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運命)과 명리학
운명은 한문자를 풀이하면 타고난 기운과 시절인연인 만남(運)에 의해 살아가는 목숨(命)이다.
불교에서는 인과법(因果法)으로 전생(前生)에 업연(業緣)으로 만들어진 것이 운명이라 한다.
업이란 우리의 살다가 죽으면 육신은 소멸되고 의식중에서도 안이비설신의인 6식과
말라식인 7식은 살아지고 무의식인 제8아뢰야식(카르마)이 남아서 된 것이다.
이 업(業)이 자신의 업장(業障)의 정도에 따라 육도윤회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혼불멸설에서 주장하는 영혼과는 다르다.
그러한 업장이 깨달음을 통해 소멸되면 본래의 청청한 성품으로 돌아가는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한다.
즉 불교는 윤회를 인정하지만 그 업을 끊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해탈(解脫)인 열반(涅槃)이라 한다.
부모로 부터 태어나기 전에(부모미생전) 본래 면목(佛性)인 본성이다.
이렇게 업의 윤회(因果)로 태어난 운명을 업소생(業所生)이라 한다.
그러면 업소생인 인간의 운명(運命)은 어떻게 나타날까?
업소생은 마음에 분별(分別)심이 만든 아뢰야식이고
이 심의식(心意識)은 각기 다른 기운인 지수화풍의 대화(對化)작용으로 만든 결과물인 업장이
사주팔자라는 것이다.
이 생에 태어 날 때 우주정신인 음양오행(5運6氣)의 기운의 조화와 시절인연법의 작용성(作用性)으로 만들어 진다.
우리 인간은 태어난 목적과 이유가 있고 결국 가야할 도달점이 있는데 이는 인간 본성품(本性品)인 불성(佛性),신성(神性),우주정신(宇宙精神)의 자리에 가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회귀반본(回歸返本-완전한 자리에 듬)하기 위해서 태어날 때 하늘지도인 인생네비계이션을 찍어놓고 열심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풍류(風流)명리학 이라고 한다.
명리학(命理學)에서는 이것이 각자가 타고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로 정의한다.
사주팔자(四柱八字)란 각자가 태어난 생년월일시(年月日時)가 사주(四柱) 즉 네 개의 기두이고,
각 주(柱)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운인 천간(天干), 지지(地支)의 글자 두 자씩을 나열해서 8자를 만드는데
이것을 4주(柱)에 8자(字)라는 뜻이다.
즉 내가 태어나기 전인 과거 모든 삶이 모여서 사주팔자를 만들어졌고
그 인과에 과보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결국 사주라는 것이 이러한 지난날의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인 업연이기 때문에 사주는 절대 부정 할 수 없고 쌍둥이 처럼 같은 사주를 타고나도 시간, 조건이나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없다.
이렇게 타고난 사주 팔자를 바꿀 수 있느냐?
물론 이미 지나온 사주 즉 삶이 싫다고 지워버리고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왜냐면 운명은 전생의 업(業)에 의해서 결경되어 태어나지만 시절인연(의지)을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미래의 과(果)보(報)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를 아는 순간부터 운명은 바꿔 갈 수 있다.
이것이 명리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인과(因果)의 인연법이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이치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든 행(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결과의 과보(果報)가 업장인 것이다.
전생(前生)이라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만 전생이 아니라 어제도 나에게 전생이고 십년 전도 전생이다.
그러면 결국 오늘은 내일의 전생이 되는 것이다.
현생을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를 현생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현생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찰나 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현생이란 오직 지금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순간들 뿐이다.
내생이란 지금을 기준으로 미래는 모두가 내생이 된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내일은 오늘한 일로 어떤 결과나 일이 벌어지고 진행된다.
결국 우리는 지난날의 일(業)이 모여서 오늘 내가 만들어지고 오늘의 일이 또 내일을 만든다.
이것이 인과법의 원리이다.
사주팔자를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연기의 인과의 법을 확실히 알고
내가 누구인지? 알면 바꿀 수 있다.
모든 것을 결과론으로 보지 말고 미래론으로 봐야 한다.
과거는 그랬어도 오늘 내가 어떻게 계획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일은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이 세상은 내가 주인공으로 세상을 창조하고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주를 통해 미래의 운에 어떤 장애가 있는지를 미리 안다면 바뀌가면 된다.
즉 운전수가 장애물을 보고도 충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애물을 비켜가던지 충돌하더라도 미리 방어하기 때문에 최대한 후유증을 줄일 것이다.
이렇듯이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길이 보인다면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 갈 수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그져 운명에 마낀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관조한다면
길에 장애물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시절인연법 대로 진행될 것이다.
명리학은 지식적으로 운명을 판단하고 점치는 학문이 아니다.
자신의 전생을 확실히 알게하고 미래의 삶을 어떻게 바꿔 갈 것인가를 안내하는 심리의술이다.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게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활인도이다.
불법도 정법을 알지 못하고 전달하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듯
모든 지식은 바르게 알고 전하면 모두가 사람을 살리는 진리가 된다.
보조국사의 계초심학인문에 나오는
사음수성도 우음수성유(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 같은 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
지학성보리 우학성생사 (智學成菩提 愚學成生死) 지혜로운 배움은 깨침이 되고 어리석은 이의 배움은 생사를 이룬다.
즉 같은 법이라도 어떻게 배우고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 되고 죽이는 살인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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