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심 이문 삼대(一心二門三大)
기신론의 교리적 내용의 핵심은 입의분(立義分)에 제시되어 있다. 요약하면 '1심 2문 3대(一心二門三大)'인바,
* 일심(一心) = 중생심(衆生心):+ 本心= 일체의 현상과 그 본원을 포섭하며, 우주의 본심이 마음에 의한다.(하나님의 마음 = 불성)
*이문(二門) = 심진여문(心眞如門): 불성(하나님)의 본질 그 자체.
심생멸문(心生滅門): 인연따라 나투는 중생심의 속성과 활동
*삼대(三大) 체(體): 모든 것을 포괄하며 유일 실재인 (空= 하나님)의 본체
상(相): 모든 훌륭한 성질과 무한한 공덕을 갖춘 (緣起性=하나님)의 양상
용(用): 인과에 따라 모든 일을 하는 쓰임 바라밀(보살=하나님)의 활동
기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궁극적 개념은 '한 마음(一心)'이며, 이를 종교적·철학적·심리적 측면 등에서 다각도로 고찰하고, 중생을 깨침과 구제로 이끄는 목표점으로 제시한다. 이 '한 마음'이 곧 본성=하나님의 마음이자 불성=하나님 그 자체이며, 또한 모든 중생의 본래 마음이다. 이 '한 마음'이 일체 현상의 근원이라는 것이 기신론의 기본 강령이라 하겠다.
이 세계 모든 현상은 거짓이며 오직 마음의 지어 낸 바이다.
三界虛僞 唯心所作
기신론의 핵심은 '한 마음(一心)'인데, 이것을 그것 자체 즉 본질적 측면에서 파악하고 설명하는 일과, 경험적 현상과 관련해서 파악 설명하는 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일심(一心)이 이문(二門)으로 벌려지는 것인바,
*한 마음(一心) 심진여문(心眞如門)- 변하지 않는 마음
심생멸문(心生滅門) - 인연따라 변해가는 마음
인데, 이를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고쳐 써 보면
마음(불성, 본성)=하나님 => 본질적 측면(noumena)
=> 현상적 측면(phenomena)
[유일한 실재(唯一實在)]으로 바꿔 볼 수 있겠다.
'한 마음' 그 자체를 다루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은 우리의 개념과 언어,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알 수도 없는 궁극의 세계이므로 '공(空)'이란 말로 초경험성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관불교(中觀佛敎)'의 공사상은 바로 '한마음'의 본질적 측면을 강조한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 마음'이 구체적 경험의 세계에 나투어지는 양상을 다루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은 경험이 이루어지는 인식(認識)에서 주관과 객관의 분리와, 생겼다 사라지는(生滅) 현상들의 본성에 대한 고찰로 '유식불교(唯識佛敎)'의 아라야식(Alaya識)이론을 다루고 있다.
절대(絶對) 무분별(無分別)인 공(空)의 자리에서 어떻게 상대(相對) 분별(分別)의 현상(現象)세계의 경험과 인식이 가능해지는 것인가? 절대 공의 자리를 체(體)라 하면 현상의 움직임과 기능을 용(用)이라 할 수 있는데, 체에서 직접 용이 나투어질 수 없으므로 이 양자를 잇는 다리가 되는 것이 상(相)이다. 다시 말해 불변의 체에서 변하는 사물세계에 응용이 가능해지려면 개념적 도식을 거쳐야 이루어진다.
그런데 체·상·용 세 가지 측면이 사실은 '한 마음(一心)'이 나투어지는 것이므로 이 마음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한 가장 큰 체·상·용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일심삼대(一心三大)라 한다. 즉 체대(體大)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유일한 실재로서 일체의 분별이나 증감이 없다. 상대(相大)는 모든 훌륭한 성질과 공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용대(用大)는 경험적 세게와 그 너머 세계의 모든 좋은 인과(因果)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 큰 체·상·용을 의인화한다면 삼신불(三身佛)과 대응시켜 볼 수도 있다. 법신불(法身佛)은 체대, 보신불(報身佛)은 상대, 화신불(化身佛)은 용대와 대응한다. 이를 좀더 구체화하면 이름으로 불러서 신앙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각각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로 나타내며, 형상화하여 법당에 모시도록 한 것은 신심을 불러일으키려는 하나의 방편이다. 아미타불을 비롯하여 이상적 덕목의 구현인 부처님은 다양하게 있으며, 이들은 대체로 보신불에 속한다고 하겠다. 석가모니불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로서 현재의 화신불이다.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불도 여럿 있었다고 하며, 미래세에 올 구원의 화신불은 미륵불이라 하여 미륵 신앙이 중생들의 희망을 고취하는 신앙으로 자리잡아 왔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말인 하나님으로 이를 표현하면, 바로 기독교적 표현과 비교되는바, 법신불은 하나님 아버지[성부(聖父)], 보신불은 성령(聖靈), 화신불은 하나님의 아들 [성자(聖子)]과 대응된다. 이상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한 마음(一心)=>체대(體大): 법신불(法身佛) = 진여(眞如) = 비로자나불: 하나님 아버지(聖父)
=>상대(相大): 보신불(報身佛) = 여래장(如來藏) = 아미타불: 성령(聖靈)
=>용대(用大): 화신불(化身佛) = 여래(如來) = 석가모니불: 하나님의 아들(聖子)
(2) 현상과 인식[심생멸(心生滅)]
인식은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한 마음(一心)'은 이러한 분리 이전의 절대 공의 자리이기 때문에 이를 언어나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헤아려 알 수도 없다. 그러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객관적 대상의 인식은 어떻게 해서 가능하며 그 기원은 무엇인가?
기신론은 인식에 관련된 네 가지 요소를 설정한다. 진여(眞如), 무명(無明), 망심(妄心), 망경계(忘境界),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한 마음'의 본질적 측면을 인격화하면 하나님(眞如)이라 하겠는데, 이 하나님 자리는 맑은 하늘과 같이 공(空)하다. 여기에 어둠(無明)의 사탄이, 맑은 하늘에 바람이 불면 구름이 일 듯이, 욕망의 바람을 불어'나(妄心)'가 생기면서 대응하여 현상계(妄境界)가 일어난다. 그러나 이 전체는 원래 하나이며, 태극이 음양으로 갈라지고 만상으로 벌어지듯 각 요소는 '한 마음(一心)'의 갈라 본 양상일 뿐 각각의 요소가 실재인 것은 아니다. 서로 상대적으로 의지하여 나타나는 것이므로 무자성(無自性)이다. 여기서 보듯이 기신론의 주장은 우리의 앞에 전개되는 모든 현상과 그것을 인식하는 주관의 분리 생성의 원인을 무명(無明)이라 보았는데, 성경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가 곧 사탄이라 하겠다. 기신론은 모든 인식대상(경계(境界)과 주관[아(我)]의 원인을 무명(無明)이라고 천명한다.
일체의 생각과 그 대상은 무명을 원인으로 하여 생긴다.
無明 能生 一切深法
이 무명을 기점으로 하여 3단계의 세밀한 인식 성립과정과 6단계의 인식 후 심리적 과정이 차례로 일어나 도합 9단계의 인식과정이 전개된다.
세밀한상 => ①무명업상(無明業相): '한 마음'에 첫 움직임이 일어남
②능견상(能見相): 인식의 주체가 생김
③경계상(境界相): 인식의 대상이 따라서 나타남
거친상 => ④지상(智相): 대상을 분별하고 헤아려 아는 과정
⑤상속상(相續相): 생각이 일어나 계속 이어지는 과정
⑥집취상(執取相): 기억에 얽매어 집착하는 과정
⑦계명자상(計名字相): 언어와 개념을 실체로 보는 과정
⑧기업상(起業相): 행위의 업을 짓는 과정
⑨업계고상(業繫苦相): 업에 얽매어 괴로움을 받는 과정
여기서 상(相)이라 함은 일종의 도식[(圖式) scheme]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상이 인식 주체의 정신적 기능화가 되었을 때 이를 식(識)이라 한다. 상(相)에 대응하는 식을 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부른다.
다섯 가지 인식(五意) => 업상(業相) →업식(業識)
=> 능견상(能見相)→전식(轉識)
=> 경계상(境界相)→현식(現識)
=> 지상(智相)→지식(智識)
=> 상속상(相續相)→상속식(相續識)
이상의 다섯 가지 식은 의지나 감정이 작용하지 않는 보이는 그대로를 보는 인식작용이라 하겠다. 이어서 기신론의 기본적 자연관이 나온다.
그러므로 일체의 욕망(慾望)과 사물(事物)과 관념(觀念), 한 마디로 우리가 생각을 품을 수 있는 모든 대상(三界)은 허위(虛僞)이며 오직 마음의 조작(造作)이다. 마음을 떠나면 감각(感覺)과 사고(思考)의 대상(六塵境界)이 없어진다. 이 말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사물과 현상은 마음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며 상념(想念)에 의하여 생겨난다. 모든 분별(分別)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을 본다는 것은 논리적(論理的)으로 불가능하다. 그것은 대상이 없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상계(現象界)의 모든 대상은 우리의 무명(無明)과 그로 인한 헛된 마음으로 말미암아 인식(認識)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사물과 현상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 같다. 그것은 실체가 없이 오직 마음으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허망(虛妄)하다. 즉, 마음이 생김에 온갖 사물과 현상이 생기며, 마음이 없어짐에 온갖 사물과 현상이 없어진다.
是故三界虛僞 唯心所作 離心則無六塵境界 此義云何 以一切法 皆從心起 妄念而生 一切分別 卽分別自心 心不見心 無相可得 當知世間一切境界 皆依衆生無明妄心 而得住持 是故一切法 如鏡中像 無體可得 唯心虛妄 以心生 則種種法生 心滅 則種種法滅故
사랑과 미움, 집착과 번뇌의 감정은 智識과 相續識에 의하여 일어나는 정서적 작용으로 9상(相)과의 관계에서는
의식(意識) = 분별사식(分別事識) => 집취상(執取相)
계명자상(計名字相)
이라고 기신론에서는 부르고 있다. 기신론의 용어 의(意)와 의식(意識)은 오늘날의 의미(意:뜻, 의지: 意識: 정신, 각성 상태)와는 달리 쓰이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의(意)는 인식, 의식(意識)은 감정 또는 의지에 가깝다 하겠다. 9상 중 기업상과 업계고상은 언행과 그에 따른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므로 식(識)에는 속하지 않는다.
인식의 기능을 대상과의 상호작용하는 인식주체의 관점에서 분류하면,
* 5전식(五前識) =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의 감각적 정보처리 작용
* 제6식 = 정신 = 지(知)적 정신작용
= (계산, 논리, 추리, 언어, 형상, 인지, 기억 등의 정신 활동)
* 제7식[manas식, 末那識]
= 나(我), 나의 것, 나의 생각(我所)이라는 기능을 하는 작용 (윤회의 주체로서 '지금의
나'와 '어린 시절의 나' 또 '전생의 나'를 기억하고 '하나의 나'라고 파악하는 작용)
* 제8식[아랴야식, Alaya Vijinana, 阿梨耶識, 阿懶耶識, 阿黎耶識]
= 생멸(상대적 현상)과 불생불멸(절대적 본질)이 하나이면서 같지도 않은 결합 상태. 우주의 모든 현상은 아라야식의 전변이다.
기신론에서는 앞의 7식까지는 직접 언급하지 않으며, '아라야식'에 대해서는 여래장과 관련된 핵심적인 식으로 논하고 있다.
마음이 현상으로 나투어지는 것은 '여래장(如來藏)'에서 비롯되는 마음 작용이다. 그것은 생멸(현상)과 불생불멸(본질)의 두 측면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결합으로 이를 '아라야식'이라 한다. 아라야식은 일체의 현상을 하나로 포섭하고, 또한 이들을 모두 지어낸다.
心生滅者 依如來藏故 有生滅心 所謂 不生不滅 興生滅和合 非一非異 名爲阿黎耶識 能攝一切法 生一切法
아라야식은 우주 전체를, 식(識)의 관점에서, 하나로 보는 것이요, 곧 여래장으로서 모든 것이 이에 갊아 있고 이로부터 생겨난다. 그런데 하나님 당신의 식인 동시에 개체로 분리되어 대상을 인식하는 식이기 때문에 하나라 할 수도 아니 할 수도 없는 식이다.
원효는 세밀한 인식인 업식(業識), 전식(轉識), 현식(現識)까지를 아라야식에 속한다고 보았으며, 분별식인 지식(知識)과 연속성을 꾸미는 상속식(相續識)을 제7식으로 보았다. 융(C.G. Jung)의 정신분석과 비교해 보면
앞5식(前五識) = 감각기능
제6식............ = 정신작용
제7식............. = 무의식으로 개체의식
제8식............. = 집단 무의식
과 유사하다 하겠는데, 제8식(아라야식)을 우주 전체를 포괄하는 식으로 보는 점, 이 식에서 모든 개체의식과 자연현상들이 나온다고 보는 점이 융의 잠재의식과는 다르다 하겠다.
(3) 熏習과 깨침의 단계
하나의 우주식인 아라야식은 하나님 그대로의 식(眞)과 개별화된 식(妄)이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게 합해진 식으로서, 분리된 개체의 여러 식(현식, 전식, 업식)을 없애면 참된 자리가 그대로 드러나 깨침의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분리된 개체가 헛되이 나타나는 근본원인은 무명(無明)이다. 이 무명에 의해 움직임이 일어나 업식(業識)이 되고, 이 업식이 주관을 형성하여[전식] 개체의 마음이 되면 이를 망녕된 마음(妄心)이라 하겠는데, 이 망심이 무명에 의하여 인식대상(妄境界)을 만들고 분별, 집착, 애욕, 번뇌를 일으켜 온갖 괴로움을 겪게 되는바, 이 내려가는 과정을 무명에 기인하는 훈습(熏習: 익히고 젖게 함)이라 한다.
이의 반대 과정으로 생사의 괴로움에 허덕이는 중생으로 하여금 무명에서 벗어나 모든 인식대상이 자신의 헤아리는 생각에서 나온 것[唯心所作]임을 깨치고, 생사 없는 궁극의 세계로 나가도록 끊임없이 끌어주는 힘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늘 있는 하나님(眞如)의 훈습에 의한 것이다. 우리 중생이 수행을 하여 하나님 나라(열반)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원래 하나님과 내가 하나이며, 망령된 헛생각을 비우면 곧 아라야식의 참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치지 못한 가운데에도 늘 진리를 향하고 신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훈습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훈습으로 못 깨침 상태(不覺)에서 깨침에 이르는 과정을 시각(始覺)이라 한다. 이 시각은 4단계(不覺, 相似覺, 隨分覺, 究意覺)로 나뉜다.
① 불각(不覺)
보통사람(凡夫)이 갖가지 악업(惡業)을 짓다가 부처님을 믿게 되어, 비로소 악업임을 알게 된 상태. 생, 주, 이 , 멸(生住異滅) 중 멸상(滅相)에 해당한다. 악업인 줄은 알았지만 그것들이 허망한 마음의 생각(妄念)인 줄은 모르는 상태.
② 상사각(相似覺)
십주(十住) 이상의 삼현보살(三賢菩薩)이 생각(心念)의 이상(異相)으로부터 벗어나 탐, 진, 치 등 분별집착상(分別執着相)에서 벗어나고, 무아(無我)임을 아는 정도의 깨침.
③ 수분각(隨分覺)
초지에서 십지에 보살(初地 - 十地보살)이 심념의 주상(住相)에서 벗어나 인식의 대상과 인식주관의 분별이 사라진 경계
④ 구경각(究竟覺)
십지의 보살이 한 마음이 처음 움직이기 시작한 생상(生相)의 업식(業識)을 멸한 부처의 깨침을 얻은 궁극적인 깨침의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