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주의 개(趙州狗子)
趙州和尚,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조주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가 말했다.
“무(無)!”
【無門曰】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絕. 祖關不透, 心路不絕,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 把手共行, 眉毛廝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莫有要透關底麼.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毫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撕, 莫作虛無會, 莫作有無會, 如吞了箇熱鐵丸, 相似吐又吐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打成一片.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驀然打發, 驚天動地,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 逢祖殺祖, 於生死岸頭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戲三昧. 且作麼生提撕. 盡平生氣力, 舉箇無字. 若不間斷, 好似法燭, 一點便著.
무문은 말한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祖師關]을 꿰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반드시 생각의 길[心路]이 끊어져야 한다. 조사의 관문을 꿰뚫지 못하고 생각의 길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모두가 풀과 나무에 빌붙어 사는 귀신일 뿐이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어떤 것이 조사의 관문인가? 다만 이 한낱 “무(無)!”란 말이 바로 선종의 한 관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 ‘선종 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 한다. 이것을 꿰뚫을 수 있는 사람은 비단 조주(趙州)화상을 직접 뵐뿐만 아니라, 역대의 조사(祖師)들과 손을 잡고 함께 행동하며, 눈썹을 맞대고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을 수 있으니, 어찌 기쁘고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 관문을 꿰뚫고 싶지 않은가? 365개의 뼈마디와 8만4천 개의 털구멍을 가지고 온몸에 의심덩이를 일으켜 이 “무(無)!”라는 말을 참구하라. 밤낮으로 들어보되, ‘허무하다’는 알음알이도 짓지 말고 ‘있다’, ‘없다’의 알음알이도 짓지 말라. 마치 뜨거운 쇠구슬을 삼킨 것 같아서 토하고 토해도 나오지 않게 된다. 이전의 잘못된 지식과 관념을 모두 없애서 오래도록 잘 익히면 자연스레 안팎이 한 덩어리를 이룰 것이다.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꾼 것과 같아서 다만 스스로 알 수 있을 뿐이나, 문득 드러나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울려서 관우 장군의 큰 칼을 빼앗아 손에 쥔 것처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삶과 죽음의 언덕가에서 커다란 자유를 얻어 중생살이[六道四生] 가운데에서도 삼매를 즐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고 있을 것인가? 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무(無)!”란 말을 들어보라. 만약 끊어짐이 없다면 법의 촛불에 단박 불붙듯 될 것이다.
【頌曰】狗子佛性, 全提正令. 纔涉有無, 喪身失命.
게송으로 이른다.
개의 불성,
불법[正令]을 온전히 드러냈도다.
조금이라도 ‘있다·없다’에 걸리면
목숨을 잃으리라.
2. 백장과 들여우(百丈野狐)
百丈和尚凡參次, 有一老人, 常隨眾聽法, 眾人退老人亦退, 忽一日不退, 師遂問. 面前立者復是何人. 老人云, 諾某甲非人也. 於過去迦葉佛時, 曾住此山. 因學人問, 大修行底人, 還落因果也無. 某甲對云, 不落因果, 五百生墮野狐身. 今請和尚, 代一轉語, 貴脫野狐. 遂問, 大修行底人, 還落因果也無. 師云, 不昧因果. 老人於言下大悟, 作禮云, 某甲已脫野狐身, 住在山後, 敢告和尚, 乞依亡僧事例. 師令維那白槌告眾, 食後送亡僧. 大眾言議, 一眾皆安, 涅槃堂又無人病, 何故如是. 食後只見師領眾, 至山後巖下, 以杖挑出一死野狐, 乃依火葬. 師至晚上堂, 舉前因緣, 黃蘗便問, 古人錯祇對一轉語, 墮五百生野狐身, 轉轉不錯, 合作箇甚麼. 師云, 近前來與伊道. 黃蘗遂近前, 與師一掌. 師拍手笑云, 將謂胡鬚赤, 更有赤鬚胡.
백장 화상이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항상 대중을 따라 법문을 듣다가 대중들이 물러가면 노인 또한 물러가곤 했는데, 하루는 설법이 끝나도 물러가지 않고 있기에 스님께서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뉘시오?”
노인이 말했다.
“네, 저는 사람이 아니올시다. 과거 가섭불 시대에 이 산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떤 학인이 ‘크게 수행을 한 사람도 또한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라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대답했다가 5백 생을 여우 몸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청컨대 스님께서 제 대신 한 마디 말씀을 해주시어 여우 몸을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는 물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또한 인과에 떨어집니까?”
스님께서 말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不昧因果]”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절을 올리고 말했다.
“저는 이미 여우 몸을 벗어나서 산 뒤쪽에 있으니 송구스럽지만 화상께서는 죽은 승려의 사례에 따라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유나(維那 ; 선원 대중을 지도하는 직책을 맡은 승려)로 하여금 목탁[백추(白槌)]을 쳐서 공양 후에 죽은 승려의 다비식이 있음을 알렸다. 대중들은 ‘모든 대중이 다 평안하고 열반당(涅槃堂 ; 노승이나 병든 승려가 머무는 곳)에도 또한 아픈 사람이 없는데 무슨 까닭에 그럴까?’ 하고 수군거렸다. 공양 후에 스님께서는 대중을 이끌고 산 뒤쪽 바위 아래에 이르러 지팡이로 한 마리 죽은 들여우를 끄집어내어 화장을 하였다.
스님께서 저녁에 상당(上堂)하시어 앞서의 인연을 이야기하자 황벽이 곧바로 물었다.
“옛날 분이 한 마디 말씀을 잘못 대답하여 5백 생을 여우 몸에 떨어졌는데, 한 마디 한 마디 어긋나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이 되었을까요?”
스님께서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너에게 말해주마.”
황벽은 앞으로 가까이 가서 스님의 뺨을 한 대 후려 갈겼다.
스님께서는 손뼉을 치며 웃으며 말했다.
“오랑캐[보리달마(菩提達磨)]의 수염만 붉다고 여겼는데 여기 붉은 수염 달마가 또 있구나!”
【無門曰】不落因果, 為甚墮野狐, 不昧因果, 為甚脫野狐. 若向者裏著得一隻眼, 便知得前百丈贏得風流五百生.
무문은 말한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 하면 어째서 들여우에 떨어지고,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 하면 어째서 들여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만약 여기에서 외짝 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여우 노인[前百丈]이 5백 생 동안 풍류를 즐겼다는 사실을 곧장 알리라.
【頌曰】不落不昧, 兩采一賽. 不昧不落, 千錯萬錯.
게송으로 이른다.
떨어지지 않는다, 어둡지 않다,
한 주사위의 두 가지 무늬일 뿐.
어둡지 않다, 떨어지지 않는다,
천 번 틀리고 만 번 어긋난다.
3. 구지가 손가락을 세우다 (俱胝竪指)
俱胝和尚, 凡有詰問, 唯舉一指. 後有童子, 因外人問, 和尚說何法要, 童子亦豎指頭. 胝聞, 遂以刃斷其指, 童子負痛號哭而去, 胝復召之. 童子迴首, 胝卻豎起指. 童子忽然領悟. 胝將順世, 謂眾曰, 吾得天龍一指頭禪, 一生受用不盡, 言訖示滅.
구지 화상은 누가 무엇을 물어 올 때마다 오직 손가락 하나만 들어보였다.
나중에 구지 화상 처소의 어떤 동자에게 한 방문객이 “화상께서는 어떤 법을 설하시느냐?”라고 묻자, 동자도 역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구지가 이를 듣고 급기야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가 아파서 엉엉 울며 달아나는데 구지가 다시 그를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리자 이번에는 구지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에 동자는 문득 깨달았다.
구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얻어 일생을 쓰고도 다 쓰지 못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입적했다.
【無門曰】俱胝并童子悟處, 不在指頭上. 若向者裏見得, 天龍同俱胝并童子, 與自己一串穿卻.
무문은 말한다.
구지와 동자가 깨달은 곳은 손가락 끝에 있지 않다. 만약 여기에서 알아차리면 천룡과 구지와 동자, 그리고 자기를 한 꼬치에 꿰어 버릴 것이다.
【頌曰】俱胝鈍置老天龍, 利刃單提勘小童. 巨靈抬手無多子, 分破華山千萬重.
게송으로 이른다.
구지는 늙은 천룡을 바보 취급하고
날카로운 칼로 동자를 점검하였네.
거령신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들어
천만 겹 화산(華山)을 쪼개버린 것처럼.
▶거령신: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 옛날 황하(黃河)가 용문(龍門)이라는 곳에서 동쪽으로 흐르려 하자 대화산(大華山)이라는 큰 산이 솟아 있어서 흐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우가 내리면 강물이 넘쳐 피해가 매우 컸다. 그것을 거령신이 화산(華山)과 수양산(首陽山)이라는 두 개의 산으로 찢어 갈라놓았으므로 강물은 그 사이로 해서 동쪽으로 흐르게 되었고 그 덕분에 강가 사람들은 수해를 면하게 되었다는 고사(故事)가 있음.
4. 달마는 수염이 없다 (胡子無鬚)
或庵曰, 西天胡子, 因甚無鬚.
혹암이 말했다.
“서천(西天)의 오랑캐(胡子 ; 보리달마)는 어째서 수염이 없는가?”
【無門曰】參須實參, 悟須實悟. 者箇胡子, 直須親見一回始得, 說親見, 早成兩箇
무문은 말한다.
참구하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참구해야 하고, 깨달으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깨달아야 한다. 이 오랑캐를 한 번은 직접 만나 봐야 하지만, 직접 만났다고 하면 벌써 둘이 되어버린다.
【頌曰】癡人面前, 不可說夢. 胡子無鬚, 惺惺添懵.
게송으로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 앞에서는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
오랑캐는 수염이 없다는 말,
밝고 분명한 것을 애매하게 만드네.
▶혹암 사체(或庵師體 1108~1179) : 초산 사체(焦山師體). 남송대(南宋代) 스님. 초산은 주석 지명. 속성은 나(羅)씨. 태주(台州) 출신. 호국 경원(護國景元)의 법사로서 초산(焦山) 등에 머뭄.
5. 향엄이 나무에 오르다 (香嚴上樹)
香嚴和尚云, 如人上樹, 口啣樹枝, 手不攀枝, 腳不踏樹, 樹下有人, 問西來意. 不對即違他所問, 若對又喪身失命, 正恁麼時, 作麼生對.
향엄 화상이 말했다.
“가령 그대가 나무에 올라가서 입으로 나뭇가지를 문 채 손으로도 가지를 잡지 않고 발로도 나무를 딛지 않고 있는데, 나무 아래의 어떤 사람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묻는다고 하자. 대답하지 않으면 그가 묻는 것에 어긋나고 만약 대답한다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無門曰】縱有懸河之辯, 總用不著, 說得一大藏教, 亦用不著. 若向者裏對得著, 活卻從前死路頭, 死卻從前活路頭. 其或未然, 直待當來問彌勒.
무문은 말한다.
설사 물 흐르듯 거침없는 말솜씨가 있더라도 전혀 소용없고, 팔만대장경을 모두 설할 수 있어도 또한 소용없다. 만약 여기에 대답할 수 있다면 이전까지 죽어있던 것을 살리게 되고, 이전까지 살아있던 것을 죽이게 될 것이다.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곧 다음 세상을 기다려 미륵(彌勒)에게 물어보라.
【頌曰】香嚴真杜撰, 惡毒無盡限. 啞卻衲僧口, 通身迸鬼眼.
향엄은 참으로 터무니없고
악독하기가 이를 데 없네.
납승의 입을 틀어막고
온몸에 귀신 눈 솟게 만든다.
6. 세존께서 꽃을 들다(世尊拈花)
世尊昔在靈山會上, 拈花示眾. 是時眾皆默然. 惟迦葉尊者, 破顏微笑. 世尊云,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 不立文字, 教外別傳, 付囑摩訶迦葉.
세존께서 옛날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다. 그때 대중들은 모두 말이 없었으나 오직 가섭 존자만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인 미묘한 법문이 있으니,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교설 이외에 따로 전하여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無門曰】黃面瞿曇, 傍若無人, 壓良為賤, 懸羊頭賣狗肉. 將謂多少奇特, 只如當時大眾都笑, 正法眼藏作麼生傳. 設使迦葉不笑, 正法眼藏又作麼生傳. 若道正法眼藏有傳授, 黃面老子, 誑謼閭閻, 若道無傳授, 為甚麼獨許迦葉.
무문은 말한다.
누런 얼굴의 석가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양민(良民)을 억눌러 천민(賤民)으로 만들고, 양(羊)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구나! 제법 기특하다 할 수 있으나, 만약 그때 대중들이 모두 웃었다면 정법안장을 어떻게 전했을까? 만일 가섭이 웃지 않았더라면 정법안장은 또 어떻게 전했을까?
만약 정법안장이 전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누런 얼굴의 늙은이가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고, 만약 정법안장이 전해 줄 수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가섭 한 사람에게만 허락하였는가?
【頌曰】拈起花來, 尾巴已露. 迦葉破顏, 人天罔措.
게송으로 이른다.
꽃을 들어 올렸을 때
이미 꼬리까지 드러났도다.
가섭은 빙그레 웃는데
사람과 하늘 어쩔 줄 모르네.
7. 조주의 발우 씻기(趙州洗鉢)
趙州因僧問, 某甲乍入叢林, 乞師指示. 州云, 喫粥了也未. 僧云, 喫粥了也. 州云, 洗缽盂去. 其僧有省.
조주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저는 이제 막 총림에 들어 왔으니 스님의 지시를 바랍니다.”
조주가 말했다.
“죽은 먹었느냐?”
승려가 말했다.
“먹었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발우나 씻어라.”
그 승려는 문득 깨달았다.
【無門曰】趙州開口見膽, 露出心肝, 者僧聽事不真, 喚鐘作甕.
무문은 말한다.
조주는 입을 열어 쓸개를 내보이고 심장과 간마저 드러냈지만, 이 중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 종(鐘)을 항아리(甕)라고 하는 셈이다.
【頌曰】只為分明極, 翻令所得遲. 早知燈是火, 飯熟已多時.
게송으로 이른다.
다만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도리어 얻기에 더디도다.
일찍이 등불이 불임을 알았던들
밥은 이미 되고도 남았을 것을.
▶ 옛날 중국에 한 우둔한 자가 있어 해가 저물어 밥을 지으려고 하는데 솥가마에 불씨가 없음을 알고 등에 불을 붙여서, 꽤 떨어진 옆집까지 불을 구하러 갔다는 속화(俗話)에 기반을 둔 이야기로, 자기가 들고 있는 등불이 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벌써 밥은 지어져 있을 것인데, 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8. 해중의 수레(奚仲造車)
月庵和尚問僧, 奚仲造車一百輻, 拈卻兩頭, 去卻軸, 明甚麼邊事.
월암 화상이 어느 승려에게 물었다.
“해중(奚仲)이 백 개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를 만들면서 두 바퀴도 뽑아버리고 바퀴 축도 떼어버린 것은 어떤 일을 밝히려는 것인가?”
【無門曰】若也直下明得, 眼似流星, 機如掣電.
무문은 말한다.
만약 곧바로 밝힐 수 있다면 안목(眼目)은 유성(流星)과 같고, 기틀은 번갯불(掣電)과 같으리라.
【頌曰】機輪轉處, 達者猶迷. 四維上下, 南北東西.
게송으로 이른다.
기륜(機輪)이 구르는 곳에선
달자(達者)조차 오히려 헤매네.
사유상하(四維上下)에
동서남북(東西南北)이로다.
※해중:중국 고대 하(夏)나라 사람으로 수레를 처음 발명한 사람.
※기륜:원문은 기(機). 기발(機發)이라는 뜻. 즉 연(緣)을 만나서 발동(發動)될 만한 가능성. 교법(敎法)에 의해서 격발되는 중생의 심기(心機). 선기(禪機).
9. 대통지승불(大通智勝)
興陽讓和尚, 因僧問, 大通智勝佛, 十劫坐道場, 佛法不現前, 不得成佛道時如何. 讓曰, 其問甚諦當. 僧云, 既是坐道場, 為甚麼不得成佛道. 讓曰, 為伊不成佛.
흥양 양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대통지승불이 십 겁(劫) 동안 도량(道場)에 앉았어도 불법이 앞에 드러나지 않아서 불도를 이룰 수 없었다는데 이러할 때는 어떻습니까?”
양 화상이 말했다.
“그 질문이 매우 합당하구나!”
승려가 말했다.
“이미 도량(道場)에 앉았는데 어째서 불도를 이룰 수 없었습니까?”
양 화상이 말했다.
“그가 부처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無門曰】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凡夫若知即是聖人, 聖人若會即是凡夫.
무문은 말한다.
다만 늙은 오랑캐가 깨달아 아는 것만 허락할 뿐 늙은 오랑캐가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범부라도 만약 깨달아 안다면 곧 성인이요, 성인이라도 만약 알음알이로 이해한다면 곧 범부이다.
【頌曰】了身何似了心休, 了得心兮身不愁, 若也身心俱了了, 神仙何必更封侯.
몸을 닦는 것이 어찌 마음을 깨달아 쉬는 것만 하겠는가?
마음을 깨닫고 나면 몸을 근심하지 않나니,
만약 몸과 마음을 모두 깨닫는다면
신선이 어찌 다시 벼슬자리를 받겠는가?
10. 청세의 가난(淸稅孤貧)
曹山和尚, 因僧問云, 清稅孤貧, 乞師賑濟. 山云, 稅闍梨. 稅應諾. 山曰, 青原白家酒, 三盞喫了, 猶道 未沾唇.
조산 화상에게 청세라는 승려가 물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니 스님께서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조산이 말했다.
“청세 스님!”
청세가 “네.” 하고 대답했다.
조산이 말했다.
“청원의 백가주를 석 잔이나 마셔놓고도 오히려 아직 입술도 적시지 못했다고 하는구려.”
【無門曰】清稅輸機, 是何心行. 曹山具眼, 深辨來機. 然雖如是, 且道. 那裏是稅闍梨喫酒處.
무문은 말한다.
청세의 행동은 어떤 속셈이었을까? 조산은 안목이 있어 상대의 기틀을 깊이 간파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번 말해 보라. 어느 곳이 청세 스님이 술을 마신 곳인가?
【頌曰】貧似范丹, 氣如項羽. 活計雖無, 敢與鬥富.
게송으로 이른다.
가난하기는 범단(范丹)과 흡사하나
기개는 항우(項羽)와 같구나!
살아갈 계책이 비록 없으나
감히 더불어 부(富)를 다투도다!
▶백가주:지금의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에서 나는 유명한 술.
▶범단:범염(范冉)이라고도 하며 후한(後漢) 시대에 청빈하기로 유명한 선비.
11. 조주가 암주를 간파하다(州勘庵主)
趙州到一庵主處問, 有麼有麼. 主豎起拳頭. 州云, 水淺不是泊舡處, 便行. 又到一庵主處云, 有麼有麼. 主亦豎起拳頭. 州云, 能縱能奪能殺能活, 便作禮.
조주가 한 암주의 처소에 이르러 물었다.
“있는가? 있는가?”
그러자 암주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조주가 말했다.
“물이 얕아 배를 댈만한 곳이 아니군!”
그러고는 곧 가버렸다.
또 다른 암주의 처소에 이르러 물었다.
“있는가? 있는가?”
그러자 그 암주 역시 주먹을 들어 보였다.
조주가 말했다.
“능히 놓아주기도 하고 능히 빼앗기도 하며, 능히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살리기도 하는구나!”
그러고는 곧 절을 했다.
【無門曰】一般豎起拳頭, 為甚麼肯一箇, 不肯一箇. 且道, [言+肴]訛在甚處. 若向者裏, 下得一轉語, 便見趙州舌頭無骨, 扶起放倒, 得大自在. 雖然如是, 爭奈趙州卻被二庵主勘破. 若道二庵主有優劣, 未具參學眼, 若道無優劣, 亦未具參學眼.
무문은 말한다.
주먹을 들어 보인 것은 한 가지인데 어째서 한쪽은 긍정하고 한쪽은 긍정하지 않았을까? 자, 말해보라.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만약 여기에서 한 마디 뒤집는 말을 할 수 있다면 곧 조주의 혀끝에는 뼈가 없어서, 붙들어 일으키고 놓아 넘어뜨림에 크게 자재함을 알아차릴 것이다. 비록 이와 같더라도 도리어 조주가 두 암주에게 간파(看破) 당했으니 어찌 하겠는가?
만약 두 암주에게 우열이 있다고 한다면 아직 공부하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이고, 만약 우열이 없다고 해도 또한 아직 공부하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頌曰】眼流星, 機掣電. 殺人刀, 活人劍.
게송으로 이른다.
안목은 유성 같고,
기틀은 번개 같네.
사람을 죽이는 칼이자,
사람을 살리는 검이로세.
12. 서암이 주인공을 부르다(巖喚主人)
瑞巖彥和尚, 每日自喚, 主人公, 復自應諾. 乃云, 惺惺著, 喏, 他時異日, 莫受人瞞, 喏喏.
서암 언 화상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아!” 하고 부르고 다시 스스로 “예!” 하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깨어있어라!”, “예!”, “훗날 남들에게 속지 말아라!”, “예, 예!” 하고 말하였다.
【無門曰】瑞巖老子, 自買自賣, 弄出許多神頭鬼面, 何故. 聻, 一箇喚底, 一箇應底, 一箇惺惺底, 一箇不受人瞞底, 認著依前還不是, 若也傚他, 總是野狐見解.
무문은 말한다.
서암 노장은 자기가 팔고 자기가 사면서 허다한 귀신 탈바가지들을 장난스럽게 내어 놓으니 무슨 까닭일까? 자,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응답하고, 하나는 깨어있고, 하나는 남들의 속임을 받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 줄로 알면 여전히 옳지 못하고, 만약 그를 흉내낸다면 모두 들여우 같은 견해이다.
【頌曰】學道之人不識真, 只為從前認識神. 無量劫來生死本, 癡人喚作本來人.
게송으로 이른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예전부터 식신(識神)을 자기로 알았기 때문이네.
헤아릴 수 없는 과거부터 생사의 근본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라고 부르네.
13. 덕산이 발우를 들고 가다(德山托鉢)
德山一日托缽下堂, 見雪峰問, 者老漢, 鐘未鳴, 鼓未響, 托缽向甚處去, 山便回方丈. 峰舉似巖頭, 頭云, 大小德山, 未會末後句. 山聞, 令侍者喚巖頭來, 問曰, 汝不肯老僧那. 巖頭密啟其意, 山乃休去. 明日陞座, 果與尋常不同. 巖頭至僧堂前, 拊掌大笑云, 且喜得, 老漢會末後句. 他後天下人, 不奈伊何.
덕산이 하루는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내려가다 이를 본 설봉이 “이 노인네가 종도 아직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 거요?” 하고 묻자, 덕산은 곧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설봉이 이 일을 암두에게 말하자 암두는 “대단하다는 덕산도 아직 마지막 구절을 모르는구나!”라고 말했다. 덕산이 그 말을 듣고 시자를 시켜 암두를 불러 오게 하고는 “네가 이 늙은이를 긍정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암두가 남몰래 그 뜻을 말씀드리자 덕산은 곧 그만두었다.
다음날 법좌에 오르니 과연 평소와는 같지 않았다. 암두가 승당(僧堂) 앞에 이르러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기쁘구나! 노인네가 마지막 구절을 알았도다. 이제부터 천하의 사람들이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라고 하였다.
【無門曰】若是末後句, 巖頭德山俱未夢見在. 撿點將來, 好似一棚傀儡.
무문은 말한다.
만약 마지막 구절이라면 암두와 덕산 모두 꿈에도 보지 못했다. 자세히 점검해 보면 한바탕 꼭두각시 놀음 같다.
【頌曰】識得最初句, 便會末後句, 末後與最初, 不是者一句.
게송으로 말한다.
맨 처음 구절을 알 수 있다면
곧바로 마지막 구절도 알겠지만,
마지막 구절과 맨 처음 구절도
이 한 구절은 아니로다!
14. 남전이 고양이를 죽이다(南泉斬猫)
南泉和尚, 因東西兩堂爭貓兒, 泉乃提起云, 大眾, 道得即救, 道不得即斬卻也. 眾無對, 泉遂斬之. 晚趙州外歸, 泉舉似州. 州乃脫履, 安頭上而出. 泉云, 子若在, 即救得貓兒.
남전 화상은 동당(東堂)과 서당(西堂) 스님들이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기에 고양이를 들어 보이고는 말했다.
“대중들이여, 한 마디 이를 수 있다면 살려줄 것이요, 이르지 못한다면 베어버리겠다!”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남전은 마침내 고양이를 죽였다.
저녁에 조주가 밖에서 돌아오자 남전은 낮에 있었던 일을 조주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조주는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는 나가버렸다. 남전이 말했다.
“만약 자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無門曰】且道. 趙州頂草鞋意作麼生. 若向者裏下得一轉語, 便見南泉令不虛行. 其或未然, 險.
무문은 말한다.
자, 말해 보라. 조주가 짚신을 머리에 인 까닭은 무엇일까? 만약 여기에서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면 곧 남전의 명령이 헛되이 행해진 것이 아님을 알리라.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위험하다!
【頌曰】趙州若在, 倒行此令. 奪卻刀子, 南泉乞命.
게송으로 이른다.
조주가 만약 있었다면
그 명령을 거꾸로 행했으리.
칼을 빼앗기고
남전도 목숨을 빌었으리.
15. 동산의 세 방망이(洞山三頓)
雲門因洞山參次, 門問曰, 近離甚處. 山云, 查渡. 門曰, 夏在甚處. 山云, 湖南報慈. 門曰, 幾時離彼. 山云, 八月二十五. 門曰, 放汝三頓棒. 山至明日, 卻上問訊. 昨日蒙和尚放三頓棒. 不知過在甚麼處. 門曰, 飯袋子, 江西湖南, 便恁麼去. 山於此大悟.
운문에게 동산이 가르침을 받으러 왔기에 운문이 물었다.
“최근에 어디를 떠나왔는가?”
동산이 말했다.
“사도에서 왔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여름엔 어디에 있었는가?”
동산이 말했다.
“호남의 보자사에 있었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언제 거기를 떠났는가?”
동산이 말했다.
“8월 25일에 떠났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네게 세 차례 방망이질 할 것을 봐주었다.”
동산이 다음 날 다시 찾아가 문안을 드리면서 물었다.
“어제 화상께서 세 차례 방망이질 할 것을 봐주셨는데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밥통아! 강서와 호남으로 이렇게 돌아다녔느냐?”
동산은 이에 크게 깨달았다.
【無門曰】雲門當時, 便與本分草料, 使洞山別有生機一路, 家門不致寂寥. 一夜在是非海裏著到, 直待天明再來, 又與他注破, 洞山直下悟去, 未是性燥. 且問諸人, 洞山三頓棒, 合喫不合喫. 若道合喫, 草木叢林, 皆合喫棒. 若道不合喫, 雲門又成誑語. 向者裏明得, 方與洞山出一口氣.
무문은 말한다.
운문이 그때 곧바로 본분초료(本分草料)를 주어 동산으로 하여금 따로 한 가닥 살아날 방도가 있게 함으로써 가문이 쓸쓸해지지 않았다. 하룻밤을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빠뜨렸다가, 곧바로 날이 밝아 다시 오는 것을 기다려 또 그에게 가르침을 베푸니, 동산이 즉시 깨달았으나 아직 영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자, 여러분에게 묻노니, 동산이 세 차례의 방망이질을 받을 만한가, 받을 만하지 않은가? 만약 받을 만하다고 한다면 초목과 수풀도 모두 방망이를 받아야 마땅하고, 만약 받을 만하지 않다고 한다면 운문은 거듭 헛소리를 한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하다면 바야흐로 동산과 더불어 같이 호흡하게 될 것이다.
【頌曰】獅子教兒迷子訣, 擬前跳躑早翻身. 無端再敘當頭著, 前箭猶輕後箭深.
게송으로 이른다.
사자는 새끼를 당혹케 하는 방법으로 가르치나니
앞으로 뛰려고 머뭇거리자마자 얼른 몸을 뒤집는다.
느닷없이 거듭 펼쳐 정통으로 맞추었으니
앞 화살은 오히려 가벼웠으나 나중 화살은 깊도다.
16.종소리에 칠조 가사를 입는다(鐘聲七條)
雲門曰, 世界恁麼廣闊, 因甚向鐘聲裏披七條.
운문이 말했다.
“세계가 이렇게 드넓은데 어째서 종소리가 울리면 칠조 가사를 입는가?”
【無門曰】大凡參禪學道, 切忌隨聲逐色. 縱使聞聲悟道, 見色明心, 也是尋常, 殊不知衲僧家, 騎聲蓋色, 頭頭上明, 著著上妙. 然雖如是, 且道, 聲來耳畔, 耳往聲邊. 直饒響寂雙忘, 到此如何話會. 若將耳聽應難會, 眼處聞聲方始親.
무문은 말한다.
무릇 참선하여 도를 배움에는 소리를 따르고 색을 쫓는 것을 삼가야 한다. 비록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고 색을 보아 마음을 밝히더라도 그것은 예삿일이니, 납승의 집안에서는 소리를 올라타고 색을 뒤덮어 하나하나에 밝고 하는 일마다 묘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 말해 보라. 소리가 귓가에 오는 것인가, 귀가 소리 곁으로 가는 것인가? 설사 소리와 고요함 둘 다 잊을지라도 이에 이르러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만약 귀로 듣는다면 알기 어렵고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가까우리라.
【頌曰】會則事同一家, 不會萬別千差. 不會事同一家, 會則萬別千差.
게송으로 이른다.
알면 곧 매사가 한 집안이요,
알지 못하면 천차만별이로다.
알지 못하면 매사가 한 집안이요,
알면 곧 천차만별이로다.
17. 국사가 세 번 부르다(國師三喚)
國師三喚侍者, 侍者三應. 國師云, 將謂吾辜負汝, 元來卻是汝辜負吾.
국사(國師)가 시자(侍者)를 세 번 부르자 시자가 세 번 대답했다.
국사가 말했다.
“내가 너를 저버렸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도리어 네가 나를 저버렸구나!”
【無門曰】國師三喚, 舌頭墮地, 侍者三應, 和光吐出. 國師年老心孤, 按牛頭喫草, 侍者未肯承當, 美食不中飽人餐. 且道, 那裏是他辜負處. 國清才子貴, 家富小兒嬌.
무문은 말한다.
국사의 세 번 부름은 망상을 피운 것이고, 시자의 세 번 대답은 본바탕을 공손히 드러낸 것이다. 국사가 나이 들어 마음이 외로웠는지 소머리를 눌러 풀을 먹이려 했건만, 시자는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니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자, 말해보라. 어느 곳이 저 시자가 국사를 저버린 곳인가? 나라가 맑으면 재주 있는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고, 집안이 부유하면 자식이 버릇없다.
【頌曰】鐵枷無孔要人擔, 累及兒孫不等閑. 欲得撐門并拄戶, 更須赤腳上刀山.
게송으로 이른다.
구멍 없는 쇠칼을 사람에게 씌우려 하니,
그 허물이 자손에게 미쳐 등한할 수 없도다.
선가(禪家)의 문호(門戶)를 떠받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맨발로 칼산을 올라야 하리라.
18. 동산의 삼 서 근(洞山三斤)
洞山和尚, 因僧問, 如何是佛. 山云, 麻三斤.
동산 수초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삼 서 근.”
【無門曰】洞山老人, 參得些蚌蛤禪, 纔開兩片, 露出肝腸. 然雖如是, 且道. 向甚處見洞山.
무문은 말한다.
동산노인은 그저 그런 조개껍데기 선을 얻어서 두 입술을 열자마자 속내를 다 드러내 보였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 말해보라. 어디에서 동산을 보는가?
【頌曰】突出麻三斤, 言親意更親. 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
게송으로 이른다.
불쑥 내뱉은 삼 서 근,
말도 가깝지만 뜻은 더욱 가깝도다!
와서 옳다 그르다 따지는 자가
바로 시비(是非)에 떨어진 사람이로다.
19. 평상심이 도(平常是道)
南泉因趙州問, 如何是道. 泉云, 平常心是道. 州云, 還可趣向否. 泉云, 擬向即乖. 州云, 不擬, 爭知是道. 泉云, 道不屬知, 不屬不知. 知是妄覺, 不知是無記. 若真達不擬之道, 猶如太虛廓然洞豁, 豈可強是非也. 州於言下頓悟.
남전에게 조주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평소의 마음이 도이다.”
조주가 말했다.
“찾아 나아갈 수 있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헤아려 나아가려 하면 곧 어긋난다.”
조주가 말했다.
“헤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인 줄 알겠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도는 아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모르는 것에도 속하지 않으니, 안다고 하는 것은 망령된 깨달음(妄覺)이요, 모른다는 것은 깜깜한 것(無記)이다. 만약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도에 통달한다면 마치 허공과 같이 텅 비고 탁 트일 테니, 어찌 굳이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조주는 이 말끝에 단박 깨달았다.
【無門曰】南泉被趙州發問, 直得瓦解冰消, 分疏不下. 趙州縱饒悟去, 更參三十年始得.
무문은 말한다.
남전은 조주의 물음을 받고 곧바로 기왓장이 깨지고 얼음이 녹듯하여 할 말이 없었다.(생각이 다 사리지게 되어 법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한다.) 조주가 비록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삼십 년은 더 참구해야 했다.
【頌曰】春有百花秋有月, 夏有涼風冬有雪. 若無閑事挂心頭, 便是人間好時節.
게송으로 이른다.
봄에는 갖가지 꽃, 가을에는 두둥실 달,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겨울에는 하얀 눈.
만약 쓸데없는 일에 마음 두지 않는다면
곧 이것이 인간 세상 좋은 시절이어라.
20. 큰 능력을 가진 사람(大力量人)
松源和尚云, 大力量人, 因甚抬腳不起. 又云, 開口不在舌頭上.
송원숭악 화상이 말했다.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가?”
또 말했다.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혀에 있지 않다.”
【無門曰】松源可謂, 傾腸倒腹, 只是欠人承當. 縱饒直下承當, 正好來無門處喫痛棒, 何故. 聻, 要識真金火裏看.
무문은 말한다.
송원은 창자를 꺼내고 뱃속을 뒤집어 보였다 하겠으나 다만 받아들인 사람이 없을 뿐이다. 설령 곧바로 받아들였다하더라도 무문의 처소에 와서 아프게 몽둥이를 맞는 것이 좋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진금(眞金)인지 알아보려면 불 속에 넣어봐야 한다.
【頌曰】抬腳踏翻香水海, 低頭俯視四禪天. 一箇渾身無處著, 請續一向.
게송으로 말한다.
다리 들어 향수해(香水海) 밟아 뒤집고
머리 숙여 사선천(四禪天) 내려다본다.
이 한 개의 몸뚱이를 둘 곳 없으니
청컨대 나머지 한 구절을 이어주게나.
▶향수해(香水海):수미산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큰바다
▶사선천(四禪天):사선정(四禪定)을 닦아서 나는 색계(色界)의 네 하늘. 초선천(3천), 2선천(3천),3선천(4천),4선천(9천). 모두 18천(天). 수미산 위에 있는 욕계육천(欲界六天)을 지나 그 위의 하늘에 있는 색계십팔천(色界十八天)임.
21. 운문의 똥 닦는 막대기(雲門屎橛)
雲門因僧問, 如何是佛. 門云, 乾屎橛.
운문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운문이 말했다.
“똥 닦는 막대기이다!”
【無門曰】雲門可謂, 家貧難辨素食, 事忙不及草書. 動便將屎橛來, 撐門拄戶, 佛法興衰可見.
무문은 말한다.
운문은 집안이 가난해서 밥 한 그릇 차리기 어렵고, 일이 바빠 글을 휘갈겨 쓸 틈도 없었다 하겠다. 여차하면 곧 똥 닦는 막대기를 가져다 문호(門戶)를 떠받치니 불법의 흥망성쇠를 가히 알 만하다.
【頌曰】閃電光, 擊石火. 眨得眼, 已蹉過.
게송으로 이른다.
번개가 번쩍이고
불꽃이 튀는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지나갔도다!
22. 가섭의 찰간(迦葉刹竿)
迦葉因阿難問云, 世尊傳金襴袈裟外, 別傳何物. 葉喚云, 阿難. 難應諾. 葉云, 倒卻門前剎竿著.
가섭에게 아난이 물었다.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하신 것 이외에 따로 어떤 물건을 전하셨습니까?”
가섭이 아난을 불렀다.
“아난아!”
“예.”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無門曰】若向者裏, 下得一轉語親切, 便見靈山一會儼然未散. 其或未然, 毘婆尸佛早留心, 直至而今不得妙.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한 마디 알맞은 말을 분명히 할 수 있다면 곧 영산(靈山)의 법회가 아직도 엄연히 흩어지지 않았음을 볼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비바시불이 일찍부터 불법에 마음을 두었음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묘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頌曰】問處何如答處親, 幾人於此眼生筋. 兄呼弟應揚家醜, 不屬陰陽別是春.
게송으로 이른다.
묻는 곳이 어떠하건 답한 곳은 뚜렷하니
몇 사람이나 여기에서 눈을 활짝 뜨겠는가?
형의 부름에 동생이 대답하여 집안의 추태를 드러내니
사계절에 속하지 않는 특별한 봄이로다!
※비바시불(毘婆尸佛):과거 칠불(七佛) 중의 첫번째 부처.
23. 선도 악도 생각 말라(不思善惡)
六祖因明上座趁至大庾嶺, 祖見明至, 即擲衣缽於石上云, 此衣表信, 可力爭耶. 任君將去. 明遂舉之, 如山不動. 踟躕悚慄, 明曰, 我來求法, 非為衣也. 願行者開示. 祖云, 不思善, 不思惡. 正與麼時, 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明當下大悟, 遍體汗流, 泣淚作禮問曰, 上來密語密意外, 還更有意旨否. 祖曰, 我今為汝說者, 即非密也. 汝若返照自己面目, 密卻在汝邊. 明云, 某甲雖在黃梅隨眾, 實未省自己面目, 今蒙指授入處, 如人飲水, 冷暖自知. 今行者即是某甲師也. 祖云, 汝若如是, 則吾與汝同師黃梅. 善自護持.
육조는 명 상좌가 쫓아와 대유령에 이른 것을 보고 곧 의발을 돌 위에 던져놓고 말했다.
“이 옷은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니 어찌 힘으로 다투겠는가? 그대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명 상좌가 마침내 그것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면서 명 상좌가 말했다.
“저는 법을 구하러 온 것이지, 옷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행자께선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육조가 말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시오. 바로 이러한 때에 어느 것이 명 상좌의 본래면목입니까?”
명 상좌가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닫고는 온 몸에 땀을 흘리고 눈물을 쏟으며 절을 하고는 물었다.
“좀 전의 비밀한 말씀과 비밀한 뜻 이외에 또 다른 가르침이 있습니까?”
육조가 말했다.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말한 것은 비밀이 아니오. 그대가 만약 자신의 본래면목을 되비추어 본다면 비밀은 오히려 당신 쪽에 있소.”
명 상좌가 말했다.
“제가 비록 황매에서 대중을 따랐으나 실로 자기의 본래면목을 알지 못했는데, 이제 들어갈 곳을 가르쳐 주시는 은혜를 입으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고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행자께서 바로 저의 스승이십니다.”
육조가 말했다.
“그대가 만약 그러하다면 곧 나와 그대는 황매를 함께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오. 스스로 잘 지켜나가기 바라오.”
【無門曰】六祖可謂, 是事出急家, 老婆心切. 譬如新荔支, 剝了殼, 去了核, 送在爾口裏, 只要爾嚥一嚥.
무문은 말한다.
육조는 이 일을 급박하게 했으나 노파심이 간절했다 하겠다. 비유하자면 신선한 과일을 껍질도 벗기고 씨도 빼서 그대 입 안에 넣어 준 것과 같으니, 다만 그대는 한 번 삼키기만 하면 된다.
【頌曰】描不成兮畫不就, 贊不及兮休生受. 本來面目沒處藏, 世界壞時渠不朽.
게송으로 이른다.
묘사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고
칭찬도 못 미치니 괜한 수고 그만두게.
본래면목은 숨길 곳 없으니
세계가 무너질 때도 그는 없어지지 않네.
24. 언어를 벗어나라(離却語言)
風穴和尚, 因僧問, 語默涉離微, 如何通不犯. 穴云, 長憶江南三月裏, 鷓鴣啼處百花香.
풍혈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말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들어가고 나옴(離微)에 걸리니 어떻게 하면 통하여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풍혈이 말했다.
“항상 강남의 3월을 기억하나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롭다네!”
【無門曰】風穴機如掣電, 得路便行, 爭奈坐前人舌頭不斷. 若向者裏見得親切, 自有出身之路.且離卻語言三昧, 道將一句來.
무문은 말한다.
풍혈의 기틀은 번개 같아서 길을 찾으면 곧바로 가거늘, 어찌하여 앞 사람의 혀끝을 끊지는 못하고 앉아 있는가?
만약 여기에서 정확하게 알아차렸다면 스스로 몸을 벗어날 길이 있을 것이다. 자, 언어의 세계(語言三昧)를 떠나서 한 마디 해 보라.
【頌曰】不露風骨句, 未語先分付. 進步口喃喃, 知君大罔措.
게송으로 이른다.
격조 높은 말귀 드러내지 않아도
말하기 전에 벌써 전해 주었네.
앞으로 다가와 주절주절 입을 연다면
그대야말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겠네.
25. 셋째 자리의 설법(三座說法)
仰山和尚, 夢見往彌勒所, 安第三座. 有一尊者, 白槌云, 今日當第三座說法. 山乃起白槌云, 摩訶衍法, 離四句, 絕百非, 諦聽諦聽.
앙산 화상은 꿈에 미륵이 계신 곳에 가서 세 번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때 한 존자가 백추를 하고는 말했다.
“오늘은 세 번째 자리에 앉은 분이 법을 설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앙산은 일어나 백추를 하고는 말했다.
“대승(摩訶衍)의 법은 사구를 떠나고 백비를 끊었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시오!”
【無門曰】且道. 是說法不說法. 開口即失, 閉口又喪. 不開不閉, 十萬八千.
무문은 말한다.
자, 말해보라. 이것은 법을 설한 것인가, 법을 설하지 않은 것인가? 입을 열면 곧 그르치고, 입을 닫고 있으면 목숨을 잃는다. 입을 열지도 닫지도 않으면 십만 팔천 리 떨어져 있다.
【頌曰】白日青天, 夢中說夢. 捏怪捏怪, 誑謼一眾.
게송으로 이른다.
햇빛 쨍쨍한 밝은 대낮에
꿈속에서 꿈을 이야기하도다!
해괴하고도 해괴하여라,
한 무리 사람들을 속이는구나!
▶백추(白槌):설법을 하고자 할 때 먼저 대중에게 알리는 말을 하여 대중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만드는 절차. 선종에서는 법을 아는 존숙에게 그 소임을 맡겨서, 장로가 법좌에 앉자마자 말하기를 "법회에 모인 여러 스님네들이여, 마땅히 제일의제를 보아야 합니다."라고 한다.
▶사구백비(四句百非):사구분별(四句分別) · 사구문(四句門)이라 하여 변증법의 한 형식. 사구는 정립(定立) · 반정립(反定立) · 긍정종합(肯定綜合) · 부정종합(否定綜合)이니, 이제 유(有)와 공(空)으로 만유제법을 판정할 때에 제1구의 유(有)는 정립, 제2구의 무(無)은 반정립, 제3구의 역유역무(亦有亦無)는 긍정종합, 제4구의 비유비무(非有非無)은 부정종합이며, 처음 2구를 양단(兩單), 뒤의 2구를 구시구비(俱是俱非) 또는 쌍조쌍비(雙照雙非)라 한다. 백비는 부정을 거듭하는 것으로서, 몇 번이고 부정을 거듭할 지라도, 참으로 사물의 진상을 알기 어려울 때에 써서, 중생들의 유무에 견해에 대한 걸림을 없애게 하는 것.
26. 두 승려가 발을 말아 올리다(二僧卷簾)
清涼大法眼, 因僧齋前上參, 眼以手指簾. 時有二僧, 同去卷簾. 眼曰, 一得一失.
청량 대법안은 대중들이 점심 공양 전에 설법을 들으러 오자 손으로 발을 가리켰다. 그 때 두 승려가 함께 가서 발을 말아 올렸다.
법안이 말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다.”
【無門曰】且道. 是誰得誰失. 若向者裏著得一隻眼, 便知清涼國師敗闕處. 然雖如是, 切忌向得失裏商量.
무문은 말한다.
자, 말해보라. 누가 얻은 것이고 누가 잃은 것인가? 만약 여기에서 외짝 눈을 얻는다면 곧바로 청량국사가 실수한 곳을 알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더라도 결코 얻었느니 잃었느니 헤아리지는 말아야 한다.
【頌曰】卷起明明徹太空, 太空猶未合吾宗. 爭似從空都放下, 綿綿密密不通風.
게송으로 이른다.
말아 올리니 밝고 밝게 거대한 허공에 사무치나
거대한 허공도 오히려 나의 종지(宗旨)에는 맞지 않네.
어찌 허공마저도 모두 놓아버려서
전혀 빈틈없어 바람조차 통하지 않음만 같겠는가?
27.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不是心佛)
南泉和尚, 因僧問云, 還有不與人說底法麼. 泉云, 有. 僧云, 如何是不與人說底法. 泉云, 不是心, 不是佛, 不是物.
남전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은 법이 있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있다.”
승려가 말했다.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은 법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無門曰】南泉被者一問, 直得揣盡家私, 郎當不少.
무문은 말한다.
남전은 이 질문을 받고 곧바로 자기 집 재산을 다 털어놓았으니 꼴사납기가 이만저만 아니구나!
【頌曰】叮嚀損君德, 無言真有功. 任從滄海變, 終不為君通.
게송으로 이른다.
지나친 친절은 그대의 덕을 손상시키니,
말 없음이야말로 참된 공덕이 있는 것이네.
설령 푸른 바다가 변한다 해도
끝내 그대를 위해 말해주지 않겠네.
28. 오랫동안 용담을 사모하다(久響龍潭)
龍潭因德山請益抵夜. 潭云, 夜深, 子何不下去. 山遂珍重, 揭簾而出, 見外面黑, 卻回云, 外面黑. 潭乃點紙燭度與, 山擬接, 潭便吹滅. 山於此忽然有省, 便作禮. 潭云, 子見箇甚麼道理. 山云, 某甲從今日去, 不疑天下老和尚舌頭也. 至明日, 龍潭陞堂云, 可中有箇漢, 牙如劍樹, 口似血盆, 一棒打不回頭, 他時異日, 向孤峰頂上, 立吾道在. 山遂取疏抄, 於法堂前, 將一炬火提起云, 窮諸玄辨, 若一毫致於太虛, 竭世樞機, 似一滴投於巨壑. 將疏抄便燒, 於是禮辭.
용담에게 덕산이 거듭 가르침을 청하다가 밤이 깊었다.
용담이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그대는 그만 내려가는 것이 어떠한가?”
덕산이 인사를 하고 발을 걷고 나갔다가 밖이 캄캄한 것을 보고 돌아와서 말했다.
“밖이 캄캄합니다.”
용담이 이에 종이 초에 불을 붙여 건넸다. 덕산이 막 받으려고 하는 순간, 용담이 갑자기 촛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
덕산은 여기에서 홀연 깨달은 바가 있어 곧 절을 하였다.
용담이 말했다.
“그대는 도대체 어떤 도리를 보았는가?”
덕산이 말했다.
“제가 오늘 이후로 천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용담이 법당에 올라 말했다.
“만약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빨은 (맹수의)날카롭고 빽빽한 그것과 같고 입은 피를 가득 담은 (맹수의) 아가리와 같아서, 한 방망이를 때려도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면 훗날 외로운 봉우리 정상에서 나의 도를 세울 것이다.”
덕산이 마침내 법당 앞에 소초를 모아 놓고 손에 횃불을 치켜들고 말했다.
“현묘한 도리를 모두 통달했다 하더라도 터럭 하나를 커다란 허공에 두는 것과 같고, 세상의 온갖 이치를 설파한다 하더라도 물 한 방울을 거대한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는 소초를 불태우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無門曰】德山未出關時, 心憤憤, 口悱悱, 得得來南方, 要滅卻教外別傳之旨. 及到澧州路上, 問婆子買點心. 婆云, 大德, 車子內是甚麼文字. 山云, 金剛經抄疏. 婆云, 只如經中道, 過去心不可得, 見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大德要點那箇心. 德山被者一問, 直得口似匾檐. 然雖如是, 未肯向婆子句下死卻. 遂問婆子, 近處有甚麼宗師. 婆云, 五里外有龍潭和尚. 及到龍潭, 納盡敗闕, 可謂是前言不應後語. 龍潭大似憐兒不覺醜, 見他有些子火種, 郎忙將惡水, 驀頭一澆澆殺, 冷地看來一場好笑.
무문은 말한다.
덕산이 아직 촉관(蜀關, 촉 지방 즉 사천성)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는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서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기에 일부러 남방에 가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종지(宗旨)를 없애버리려고 하였다.
예주(澧州)로 가는 길에 이르러 한 노파에게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노파가 말했다.
“스님, 수레 속에 있는 것이 무슨 책입니까?”
덕산이 말했다.
“금강경 소초요.”
노파가 말했다.
“경 가운데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點心] 하십니까?”
덕산은 이 한 질문을 받고 곧바로 말문이 콱 막혔다. 비록 그러하였으나 노파의 말 아래 완전히 기가 죽지는 않았다. 마침내 노파에게 물었다.
“근처에 어떤 종사가 계십니까?”
노파가 말했다.
“5리 밖에 용담 화상이 계십니다.”
그러고는 용담에 도착하여 완전히 망하고 말았으니, 앞에 한 말과 뒤에 한 말이 서로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하겠다.
용담은 부모가 자식을 너무 어여삐 여기면 추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그가 조그마한 불씨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더러운 물을 가져다가 곧바로 끼얹어 꺼버렸으니, 냉정하게 살펴보면 한바탕 웃음거리로다.
【頌曰】聞名不如見面, 見面不如聞名. 雖然救得鼻孔, 爭奈瞎卻眼睛.
게송으로 이른다.
명성을 듣는 것보다 직접 만나 보는 게 낫고
직접 만나보는 것보다 명성을 듣는 게 나을 때가 있다.
비록 콧구멍은 구해 얻었으나
눈을 멀게 하였으니, 어찌 하리오?
29.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非風非幡)
六祖因風颺剎幡, 有二僧對論. 一云, 幡動. 一云, 風動. 往復曾未契理, 祖云, 不是風動, 不是幡動. 仁者心動. 二僧悚然.
바람이 절의 깃발을 날리는데 두 승려가 서로 논쟁하였다.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하며 옥신각신 이치에 맞지 않기에, 육조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두 승려는 두려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無門曰】不是風動, 不是幡動, 不是心動, 甚處見祖師. 若向者裏見得親切, 方知二僧買鐵得金, 祖師忍俊不禁一場漏逗.
무문은 말한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어느 곳에서 조사를 볼 수 있겠는가?
만약 여기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바야흐로 두 승려는 쇳조각을 산다는 것이 금덩이를 얻었고, 조사는 참을성이 없어 한바탕 허물을 드러냈음을 알게 될 것이다.
【頌曰】風幡心動, 一狀領過. 只知開口, 不覺話墮.
게송으로 이른다.
바람과 깃발,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
한 장의 영장(令狀)으로 다스릴 허물일세.
그저 입을 열 줄만 알았지
말에 떨어진 줄은 모르는구나.
30. 이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
馬祖因大梅問, 如何是佛. 祖云, 即心是佛.
마조에게 대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이 마음이 그대로 바로 부처이다.”
【無門曰】若能直下領略得去, 著佛衣, 喫佛飯, 說佛話, 行佛行, 即是佛也. 然雖如是, 大梅引多少人, 錯認定盤星. 爭知道說箇佛字, 三日漱口. 若是箇漢, 見說即心是佛, 掩耳便走.
무문은 말한다.
만약 곧바로 깨달을 수 있다면, 부처의 옷을 입고, 부처의 밥을 먹고, 부처의 말을 하고, 부처의 행동를 할 것이니 곧 부처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대매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저울 눈금을 잘못 읽게 하였다.
어찌 알았겠는가?
부처라는 글자를 말하기만 해도 3일이나 입을 닦았다는 것을!
만약 이와 같은 사람이 ‘이 마음 그대로 바로 부처’란 말을 듣는다면 곧장 귀를 막고 달아날 것이다.
【頌曰】青天白日, 切忌尋覓. 更問如何, 抱贓叫屈.
게송으로 이른다.
밝은 대낮처럼 명백하니
결코 찾지 말아야 한다.
다시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훔친 물건을 안고 죄가 없다 외치는 짓이다.
31. 조주가 노파를 간파하다(趙州勘婆)
趙州, 因僧問婆子, 臺山路向甚處去. 婆云, 驀直去. 僧纔行三五步. 婆云, 好箇師僧, 又恁麼去. 後有僧舉似州. 州云, 待我去與爾勘過這婆子. 明日便去, 亦如是問, 婆亦如是答. 州歸謂眾曰, 臺山婆子, 我與爾勘破了也.
어떤 승려가 노파에게 물었다.
“오대산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노파가 말했다.
“곧장 가시오.”
승려가 막 서너 걸음 걸어가자 노파가 말했다.
“훌륭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뒤에 한 스님이 조주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하자 조주가 말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그 노파의 속임수를 알아보겠다.”
다음날 곧 가서 앞서와 같이 물으니 노파도 앞서와 같이 대답하였다. 조주가 돌아와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오대산 노파의 속임수를 완전히 간파해 버렸다.”
【無門曰】婆子只解坐籌帷幄, 要且著賊不知, 趙州老人, 善用偷營劫塞之機, 又且無大人相. 撿點將來, 二俱有過. 且道, 那裏是趙州勘破婆子處.
무문은 말한다.
노파는 다만 막사에 앉아서 작전만 짤 줄 알았지 도적이 든 줄은 몰랐고, 조주 노인은 진영을 훔치고 요새를 빼앗는 기술은 잘 쓸 줄 알았지만 또한 대인의 모습은 없었다. 점검해 보면 두 사람 모두 허물이 있다.
자, 말해 보라. 어디가 조주가 노파의 정체를 알아차린 곳인가?
【頌曰】問既一般, 答亦相似. 飯裏有砂, 泥中有刺.
게송으로 이른다.
물음이 이미 같으니
대답도 역시 비슷하구나.
밥 속에 모래가 있고
진흙 가운데 가시가 있도다.
32. 외도가 부처님께 묻다(外道問佛)
世尊, 因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據座. 外道贊歎云, 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乃具禮而去. 阿難尋問佛, 外道有何所證, 贊歎而去. 世尊云, 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에게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도 묻지 않고, 말 없음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외도가 찬탄하며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셔서 제 미혹의 구름을 열어 저로 하여금 깨달음에 들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곧 예를 갖추고는 물러갔다.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는 무슨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찬탄하고 물러갔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다.”
【無門曰】阿難乃佛弟子, 宛不如外道見解. 且道, 外道與佛弟子, 相去多少.
무문은 말한다.
아난은 바로 부처님의 제자인데도 외도의 견해만 못한 것 같구나!
자, 말해보라. 외도와 불제자가 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頌曰】劍刃上行, 冰稜上走. 不涉階梯, 懸崖撒手.
게송으로 이른다.
칼날 위를 걷고
얼음 위를 달린다.
계단과 사다리를 밟지 않고
절벽에서 손을 놓아 버린다.
33.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馬祖, 因僧問, 如何是佛. 祖曰, 非心非佛.
마조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無門曰】若向者裏見得, 參學事畢.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면 배우는 일을 다 마친 것이다.
【頌曰】路逢劍客須呈, 不遇詩人莫獻. 逢人且說三分, 未可全施一片.
게송으로 이른다.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모름지기 칼을 보여주고
시인을 만나지 못하면 시를 바쳐서는 안 된다.
사람을 만나거든 삼할만 말해야지
한 개 마음을 완전히 베풀어서는 안 된다.
34. 지혜는 도가 아니다(智不是道)
南泉云, 心不是佛, 智不是道.
남전이 말했다.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니다.”
【無門曰】南泉可謂, 老不識羞. 纔開臭口, 家醜外揚. 然雖如是, 知恩者少.
무문은 말한다.
남전은 늙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하겠다. 냄새나는 입을 열자마자 집안의 추한 꼴을 밖으로 드러내 버렸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은혜를 아는 자가 드물다.
【頌曰】天晴日頭出, 雨下地上濕. 盡情都說了, 只恐信不及.
게송으로 이른다.
날이 맑으면 해가 나오고
비가 내리면 땅이 젖는다.
정성을 다해 모두 말하였지만
다만 믿지 않을까 두려울 뿐.
35. 천녀의 혼이 나가다(倩女離魂)
五祖, 問僧云, 倩女離魂, 那箇是真底.
오조법연(五祖法演)이 어느 승려에게 물었다.
“천녀는 혼이 나갔다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가?”
【無門曰】若向者裏悟得真底, 便知出殼入殼, 如宿旅舍. 其或未然, 切莫亂走. 驀然地水火風一散, 如落湯螃蟹, 七手八腳. 那時莫言不道.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진짜를 깨닫을 수 있다면 곧 몸에서 나와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여관에서 하룻밤 묵는 것과 같음을 알 것이다. 만약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결코 어지러이 헤매지 말아야 한다. 갑자기 육체(地·水·火·風)가 흩어지면 마치 끓는 물에 떨어진 게처럼 팔 다리를 버둥거리게 될 것이니 그때 가서 말해주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
【頌曰】雲月是同, 溪山各異. 萬福萬福, 是一是二.
게송으로 이른다.
구름과 달은 동일한데
계곡과 산은 각기 다르다네.
좋고도 좋구나!
하나인가, 둘인가?
▶『태평광기(太平廣記,978)』에 실려 있는 「이혼기(離婚記)」에 다음과 같은 천녀 이야기가 있다. 중국 형양 땅에 장감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예쁜 딸 천녀(倩女)가 있었는데, 장감은 농담으로 가끔 외조카인 왕주에게 천녀를 데려가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지방의 고관이 그녀의 미모에 반했다. 장감은 전날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천녀를 그 고관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왕주를 연모하던 천녀는 깊은 상심에 빠지게 되었다. 왕주 또한 운명을 한탄하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그 곳을 떠나기로 했다. 왕주가 배를 타고 막 떠나려고 하는데 저편 언덕에서 '오라버니'라는 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멀고 먼 촉나라로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았다. 아이도 둘이나 낳고 5년 동안 행복하게 꿈같은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천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고 떠나오면서 생긴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늦게나마 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결혼허락을 받겠다고 다시 고향을 찾았다. 집 근처의 나루터에 도착한 왕주는 천녀를 배에 남겨 두고 혼자 장감의 집을 방문했다. 왕주는 장감에게 지금까지 촉에서 두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 장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감은 말했다. '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내 딸은 지금 저 규방에서 오랫동안 병을 앓고 누워 있는데.' 이 말을 듣고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왕주였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니 천녀는 저와 함께 살다가 지금 나루터 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감의 가족들은 규방에서 알고 있는 천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또 한편 장감은 천녀가 타고 있다는 배에 사람을 보냈다. 배에서 내려 수레를 타고 온 천녀가 집안에 들어서고, 규방의 병석에서 털고 일어난 또 다른 천녀가 마당에서 서로 마주치는 순간, 둘은 거짓말같이 하나로 합쳐졌다.
36. 길에서 도인을 만나다(路逢達道)
五祖曰, 路逢達道人, 不將語默對. 且道, 將甚麼對.
오조가 말했다.
“길에서 도에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나 침묵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자, 말해 보라. 무엇으로 대해야 하겠는가?”
【無門曰】若向者裏, 對得親切, 不妨慶快. 其或未然, 也須一切處著眼.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딱 맞게 상대할 수 있다면 참으로 유쾌하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모름지기 모든 곳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頌曰】路逢達道人, 不將語默對. 攔腮劈面拳, 直下會便會.
게송으로 이른다.
길에서 도에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나 침묵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뺨에다 곧장 주먹을 날리니
즉시 알아차리면 곧 깨달으리라.
37.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
趙州, 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州云, 庭前柏樹子.
조주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다.”
【無門曰】若向趙州答處, 見得親切, 前無釋迦, 後無彌勒.
무문은 말한다.
만약 조주의 대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앞에는 석가가 없고 뒤로는 미륵이 없을 것이다.
【頌曰】言無展事, 語不投機. 承言者喪, 滯句者迷.
게송으로 이른다.
말은 사실을 드러낼 수 없고
말은 기틀에 들어맞지 않는다네.
말을 따르는 자는 목숨을 잃고
글귀에 막히는 자는 헤매게 되리라.
38. 소가 창문을 통과하다(牛過窓櫺)
五祖曰, 譬如水牯牛過窗櫺, 頭角四蹄都過了, 因甚麼尾巴過不得.
오조(五祖)가 말했다.
“예컨대 물소가 격자 창문을 통과할 때 머리와 뿔, 네 다리는 모두 통과했는데 어째서 꼬리는 통과하지 못하는가?”
【無門曰】若向者裏, 顛倒著得一隻眼, 下得一轉語, 可以上報四恩, 下資三有. 其或未然, 更須照顧尾巴始得.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돌이켜 외짝 눈을 얻고 한 마디 말을 할 수 있다면, 위로는 네 가지 은혜(四恩)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계(三界)의 중생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그러하지 못하다면 마땅히 다시 꼬리를 잘 살펴봐야만 할 것이다.
【頌曰】過去墮坑塹, 回來卻被壞. 者些尾巴子, 直是甚奇怪.
게송으로 이른다.
통과하면 구덩이에 떨어지고
되돌아가면 오히려 부서지네.
이 하찮은 꼬리란 놈이
참으로 매우 기괴하도다!
39. 운문의 말에 말려들다(雲門話墮)
雲門, 因僧問, 光明寂照遍河沙. 一句未絕, 門遽曰, 豈不是張拙秀才語. 僧云, 是. 門云, 話墮也. 後來死心, 拈云, 且道, 那裏是者僧話墮處.
운문 문언(雲門 文偃)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밝은 빛이 고요히 온 세상을 비추니...”
한 구절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운문이 갑자기 말했다.
“그것은 장졸 수재(張拙秀才)의 말이 아닌가?”
승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말에 말려들었구나!”
후에 황룡 사심(黃龍 死心)이 이 이야기를 들어 말했다.
“자, 말해보라. 어디가 이 승려가 말에 말려든 곳인가?”
【無門曰】若向者裏, 見得雲門用處孤危, 者僧因甚話墮, 堪與人天為師. 若也未明, 自救不了.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운문의 뛰어난 작용처와, 이 승려가 어째서 말에 말려들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될 만하다. 만약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頌曰】急流垂釣, 貪餌者著. 口縫纔開, 性命喪卻.
게송으로 이른다.
급한 물결에 낚시를 드리우니
미끼를 탐내는 놈이 덥석 무네.
입을 열자마자
목숨을 잃어버리도다.
▶장졸수재(張拙 秀才)가 처음엔 선월(禪月) 선사의 지도하에 있다가 석상경제 선사를 찾아뵈었다. 그때 석상 선사가 묻기를 "그대의 성은 무엇인가?"라고 하자, "성은 장(張)이고 이름은 졸(拙)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석상 선사가 "교묘함(巧)을 찾아도 얻을 수 없는데 졸렬함(拙)이 어떻게 왔는가?"라고 말하자 깨달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밝은 빛이 고요히 온 세상을 비추니, 범부, 성인, 일체중생이 모두 나의 가족일세.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나니, 육근이 조금만 움직여도 구름에 가려지네.
번뇌를 끊으려 하면 거듭 병이 더해지고, 진여에 나아감도 또한 삿된 것일세.
세상의 인연따라 막힘이 없으면, 열반과 생사도 허공의 꽃이로다."
(光明寂照河沙, 凡聖含靈共我家. 一念不生全體現, 六根動被雲遮. 斷除煩惱重增病, 趣向眞如亦是邪. 隨順世緣無碍, 涅槃生死是空華.)
40. 물병을 차서 넘어뜨리다(趯倒淨甁)
溈山和尚, 始在百丈會中充典座, 百丈將選大溈主人, 乃請同首座對眾下語, 出格者可往. 百丈遂拈淨瓶, 置地上設問云, 不得喚作淨瓶, 汝喚作甚麼. 首座乃云, 不可喚作木[木+突]也. 百丈卻問於山. 山乃趯倒淨瓶而去. 百丈笑云, 第一座輸卻山子也. 因命之為開山.
위산 화상은 처음에 백장의 회상에서 전좌(典座)를 맡고 있었다. 백장이 장차 대위산(大潙山)의 주인을 선발하려고 수좌(首座)와 함께 대중들 앞에서 한 마디씩 하게 하여 격식(格式)을 벗어난 사람이 갈 수 있도록 하였다.
백장이 물병(淨甁)을 들어 땅 위에 놓고는 물었다.
“물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자네는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수좌가 이에 말했다.
“나무토막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백장이 이번에는 위산에게 물었다. 그러자 위산은 물병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는 나가버렸다. 백장은 웃으며 말했다.
“제1좌가 산자(山子,위산의 호 혹은 촌놈,어리숙한 사람)에게 졌구나.”
그리하여 위산에게 명하여 개산(開山)하게 하였다.
【無門曰】溈山一期之勇, 爭奈跳百丈圈圚不出. 檢點將來, 便重不便輕. 何故. 聻, 脫得盤頭, 擔起鐵枷.
무문은 말한다.
위산의 한바탕 용기도 백장의 올가미를 뛰쳐나와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어찌하겠는가? 자세히 살펴보면 무거운 것을 편히 여기고 가벼운 것을 편히 여기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보라! 두건을 벗어버리고 쇠칼을 걸머졌도다!
【頌曰】颺下箍籬并木杓, 當陽一突絕周遮. 百丈重關攔不住, 腳尖趯出佛如麻.
게송으로 이른다.
조리와 나무국자를 내팽개치고
정면으로 돌파하여 장애물을 끊었네.
백장의 겹겹 관문도 멈추게 하지 못하니
발끝에서 부처를 삼대처럼 쏟아 내네.
▶전좌(典座):선원에서 여러 승려의 방과 이부자리, 음식 등을 담당하는 소임
▶두건(盤頭):머리를 싸맨 두건, 여기서는 위산영우가 전좌의 직을 수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 삭발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41. 달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다(達磨安心)
達磨面壁, 二祖立雪斷臂云, 弟子心未安, 乞師安心. 磨云, 將心來, 與汝安. 祖云, 覓心了不可得. 磨云, 為汝安心竟.
달마가 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조(二祖)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고 말했다.
“제자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스승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가 말했다.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위해 편안하게 해 주겠다.”
이조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無門曰】缺齒老胡, 十萬里航海特特而來, 可謂是無風起浪. 末後接得一箇門人, 又卻六根不具. 咦, 謝三郎, 不識四字.
무문은 말한다.
이빨 빠진 늙은 오랑캐가 십만 리 뱃길을 일부러 왔으니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격이라 하겠다. 끝에 가서 제자 한 사람을 얻었으나 또한 육근을 갖추지 못했다.
허허! 사(謝)씨 집 셋째 아들놈은 네 글자도 모르는구나!
【頌曰】西來直指, 事因囑起. 撓聒叢林, 元來是爾.
게송으로 이른다.
서쪽에서 와서 곧바로 가리키니
부촉함으로 인해 일이 벌어졌네.
총림(叢林)을 요란하게 만든 것이
원래 바로 너로구나!
▶사삼랑 불식사자(謝三郎 不識四字):사씨네 셋째 아들은 네 글자도 모른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아는 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을 표현한 중국속담. 사삼랑은 아무개라는 뜻으로 배움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사자(四字)는 개원통보(開元通寶)와 같이 동전의 표면에 새겨진 네 글자인 전문(錢文)을 말한다. 여기의 뜻은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으로서, 달마가 일으킨 평지풍파는 도리어 세상을 구제하는 큰 일이었고, 팔이 하나 없는 혜가는 도리어 세계의 실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안목을 얻었다는 숨을 뜻을 모르면 안된다는 말.
42. 여자가 선정에서 나오다(女子出定)
世尊, 昔因文殊至諸佛集處, 值諸佛各還本處, 惟有一女人, 近彼佛坐入於三昧. 文殊乃白佛, 云何女人得近佛坐, 而我不得. 佛告文殊, 汝但覺此女, 令從三昧起, 汝自問之. 文殊遶女人三匝, 鳴指一下, 乃托至梵天, 盡其神力, 而不能出. 世尊云, 假使百千文殊, 亦出此女人定不得. 下方過一十二億河沙國土, 有罔明菩薩, 能出此女人定. 須臾罔明大士, 從地湧出, 禮拜世尊. 世尊敕罔明, 卻至女人前, 鳴指一下, 女人於是從定而出.
예전에 문수가 여러 부처님들이 모인 곳에 이르자 마침 여러 부처님들이 각자 본래 처소로 돌아가시는데, 오직 한 여인만이 세존 가까이에 앉아서 삼매에 들어 있었다.
문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째서 여인은 부처님 가까이 앉을 수가 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 여인을 깨워 삼매로부터 일어나게 하고는 직접 물어 보아라.”
문수가 여인 주위를 세 번 돌고, 손가락을 한 번 튕겨 범천에까지 들리도록 그 신통력을 다 부려 보았으나 삼매에서 나오게 할 수 없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설사 백 명, 천 명의 문수라도 이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할 것이다. 아래쪽으로 십이억 항하사 국토를 지나면 망명보살이 있으니 그가 능히 이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망명보살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서 세존께 절을 하였다. 세존께서 망명에게 여인 앞에 가서 손가락을 한 번 튕기게 하니 여인이 이에 선정으로부터 나왔다.
【無門曰】釋迦老子, 做者一場雜劇, 不通小小. 且道, 文殊是七佛之師, 因甚出女人定不得, 罔明初地菩薩, 為甚卻出得. 若向者裏, 見得親切, 業識忙忙, 那伽大定.
무문은 말한다.
석가 늙은이가 이 한 바탕 촌극을 꾸몄으나 시원치는 않았다. 자, 말해보라. 문수는 일곱 부처의 스승인데 어째서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하였으며, 망명은 초지보살인데 어째서 도리어 나오게 할 수 있었는가? 만약 여기에서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면 끊임없는 사량분별이 그대로 부처님의 큰 삼매가 될 것이다.
【頌曰】出得出不得, 渠儂得自由. 神頭并鬼面, 敗闕當風流.
게송으로 이른다.
나오든 나오지 못하든
그도 나도 자유를 얻는다.
귀신의 머리와 도깨비 탈,
실패도 마땅히 풍류인 것을!
43. 수산의 죽비(首山竹篦)
首山和尚, 拈竹篦示眾云, 汝等諸人, 若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汝諸人, 且道. 喚作甚麼.
수산 화상이 죽비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만약 죽비라고 부른다면 (법에) 저촉되는 것이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사물에) 위배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한번 말해 보라. 무엇이라 부르겠느냐?”
【無門曰】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不得有語, 不得無語. 速道, 速道.
무문은 말한다.
죽비라고 부르면 저촉되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으면 위배되니, 말을 해도 안 되고 말을 안 해도 안 된다. 빨리 말해 보라! 빨리!
【頌曰】拈起竹篦, 行殺活令. 背觸交馳, 佛祖乞命.
게송으로 이른다.
죽비를 들어 올려
죽이고 살리는 명령을 행하도다!
위배와 저촉이 번갈아 쫓으니
부처와 조사도 목숨을 비는구나!
44. 파초의 주장자(芭蕉拄杖)
芭蕉和尚示眾云, 爾有拄杖子, 我與爾拄杖子, 爾無拄杖子, 我奪爾拄杖子.
파초혜청 화상이 대중들에게 말씀하였다.
“그대에게 주장자가 있으면 내가 그대에게 주장자를 줄 것이고, 그대에게 주장자가 없으면 나는 그대의 주장자를 빼앗을 것이다.”
【無門曰】扶過斷橋水, 伴歸無月村, 若喚作拄杖, 入地獄如箭.
무문은 말한다.
다리가 끊어진 물을 이것에 의지하여 건너고, 달도 없는 마을로 이것과 벗 삼아 돌아가오니, 만약 이것을 주장자라고 부른다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頌曰】諸方深與淺, 都在掌握中. 撐天并拄地, 隨處振宗風.
게송으로 이른다.
제방(諸方)의 깊고 얕음이
모두 이 손아귀 가운데 있도다!
하늘을 받치고 땅을 지탱하니
어디서나 종풍(宗風)을 떨치도다!
45. 그는 누구인가(他是阿誰)
東山演師祖曰, 釋迦彌勒, 猶是他奴. 且道, 他是阿誰.
동산의 (오조) 법연 노스님이 말했다.
“석가와 미륵도 오히려 그의 종이다. 자, 말해보라. 그는 누구인가?”
【無門曰】若也見得他分曉, 譬如十字街頭撞見親爺相似, 更不須問別人, 道是與不是.
무문은 말한다.
만약 그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마치 번잡한 네거리에서 자기 친아버지를 만난 것과 같아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가 맞는지 안 맞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으리라.
【頌曰】他弓莫挽, 他馬莫騎. 他非莫辨, 他事莫知.
게송으로 이른다.
남의 활을 당기지 말고
남의 말을 타지 말라.
남의 잘못을 말하지 말고
남의 일을 알려고 하지 말라.
46. 백척간두에서 진일보(竿頭進步)
石霜和尚云, 百尺竿頭如何進步. 又古德云, 百尺竿頭坐底人, 雖然得入未為真. 百尺竿頭須進步, 十方世界現全身.
석상 화상이 말했다.
“백 척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
다시 옛 사람이 말했다.
“백 척 장대 끝에 앉은 사람은 비록 도(道)에 들어 왔으나 아직 참된 것은 아니다. 백 척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온 우주에 온 몸을 드러낼 것이다.”
【無門曰】進得步, 翻得身, 更嫌何處不稱尊. 然雖如是, 且道, 百尺竿頭如何進步. 嗄.
무문은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몸을 뒤집을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선들 존귀하다 불리지 않겠는가?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 말해보라! 백 척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 허어!
【頌曰】瞎卻頂門眼, 錯認定盤星. 拚身能捨命, 一盲引眾盲.
게송으로 이른다.
정수리 위의 눈을 감아버려서
저울의 첫 눈금을 잘못 읽는다면,
아낌없이 목숨을 버릴 수 있더라도
한 장님이 뭇 장님을 이끄는 것이다.
47. 도솔의 세 관문(兜率三關)
兜率悅和尚, 設三關問學者. 撥草參玄只圖見性, 即今上人性在甚處. 識得自性, 方脫生死, 眼光落時, 作麼生脫. 脫得生死, 便知去處, 四大分離, 向甚處去.
도솔 열화상은 세 가지 관문을 만들어 배우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번뇌망상을 헤치고 불법을 찾음은 다만 견성(見性)하기 위함인데, 지금 그대의 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
스스로의 성품을 알게 되면 바야흐로 생사에서 벗어나는데, 죽음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해탈할 것인가?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면 곧 갈 곳을 아는데, 육체(地·水·火·風)가 흩어지면 어느 곳으로 가는가?”
【無門曰】若能下得此三轉語, 便可以隨處作主, 遇緣即宗. 其或未然, 麤餐易飽, 細嚼難飢.
무문은 말한다.
만약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곧바로 어디에서나 주인이 되어서 인연을 만날 때마다 곧바로 종지(宗旨)에 부합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급히 삼키면 쉽게 배부르지만 꼭꼭 씹어 먹어야 다시 배고프지 않느니라.
【頌曰】一念普觀無量劫, 無量劫事即如今. 如今覷破箇一念, 覷破如今覷底人.
게송으로 이른다.
한 순간에 무량한 세월을 두루 살펴보니
무량한 세월의 일이 곧바로 지금이네.
지금 이 한 순간을 꿰뚫어 보면
지금 꿰뚫어 보는 사람마저 꿰뚫어 보리.
48.건봉의 외길(乾峰一路)
乾峰和尚, 因僧問, 十方薄伽梵, 一路涅槃門, 未審, 路頭在甚麼處. 峰拈起拄杖, 劃一劃云, 在者裏. 後僧請益雲門, 門拈起扇子云, 扇子[足+孛]跳, 上三十三天, 築著帝釋鼻孔, 東海鯉魚打一棒, 雨似盆傾.
건봉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시방의 부처님들이 한 길로 열반문에 들었다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길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건봉이 주장자를 집어 들어 허공에 한 획을 긋고 말했다.
“여기에 있다!”
나중에 그 스님이 운문에게 다시 가르침을 청했다.
운문은 부채를 집어 들고 말했다.
“이 부채가 뛰어 33천에 올라가 제석천왕의 콧구멍을 찌르고, 동해의 잉어를 한 방망이 때리니 비가 물동이를 기울인 듯 쏟아진다.”
【無門曰】一人向深深海底行, 簸土揚塵, 一人於高高山頂立, 白浪滔天. 把定放行, 各出一隻手, 扶豎宗乘. 大似兩箇馳子相撞著, 世上應無直底人, 正眼觀來, 二大老總未識路頭在.
무문은 말한다.
한 사람은 깊고 깊은 바다 밑을 걸어가서 흙을 까불러 먼지를 일으켰고, 한 사람은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서서 흰 파도가 하늘까지 넘치게 하였다. 꼼짝 못하게 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놓아주기도 하니, 각각 한 손을 내밀어 선(禪)의 종지(宗旨)을 떠받쳐 세웠다. 마치 양쪽에서 달리던 두 사람이 서로 맞부딪친 것과 같아서 세상에 정면으로 대적할 사람이 없으나, 바른 눈으로 살펴보건대 두 노인 모두 아직 길이 있는 곳을 알지는 못했다.
【頌曰】未舉步時先已到, 未動舌時先說了. 直饒著著在機先, 更須知有向上竅.
게송으로 이른다.
미처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이미 도달하였고
혓바닥을 움직이기도 전에 벌써 말해 버렸네.
설령 한 수 한 수 기선을 제압했다 하더라도
다시 향상(向上)의 도리가 있음을 알아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