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금강경의 세계

통융 2020. 3. 28. 07:18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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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 또는 「능단반야바라밀경」이다. 600권의 「대반야경」 가운데 제9회 제577권 「능단금강분」과 같은 것으로, 별도의 번역본들이 독자적인 경전으로 고려팔만대장경에 실려 있기도 하다. 「반야심경」과 함께 널리 독송되고 있는 「금강경」은 교종이나 선종을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지금까지 강원에서 교육할 때 고등교과인 사교과()의 주요 경전으로 교육되고 있다.

「금강경」의 금강()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이 되겠다.

금강경의 구성
「금강경」은 분량이 약 300송쯤 되기 때문에 「삼백송반야경」이라고도 부르는데, 전부 여섯 번 번역되었다. 402년에 구라마집이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 535년 보리유지가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 566년 진제가 번역한 「금강반야바라밀경」, 590년 달마급다가 번역한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 648년 현장이 번역한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 685년 의정이 번역한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이 그것이다. 가장 널리 독송되고 있는 것은 구라마집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금강경」은 대승불교 초기에 다른 경전들보다 일찍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 내용이 공사상을 가르치고 있으면서도 '공'이라는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대승보살의 수행방법을 얘기하면서도 보살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보리심'이란 용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승과 소승을 구별하는 내용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도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대립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흔히 대승경전에서 취하는 형식이, 부처님과 부처님을 둘러싸고 설법을 듣는 제자 1,250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만, 억의 수많은 보살과 부처님, 육도중생, 팔부중 등으로 되어 있는데, 「금강경」은 그저 1,250의 제자들만 등장시키고 있어서 원시불교경전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금강경」은 구마라집이 처음 한역하여 소개한 이래,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서 가장 많이 독송해온 경전 중의 하나로 중시되어왔고 삼론종, 법상종, 화엄종, 천태종 등의 교종은 물론 선종에서도 근본경전으로 여기고 있을 만큼 그 내용이 순수하고 깊고 밝다.

금강경의 내용
「금강경」은 공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관련하여 선불교의 중흥조로 숭앙받고 있는 육조() 혜능()대사는 무상()을 머리()로 삼고 무주()를 몸으로 삼으며, 묘유()를 팔다리()로 삼는다고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혜능대사가 구도의 길에 나서 깨달음을 얻게 되어 선불교를 크게 일으키게 된 과정의 일화 자체가 「금강경」의 내용 그대로를 보는 것 같아 요약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1) 금강경과 육조 혜능
혜능대사는 당 태종 12년(638)에 중국 남부지방에서 가난한 농부 노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시절부터 나무를 해다 팔아서 홀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살았다. 그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고 효성이 지극했다.

하루는 그가 시장에 나무를 팔러 가서, 한 가게에 나무를 져다 주고는 돈을 받아 나오는 길에 탁발하는 스님이 외는 경 소리를 들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

이 구절에 이르러 홀연히 마음을 깨우친 그는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 외는 경이 무슨 경입니까?"

"금강경이라네."

"그 경을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나는 이 경을 황매현 동선사에서 구했다네. 그 절에서는 오조() 홍인()대사가 교화하고 계신데, 제자만 해도 천 명이 넘지. 이 금강경을 잘 읽고 실천하면 견성성불()하게 된다기에 나도 열심히 독송하고 있는 중이라네."

이 말을 들은 혜능은 구도심에 불타, 어머님의 허락을 받고 출가하였다. 집을 떠나 황매산을 찾은 그가 홍인대사를 뵙고 예배를 드리자, 대사가 물었다.

"너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저는 영남 신주에 사는 백성이온데, 멀리까지 와서 스님을 뵙고자 함은 오직 부처님이 되기만을 구해서입니다."

"너는 영남 사람이니 오랑캐가 아니냐? 어떻게 네가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이냐?"

"사람에게는 비록 남북이 있사오나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나이까? 오랑캐인 제가 비록 스님과 같지 않겠지만, 불성에 무슨 차별이 있겠나이까?"

"오랑캐인 주제에 제법 똑똑한 체하는구나. 후원에 가서 일이나 하여라."

"제가 생각하기에, 제 마음 스스로 항상 지혜를 내어 본성품에서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을 짓는 일이라 여겨지는데 다시 무슨 일을 하라 하십니까?"

"어허, 아는 소리 말고 방앗간에 가서 방아나 찧도록 하여라."

그 날부터 혜능은 후원에서 장작을 패고 방아를 찧었다. 여덟 달이 다 지난 어느 날, 홍인대사가 방앗간에 들러 돌을 짊어지고 방아를 찧는 혜능에게 말했다.

"내 너의 견해가 쓸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악한 이들이 너를 해칠까 걱정되어 일부러 너를 찾아 얘기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느냐?"

"예, 제자도 스님의 뜻을 짐작하고 있었나이다."

이 일이 있은 뒤, 홍인대사는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하였다.

"죽고 사는 일이 가장 큰일인데, 겨우 복이나 닦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너희들은 이제 스스로의 지혜를 살펴 자기 본심인 반야의 성품을 가지고 각자 게송을 하나씩 지어 오너라. 만일 큰뜻을 깨우친 사람이 있으면, 발우와 가사를 전하여 제6대 조사로 삼으리라."

그때에 제자들은 누구나 수제자인 신수()가 오조 홍인대사의 의발을 전수받아 육조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신수는 고심 끝에 게송을 지어 대중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이름도 밝히지 않고 붙여놓았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 ()
마음은 밝은 거울 ()
언제나 털고 닦아 ()
먼지 묻지 않도록 하리." (使)

홍인대사는 이 게송을 보고는, "이 게송에 의지하여 도를 닦으면 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요, 큰 이익이 있으리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고, 조용히 신수를 불렀다.

"이 게송을 보니 너는 아직 본성을 알지 못하였구나. 다만 문 밖에 이르렀을 뿐이요, 아직 문 안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한 견해로는 무상대도를 구한다 해도 얻지 못할 것이니, 더욱 수행에 힘쓰거라."

그렇지만 모든 대중은 신수의 게송을 자랑스레 외고 다녔다. 한 사미승이 외는 소리를 우연히 들은 혜능은 사미승에게 게송이 적혀 있는 곳으로 데려다달라고 청했다. 게송 앞에 선 혜능은 정중하게 절하고 말했다.

"내가 배운 게 없어 글자를 모르니 누가 좀 읽어주시오."

그 청을 들은 옆사람이 소리내어 읽어주자, 다 듣고 난 혜능이 말했다.

"저도 또한 한 게송을 지을 테니 받아 적어 주십시오."

혜능의 이 말에, 그곳에 모인 대중들이 우습게 생각하고 쑥덕거리자 혜능이 다시 말했다.

"도를 구하는 사람은 초학자라고 가벼히 여기지 마시오. 초학자에게도 높은 지혜가 있을 수 있고 지혜 있는 사람도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는 법이니, 행자라 하여 가벼이 본다면 한량없는 죄가 될 것입니다."

혜능의 거침없는 말에 대중들은 움찔하고 놀랐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스님이 말했다.

"그대 말이 맞소. 내가 받아 적을 테니 게송을 읊으시오."

혜능은 게송을 불렀다.

"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
밝은 거울 또한 틀에 얽매이지 않은 것 ()
본래에 한 물건도 없거늘 ()
어느 곳에 먼지가 일어나리오." ()

이 게송을 들은 대중들은 모두 놀라며 감탄했다.

"사람은 겉모양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찌 우리가 도인을 몰라보고 일만 부렸던가?"

이때 홍인대사가 다가와 혜능의 게송을 훑어보고는 신발로 문질러 지워버리고는 말했다.

"아직 견성하지 못한 글이다. 가서 일들이나 하거라."

그 다음날, 홍인대사가 몸소 방앗간으로 와서 말했다.

"쌀은 다 찧었느냐?"

"이미 찧은 지는 오래되었사오나, 아직 키질을 못 하였나이다."

이 말을 들은 홍인대사는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치고는 뒷짐을 지고 말 없이 나갔다. 혜능이 그 뜻을 알고 한밤 삼경에 스님을 찾아뵙고 예배하니, 홍인 대사는 둘레를 병풍으로 가리고 「금강경」을 설법하였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쓸지니라"하는 구절에 이르자 혜능은 크게 깨닫고 말씀드렸다.

"어찌 제 성품이 본래 나고 죽지 않음을 알았겠습니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흔들림 없음을 알았겠습니까? 어찌 제 성품이 본래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어찌 성품이 만가지 법을 냄을 알았겠습니까?"

"본성품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유익함이 없고, 제 성품을 알면 그것이 곧 대장부요,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며 부처이니라."

이 말씀과 함께 홍인대사는 부처님으로부터 내려온 가사와 발우를 혜능에게 전했다.

"이제 너는 육조가 되었다. 법을 잘 받들고 널리 중생을 제도하여라. 달마대사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사람들이 믿음이 없었으므로 가사와 발우를 전하여 믿음의 표시로 삼았느니라.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믿음에는 관심이 없고 가사와 발우만을 탐하니, 이후로는 전하지 말도록 하여라. 나쁜 무리들이 너를 해칠까 걱정되는구나."

깊은 맘에 홍인대사로부터 법을 전해받은 육조 혜능은 밤을 도와 강가에 이르러 배를 탔다. 홍인대사가 배웅나와 손수 노를 저어 강을 건네주려 하자, 혜능이 말했다.

"스님, 노는 제가 젓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앉아계십시오."

"아니다. 내가 너를 건네주리라."

"아닙니다. 제가 아는 바가 없을 때에는 스님께서 건네주셔야 했지만, 알고 난 지금은 제 힘으로 건너는 것이 옳습니다. '건넌다'는 말은 하나이오나 그 쓰임은 다른가 하나이다."

"참으로 그렇다. 앞으로 불법이 너로 말미암아 크게 일어나리라. 나는 삼 년이 지나면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너는 되도록 남방으로 가거라. 그리고 때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 불법을 일으키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

혜능은 홍인대사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계속 남쪽을 향해 나아갔다.

법을 전한 홍인대사는 며칠이 지나도록 설법을 하지 않았다. 이를 궁금히 여긴 대중들이 물었다.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있으신지요?"

"아니다. 다만 의발이 남쪽으로 갔을 뿐이다."

이 말을 들은 대중들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혜능에게 전해진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고 수백 명이 쫓아나갔다. 특히 이들 가운데 출가하기 전에 장군의 지위에 있었던 혜명이란 스님이 남보다 더 빠르게 혜능을 쫓아갔다. 바로 뒤까지 쫓아온 혜명을 본 혜능은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가사와 발우는 믿음을 표시한 것인데, 어찌 힘으로 다투려 하는가?"

그러고는 옆의 숲으로 몸을 숨겼다. 혜명이 달려들어 가사와 발우를 가져가려고 했으나 가사와 발우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혜명은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어 혜능이 숨어 있는 숲을 향하여 소리쳤다.

"행자여, 나는 법을 듣기 위해 온 것이지, 가사와 발우를 얻기 위해 온 게 아닙니다."

혜능이 숲에서 나오자, 혜명은 예배하며 설법해주기를 청했다.

"그대가 이미 법을 듣기 위해 왔다면, 모든 번뇌와 망상을 다 버리고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 내 그대를 위하여 설하노니, 착함도 생각하지 않고 악함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이러한 때에 어떤 것이 그대의 참된 면목인가?"

혜명은 이 말을 듣고는 크게 깨달아 환희에 넘쳐 말했다.

"제가 그 동안 오조 문하에 있었으나 실로 제 본래 성품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가르침을 받으니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느껴 아는 것과 같습니다. 행자께서는 이제 저의 스승이십니다."

그 뒤 혜능은 조계산 보림사를 열어 온 중국에 선풍을 크게 드날렸다. 혜능 대에 이르러서 크게 중흥한 선불교는 드디어 우리나라로 전파되어 오늘날 우리 불교계의 중심 뿌리로 자리잡게 된다.

(2) 반야제일게
「금강경」안에는 전체 반야부 경전 내용의 골수를 응축한 네 귀절이 있다고들 말한다. 4구 18자로 된 이 구절은 「금강경」의 핵심은 물론 반야경전 600부 전체의 뜻을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고 해서 '반야제일게()'라 부르기도 하는데, 다음과 같다.

모양으로 있는 모든 것,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이 모든 현상이 모양이 없는 것임을 직관할 줄 알면 곧 부처를 보는 것이요, 마음을 깨친 것이다. ( )

혜능대사가 설한 바, 무상()의 머리와 무주()의 몸과 묘유()의 팔다리를 갖춘 공사상이 한 줄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형상이 다 허망함', 즉 일정한 상이 없음()은 공사상의 기본으로서, 물질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모든 존재하는 것을 본질적으로 허망한 것으로 보아 부정한다. 인연에 따라 그때그때 그 모습으로 생겨나 보여지는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공의 논리를 전개하여 부처님은 아상(), 인상(), 보살의 근거인 중생상(), 나아가 법상()도 없음을 수보리에게 설파하고, 법상이 없다는 이것도 없는 것이라는 부정의 부정까지 전개하여 공사상의 철저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에 따라 어디에 머물 곳이 없음은 당연하다. 머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존재성이나 상황에 집착하게 됨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니까. 성주괴공(), 생주이멸()하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머물지 않음()이야말로 집착을 끊고 참다운 깨달음으로 가는 반야의 법인 것이다.

이러한 부정의 논리를 철저하게 수행함으로써 보살은 집착과 분별심을 버리고 상대적인 유()의 관계가 빚는 현상의 허구성을 부수어 참된 부처의 얼굴, 진리를 볼 수 있는() 것이요, 머무르지 않는 가운데서 마음을 쓸 수 있는( )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강경 [金剛經]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 6. 10., 영담, 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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