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참선 수행 종류와 요건
1) 수행의 종류
⓵ 사마타(samatha)-지(止)수행
⓶ 위빠사나(vipassanā)-관(觀)수행
⓷ 조사선(祖師禪)-직지인심(直指人心)
⓸ 간화선(看話禪),공안선(公案禪) 화두선(話頭禪) … 참구적(參究的)
⓹ 묵조선(默照禪) … 의지적(意志的)
⓺ 염불선(念佛禪) … 지, 정, 의(知, 情, 意)의 조화적(調和的) 간화선 수행
⓵ 사마타(samatha)-지(止)수행
사마타 수행은 멈춤(止. 선정) 수행으로 무엇을 멈추는가하면, 감각적 쾌락, 악의, 혼침과 게으름, 들뜸과 회한, 회의적 의심이라는 다섯 장애에 휩쓸리는 것을 멈추고 마음에 번뇌가 없는 심청정을 얻는 수행이다.
일상생활이나 수행 중에 현재를 놓치게 하고 마음이 과거 미래로 달리면서 우리를 번뇌에 휩쓸리게 하는 것이 이 다섯 가지 장애이다. 이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번뇌에 휘둘리게 된다. 이 다섯 장애는 매 순간 여섯 감각기관이 촉하는 대상에 대하여 일어나는 내 자신 속의 탐진치의 마음의 작용이며 사마타 수행은 이 다섯 장애를 우선 멈추게 해서 마음에 번뇌가 없게 한다.
사마타 수행은 불, 법, 승, 자비희사, 죽음에 대한 명상, 10가지 까씨나(원판), 몸의 부정(不淨)함 등등으로 40가지 사마타 수행의 대상이 있다.
이 중에서 수행자가 한 가지 수행 주제를 스승으로부터 선택받아 오직 그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면 어떤 원리로 다섯 장애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청정해질까?
그 기전은 한 순간에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만 아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래서 수행자가 선정수행의 주제인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 번뇌가 일어날 틈이 없다. 그래서 수행자의 마음이 고요함, 안정, 평온, 집중 등의 상태에 도달하여 번뇌가 없는 행복을 느낀다. 이것을 색계 1선정이라고 한다. 색계 선정으로 마음에 번뇌가 없는 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고 한다. 결론은 사마타 수행은 마음의 안정, 고요함, 집중을 얻는 수행이다.
우리가 염불을 할 때 염불삼매에 빠지면, 지금 관하는 부처님의 상(想. 관념. 빤냐띠)이라는 대상에 오직 마음을 모아 깊은 집중(근본 삼매)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염불수행으로 얻는 것은 마음의 집중, 고요함, 평온이다. 그러나 이 선정력은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깨진다. 그럼 다시 번뇌가 일어난다.
⓶ 위빠사나(vipassanā)-관(觀)수행
* 위빠사나 수행은 관(觀. 통찰. 지혜)수행이다. 무엇을 관하는가 하면 현재의 몸과 마음(오온)이다. 그래서 오온의 고유한 특성과 조건적 특성과 일반적 특성(무상, 고, 무아)을 통찰하는 수행이다. 즉, 수행자가 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정신적 현상에 대하여 어떤 번뇌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을 하여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수행이다.
위빠사나 수행법으로 얻는 해탈은 모든 번뇌(탐진치)를 지혜로 해탈한다 해서 혜해탈(慧解脫)이라고 한다.
위빠사나는 붓다가 찾아내시고 싳런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하신 수행법이다. 붓다가 출현하기 전에는 세간의 모든 수행법은 다 사마타 수행이다.
부처님께서도 처음 출가하셔서 그 시대에 있는 모든 수행법을 다 해보셨다. 그것은 모두 사마타 수행이었다.
처음에는 색계 선정 수행을 하시고, 6년간 고행을 하시고도, 번뇌를 해결하지 못해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받으시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세세생생 동안 쌓으신 바라밀 공덕이 완전하게 무르익어서 스스로 스승없이 위빠사나라는 위없는 수행법을 찾아내셨다.
그리고 일체를 통찰하신 위빠사나의 지혜로 모든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는 누진통을 얻으시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셨다. 이 순간 부처님은 아라한과 동시에 붓다가 되신 것이다.
이렇게 수행자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처음에는 오온의 고유한 특성과 조건적 특성을 알고, 더욱 발전하여 오온의 무상, 고, 무아를 체험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열반을 얻는 데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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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사마타를 닦고 색계 선정상태에서 위빠사나로 넘어와서 열반에 이르는 방법
2) 먼저 위빠사나 수행을 하다가 마지막에 깊은 집중으로 사마타 수행을 해서 열반에 이르는 방법
3) 먼저 사마타를 닦고, 위빠사나를 닦고, 다시 그 다음 단계의 사마타를 닦고, 그 다음 단계의 위빠사나를 닦는 방법으로, 두 수행법을 병행하여 열반에 이르는 방법.
4) 처음부터 사마타 수행 없이 위빠사나 수행으로 열반에 이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순수 위빠사나라고 한다.
1)과 3)의 경우는 사마타 수행으로 마음에 다섯 장애가 없는 사마디(집중. 선정) 상태에서는 현재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가 쉽고 그래서 오온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할 수 있다.
이것은 사마타 수행을 먼저 닦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넘어와 수행대상과 집중방법을 달리하여 그 결과로 정(定)에서 혜(慧)를 얻는 것이다. 이런 수행방법으로 해탈에 이르신 분은 심해탈과 혜해탈을 다 구족하신 분으로 양면 해탈이라고 한다.
4)의 수행법은 순수 위빠사나 수행으로, 사마타 수행단계가 없으므로 처음 수행을 할 때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섯 장애들과 부딪친다. 그러면 이 다섯 장애를 다 알아차릴 대상인 법으로 받아들여 반응하지 않고 그들의 성품을 본다. 그들은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가 알아차림이라는 조건에 의해 소멸한다는 법의 성질을 본다.
이렇게 다섯 장애를 친구삼아 스승삼아 알아차려가다 보면 알아차리는 힘이 쌓이고, 그래서 매사에 탐진치를 덜 일으키고, 그 결과로 마음의 안정과 오온의 생멸을 볼 수 있는 힘을 기른다.
위빠사나는 오직 현재의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이 쌍으로 생멸하면서 이어지는 찰나 삼매(찰나집중)를 유지하여 다섯 장애를 극복한다. 그런 뒤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12처를 알아차리고, 7각지를 알아차리고 8정도 사성제를 알아차려 열반에 이른다. 이렇게 4)의 방법으로 열반에 이른 경우에는 혜해탈자라고 부른다.
사마타 수행이나 위빠사나 수행이나 처음에는 모두 다섯 장애가 일어나므로 그들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단 극복을 하면 선정을 얻거나, 지혜를 얻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마하시 방법은 사마타 수행 없이 처음부터 위빠사나 수행으로 시작하는 순수 위빠사나 방법으로 지도한다.
이 방법이 현대 생활에 잘 접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모두 알아차릴 대상이고, 법
이며, 생활 속에서 번뇌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키우는 수행법이 4)번의 순수 위빠사나라고 생각한다.
사마타 수행으로 일정 수준의 선정력을 얻으려면 오직 자신의 수행 주제에 집중만 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출가 수행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염불, 간경, 절, 100일 기도 등등은 모두 사마타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대상에 깊이 몰입하는 집중을 하여 마음의 안정을 얻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염불참선을 통해 선정을 얻고 깨달음을 얻는 공덕도 있다.
이미 기도나 염불로 집중력이 있는 분들이 마음을 열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시면 쉽게 자신의 탐진치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래서 탐진치를 놓는 법을 알게 되며, 또 알아차림으로 몸과 마음의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확인할 수 있어 위빠사나의 지혜가 더 빨리 나타날 수 있다.
또 한가지 사마타 수행으로 얻은 마음의 고요는 일상에서 잘 깨지지만,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얻은 지혜는 일상에서도 그 힘을 발휘하여 번뇌로부터 막아준다.
위빠사나의 지혜는 자기가 닦은 만큼의 항상 자기를 따라다니며 수행자를 번뇌로부터 보호한다. 그래서 위빠사나의 통찰 지혜만이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는 부처님의 대념처경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
a,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차이점
첫째 수행대상이 다르다.
두째 대상에 집중하는 방법이 다르다.
세째 수행으로 얻는 결과가 다르다.
사마타 수행의 대상은 관념(想)이다. 그리고 대상과 하나가 되는 깊은 집중을 한다. 그래서 얻는 것이 마음의 안정. 심청정(心淸淨)이다. 그리고 수행의 과보는 색계(色界)천상이나 무색계(無色界) 천상으로 윤회(輪廻)한다.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은 현재의 오온(五蘊)이다. 그리고 대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분리해서 보는 찰나 집중(集中)을 한다. 그래서 얻는 것이 통찰(通察) 지혜(知慧)이다. 그리고 수행의 과보는 윤회를 벗어나는 완전한 열반(涅槃)이다.
⓷ 조사선(祖師禪)
불립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을 표방하는 육조(六祖) 혜능(慧能) 하의 남종계의 선, 즉 남종선(南宗禪)을 말한다. 마조(馬祖)의 즉심시불(卽心是佛)과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는 조사선의 기본 사상이 되며, 임제(臨濟)에 이르러 조사선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이 조사선은 일반적으로 중국선(中國禪)을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이고 있는데
달마대사-육조 혜능에 의해 완성, ‘本來成佛’을 근간으로 스승과 제자간의 선문답을 통해 ‘참 나’를 찾아가는 수행법, 頓悟의 가치를 최초로 표방, 북방불교 선수행의 원류
⓸ 간화선(看話禪),공안선(公案禪) 화두선(話頭禪) … 참구적(參究的)
간화선(看話禪) 또는 공안선(公案禪)은 공안(公案)을 공부하고 이를 화두(話頭)로 하여 본성을 구명하려 하는 선(禪)이다. 간(看)이란 본다는 뜻이며, 화(話)는 화두를 말한다. 화두란 '말 보다 앞서 있는 것' 또는 '언어 이전의 소식'이란 뜻이며, 공안이란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는 방법'이란 뜻이다.《제행무행경》에 이르기를, "부처는 보리도 보지 않고 또한 불법도 보지 않나니,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불도를 이룬다" 하였다. 초조(初祖)인 보리달마(菩提達摩) 이래 중국의 선종은 인도의 선정(禪定)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양식의 수행법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곧바로 자기의 마음으로 향하여 그 본성을 보아 불타를 이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는 것이다. 보리달마 이후 오조(五祖) 홍인(弘忍)에 이르기까지는 단일한 계보로 이어왔으나, 이후 점수(漸修)를 주장하는 신수(神秀)의 북종선과 돈오를 주장하는 혜능(慧能)의 남종선으로 분파되었다.
간화선은 남돈선에서 파생한 것이며 남송(南宋) 초기, 임제종(臨濟宗)의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는 묵조선(默照禪:화두를 갖지 않은 채 모든 생각을 끊고 행하는 참선법)과 이전의 선행(禪行)에 대한 비판 위에서 간화선을 주창하였다.
대혜는 그러한 간화선을 조주(趙州)의 ‘무(無)’ 자 화두를 통해 가르쳤고, 우리나라는 고려의 지눌(知訥)이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였다.
지눌의 사상은 선(禪)과 교(敎)가 복합된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그는 ≪간화결의론 看話決疑論≫을 통하여 간화선사상을 천명하였다. ≪간화결의론≫에서 선과 교의 대비를 통해 간화선의 우수함을 말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 라 선의 사상적 맥락이 되고 있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원류를 제시하였다. 지눌은 활구 화두로서, 특히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중요시하였고, 이 무자 화두는 불덩어리 같아 불법의 알음알이와 나쁜 지식을 파하는 연장이라고 하였다.
오직 활구를 참구할 때만 깨달음은 보장되어 있다고 본 것이며, 말 가운데 말이 없으면 활구이고, 말 가운데 말이 있으면 사구(死句)라고 규정지었다. 즉, 지눌은 ‘무’자를 들어 공부하되 간절한 의정(疑情:의심)을 끌고 나갈 뿐, 어떤 정식(情識:알음알이)에 빠져서도 안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활구를 참구할 것이며 사구를 참구하지 말라. 활구에서 깨달으면 영겁토록 잊지 않고 사구에 빠지면 자신조차 구하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간화선을 들어 공부하는 길에는 참의문(參意門)과 참구문(參句門)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참다운 공부를 하는 사람은 마땅히 참구문에 의지해야 할 것이나 근기가 하열한 관행자(觀行者)에게는 참의를 거쳐 참구에 들어가라고 가르쳤다. 참의는 화두를 참구함에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이며, 참구는 생각을 초월하여 철저히 사무침을 말한다.
지눌의 간화선은 그의 제자 혜심(慧諶)에 의해 계승, 발전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혜심은 <구자무불성화간병론 狗子無佛性話揀病論>을 지어 간화선을 더욱 깊이 있게 펴나갔다. 지눌이 삼문(三門)을 열어 선·교를 융섭하려 한 데 대해 혜심은 오로지 간화선법에 주력하였다. 따라서 간화선은 혜심에 의해 더욱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혜심은 간화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십종병(十種病)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여 공부하는 사람을 가르치고 있으며, 조선 초기의 지엄(智儼)은 간화선을 확립시켰다.
그 뒤 휴정(休靜)은 ≪선가귀감≫에서 간화선을 경절문사상(徑截門思想)과 일치시켰으며, 그러한 맥은 근대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경허(鏡虛)와 만공(滿空), 그리고 현재의 선원(禪院)에서도 그 전통을 잇고 있다.
우리 나라의 선 수행자들은 간화선을 삶과 지혜의 으뜸가는 목표로 삼고 있으며, 간화선을 통한 활구참선이야말로 최상의 근기(根機:깨달을 수 있는 능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위없는 대도(大道)로 보고 있다.
선(禪)수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깨달음은 수단이며 목적이 될 수 없다. 한마디로 행복 추구이고 생사해탈이다.
⓹ 묵조선(默照禪) … 의지적(意志的)
'묵'은 침묵한 채 마음을 오롯하게 하여 좌선(坐禪)하는 것을 뜻하며, '조'는 지혜로써 본래 깨끗한 마음의 성품을 비추어보는 것을 뜻한다. 실상(實相)은 무상의 상(相)이고, 진심(眞心)은 무심(無心)의 심(心)이며, 진득(眞得)은 무득(無得)의 득(得)이고, 진용(眞用)은 무용의 용(用)이라고 하여, 굳건하게 자리를 정하고 앉아 모든 잡생각을 비워버리는 태도로 침묵한 채 고요히 비추어볼 뿐이며, 반드시 큰 깨달음을 얻는 것을 기약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무소득·무소오(無所悟)의 태도로 좌선할 것을 주장했다.
이 선풍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임제종의 대혜 종고 선사로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으며, 묵조사선(默照邪禪)·무사선(無事禪)·고목사회선이라고 폄칭되었다. 이것은 화두가 없이 그냥 앉아서 자기 마음을 비춰보는 것이다. 어떤 문제도 설정하지 않는다. 묵조선을 하는 분들은 대체로 단전주(丹田住)라, 아랫배에 힘을 두고서 공부를 한다.
굉지정각 선사 창시, 曹洞宗에 의해 일본으로 전파되어 일본 禪불교의 가풍으로 정립, 坐禪 자체를 깨달음의 행위로 강조
⓺ 염불선(念佛禪) … 지, 정, 의(知, 情, 意)의 조화적(調和的) 수행
영명연수 선사 체계화, 염불과 수행을 함께 닦는 수행법
참다운 염불이 '자기 마음의 본바탕이,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다 또한 동시에 우주가 바로 부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염불이 바로 염불선이다.
셋째는 가르쳐 주는 선지식이니 내외방편과 선정의 법문으로 가르쳐 이익되게 하는 분이다. 모든 수행에 선지식이 필수적이지만 특히 참선수행에서는 선지식이 더욱 중요하다. 만공스님은 그 이유를 "이 법은 언어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한 곳에서 발견되는 도리라. 다만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응답으로 상속하는 법으로 선지식의 직접 가르침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도리다." 라고 말씀하셨다
※<위의 내용 중에 일부는 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의 책과 법문 등 자료를 참고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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