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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고 싶은 데로 태어나는 불교

통융 2022. 12. 1. 09:15

불교는 연기법을 말하고

연기법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다.

우리의 중생심은 연기법에 따라 이숙생하는 인연생 인연멸 하여

뿌린 대로 거두지만

참 진리인 연기작용성을 바로 깨닫는다면

부처의 삶으로 스스로 원하는 데로 바뀐다.

 

일반 중생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업인 카르마에 의해서 태어나기 때문에

자신이 쌓은 습관 대로 선인락과 악인고과로 태어난다.

이것을 이숙(異熟, 비파카) 다르게 이음으로 전생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과보를

다음 생이나 현생에 몸과 마음을 받는 것으로 이숙과(異熟果) ,이숙생(異熟生)이라 한다.

또 하나는 명언종자로 등류습기(等流習氣)인 같은 흐름으로 선인선과 악인악과로 태어나는 업이 있다.

 

내가 있어서 특정 한 곳이나, 특정 대상으로 신의 나라인 천국이니 혹은 극락이니

정해진 천상의 곳에 나타나는 삶 즉, 유아의 업연으로 시공간에 특정되어 이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중도 사상인 불교는 내가 없는 무아로 참 연기작용의 진리에 깨어 있는 부처, 대자유인, 우주 등

삼세불급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쌓은 업에 따라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불교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데로 태어날 수 있다.

이것은 원생(願生)이라 한다.

 

이것이 불교의 위대한 점이다.

불교는 자아성불이고 자타가 불이이기 때문에 그러함이다.

 

깨달음이란 참 진리에 하나되는 나툼이다.

몸과 마음에 끄달려 습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즉 무아로 행하되 행함이 없이

오직 지금 나타나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고 깨어 있음이다.

 

물론 불교에서 말한 미래니 현재니 과거니 하는 것은 이름 뿐이 것이고

불국토니 극락정토도 죽은 후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살아가는 곳이 정토이고 그렇게 깨어서 념념상속으로 알아차림하는 삶이면

미래 생도 늘 지금으로 이어지는 것이 불교의 사상이다.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의 괴로움을 참지 말고

오직 지금의 즐거움을 깨달아 미래까지 즐겁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