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자를 위한 불교예절과 일반상식

중음신(中陰身)

통융 2018. 5. 25. 17:34

중음신(中陰身)


범어와 팔리어 모두 antarā-bhava이다. 중유(中有) 또는 중온(中蘊)이라 하는데 한국에서는 흔히 중음신(中陰身)이라고 부른다.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의 존재로 잠정적인 신체를 의미한다.

사자후보살(師子吼菩薩)이 부처님께 중음신(中陰身)에 대하여 여쭈었을 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선남자야, 자세히 잘 들어라. 내가 그대에게 분별하여 해설하겠다.

선남자야, 사람이 목숨을 버리려고 크게 괴로울 때에 일가친척들이 둘러앉아 울고불고 슬퍼한다.

그 사람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며,
비록 다섯 가지 정(情)이 있으나 감각이 없고, 팔 다리는 떨려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며,
몸은 식어가고 더운 기운은 다하려 하는데, 먼저 닦아 익혔던 선과 악의 과보를 보게 된다.

선남자야, 해가 지려 할 때에는 산이나 언덕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나타나고,

서쪽으로 기울어질 이치가 없는 것처럼 중생의 업과 과보도 그와 같아서 이 5음이 없어질 때에 저 5음이 계속하여 생긴다.

마치 등불이 켜지면 어둠이 없어지고, 등불이 꺼지면 어둠이 나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밀랍으로 만든 인[蠟印]을 인주[泥]에 찍으면 인과 인주가 합하였다가 인은 없어지고 글씨가 생기는데,

밀랍으로 만든 인이 변하여서 인주에 있지도 않고 글씨가 인주에서 나오지도 않으며,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고 밀랍으로 만든 인의 인연으로 글씨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의 5음이 없어지면 중음신의 5음이 생기는데, 이 현재의 5음이 변하여서 중음신의 5음이 되지도 않고,

중음신의 5음이 스스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현재의 5음을 인해서 중음의 5음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밀랍으로 만든 인을 인주에 찍으면, 인이 망가지면서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아서

이름은 비록 차별이 없으나 시절이 제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중음신의 5음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고, 천안(天眼)이라야 본다고 한다.

 

이 중음신에는 세 가지 먹는 것이 있으니,

첫째는 생각으로 먹음[思食]이며, 둘째는 닿아서 먹음[觸食]이며, 셋째는 뜻으로 먹음[意食]이다.

중음신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선한 업의 과보이며, 둘째는 악한 업의 과보이다.

선한 업을 인해서는 선한 알음알이[覺觀]를 얻고, 악한 업을 인해서는 악한 알음알이를 얻는다.
부모가 교접할 때에 업의 인연을 따라서 태에 들게 되는데,
어미에게는 사랑함을 내고 아비에게는 미워함을 내며
아비의 정수가 나올 때에는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고 보고나서 기뻐서 환희한 마음을 낸다.
이 세 가지 번뇌의 인연으로 중음신의 5음이 없어지고 후생(後生)의 5음을 내는 것이
마치 인주에 찍었던 인이 망가지고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다.

태어날 때에 모든 근이 구족하기도 하고 구족하지 못하기도 하며,

구족한  이는 색을 보고 탐심을 내며, 탐심을 내므로 사랑이라 하며, 광란(狂亂)하여 탐심을 내는 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탐애(貪愛)와 무명의 두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는 경계가 모두 뒤바뀌어서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보고,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 보며, 낙이 없는 것을 즐겁다고 보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고 본다.

네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선한 행과 악한 행을 짓는데,

번뇌는 업을 짓고 업은 번뇌를 짓는 것을 속박이라고 하며 이런 뜻으로 5음이 생긴다고 한다.

 

이 사람이 만일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나 선지식을 친근히 하면 문득 12부경을 듣게 되고,

법문을 들었으므로 선한 경계를 관찰하고, 선한 경계를 관찰하므로 큰 지혜를 얻고,

지혜를 얻은 이는 바른 지견[正知見]이라고 한다.

바른 지견을 얻었으므로 생사 중에서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뉘우치는 마음을 내었으므로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고,

즐거움을 내지 않으므로 탐심을 깨뜨리고, 탐심을 깨뜨렸으므로 8성도를 닦고, 8성도를 닦으므로 생사가 없어지고,

생사가 없어지므로 해탈을 얻었다고 한다.

불이 섶을 만나지 못한 것을 꺼졌다고 하는 것과 같다.

생사를 멸하였으므로 멸도(滅度)라고 하니, 이런 뜻으로 5음이 멸하였다고 한다.”

 

불교의 생사관에 따르면 새로운 존재의 탄생은 반드시 세 가지 성립을 필요로 한다. 즉 부모의 성행위와 여성의 가임기, 그리고 일종의 업식(業識)의 존재로 중음신이 그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유는 사유(四有) 가운데 하나로 사유는 생유(生有)·본유(本有)·사유(死有)·중유(中有)를 말하며, 여기서 유(有)는 바로 ‘존재’를 의미한다. 생유(生有)는 태어남의 순간을, 본유(本有)는 태어남의 시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사유(死有)는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중유(中有)는 사유부터 생유까지의 존재 기간을 말한다. 중유는 부모의 정혈(精血)이 아닌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하여 의성(意成)이라고도 하며, 항상 즐거움을 구하기 때문에 구생(求生)이라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향을 먹고 산다고 하여 식향신(食香身)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중음신의 기원은 불교 이전의 인도 신화와 관련이 있는데 건달바(健達婆, gandharva)가 그것이다.

건달바는 음악의 신으로 알려졌는데 향기를 먹는 신이며 향을 찾아가는 신이라 하여 심향(尋香)이나 심향행(尋香行)이라 칭해지기도 한다. 또한 중음신은 뜻으로 생기고 뜻으로 이루어진 의생신(意生身) 또는 의성신(意成身)이라고도 한다.

중음신의 신체는 미세한 물질로 보통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중유 또는 중음신의 기간은 불교 부파마다 다르게 설명하지만 7·7일 즉 49일을 만중음(滿中陰)이라 하여 최대 기간으로 본다.

현재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십구재(四十九齋)[칠칠재(7·7재, 七七齋)]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 의례로서 중음신에서 비롯한다.

불교 부파 가운데는 중음신을 인정하지 않는 부파도 있었는데 이들 부파의 주장에 따르면 중생은 죽으면 바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설일체유부의 주장 가운데는 중생이 죽어 다음 생을 받기까지 최대 49일 동안 중음신의 상태로 머문다고 한다. 이러한 생사관은 동아시아 불교는 물론 티벳불교에 수용되었다.

중생은 죽으면 업력에 따라 다음 생명으로 옮겨간다. 이 때 동력은 성적 욕망으로 설명하며, 중유에서 다음 존재로 생이 결정되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즉 중음신은 자신의 업력에 따라 공간적으로 먼 곳도 곧바로 연결된다고 한다.

자신의 부모가 될 인연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 또는 암컷과 수컷이 만나서 교합하는 것을 보면 마치 중음신 자신이 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켜 교합하려는 성적 욕망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때 남자로 태어날 중음신이라면 여성이 욕망의 대상이 되고 남성은 미움을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여자로 태어날 중음신은 반대로 남성을 성적욕망의 대상으로 그리고 여성에 미움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 두 남녀, 또는 암컷과 수컷은 각각 정혈(精血)을 낼 때 중음신이 모태에 정착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에 중음신은 소멸되고 새로운 결생(結生)으로 생유(生有)가 시작된다.

        

최대 49일을 말하는 중음신은 본래 설일체유부의 교설이다.

그리고 대승불교에 수용되어 대승권인 우리나라 불교의 모든 종파는 중음신에 바탕한 칠칠재(七七齋) 또는 사십구재를 종교의례로 행하고 있다. 천도(薦度)의식은 바로 죽은 사람이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7일마다 불교 경전을 독송하고 공양을 올린다. 우리나라에 중음신과 관련한 천도의식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라나 고려 때 이미 천도의식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조선에서부터는 사십구재 형식으로 천도재가 행해졌음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때문에 현재 이러한 천도의식은 불교를 넘어 민간이나 무교(巫敎)에서조차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사후 의례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


<백과사전 및 자료>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나이를 물으면 ‘원 나이’와 ‘만 나이’를 나누어 답한다. 예를 들어 “원 나이는 서른이지만 만으로는 스물아홉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만 나이’는 어머니 몸 밖으로 나온 날, 즉 생일날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으로 계산하고, ‘원 나이’는 햇수로 계산하기에, 일반적으로 ‘만 나이’로 계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출현한 시기를 어머니의 자궁 속에 수태된 때로 잡으면 열 달의 임신 기간을 합산해야 하기에 ‘만 나이’가 아니라 ‘원 나이’가 옳다.

불전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도 현생의 시작은 생일날이 아니라 수태의 순간이다. 모든 생명체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을 세분하면 수(受: 느낌), 상(想, 생각), 행(行, 의지), 식(識, 마음)이 되며 여기에 몸인 색(色)을 합한 것이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五蘊)이다.

오온은 ‘쌓임’를 의미하는 범어 스칸다(skandha)의 번역어로 구역에서는 오음(五陰)이라고 번역하였다. 죽는 순간의 오음을 사음(死陰), 탄생하는 순간의 오음을 생음(生陰), 사망 후 탄생하기 전까지 중간 단계의 오음을 중음(中陰)이라고 한다. 티베트에서는 중음의 삶을 ‘바르도(bardo)’라고 부른다. ‘사망과 탄생의 둘(do) 사이(bar)’라는 뜻이다.

중음이란 소위 귀신이다. 불교의 부파 가운데 설일체유부에서는 중음을 인정하지만 상좌부의 논서에서는 중음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부파간의 이런 이견(異見)에 근거하여 중음의 존재 여부에 대해 학문적으로 논란을 벌이긴 하지만, 중음을 육도윤회의 세계 가운데 아귀도(餓鬼道)의 일부로 볼 경우 양측의 이견은 회통된다.

예를 들어 인간으로 살다가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가 짐승으로 태어날 경우 상좌부에서는 ‘인간→ 아귀→ 짐승’으로 보는데 설일체유부에서는 동일한 과정을 ‘인간→ 중음→ 짐승’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우리가 죽으면 이런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다가, 남녀 또는 암수가 성교하는 장면을 보고서 음심을 내어 수정란에 부착한다고 한다. ‘아버지의 정(精), 어머니의 혈(血), 그리고 중음신’의 삼자가 화합해서 수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의 중음신을 간다르바(gandharva) 또는 식(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음신은 전생에 지었던 업의 씨앗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젊은 남녀가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수태의 순간이다. 임신 후 태교도 중요하고, 출산 후 영유아기의 영양과 교육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태의 순간에 ‘훌륭한 중음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불전의 가르침에 의하면 태교를 통해서 태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태아가 모체와 집안 분위기를 변화시킨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중음신이 자궁으로 들어왔는가에 따라서 어머니가 변하고 집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지도론>에서는 사리불을 임신한 후 갑자기 총명해진 어머니의 일화를 전하며,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선재동자를 임신하자 그 집안에 여러 가지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다고 쓰고 있다. 따라서 좋은 자손을 두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태교가 아니라 수정의 순간에 좋은 태가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행위가 쾌락의 도구로 전락하고, 낙태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좋은 태가 들어오기를 부부가 함께 발원하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께 기도를 올리는 불교의식, 즉 입태기도(入胎祈禱) 의식이 새롭게 창출되어도 좋을 것이다.

[불교신문 2769호/ 11월19일자]

김성철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