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참선반

영가 현각 선사

통융 2019. 12. 25. 20:20

영가현각(永嘉玄覺, 647~713) 스님은 휘()는 현각(玄覺)이요, ()는 도명(道明)이며, 성은 대()씨이며, 절강성 온주부 영가현[浙江省溫州府永嘉縣] 사람이다.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삼장(三臟)을 두루 섭렵하고 경과 논을 널리 통달하였다고 한다. 영가스님은 본래 천태종 계통으로 천태지관(天台止觀)을 많이 익혀서 그 묘를 얻고 항상 선관(禪觀)으로 수행하였다. 천태종 팔조(八祖)인 좌계 현랑(左溪玄朗) 법사와는 동문(同門)이며, 나중에 도를 성취하고 난 뒤에도 서로 서신 왕래를 하였다고 한다. 훗날 육조 혜능대사를 뵙고 크게 깨치고 증도가(證道歌)를 저술하였다. 중도가는 스님이 증득한 깨달음의 세계를 시로 표현한 것으로, 오도송(悟道頌)의 백미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중도가는 아래와 같다.

 증도가(證道歌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은 망상도 없애지 않고 진리도 구하지 않으니  무명의 참 성품이 바로 불성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天眞佛)이라 오음(五陰)의 뜬 구름이 부질없이 가고 오며 

  삼독(三毒)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하도다.

  실상을 증득하여 인(), ()이 없으니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없애버림이라 거짓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진사겁(塵沙劫)

  토록 혀를 빼는 지옥의  과보를 를  스스로 부르리로다.

  여래선(如來禪)을 단박에 깨치니 육도만행(六度萬行)이 본체 속에 원만함이라 꿈속에선 밝게 밝게 육취(六趣 )가 있더니 

  깨친 후엔 비고 비어  대천세계가 없도다.   죄와 복이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나니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고 찾지 말라.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더니오늘에야

  분명히 닦아 내었도다.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태어남이 없는가 진실로 태어남이 없으면 태어나지 않음도 없나니 인형극의 나무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라, 부처를  구하고 공() 베품을 조만간 이루리로다.

  사대(四大)를 놓아 버려 붙잡지 말고 적멸한 성품 따라 먹고 마실지어다. 모든 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하니 이는 곧 여래의

  대원각(大圓覺 )이로다.   결정된 말씀과 참됨을 나타낸 법을 어떤 사람은 긍정치 않고 감정에 따라 헤아림이라  근원을 바로 끊음은 부처님 인가 하신

  바요  잎 따고 가지 찾음은 내 할 일 아니로다.

   마니주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여래장 속에 몸소 거두어 들임이라  여섯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지 않음이요   한덩이 둥근 빛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로다.

   오안(五眼)을 깨끗이 하여 오력(五力)을 얻음은 증득해야만 알 뿐,헤아리긴 어렵도다. 거울 속의 형상 보기는 어렵지 않으나    물 속의 달을 붙들려 하나 어떻게 잡을 수 있으랴.    항상 홀로 다니고 항상 홀로 걷나니 통달한 이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도다.

   옛스런 곡조 신기(神氣) 맑으며 풍체 스스로 드높음이여 초췌한 모습 앙상한 뼈 사람들 거들떠 보지 않는도다.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타 말하나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라

   가난한 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도()를 얻은 즉 마음에 무가보(無價寶)를 감추었도다.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중생 이익하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삼신(三身)과 사지(四智)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팔해탈(八解脫) 육신통은 마음 땅의 인())이로다.    상근기(上根機)는 한 번 결단하여 일체를 깨치고  ,하근기(,下根機)는 많이 들을수록 더욱 믿지 않는도다.

   스스로 마음의 때묻은 옷 벗을 뿐  뉘라서 밖으로 정진(精進)을 자랑할건가 , 남의 비방에 따르고 남의 비난에 맡겨두라.     불로 하늘을 태우려하나 공연히 자신만 피로하리라.

   내 듣기에 마치 감로수를 마심과 같아서  녹아서 단박에 부사의(不思議)의 해탈경지(解脫境地)에 들어가도다.

   나쁜 말을 관찰함이 바로 공덕이니 이것이 나에게는 선지식(善知識)이 됨이라 비방 따라 원망과 친한 마음 일지 않으면   하필이면 태어남이 없는 자비인욕의 힘 나타내 무엇 할 것인가.    구경각을 성취하고 설법(說法0도 통함이여 선정(禪定)과 지혜가 뚜렷이 밝어 공()에 머물지도 않는도다.   ()만 이제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수 많은 부처님 본래 모습은 모두 같도다.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뭇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이라,   힘쎈 코키리는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고  천룡(天龍)은 조용히 듣고 희열을 내는도다.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서 스승 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參禪 ) 때문이라   확철히 깨친후 부터는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참선이니   어묵동정9語默動靜)에 본체(本體)가 편안함이라, ,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도다,   우리 스승,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연등불을 뵈옵고 다겁(多劫)토록 인욕선인(忍辱仙人) 되셨도다. 몇 번을 태어나고 몇 번이나

  죽었던가   생사가 아득하여 그침이 없었도다.

  단박에 깨쳐 태어남이 없음을 요달하고 부터는 모든 영욕(榮辱)에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랴.   깊은 산중에 들어가 토굴 생활을 하니 높은 산 그윽하여 낙락장송 아래로다.

  한가히 노닐며 절 집에서 조용히 앉았으니 고요한 안거(安居), 참으로 멋진 생활이도다.   깨친 즉 그만이요 공() 베풀지 않나니 모든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도다  모양에 머무는 보시는 하늘에 나는 복이니   오히려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도다.

  세력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내생에 뜻과 같지 않은 과보를 부르리로다.   어찌 함이 없는 실상문(實相門)에 한 번 뛰어 여래지(如來地 )에 바로 들어감과 같으리오.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 달을 머금음과 같도다.   이미 여의주를 알았으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다함이 없도다.

  강엔 달 비치고 소나무엔 바람 부니 긴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하릴 있을건가.   불성계의 구슬은 마음의 인()이요 안개,이슬,구름,노을은 몸 위의 옷이로다.

  용을 항복받은 발우(鉢盂)와 범 싸움 말린 석장(錫杖)이여 양쪽 쇠고리는 역력히 울리는도다.   이는 모양을 내려 헛트로 지님이 아니요 부처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음이로다.

  참됨도 구하지 않고 망령됨도 끊지 않나니 두 법()이 공()하여 모양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모양도 없고 공도 없고 공 아님도 없음이여 이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로다.

  마음의 거울 밝아서 비침이 걸림 없으니 확연히 비치어 항하수 모래같은 세계에 두루 사무치도다.   만상삼라의 그림자가 그 가운데 나타나고 한 덩이 뚜렷이 밝음은 안과 밖이 아니로다.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가 없다하면 아득하고 끝없이 큰 화()만 부르리도다.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하면 병이기는 같으니 물을 피하다가 도리어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도다.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함이여, 취사하는 마음이 교활한 거짓만을 이루도다.   배우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수행하나니 참으로 도적을 아들로 삼는 짓이로다.    심의식(心意識 )의 장애야 말로 법()의 공덕을 저해(沮害)하는 일이며  선문(禪門)에선 근본무명인 제팔 아뢰야인 심()을 뿌리채 뽑아 버리면 태어남이 없는 지견(知見)의 힘에 단박에 들어간다.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로다.   외도의 마음만 꺾을 뿐 아니요 일찌기 천마(天魔)의 간담을 떨어뜨렸도다.

                                ()이 우뢰와 같이 진동하고 법의 북소리가 세상천지를 두드림이여, 비의 구름이 감로수를 뿌리는도다. 용과 코키리의 차고 밟음에 윤택함이 그지 없으니 삼승(三乘)과 오성(五性),그리고 일체 중생들이 모두 깨치는 도다.

설산(雪山)의 최고의 풀인 비니초만 먹는 백우(白牛)의 순수한 제호(우유)  나 항상 받는도다. 한 성품이 뚜렷하게 모든 성품에 통하고 한 법이 두루하여 모든 법을 포함하나니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모든 물의 달을 한 달이 포섭하도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나의 성품에 들어오고 나의 성품이 다시 함께 여래와 합치하도다. 한 지위에 모든 지위 구족하니 색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행업도 아니로다. 손가락 퉁기는 사이에 팔만 법문 원만히 이루고 찰나에 삼아승지겁을 없애버리도다.

부처님이 설하시고 조사스님네가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천칠백 공안은 나의 신령한 깨침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훼방도 할 수 없고 칭찬도 할 수 없음이여,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한계가 없도다.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청정하여 때가 없이 그자리에 있으니 찾은 즉 그대를 알아 볼 수는 없도다.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나니 얻을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얻을 뿐이다.

말 없을 때 말하고 말할 때 말 없음이여, 크게 베푸는 문을 여니 융통자재해서 하나도 거리낌이 없도다.누가 나에게 무슨 종취를 아느냐고 물으면 마하반야의 지혜의힘이라고 대답해 주어라.

혹은 옳고 혹은 그릇됨을 사람이 알지 못하고 역행,순행은 하늘도 헤아리지 못한다. 나는 일찌기 많은 겁() 지나며 수행하였으니 부질없이 서로 속여서 미혹케 함이 아니로다.

()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宗旨)를 일으킴이여, 밝고 밝은 부처님 법 조계에서 이었도다. 첫번째로 가섭이 맨 먼저 등불을 전하니 이십팔대는 서천(西天)의 기록이로다.

법이 동쪽으로 흘러 이 땅에 들어와서는 보리달마가 첫 조사가 되었고 육대(六代)로 옷 전한 일 천하에 소문났고 뒷 사람이 도() 얻음을 어찌 다 헤아리랴.

참됨도 서지 못하고 허망도 본래 공()함이여,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니 공()하지 않고 공()하도다 .이십공문(二十空門)에 원래 집착하지 않으니 한 성품 여래의 본체와 저절로 같도다.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마음과 법은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음이라. 흔적인 때 다하면 빛이 비로소 나타나고 마음과 법,둘 다 없어지면 성품이 바로 참되도다.

말법(末法)을 슬퍼하고 시세(時世)를 원망하노니 중생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반대만 하니  박복하기 그지없다. 성인 가신 지 오래고 삿된 견해가  깊어짐이여, 마구니는 강하고 법은 약하여 원한과 해침이 많도다.

여래의 돈교문(頓敎門 )설함을 듣고서는 부숴 없애버리지 못함을 한탄하는도다.짓기는 마음으로 지으나  재앙은 몸으로 받나니 모름지기 누구를 원망하거나 허물하지 말지어다.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업보를 부르지 않으려거든 여래의 바른 법륜(法輪)을 비방하지 말아라. 전단향 나무 숲에는 잡나무가 없으니 울창하고 깊숙하여 사자가 머무는도다.

경계가 고요하고 숲 한적하여 홀로 노니니 길 짐승과 나는 새가 모두 멀리 달아나도다. 사자 새끼를 사자 무리가 뒤따름이여, 세 살난 어란아이가 곧 크게 소리치는도다.

여우가 법왕(法王)을 쫓으려 한다면 백년 묵은 요괴가 헛되이 입만 놀리는 구나. 원돈교(圓頓敎)는 몰인정하니 의심하거니 비방라는 자를 위해서 설득를 해야한다.

산승이 인아상(人我相)을 들어냄이 아니요 수행타가 단견(斷見)과상견(常見)의 구덩이에 떨어질까 염려함이로다. 잘절못과 옮음과 옳지 않음이여,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천리길로 떨어짐이로다.

옳은 즉 용녀(龍女)가 단박에 성불함이요, 그른 즉 선성(善星)비구가 산채로 지옥에 떨어짐이로다. 나는 어려서부터 학문과 경론을 살폈지만 이름과 모양만릉 분별하여 바다 속 모래를 헤아리듯 헛되이 스스로 피곤하였도다.

문득 여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남의 보배 세어서 무슨 이익 있을 건가. 예전엔 옆길을 걸으면서 헛된 수행을 하였음을 깨달으니 여러 해를 잘못 풍진객(風塵客) 노릇을 하였도다.

마음의 성품에 삿됨을 심고 알음알이를 따른 그릇공부여, 여래의 본성품을 통달치 못함이로다, 성문과 연각은 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외도(外道)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우치하고도 겁이 많으니 빈 주먹 손가락 위에 실다운 견해를 내는도다. 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니 육근,육경,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는도다.

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이니 바야흐로 이름하여 관자재(觀自在)라 하는도다. 마치면 업장이 본래 공()함이요 마치치 못하면 도리어 묵은 빚 갚으리로다.

굶다가 임금님 진수성찬을 만나도 먹을 수 없으니 병들어 의왕(醫王) 만난들 어찌 나을 수 있으랴. 깨치겠다는 마음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불 속에 연꽃 피니 끝내 시들지 않는도다.

용시(勇施)비구는 중죄 짓도고 태어남이 없는 법을 깨달으니 벌써 성불하여 지금에 있음이로다.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이들을 크게 슬프게 하는도다.

중죄를 범하면 보리심(菩提心)를 막는 줄만 알 뿐 여래께서 내보이신 비결은  보지 못하도다. 엣날 어떤 두 비구가 음행과 살생 저지르니 우바리 존자의 꾸짓음은 죄의 매듭을 더하였고 유마대사는 단박에 의심을 없애주었도다. 빛나는 해가 서리 눈 녹임과 같음이로다. 부사의한 해탈의 힘이여, 묘한 작용 은 항하사 모래같아 다함이 없도다.

네 가지 공양을 감히 수고롭다 사양하랴 만약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도다. 뼈가 가루되고 몸이 부숴져도 다 갚을 수 없나니 한 마디에 요연히 백억법문을 뛰어넘도다.

법 가운데 왕, 가장 높고 수승함이여 강 모래같이 많은 여래가 함께 증득하였도다. 내 이제 이 여의주를 알았으니 믿고 받는 이 모두 상응(相應)하리도다.

밝고 밝게 보면 한 물건도 없음이여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대천세계는 바다 가운데 거품이요 모든 성현은 번갯불 스쳐감과 같도다.

무쇠바퀴를 머리 위에서 돌릴지라도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있어 끝내 어쩌지 못함이로다. 해는 차게 하고 달은 뜨겁게 할지언정 뭇 마구니가 참된 말씀과 진리는 부술 수 없도다,

코끼리 수레 끌고 위풍 당당히 길을 가거니 버마재비 수레 길을 막는 걸 누가 보겠는가. 큰 코끼리는 토끼 길에 노닐지 않고 큰 깨달음은 어떠한 경계애도 구애되지 않나니 작은 숲을 보는 좁은 소견으로 창창히 비방하지 말라, 알지 못하기에 내 이제 그대 위해 결단해 주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