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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수행과 위빠사나 알아차림 수행과의 관계

통융 2022. 6. 24. 09:54

 

화두를 참구하여 수행하는 간화선법이나

위빠사나의 알아차림 수행법은 방법이나 이름이 다를 뿐

내용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화두와 알아차림은 같습니까 다름니까?

화두는 화두고 알아차림은 알아차림이다.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이는 화두는 무엇인가?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것이다.(언어도단)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알아차림은 무엇입니까?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것이다.(있는그대로)

 

화두와 알차차림은 수행에 들어가는 모양새는 다른 것 같지만

나타난 결과는 같다.

 

두 수행법은 불교에만 있는 수행법으로

직관의 알아차림은 부처님이 초기불교 수행법인 위빠사나 수행법이라면

화두는 동아시아 대승불교에서 발달한  간화선 수행방법이다.

 

깨달음은 본래 하나의 진리( 연기작용)를

지금 일어나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기 때문에 다를 수가 없다.

 

화두는 알아차림의 핵심으로

대상 즉 화두를 하나 들고  골똘하게 참구하는 것이 화두다.

 

화두도 조사들의 주고 받는 1700여 가지의 공안만이 아니라

자신이 진리에 대한 질문이나 설명에 의심이 생겨  깊이 골똘하게 되면 화두가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화두는 부처님 초전법륜인이다.

녹야원에서 부처님이 5명의 수행자 앞에서 최초법문인 중도 정등각을 설법하셨다.

 

그러자 수행자가 질문 했다.

중도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부처님이 초전법륜 수인을 해 보이셨다. 

이것이 최초의 화두이다. 

 

그 참 중도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지만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자.

 

중도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설법한 것이

4성제와 8정도이다. 

 

그 분별하는 의심이 해결되면 본래 그대로가 진리임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 사람에게는  번뇌 즉 보리라고 삶이 전부가 화두인 샘이다.

 

알아차림은 관법이다.(실지실견)

늘 지금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견성성불)

 

화두는 화두 외에 나타난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이 수행이라면

알아차림은 매 순간 순간을 일어나 있는 그대로를 직관하는 것이다.

 

화두 참선이 직지인심으로 심요의 마음을 곧 바로 알아차림 즉 즉견여래라면

알아차림은 실지실견으로 직관하는 견성성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직관 혹은 선정과 명상은 다르다. 

현대 마음수행의 모든 것을 명상(冥想 meditation)으로 설명하지만

 

직관,선정은 일어나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위빠사나라면

명상은 일어나는 모든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집중하는 사마타 수행과 흡사하다.

 

예를 들어 컵에 흙탕물을 담아 놓고 고요하게 하면 흙탕물이 깔아앉아 맑은 물이 된다.

하지만 다시 흔들어 버리면 흙탕물이 되는데 이것이 일반 명상이다.

 

선정은 컵에 흙탕물이 맑든 아니면 흙탕물이 그대로 있든 그 자체

즉 일어나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매 순간순간을 

생각을 좇아 가느냐 아니면 깨어서 알아차림하는 것이냐의 차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삼매를 통해서 선정에 든다.

삼매와 선정은 한 몸이기는 하지만 조금 다르다.

 

삼매는 대상을 집중하여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라면

선정은 모든 일어난 대상을 알아차리는 상태다.

 

명상은 삼매에 들때와 삼매에서 벗어나면 달라진다.

즉 삼매를 즐기는 자라고 부처님이 표현한다.

 

화두나 알아차림의 선정은 활발발하지만

처음과 중간과 끝이 같은 것이다. 성성적적하다고 한다.

 

요즘 몸과 마음의 힐링을 위해서

많이 하는 수행법들이 대부분 삼매를 목적으로 하는 명상 수행법에 그치나

 

불교수행의 방법들을 접목해서 마음챙김, 혹은 걷기명상,  호흡명상 등의

알아차림 명상 수행법이 많이 이루어 지고 있어 다행이다.

 

참된 선정으로 깨어 있는 명상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