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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 안에 실제

통융 2022. 3. 14. 11:40

참 마음의 실체(實體)와 실상(實相)은 같은가 다른가?

실체가 작용하여 실상이 되고 실상은 실체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실체와 실상은 같기도하고 다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을 마음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의 원리인 연기작용이라 한다.

 

실체는 모든 실상이 나타나는 작용성으로

어디에도 머물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작용할 때만 나타난다.

이것을 공(空)하다고 한다.

무주(無住)라 한다.

 

실상 또한 실체의 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이기에

나타나 보이기는 하나 한 순간도 머물지 않기 때문에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오직 작용성으로 나타난 현상의 변화일 뿐이다. 

이것을 허상인 가(假)라고 한다.

이것을 제법실상을 여실지견하는 것이다.

무상(無相)이라 한다.

 

제법은 실상이라함은 법의 작용으로 나타난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실체와 실상이 나타나 있는 그대로 쓰여지는 것이 실용(實用)이다.

 

이 실용 또한 한 순간도 머물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것을 중도(中道)라고 한다.

무주상(無住常)이라 한다.

 

그러므로 實體와 實相 實用은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고

따로 분리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연기 작용으로 그 속에 체상용이 동시에 작용한다.

다만 그 성품이나 현상이나 쓰임을 따로 구분해서 설명할 뿐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로

이것을 공가중이 서로 원융하다고 중론의 용수와 천태지의가 설명한다.

 

제법은 무상하고 무주이며 무념인 무아로 보리도를 이뤄

이웃과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불도이다.

 

이것을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이고득락 자비희사라고 한다.

 

이러한 이치를 바로 깨닫는 것이 불도를 이룬다고 한다.

 

깨닫는 방법에는 

공가중의 삼법을 동시에 단박에 깨닫는 것이 돈오라 한다.

언어가 도단이며 불입문자로 직지인심하여 견성성불이라 하고

 

법의 진리를 점차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은 점오라 한다.

문자적인 설명과 해석으로 이해하고 차제의 근기에 따라 깨달아가는 것으로

모든 교학적인 수행과 방법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이치가 한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라 심즉시불이라고 한다.

제법인 연기작용을 마음으로 관하기에 일체 유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음알리인 관념으로 이해하고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금의 실제를 알아차리는 깨어 있음이다.

 

현대적 언어로 불도를 설명할 때

오직 지금 일어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이다.

 

늘 지금을 깨어 알아차리는 상태가

대자유인으로 부처라고 한다.

 

순 우리말로 한다면 참 마음안에 실제는

바른 앎으로 나와 또 다른 나와 더불어 함께 잘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