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부처님은 2654년 전에 우리 중생들의 괴로움을 해결 해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카빌라성에 정반왕과 마야부인의 아들인 태자로 태어나 28살에 출가하여 30살에 깨달음을 얻고 불교라는 종교를 만들고 한 평생을 길에서 명행족으로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펼치시다가 80살에 열반하셨습니다.
태자가 태어나시자 마자 7걸음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를 선언 하셨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진리입니다.
이것을 연기의 진리 인연법이라고 합니다.
너와 내가 둘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만 아니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물 하나 까지를 말합니다. 흔히들 우리끼리, 사상이나 피부가 같은 우리 끼리, 종교가 같은 우리 끼리, 나아가서는 인간과 동물 이렇게 구분하고 나누는 우리 끼리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나 아닌 것이 없다는 진리인 너와내가 하나인 동체대비 사상 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번뇌의 괴로움으로 우리의 삶이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계개고 (三界皆苦)라고 하는데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탐진치의 어리석음입니다.
이러한 괴로움에서 내가, ‘나의 진리가 그대들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이다’. 하는 것이 아당안지(我當安之)입니다.
이러한 진리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진리'를 바로 알아 차리면 우리 삶이 평화로워 집니다. 이것을 중도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 합니다. 괴로움에 벗어나 행복을 얻는 종교라고 합니다.
물론 행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행복하는 것입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까지 행하는 것이 참 불교의 대의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가 중도라고 유식하게 말하는데
중도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생각으로 지금을 늘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성불을 밝히는 것이라 해요. 밤에 등불을 밝히듯이. 밤은 무명이고 알지 못하는 무지라면 그 무지를 깨고 빛은 지혜가 되는 것이지요.
오늘 부처님 탄생일 맞아 단순히 아기부처님의 탄생일로만 생각지 마시고 각자의 무명을 밝히는 날이 되어야 해요.
그런데 혼자서 행복하다고 땡치면 안되겠지요.
오늘 부처님이 오신 이유도, 보살님들이 여기 오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의 등불을 밝혀서 이웃과 함께 평화롭기를요.
함께 나누며 사는 삶 즉 자비희사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살의 삶입니다.
보살이란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자를 말합니다. 여기 오신 모든 부모님은 자식들한테 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조건이 없지요. 자식 사랑은 말이지요, 보살은 원래 깨달음을 수행하는자라고 남자들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분들이 보살을 점령 했어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부처님도 도덕적인 삶을 살고 남에게 많이 보시하라고 했어요. 이것이 시계생천이라고 해요. 보시와 계를 잘 지키면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다는 말이기도 한데, 자업자득이라고 하지요. 뿌린데로 거두는 진리입니다.
나눈다고 하니 많이 가져야 나눈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웃는 얼굴, 남에게 즐겁게 인사하는 말, 어려움을 함께 도우고 불법의 참된 진리를 나누는 것이 최고의 자비입니다. 사섭법(四攝法)이라고 바라밀행이라고 해요.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입니다.
넓은 마음, 친절한 말, 자비의 행동이 나와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이 세상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연은 봄여름가을 겨울로 늘 변하듯이 나도 늘 생노병사로 변한다는 사실을 잊지말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불교는 진리를 외우고 쓰고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 보다는 스스로 진리를 체험하고 실천하는 중요합니다.
불교는 지금 순간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분별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훈련이 불교 수행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다‘라는 것을 가슴 깊이 세겨서 늘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산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세상은 늘 평화로워 집니다. 오늘 이렇게 법등의 불을 밝히듯이 말입니다.
늘 깨어서 함께 행복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