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
혜가 스님이 달마대사에게 물었다.
“도를 얻고자 하면 어떤 수행을 해야 합니까?”
“마음을 관찰하는 한 가지가 모든 수행을 다 포함한다((觀心一法 總攝諸行).”
혜가가 다시 물었다.
“어째서 마음 관찰이 모든 수행을 다 포함합니까?”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므로, 모든 행위가 마음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으면 만 가지 수행을 다 갖추는 것이다. 모든 현상이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밖에 따로 구할 도(道)가 있다면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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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빳사나 수행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① 몸에 대한 알아차림(kāyānupassana)
②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vedanānupassana)
③ 마음에 대한 알아차림(cittānupassana)
④ 법에 대한 알아차림(dhammānuppasana)
위빳사나 수행 이전에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사마타 수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① 호흡 관찰(ānāpānassati)
② 까시나(kasina) 명상
③ 염불(buddhānussati)
④ 자애관(metta)
⑤ 사대요소(4 dhātu)에 대한 명상
사마타 수행 이전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계율을 청정하게 닦을 수도 있습니다.
① 5계
② 8계
③ 10계
당신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청정행을 닦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호흡을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깊은 삼매를 얻기 위해 10가지 까시나 중 하나를 닦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붓다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위해 염불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분노와 불만족, 짜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애관을 닦을 수도 있습니다.
몸의 무상을 관찰하기 위해 사대요소에 대한 명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느낌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거나, 마음의 대상(법)을 집중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는 경전을 읽고 붓다의 가르침을 깊이 사유할 수도 있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는 초보자는 이렇게 순차적인 수행을 하고 원할지도 모릅니다.
먼저 계를 청정히 하고, 다음에 호흡에 집중하는 수행을 통해 집중력을 기르고,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자애관을 닦고, 그러고 나서 위빠사나 수행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들어가서도 처음부터 마음을 중점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관찰하다가 마음에 끌려가버려 사띠를 놓쳐버리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습니다.
몸에 느낌이 있을 때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대상이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올 때,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몸과 느낌과 마음을 동시에 보는 것을 온몸으로 사띠를 챙긴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행초기에는 몸을 주로 보기도 하지만 마음이 고요해지면 마음을 주로 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보고 있으면 대상도 함께 알 수 있고, 그 대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작용도 동시에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보고 있으면 몸과 느낌도 함께 알 수 있고, 몸과 느낌으로 인해 일어나는 마음작용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보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생각들, 번뇌들, 번뇌의 원인들을 모두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세상을 인식하고, 마음이 세상을 창조합니다.
마음을 관찰하고 있으면 ‘나의 정체성, 자의식, 나라는 생각, 존재감, 관념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념들과 ‘나’라는 생각이 어떻게 동일시가 이루어지는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수행이 무르익으면 사마디와 사띠가 계속 유지됩니다.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어, 온갖 번뇌가 다 떨어져 나가고 고요함이 유지될 때는, 마음을 관찰하는 것보다 사띠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렇게 마음 하나를 관찰하면 모든 수행이 이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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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게송 36번 주석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제따와나에 계실 때, 아누뿝빠라는 비구가 있었습니다.
그가 출가하자, 은사스님은 그에게 심오한 아비담마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이렇게 하면 합당하고, 저렇게 하면 합당하지 않다.”
계율을 가르치는 계사 스님은 그에게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이렇게 하면 계율에 맞고 저렇게 하면 계율에 맞지 않는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그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 출가생활이 정말 힘든 일이구나!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기 위해 출가했는데, 여기서는 손을 뻗고 기지개를 펼 여유조차 없구나. 차라리 세속으로 돌아가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낫겠다.”
출가생활에 불만이 쌓여가자, 그의 몸은 삐쩍 말라가고 바짝 야위어갔습니다.
도반들이 왜 그러는지 묻자 그는 솔직하게 출가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도반들은 그를 붓다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여, 너는 한 가지만 지킬 수 있다면, 나머지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부처님이시여,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지켜볼 수 있겠느냐?”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 마음 한 가지만 지켜보도록 하라.”
출처- 카페/법구경 이야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