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 보기/시란?

문열면 밝은세상(시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깨달음의 결정체이다.)

통융 2011. 2. 18. 22:56

시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깨달음의 결정체이다.

kds11002 통융
2008.04.25 09:32  네이버 오픈백과 지식등제글
조회
138
*시란 언어의 능력을 잘 갖춘 자들 간의 영혼(정신)적 유희이다.
*인간 지식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시란 지식(識見)의 산물(學文)이 아니라 깨달음(禪,道)의 결정체(本性)다.----- 詩는 우주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본성을 깨달지 못하면 인간의 식견을 나열하는 소리(聲)일 뿐이다. 즉 참된 시란 自我性을 배제시킨 本來의 性品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은 聲이 아니라 觀音이다.

이(李)규(圭)보(報)<고려문호>가 쓴 (詩論中徵旨略言)시의 깊은 뜻을 간추려 논함) : 대저 시는 뜻(意)이 중심이 된다. 뜻을 펼치는 것이 더 어렵고 말을 엮는 것은 그 다음이다.
즉 어떻게 쓸까보다 무엇을 쓸까가 먼저다.
뜻(意)은 기(氣)가 중심이며 기(氣)의 우열에 따라 시가 깊어지기도 하고 얕아 지기도 한다.
"기(氣)는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배워서 얻을 수 없다."
기(氣)의 공부는 - 양(養)기(氣)-구(求)방(放)심(心):제멋대로 방심을 막고>-모(母)자(自)기(欺):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의 수양에 힘쓴다.

시에는 아홉 가지의 마땅치 않는 체가 있다.( 한유는 사(詞)필(必)기(己)출(出):반드시 자기목소리를 내라는 뜻. 진(陳)언(言)지(之)무(務)거(去):남이쓴 말을 쓰는 것을 꺼리라는 뜻. 두보는 어(語)불(不)경(驚)인(人)사(死)불(不)휴(休):말이 사람을 놀래 키지 못하면 죽어서도 그만두지 않겠다.

우리는 왜 시를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 하느냐는....

시는 말의 전달이기 전에 영혼의 울림이다.
말이라는 것은 사람들간의 의사 소통을 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 수단으로 우리 인류의 역사는 오늘날과 같은 발전을 했다.
그런 말의 소리를 문자나 기호로 표현되어 다양한 장르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전달 수단이 말과 글이나 그림 등의 소수의 매체인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의
문명은 아직 많은 거듭남이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면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 같은 다차원을 나타내고 표현해 줄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겨우 영적이라는 수단의 말로 행위로 뜻을 전달하려고 하나 그 뜻이 바르게 전달되기가 무척 힘드는 사실이다.
融대사(융)는" 눈먼 개가 우거진 띠 잎을 보고 짓자 눈먼 소경은 도둑이라 외쳤으니 이는 소리 따라 헛갈리게 되었으니 진실로 눈으로 見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처럼 자칫 자신의 편견이 많은 사람에게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人이 人으로 생각이나 의사를 전달해야 하니까 방편의 수단으로 최소한의 말을 사용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런 전재에서 시의 세계를 접근해 보겠다.
하이쿠를 서양에 소개하는데 큰공을 세운 사람인 영국의 R.H 브라이스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를 따르지 않고 예수를 따른 것은 예수가 시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무지함을 일깨워 주었다. 예수-시인이었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갖고 세상을 자세히 보라고 했다.
참 의미 있는 말이라고 본다.
시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겠다. 저는 그런 일반화된 장르의 시에서 벗어난 시의 세계를
설명하고 싶다.
시는 하늘의 소리(인간의 본성)를 선명하게 느끼고 깨닫는 것이다.
보편적인 시는 한마디로 영혼의 울림을 어떻게 짧은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 이나다.
그러면 왜 시는 짧고 선명해야하느냐.
첫째, 말이 많으면 중심이 흩어지기 쉽다. 노자는 "言者不知 知者不言" 이라 했다 즉 이야기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둘째, 말이란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이나 주관이 개입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논어에는 교언영색은 인이 드물다. 라고 했다.
셋째, 시는 최상의 하늘의 울림(자연의 소리)이기에 최소한의 인간의 영적 소리로 전달되어야 자연에 가깝다. 고려 문호인 이규보는 (詩論中徵旨略言)시의 깊은 뜻을 간추려 논함)에서 대저 시는 뜻(意)이 중심이 된다. 뜻을 펼치는 것이 더 어렵고 말을 엮는 것은 그 다음이다.
넷째, 시는 설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타냄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이며 찰학자인 CD루이스는"자연 그대로의 뜻을 풀어보고 받아들일 때 스스로 자생되어 울어 나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잘된 시란 ?

시로 독립되어 질 때
나의 시가, 누구의 시가 아니라 객관화된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게 된다.
즉 그림이나 그 무엇들 모두가 완전한 세계를 형성할 때는 주관자의 손을 떠나서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존립하게 된다.
잘된 글이란/ 나의 가치관에서 분별되고 설정되어졌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갖을 때는 새로운 개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글 쓴 자는 필요 없게 된다.
지극히 객관적이며 공통의 사변일 때 이것이 잘된 글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글을 보면서 객관화된 글인가 아닌가를 검증할 때 개인의 감정이나 식견으로 그것이 참인 냥 분별 할 때는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과 넉두리일 뿐이고 객관화된 글이 되지 못한다.
엘리어트는 "시는 개인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감추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객관화 시켜 가는데는 나를 공통화 시키는 것이며 나도 객관적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있다는 것과 내가 주관자가 아니라 그가 주관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하며 서로교통하는 하나가 되어있는 眞我의 깨달음에 이르면 잘 된 시를 나눌 수 있게되는 것이다.
출처
[직접서술]


'시와 산문 보기 > 시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作 공부  (0) 2016.05.30
시란 무엇인가?  (0) 2011.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