은 듣지 못한다. 외도가 어떻게 듣고서 삿된 소견을 내겠는가?

다른 경은 통틀어 누구나 들을 수 있으니, 그렇기에 삼마야를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삿된 소견을 내지 않게 했다.

삼마야는 거짓으로 때를 이름 지은 것이며, [] 역시 거짓 이름이다. 불법에는 대개 삼마야로 말하고, 가라로 말한 경우는 적다. 적다고 해서 힐난하지 말라.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라는 다섯 어구226)의 뜻을 각각 간략히 설명해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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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범어로는 svalakṣaṇa.

220) 범어로는 Vinaya.

221) 범어로는 kālabhojana.

222) 범어로는 kālabhaiṣajya.

223) 범어로는 kālavastra.

224) ()에서는 시식(時食)시약(時藥)시의(時衣)에 대해 가라(kāla)라고 하기 때문이다.

225) 범어로는 avadātavasana.

226) , evaṃ me śrutaṃ ekasmim samaye라는 다섯 어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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