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4과와 42장경

불설42장경(佛說四十二章經)

통융 2022. 12. 21. 15:41

불설42장경(佛說四十二章經)

 

선가(禪家)에서는 근본불교의 사상을 대변하는 <유교경> <<위산경책>과 더불어 불조삼경(佛祖三經)’의 하나로 꼽는다. 그만큼 불교의 핵심적인 교리를 잘 아우르고 있어 입문서로도 널리 애독됐다.

 

A.D 67년경 인도의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당시의 황제인 효명제(孝明帝)의 보호 아래 번역한 중국 최초의 한역경전으로, 불교의 근본정신을 잘 담고 있어 이본(異本)도 약 10여종에 이른다.

 

이 경전은 아함의 내용을 가장 많이 담고 있으며, 잡아함이나 <법구경>과도 같은 경집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고(무상(無常무아(無我애욕의 단절 등 자기 다스림뿐만 아니라, 자비와 인욕의 실천, 보시의 권장과 참회의 강조 등 대승적인 요소들도 모두 갖추고 있어 매우 교훈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42장경은 AD67년 한왕조 때 불교가 들어오자, 황제의 명에 의하여 그 근본 교리를 집약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이 경은 동방 한문문화권에만 존재한다.

 

인도에는 이 경전이 없다. 그러므로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의 이 경전은 없다. 불교의 방대한 경전을 황제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집약된 이 경전은 매우 단순하고 심오하고 완벽하다. 이 경은 다른 대부분의 경전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논어와 같은 형태, ‘...붓다께서 말씀하셨다.’.로 시작한다.

전문

【전문】

   (1)

   -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사 -

   - 의문마다 일일이 깨우치게 하시니 -

 

   (서)

   世尊成道已 作是思惟

   離欲寂靜 是最爲勝

   住大禪定 降諸魔道

   於鹿野苑中 轉四諦法輪

   度교陳如等五人 而證道果

   復有比丘 所說諸疑 求佛進止

   世尊敎勅 一一開悟

   合掌敬諾 而順尊勅

 

   세존께서는 진리를 깨치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모든 욕심을 여의어 고요하고 고요하니 이것이 가장 으뜸이로다.’세존께서는 대선정에 들어 모든 마구니도를 항복 받으시고는 녹야원에서 사성제의 법륜을 굴리시어 교진여 등 다섯 비구를 제도하시니 이들이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비구들이 여러 의문점에 대해 다시 물어옴에 세존께서는 법을 설하사 의문마다 일일이 깨우치게 하시니 그들이 모두 합장하고 경건히 받들어 세존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망으로 부터 자유로워지고 고요해지는 것

   이것이 가장 훌륭한 길이다.

 

    부모를 떠나 출가하고

   마음을 이해하여 근원에 도달하며

   형상 없는 법(法)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사문이라 한다.

 

   계율을 잘 지키고

   행위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으며

   성자의 결실에 이르기 위해 정진하는 사람들을

   아라한 이라 한다.

 

   그 밑은 아나함 이다

   이번 생이 끝날 때

   아나함의 영혼은 천상계로 올라가

   아라한과를 성취한다.

 

   그 밑이 사다함 이다

   사다함은 천상계에 오른 후

   한 번 더 지상에 돌아와서

   아라한과를 성취한다.

 

   그 밑은 수다원

   수다원은 일곱 번 죽고

   일곱 번 태어난 후

   마침내 아라한 과를 도달한다.

   욕망이 단절된 사람은

   수족이 끊어진 것과 같아서

   다시는 그 욕망을 쓰지 못한다.

 

   (2)

   - “허물 있는데 스스로 뉘우치지 않으면 -

   - 그 죄과는 어김없이 제몸에 돌아오니”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집 없는 사문은 욕망을 끊어서

   집착에서 자유롭다

   자기 마음의 근원을 이해하고

   붓다의 가장 깊은 가르침을 통찰하여

   형상 없는 법을 이해한다.

 

   안으로 편견을 가지지 않으며

   밖으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다.

   도에도 얽매이지 않고

   도에도 짓지 않는다.

   편견도 작위도 없고

   수행도 깨달음도 없으며

   여러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가장 높으니

   이를 이름하여 도(道)라 한다.

 

   (3)

   - 악한 사람이 고의로 어지럽게 해도 -

   - 그대는 성내거나 꾸짖으려 말라.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문이 되어

   도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세속의 모든 재물을 버리고

   남에게 빌려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의 식사를 하고

   한 나무 밑에서는

   하루 이상 머물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어리석고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것은

   집착과 탐욕이기 때문이다.

 

   (4)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중생은 열 가지 착한 일을 하고 열 가지 악한 일을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몸으로 셋, 입으로 넷, 생각으로 셋이 있다.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악은 살생·절도·음행이다.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악은 이간질·험담·거짓말·속이는 말이다.

   생각으로 짓는 세 가지 악은 질투·성냄·어리석음이다.

   이 열 가지는 성스러운 도에 거슬리는 것이라 십악행이라 한다.

   만약 이 열 가지 악행을 그치면 그것이 십선행이 된다.’

 

   (5)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많은 허물이 있는데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면

   그 죄과는 어김없이 제 몸에 돌아오는 것이니

   이는 마치 강물이 바다에 모여

   점점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다.

 

   많은 잘못을 범한 사람이

   스스로 잘못됨을 알아 잘못을 고치고 선을 행하면

   업보가 저절로 소멸하게 되니

   마치 환자가 땀을 흘리고 점점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

 

   (6)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악한 사람이 착한 이를 찾아와 

   고의로  악의에 찬 욕을 하더라도

   참고 견디며 그에게 화내거나 꾸짖으려 하지 말라.

   악한 사람은 남을 욕함으로써

   그는 스스로 악행을 했을 뿐이다.’

 

   (7)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내가 도를 지켜 자비를 행한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 나를 비난했다

   그러나 내가 침묵했더니

   욕하기를 그쳤다.’

 

   그때 내가 그에게 물었다

   만일 그대가 이웃에게 선물을 가지고 갔으나

   그가 그것을 받지 않는다면

   그 선물은 다시 그대에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지금 그대가 나를 욕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 욕은 그대 자신에게 한 것이다.

   그것은 메아리가 소리를 따르고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다.

   그대는 스스로 범한 죄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8)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악한 자가 어진 이를 해치는 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침을 뱉으면

   하늘에 닿지 않고

   제 얼굴에 떨어지는 것과 같고

 

   악한 자는 또

   바람을 거슬러 먼지를 터는 사람과 같다.

   그 먼지는 곧 자기를 더럽히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상처받지 않으며

   악담은 악한 사람 스스로를 파괴한다.’

 

   (9)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널리 듣고 배우는 것만으로 도를 이루려고 애쓰면

   도를 깨우치기가 어렵고

   가슴으로 도를 지키면

   참으로 큰 깨우침이 도이다.’

 

   (10)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도를 행하는 걸 보고 기뻐하는 사람은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문이 물었다.

   ‘이 복에 다함이 있습니까?’

 

   ‘비유하자면 하나의 횃불과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다른 홰에

   불을 나누어 붙이는 것과 같다.

   그들은 그것으로 밥을 짓고 어둠을 밝히나

   원래의 횃불은 항상 변함없이 타고 있다.

   도의 복도 이와 같은 것이다.’

 

   (11)

   - 마음에 티끌없어 이를 지키면 -

   - 지극한 도를 깨우칠 수 있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명의 선한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악한 사람  백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오계를 지키는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선한사람 천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수다원에게 공양하는 것이

   오계를 지키는 사람 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사다함에게 공양하는 것이

   수다원 백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아나함에게 공양하는 것이

   사다함 천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아라한에게 공양하는 것이

   아나함 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벽지불에게 공양하는 것이

   아라한 십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한 명의 삼세제불에게 공양하는 것이

   벽지불 백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지식과 치우침, 수련, 깨달음을 넘어선 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것이

   삼세제불 천억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12)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스무 가지의 어려운 일들이 있다.

 

   1. 가난한 자가 보시하기 어렵고

   2. 강하고 부유한자가 도를 배우기 어려우며

   3. 목숨을 버리고 확실하게 죽기 어렵고

   4. 오직 소수의 복 받은 사람들만이 부처님의 경전을 얻어 볼 수 있으며

   5. 부처님이 계실 때 세상에 태어나는 것.

   6. 성욕을 극복하고 욕심을 참기 어렵다.

   7. 좋은 것을 보고 탐내지 않기 어렵고

   8. 모욕을 당하고 화내지 않기 어려우며

   9.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남을 억누르지 않기 어렵다.

  10. 일을 만나서 순수한 마음을 갖기 어렵고

  11. 널리 배우고 연구하기 어려우며

  12. 아만심을 멸하기 어렵다

  13. 배우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지 않기 어렵고

  14. 아는 것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은 어렵다

  15. 타인을 대하여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렵다

  16.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17. 깨달음을 얻고 도<道>를 실천하기 어려우며

  18. 구도자의 길을 따르기가 어렵다.

  19. 항상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존재하기 어렵고

  20. 부처님의 길을<방편을 두루 통달>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13)

   한 사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숙명통을 얻고

   지극한 도<최상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마음에 티끌이 없어<순수한 마음> 이를 지키면

   지극한 도를<최상의 진리> 깨우칠 수 있다.

   비유하자면 거울을 닦아

   때를 벗기면 본래의 밝음만 있는 것 같이

   욕심을 끊고 구하는 바가 없으면

   마땅히 숙명통을 얻게 될 것이다.’

 

   (14)

   - 팔정도 따르며 참됨 지키는게 선(禪) -

   - 애욕에 뒤엉키면 도를 알 수 없다. -

 

   한 사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참된 것이고 무엇이 위대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참된 것은 도를<팔정도> 실천하고 진리를 따르는 것이고

   위대한 것은 뜻과 도가 하나 되니 높고 크리라.’

 

   (15)

   한 사문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가장 강한 것이고 무엇이 가장 밝은<지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온유함<인욕>이 가장 강한 것이다.

   악한 생각을 품지 않으므로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하다.

   온유한 사람은 악한 마음이 없으므로

   반드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가장 밝은<지혜> 것은

   마음의 때가 깨끗이 사라져

   순수함이 변함없고 흠 없이 지속되는 마음이다.

   그러한 마음은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시<十>방에 있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함이 없고 듣지 못함이 없으며,

   일체지를 얻었기 때문에

   가장 밝은 지혜라 한다.’

 

   (16)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道를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손으로 맑은 물을 휘저으면

   사람들이 와서 아무리 얼굴을 비춰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욕망으로 얽히어 애타는 마음은 불순하여

   절대로 도를 볼 수 없다.

 

   그러니 사문들이여, 욕망을 버려라.

   욕망의 먼지가 사라지면

   도는 스스로 드러날 것이다.

 

   (17)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도를 안다는 것은

   비유하여 횃불을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면 어둠이 사라져

   밝아지는 것과 같다.

   도를 배워 진리를 알면

   무명은 곧 사라져 항시

   밝은 지혜만 있게 된다.’

 

   (18)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가르치는 이 법은

   얽매이는 생각 없이 생각하며 얽매이는 의도 없이 행하고

   얽매이는 뜻 없이 말하고 얻는다는 생각 없이 닦는 것이다.

   이를 아는 자는 가까이 이를 수 있고 미혹한 자는 아득하리라.

   말로 이를 수 없고 경계마다 걸림이 없으니

   티끌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찰나간에 길을 잃고 만다.’

 

   (19)

   - 향이 다 타고나면 재가 되는것처럼 -

   - 오욕칠정 따라 명성 구해도 허깨비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지만물을 보되 영원치 않다 생각하고

   세상만사를 보되 영원치 않다 생각하며

   소소영영한 이 당처가 곧 보리임을 관하라.

   이와 같이 늘 안다면 도에 이름이 빠를 것이다.’

 

   (20)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몸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가

   제각기 이름만 있을 뿐

   자아는 없다고 생각하라.

   ‘나’라고 할 것이 없으니 허깨비 같을 뿐이로다.’

 

   (21)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오욕칠정<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명성과 명예를 구하지만

   그것들을 얻었을 때는

   몸은 이미 늙어 있다.

   세상의 명성만을 좆고

   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그대의 수고는 헛되이 되고

   기운만 낭비할 분이다.

   그것은 마치 타고 있는 향나무와 같다.

   향내가 좋다고 아무리 감탄을 받아도

   계속해서 향이 타고 나면

   나무는 없어지고 재가 되는 것 같이 그 향기의 뒤끝인 것이다.

 

   (22)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마치 칼날에 묻은 꿀은 한 번 먹을 양도 못 되지만

   어린아이가 이를 핥다가 혀를 베이게 되는 것과 같다.’

 

   (23)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가족과 재물에 얽매이는 것은

   감옥에 있는 것보다 더 난감하니

   죄수는 풀려날 때가 있지만

   가장은 가족의 끈에서 벗어날 생각을 품지 않는다.

   사람이 애욕에 눈을 뜰 때는

   아무것도 그의 타락을 막을 수 없다.

   그는 호랑이의 목구멍에라도 뛰어들 것이다.

   스스로 애욕의 진흙 속에 빠지는 이들을 범부라 한다.

   이 문을 뚫고 티끌세계를 뛰쳐나와야 아라한인 것이다.

 

   (24)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색정보다 심한 애욕은 없다.

   애욕은 가장 강한 열정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더 강한 것이 하나 있다.

   진리에 대한 갈망이 애욕보다 약하다면

   세상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나

   바른 도를 따를 수 있겠는가?’

 

   (25)

   - 그대 뜻은 가히 믿을 게 못 된다. -

   - 아라한이 되었다면 믿어도 좋다.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애욕에 빠진 사람은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것과 같아

   반드시 손을 데일 화가 있다.’

 

   (26)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천신이 부처님에게 아름다운 선녀를 보내어

   부처님의 뜻을 깨뜨리려 하자 부처님께서 말했다.

 

   물러가거라! 오물로 가득 찬 가죽 주머니가 와서 어쩌자는 것이냐?

 

    그러자 천신이 공손하게 절하고 도의 본질에 대해 물었다.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해주니 천신은 수다원과를 얻었다.

 

   (27)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를 따르는 사람은

   물결 따라 흘러가는

   나무토막처럼 움직요야 한다.

   양쪽 언덕에 닿지 않고

   사람에게 붙잡히지 않고

   신들에게 가로막히지도 않으며

   소용돌이에 머물지 않고

   썩지도 않는 나무는

   마침내 바다에 도달하리라.

   도를 배우는 사람이

   정욕에 유혹되지 않고

   사악한 일에 휘말리지 않고

   정진하여 함이 업는 곳에 이르면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리라.

 

   (28)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뜻을 믿으려 하지 말라.

   그대의 뜻은 가히 믿을게 못된다.

   삼가 색과 어울리려 하지 말라.

   색을 가까이 하면 화가 닥친다.

   이미 아라한이 되었다면 그대의 뜻을 믿어도 좋다.’

 

   (29)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색을 보지 말고 또 함께 말을 나누는 걸 삼가라.

   만약 말을 하게 되면 바른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사문이 되어 혼탁한 세상에 처해서도 마땅히 저 연꽃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으리라’해야 한다.

   그 여인이 늙었거든 어머니 같이, 손위 어른이거든 누님같이, 손아래거든 여동생 같이,

   어린애거든 자식같이 생각해서 제도할 마음을 갖는다면 나쁜 생각이 사라질 것이다.’

 

   (30)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도를 닦는 사람은 마른풀을 짊어진 것과 같다.

   모름지기 불을 피해야 하듯이

   제 마음자리에서 욕심이 이는것을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31)

   - 애욕 좇으니 근심걱정 생긴다. -

   - 애욕 여의면 무엇이 두려우랴.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음욕이 그치지 않음을 걱정해서 자기 음경을 끊으려 했다.

   그때 내가 이르기를, 음경을 끊음이 마음을 끊는 것만 못하다.

   마음이란 저 관청과 같아서 관청이 쉬면 종사자들도 쉰다.

   그런데 사악한 마음은 그치지 않고 음경만 끊는다고 무슨 도움이 있겠느냐?’고 했다.

   부처님이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욕망은 그대 마음에서 일어나고 그 마음은 사량 분별에서 일어나니

   그 두 마음이 적정하면 색도 색이 아니고 또한 행도 행이 아니다.

   이 게송은 가섭불께서 하신 것이니라.’

 

   (32)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애욕을 좇으니 근심걱정이 생기고 근심걱정을 좇아 두려움이 생긴다.

   만약 애욕을 여의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이 두려우랴.’

 

   (33)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도를 닦는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어떤 한 사람이 만인과 싸우는 것과 같다.

   갑옷을 입고 성문을 나섰는데 혹은 겁을 먹기도 하고 혹은 중도에 물러설 수도 있고,

   맞붙어 싸워 죽을 수도 있고 혹은 이겨서 돌아올 수도 있다.

   사문이 도를 배우는 것도 마땅히 마음을 굳게 다져 먹고 부지런히 용맹정진하라.

   다가서는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아 온갖 마구니를 쳐부수어야 도과를 얻게 된다.’

 

   (34)

   한 사문이 밤에 가섭불의 유교경을 외우는데 그 독경 소리가 슬프고 마음의 애달픔 때문에 수행을 후회하는 생각을 내는 듯이 들렸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묻기를

   ‘그대는 집에 있을 때 무슨 일을 했는가?’

   ‘거문고를 즐겼습니다.’

   ‘줄이 느슨하면 어떻든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줄을 아주 조이면 어떻든가?’

   ‘끊어지고 맙니다.’

   ‘줄을 아주 조이지도 느슨하지도 않으면 어떻든가?’

   ‘여러 음이 고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문이 도를 배움도 또한 그러하다.

   마음이 만약 고르고 알맞으면 도를 이룰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칠게 몰아치면 수행으로 몸이 피로해질 것이다.

   몸이 피곤해지면 마음에 번뇌가 일고 마음이 괴로우면 수행도 퇴보할 것이다.

   수행이 퇴보하면 반드시 죄업이 더해질 것이니

   오직 심신을 청정 안락케 해야 도를 잃지 않게된다.’

 

   (35)

   - 쇠를 벼릴 때 찌꺼기 제거하듯 -

   - 마음의 때 버려야 수행이 청정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쇠를 단련할 때 불에 녹이고 망치로 때려 찌꺼기를 제거하고

   그릇을 만들어야  깔끔하고 결이 고운 그릇이 되듯이

   도를 배우는 사람도 마음의 번뇌를 없애야  

   그  수행이 곧 청정하니 불과를 이루리라.’

 

   (36)

   - 아홉 가지 경계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삼악도를 벗어나 이 몸 받기가 어렵다.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도 남자 되기 어렵고

   남자로 태어났더라도 육근을 온전히 갖추기가 어렵다.

 

   육근을 갖춰 났더라도 좋은 나라에 태어나기 어렵고

   좋은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부처님 세상 만나기 어렵다.

   이미 부처님 세상에 태어났더라도 도를 만나기 어렵고

 

    이미 도를 만났다 해도 신심을 내기 어렵다.

   신심을 냈더라도 보리심 일으키기 어렵다.

   보리심을 일으켰더라도 무심의도<心印> 이루기가 어렵다.’

 

   (37)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여, 나에게서 수천 리 먼 곳에 떨어졌어도

   내가 설한 계율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긴다면 반드시 깨달음의 열매 얻으리라.

   그러나 내 좌우에 있어서 항상 나를 볼 수 있을 지라도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끝내 도를 이루지 못하리라.’

 

   (38)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 목숨은 얼마간에 있느냐?’

   한 사문이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대는 아직 도를 모른다.’

   하시고 다른 사문에게 똑같이 물으셨다.

 

   ‘사람 목숨은 얼마간에 있느냐?’

   한 사문이 ‘밥 먹는 사이’ 라고 답하자

   부처님께서 ‘그대도 아직 도를 모른다.’

   하시고 다른 사문께 다시 물으셨다.

 

   한 사문이 ‘호흡 지간에 있습니다.’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그대는 도를 알았구나.’ 하셨다.

 

    (39)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도를 배우는 이는 내가 말한 법을 모두 잘 믿고 따라야 한다.

   비유하자면 꿀을 먹는 것과 같아서 중간에도 끝에도 모두 다 맛이  단 것처럼

   내가 설한 경전도 또한 그러하다.’

 

   (40)

   몸은 비록 도 행하나

   마음이 따르지 않으니

   무슨 쓸모 있겠는가.

 

   사문은 마땅히

   오로지 도만 생각해야

   고통을 면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문이 팔정도를 따름에 있어 저 맷돌 돌리는 소와 같아서는 안 된다.

   몸은 비록 도를 행하나 마음이 도를 따르지 않으니 무슨 쓸모 있겠는가.

   만약 마음으로부터 도를 행한다면

   따로 무슨 도를 행할 것이 있겠는가.’

 

   (41)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도를 닦는다는 것은 마치 소가 무거운 짐을 지고 진흙 밭을 걷는 것과 같다.

   처음엔 피로가 극에 달해 좌우를 둘러볼 겨를조차 없다가 진흙 밭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고서야

   비로소 한 숨을 돌리는 것과 같다.

   사문도 마땅히 오욕칠정을 저 진흙밭보다 더 심한 것으로 보아

   오로지 곧은 마음으로 도만을 생각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42)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왕후의 자리를 햇살 위를 떠다니는 티끌로 보며,

   금은보화를 기와 조각이나 돌멩이처럼 무심히 본다.

   나는 하얀 비단으로 짠 옷을 다 떨어진 누더기로 본다.

   나는 삼천 대천 세계도 한 알의 겨자씨 속의 작은 일로 본다.

   나는 청량한 저 아욕지<阿耨池>의 물도 발에 바르는 기름방울로 본다.

   나는 붓다들이 방편으로 가르친 문(門)을

   상상으로 만든 보배로 본다.

 

   나는 위 없는 도리를 꿈에 본 금과 천으로 본다.

   나는 붓다들의 가르침을 눈앞의 허공꽃으로 본다.

   나는 니르바나를 밤낮으로 깨어 있는 것으로 본다.

   나는 삿되고 바름을 여섯 마리 용(龍)의 춤으로 본다.

   나는 평등의 가르침을 진실의 땅으로 본다.

   나는 중생교화를 사철나무같이 여긴다.’

   이에 대 비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 봉행하였다.

<출처 : 재봉틀의 국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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