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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覺說理) 타령에 대한 유래

통융 2022. 5. 5. 17:45

<각설이(覺說理) 타령에 대한 유래>

 

 각설이를 한문으로 쓰면 각설이(覺說理)가 된다.

각설이의 각()'깨달을 각()'자이고, ()'말씀설()' 이며, ()'이치리()' 이다. 이를 풀이하면 "깨달음을 전하는 말로서 이치를 알려 준다"라는 뜻이며, 한마디로 미개한 민중들에게 세상 이치를 알려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설이의 뿌리는 대승불교 혹은 밀교의 흥망성쇠와 스님들의 거리에서의 포교 혹은 만행과 깊은 연관이 있다. 1,400여 년 전에도 거리에서의 참선즉 저잣거리에서 온갖 기행을 일삼으며 만행(漫行)을 한 3인의 스님들인 대안대사와 혜공대사, 원효대사이다.

 

삼국유사 원효장(元曉章), 대각국사 문집, 송고승전 4집 원효전 등에 따르면 신라의 대안대사(571~644)는 괴이한 옷차림을 하고서 항상 저잣거리에서 구리 밥그릇을 두드리며 동발무(銅鉢舞)를 추고 두루두루 편안하라라는 뜻의 대안(大安) 대안을 외치고 다녔다.

 

혜공대사(惠空, 632-646)는 자주 술에 취한 채 삼태기를 지고 거리에서 노래와 춤을 추어 사람들이 그를 부궤화상(負櫃和尙)이라 불렀다.

 

  원효대사는 요석공주와 하룻밤의 인연 관계로 스스로 파계승이 되어 거지들과 함께 민중으로 들어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면서 무애춤을 추었는데 이 무애가가 바로 각설이 타령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거리에서 술에 취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를 무애무와 무애권선가라고 부른다, 원효대사의 무애권선가는 빈부계급의 문제를 타령의 주요 화제로 이끌어 가는 품바타령과 의미뿐만 아니라 가사의 맥락에서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헐벗고 배고픈 이, 옷과 밥을 주었으라/ 앓는 이 구안하고 약한 이 도와주니/ 모두 보시행이로다/ 재물이 없다 한들 몸조차 없을 건가

성인은 그 누구며 범부는 그 누구냐/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한 마음으로 나툰 중생 불() 아닌 이 어디 잇나/ () 할제 범부러니 깨달으니 불이로다

어허 기쁜지고 지화자 좋을시고/ 법고 둥둥 울려 한바탕 춤을 추자/ 니누나누 늴리리/

나무아미타불

 

 각설이 타령의 가사를 살펴보면 얼씨구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얼씨구는 얼의 씨를 구한다는 의미라 하고 얼은 순우리말로 영혼을 뜻으로 얼씨는 불교에서 말하는 우리의 본래 성품인 불성 마음자리를 말한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이는 얼의 씨가 들어간다는 것은 본래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즉 우리의 본래 성품을 알아차림으로 깨달음이다. 내가 깨달아 간다는 말이다. 모든 행위는 그 자체가 있는 그대로 일 때 깨달음이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 ()"

참 진리는 늘 지금 여기에서 나타나 있기에 영원하여 죽지도 않고 돌고 돌아온다는 뜻이다.

우리가 바른 깨달음으로 삶을 살면 죽지도 않고 다시 태어나기에 늘 이웃을 배려하고 베풀며 덕()을 쌓는 참다운 인간으로 살아라! 하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우리 민족에게는 간난아이에게 까꿍(覺宮)하는 것이나, 도리도리(道理道理), 잼잼 등 모두가 참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행의 한 방편으로 민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민중문화속에 구전으로 전승되어온 불교의 법문들이다.    

따라서 각설이도 참 진리를 노래한 선각자들의 민중문화 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가난한 민초들의 생활 속에서 무애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자신들의 삶의 한탄과 더불어 자신들의 신분을 벗어날 수 있다는 분노와 희망이 함께 어우러진 타령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진리는 누구나가 평등하여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계급이 있는 신분 사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또한 <각설이 타령><장타령>은 각설이 패와 장타령꾼이 다르듯 각기 다른 노래입니다. 각설이는 거지동냥아치로 불리는 걸인과 구별되고, 음악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풍각쟁이, 초라니 패, 광대, 걸립패, 남사당, 사당패 등과 일면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각설이타령>이 겉으로 보여주는 해학(諧謔) 이면에는 유랑(流浪)의 괴로움과 사회적 불평등에 항거하는 분노가 서려 있습니다.

 

 구전 장타령(품바/각설이타령) 가사입니다

얼시구 시구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요놈의 소리가 요래도 천냥 주고 배운 소리/ 한 푼 벌기가 땀난다./ ! 품바가 잘한다./ 네 선생이 누군지 남보다도 잘한다./ 시전 서전 읽었는지 유식하게도 잘한다./ 논어 맹자 읽었는지 대문대문 잘한다./ 냉수동이나 먹었는지 시원시원이 잘한다./ 뜨물통이나 먹었는지 걸직걸직 잘한다./ 기름통이나 먹었는지 미끈미끈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