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
해제(解題)
나옹 혜근(懶翁惠勤)스님의 어록을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이라 한다. 이 어록에 실려 있는 스님의 행장과 탑명에 의하면, 스님은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牙)씨이고, 아버지는 선관령(膳官令:궁중의 음식을 관리하는 직책)을 지냈다.
스님의 나이 스무 살 때(1340년) 친구의 죽음을 보고 생에 의문을 가져서 공덕산(功德山) 요연(了然)스님께 출가하였다. 이후 회암사(檜巖寺)로 가서(1344년) 밤낮으로 수도하던 중 크게 깨치고 1348년 중국으로 가서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화상(指空和尙)을 친견하고 한 해를 머물렀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스님은 8살 때, 당시 고려에 왔던 지공스님에게서 보살계를 받았으며, 그 보살계첩이 지금도 전하다). 그 다음해에는 휴휴암(休休菴)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그 후 평산 처림(平山處林:임제종 양기파)스님에게서 불법을 이어받고 강남(江南) 등지를 행각하였다. 다시 지공스님을 찾아뵙고서 그에게서 신지(神旨)를 전해 받았다. 이때 법의(法衣), 불자(拂子), 범어(梵語)로 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이후 광제선사(廣濟禪寺)에서 개당설법을 하였고(1356년), 다시 지공스님을 뵌 후 고려로 돌아왔다(1358년), 10여 년만의 귀국이었다.
내원당에서 심요법문을 한 후 신광사(神光寺)에 주지로 있었다(1361년). 그 후 구월산(九月山)과 금강산(金剛山)에 계셨으며, 청평사에 계실 때(1367년) 지공스님이 보낸 가사와 편지를 받았고, 4년 후 회암사에서 지공스님의 사리를 친견했다.
1370년 스님이 51살 때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서 공부선(功夫選)을 주관하였다. 여기에서는 선과 교를 총말아하여 시험을 보았으나 오직 환암혼수(幻庵混修)만이 스님의 인정을 받았다. 이때 당시의 국사이며 화엄종의 대종사인 설산(雪山:千熙)스님을 방석으로 때린 사건이 이 어록에 실려있다. 이듬해 8월 왕사(王師)로 봉숭되어 금란가사와 법복 및 바루를 하사받았다. 그 후 4년간은 병란에 불타버린 회암사 중창에 전력하였다.
그동안에 공민왕이 돌아가시고 우왕이 즉위하여 다시 왕사로 추대되었으나 회암사를 낙성한 직후에 중앙 대간(臺諫)들의 압력으로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그 처소를 옮겨가던중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하시니(1376년 5월 15일) 세수는 57세이고 법랍은 38세이다.
스님은 자기의 죽음을 스스로 ‘열반불사(涅槃佛事)’라고 하였는데, 스님의 열반 후 10여 년 이내에 신륵사 이외에도 금강산, 치악산, 소백산, 사불산, 용문산, 구룡산, 묘향산 등7개 소에 이색(李穡)이 찬한 탑비가 세워졌고, 또 원주 영전사(令傳寺)에도 탑비가 세워졌다.
스님의 어록은 ‘어록(語錄)’과 ‘가송(歌頌)’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시자 각련(覺璉)이 수집한 어록에는 상당법어 29칙, 짧은 글 25칙, 이색이 찬한탑명과 문인 각굉(覺宏)이 쓴 행장이 실려 있다.
이 상당법문의 형식상 특색은 첫재 특별한 구분의 기준 없이 스님이 중국 광제선사에서 개당한 때의 법문을 시작으로 하여 스님의 행장과 거의 비슷한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법문에 대해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상당법문에는 공민왕과 그 왕비인 승의공주에 대한 수륙재(水陸齋)에서 행한 법문을 비롯하여 영가를 위한 법문이 특히 많다. 그리고 대어(對語) 6칙, 감변(勘辯) 3칙, 착어(着語) 1칙은 무척 특색있는 법문이다.
법문의 내용은 주로 간절하게 화두를 참구할 것을 말하였다. 즉 화두를 착구함에 있어서는 먼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해야 하며, 하루 종일 화두를 들어서 마침내 저절로 의심이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없어지지 않는 지경이 되어 크게 깨침에 가까웠다고 한다. 특히 화두공부를 점검하는 10가지를 모아서 ‘공부10절목(工夫十節目)’이라 하였다. 또 법문을 하면서 주장자, 죽비, 불자, 할 등을 사용하였고, 영가에 대한 법문에서는 주장자 대신에 죽비를 사용하였다.
시자 각뢰(覺雷)가 편집한 가송(歌頌)에는 완주가(翫珠歌) 60구, 백납가(百衲歌) 40구, 고루가(枯髏歌) 52구의 노래 세 수[三種偈]를 비롯하여 게송, 찬(讚), 발원문 그리고 ‘노래 세 수’에 대해 이색이 쓴 후기가 함께 실려있다.
게송은 단순히 풍경을 읊은 것을 비롯하여 계명(戒銘:이름을 지어주면서 그 이름을 풀이하여 지어주는 글), 여러 선인(禪人)을 떠나보내 당부 하는 것, 게송을 청하기에 주는 것, 임금의 덕을 칭송한 것, 옛사람의 송(頌)에 답한 것, 세상을 경계한 것, 제(題)한 것 등 여러 가지를 모은 것이다. 승원가에서는 아미타불을 염불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누이동생에게 준 글 등에서도 아미타불을 염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법장(法藏)비구가 스님의 삼종게를 계승하여 보다 장편으로 발전시킨 ‘보제존자 삼종가(普濟尊者三種歌)’는 백납가 200구, 고루가 144구, 영주가 300구이며, 스님이 쓴 ‘승원가(僧元歌)’는 405구의 장편 가사로 이두(吏讀)로 쓰여 있다.
이렇게 수집된 어록은 환암 혼수가 교정을 하고 문인인 각우(覺玗, 또는 覺玗), 각변(覺卞), 각연(覺然), 유곡(幽谷), 굉각(宏覺)등이 힘을 모아 간행하였다.
그런데 이색의 서문에 의하면 “옛 본을 교정하여 출판하려고 내게 서문을 청한다”고 하였고, 백문보(白文寶)의 서문은 지정(至正) 23년(1363)에 씌어졌다. 이때는 스님께서 신광사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볼 때 스님께서 신광사에 거주하던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서 스님의 어록이 한 번 편집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이색에 의해 ‘옛본’이라 한 것인 듯하다. 결국 스님의 어록은 두 번 편집된 것으로 그 처음은 중국에서 들어온 얼마 후에 있었고, 다음은 열반하신 후의 것으로 지금 전하는 것은 이것이다.
차례
․보제존자어록 서․李穡/15
․서․白文寶/17
․탑명․李穡/21
․행장․覺宏/31
1. 어록․覺璉
1. 상당법어/59
2. 짧은글/127
2. 게송․覺雷
1. 노래[歌]․3수/171
2. 송(頌)/185
․발문․李達衷/303
․보제존자 삼종가․法藏/305
․나옹화상 승원가․懶翁/345
[附錄] 懶翁集 / 五臺山 月精寺藏版
示衆 / 懶翁和尙語錄 (國立中央圖書館所藏本)
休休庵主坐禪文 / 朝鮮佛敎通史 下
나옹록
보제존자어록 서(普濟尊者語錄 序)
현릉(玄陵:공민왕)의 스승 보제존자는 서천 지공(指空)스님과 절강(浙江) 서쪽의 평산(平山)스님에게서 법을 이어받아 종풍(宗風)을 크게 펼쳤다. 그러므로 스님의 한두 마디 말이나 짤막한 글귀라도 세상에서 소중히 여길 만하기에 어록을 펴내는 것이다.
스승의 도가 세상에 행해지느냐 행해지지 않느냐는 오로지 뒷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런데 뒷사람들이 스승의 도를 알려면 그 분의 어록을 통하지 않고는 길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제자들로서는 어록 출판에 힘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변변찮은 재주에 왕명을 받들어 명(銘)을 짓고 또 그 어록을 추천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나의 행인가 불행인가는 뒷사람이나 알 것이다.
스님의 제자 각우(覺玗)․각연(覺然)․각변(覺卞) 등이 옛 본을 교정하여 출판하려고 내게 서문을 청하므로 여기에 간단히 쓰는 바이다.
창룡(蒼龍)기미년(1379)8월 16일에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은 쓴다.
서(序)
행촌공(杏村空:李嵒. 고려말의 문신, 문하시중)이 나옹스님에 관한 기록을 내게 보이면서, 나옹스님은 연도(燕都)에 가서 유학하고 또 강남(江南)으로 들어가 지공(指空)스님과 평산(平山)스님을 찾아뵙고 공부하고는 법의(法衣)와 불자(拂子)를 받는 등, 오랫동안 불법에 힘써 왔다고 하였다.
원제(元帝)는 더욱 칭찬하고 격려하며 광제선사(廣濟禪寺)에 머물게 하고, 금란가사(金聆袈裟)와 불자를 내려 그의 법을 크게 드날렸으며, 또 평소에도 스님의 게송을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 주었다고 한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산수(山水) 속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왕이 스님의 이름을 듣고 사자를 보내 와주십사 하여 만나보고는 공경하여 신광사(神光寺)에 머무시게 하였다. 나는 가서 뵈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던 차에, 하루는 스님의 문도가 스님의 어록을 가지고 와서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그때 나는“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법이오. 나는 유학(儒學)하는 사람이라 불교를 모르는데 어찌 서문을 쓰겠소”라고 하였다. 그러나 옛날 증자고(曾子固)는“글로써 불교를 도우면 반드시 비방이 따른다. 그러나 아는 사이에는 거절할 수가 없다” 하였다.
지금 스님의 어록을 보니 거기에 ‘부처란 한 줄기 풀이니, 풀이 바로 장육신(丈六身:佛身)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면 부처님 은혜를 갚기에 족하다.
나도 스님에 대해 말한다.
나기 전의 면목을 이미 보았다면 한결같이 향상(向上)해 갈 것이지 무엇하러 오늘날 사람들에게 글을 보이는가. 기어코 한 덩이 화기(和氣)를 얻고자 하는가. 그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도 이로써 은혜 갚았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님은 지난날 지공스님과 평산스님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지공스님과 평산스님도 각각 글을 써서 법을 보였다.
소암 우공(邵艤虞公)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천지가 하나로 순수히 융합하니
한가한 몸이 온종일 한결같다
왔다갔다하다가 어디서 머물까
서른 여섯의 봄 궁전이다.
地天一醇融 閑身盡日同
往來何所缺 三十六春宮
대개 이치에는 상(象)이 있고 상에는 수(數)가 있는데, 36은 바로 천지의 수다. 천지가 합하고 만물이 자라는 것이 다 봄바람의 화기에 있듯이, 이른바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달라진다는 것도 다 이 마음이 움직일 수 있고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나옹스님의 한마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부디 지공스님이나 평산스님의 전하지 않은 이치를 전해 받아 자기의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정(至正) 23년(1363) 가을 7월 어느날,
충겸찬화공신 중대광문하찬성사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치사 직산담암 백문보 화보(忠謙贊化功臣重大翠門下贊成事進賢舘大提學知春秋舘事致仕稷山淡艤白文寶和父)는 삼가 서한다.
탐명(塔銘)*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랑 중문충보절동덕 찬화공신 중 대광한산군 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신이색 봉교찬[前朝列大夫征東行中書省左右司中文*忠報節同德贊化空臣重*大匡韓山君藝文舘大提學知春秋舘事*成均大司成知書事*臣李穡 奉敎撰]
수충찬화공신 광정대부 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 상호군제점서운관사 신권중화 봉교서병단전액[輸忠贊化空臣翠紛大夫政堂文學藝文舘大提學上護軍提點書雲觀事臣權仲和奉敎書幷丹*額]
현릉(玄陵) 20년(1370) 경술 9월 10일에 왕은 스님을 서울로 불러들이시고, 16일에는 스님이 머무시는 광명사(廣明寺)로 나아가셨다.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제방 납자들을 많이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고, 그것을 공부선(功夫選)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셨다.
스님은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臼]을 모두 부수고 범성(凡聖)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의심을 떨어버린다. 잡았다 놨다 함이 손안에 있고 신통 변화는 작용[機]에 있으니, 3세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님네나 그 규범은 같도다. 이 법회에 있는 여러 스님네는 사실 그대로 대답하시오.”
그리하여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끝으로 환암 혼수(幻庵混修)스님이 오자 스님은 3구(三句)와 3관(三關)을 차례로 묻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檜岩寺)로 돌아가셨다.
신해년(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工部尙書 張子溫)을 보내 편지와 도장과 법복과 바루를 내리시고는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封)하시고, 동방 제일 도량인 송광사(松廣寺)에 계시라고 명하셨다.
임자년(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하신 삼산양수(三山兩水)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려 하였는데, 마침 임금의 부름을 받고 회암사 법회에 나아갔다가 임금께 청하여 거기 있게 되었다. 스님은“돌아가신 스승 지공스님이 일찍이 이 절을 중수하셨는데, 전란에 탔으니 어찌 그 뜻을 이어받지 않으랴” 하고는 대중과 의논하여 전각과 집들을 더 넓혔다. 공사를 마치고 병진년(1376) 4월에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대평(臺評)의 생각에 회암사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혹 생업에 폐가 될까 염려되어 왕래를 금하였다.
그리하여 영원사(瑩源寺:경남 밀양에 있음)로 옮기라는 임금의 명령이 있었고, 빨리 출발하라는 재촉이 있었다. 스님은 마침 병중에 있었으므로 가마를 타고 절 입구의 남쪽에 있는 못가로 나갔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이 모두 의아하게 여겨 소리내어 우니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瘻興)에 가서 멈출 것이오.”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卓詹)에게 말씀하셨다.
“내 병이 심하오. 배를 빌려 타고 갑시다.”
그리하여 물길을 따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 거기서 또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병세가 좀 나아지면 가고 싶소.”
탁첨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신륵사(神勒寺)에 머물렀다. 5월 15일에 탁첨은 또 빨리 가자고 독촉하였다.
스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 나는 아주 갈 것이오.”
그리고는 그날 진시(辰時)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그 고을 사람들은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화장하고 뼈를 씻을 때에는 구름도 없이 사방 수백 보에 비가 내렸다. 사리 150개가 나오니 거기에 기도하고 558개로 나누었다. 사부대중이 재 속에서 그것을 찾아 감추어 둔 것만도 부지기수였다. 신령한 광채가 나다가 3일 만에야 그쳤다.
석달여(繹達如)는 꿈에 화장하는 자리 밑에 용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초상 배가 회암사로 돌아올 때에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이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그것이 여룡(瘻龍)의 도움이라 하였다.
8월 15일에 회암사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우고 정골사리(頂骨舍利)는 신륵사에 두었다. 화장을 하고 석종(石鍾)으로 덮은 것은 감히 잘못되는 일이 있을까 하여 경계한 것이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선각(禪覺)이라 시호를 내리고, 신 색(穡)에게는 글을 지으라 명하고, 신 중화(仲和)에게는 단전액(丹額)을 쓰게 하였다.
신이 삼가 생각을 더듬어보니, 스님의 휘(諱)는 혜근(惠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래 이름은 원혜(元惠)이다. 향년(享年) 57세, 법랍(法瀘)은 38세이며,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牙))씨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로서 선관령(膳官令)을 지냈고, 어머니 정(鄭)씨는 영산군(靈山郡) 사람이다.
정씨는 꿈에 황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으며 갑자기 오색빛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품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延祐) 경신년(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스무 살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功德山)에 들어가 요연(了然)스님께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은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출가했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것이 이렇게 왔으나 다만 수행하는 법을 모릅니다.”
“나도 그대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지정(至正) 갑신년(1344)에 회암사로 가서 밤낮으로 혼자 앉았다가 갑자기 깨치고는,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으리라 결심하였다.
무자년(1348) 3월에 연도(燕都)에 들어가 지공스님을 뵙고 문답하여 계합한 바 있었다. 10년(1350) 경인 1월에 지공스님은 대중을 모으고 법어를 내렸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와 몇 마디하고 세 번 절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공스님은 서천(西天)의 108대 조사다.
그 해 봄에 남쪽 강제(江淛)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을 8월에는 평산(平山)스님을 찾아뵈었다. 평산스님은 물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았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았는데, 그 분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썼습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가져 오라.”
스님은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밀쳤다. 평산스님은 선상에 쓰러지면서“이 도둑놈이 나를 죽인다!” 하고 크게 외쳤다.
스님은“내 검(劍)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하고 붙들어 일으켰다. 평산스님은 설암(雪艤)스님이 전한 급암(及艤)스님의 가사와 불자를 전해 신표를 삼았다.
신묘년(1351) 봄에 보타락가산(寶陀洛迦山)으로 가서 관음보살께 예배하고 임진년(1352)에 복룡산(伏龍山)으로 가서 천암(千巖)스님을 뵈었다. 천암스님은 마침 스님네들을 천여 명 모아놓고 입실(入室)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천암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하자 천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그러자 천암스님은 입실을 허락하였다.
그 해에 북방으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오니 지공스님은 법의와 불자와 범서(梵書)를 주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연대(燕代)의 산천을 돌아다니는 말쑥하고 한가한 도인이 되었다.
스님의 명성이 궁중에 들어가 을미년(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대도(大都)의 광제사(廣濟寺)에 머물렀고, 병신년(1356) 10월 15일에는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원사 야선첩목아(院使 也先帖木兒)를 보내 금란가사와 비단을 내리시고, 황태자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象牙拂子)를 가지고 참석하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 들고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천천히 말씀하셨다.
“구중 궁궐의 금구(金口)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하고 나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가로 잡고 두어 마디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무술년(1358) 봄에 지공스님에게 수기(授記)를 얻고 귀국해서는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인연 따라 설법하다가, 경자년(1360)에는 오대산에 들어가 살으셨다.
신축년(1361) 겨울에 임금님은 내첨사 방절(內事 方節)을 보내 서울에 맞아들여 마음의 요체에 대한 법문을 청하고 만수가사(滿繡袈裟)와 수정불자(水精拂子)를 내리셨다. 공주(公主)는 마노불자를 올리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베풀고 신광사(神光寺)에 계시기를 청하였으나 사양하자 임금이“나도 불법에서 물러가겠다” 하시므로 부득이 부임하셨다.
11월에 홍건적(紅巾賊)이 서울 근방[京幾]을 짓밟았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옮겼다. 스님네들이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청하자 스님은, “명(命)이 있으면 살겠거늘 도적인들 어찌하겠는가”하셨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더욱 졸라대었다. 그날 밤 꿈에, 얼굴에 검은 글이 쓰여진 신인(神人) 하나가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이니, 스님은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였다. 이튿날 토지신(土地神)을 모신 곳에 가서 그 용모를 보았더니 꿈에 본 그 얼굴이었다. 도적은 과연 오지 않았다.
계묘년(1363)에 구월산(九月山)에 들어갔더니 임금은 내시 김중손(金仲孫)을 보내 돌아오기를 청하였다.
을사년(1365) 3월에 대궐에 들어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비로소 숙원(宿願)을 이룬 뒤에는, 용문(龍門)․원적(元寂) 등 여러 산에서 노닐다가 병오년(1366)에는 금강산에 들어갔고, 정미년(1367) 가을에는 청평사(淸平寺)에 머물렀다.
그 해 겨울에는 예보암(猊寶岩)이 지공스님의 가사와 친필을 스님에게 주면서 치명(治命:죽을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이라 하였다.
기유년(1369)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 경술년(1370) 봄에는 사도 달예(司徒 達睿)가 지공스님의 영골(靈骨)을 받들고 와서 회암사에 두니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였다. 그리고 곧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회암사로 돌아왔으니, 그것은 9월에 공부선(工夫選)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강월헌(江月軒)이라 하였다. 평생에 세속의 문자를 익히지는 않았으나, 제영(題詠)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써주었는데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치가 심원하였다.
만년에는 장난삼아 산수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권도(權道)의 시달림을 받았으니, 아아, 도를 통하면 으레 재능도 많아지는가 보다.
신 색(穡)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진실로 선을 깨친[禪覺]이시며
기린의 뿔이로다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의 눈이로다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龍神)이 초상을 호위함하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밟았도다
공(空)인가 색(色)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隼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矧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7년 6월 어느 날 비를 세우다
비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京畿道 楊州郡 檜泉面 檜岩里 檜岩寺)에 있다. 고려의 폐왕(廢王)인 우왕(王) 정사년(1377)에 세우다. 비의 높이는 5척, 너비는 3척 2촌, 글자의 지름은 7푼, 예서제액자(隷書題額字)의 지름은 3촌 3푼. 전서(書)로 음기(陰記)한 것이 닳아 없어져 읽을 수 없다.
행장(行狀)*
문인 각굉(門人覺宏)지음
스님의 휘는 혜근(慧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본 이름은 원혜(元慧)이다. 거처하는 방은 강월헌(江月軒)이라 하며, 속성은 아(牙)씨인데 영해부(寧海府) 사람이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瑞具)인데 선관서령(膳官署令)이란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鄭)씨다.
정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延祐) 경신년(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날 때부터 골상이 보통 아이와 달랐고, 자라서는 근기가 매우 뛰어나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20세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묘적암(妙寂艤)의 요연(了然)스님에게 가서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머리를 깎았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이거니와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그리하여 스님은 요연스님을 하직하고 여러 절로 돌아다니다가 지정(至正) 4년(1344) 갑신년에 회암사로 가서 한 방에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때 일본의 석옹(石翁)화상이 그 절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僧堂)에 내려와 선상(禪滅)을 치며 말하였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대중은 말이 없었다. 스님은 게송을 지어 보였다.
선불장(選佛場)에 앉아서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그 뒤 4년 동안을 부지런히 닦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깨친 뒤에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도를 구하려 하였다.
정해년(1347) 11월에 북을 향해 떠나 무자년(1348) 3월 13일에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에 이르러, 처음으로 서천의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신통(神通)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나타내 보여라.”
스님은 그 앞으로 가까이 가서 합장하고 섰다. 지공스님은 또 물었다.
“그대가 고려에서 왔다면 동해 저쪽을 다 보고 왔는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왔겠습니까?”
“집 열 두 채를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그대를 여기 오라 하던가?”
“제 스스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뒷사람들을 위해 왔습니다.”
지공스님은 허락하고 대중과 함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올렸다.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도다
자성(自性)이 원래 청정한 줄 비로소 알았나니
티끌마다 세계마다 다 법왕의 몸이라네.
山河大地眼前花 萬像森羅赤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서천의 20명과 동토의 72명은 다 같은 사람인데 지공은 그 가운데 없다. 앞에는 사람이 없고 뒤에는 장군이 없다. 지공이 세상에 나왔는데 법왕이 또 어디 있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법왕의 몸, 법왕의 몸이여
삼천(三天)의 주인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천검(千劍)을 뽑아들고 불조를 베는데
백양(白陽)*이 모든 하늘을 두루 비춘다.
法王身法王身 三天爲主利群民
千劍單提斬佛祖 百陽普遍照諸天
나는 지금 이 소식을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집의 정력만 허비했네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부상(扶桑)의 해와 달이 서천(西天)을 비춘다.
吾今識得這消息 猶是幢家弄精魂
也大奇也大奇 扶桑日月照西天
지공스님이 응수했다.
“아버지도 개요 어머니도 개며 너도 바로 개다.”
스님은 곧 절하고 물러갔다.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그것을 보고 게송을 지었다.
잎은 푸르고 꽃은 피었네 한 나무에 한 송이
사방 팔방에 짝할 것 하나도 없네
앞일은 물을 것 없고 뒷일은 영원하리니
향기가 이르는 곳에 우리 임금 기뻐하네.
葉靑花發一樹一 十方八面無對一
前事不問後事長 香氣到地吾帝喜
스님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해마다 이 꽃나무가 눈 속에 필 때
벌 나비는 분주해도 새 봄인 줄 몰랐더니
오늘 아침에 꽃 한 송이 가지에 가득 피어
온 천지에 다 같은 봄이로다.
年年此樹雪裏開 蜂蝶忙忙不知新
今朝一箇花滿卿 普天普地一般春
하루는 지공스님이 법어를 내렸다.
선(禪)은 집 안이 없고 법은 밖이 없나니
뜰 앞의 잣나무를 아는 사람은 좋아한다
청량대(淸凉臺) 위의 청량한 날에
동자가 세는 모래를 동자가 안다.
禪無堂內法無外 庭前栢樹認人肯
淸凉臺上淸凉日 童子數沙童子知
스님은 답하였다.
들어가도 집 안이 없고 나와도 밖이 없어
세계마다 티끌마다 선불장(選佛場)이네
뜰 앞의 잣나무가 새삼 분명하나니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라네.
入無堂內出無外 刹刹塵塵選佛場
庭前栢樹更分明 今日夏初四月五
하루는 지공스님이 스님을 불러 물었다.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저 밖에 있는 재당(齋堂)을 그대는 보는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승당으로 돌아가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미륵을 뵈었을 때, 미륵이 손가락을 한 번 퉁기매 문이 열리자 선재는 곧 들어갔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 하는가?”
스님은 시자를 통해 대답하였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이 중은 고려의 노비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普慶寺)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았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고 가거라.”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미혹하면 산이나 강이 경계가 되고
깨치면 티끌마다 그대로가 온몸이네
미혹과 깨침을 모두 다 쳐부수었나니
닭은 아침마다 오경(五更)에 홰치네.
迷則山河爲所境 悟來塵塵是全身
迷悟兩頭俱打了 朝朝鷄向五更啼
지공스님은 대답하였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노라.”
지공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10년 동안 판수(板首)로 있게 하였다.
경인년(1350) 1월 1일, 지공스님은 황후가 내리신 붉은 가사를 입고 방장실 안에서 대중을 모으고 말하였다.
“분명하다 법왕이여, 높고 높아 이 나라를 복되게 한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밑에는 조사가 있으니 노소를 불문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다 마주해 보라.”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대중 속에서 나아가 말하였다.
“분명하다는 것도 오히려 저쪽 일인데, 높고 높아 나라를 복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빈 소리다. 하늘의 해와 땅의 조사를 모두 다 쳐부수고 난 그 경계는 무엇인가.”
지공스님은 옷자락을 들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안팎이 다 붉다.”
스님은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해 3월에 대도를 떠나 통주(通州)에서 배를 타고, 4월 8일에 평강부(平江府)에 이르러 휴휴암(休休艤)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7월 19일에 떠나려 할 때, 그 암자의 장로가 만류하자 스님은 그에게 게송을 지어 주었다.
쇠지팡이를 날려가며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었거니 그대로 쉬어버렸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四海)와 오호(五湖)에서 마음대로 놀리라.
鐵錫橫賑到休休 得休休處便休休
如今捨却休休去 四海五湖任意游
8월에 정자선사(淨慈禪寺)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몽당(蒙堂)노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 나라에도 선법(禪法)이 있는가?”
스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상국(扶桑國)에 해가 오르매
강남의 바다와 산이 붉었다
같고 다름을 묻지 말지니
신령한 빛은 고금에 통하네.
日出扶桑國 江南海嶽紅
莫問同與別 靈光亘古通
그 노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곧 평산처림(平山處林)스님을 뵈러 갔다. 그때 평산스님은 마침 승당에 있었다. 스님이 곧장 승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평산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대도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던가?”
“지공스님은 날마다 천검(千劍)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一劍)을 가져 오라.”
스님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후려치니 평산스님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크게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스님은 곧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말하였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스님은 ‘하하’ 크게 웃고는 곧 스님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돌아가 차를 권했다. 그리하여 몇 달을 묵게 되었다.
어느 날 평산스님이 손수 글을 적어 주었다.
“삼한(三韓)의 혜근 수좌가 이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가 하는 말이나 토하는 기운을 보면 불조(佛祖)와 걸맞다. 종안(宗眼)은 분명하고 견처(見處)는 아주 높으며 말 속에는 메아리가 있고 글귀마다 칼날을 감추었다. 여기 설암스님이 전한 급암 스승님[先師]의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주어 믿음을 표한다.”
뒤이어서 게송을 지어 주었다.
법의와 불자를 지금 맡기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없는 옥일러라
계율의 근(根)이 깨끗해 보리(菩提) 얻었고
선정과 지혜의 광명을 모두 갖추었네.
拂子法衣今付囑 石中取出無瑕玉
戒根永淨得菩提 禪定慧光皆具足
11년(1351) 신묘 2월 2일, 평산스님을 하직할 때 평산스님은 다시 글을 적어 전송하였다.
“삼한의 혜근 수좌가 멀리 호상(湖上)에 와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가, 다시 두루 참학하려고 용맹정진할 법어를 청한다. 토각장(兎角杖)을 들고 천암(千巖)의 대원경(大圓鏡) 속에서 모든 조사의 방편을 한 번 치면, 분부할 것이 없는 곳에서 반드시 분부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을 지어 주었다.
회암(檜岩)의 판수(板首)가 운문(雲門)을 꾸짖고
백만의 인천(人天)을 한 입에 삼켰네
다시 밝은 스승을 찾아 참구한 뒤에
집에 돌아가 하는 설법은 성낸 우뢰가 달리듯 하리.
檜巖板首罵雲門 百萬人天一口呑
更向明師參透了 廻家說法怒雷奔
스님은 절하고 하직한 뒤에 명주(明州)의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으로 가서 관음을 친히 뵈옵고, 육왕사(育王寺)로 돌아와서는 석가상(繹迦像)에 예배하였다. 그 절의 장로 오광(悟光)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스님을 칭찬하였다.
분명히 눈썹 사이에 칼을 들고
때를 따라 죽이고 살리고 모두 자유로워
마치 소양(昭陽)에서 신령스런 나무 보고
즐겨 큰 법을 상류(常流)에 붙이는 것 같구나.
當陽掛起眉間劍 殺活臨機總自由
恰昭昭陽見靈樹 肯將大法付常流
스님은 또 설창(雪窓)스님을 찾아보고 명주에 가서 무상(無相)스님을 찾아보았다.*
또 고목 영(奇木榮)스님을 찾아가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았는데 고목스님이 물었다.
“수좌는 좌선할 때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
“쓸 마음이 없소.”
“쓸 마음이 없다면 평소에 무엇이 그대를 데리고 왔다갔다하는가?”
스님이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니 고목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그 눈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무엇으로 보는가?”
스님은 악! 하고 할(喝)을 한 번 하고는“어떤 것을 낳아준 뒤다 낳아주기 전이다 하는가?” 하니 고목스님은 곧 스님의 손을 잡고,“고려가 바다 건너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하였다. 스님은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임진년(1352) 4월 2일에 무주(州) 복룡산(伏龍山)에 이르러 천암 원장(千巖元長)스님을 찾았다. 마침 그 날은 천여 명의 스님네를 모아 입실할 사람을 시험해 뽑는 날이었다. 스님은 다음의 게송을 지어 올렸다.
울리고 울려 우뢰소리 떨치니
뭇 귀머거리 모두 귀가 열리네
어찌 영산(靈山)의 법회뿐이었겠는가
구담(瞿曇)은 가지도 오지도 않네.
擊擊雷首振 群聾盡豁開
豈限靈山會 瞿曇無去來
그리고 절차에 따라 입실하였다.
천암스님은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는가?”
“정자선사에서 옵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천암스님은“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구나” 하고 곧 입실을 허락하였다. 스님은 거기 머물게 되어 여름을 지내고 안거가 끝나자 하직을 고했다. 천암스님은 손수 글을 적어 주며 전송하였다.
“석가 늙은이가 일대장교를 말했지만 그것은 모두 쓸데없는 말이다. 마지막에 가섭이 미소했을 때 백만 인천이 모두 어쩔 줄을 몰랐고, 달마가 벽을 향해 앉았을 때 이조는 눈 속에 서 있었다. 육조는 방아를 찧었고, 남악(南嶽)은 기왓장을 갈았으며, 마조(馬祖)의 할(喝) 한 번에 백장(百丈)은 귀가 먹었고, 그 말을 듣고 황벽(黃岫)은 혀를 내둘렀었다. 그러나 일찍이 장로 수좌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진실로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그릴 수도 없으며, 칭찬할 수도 없고 비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저 허공처럼 텅 비어 부처나 조사도 볼 수 없고 범부나 성인도 볼 수 없으며, 남과 죽음도 볼 수 없고 너나 나도 볼 수 없다. 그 지경[分際:테두리, 범위]에 이르게 되어도 그 지경이라는 테두리도 없고, 또 허공의 모양도 없으며 갖가지 이름도 없다. 그러므로 형상도 이름도 떠났기에 사람이 받을 수 없나니, 취모검(吹毛劍)을 다 썼으면 빨리 갈아두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취모검은 쓰고 싶으면 곧 쓸 수 있는데 다시 갈아두어서 무엇하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있으면 노승의 목숨이 그대 손에 있을 것이요,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없으면 그대 목숨이 내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할을 한 번 하였다.
스님은 천암스님을 하직하고 떠나 송강(松江)에 이르러 요당(了堂)스님과 박암(泊艤)스님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감히 스님을 붙잡아 두지 못하였다.
그 해 5월에 대도 법원사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백양(百陽)에서 차 마시고 정안(正安)*에서 과자 먹으니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千劍)을 준다.
百陽喫茶正安果 年年不昧一通藥
東西看見南北然 明宗法王給千劍
스님은 답하였다.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奉喫師茶了 起來卽禮三
只這眞消息 從古至于今
그리고는 거기서 한 달을 머물다가 하직하고, 여러 해 동안 연대(燕代)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 도행(道行)이 황제에게 들려, 을미년(1355) 가을에 성지(聖旨)를 받고 대도의 광제선사(廣濟禪寺)에 머물다가, 병신년(1356) 10월 15일에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먼저 원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를 보내 금란가사와 폐백을 내리시고 황태자도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렸다. 이 날에는 많은 장상(將相)과 그들의 관리, 선비들,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들고 중사(中使)*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 가사를 어디다 입혀야 하겠는가?”
중사는 모르겠다 하였다. 스님은 자기 왼쪽 어깨를 기리키며“여기다 입혀야 하오” 하고는 다시 대중에 물었다.
“맑게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구중 궁궐의 금구(金口)에서 나왔다” 하고는 가사를 입고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다시 향을 사르고 말하였다.
“이 하나의 향은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과 평산화상에게 받들어 올려 법유(法乳)의 은혜를 갚습니다.”
17년(1357) 정유년에 광제사를 떠나 연계(燕)의 명산에 두루 다니다가 다시 법원사로 돌아와 지공스님에게 물었다.
“이제 제자는 어디로 가야 하리까?”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 ‘삼산양수(三山兩水)’ 사이를 택해 살면 불법이 저절로 흥할 것이다.”
무술년(1358) 3월 23일에 지공스님을 하직하고 요양(遼陽)으로 돌아와 평양과 동해 등 여러 곳에서 인연을 따라 설법하고, 경자년(1360) 가을에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象頭艤)에 있었다. 그때 강남지방의 고담(古潭)스님이 용문산을 오가면서* 서신을 통했는데, 스님은 게송으로 그에게 답하였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에
공중에서 고담 노인네가 불쑥 튀어나왔나니
삼척의 취모검을 높이 쳐들고
정령(精靈)들 모두 베어 자취 없앴네.
臨濟一宗當落地 空中突出古潭翁
把將三尺吹毛劍 斬盡精靈永沒蹤
고담스님은 백지 한 장으로 답하였는데, 겉봉에는 ‘군자천리동풍(君子千里同風)’이라고 여섯 자를 썼다. 스님은 받아 보고 웃으면서 던져버렸다. 시자가 주워 뜯어 보았더니 그것은 빈 종이었다. 스님은 붓과 먹 두 가지로 답하였다.
신축년(1361) 겨울에 임금은 내첨사 방절(方節)을 보내 내승마(內乘馬)로 스님을 성안으로 맞아들여, 10월 15일에 궁중으로 들어갔다. 예를 마치고 마음의 요체에 대해 법문을 청하니, 스님은 두루 설법한 뒤에 게송 두 구를 지어 올렸다.* 임금은 감탄하면서,“이름을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 하시고 만수가사와 수정불자를 내리셨다. 공주도 마노불자를 보시하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내리셨다. 그리고 신광사(神光寺)에 머물기를 청하니 스님은“산승은 다만 산에 돌아가 온 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축원하고자 하오니 성군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하면서 사양하였다.
임금은“그렇다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리라” 하시고 곧 가까운 신하 김중원(金仲元)을 보내 가는 길을 돕게 하였다. 스님은 할 수 없어 그 달 20일에 신광사로 갔다.*
11월에 홍건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도성이 모두 피란하였으나, 오직 스님만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보통때와 같이 설법하고 있었다. 하루는 수십 기(騎)의 도적들이 절에 들어왔는데, 스님은 엄연히 그들을 상대하였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침향(沈香) 한 조각을 올리고 물러갔다. 그 뒤로도 대중은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말리면서,“명(命)이 있으면 살 것인데 도적이 너희들 일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였다.
그 뒤에 어느 날 대중이 다시 피란을 청하였으므로 스님은 부득이 허락하고 그 이튿날로 기약하였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신인(神人)이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입니다. 스님은 부디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고 곧 물러갔다. 그 이튿날 스님은 토지신을 모신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더니 바로 꿈에 본 얼굴이었다. 스님은 대중을 시켜 경을 읽어 제사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도적은 여러 번 왔다갔으나 재물이나 양식, 또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다.
계묘년(1363) 7월에 재삼 글을 올려 주지직을 사퇴하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스님은 스스로 빠져나와 구월산(九月山) 금강암으로 갔다. 임금은 내시 김중손(金仲孫)을 보내 특별히 내향(內香)을 내리시고, 또 서해도(西海道) 지휘사 박희(朴曦), 안렴사 이보만(按兼使 李寶萬), 해주목사 김계생(海州牧使 金繼生) 등에게 칙명을 내려 스님이 주지직에 돌아오기를 강요하였다. 스님은 부득이 10월에 신광사로 돌아와 2년 동안 머무시다가, 을사년(1365) 3월에 궁중에 들어가 글을 올려 물러났다. 그리고는 용문(龍門)․원적(圓寂) 등 여러 산에 노닐면서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 즐겼다.
병오년(1366) 3월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정양암(正陽艤)에 있었다. 정미년(1367) 가을에 임금님은 교주도(交州道) 안렴사 정양생(鄭良生)에게 명하여 스님에게 청평사에 머무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보암(普艤)장로가 지공스님이 맡기신 가사 한 벌과 편지 한 통을 받아 가지고 절에 와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입고 향을 사른 뒤에 두루 설법하였다.*
기유년(1369) 9월에 병으로 물러나 또 오대산에 들어가 영감암(靈惑艤)에 머물렀다.
홍무(洪武) 경술년(1370) 1월 1일 아침에 사도 달예(司徒 達睿)가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받들고 회암사에 왔다. 3월에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고 산을 나왔다. 임금은 가까운 신하 김원부(金元富)를 보내 스님을 맞이하고 영골에 예배하였다. 스님은 성 안에 들어가 광명사(廣明寺)에서 안거를 지냈다.
8월 3일에 내재(內齋)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두루 설법하였다.
17일에 임금은 가까운 신하 안익상(安益祥)을 보내 길을 도우라 하고 스님께 회암사에 머물기를 청하였다. 9월에는 공부선(工夫選)을 마련하고 양종오교(兩宗五敎)의 제방 승려를 크게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했는데, 그때 스님에게 주맹(主盟)이 되기를 청하였다.
16일에 선석(選席)을 열었다. 임금님은 여러 군(君)과 양부(兩府)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나와 보셨다. 그리고 선사 강사 등 여러 큰 스님네와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그때 설산국사(雪山國師:화엄종의 종사인 千熙스님을 말함)도 그 모임에 왔다. 스님은 국사와 인사하고 처음으로 방장실에 들어가 좌복을 들고“화상!” 하였다. 국사가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은 좌복으로 그 까까머리를 때리고는 이내 나와버렸다.
사나당(舍那堂) 안에 법좌를 만들고 향을 사른 뒤에, 스님은 법좌에 올라 질문을 내렸다. 법회에 있던 대중은 차례로 들어가 대답하였으나 모두 모른다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로는 통하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한 뒤 곧 물러가기도 하였다. 임금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끝으로 환암 혼수(幻庵混修)스님이 오니 스님은 3구(三句)와 3관(三關)을 차례로 물었다.
그보다 먼저 스님이 금경사(金脛寺)에 있었을 때 임금은 좌가대사 혜심(左街大師 慧深)을 시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법문으로 공부한 사람을 시험해 뽑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먼저 입문(入門) 등 3구(三句)를 묻고, 다음에 공부10절(工夫十節)을 물으며, 나중에 3관(三關)을 물으면 공부가 깊은지 얕은지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다 모르기 때문에 10절과 3관은 묻지 않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임금이 천태종(天台宗)의 선사(禪師)인 신조(神照)를 시켜 공부10절을 물으시니 스님은 손수 써서 올렸다.*
18일에 임금은 지신사 염흥방(知申使 廉興)을 스님이 계시던 금경사로 보내셨고, 그 이튿날 또 대언 김진(代言 金鎭)을 보내 스님을 내정(內庭)으로 맞아들여 위로하신 뒤 안장 채운 말[鞍馬]을 내리셨다. 그리고는 내시 안익상(安益祥)을 보내 회암사로 보내드리니, 스님은 회암사에 도착하자 말을 돌려보내셨다.
신해년(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工部商書 張子溫)을 보내 편지와 도장을 주시고, 또 금란가사와 안팎 법복과 바루를 내리신 뒤에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하시고, 태후도 금란가사를 올렸다. 그리하여 동방의 제일 도량인 송광사에 있게 하셨는데, 내시 이사위(李君渭)를 보내 길을 돕게 하여 28일에 회암사를 출발하여 9월 27일에 송광사에 도착하였다.
임자년(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한 ‘삼산양수‘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또 이사위를 보내어 회암사로 맞아 오셨다.
9월 26일에는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가져다 회암사의 북쪽 봉우리에 탑을 세웠다.
계축년(1373) 정월에는 서운(瑞雲)․길상(吉祥) 등 산에 노닐면서 여러 절을 다시 일으키고, 8월에 송광사로 돌아왔다.
9월에 임금님은 또 이사위를 보내 회암사에서 소재법회(消災法會)를 주관하라 청하시고, 갑인년(1374) 봄에 또 가까운 신하 윤동명(尹東明)을 보내 그 절에 계시기를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이 땅은 내가 처음으로 불도에 들어간 곳이요, 또 우리 스승[先師]의 영골을 모신 땅이오. 더구나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내게 수기하셨으니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하고 곧 대중을 시켜 전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다.*
9월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 스님은 몸소 빈전(殯殿)에 나아가 영혼에게 소참법문*을 하시고 서식을 갖추어 왕사의 인(印)을 조정에 돌렸다.
지금 임금께서도 즉위하여 내신 주언방(周彦)을 보내 내향(內香)을 내리시고 아울러 인보(印寶)를 보내시면서 왕사로 봉하였다.
병진년(1376) 봄에 이르러 공사를 마치고 4월 15일에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임금은 구관 유지린(具官 柳之璘)을 보내 행향사(行香使)로 삼았으며, 서울에서 지방에서 사부대중이 구름과 바퀴살처럼 부지기수로 모여들었다.
마침 대평(臺評)은 생각하기를, ‘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를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스님을 영원사(瑩源寺)로 옮기라 하고 출발을 재촉하였다. 스님은 마침 병이 있어 가마를 타고 절 문을 나왔는데 남쪽에 있는 못가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은 모두 의심하여 목놓아 울부짖었다. 스승은 대중을 돌아보고,“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중단하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瘻興)에서 그칠 것이오” 하였다.
5월 2일에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卓詹)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너무 심해 배를 타고 가고 싶소.”
곧 문도 10여 명과 함께 물을 거슬러올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러 다시 탁첨에게 말하였다.
“내 병이 너무 위독해 이곳을 지날 수 없소. 이 사정을 나라에 알리시오.”
탁첨이 달려가 나라에 알렸으므로 스님은 신륵사(神勒寺)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을 머무셨을 때, 여흥수 황희직(瘻興守 黃希直)과 도안감무 윤인수(道安監務 尹仁守)가 탁첨의 명령을 받고 출발을 재촉했다. 시자가 이 사실을 알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제 아주 가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은 주먹을 세웠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4대(四大)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스님은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오직 이 속에 있다” 하였다.
“그 속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느니라.”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단할 것 없다는 그 도리입니까?”
스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게 보면서,“내가 그대를 볼 때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는가” 하였다.
또 한 스님이 병들지 않는 자의 화두[不病者話]를 들어 거론하자, 스님은 꾸짖는 투로“왜 그런 것을 묻는가” 하고는 이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노승은 오늘 그대들을 위해 열반 불사를 지어 마치리라.”
그리고는 진시(辰時)가 되어 고요히 돌아가시니 5월 15일이었다.
여흥과 도안의 두 관리가 모시고 앉아 인보(印寶)를 봉하였는데 스님의 안색은 보통때와 같았다. 여흥 군수가 안렴사(按廉使)에게 알리고 안렴사는 조정에 고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그 고을 사람들은 멀리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또 스님이 타시던 흰 말은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화장을 마쳤으나 머리뼈 다섯 조각과 이 40개는 모두 타지 않았으므로 향수로 씻었다. 이때에 그 지방에는 구름도 없이 비가 내렸다. 사리가 부지기수로 나왔고, 사부대중이 남은 재와 흙을 헤치고 얻은 것도 이루 셀 수 없었다. 그때 그 고을 사람들은 모두 산 위에서 환히 빛나는 신비한 광채를 보았고, 그 절의 스님 달여(達如)는 꿈에 신룡(神龍)이 다비하는 자리에 서려 있다가 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문도들이 영골사리를 모시고 배로 회암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오래 가물어 물이 얕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고 갑자기 물이 불어 오랫동안 묶여 있던 배들이 한꺼번에 물을 따라 내려갔으니, 신룡의 도움임을 알 수 있었다.
29일에 회암사에 도착하여 침당(寢堂)에 모셨다가 8월 15일에 그 절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웠는데, 가끔 신령스런 광명이 환히 비쳤다. 정골사리 한 조각을 옮겨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石鍾)으로 덮었다.
스님의 수(困)는 57세요 법랍은 37세였으며, 시호는 선각(禪覺)이라 하였다. 그 탑에는“□□스님은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산승은 문자를 모른다‘ 하였다. 그러나 그 가송(歌頌)과 법어(法語)는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모두 아주 묘하다”라고 씌어 있다.
이제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어 이 세상에 간행하게 되었으니, 스님의 덕행은 진실로 위대하다. 실로 이 빈약한 말로 전부 다 칭송할 수 없지만, 간략하게나마 그 시말(始末)을 적어 영원히 전하려는 것이다. 삼가 기록한다.
어록
1. 상당법어
시자 각련(覺璉)이 짓고,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에 주석하는 환암(幻艤)이 교정하다.
1. 광제선사(廣濟禪寺) 개당
스님께서는 강남에서의 행각을 마치고 대도(大都)에 돌아와 연대(燕代)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셨다. 그 도행(道行)이 궁중에 들려 을미년(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고 광제사(廣濟寺) 주지가 되어 병신년(1356) 10월 보름날에 개당법회를 열었는데, 황제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리셨다.
이 날에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납자들과 또 여러 문무관리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께서는 가사를 받아 들고 황제의 사자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다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것을 어디다 입혀야 합니까?”
황제의 사자가“모르겠습니다” 하니 스님께서는 자기 왼쪽 어깨를 가리키면서“여기다 입혀야 합니다” 하셨다.
또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 가사는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구중 궁궐의 금구(金口)에서 나왔다” 하셨다.
이에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가 주장자를 가로 잡고 말씀하셨다.
“날카로운 칼을 온통 들어 바른 명령을 행할 것이니, 어름어름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 칼날에 맞설 이가 있는가, 있는가, 있는가. 돛대 하나에 바람을 타고 바다를 지나가노니, 여기서는 배 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다시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노화상들이 모두 산승의 이 불자 꼭대기에 앉아 큰 광명을 놓으면서 다 같은 소리로 우리 황제를 봉축하는데, 대중은 보는가. 만일 보지 못한다 하면 눈은 있으나 장님과 같고, 본다 한다면 어떻게 보는가.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이나 알고 모르는 것은 한 쪽에서만 하는 말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면서“털이 많은 소는 불자를 모르는구나”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신광사(神光寺) 주지가 되어
스님은 절 문에 도착하자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온 대지가 다 해탈문인데 대중은 일찍이 그 문에 들어갔는가. 만일 들어가지 못했거든 나를 따라 앞으로 가자.”
또 보광명전(普光明殿)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비로차나(毘盧遮那)의 꼭대기를 밟는다 해도 그는 더러운 발을 가진 사람이다. 말해 보라. 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손으로 불상을 가리키면서, “나 때문에 절을 받는 것이오” 하셨다. 다음에는 거실(據室)에 이르러,“이 방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는 큰 화로다” 하시고 주장자를 들고는,“이것은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다. 대중은 이 칼 밑에서 몸을 뒤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이리 나와도 좋다. 나와도 좋다” 하셨다.
이어서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는,“우리 집의 적자(嫡子)말고 누가 감히 이 속으로 가겠는가” 하고는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다음에 또 법당에 올라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산승은 오대산(五臺山)을 떠나기 전에 이미 여러분을 위해 오늘의 일을 다 말하였다. 지금 손과 주인이 서로 만나 앉고 섬이 엄연하니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는데, 다시 산승에게 모래 흙을 흩뿌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만리에 흰구름 격이다. 그러나 관법(官法)으로는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사로이는 거마(車馬)도 통하는 것이니 아는 이가 있는가?”
문답을 마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티끌 같은 세계에 털끝 하나 없고 날마다 당당하게 살림살이를 드러낸다. 볼라치면 볼 수 없어 캄캄하더니, 쓸 때는 무궁무진 분명하도다. 3세의 부처들도 그 바람 아래 섰고 역대의 조사들도 3천 리를 물러선다. 말해 보라. 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도 대단한가. 확실히 알겠는가. 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어디로 가나 이름과 형상을 떠나 삿됨을 무찌르고 바름을 드러낼 것이며, 가로 잡거나 거꾸로 쓰거나 죽이고 살림이 자재로울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을 만들며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얼른 주장자를 들어 왼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이것이 한 줄기 풀이라면 어느 것이 장육금신인가?” 하시고 오른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장육금신이라면 어느 것이 한 줄기 풀인가? 만일 여기서 깨치면 임금의 은혜와 부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거든 각기 승당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아라.”
3. 결제(結制)에 상당하여
스님은 법좌 앞에 가서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한 물건은 많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였고 밟지 못하였다. 산승은 여기 와서 흐르는 물소리를 무심히 밟고 나는 새의 자취를 자유로이 보아서 그려낸다.”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요(堯)임금의 자비가 널리 퍼져 아주 밝은 일월과 같고, 탕(湯)임금의 덕은 더욱더욱 새로워 영원한 천지와 같다. 산승이 이것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다만 성상폐하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축수하는 것이다.”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쇠뇌[弩]의 고동[機:방아쇠]을 당기는 것은 눈으로 판단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을 맞히는 것은 손에 익어야 한다.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손에 익지 않아도 고동을 당기고 과녁을 맞히는 것이 있는가? 꺼내 보아라.”
한 스님이 나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다가 문턱 중간에 서서 물었다.
“스님은 법좌에 앉아 계시고 학인은 올라왔는데 이것은 어떤 경계입니까?”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스님은 방장실에서 이 보좌(寶座)에 나오셨고 학인은 적묵당(寂黙堂)에서 여기 왔습니다. 저기에도 몸이 있습니까?”
“있다.”
“털끝에 바다세계를 간직하고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
“종문(宗門)의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북숭봉(北崇峰) 앞의 경계입니까?”
“산문은 여전히 남쪽으로 열려 있다.”
“그 경계 속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다.”
“사람이든 경계든 이미 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향상(向上)의 한 길을 알았는데 그래도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떻게 하면 향상의 한 길로서, ‘지극한 말과 묘한 이치는 어떤 종(宗)인가. 이 말을 천리 밖으로 없애버려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제일기(第一機)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그 제일의(第一義)입니까?”
“그대가 묻는 그것은 제이의(第二義)이다.”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길을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어찌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오늘 여러 관리와 선비들이 특별히 상당법문을 청하니 스님께서는 여기 와서 설법하고 향을 사뤄 축원한 뒤에 법상에 올라가 자유자재로 법을 쓰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무엇이 스님의 본분사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우셨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오랑캐 난리 30년에도 소금과 간장이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학인이 듣기로는 스님께서 평산(平山)스님을 친견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무엇이 천축산(天竺山)에서 친히 전한 한마디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셨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영남(嶺南) 땅에 천고(千古)의 희소식이 있으니, 오늘 맑은 바람이 온 누리에 불어옵니다. 이것은 그만두고 오늘 보좌에 높이 오른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라 축성(祝聖)하는 일이니, 스님께서는 한마디 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만년의 성일(聖日) 속에 복이 영원하니 문무의 사법(四法)이 태양을 따르도다” 하시니 그 스님은“온 누리에 퍼지는 임금의 덕화 속에 촌 늙은이가 태평을 축하하기 수고롭지 않구나” 하고는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다 분명한데, 무엇이 분명한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드시니 그 스님이 물었다.
“향상의 한 길은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는데, 무엇이 전하지 못한 그 일입니까?”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이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히고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친다 하는데, 무엇이 밝힐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들어 세우시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깨칠 그 도입니까?”
스님께서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시자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이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본래 맺음이 없는데 무엇을 풀겠는가. 풂이 없이 때를 따라 도의 흐름을 보인다. 허공을 쳐부수어 조각조각 내어도, 독한 막대기의 그 독은 거두기 어렵도다. 언젠가 어깨에 메고 산으로 가서 그대로 천봉 만령 꼭대기에 들어가면 부처와 조사는 보고 두려워 달아나리니, 자유로이 죽이고 살리기 실수가 없다.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물건이 아니며, 천지를 뒤흔드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 소리를 꽉 밟고 있다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장자를 들고“보는가!” 하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듣는가! 만일 분명히 보고 환히 들을 수만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四聖六凡), 유정무정(有情無情)이 모두 얼음녹듯 기왓장 부숴지듯 할 것이니,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선(禪)인가 도(道)인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마음인가 성품인가, 현(玄)인가 묘(妙)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또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도라고도 할 수 없으며, 범부라고도 할 수 없고 성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성품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현이라고도 할 수 없고 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도 될 수 없으니 모두 아니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알겠는가. 안다면 부처님 은혜와 임금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가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다면 한마디 더 하리라. 즉 참성품은 반연(攀緣)을 끊었고, 참봄[眞見] 은 경계를 의지하지 않으며, 참지혜는 본래 걸림이 없고, 참슬기는 본래 끝이 없어서 위로는 모든 부처의 근원에 합하고 밑으로는 중생들의 마음에 합한다. 그러므로 ‘곳곳이 진실하여 티끌마다 본래의 사람이다. 실제로 말할 때는 소리에 나타나지 않고 정체는 당당하나 그 몸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중스님네들이여, 무엇이 그 당당한 정체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이것이 당당한 정체라면 어느 것이 주장자인가?” 하시고 다시 한 번 내리친 뒤“이것이 주장자라면 어느 것이 당당한 정체인가?” 하시고는 드디어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말씀하셨다.
“쌀 한 톨을 탐내다가 반년 양식을 잃어버렸다. 대중들이여,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들 하여라.”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4. 해제(解制)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4월 15일에 결제에 들어가 7월 15일이 되어서 해제를 하니 납자들은 모였다 흩어진다. 봄은 가고 가을이 오니 새로움과 낡음이 변하는구나.”
주장자를 쑥 뽑아들고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이것이 맺음인가 풂인가, 모임인가 흩어짐인가, 가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새것인가 옛것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맺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풂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모임이라고도 할 수 없고 흩어짐이라고도 할 수 없다.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새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옛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주장자를 던지고는,“눈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이것은 진실로 분명한 주장자이니라. 몸조심들 하거라” 하셨다.
5. 내원당에서 보설[入內普說]
“부처의 참법신[眞法身]은 마치 허공과 같아, 물 속의 달처럼 물건에 따라 형상을 나타낸다.“
불자를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석가께서 여기 이 산승의 불자 꼭대기에 와서 묘한 색신(色身)을 나타내고 큰 지혜광명을 놓으며 큰 해탈문을 여는 것은 오로지 우리 성상 폐하의 만만세를 위해서이니 백천의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와 세간, 출세간의 모든 법이 다 이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보십니까? 만일 환히 볼 수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모든 유정무정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얼음처럼 녹고 기왓장처럼 부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선(禪)도 없고 도(道)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성품도 없으며, 현(玄)도 없고 묘(妙)도 없어서 적나라하고 적쇄쇄(赤洒洒)하여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해 나간다면 다시 짚신을 사 신고 30년 동안을 행각하여도 납승의 기미는 꿈에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납승의 기미가 무엇이 대단한지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밤이 고요하매 두견새는 이 뜻을 알아, 그 한 소리가 취미(翠微:산허리. 또는 먼 산에 엷게 낀 푸른 빛깔의 기운) 속에 있구나.”
6. 소참(小參)
“한 걸음 나아가면 천지가 가라앉고 한 걸음 물러서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면 숨기운은 있으나 죽은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으며 결국 어찌해야 하는가. 말할 사람이 있는가. 있거든 나와 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어름어름하는 사이에 10만 8천리가 될 것이다” 하시고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7. 제야(除夜)에 소참하다
“텅 비고 밝은 것[虛明]이 활짝 드러나 상대도 끊고 반연도 끊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에서는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고, 소림(少林)에서는 밤중에 눈에 섰다가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니, 겁외(劫外)의 광명을 꺼내서 본래면목을 비추어 보라.”
불자를 세우고“이것이 본래면목이라면 어느 것이 불자인가?” 하시고는 또 세우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불자라면 어느 것이 본래면목인가? 여러분은 아는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섣달 그믐날에 허둥거리지 않을 것이나, 만일 의심이 있으면 지금이 바로 그 섣달 그믐날이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낙찰을 보는 것인가.”
불자를 들고는,“한 가닥 끄나풀〔絡索]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며 현재에도 그렇다. 오늘밤은 묵은해는 가지 않았고 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바로 이런 때 말해 보라. 묵은것, 새것에 관계없는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하시고, 불자를 던진 뒤에 말씀하셨다.
“묵은해는 오늘밤에 끝나고 새해는 내일 온다. 몸조심들 하시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8. 자자일(自恣日)에 조상서(趙尙書)가 보설을 청하다
“깨닫는 성품은 허공과 같거늘 지옥․천당이 어디서 생기며, 부처의 몸이 법계에 두루하거늘 축생과 귀신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스님네든 속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여러분이 나서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짓는 선․악을 다 법이라 합니다.
무엇을 마음이라 합니까. 마음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것으로서, 자기라 부르기도 하고 주인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언제나 그것에게 부려지고 어디서나 그것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늘을 이고 땅에 서는 것도 그것이요, 바다를 지고 산을 떠받치는 것도 그것이며, 그대에게 입을 열고 혀를 놀리게 하는 것도 그것이요, 그대에게 발을 들고 걸음을 걷게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이 마음은 항상 눈앞에 있지만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마음을 먹고 찾되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입니다.
안자(顔子)의 말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볼 때는 앞에 있더니 어느 새 뒤에 있다’ 한 것이 바로 그 도리인 것입니다.
한 생각도 생기기 전이나 한결같이 참되어 망념이 없을 때에는, 물들음 없는 옛거울의 빛처럼 깨끗하고 움직임 없는 맑고 고요한 못처럼 밝아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인(漢人)이 오면 한인이 나타납니다. 하늘과 땅을 비추고 예와 지금을 비추되 털끝만큼도 숨김이 없고 털끝만큼도 걸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부처와 조사들의 경계며 또 여러분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써도 써도 다하지 않는, 본래 가진 물건입니다.
오늘 명복을 비는 조씨의 영혼과 먼저 돌아가신 법계의 혼령들과 이 자리에 가득한 사부대중은 무슨 의심이라도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다시 한 끝을 들어 보이겠습니다.”
죽비를 들고,“이것을 보십니까” 하시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습니까? 보고 듣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고 또 우리 부처님의 우란(枳蘭)*의 힘을 입으면, 고통이 없어지고 즐거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못되어도 천궁(天宮)에 나고 잘되면 불국(佛國)에 날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를 마련한 시주 조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런 공덕에 어떤 죄가 멸하지 않고 어떤 업이 사라지지 않으며, 어떤 복이 생기지 않고 어떤 선(善)이 자라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결국은 불국에 왕생하고, 그 때문에 결국은 본래면목을 환히 볼 것입니다.
다시 게송 한 구절을 들으십시오.
얼음 전부가 물인즉 물이 얼음 되니
옛 거울은 갈지 않아도 원래부터 빛이 있었네
바람이 절로 불어 티끌이 절로 일지만
본래면목은 당당하게 드러나 있네.
全氷是水水成氷 古鏡不磨元有光
風自動兮塵自起 本來面目露堂堂
몸조심들 하십시오.”
9. 보설(普說)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일심으로 굳이 설법을 청하므로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왔다. 대중은 잠자코 이 설법을 들으라. 이 눈앞에 분명하고 역력하여 설법을 듣는 자는 그 누구며, 합장하고 묻는 이는 그 누구며, 머리 숙여 절하는 이는 그 누구인가. 여러분은 각자 점검해 보라.
여러분은 ‘설법을 듣고 아는 것은 바로 나 주인공이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묻겠다. 만일 그것이 주인공이라면 그것은 긴가 짧은가, 아니면 큰가 작은가. 그 면목은 어떠며 그 모양은 어떠며 그것은 어디서 안신입명(安身立命)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분명히 보며 분명히 말한다고 한다면,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다. 알아내고 보아내는 그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조사님네도,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들은 말해 보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산에서 1만 2천 담무갈(曇無竭:항상 般若波羅蜜多經을 설하였다는 보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며, 어떻게 1만 2천 보살이 항상 말하는 반야를 들을 수 있겠는가. 다만 높이 솟은 기이한 바위와 우거진 소나무․잣나무들만을 볼 것이니, 우리 임제(臨濟)의 정통종지와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그것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여러분은 부디 물러서지 말아라. 임제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섰으며, 여러분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여 털끝만큼도 다르다거니 같다거니 하는 모양을 찾을 수 없다. 이미 우리 문중의 종자라면 같든지 다르든지 정법안장을 없애버리고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든지 누가 상관하겠는가.
그러면 임제의 정통종지를 어떻게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3현(三玄)․3요(三要)를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4료간(四料揀)․4빈주(四賓主)․4할(四喝)인가. 그런데 그 할은 죽 먹은 기운으로 하는 것이니, 누가 그것을 몰라 임제의 정통종지라 하겠는가. 비록 ‘한 번의 할에 빈주(賓主)를 나누고 조용(照用)을 한꺼번에 행한다. 그 속의 뜻을 알면 한낮에 삼경을 치리라’고 말했지만, 그 말로 여러분은 속일 수 있지만 이 산승은 속이지 못한다. 여러분, 자세히 점검해 보아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한 번 할(喝)한 뒤에 말씀하셨다.
“형상이 생기기 전에도 빈주와 조용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이 할이 사라진 뒤에도 조용과 빈주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할을 하는 그 순간에는 빈주와 조용이 할 속에 있는가 할 밖에 있는가. 아니면 그 속에도 있지 않고 바깥에도 있지 않은가.”
또 한 번 할하고 말씀하셨다.
“도리어 그 가운데의 뜻을 한꺼번에 말해버렸다. 산승의 이런 판결이 과연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켰는가.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조용과 4료간․4빈주․4할․3현․3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무 데도 있지 않다면 도대체 그것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오직 여러분 당사자[¿上]에게 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一着子] 는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하지마는,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닫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선배 큰 스님네들은 그대들이 그대로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無]’하였으니, 그것은 벌써 있는 그대로 드러낸[和槃托出]것이다. 그대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죽은 말을 고치는 의사처럼 그대들에게 구구하게 무(無)라는 것을 가르치되, 먼저 4대․5온․6근․6진과 나아가서는 눈앞에 보이는 산하대지와 밝음과 어두움․색과 공․삼라만상과 유정무정 등 모두를 하나의 ‘무자’로 만들어 한결같이 그것을 들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니면서도 그것을 들고, 앉거나 눕거나 자거나 밥을 먹는 등 어디서나 그것을 들되, 끊임없이 빈틈없이 한 덩이로 만들게 한 것이다. 바늘도 갈구리도 들어가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璧)과 같아 모르는 결에 한 번 부딪쳐 자기에게 있는 그 하나를 뚫으면,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환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도 알게 되고 4대가 흩어져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 된다. 또한 이 산승이 여러분들을 속인 곳도 알게 되고, 지금까지 조사님네들이 천차만별로 틀린 곳도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모두들 환히 아는 것이 바로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는 경계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상법과 불법에 조금도 틈이 없어 3현․3요․4료간․4빈주․4할과 4대․5온․6근․6진․산하대지․삼라만상 등 모든 법이 다 임제의 정통종지임을 그대로 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법도 임제의 정통종지 아닌 것이 없어 붙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것이다. 그런 뒤에는 버려도 되고 세워도 되며 내가 법왕이 되어 모든 법에 자재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10. 욕불*상당(浴佛上堂)
스님께서는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세존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시면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높다’하신 말씀을 거론하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은 아는가. 괴상한 것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으면 그 괴상함이 스스로 물러간다. 싣달태자가 처음 태어난 이 날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풍파를 일으켰다. 여러가지 괴상한 일을 만들어내 자손들의 눈 속에 모래를 끼얹으면서 해마다 오늘 8일에 이른다. 한 동이의 향수로 그 흔적을 씻지만, 아무리 씻고 씻은들 그 티끌이 다할 수 있겠는가. 나귀해〔驢年:12간지에도 없는 해)가 될 때까지 씻고 또 씻어 보아라.”
선상을 세 번 내리친 뒤에 잇달아 말하기를,“대중스님네여, 각기 위의를 갖추어 다 함께 부처를 씻습시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또 향을 들고 말하였다.
“이 향은 오래 전에 얻은 것으로 이제껏 사른 일이 없었다. 이제 보암(普庵)장로를 통해 신표의 가사를 전해 왔으므로 향로에 사루어서 보지 못한 이에게 보게 하고 듣지 못한 이에게 듣게 하여 삼가 서천(西天)의 108대 조사 지공(指空)대화상에게 법유(法乳)로 길러주신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다.”
그 향을 꽂고는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오늘은 천하 총림이 결제에 들어가는 날이오. 청평산(淸平山) 비구 나옹은 이름도 없고 글자나 형상도 없으며, 미오(迷悟)도 없고 수증(修證)도 없으면서,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은 이 한 물건을 여러분의 면전에 흩어두리라. 북을 쳐서 운력이나 하거라. 여러분은 알겠는가. 만일 알 수 없다면 다시 이 소식을 드러내겠다.”
주장자를 들고“보았는가” 하시고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들었는가. 보고 들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중이거나 속인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산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거나 계단을 거치지 않고 저쪽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긴 기간 짧은 기간의 결제와 해제가 있겠는가.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석달 90일 안거하는 동안에 주장자 꼭대기를 꿰매고 포대 아가리를 묶고는 세 서까래[三條椽]* 밑과 일곱 자 단[七尺單]* 앞에서 금강권(金剛圈)*을 떨쳐내고 율극봉(栗棘蓬)*을 삼킨다면, 또 꿈속의 불사를 짓고 거울 속의 마군을 항복받아 3업이 청정하고 6근이 깨끗하여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아무 허물이 없으며, 조사의 자리를 이어받아 영원히 끊이지 않게 한다면 어찌 참으로 출가한 대장부가 아니겠는가.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늘 신(申)씨가 명복을 비는 신군평(申君平)과 여러 영혼들은 이 공덕을 받을 것이니, 무슨 죄인들 면하지 못하고 무슨 고통인들 벗어나지 못하겠는가. 그리하여 시방 불국토에 마음대로 왕생하여 어디서나 즐거울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불자를 세우고는,“이 하나는 닦고 깨닫는 데[修證]에 들어가는가, 닦고 깨닫는 데 들어가지 않는가?” 하시고 불자를 던지면서“눈 있는 납승은 스스로 한 번 볼 일이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달마상에 점안하며[達磨開光祝筆]
스님께서 붓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미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들이 다 눈을 갖추어 6종(六宗:육사외도)을 항복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 달마에게 또다시 점안(點眼)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할 사람이 있는가. 말할 수 있다면 달마를 위해 숨을 토할 뿐만 아니라, 온 법계의 중생들에게도 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만일 말할 수 없다면 게송 한마디를 들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리켜 성품을 밝게 보게 했나니
노호(老胡:달마)는 놓을 줄만 알았고 거둘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눈병이 나서 헛꽃이 피어
헛꽃이 온 세계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쉬지 않고 어지러이 떨어지는 헛꽃이여
아득하고 막막해라. 길은 멀고 멀구나.
眞指人心明見性 老胡知放不知收
從玆眼病空花發 徧界紛紛翳亂墜
翳亂墜兮自不休 杳杳冥冥路轉遙
붓으로 점을 찍고 말씀하셨다.
“오늘 그에게 옛 광명을 보태 주니 푸른 눈동자에 형형한 빛이 하늘에 사무친다.”
13. 지공화상 생일에
스님께서 화상의 진영 앞에 나아가 말씀하셨다.
얼굴을 마주 대고 친히 뵈오니
험준한 그 기봉(機鋒)에 모골(毛骨)이 시리다
여러분, 서천(西天)의 면목을 알려 하거든
한 조각 향 연기 일어나는 곳을 보라.
驀而相逢親見徹 機鋒嶮峻骨毛寒
諸人欲識西天而 一片香烟起處看
향을 꽂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말해 보시오. 서천의 면목과 동토의 면목이 같은가 다른가. 비록 흑백과 동서는 다르다 하나, 뚜렷한 콧구멍은 매한가지니라.”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1.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 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향을 사른 뒤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조각 향 연기가 손을 따라 일어나니, 그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가.”
2.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가매 맑은 못에 달 그림자 잠겼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몸에 참마음 있다
참마음이 있으니 묻어버리지 말아라
이때를 놓쳐버리면 또 어디 가서 찾으리.
生時一陣淸風起 滅去席潭月影沈
生滅去來無罣礙 示衆生體有眞心
有眞心休埋沒 此時蹉過更何尋
3.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천검(千劍)을 모두 들고 언제나 활용하니
황제가 그를 꾸짖어 종[奴]을 만들었다
평소의 기운은 동쪽 노인을 누르더니
오늘은 무심코 한 기틀을 바꾸었다
바꾼 그 기틀은 어디 있는가.
千劍全提常活用 皇王罵動作奴之
平生氣壓東方老 今日等閑轉一機
轉一機何處在
향을 꽂고 말씀하셨다.
“지공이 간 곳을 알고 싶거든 부디 여기를 보고 다시는 의심치 말라.”
4.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푸른 한 쌍 눈동자에 두 귀가 뚫렸고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輪帝宮)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碧雙瞳穿兩耳 髫須胡兮面皮黑
但恁麽來恁麽去 不露奇相及神通
預期獨往家鄕路 傳語令知輪帝宮
臨行垂示無人會 痛罵門徒不解宗
儼然遷化形如古 徧體溫和世不同
不孝子無餘物 獻茶一盌香一片
그리고는 향을 꽃았다.
15. 시 중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을 모아 각각에게 매일매일의 공부를 물은 뒤에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기어코 하겠다는 뜻을 세워 평소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일체의 불법과 사륙체(四六體)의 문장과 언어삼매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지고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그리하여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 번 앉으면 그대로 눌러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든가,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라든가, ‘어떤 것이 내 본성인가?’라든가 하라.
혹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없다[無]’ 하였다. 그 스님이 ‘꼬물거리는 곤충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 들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만들어야 한다.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일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않아 담담하고 밋밋하여 아무 재미도 없거든, 낮은 소리로 연거푸 세 번 외워 보라.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이니, 그런 경우에 이르거든 더욱 힘을 내어 놓치지 않도록 하라.
여러분이 각기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도 더욱 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보아야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부처의 씨앗[聖胎] 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천룡(天龍)이 그를 밀어내 누구 앞에서나 용감하게 큰 입을 열어 큰 말을 할 수 있고 금강권을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갈 것이며,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3세의 부처를 토해낼 것이다.
그런 경지에 가야 비로소 그대들은 노사나불(盧舍那佛)의 갓을 머리 위에 쓸 수 있고, 보신불․화신불의 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거든 낮에 세 번, 밤에 세 번을 좌복에 우뚝이 앉아 절박하게 착안하여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참구하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6. 장상국(張相國)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변숭(邊崇)의 영혼이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어야 할 번뇌도 없고 구해야 할 보리도 없다. 가고 옴도 없고 진실도 거짓도 없으며 남도 죽음도 없다. 4대에 있을 때도 그러했고, 4대를 떠난 때도 그러하다.
지금 을묘년 12월 14일 밤에 천보산(天寶山) 회암선사(檜岩禪寺)에서 분명히 내 말을 들으라. 말해 보라. 법을 듣는 그것은 번뇌에 속한 것인가, 보리에 속한 것인가, 옴에 속한 것인가 감에 속한 것인가, 진실에 속한 것인가, 허망에 속한 것인가, 남에 속한 것인가 죽음에 속한 것인가. 앗(咄)!.
전혀 어떻다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결국 어디서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가.”
죽비로 향대(香臺)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마지막 한마디를 더 들어라. 영혼이 간 바로 그 곳을 알려 하는가. 수레바퀴 같은 외로운 달이 중천에 떴구나.”
다시 향대를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7. 나라에서 주관한 수륙재(水陸齋)에서 육도중생에게 설하다
스님께서 자리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승의공주(承懿公主:공민왕비 노국대공주를 말함)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여기서 당장 빛을 돌이켜 한번 보시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을 막론하고 누가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밟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잔소리를 한마디 하겠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승의공주여, 36년 전에도 이것은 난 적이 없었으나 과거의 선인(善因)으로 인간세계에 노닐면서 만백성의 자모(慈母)가 되어 온갖 덕을 베풀다가, 조그만 묵은 빚으로 고요히 몸을 바꿨소. 그러나 36년 후에도 이것은 죽지 않았으니, 인연이 다해 세상을 떠나 생애(生康)를 따로 세웠소.
승의공주여, 4대가 생길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생기지 않았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무너지지 않소. 나고 죽음과 생기고 무너짐은 허공과 같으니, 원수니 친한 이니 하는 묵은 업이 지금 어디 있겠소. 이제 이미 없어졌으매 찾아도 자취가 없어 드디어 허공같이 걸림이 없소. 세계마다 티끌마다 묘한 본체요,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가 주인공[家公]이오. 소리와 빛깔이 있으면 분명히 나타나고, 빛깔과 소리가 없으면 그윽이 통하오. 상황에 맞게 때에 맞게 당당히 나타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묘하고 오묘하오. 자유로운 그 작용이 다른 물건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죽이고 살림이 모두 그의 힘이오.
승의공주여,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이 산승이 공주를 위해 확실히 알려 주겠소.”
죽비로 탁자를 치면서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여기서 단박 밝게 깨쳐 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면,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의 골수를 환히 보고,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잡고 함께 다닐 것이오.”
또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많은 생의 부모와 여러 겁의 원수 친한 이를 제도하고, 이렇게 해서 세세생생에 함부로 자식이 되어 어머니를 해치고 친한 이를 원망한 일을 제도하며, 이렇게 해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승 저승의 모든 원수나 친한 이를 제도하시오. 이렇게 해서 갖가지 고통을 받는 모든 지옥중생을 제도하고, 주리고 목마른 아귀중생을 제도하며, 축생계에서 고생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아수라계에서 성내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며, 인간세계에서 잘난 체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천상에서 쾌락에 빠져 있는 모든 하늘 무리를 제도하시오.”
다시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언덕에 올랐으면 배를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니, 무엇하러 사공에게 다시 길을 물으랴.”
회향(廻向)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향을 사른 뒤에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 선가(仙駕)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등지고 번뇌와 어울려 여러 세계에 잘못 들었소. 그리하여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 혹은 천상에 있으면서 떴다 가라앉음이 일정치 않고 고락이 같지 않았으니, 그것은 오직 그대들이 한량없는 겁을 지나면서 본래면목을 몰랐기 때문이오.
승의선가여, 원수나 친한 이를 면하고 생사를 면하여 고해를 건너려거든 빛을 돌이켜 비추어 보아 주인공의 본래면목을 아는 것이 제일이오.
승의공주는 인간에 태어나되 왕궁에 태어나 30여 년을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한 나라의 공주가 되어 만백성들을 이롭게 하였으니,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만,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은 어떤 것인가.
지금 4대는 흩어지고 신령하게 알아보는 그것[靈識]만이 홀로 드러나고 텅 비고 밝은 그것[虛明]만이 혼자 비치어 멀고 가까움에 관계가 없고,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하니 자, 어서 오시오. 지금 여기서 내 말을 분명히 듣는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확실히 보아 의심이 없으면, 시방 불국토 어딜 가나 자유자재할 것이오. 그렇지 못하다면 이 산승은 또 공주를 위해 수륙재(水陸齋)의 인연을 조금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물과 땅의 어둡고 밝은 큰 도량에서 티끌 같은 세계를 다 드러내오. 3도(三途)에서는 법을 듣고 고통을 모두 떠나고, 6취(六趣)에서는 은혜를 입어 법체(法體)가 편안하오. 원한 있는 마음은 끊기 쉬우나, 끝이 없는 성품은 헤아리기 어렵소. 이 집에 가득한 형제들이여, 알겠는가. 청풍명월이 곳곳에서 반짝이니 이 법회에는 부처님네가 다 내려오셨고, 3현10성(三賢十聖)이 다 귀의하오. 마음을 편히하고 공양을 받아 기쁜 마음을 내고, 금강(金剛)의 묘각(妙覺)으로 점차 들어가시오. 중생들 이 항하수 모래만큼의 죄를 골고루 지으나, 한마디[一句]에 다 녹이고 한 기틀을 돌리시오. 이러한 공덕 한량 없거니, 승의 선가는 정토로 돌아가오. 말해 보시오. 승의 선가는 정토에 있는가, 예토에 있는가. 부처세계에 있는가. 중생세계에 있는가. 이 세계에 있는가, 저 세계에 있는가.”
또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정토라 할 수도 없고 예토라 할 수도 없으며, 부처세계라 할 수도 없고 중생세계라 할 수도 없으며, 이 세계라 할 수도 없고 저 세계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디라고도 할 수 없다면 결국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미세한 의혹을 모두 없애 한 물건도 없나니, 대원경지 속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빈당(殯堂)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승의공주를 부른 뒤에 말씀하셨다.
“승의공주는 36년 동안 4대를 부지해 오다가 불과 바람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만 남아 있소. 산승은 독손[毒手]으로 끝까지 헤쳐놓고 한바탕 소리칠 것이니, 마음대로 깨치고 마음대로 쓰시오.”
할을 한 번 하고 말씀하셨다.
“승의선가는 허공을 누비되 앞뒤가 없고, 한 티끌도 붙지 않아 당당히 드러났소. 몸을 뒤쳐 바로 위음왕 밖을 뚫어, 크나큰 참바람을 헛되이 간직하지 마시오.”
주장자로 널을 세 번 내리친 뒤에 또 부르고는“승의공주여, 맑은 못에 비친 가을달을 밟아 보시오. 온 천지에 얼음 얼고 서리치리니” 하고 할을 한 번 하셨다.
18. 정월 초하루 아침에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들이여, 그대들은 마음을 씻고 자세히 들으라. 지금 4대는 각기 떠나고 영식(靈識)만이 홀로 드러났소. 비록 산하와 석벽에 막힌 것 같으나 이 영지(靈知)는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티끌 같은 시방세계에 노닌다. 그러면서도 그 자취가 끊어졌으므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청하면 곧 온다. 지옥에 있거나 혹은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있거나 그들은 지금 계묘년 섣달 그믐날 다 여기 와서 분명히 내 말을 듣고 있다. 말해 보라. 지금 내 말을 듣는 그것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멸하는 것인가, 멸하지 않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가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앗[咄]!.
산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죽은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가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무어라 할 수 없다는 그것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빨리 몸을 뒤쳐 겁 밖으로 뛰어넘으라. 그때부터는 확탕(湯: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도 시원해지리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불자들은 자세히 아는가. 여기서 만일 자세히 알면 지옥에 있거나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있거나 관계없이 불조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산승이 그대들을 위해 잔소리를 좀 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망령되게 4대를 제 몸이라 여기고 망상분별을 제 진심으로 알아 하루 내내 일년 내내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악업을 지어 왔다. 그리하여 그 정도가 같지 않으므로 지옥에 들기도 하고 아귀나 축생이나 아수라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인간이나 천상에 있기도 하는데, 지금 갑진년 섣달 그믐날 모두 여기 와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인연을 버리고 온갖 일을 쉬고, 여러 생 동안 지은 중죄를 참회하여 없애고 자심3보(自心三寶)에 귀의하라. 불법승 3보는 그대들의 선지식이 되고 그대들의 큰 길잡이가 될 것이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도 다 이것에 의하여 정각(正覺)을 이루고는,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여 다 성불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미래의 부처와 보살도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일체종지(一切種智: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가 뚜렷이 밝고 10호(十號)가 두루 빛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심3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다.
귀의란 망(妄)을 버리고 진(眞)을 가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금 분명히 깨닫는, 텅 비고 밝고 신령하고 묘한, 조작없이 그대로인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불보(佛寶)요, 탐애를 아주 떠나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피어나 시방세계를 비추는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법보(法寶)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아 과거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승보(僧寶)인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참귀의처이며, 이것을 일심3보(一心三寶)라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철저히 알았는가? 만일 철저히 알아낸다면 법법이 원만히 통하고 티끌티끌이 해탈하여 다시는 3도와 6취에 윤회하지 않을 것이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옛 성인이 도에 들어간 인연을 예로 들어 그대들을 깨닫게 하겠다.
삼조 승찬(三祖僧璨)대사가 처음으로 이조(二祖)를 찾아뵙고, ‘저는 죄가 중합니다. 화상께서 이 죄를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하니 이조는 ‘그 죄를 가져 오라. 그대에게 참회하게 하리라’ 하였다. 삼조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기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하니 이조가 ‘그대의 죄를 다 참회해 주었으니, 불법승에 의지하여 살아가라’ 하였다.
삼조가 다시 묻기를 ‘제가 보니 스님은 승보이지만 어떤 것이 부처와 법입니까?’ 하니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니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다’ 하였다. 삼조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마음이 그런 것처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니 이조는 ‘그렇다’ 하였다.
불자들이여,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다고 한다면 결국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일어난 곳을 찾아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의 본성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에 대해 분명하여 의심이 없다면 바른 안목이 활짝 열렸다 하겠으나 혹 그렇지 못하다면 또 한마디를 들어 그대들의 의심을 풀어 주겠다. 옛사람들의 말에 ‘물질을 보면 바로 마음을 본다. 그러나 중생들은 물질만 보고 마음은 보지 못한다’ 하였다.”
이어서 불자를 세우고는,“이것이 물질이라면 어느 것이 그대들의 마음인가?” 하시고, 또 세우고는“이것이 그대들의 마음이라면 어느 것이 물질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고는 말씀하셨다.
“물질이면서 마음인 것이 그 자리에 나타나는데, 요새 사람들은 형상을 버리고 빈 마음을 찾는다.”
19. 최상서(崔尙書)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영혼을 부르며 말씀하셨다.
“나(羅)씨 영혼이여, 나씨 영혼이여, 아는가? 모른다면 그대의 의심을 풀어주겠다.
나씨 영혼이여, 63년 전에 4연(四緣)이 거짓으로 모인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남[生]이라 하였으나 나도 난 적이 없었다. 63년 뒤인 오늘에 이르러 4대가 흩어진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죽음이라 하나 죽어도 따라 죽지 않았다. 이렇게 따라 죽지도 않고 또 나지도 않았다면,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실체가 없다면 홀로 비추는 텅 비고 밝은 것[虛明]만이 영겁토록 존재하는 것이다.
나씨 영혼을 비롯한 여러 불자들이여,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3세 부처님네도 설명하지 못하였고 역대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하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했다면 4생6도의 일체 중생들에게 각각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본래 갖추어져 있다면 무엇을 남이라 하고 무엇을 죽음이라 하며, 무엇을 옴이라 하고 무엇을 감이라 하며, 무엇을 괴로움이라 하고 무엇을 즐거움이라 하며, 무엇을 옛날이라 하고 무엇을 지금이라 하는가.
삶과 죽음, 감과 옴, 괴로움과 즐거움, 옛과 지금이 없다고 한다면,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적나라하고 적쇄쇄하여 아무런 틀[窠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 시방세계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바로 깨끗하고 묘한 불토(佛土)요 더 없는[無上] 불토며, 견줄 데 없는 불토요 한량없는 불토며, 불가사의한 불토요 말할 수 없는 불토인 것이다.
이런 불토가 있으므로 이 모임을 마련한 시주 최씨 등이 지금 산승을 청하여 이 일대사인연을 밝히고, 망모(亡母)인 나씨 영가(靈駕)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말해 보라. 영가는 지금 어느 국토(國土)에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티끌 하나에 불토 하나요, 잎새 하나에 석가 하나니라” 하고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0. 조상서(趙尙書)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죽비로 향탁(香托)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채(蔡)씨 영가는 아는가. 이 자리에서 알았거든 바로 본지풍광(本地風光)을 밟을 것이오, 만일 모르거든 이 말을 들으라.
50여 년 동안을 허깨비 바다[幻海]에 놀면서 온갖 허깨비 놀음을 하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4대가 흩어져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밝고 텅 빈[虛明] 한 점만이 환히 홀로 비추면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청하면 곧 오는데,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한다. 오직 이 광명은 시방세계의 허공을 채우고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찬란히 모든 사물에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산하대지는 법왕의 몸을 완전히 드러내고, 초목총림은 모두 사자후를 짓는다. 한 곳에 몸을 나타내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한 곳에서 법을 설하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법을 설한다. 한 몸이 여러 몸을 나타내고 여러 몸이 한 몸을 나타내며, 한 법이 모든 법이 되고 모든 법이 한 법이 되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받아들이고 크고 둥근 거울[大圓鏡]처럼 영상이 서로 섞인다. 그 가운데 일체 중생은 승속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혜있는 이나 지혜없는 이나, 유정이나 무정이나, 가는 이나 오는 이나, 죽은 이나 산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성불한다’라고.
채씨 영가여, 아는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 의심이 없으면 현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 3세의 부처님네와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다니면서 이승이나 저승에서 마음대로 노닐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 구절을 들으라.”
죽비로 향탁을 한 번 내리치고는“한 소리에 단박 몸을 한 번 내던져 대원각(大圓覺)의 바다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1. 장흥사(長興寺) 원당(願堂)주지의 청으로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선가와 이씨 영가와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4성6범(四聖六凡)이 여기서 갈라지고 4성6범이 여기서 합한다. 그대들은 아는가. 만일 모른다면 내가 한마디 하여 그대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라.
승의 선가와 이씨 영혼이여, 만일 이 일대사인연으로 말하자면 지옥세계에 있는 자나 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세계에 있는 자를 가리지 않고 각기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다니고 서며 앉고 누우며 움직이는 동안 배고프고 춥기도 하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면서 어디서나 갖가지로 작용하는데, 다만 미혹과 깨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즐거움을 누리는 이도 있고 항상 지독한 고통을 받는 이도 있어 두 경지가 같지 않다.
불자들이여, 이 한 점 신령하고 밝은 것[靈明]은 성인에 있다 하여 늘지도 않고 범부에 있다 하여 줄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의지하는 곳이 없으며 활기가 넘쳐 막히는 일도 없다. 비록 형상도 없고 처소도 없으나 시방세계를 관통할 수 있고 모든 부처의 법계에 두루 들어간다. 물물마다 환히 나타나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고 버리더라도 언제나 있다. 한량없이 광대한 겁으로부터 나도 따라 나지 않고 죽어도 따라 죽지 않으며, 저승과 이승으로 오가지만 그 자취가 없다.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6근에 두루두루 나타나되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다.
불자들이여,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으면, 바른 눈이 활짝 열려 불조의 혜명(慧命)을 잇고 스승의 기용(機用)을 뛰어넘어 현묘한 도풍을 크게 떨칠 것이다. 만일 그래도 의심이 있으면 또 한 가지를 들어 남은 의심을 없애 주리니 자세히 보아라.”
죽비를 들고“이것을 보는가” 하고 한 번 내리치고는,“이 소리를 듣는가. 보고 듣는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2. 신백대선사(申白大禪師)를 위해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모든 법은 인연을 따라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도로 멸한다. 63년 동안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인과를 모두 거두어 진(眞)으로 돌아갔나니, 근진(根塵)을 모두 벗고 남은 물건이 없어 손을 놓고 겁 밖의 몸으로 갔구나.“
그 혼을 부르면서 말씀하셨다.
“신백 존령(尊靈)은 과연 이러한가. 과연 그러하다면 생사에 들고 남에 큰 자재를 얻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마디를 들으라.”
밤이 고요해 거듭 달을 빌리기 수고롭지 않나니
옥두꺼비(玉蟾:달) 언제나 허공에 걸려 있네.
夜靜不勞重借月 玉蟾常掛大虛中
23. 해제에 상당하여
태후전(太后殿)에서 가사 한 벌을 보내오다
스님께서 법의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유령(大庾嶺) 꼭대기에서 들어도 들어지지 않을 때에는 다투어도 모자라더니, 놓아버려 깨달았을 때에는 양보해도 남는구나.”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하던 것을 어찌 한 사람이 친히 전하겠는가. 대중은 아는가. 접고 펴기는 비록 내게 있으나 거두고 놓기는 그대에게 있다.”
가사를 입고 법좌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자리는 많은 사람이 오르지도 못하였고 밟지도 못하였는데, 이 산승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올라갈테니 대중은 자세히 보라.”
스님께서는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가사자락을 거두고 자리를 펴고 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主句)인가, 빈구(賓句)인가. 파주구(把住句)*인가, 방행구(放行句)*인가. 대중은 가려내겠는가. 가려낼 수 있겠거든 당장 흩어지고, 가려내지 못하겠든 내 말을 들으라. 맨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機]은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지금 대중의 면전에 들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빠진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중생이 없는데, 무슨 장기(長期)․단기(短期)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양쪽을 끊었고 가운데에도 있지 않다. 빈 손에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탄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구나.”
할을 한 번 하고는“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4. 승하하신 대왕의 빈전(殯殿)에서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손 가는대로 향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覺穀仙駕:공민왕을 말함)께서 천성(千聖)의 이목을 활짝 열고 자기의 신령한 근원을 증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향을 꽂으셨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기대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왕은 아십니까. 45년 동안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삼한(三韓)의 주인이 되어 뭇 백성들을 이롭게 하다가, 이제 인연이 다해 바람과 불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왕은 자세히 들으소서. 텅 비고 밝은 이 한 점은 흙이나 물에도 속하지 않고 불이나 바람에도 속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속하지 않고 현재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가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오는 것에도 속하지 않으며, 나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죽는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장자를 들고는“이것을 보십니까?” 하고 세 번 내리치고는“이 소리를 들으십니까?” 하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허공을 쳐부수어 안팎이 없어 한 티끌도 묻지 않고 당당히 드러났다. 몸을 뒤쳐 위음왕불(威音王佛) 뒤를 바로 뚫고 가시오. 둥근 달 차가운 빛이 법상(法滅)을 비춥니다.”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5. 납월 8일 한 밤의 법문[晩參]
스님께서 자리에 오르자 동당․서당의 스님들이 문안인사를 드렸다.
스님께서는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산승이 방장실에서 나와 이 자리에 오르자, 시자도 인사하고 수좌도 인사하고 유나(維那)도 인사하였다. 인사가 다 끝났는데 또 무슨 일이 있는가?”
한 스님이 나와 말하였다.
“오늘은 납월(臘月) 8일입니다.”
스님께서는“대중 속에 들어가라” 하고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 보아도 머리가 없고 밑으로 보아도 꼬리가 없다.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으며 세계가 생기기 전이나 산하가 멸한 후에도 허공에 가득 차 있다. 3세의 부처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대들은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산산조각이 났도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6. 경술 9월 16일 나라에서 시행한 공부선장(工夫選場)에서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을 깨부수고 범성의 자취를 모두 쓸어버리고 납승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알음알이를 없애버려라. 죽이고 살리는 변통이 모두 때에 맞게 하는 데 있고 호령과 저울대가 모두 손아귀에 돌아간다. 3세의 부처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저 그럴 뿐이다. 산승도 다만 그런 법으로 우리 주상전하께서 만세 만세 만만세토록 색신(色信)과 법신(法身)이 무궁하시고 수명과 혜명(慧命)이 끝이 없기를 봉축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여러분도 모두 진실로 답안을 쓰고 부디 함부로 소식을 통하지 말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행은 지극한데 말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행이 될 수 없고, 말은 지극한데 행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말도 지극하고 행도 지극하다 하더라고 그것은 다 문 밖의 일이다.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입문삼구(入門三句)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入門句]는 분명히 말했으나
문을 마주한 한마디[當門句]는 무엇이며
문 안의 한마디[門裏句]는 무엇인가.
入門句分明道
當門句作麽生
門裏句作麽生
삼전어(三轉語)
산은 어찌하여 묏부리에서 그치고
물은 어찌하여 개울을 이루며
밥은 어찌하여 흰 쌀로 짓는가.
山何嶽邊止
水何到成渠
飯何白米造
17일에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의심덩이가 풀리는 곳에는 마침내 두 가지 풍광이 없고, 눈구멍이 열리는 때에는 한 항아리의 봄빛이 따로 있으니 비로소 일월의 새로움을 믿겠고 바야흐로 천지의 대단함을 알 것이다. 그런 뒤에 반드시 위쪽의 관문을 밟고 조사의 빗장을 쳐부수면 물물마다 자유로이 묘한 이치를 얻고 마디마디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만들고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드니, 만드는 것도 내게 있고 쓸어버리는 것도 내게 있으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내게 있고 도리를 말하지 않는 것도 내게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런 납승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꺼지고 한 걸음 물러나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면 숨만 붙은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걸음을 내딛겠는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27. 공부십절목(工夫十節目)
1.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3.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4.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鼻軫]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5.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6.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動靜)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때에는 어떻게 해버려야 하겠는가.
7.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自性)인가.
8.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이 맞게 쓰이는 것인가.
9.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眼光)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10.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28. 왕사(王師)로 봉숭(封崇)되는 날 설법하다
신해년 8월 26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불자를 들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산승의 깊고 깊은 뜻을 아는가. 그저 이대로 흩어져버린다 해도 그것은 많은 일을 만드는 것인데, 거기다가 이 산승이 입을 열어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기를 기다린다면 흰 구름이 만 리에 뻗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기연에 투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니,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뜻을 잃고 글귀에 얽매이는 이는 어둡다. 또한 마음으로 헤아리면 곧 어긋나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나며, 헤아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 물에 잠긴 돌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사 문하에서는 길에서 갑자기 만나면 그대들이 몸을 돌릴 곳이 없고 영(令)을 받들어 행하면 그대들이 입을 열 곳이 없으며, 한 걸음 떼려면 은산철벽(銀山鐵璧)이요, 눈으로 바라보면 전광석화(電光石火)인 것이다. 3세의 부처님도 나와서는 그저 벼랑만 바라보고 물러섰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나왔다가는 그저 항복하고 몸을 감추었다.
만일 쇠로 된 사람이라면 무심코 몸을 날려 허공을 스쳐 바로 남산의 자라코 독사를 만나고, 동해의 잉어와 섬주(曳州)의 무쇠소[鐵牛]*를 삼킬 것이며 가주(圈州)의 대상(大像)*을 넘어뜨릴 것이니, 3계도 그를 얽맬 수 없고 천 분 성인도 그를 가두어둘 수 없다. 지금까지의 천차만별이 당장 그대로 칠통팔달이 되어, 하나하나가 다 완전하고 낱낱이 다 밝고 묘해질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임금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주장자를 들고“그렇지 못하다면 이 주장자 밑의 잔소리[註脚]를 들으라” 하고 내던지셨다.
29. 갑인 납월 16일 경효대왕(敬孝大王) 수륙법회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를 들고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는 아십니까. 모르겠으면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이 별[星兒]은 무량겁의 전부터 지금까지 밝고 신령하고 고요하고 맑으며, 분명하고 우뚝하며 넓고 빛나서 온갖 법문과 온갖 지혜와 온갖 방편과 온갖 훌륭함과 온갖 행원(行願)과 온갖 장엄이 다 이 한 점(點)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한 점은 6범에 있다 해서 줄지도 않고 4성에 있다 해서 늘지도 않으며, 4대가 이루어질 때에도 늘지 않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줄지 않는 것으로서 지금 이 회암사에서 분명히 제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법을 듣는 그것은 범부인가 성인인가, 미혹한 것인가 깨달은 것인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결국 어디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그 자리[當處]를 떠나지 않고 항상 맑고 고요하나 그대가 찾는다면 보지 못할 것이오” 하고 죽비를 내던지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자리를 펴고 앉아 죽비를 가로 잡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부처의 경계를 알려 하거든, 부디 마음[意]을 허공처럼 깨끗이 해야 한다. 망상과 모든 세계를 멀리 떠나고, 어디로 가나 그 마음 걸림이 없게 해야 한다.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를 비롯하여 6도에 있는 여러 불자들은 과연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하였는가. 그렇지 못하거든 다시 이 잔소리를 들으라.
이 정각(正覺)의 성품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로는 모든 부처에서 밑으로는 여섯 범부에 이르기까지 낱낱에 당당하고 낱낱에 완전하며, 티끌마다 통하고 물건마다 나타나 닦아 이룰 필요없이 똑똑하고 분명하다. 지옥에 있는 이나 아귀에 있는 이나 축생에 있는 이나 아수라에 있는 이나 인간에 있는 이나, 천상에 있는 이나, 다 지금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모두 이 자리에 있다. 각경 선가와 여러 불자들이여!”
죽비를 들고는“이것을 보는가” 하고는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는가. 분명히 보고 똑똑히 듣는다면 말해 보라.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부처님 얼굴은 보름달 같고, 해 천 개가 빛을 놓는 것 같다.”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30. 병진 4월 8일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집안의 이 물건은 신기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으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되, 해같이 밝고 옻같이 검다. 항상 여러분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으나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산승이 오늘 무심코 그것을 붙잡아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여러분은 이것을 아는가? 안다 해도 둔근기인데 여기다 의심까지 한다면 나귀해[驢年]에 꿈에서나 볼 것이다. 그러므로 선(禪)을 전하고 교(敎)를 전하는 것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요, 경론을 말해 주는 것도 눈 안에 금가루를 넣는 것이다.
산승은 오늘 말할 선도 없고 전할 교도 없소. 다만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도 전하지 못했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뚫지 못한 것을 오늘 한꺼번에 집어 보이는 것이다.”
주장자를 가로잡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당장에 마음을 비울 뿐만 아니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던지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짧은 글
1. 승종선화(勝宗禪和)에게 주는 글
이 한 점(點)은 전연 자취[巴鼻]가 없어,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다면 어디에다 붓을 대고 어디에다 말을 붙이겠는가. 말하려 하나 말로는 할 수 없으니 숲 속에서 잘 생각하여라.
2. 일주수좌(一珠首座)에게 주는 글
이 큰 일을 기필코 해결하려거든 반드시 큰 신심을 내고 견고한 뜻을 세워, 지금까지 배워서 안 불법에 대한 견해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버리고 다시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8만 4천의 미세한 생각을 한 번 앉으면 그 자리에서 끊어버리고, 그저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항상 화두를 들어야 한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無]’고 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한마디 힘을 다해 들되, 언제나 들고 언제나 움켜잡으면, 움직이거나 고요한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자나깨나 늘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저 때만 기다려라.
혹 들어도 냉담하고 전연 재미가 없어 부리를 꽂을 곳이 없고 힘을 붙일 데가 없으며, 알아지는 점이 없고 어찌할 수가 없더라도 부디 물러서지 말라. 그때야말로 그 사람이 힘을 붙일 곳이요 힘을 덜 곳이며, 힘을 얻을 곳이요 신명을 놓아버릴 곳이다.
3. 굉장주(宏藏主)에게 주는 글
이 더러운 가죽 포대 속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언제나 사람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지만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다. 이것을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이라 한다.
굉스님은 아는가. 안다 해도 몽둥이 30대를 맞을 것이며, 모른다 해도 30대를 맞을 것이니 결국 어찌하겠는가? 이 나옹도 30대를 맞아야 하겠다. 말해 보라. 허물이 어디 있는가? 빨리 말하라.
4. 각성선화(覺成禪和)에게 주는 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기어코 이루려 하거든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어,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늘 참구하던 화두를 들어야 한다. 언제나 들고 늘 의심하면 어느 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고 다시는 부질없고 쓸데없는 말을 말아야 한다.
혹 그렇게 되지 않아 어떤 때는 화두가 분명하고 어떤 때는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타나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며, 어떤 때는 틈이 있고 어떤 때는 틈이 없거나 하면 그것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을 허송하면서 헛되이 남의 보시만 받으면 반드시 뒷날 염라대왕이 음식과 재물을 계산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부질없이 세상에 와서 한번 만났을 뿐이라 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짧은 소리․긴소리하며, 이쪽을 가리키고 저쪽을 가리키겠는가.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5. 운선자(雲禪子)가 병이 있다 하기에 그에게 글을 주다
그대의 병이 중하다 들었는데 그것은 무슨 병인가? 몸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만일 몸의 병이라면 몸은 흙․물․불․바람의 네 가지 요소가 거짓으로 모여 된 것으로서, 그 4대는 각각 주관하는 바가 있는데, 어느 것이 그 병인가? 만일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허깨비[幻化] 같은 것이어서 비록 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바탕은 실로 공하다. 그렇다면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만일 일어난 곳을 캐보아도 찾을 수 없다면 지금의 그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또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내 바람이다. 부디 부탁하고 부탁하노라.
6. 지득시자(志得侍者)에게 주는 글
그대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참구하려거든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가운데 ‘모두 타서 흩어졌는데 어느 것이 내 성품인가?’라는 화두를 들되, 언제나 들고 항상 의심하여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곳에서나 부디 틈이 있게 하지 말라. 자거나 깨거나 한결같아야 하고 어디서나 언제나 분명하며, 기뻐하는 때나 성내는 때나 화두가 다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경지에 실제로 이르면 의심덩이가 부서지고 바른 눈이 열릴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여 낮이나 밤이나 되는대로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 혼침과 산란이 섞이고 순간순간에 어긋나 온갖 선악과 성색에 끄달릴 것이다. 그리하여 금년도 그렇게 보내고 내년도 그렇게 갈 것이니, 만일 그렇다면 아무리 미륵이 하생하기를 기다려도 붙잡을 때가 없을 것이다.
7. 상국 목인길(相國 睦仁吉)에게 주는 글
이 일은 재가․출가에도 있지 않고 또 초참(初參)․후학(後學)에도 있지 않으며, 또 여러 생의 훈습이나 수행에도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깨치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분명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자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善法)을 자라게 한다.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한 것입니다.
부디 상공도 집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지휘할 때나 관에서 공사를 처리할 때나, 손님을 영접하여 담소를 나누거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거나, 다니고 서고 앉고 눕거나 결국 ‘이것은 무엇인가’ 하십시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고 쉬지 않고 살피면 어느 새 크게 웃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그리하여 이 일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고행하고 계율을 지니는, 방석과 대의자[竹倚]에 있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8. 득통거사(得通居士)에게 주는 글
만일 그대가 이 일을 참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승속에도 있지 않고 남녀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또 여러 생의 훈습에도 있지 않는 것이오,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진실하고 결정적인 믿음에 있는 것이오. 그대가 이미 이렇게 믿었거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화두를 드시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없다’ 하였다는, 이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드시오. 언제나 끊이지 않고 들어 고요하거나 시끄러운 속에서도 공안이 앞에 나타나며, 자나깨나 그 화두가 분명하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을 것이오. 진실로 그런 경지에 이르면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도 갑자기 한 번 온몸에 땀이 흐르게 되리니, 그때는 잠자코 스스로 머리를 끄덕거릴 것이오. 간절히 부탁하오, 부탁하오.
9. 상국 이제현(相國 李齊賢)에게 답함
주신 편지 받았습니다. 상국께서 떠나실 때 병에 대해 하신 말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산승도 구업을 꺼려하지 않고 우리 집의 더러움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일은 승속에도 관계없고 노소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실하고 결정적인 신심에 있을 뿐입니다.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다 결정적인 신심에 의해 도과(道果)를 성취하셨으므로,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正覺)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을 자라게 한다’ 하시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상국께서는 젊어서 과거에 높이 올라 한 나라의 정승이 되고 또 제일가는 문장가로서 나라의 큰 보배가 되셨는데, 또 우리 불법문중에 마음을 두시니, 고금의 현인들에 비해 백천만 배나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에 마음을 두었더라도 금생에 깨치지 못하면, 아마 도력이 업력을 이기지 못해 죽고 나서는 가는 곳마다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철저히 깨치지 못했으면 꼭 하고야 말겠다는 큰 뜻을 일으켜 옷 입고 밥 먹고 담소하는 하루 스물 네 시간 어디서나 그 본래면목을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의 말에, ‘금생에 이 세상에 나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마는, 어떤 것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 하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데 이르러 가슴속이 갑갑하더라도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상국께서 힘을 얻을 곳이요 힘을 더는 곳이며, 또 안신입명(安身立命)할 곳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다시 답함
전에 산매화를 보냈을 때 선물을 주시고 또 회답에 무자(無字) 화두를 드신다 하니, 산승은 상국께서 일찍부터 ‘무’자를 참구하였기 때문에 친히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으매 다시 묻는 말에 이렇게 공부하리라 하시니 도리어 근심스럽고 놀랍습니다. 부디 마음을 그대로 두시기 바랍니다. 옛사람들은 한마디나 반마디를 내려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리를 잡고서 움직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비록 일상생활에 천차만별한 일이 있더라도 뜻이 위에만 있어 다른 것을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다른 화두를 참구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다른 화두를 들 때에도 ‘무’자를 참구해 떠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무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것입니다. 부디 다른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지 말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늘 드십시오.
한 스님의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없다[無]’ 하였다는데 ‘무’라고 한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들되, 부디 언제 깨치고 깨치지 못할까를 기다리지 말고 재미가 있고 없음에 신경쓰지도 말며, 또 힘을 얻고 얻지 못함에도 관계치 마십시오. ‘무’자 그것만을 오로지 들어 그대로 나아가면,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의식이 작용하지 않으며 하나도 재미가 없어 마치 모기가 무쇠소의 등에 올라간 것 같더라도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기는 과거의 여러 부처님과 조사님이 몸과 마음을 던져버린 곳이요, 또 상국께서 힘을 얻고 힘을 덜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곳입니다. 거기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리면 비로소 도란, 첫째는 짓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쉬지 않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한 주먹에 황학루(黃鶴樓)를 때려눕히고
한 발길로 앵무주(鵡洲)를 차서 뒤엎는다
의기(意氣)에 의기를 더 보태니
풍류스럽지 않은 곳도 풍류스럽구나.
一拳拳倒黃鶴樓 一蹋蹋翻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10. 지신사 염흥방(知申事 廉興)에게 주는 글
진정 이 큰 일을 참구하려면 승속과 남녀를 묻지 말고 상중하의 근기도 묻지 말며 또 초참․후학을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직 당사자가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모든 선법을 자라게 한다’ 하셨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공(公)은 젊어서 높은 벼슬에 올랐고 임금님을 만나 사무가 매우 번거로운 때인데도 우리 불법에 대해 의심없는 확실한 믿음으로 마음 닦는 방법을 물으시니, 어찌 세간 출세간을 막론하고 가장 역량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 닦는 법을 따로 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광명사(廣明寺)에 있을 때 공에게 말씀드린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들되, 어디서나 언제나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끊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참구하여 조금도 틈을 주지 말고, 다닐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섰을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며, 앉았거나 누웠을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옷 입고 밥 먹으며 대소변 보고 손님을 영접하며, 나아가서는 공무를 처리할 때나 임금님 앞에서 나아가고 물러날 때나 붓을 들고 글을 쓸 때나 필경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그저 이렇게 끊임없이 들고 참구하다 보면 어느 새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어,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고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며, 또 이 허깨비몸이 인간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같고 자나깨나 매한가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지십시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관직이나 속인의 모양을 바꾸지 않고 화택(火宅)을 떠나지 않고라도, 서천(西天)의 스물 여덟 분 조사와 동토(東土)의 여섯 조사와 천하의 선지식들이 전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본유(本有)의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1. 세상을 탄식함[歎世]․ 4수
1.
어지러운 세상 일 언제나 끝이 날꼬
번뇌의 경계는 갈수록 많아지네
미혹의 바람은 땅을 긁어 산악을 흔드는데
업의 바다는 하늘 가득 물결을 일으킨다
죽은 뒤의 허망한 인연은 겹겹이 모이는데
눈앞의 광경은 가만히 사라진다
구구히 평생의 뜻을 다 부려 보았건만
가는 곳마다 여전히 어찌할 수 없구나.
世事紛紛何曰了 塵勞境界倍增多
迷風刮地搖山嶽 業海漫天起浪波
身後妄緣重結集 目前光景暗消磨
區區役盡平生圍 到地依先不輓何
2.
눈 깜박이는 사이에 세월은 날아가버리나니
젊은 시절은 백발이 되었구나
금을 쌓아두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 어찌 그리 미련한고
뼈를 깍으며 생(生)을 꾸려가는 것 진정 슬퍼라
흙을 떠다 산을 북돋움은 부질없이 분주떠는 일이요
표주박으로 바닷물 떠내는 것 진실로 그릇된 생각이다
고금에 그 많은 탐욕스런 사람들
지금에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 없구나.
乏眼光陰賑過去 白頭換却少年時
積金候死愚何甚 刻骨營生事可悲
捧土培山徒自迫 持楞酌海諒非思
古今多少貪婪客 到此應無一點知
3.
얼마나 세상 티끌 속에서 빠져 지냈나
백가지 생각이 마음을 얽어 정말로 시끄러운데
5온(五睛)의 빽빽한 숲은 갈수록 우거지고
6근(六根)의 어두운 안개는 다투어 나부끼네
명리를 구함은 나비가 불에 들고
성색에 빠져 즐김은 게가 끓는 물에 떨어지네
쓸개가 부서지고 혼이 나가는 것 모두 돌아보지 않나니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를 위해 바빠하는가.
幾多汨沒紅塵裏 百計縈心正擾攘
五睛稠林增霽鬱 六根冥務競飄颸
沽名苟利蛾投焰 嗜色滛聲蟹落湯
膽碎魂亡渾不顧 細思端的爲誰忙
4.
죽고 나고 죽고 나며, 났다가 다시 죽나니
한결같이 미쳐 헤매며 쉰 적이 없었네
낚싯줄 밑에 맛난 미끼를 탐할 줄만 알거니
어찌 장대 끝에 굽은 낚시 있는 걸 알리
백년을 허비하면서 재주만 소중히 여기다가
오래고 먼 겁의 허물만 이뤄놓네
업의 불길이 언제나 타는 곳을 돌이켜 생각하나니
어찌 사람들을 가르쳐 특히 근심하지 않게 하랴.
死死生生生復死 狂迷一槪不曾休
只知線下貪香餌 那識竿頭有曲鈞
喪盡百年重伎倆 搆成久遠劫愆尤
翻思業火長燃處 寧不敎人特地愁
12. 지공화상(指空和尙) 기골(起骨)*
“밝고 텅 빈 한 점은 아무 걸림이 없어, 한 번 뒤쳐 몸을 던지니 얼마나 자유롭소.“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며 할을 한 번 하고는 ‘일으켜라!’ 하셨다.
입탑(入塔)
스님께서 영골을 받들고 말씀하셨다.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은 3천 가지 몸가짐을 돌아보지 않았는데 8만 가지 미세한 행에 무슨 신경을 썼는가. 몸에는 언제나 순금을 입고* 입으로는 불조를 몹시 꾸짖었으니, 평소의 그 기운은 사방을 눌렀고 송골매 같은 눈은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원나라에서 여러 해를 잠자코 앉아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전하매 천룡팔부가 돌아오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아침에 정성스레 탑을 세우고 삼한(三韓) 땅에 모시어 항상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나 그 법신은 법계에 두루해 있다. 말해 보라. 과연 이 탑 안에 거두어 넣을 수 있겠는가. 만일 거두어 넣을 수 없으면 이 영골은 어디 가서 편안히 머물겠는가. 말할 수 있는 이는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없다면 산승이 스스로 말하겠다.”
할을 한 번 한 뒤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기는 오히려 쉽지만, 겨자씨를 수미산에 넣기는 매우 어렵다.”
13. 각오선인(覺悟禪人)에게 주는 글
생각이 일고 생각이 멸하는 것을 생사라 하는데, 생사하는 그 순간순간에 부디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라. 화두가 순일하면 일고 멸함이 곧 없어지는데 일고 멸함이 없어진 그 곳을 신령함[靈]이라 한다. 신령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그것을 무기(無記)라 하고, 신령함 가운데 화두에 어둡지 않으면 그것을 신령함이라 한다. 즉 이 텅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럽게 아는 것은 무너지지도 않고 잡된 것도 아니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다.
14. 지여상좌(智如上座)를 위해 하화(下火)*하다
세 가지 연[三緣]이 모여 잠깐 동안 몸[有]을 이루었다가 4대가 떠나 흩어지면 곧 공(空)으로 돌아간다. 37년을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오늘 아침 껍질을 벗었으니 흉년에 쑥을 만난 듯 기쁠 것이다. 대중스님네여, 지여상좌는 어디로 갔는지 알겠는가. 목마를 세워 타고 한 번 뒤쳐 구르니, 크고 붉은 불꽃 속에서 찬 바람을 놓도다.
15. 두 스님을 위해 하화하다
“혜징(慧澄) 수좌와 지인(志因) 상좌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날 때에도 분명하여 남을 따르지 않고, 죽을 때에도 당당하여 죽음을 따르지 않는다. 생사와 거래에 관계없이 그 자체는 당당히 눈앞에 있다.“
횃불로 원상(圓相)을 그리면서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이 두 상좌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57년 동안 허깨비 세상에서 놀다가 오늘 아침에 손을 떼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가운데 소식을 누가 아는가. 불빛에 함께 들어가나 감출 곳이 없구나.”
16. 신백대선사를 위해 뼈를 흩다
큰 들판에 재가 날으매 그 뼈마디는 어디 갔는가. 깜짝하는 한 소리에 비로소 뇌관(牢關)에 이르렀다. 앗! 한 점 신령스런 빛은 안팎이 없고, 오대산 하늘을 둘러싼 흰 구름은 한가하다.
17. 지보상좌(志普上座)를 위해 하화하다
근본으로 돌아갈 때가 바로 지금이거니, 도중에 머물면서 의심하지 말아라. 별똥이 튀는 곳에서 몸을 한 번 뒤쳐, 구품의 연화대로 자유로이 돌아가라.
18. 숙녕옹주 묘선(淑寧翁主 妙善)에게 드리는 글
이 한 가지 큰 일을 성취하려면 그것은 승속이나 남녀나 초기(初機)․후학(後學)에 있지 않고, 오직 당사자의 마지막 진실한 한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제가 옹주를 보매 천성이 남과 다른 데가 있어, 본래부터 사심이나 의심이나 미혹한 마음이 없고, 오직 전심으로 더 없는[無上]보리를 구하려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어찌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반야의 바른 법을 훈습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사람의 말에, ‘장부란 남자 여자의 형상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요, 네 가지 법[四法]을 갖추면 그를 장부라 한다’ 하였습니다. 네 가지 법이란 첫째는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그 뜻을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그 말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참으로 장부라 하고, 이 네 가지 법이 없으면 비록 남자의 몸이라 하더라도 장부라 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옹주님도 이 말을 확실히 믿고 그저 날마다 스물 네 시간 행주좌와의 4위의(四威儀) 속에서 오직 본래 참구하던 화두만을 들되 끊이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의심하면 고요하거나 시끄러운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며, 자나깨나 화두가 앞에 나타나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일어나려 해도 일어나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모르는 사이에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면, 거기는 여자의 몸을 바꾸어 남자가 되고 남자 몸을 바꾸어 부처를 이루는 곳이 될 것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9. 매씨(妹氏)에게 답함
나는 어려서 집을 나와 햇수도 달수도 기억하지 않고 친한 이도 먼 이도 생각하지 않으며, 오늘까지 도(道)만을 생각해 왔다. 인의(仁義)의 도에 있어서는 친하는 정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지마는, 우리 불도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큰 잘못이다. 이런 뜻을 알아 부디 친히 만나겠다는 마음을 아주 끊어버려라.
그리하여 하루 스물 네 시간 옷 입고 밥 먹고 말하고 문답하는 등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아미타불을 간절히 생각하여라. 끊이지 않고 생각하며 쉬지 않고 기억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경지에 이르면, 나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헛되이 6도(六道)에서 헤매는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절히 부탁하여 게송으로 말하겠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여두고 부디 잊지 말아라
생각이 다하여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六門]에서 언제나 자금광을 뿜으리.
阿邇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20. 대어(對語)*
무제(武帝)가 달마에게“내 앞에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달마가“모른다”고 대답하니 무제가 말이 없었다. 이에 대해 보녕(保寧)스님은 대신해 혀를 내어보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천지가 하나로 통한다” 하셨다.
태종(太宗)이 한 스님에게“어디서 오시오” 하고 묻자 그 스님이“와운(臥雲)에서 옵니다” 하니 왕은“와운은 궁벽한 곳이라 천자에게 조회하지 않는데 무엇하러 왔는가” 하였다. 이에 대해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밝음을 만나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정치가 잘 되는데 누가 달아나겠는가” 하셨다.
적(寂)대사가 삼계도(三界圖)를 올렸을 때 임금이 묻기를,“나는 어느 세계에 있습니까?” 하니 적대사는 대답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폐하께서야 어디로 가신들 누가 존칭하지 않겠나이까”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합장하고 몸을 굽히는데 누가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하셨다.
고사인(高舍人)*이 한 스님에게“시방세계가 모두 부처라면 어느 것이 보신(報身)이며 어느 것이 법신(法身)입니까?” 하고 물었다. 보녕스님이 그 스님을 대신해서“사인님, 다시 누구냐고 물어 보십시오” 하였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비구니[師姑]는 여자로 된 것이니라” 하셨다.
설봉(雪峰)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옛부터 내려오는 종승(宗乘)의 일에 저도 한 몫이 있습니까?” 하였다. 덕산스님이 때리면서,“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니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가슴을 치고 곧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발을 밟고 나가라” 하셨다.
남전(南泉)스님이 양흠(良欽)에게 물었다.
“공겁(空劫) 중에도 부처가 있는가?”
양흠이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그는 어떤 부처인가?”
“양흠입니다.”
“어느 세계에 사는가?”
양흠이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선상(禪滅)을 한 바퀴 돌고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어느 세계에 사는가?” 하셨다.
21. 감변(勘辨)
스님께서 한 좌주(座主)에게 물었다.
“교가(敎家)에서는 일시불(一時佛)을 말하는데, 그 부처는 지금 어디 있는가?”
좌주가 어물거리자 스님께서 할을 한 번 하고 나가다가 다시 좌주를 불렀다. 좌주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알았는가?” 하니 좌주가“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스님께서“더 맞아야겠구나” 하니 좌주는 절을 하였다.
스님 셋이 와서 절하는 것을 보고 스님께서 물었다.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하나는 지혜가 있을 것이니, 지혜로 이르지 못하는 경계를 한마디 해보아라.”
그 스님이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는 말에 있지 않다. 둘째 스님은 어떤가?”
그 스님도 말이 없자 스님께서는“셋째 칠통(漆桶)은 어떤가?” 하셨다.
그 스님도 역시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승이 스님네에게 감파(勘破)당했소. 앉아서 차나 드시오.”
스님께서 한 도사(道士:老莊)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호주(毫州)에서 옵니다.”
“그대가 호주에서 온다면 노자[老君]를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 눈이 어떤가?”
도사가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자가 석가에게 절하는구나.”
22. 착어(着語)*
스님께서“산 밑에 한 조각 쓸데없는 밭이다” 하신 옛 분의 말씀을 들려 주고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물건이 주인을 보고 눈을 번쩍 뜨고, 차수(叉手)하고 간절히 조옹(祖翁)에게 묻는구나.”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기 집의 본래 계약서는 어디다 두고서 몇 번이나 팔았다가 도로 사는가.”
또 말씀하시기를,“경쇠소리 끊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나니, 가여워라, 송죽(松竹)이 맑은 바람을 끌어오도다” 하고는 또“이익은 군자(君子)를 움직인다” 하셨다.
23. 결제에 상당하여 설법하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자리를 걷어가지고 그냥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만들고, 바람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일정한 것이 없고 일에는 한결같음이 없으니, 이 산승의 잔소리를 들으라.
담담하여 본래부터 변하는 일이 없고, 확 트여 스스로 신령히 통하며, 묘함을 다해 공(功)을 잊은 공(空)한 곳에서, 적조(寂照)의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 하나는 말 있기 전에 완전히 드러나, 하늘과 땅을 덮고 소리와 빛깔을 덮고 있었다. 서천의 28조사도 여기서 활동을 잊어버렸고 중국의 여섯 조사도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다. 몹시 어수선한 곳에서는 환히 밝고, 환히 밝은 곳에서는 몹시 어수선하니 왕의 보검과 같고 또 취모검(吹毛劍)에 비길 만하여 송장이 만 리에 질펀하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땅이 산을 만들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간직했으나 옥의 티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큰 코끼리[香象]가 강을 건널 때, 철저히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3현․3요․4료간․4빈주로서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살리며, 완전히 밝게 하고 완전히 어둡게 하며, 한꺼번에 놓고 한꺼번에 거두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하며, 진실이면서 거짓을 덮지 않고 굽으면서 곧음을 감추지 않소.”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 어디로 가나 티끌이 아니다.”
주장자를 내던지고,“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산의 얼굴에 구름의 그림자로다. 방(龐)거사가 딸 영조(靈照)에게,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라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영조는 ‘이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는 누르면서 이따위 견해를 가졌구나’ 하였다. 다시 거사가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니 영조는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입니다’ 하였다.
거사는 말은 지극하나 뜻이 지극하지 못하고, 영조는 뜻은 지극하나 말이 지극하지 못하였다. 아무리 말과 뜻이 지극하더라도 나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무덤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해 보라. 그 허물은 어느 쪽에 있는가.”
한참 있다가“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4. 해제에 상당하여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主句)인가, 빈구(賓句)인가, 파주구(把住句)인가, 방행구(放行句)인가. 대중스님네는 가려낼 수 있겠는가. 가려낼 수 있으면 해산하고 가려낼 수 없으면 내 말을 들어라.
맨 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機]은 3세의 부처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없는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어떤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어떤 중생도 없다. 그런데 무슨 장기․단기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두 쪽을 다 끊고 중간에도 있지 않네
빈 손으로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타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니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네.
閒斷兩頭不居中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할을 한 번 한 뒤에“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5. 시중(示衆)*
땅은 땅, 하늘은 하늘
추운 겨울 더운 여름을 누가 와서 전했나
여기서 누군가 이 분명한 것을 알아낸다면
달마는 동쪽에 오지 않고 이조는 서쪽에 가지 않으리
26. 휴휴암(休休菴) 주인의 좌선문(坐禪文)*
휴휴암은 나옹화상이 강남(江南)에 가서 행각할 때 여름결제를 한철 보낸 곳이다.
좌선하는 이는 지극한 선(善)에 도달하여 저절로 또렷또렷해야한다. 생각들을 완전히 끊어버리되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욕심 속에 있으나 욕심이 없고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을 떠난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에서는 함부로 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함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집착없이 항상한 빛이 나타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으로는 흔들려도 움직이지 않고 안으로는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음을 좌(坐)라 하고 빛을 돌이켜 되비추고 법의 근원을 철저히 깨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좋은 나쁜 경계에 뇌란하지 않고 빛과 소리에 끄달리지 않음을 좌(坐)라 하고, 일월보다 밝게 어둠을 밝히고 천지보다 큰 힘으로 중생을 교화함을 선(禪)이라 한다. 차별 있는 경계에서 차별없는 정(定)에 드는 것을 좌(坐)라 하고,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지(差別知)를 가짐을 선(禪)이라 한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불꽃같이 작용하나 본체는 여여하고 종횡으로 오묘하나 일마다 거리낌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한다. 간략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상세히 말하자면 글로써는 다하지 못한다.
나가대정(那伽大定: 부처님의 선정)은 동정(動靜)이 없고 진여의 묘한 바탕은 생멸이 없어서, 바라보지만 볼 수 없고 귀길울이지만 들을 수 없으며 텅 비었지만 빈 것이 아니며 있으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다. 크기로는 바깥 없을 정도로 큰 것을 감싸고 작기로는 안이 없을 정도로 작은 데에도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는 그 광명이 무량하고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무궁무진하다. 뜻 있는 사람은 잘 참구하되 정신을 바짝 차려 확철대오하겠다는 마음으로 입문하여 와! 하는 한마디가 터진 뒤에는 수 많은 신령함이 모두 본래 구족하리라. 이 어찌 마군이와 외도들이 스승 제자 되어 전수하는 것과 같겠으며, 유소득심(有所得心)으로 궁극의 경계를 삼는 것과 같겠느냐!
게송
시자 각뢰(覺雷)가 짓고 광통 보제사(廣通 普濟寺)에 주석하는 환암(幻艤)이 교정하다.
1. 노래[歌]․ 3수
1. 완주가(翫珠歌)
신령한 이 구슬 지극히 영롱하여
그 자체는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는데
사람마다 푸대 속에 당당히 들어있어서
언제나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마니구슬이라고도 하고 신령한 구슬이라고도 하니
이름과 모양은 아무리 많아도 자체는 다르지 않네
세계마다 티끌마다에 분명하여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여라
배고픔도 그것이요 목마름도 그것이니
목마름 알고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라
아침에는 죽먹고 재(齋)할 때는 밥먹으며
피곤하면 잠자기에 어긋남이 없어라
어긋남도 그것이요 바름도 그것이라
수고로이 입을 열어 미타염불 할 것 없네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집착하지 않으면
세간에 있어도 자유로우니 그가 바로 보살이라
이 마음구슬은 붙잡기 어려우니
분명하고 영롱하나 붙잡기 어려움이여
형상도 없으면서 형상을 나타내고
가고 옴에 자취 없어 헤아릴 수 없구나
쫓아가도 따르지 못하는데 갑자기 스스로 온다
잠시 서천에 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옴이여
놓아버리면 허공도 옷 안에 드는데
거둬들이면 작은 티끌보다 쪼개기 어렵다
헤아릴 수 없어라 견고한 그 몸이여
석가모니는 그것을 제 마음의 왕이라 불렀나니
그 작용이 무궁무진한데도
세상 사람들 망령되이 스스로 잊는구나
바른 법령 시행되니 누가 그 앞에 서랴
부처도 마구니도 모조리 베어 조금도 안 남기니
그로부터 온 세계에 다른 물건 없고
강에는 피만 가득하여 급히 흐른다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으나
보도 듣도 않음이 진짜 보고 들음이라
그 가운데 한 알의 밝은 구슬 있어서
토하거나 삼키거나 새롭고 새로워라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이라고도 하는데
마음이든 성품이든 원래 반연의 그림자라
만일 누구나 여기에 의심 없으면
신령스런 자기 광명 언제나 빛나리
도(道)라고도 하고 선(禪)이라고도 하나
선이나 도란 원래 억지로 한 말이거니
비구니도 여인으로 된 것임을 진실로 알면
걷는 수고 들이지 않고 저곳에 도착하리
부처도 없고 마구니도 없으니
마구니도 부처도 뿌리 없는 눈[眼] 속의 헛꽃인 것을
언제나 날로 쓰면서 전혀 아무 일 없으나
신령한 구슬이라 하면 나무람을 받으리
죽음도 없고 남도 없이
항상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다니며
때에 맞게 거두거나 놔주니
자재하게 들고 씀에 골격이 맑아라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데
서거나 앉거나 분명하여 언제고 떠나지 않는구나
힘을 다해 쫓으나 그는 떠나지 않고
있는 곳을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네
하하하 이 어떤 물건인가
1, 2, 3, 4, 5, 6, 7
세어 보고 다시 세어 보아도 그 끝이 없구나
마하반야바라밀!
2. 백납가(百歌)
백번 기운 이 누더기 내게 가장 알맞으니
겨울이나 여름이나 만판 입어도 편안하구나
누덕누덕 꿰매어 천조각 만조각인데
겹겹이 기웠으매 앞도 뒤도 없어라
자리도 되고 옷도 됨이여
철따라 때따라 어김없이 쓰이며
이로부터 고상한 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음광(飮光)이 끼친 자취 지금에 있구나
한 잔의 차 일곱 근 장삼이여
조주스님 재삼 들어보여 헛수고했나니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 한들
우리 집의 백납장삼만이야 하겠는가
이 누더기옷은 매우 편리하니
늘상 입고 오가며 무엇을 하든지 편리하구나
취한 눈으로 꽃보는 일 누가 구태여 하겠는가
도에 깊이 사는 이라야 스스로 지킨다
이 누더기 얻은 지가 얼마인가 아는가 몇 해나 추위를 막았던가
반쯤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쯤만 남았구나
서리치는 달밤, 띠풀암자의 초암에 홀로 앉았으니
안팎을 가릴 수 없이 모두가 깜깜[蒙頭]하다
이 몸은 가난하나 도는 끝 없어
천만 가지 묘한 작용 다함 없어라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이 사람을 비웃지 말라
선지식 찾아 진실한 풍모를 이었으니
헤진 옷 한 벌에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천하를 횡행해도 안 통할 것 없었네
강호를 두루 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고
원래 배운 것이라곤 빈궁뿐이라
이익도 구하지 않고 이름도 구하지 않아
누더기 납승, 가슴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바루 하나의 생활은 어디 가나 족하니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
만족한 생활에 또 무엇을 구하랴
우습구나, 미련한 사람들 분수를 모르고 구하네
전생에 지은 복임을 알지 못하는 이는
하늘 땅을 원망하면서 부질없이 허덕인다
몇 달이 되었는지 몇 해나 되었는지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니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오직 이 누더기 한 벌로 남은 생을 보내는구나
3. 고루가(奇歌)
이 마른 해골이여 몇 천 생(生)이나
축생이나 인천(人天)으로 허덕였던가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한량없는 겁토록 성왕(性王)에 어두어
6근(六根)은 이리저리 흩어져 치달리고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할 줄 알았으니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할꼬
이 마른 해골이여 매우 미련하고 깜깜하여
그 때문에 천만 가지 악을 지었네
하루 아침에 공하여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본다면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늘히 몸을 벗으리
그때를 놓쳤으니 가장 좋은 시절이라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따라 나는구나
권하노니 그대는 지금 빨리 머리를 돌이키라
진공(眞空)을 굳게 밟고 바른 길에 돌아가라
모였다 흩어지고 오르고 빠짐이여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마음 편치 않구나
그러나 한 생각에 빛을 돌이킬 수 있다면
단박에 뼛속 깊이 생사를 벗어나리라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3도를 기어다니며 어찌 깨닫겠는가
갑자기 선각의 가르침 만나
여기서 비로소 잘못된 줄 분명히 알았나니
혹은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혹은 탐욕과 분노로
곳곳에서 혼미하여 허망한 티끌 뒤집어써서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어디서 참사람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나기 전에 잘못되었고 죽은 뒤에 잘못 되어
세세생생 거듭거듭 잘못되었으나
한 생각에 무생(無生)을 깨달아내면
잘못되고 잘못됨도 원래 잘못 아니리
거칠은 것에도 집착하고 미세한 데에도 집착하여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전연 깨닫지 못하다가
갑작스런 외마디소리에 후딱 몸을 뒤집으면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리라
혹은 그르다 하여 혹은 옳다 하여
시비의 구덩이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근심하다가
어느 새 몸이 죽어 백골무더기뿐이니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하지 못하네
이 마른 해골이 한번 깨치면
광겁의 무명도 당장 재가 되어서
그로부터는 항하사 불조의
백천삼매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무슨 허물 있는가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되나니
쟁반에 구슬 굴리듯 운용할 수 있다면
겁석(劫石)도 그저 손가락 퉁길 사이에 지나가리
법도 없고 부처도 없고
마음도 없고 물질도 없네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추울 때는 불 앞에서 나무조각 태운다
나옹스님 게송 3수 뒤에 붙임
구슬은 방향을 따라 색을 내어 사람을 미혹하게 하지마는 그 청정함은 불성을 표한 것이요, 마른 해골은 기운이 흩어지고 살이 없어져 사람들이 버리지마는 살아 있으면 불도를 행할 것이다. 또한 기운 누더기는 비단을 물리치고 누더기를 꿰매어 살을 덮어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이나, 그것이 아니면 장엄과 격식으로 스님네들 편히 살게 하여 불도에 들어가 불성을 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게송 세 수는 시작과 끝이 들어맞고 맥락이 서로 통하여 후인들에게 보여주는 바가 깊고도 절실하다.
나옹스님의 문장은 손 가는 대로 맡겨 미리 초하는 일이 없다. 진실한 이치를 토해내고 찬연히 써내며 운율이 빛나지만 세속의 문자를 그다지 깊이 알지 못하는 점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게송 세 수에 있어서는 마치 두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으니, 반드시 애를 쓰고 깊이 생각해 지은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영가 현각(永圈玄覺)스님의 문투를 본떴겠는가. 뒷날 서역(西域)에 전해지면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스님의 제자 아무개 등이 내게 발문을 청하기에 나는 그 제목을 읽고 문체를 살펴 그 청에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오한 이치에 있어서는 고기[貌]가 아닌데 어찌 고기를 알겠는가.*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 좌우사랑중 문충보절동덕찬화공신 중대광한산군 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이색(前朝列大夫征東行中書省左右司中文忠保節同德贊化功臣重大翠韓山君藝文舘大提學知春秋舘事成均大司成知書莚事李穡)은 쓰다.
2. 송(頌)
산거(山居)
바루 하나, 물병 하나, 가느다란 주장자 하나
깊은 산에 홀로 숨어 마음대로 살아가네
광주리 들고 고사리 캐어 뿌리채로 삶나니
누더기로 머리 싸는 것 나는 아직 서툴다
내게는 진공(眞空)의 일없는 선정이 있어
바위 틈에서 돌에 기대어 잠만 자노라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느냐고 누군가 불쑥 묻는다면
헤진 옷 한 벌로 백년을 지낸다 하리라
한종일 소나무 창에는 세상 시끄러움 없고
돌 수곽에는 언제나 시냇물이 맑다
다리 부러진 솥 안에는 맛난 것 풍족하니
무엇하러 명리와 영화를 구하랴
흰 구름 쌓인 속에 세 칸 초막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스스로 한가하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이야기하는데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갑네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아 헛된 명예 끊었고
돌병풍을 의지하여 세상 인정 버렸다
꽃과 잎은 뜰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때때로 온갖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들리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오는 사람은 없고
혼자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었노라
석 자 되는 사립문을 반쯤 밀어 닫아두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한가로이 지내노라
나는 산에 살고부터 산이 싫지 않나니
가시 사립과 띠풀 집이 세상살이와 다르다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추녀 끝에 떨치는데
시냇물은 가슴을 뚫고 서늘하게 담(膽)을 씻어내는구나
일없이 걸어나가 시냇가에 다다르면
차갑게 흐르는 물 선정을 연설하네
물건마다 인연마다 진체(眞體)를 나타내니
공겁(空劫)이 생기기 전의 일을 말해서 무엇하리
환암장로(幻庵長老)의 산거(山居)에 부침 ․4수
1.
온갖 경계 그윽하고 조도(鳥道)는 평탄하여
마음에 걸리는 일, 한 가지도 없네
이 몸 밖에 다른 물건은 없고
앞산 가득 구름이요 병에 가득 물이로다
2.
자취 숨기고 이름을 감춘 한 야인(野人)이거니
한가로이 되는대로 세상 번뇌 끊었다
아침에는 묽은 죽, 재할 때는 나물밥
좌선하고 거닐면서 천진(天眞)에 맡겨두네
3.
몇 조각 구름은 경상(脛滅)을 지나가고
한 줄기 샘물은 평상 머리에 떨어지는데
취한 눈으로 꽃을 보는 사람 수없이 많건만
누가 즐겨 여기 와서 반나절을 함께 쉬랴
4.
외로운 암자 바깥에는 우거진 숲 고요한데
백납(百)의 가슴 속에는 모든 생각 비었으니
마음 내키면 시냇물가에 나가 앉아
물결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네
산에 놀다[遊山]
가을 깊어 지팡이 짚고 산에 이르니
바위 곁의 단풍은 이미 가득 붉었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온 분명한 뜻을
일마다 물건마다 스스로 먼저 일러주네
달밤에 적선지(積善池)에 놀다
발길 닿는대로 한밤중에 여기 와서 노나니
이 가운데 참맛을 그 누가 알리
경계는 비고 마음은 고요하여 온몸이 산뜻한데
바람은 못에 가득 차고 달은 시내에 그득하다
양도암(養道菴)에서
지팡이로 구름을 뚫고 이 산에 올랐더니
그 가운데 암자 하나 가장 맑고 고요하다
암자의 사면에는 봉우리들이 빼어났고
소나무․잣나무 사이의 맑은 샘물은 뼛속까지 차구나
안심사(安心寺)에서
갑자기 안심사에 와서 이삼 일 동안
몸과 마음을 쉬고 양주(襄州)로 향하니
도인의 자취를 뉘라서 찾을 수 있으랴
동해의 바위 곁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늦가을에
한 줄기 가을바람 뜰안을 쓰는데
만 리에 구름 없어 푸른 하늘 드러났다
선뜻선뜻 상쾌한 기운에 사람들 기뻐하는데
눈빛이 차츰 맑아져 기러기 줄지어 날아간다
밝고 밝은 보배 달빛은 가늠하기 어렵고
역력한 보배 산들은 세어도 끝이 없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제자리에서 편안하나니
추녀 끝에 가득한 가을빛은 청홍(靑紅)이 반반이다
죽순(竹笋)
하늘 기운 뜨거운 한여름철에
처음 돋는 죽순은 본래 티끌을 떠났다
용의 허리가 갑옷을 벗어 감추기 끝났는데
봉의 부리는 털을 헤치고 제몸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잎에 빗소리는 묘한 이치 말하고
파릇한 가지에 바람소리는 깊은 진리 연설한다
여기서 갑자기 영산(靈山)의 일을 기억하나니
잎새마다 풀잎마다 새롭고도 새로워라
새로 지은 누대[新臺]
새로 지은 높은 누대, 그 한 몸은 우뚝하나
고요하고 잠잠하여 도에서 멀지 않다
멀리 바라보이는 뭇산들은 모두 이리로 향해 오는데
가까이 보면 많은 숲들은 가지 늘이고 돌아온다
독한 짐승들 바라보고 마음으로 항복하고
자주 오는 한가한 새들은 구태여 부를 것 없네
만물은 원래부터 이미 성숙했거니
어찌 그리 쉽사리 공부를 잃게 하랴
만 겹의 산 속은 고요하고 잠잠한데
오똑이 앉아 구름과 솔에 만사를 쉬었노라
납자들은 한가하면 여기 와서 구경하고
속인들은 길 없으면 여기 와서 노닌다
누대 앞뒤에는 시원한 바람 불고
산 북쪽과 남쪽에는 푸른 물이 흐른다
뼛속까지 맑고 시원해 선미(禪味)가 족하거니
한여름 떠나지 않고 어느 새 가을이네
단비[旱雨]
가물 때 단비 만나면 누가 기쁘지 않으랴
천하의 창생(蒼生)들이 때와 티끌 씻는다
모든 풀은 눈썹 열고 빗방울에 춤추며
온갖 꽃은 입을 벌리고 구슬과 함께 새롭다
삿갓 쓴 농부들은 그 손길이 바쁘고
도롱이 입고 나물캐는 여인네는 몸놀림이 재빠르다
늘상 있는 이런 일들을 보노라면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 다 참되도다
진헐대(眞歇臺)
진헐대 안의 경치가 어떠한가
온갖 봉우리들 모두 이리로 향해 오고
누대 앞뒤에는 맑은 바람 떨치는데
그늘이 엷거나 짙거나 하루종일 한가하네
스님네는 쌍쌍이 왔다 또 가고
새들은 짝을 지어 갔다 돌아오는데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았으면 걸림없이 트이나니
물색과 산빛은 서늘하게 담을 씻어내도다
한가한 때 감회를 읊다
40년 전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천태(天台)와 남악(南嶽)에 자취를 남겼거니
지금에 차갑게 앉아 생각해 보면
천하의 총림들이 두 눈에 텅 비었네
하안거 해제에
90일을 묶였던 발이 오늘 아침에 끝나니
3개월 동안의 안거(安居)는 찾아도 자취 없네
노주(露柱)*와 등롱(燈芼)*은 남북으로 떠났으나
석호(石虎)는 여전히 고봉(高峰)에서 싸우네
신설(新雪)․2수
1.
마른 나무에 꽃이 피는 겁(劫) 밖의 봄인데
산과 강은 한 조각의 흰 눈덩이다
신광(神光:이조 혜가)이 오래 서서 마음을 편히 하였다지만
오늘 아침 뼈에 스미는 추위만하겠는가
2.
산과 강이 한 조각의 흰 눈덩이라
동서남북으로 조사 관문 꽉 막았네
어젯밤에 보현(普賢)보살이
흰 코끼리를 거꾸로 타고 아미산에 내려왔네
모기
제 힘이 원래 약한 줄을 모르고
피를 너무 많이 먹고 날지 못하네
부디 남의 소중한 물건을 탐하지 말라
뒷날에 반드시 돌려줄 때 있으리
모란
꽃중의 왕이 두세 떨기 다투어 피었는데
다른 꽃들 위에 뛰어나 완연히 다르다
그러나 어찌 저 남전(南泉)의 꿈에 보였던 것만이야 하랴*
눈을 뜨기 전에 붉은 빛이 뚫고 들어오네
작약
영롱한 그 자태에 어느 것을 견주리
붉고 흰 꽃빛이 창에 가득 비치었네
반쯤 피어 입을 열고 웃는 웃음은
온 하늘 온 땅에 짝할 것 없네
산차[山茶]를 따며
차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 없고
내려온 대중들 산차를 딴다
비록 터럭만한 풀도 움직이지 않으나
본체와 작용은 당당하여 어긋남 없구나*
반가운 비[喜雨]
가물 때 내린 단비, 그 기쁨 말해 무엇하리
만물은 왕성하고 해는 풍년이라 하늘의 도가 존귀하다
신룡(神龍)의 얼마만한 힘이든지
결국에는 한 방울만 가지고도 온 천지를 적신다
환봉(幻峯)
본바탕은 거북털 같아 찾아도 자취 없는데
우뚝 솟은 봉우리 몇 겹이던가
바라보면 있는 듯 분명히 나타나고
찾아보면 없어져 텅 비었네
설악(雪嶽)은 속은 비고 산세는 험준한데
부산(浮山)은 겉도 알차고 모양도 영롱하다
뿌리를 바로 꽂아 푸른 하늘에 서지 말라
뉘라서 그 꼭대기에 길을 낼 수 있으리
석실(石室)
견고한 그 온몸을 누가 만들어내었던가
천지가 나뉘기 전에 이미 완연하였다
텅 빈 네 벽은 몇 천년을 지냈으며
분명한 세 서까래는 몇 만년을 지냈던가
어느 겁에도 우뚝하여 무너지는 일이 없고
어느 때도 크낙하여 부서지지 않는다
법계를 받아들여 얼마든지 너른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윽하고 그윽하다
환암(幻菴)
몸은 허공꽃과 같아서 찾을 곳이 없는데
여섯 창에 바람과 달은 청허(淸虛)를 둘러싸고
없는 가운데 있는 듯하다가 다시 실체가 아니라
네 벽이 영롱하여 잠깐 빌어 산다네
곡천(谷泉)
만 골짝 천 바위와 소나무 잣나무 사이에
신령한 근원은 깨끗하고 바탕은 편하고 한가하네
깊고 깊은 골 속에서 항상 흘러나오나니
마시는 이 온몸 뼛속까지 차가워라
소암(笑菴)
오늘도 영산(靈山)의 일이 분명하나니
여섯 창을 활짝 여니 새벽바람 차가워라
빙그레 짓는 미소 누가 알아보겠는가
네 벽이 영롱하여 세상 밖에서 한가하다
현봉(懸峰)
허공에 걸려 있어 마음대로 오가고
우뚝이 뚫고 나와 푸른 하늘에 꽂혀 있네
동서남북 아무 데도 의지할 것 없나니
뾰족한 것들 다 누르고 홀로 우뚝하여라
회암(會菴)
갑자기 지음(知踵)을 만나 입을 열고 웃나니
지금부터 여섯 창에는 기쁨 항상 새로우리
이제는 남의 우러름을 바라지 않나니
네 벽의 맑은 바람은 세상 밖의 보배일세
죽림(竹林)
만 이랑의 대나무가 난간 앞에 닿아 있어
사시사철 맑은 바람은 거문고 소리 보내주네
차군(此君)*은 빽빽하되 하늘 뜻을 통하고
그림자가 뜰안을 쓸되 티끌은 그대로라네
인산(仁山)
어떤 일이나 막힘 없으면 스스로 통하니
높은 묏부리는 뚫고 나와 뭇 봉우리 누른다
온갖 형상을 머금었으나 모든 모양 떠났거니
백억의 수미산인들 어찌 이만하리오
고주(孤舟)
온갖 일을 아주 끊고 나 홀로 나와
순풍에 돛을 달고 밝은 달에 돌아오네
갈대꽃 깊은 곳의 연기 속에 배를 대니
부처와 조사가 엄연하나 찾을 줄 모르리라
대원(大圓)
허공을 꽉 싸안고 그림자와 형상을 끊었네
온갖 형상 머금었어도 자체는 항상 깨끗하다
눈앞의 진풍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가을달이 밝구나
헐암(歇菴)
모든 인연을 다 던져버리고 돌아왔나니
네 벽에는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오네
지금부터야 무엇하러 다시 집착할 것인가
비좁으나마 널따란 곳에 그저 앉아 있으리
추산(秋山)
가을바람 한 줄기가 엷은 구름 쓸고 나면
온 땅의 봉우리들은 묘한 빛이 새롭구나
그로부터 달빛은 밝고 깨끗하리니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 것 사랑한 것 아니다
순암(順菴)
만상이 모두 한 생각에 돌아가 사라지니
여섯 창에는 밝은 달이 고요하고 쓸쓸해라
티끌티끌이 남의 집 물건이 아니니
조그만 암자에 온 법계가 다 들었네
절안(絶岸)
눈길 다한 하늘 끝은 푸르다 가물가물한데
그 가운데 어찌 중간이 있겠는가
편편하여 끝없는 곳에서 몸을 뒤집으면
그 작용은 언제나 공겁(空劫) 이전에 있으리
서운(瑞雲)
한 줄기 상서로운 빛, 이것을 보는가
허공을 모두 싸고 뻗쳤다 걷혔다 하나니
여기서 몸을 뒤집어 몸소 그것을 밟으면
비바람을 몰고서 곧장 집에 돌아가리
보봉(寶峰)
써도 다함이 없고 값도 물론 비싸니
층층으로 높이 솟아 푸른 하늘에 꽂혔다
구슬의 광채는 안팎으로 항상 나타나지만
마음먹고 찾아가면 길은 더욱 멀어라
영암(映菴)
모양과 빛깔이 분명한 이것을 아는가
여섯 창 밝은 달이 산과 강을 비춘다
찬 빛을 모두 쓸고 몸을 뒤집으면
위음왕불 겁 밖의 집으로 뚫고 지나가리라
고원(古源)
조짐과 자취가 나타나기 이전의 한 가닥 물줄기여
아주 맑고 담담해서 그 자체 편안하네
앞도 없고 뒤도 없고, 가〔邊]도 겉도 없나니
그 복판[中]을 모르고 지낸 지 몇 해이런가
담적(湛寂)
바닥까지 맑고 맑아 담(膽)을 뚫을 듯 차가운데
또렷하고 분명하여 자체 항상 편안하다
온갖 훌륭한 경계는 무심에서 나타나니
공부는 고요한 곳에서 보아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태양(太陽)
허공을 모두 감싸 안팎이 없는데
금까마귀는 세계 어디에나 스스로 분명하다
온 하늘에서 단박 몸을 뒤집어버리면
한 길이 당당하여 겁 밖이 태평하다
현계(玄溪)
묘한 이치와 진실을 말하는 것, 그 모두 허망한데
그 가운데 한 줄기가 난간 너머 잔잔하다
침침하고 고요한데 누가 볼 수 있는가
한 줄기 그 소리가 밝은 달에 실려오네
서암(瑞巖)
흰 기운이 하늘을 찔러 허공을 차게 하는데
푸른 솔은 사방에 여기저기 꽂혀 있다
끄떡없이 다른 경계와 간격이 없지마는
꽃비는 여전히 망령되게 뿌린다
옥림(玉林)
아주 깨끗해 티가 없는 신기한 보배는
뿌리와 싹이 사철따라 변하지 않네
집 안에 본래 있어 남에게서 얻는 것 아니거니
가지와 잎은 공겁(空劫) 전에 무성하였다
영매(嶺梅)
불쑥 솟아나 푸른 하늘에 꽂혔나니
얼음 같은 자태와 옥 같은 뼈는 공겁 전에 있었다
묏부리들이 험준한데 누가 갈 수 있는가
섣달의 봄바람은 세상을 벗어난 오묘함일세
징암(澄菴)
성품 달이 맑고 뚜렷해 본래의 공(空)을 비추건만
사립문을 닫아 두어 사람들이 다니기 어렵구나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거니 누가 거기 가겠는가
이 작은 암자가 금년에는 바로 그 가난함일세
향암(響菴)
맑은 메아리가 허공을 흔들고 시방에 떨치나니
여섯 창에 찬 달이 당당히 드러났네
삼라만상이 모두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니
띠풀 사립문도 다 광명을 놓네
무여(無餘)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시방세계가 또 어디 남았는가
허공이 손뼉치며 라라라 노래하매
돌계집이 소리에 맞춰 쉬지 않고 춤을 추네
고산(杲山)
밝은 해가 허공에 올라 한 점의 흐림도 없어
우뚝한 묏부리들이 푸른 하늘에 꽂혔네
뜬구름이나 엷은 안개가 거기 갈 수 있겠는가
백억의 수미산들이 그 앞에 늘어섰네
본적(本寂)
오랜 겁토록 밝고 밝아 다른 모양 없나니
맑고 고요한 한 맛이 가장 단연(端然)하여라
원래 티끌에 흔들리지 않고
바로 위음왕불의 공겁 전에 이르렀네
서운(瑞雲)
갑자기 비상함을 얻어 참경계 나타나니
밝고 밝은 해와 달이 어둡고 깜깜하다
어찌 구태여 용화회(龍華會:미륵의 회상)를 기다리랴
한 줄기 상서로운 빛이 큰 허공을 메우네
오암(晤菴)
밝고 밝은 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환하고 편안하다
모든 것에 늘고 줆이 없음을 환히 알았거니
네 벽의 맑은 바람은 겁(劫) 밖에 오묘하다
무위(無爲)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하는 일이 모두 다 공(空)이로구나
아무 것도 없는 그 경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리
꼿꼿하고 드높게 고풍을 날린다
담연(湛然)
바닥까지 맑고 맑아 한없이 차가워서
서쪽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움직이기 어렵더니
깊고 넓고 또 먼데 가을달을 머금으매
흙무더기와 진흙덩이도 모두 다 기뻐하네
환산(幻山)
하늘 끝에 줄지어 있어도 바탕은 실로 비었나니
기묘한 묏부리들은 지극히 영롱하다
바라볼 때는 있는 듯하나 잡을 수가 없으니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다
곡란(谷蘭)
만 골짝 깊고 깊은 돌바위 틈에
향기로운 이상한 풀이 시냇가의 솔을 둘러쌌다
층층히 포개진 많은 봉우리 속에
갑자기 꽃을 피워 온 누리를 덮었네
신암(信菴)
명백하고 의심없어 몸소 밟으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망령되이 이리저리 달리지 않으리
조그만 이 암자는 언제나 철저히 맑은 것을
찬암(璨菴)
반짝이는 묘한 광채 누가 값을 정하리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때도 없이 비추도다
찬란한 광채는 언제나 깨끗하여 항하사 세계에 두루했나니
맑은 바람에 실려 창에 날아들어온다
묘봉(妙峰)
바라볼수록 멀고 우러를수록 더욱 높구나
불쑥 솟아 우뚝이 푸른 하늘에 꽂혀 있다
28조사와 6조사님네도 알지 못하거니
누가 감히 그 가운데 마음대로 노닐랴
전암(電菴)
천지를 진동하며 번쩍번쩍 빛나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작용이 더 많으리
비바람에 실려다녀도 자취가 없으니
네 벽이 텅 빈 늙은 작가(作家)로다
장산(藏山)
은은하고 침침하여 허공에 가득한데
험준한 묏부리들은 저 멀리 아득하다
그림자[形影] 없는 데서 그림자를 알 수 있나니
오악(五岳)과 수미산이 그 발 밑에 서 있다
성암(省菴)
갑자기 잘못됨을 알고 이제 문득 깨쳤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티끌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리라
네 벽이 영롱하여 안팎이 모두 맑다
곡계(谷磎)
그윽하고 넓고 먼 그곳을 누가 일찍이 보았던가
냉랭한 한 줄기가 사시사철 차갑구나
만 골짝 가을 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은
언제나 흐르는 물 속에 떨어진다
본적(本寂)
겁겁(劫劫)에 당당하여 바탕 자체가 공(空)하건만
가만히 사물에 응하면 그 자리에서 통하네
원래 한 점도 찾을 곳이 없건만
온 세계도 옛 주인을 감추기 어려워라
정암(正庵)
흑백이 갈라지지 않았는데 어디 피차가 있으랴
여섯 창의 호젓한 달은 앞에 오지 않고
금까마귀 옥토끼도 찾을 곳이 없거니
신령한 빛 본래 고요함을 비로소 믿겠구나
벽산(璧山)
옥 보배의 정해진 값을 그 누가 알리
묏부리들 빼어나 허공에 꽂혀 있다
찬란한 빛 예나 이제나 항상 빛나건만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네
의주(意珠)
물건에 응해 분명히 그 자리에 나타나니
세간의 보물이 어찌 이에 미치랴
가죽 주머니에 숨어 있으니 그 누가 알리
밤낮 맑은 빛은 영원히 차가워라
고경(古鏡)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체가 본래 견고하고
찬 빛은 멀리 천지 이전을 비추네
길지도 짧지도 않고 또 앞뒤도 없는 것이
쳐부수고 돌아오매 오묘하고 오묘하다
식암(息菴)
온갖 인연 다 쓸어버리고 자취도 안 남기매
한 방이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을 뛰어났네
그리고부터는 모든 티끌 다 없어졌나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은 맑은 바람과 어울리네
시암(是菴)
본래 스스로 비고 밝아 한 점 티도 없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항하사 세계를 둘러쌌네
그 가운데 어찌 부질없는 길고 짧음 있으랴
법계를 모두 머금어 한 집을 만들었네
보산(寶山)
주머니 속의 귀한 물건, 그 값이 한없는데
묏부리들은 사철 허공에 가득하고
밤을 빼앗는 찬 달빛은 멀고 가까움 없으나
그 꼭대기에는 원래 길을 내기 어렵다
무애(無礙)
똑똑하고 분명하며 텅 비고 트이어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고 한 점 티끌도 없다
비고 밝아 위음왕불 밖을 꿰뚫고 비추거니
돌벽이나 산천인들 어찌 그를 막으랴
일산(一山)
삼라만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우뚝하고 험준하여 사시사철 차가운데
수미산과 큰 바다가 여기 돌아와 합했나니
층층의 뾰족함을 누르고 혼자 따로 관문이 되었네
옥전(玉田)
아주 깨끗하고 티가 없는 세간 밖의 보물인데
신령한 싹은 나서 자라나 인연의 티끌을 끊었다
큰 총림 속에서는 일찍부터 비싼 값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묘한 씨를 심었다
곡월(谷月)
만 골짝 깊고 그윽한 시냇물 속에
밤중의 은두꺼비가 스스로 뚜렷하다
덩굴풀 우거진 원숭이 우는 곳에
한 줄기 맑은 빛이 영원히 차구나
철문(鐵門)
온몸이 다 강철인데 누가 움직일 수 있으리
양쪽 사립 모두 잠가 세상 풍속 아니더니
과연 저 새매눈 가진 억센 사람이
한 주먹으로 밀어제쳐 단박 길을 뚫었다
축운(竺雲)
총령(叢嶺) 서쪽 너머 이름난 땅에
한 조각 상서로운 연기가 허공을 메웠는데
그로부터 한없이 많은 보살들이
오색 광명 가운데서 옛 풍모를 얻었다
허암(虛菴)
사방에 원래 한 물건도 없나니
어디다 문을 낼지 알지 못하네
이 가운데 조그만 암자 텅 비어 있어
밝은 달 맑은 바람이 흰 구름을 쓸도다
준산(峻山)
기이한 바위가 높이 솟아 하늘을 긁는데
층층이 포개진 것, 공겁 전부터이다만
만 길되는 이 벼랑에 누가 발을 붙이리
수미산과 오악(五岳)도 겨루지 못한다
고산(杲山)
금까마귀 날아올라 새벽 하늘 밝았나니
온 땅의 묏부리들 푸른 빛이 역력하다
번쩍이는 그 광명에 항하사 세계가 깨끗한데
전령(●嶺)에서 우는 원숭이 소리는 무생(無生)을 연설한다
심곡(深谷)
누가 아주 먼 저쪽까지 갈 수 있나
조각 구름 동문(洞門) 앞에 길게 걸렸네
그 가운데 훌륭한 경계를 아는 사람은 없고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푸른 냇물을 희롱하네
역연(歷然)
또렷하고 분명하여 감춰지지 않았나니
푸른 것은 푸르고 긴 것은 길다
확신하고 의심없이 한 번 몸을 뒤집으면
고개 끄덕이며 즐거이 고향에 돌아가리
중암(中菴)
동서와 남북의 길이 서로 통했고
네 벽은 영롱하여 묘하기 끝이 없네
여덟 면이 원래 막히지 않았거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은 맑은 허공 비추네
성곡(聖谷)
범부를 뛰어넘어 들어가는 그곳을 누가 따르리
시냇물은 잔잔히 골짝 속으로 흐른다
근진(根塵)을 단박 벗어나 한 번 몸을 뒤집으면
소나무 그늘 아래서 마음대로 노닐리라
무실(無失)
형상을 떠난 그 자체, 원래 공(空)하여
부딪치는 사물마다 그 작용 끝이 없다
또렷하고 분명하나 자취 끊겼고
언제나 역력하여 절로 서로 통한다
포공(包空)
자비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세계를 메웠는데
그 속은 비고 밝아 호젓하고 잠잠하다
순식간에 항하사 세계 밖까지 두루 흩어보지만
그 가운데 모양 없는 것 누가 전할 수 있으랴
형철(冏徹)
당당하고 찬란하여 끝없이 비추니
영원히 간단없는 이것을 누가 전할 수 있으랴
밤을 빼앗는 찬 달빛에 무슨 안팎이 있으랴
밝고 밝아 공겁(空劫)을 비춘다
정암(靜菴)
온갖 생각이 모두 한 생각에 돌아가 사라졌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지극히 고요하여라
툇마루에 다다른 보배달은 언제나 고요하여
맑은 바람에 실려 네 벽에 나부낀다
극한(極閑)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한 곳, 어디로 향해 갈꼬
동서와 남북에 어디든 의심없네
그대를 따라 펴고 거둠에 걸림이 없고
첩첩 기이한 바위에도 의지함이 없노라
유곡(遊谷)
한가히 오고 가매 더없이 한가한데
언제나 천 바위와 만 골짝 사이로 다니네
물구경 산구경도 오히려 부족하여
통문(洞門) 깊은 곳에 겹관문을 만든다
설악(雪嶽)
하룻밤에 옥가루 펄펄 내려
기이한 바위들은 뾰족한 흰 은덩이 되었네
매화나 밝은 달인들 어찌 여기 비하랴
층층이 포개져 차고 또 차다
자조(自照)
바다 같은 삼천세계 본래 다른 것 아니라
탁 트이고 신령스레 통함에 어찌 차별 있으랴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짝할 것조차 없어
밤을 빼앗는 찬 빛은 많던 적이 없었네
정암(晶菴)
아침해가 동쪽 바닷문으로 나오려 하매
방 하나는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이 끊겼네
산하대지가 역력한데
여섯 창 안팎에는 맑은 바람 스친다
묵운(黙雲)
침침하고 적적하여 다니는 자취 끊어졌는데
어찌 동서와 남북의 바람을 가리랴
저 집에 말할 만한 것 없다고 말하지 말라
때로는 저 큰 허공을 모두 휩싸들인다
형암(冏菴)
동서에도 남북에도 한 점 티끌 없는데
사립문 반쯤 닫히고 찾아오는 사람 없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아무 까닭 없이
밤마다 창문을 뚫고 이 한 몸을 비추네
효당(曉堂)
뭇별이 사라지는 곳에 앞길이 보이는데
한 방은 고요하고 안팎이 밝아진다
이로부터 어두운 구름은 모두 사라지리니
여섯 창에 바람과 달은 절로 맑고 새로우리
무일(無一)
동서도 남북도 탁 트여 비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물건을 으뜸이라 부를 것인가
허공을 모두 빨아마시고 몸을 뒤집는 곳에는
온 하늘과 온 땅에 서리와 바람이 넉넉하리
요봉(●峰)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나오자
한없고 맑은 바람이 묏부리를 모두 비춘다
산하대지가 분명하고 역력한데
수미산인들 어찌 여기에다 견주리
도봉(堵峰)
밤을 빼앗는 달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뭇산들은 여기 와서 추녀 끝에 늘어서네
세간의 어떤 보배를 여기에다 견주랴
수미산을 뚫고 나가 홀로 우뚝 솟았네
옥계(玉磎)
티없는 바탕은 지극히 영롱한데
양쪽 언덕에는 맑은 바람 솔솔 불며 지나간다
한 자 구슬의 물결치는 광채를 누가 값을 정할 것인가
신령한 근원은 깊고 멀어 무궁함을 내놓네
영적(永寂)
먼 과거로부터 돌아다니다 이 생까지 왔지만
고요한 그 바탕[正體]은 자유자재하였나니
티끌겁 모래겁이 다하면 무엇 따라 변할까
이승에나 저승에나 스스로 다닐 뿐
추풍(秋風)
만 리 먼 하늘에 구름 모두 흩어지고
서쪽에서 오는 한 줄기 바람 가장 맑고 시원하다
그로부터 변방의 기러기는 하늘 끝에 비끼고
중양절(重陽節:9월 9일) 흰 국화는 눈과 서리 원망하리
명통(明通)
쓸 때는 모자람이 없으나 찾아보면 자취 없고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음에 응용이 무궁하다
사물마다에 분명하건만 누가 보아내는가
영원히 당당하여 옛 풍모를 펼치네
견실(堅室)
활활 타는 겁화(劫火)에도 항상 스스로 편안하며
허공을 싸들여 그 안에 두었나니
티끌세계 모래세계가 끝나더라도 바꿀 수 없고
영원한 서리와 바람에 뼈가 시리다
무변(無邊)
동서남북에 네 경계가 없거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어라
경계가 끊어진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천 물결 만 물결에 한 몸을 나타내리
유봉(乳峯)
밝고 맑은 한 모양을 누가 알 것인가
우뚝 솟아 높직이 하늘에 꽂혀 있네
물과 달이 어울려 되었으며 모양 아닌 모양인데
그 견고함이야 어찌 쌓인 티끌 같으리
경암(璄巖)
겁(劫) 이전의 묘한 그 빛에 어떤 것을 견주리
우뚝 솟고 뾰족하여 하늘 복판에 꽂혀 있네
불조인들 어찌 비싼 그 값을 알건가
우뚝하고 뾰족하며 또한 영롱하구나
일암(日菴)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오르니
조그만 암자의 높은 풍모를 뉘라서 따르랴
이로부터 티끌마다가 밝고 역력하리니
여섯 창의 기틀과 활용이 따로따로 트이리라
착산(窄山)
바늘도 송곳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비좁아
우뚝 솟아 높직이 온갖 묏부리 누른다
어찌 미세한 티끌이 법계를 머금을 뿐이랴
수미산이 겨자 속에 들어가 한 덩이 되었네
고담(古潭)
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몇 해나 지났던가
맑고 깊고 밑이 없어 공겁보다 먼저이다
매번 큰 물결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이와같이
맑고 고요하며 가득히 고여 그 자체 완전하네
형철(冏徹)
아주 깨끗한 빛이 만상을 삼킨 가운데
천지가 하나로 합해져 서쪽도 동쪽도 없네
맑고 뛰어난 점 하나, 사람들의 헤아릴 바 아니나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음에 자재하게 통한다
한극(閑極)
무심하고 자유로운데 누구와 함께하리
허공을 휩싸들여 그 작용 무궁하다
문득 따뜻한 바람을 만나 노닐다 흩어지나니
또 어떤 물건을 잡아 진종(眞宗)이라 정할꼬
횡곡(橫谷)
봉우리 끝에 있다가 굴 속에 있기도 하여
돌아오는 새들도 여기 와서는 길을 분간하지 못한다
갑자기 두루미를 짝하여 바람 따라 날으나니
만 골짝 천 바위도 가까이에 있지 않네
월당(月堂)
바다 문 동쪽에서 달이 날아오르니
고요한 방에 네 벽은 텅 비었네
뉘라서 빛과 그림자를 분명히 분간하랴
여섯 창이 전부 다 주인공이라네
무급(無及)
차례를 싹 잊어 바탕이 그대로 드러났거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깨치는 곳을 두랴
안도 밖도 중간도 텅 비어 트였는데
백추(白槌)를 들고 불자 세우며 부질없이 법문하네
복우(伏牛)
채찍으로 때려도 가지 않고 야단쳐도 가지 않나니
공겁 전에 배불리 먹고 이미 주림 잊었음이라
길에서 편히 잔 지 몇 해나 되었던가
한 빛깔 분명하여 온 세상에 드물어라
인암(刃菴)
칼집에서 나온 취모검을 누가 감히 당하랴
이 집에서는 위험하여 간직하기 어려웠네
저 철 눈에 구리 눈동자를 가진 사람에게 맡기니
한 주먹에 열어제치매 눈과 서리 가득하네
계봉(●峰)*
세 곳에서 헛되이 전한 옛 늙은이의 도풍이여
깊숙이 은거하는 맨 꼭대기는 네 겹으로 되어 있는데
음광(飮光:가섭)의 그 자취를 뉘라서 찾으리
꼭대기에는 서리가 깊어 길이 통하지 않네
수암(秀巖)
공겁 전에 우뚝 서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여
송백이 오래 산들 어찌 저와 견주리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이것은 안 무너져
일찍이 설법 듣고 진공(眞空)을 깨쳤네
적당(寂堂)
면밀한 공부를 이미 익혀 성취하고
문득 거기서 나와 뜰앞에 서 있네
안심(安心)은 언제나 나가정(那伽定:부처님의 선정)에 있어
이리저리 오가면서 화두는 절로 신령하다
익상(益祥)
갑자기 비상(非常)함을 만나 기운이 서로 통하면
그로부터는 고향에서 언제나 편안하리
거듭거듭 상서로운 일이 겹쳐 일어날 때
평지에서 하늘 위의 하늘을 다니리라
연당(演堂)
티끌마다 세계마다 묘한 소리 내나니
어느 쪽으로 문을 내랴
말 없는 곳을 말해 분명한 것을 알면
창 앞의 마른 나무에서 저무는 봄을 보리라
해운(海雲)
바다는 넓어 끝이 없고
구름이 많으니 어디쯤인고
여기서 단박 분명한 것을 알면
앉거나 눕거나 거닐거나 고풍(古風)을 펼치리
무학(無學)
역겁토록 분명하여 허공 같은데
무엇하러 만 리에 밝은 스승 찾는가
제 집의 보물도 찾기가 어려운데
골수를 얻어 가사를 전하는 것, 가지 위의 가지다
우매(友梅)
같은 마음 묘한 뜻을 누가 기뻐하는가
눈 속의 맑은 향기, 방에 새어들어온다
난간 앞의 소나무와 대나무만이 유독히
그와 함께 찬 서리를 견딘다
서봉(西峰)
동쪽에서 솟은 해는 어디로 가는가
남쪽 산이 아니면 북쪽 산이리
아무리 가보아도 다른 길이 없거니
금년에도 또 꼭대기의 광명을 보노라
현기(玄機)
알면서 거두지 않는 것이 큰 흔적 되나니
마주치자 꺼내보이는 것이 돈오(頓悟)의 근기니라
어찌 강을 사이 두고 가로달리는 자같이
지금까지 자취를 길이 남겨 두는가
탄암(坦菴)
티끌 같고 모래 같은 차별 인연 모두 없애버리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이 항상 닿아 있다
그로부터 눈의 경계[眼界]에 조그만 가림도 없고
네 벽은 텅 비어 세상 밖에 오묘하다
경봉(玉敬峰)
이처럼 값진 것이 이 사바세계에 또 있는가
모든 산 가운데서 영롱하게 불쑥 솟았네
바다 신(神)은 그 귀함을 알아 언제나 바라보는데
고금에 우뚝이 큰 허공에 꽂혀 있네
징원(澄源)
빛나며 크고 넓어 그림자 형체를 끊었고
밑도 없이 아주 깊어 헤아리기 어려워라
어룡(貌龍)과 새우와 게의 자취 용납 않나니
만 길 되는 큰 파도, 물은 깊고 맑도다
무문(無聞)
눈과 귀는 원래 자취 없는데
누가 그 가운데서 원통(圓通)*을 깨칠 것인가
텅 비어 형상 없는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개 짓는 소리, 나귀 울음소리가 모두 도를 깨침이네
계월헌(溪月軒)
버들 그림자와 솔 그늘은 물을 따라 흐르는데
두렷한 밝은 달은 따라가려 하지 않네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의 맑은 물결 속에서
맑은 바람에 실려 난간 머리에 있네
매월헌(梅月軒)
섣달의 봄바람은 눈과 함께 돌아오는데
은두꺼비는 한밤중에 난간에 올라온다
얼음 같은 자태와 옥 같은 뼈가 빛과 한데 어울려
바닥에서 하늘까지 한결같은 찬 맛일세
스승을 뵈러 가는 환암장로(幻艤長老)를 보내면서
남은 의심 풀려고 스승 뵈오러 가나니
주장자 세워 들고 용같이 활발하네
철저히 파헤쳐 분명히 안 뒤에는
모래수만큼의 대천세계에 맑은 바람 일어나리
무학(無學)을 보내면서
주머니 속에 별천지 있음을 이미 믿었거니
어디로 가든지 마음대로 3현(三玄)을 쓰라
어떤 이나 그대에게 참방하는 뜻을 묻거든
콧배기를 때려부수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또 신광사(神光寺)에 머물면서
이별한 뒤에 따로 생각하는 점이 있었나니
누가 알리, 그 가운데 뜻이 더욱 오묘함을
여러 사람들일랑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공겁(空劫) 이전을 뚫고 지났다 하노라
참방(參方)하러 떠나는 종선자(宗禪者)를 보내면서
주장자를 세워 들고 참방하러 떠나나니
천하의 총림에 자기 집을 지으리
값할 수 없는 보배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했나니
동서남북 어디든 인연 따라 가거라
주시자(珠侍者)를 보내면서
만 리를 참방하는 그 생각 끝없거니
부디 나라 밖에서 다른 종(宗)을 찾지 말라
주장자를 잡기 전에 종지(宗旨)를 드날리면
그곳도 허공이요 여기도 허공이리
참방하러 떠나는 곡천(谷泉) 겸선사(謙禪師)를 보내면서
본래 원만히 이루어져 말에 있지 않나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입을 열고 그대 위해 말하리
주장자를 세워 들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달이 되고 구름이 되어 가고 또 돌아오리
남방으로 행각길 떠나는 연시자(璉侍者)를 보내면서
세 번 부르고 세 번 대답하면서 화살 끝을 맞대
천차만별한 것들을 모두 쓸어버렸나니
그런 깊은 기틀을 간직하고 노닐며 지나갈 때에
분명히 조사들과 맞부딪치리라
관시자(寬侍者)를 보내면서
몸을 따르는 누더기 한 벌로 겨울․여름 지내고
주장자 하나로 동서를 분별한다
그 가운데의 깊은 뜻을 누가 아는가
귀가 뚫린 오랑캐 중(달마)이 가만히 안다
산으로 돌아가는 명상인(明上人)을 보내면서
백번 기운 누더기로 머리 싸고 초암에 머무나니
허공과 온 땅덩이를 한몸에 머금었네
온몸 속속들이 남은 생각 없거니
어찌 다른 사람을 따라 두번째, 세번째에 떨어지리
강남으로 돌아가는 통선인(通禪人)을 보내면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도를 묻는 것, 딴 목적 아니요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네
반걸음도 떼지 않고 몸소 그 땅 밟으면
어찌 수고로이 나라 밖에서 누라(口婁囉)*를 부를 것인가
강남으로 가는 난선자(蘭禪者)를 보내면서
이곳도 허공이요 저곳도 허공이라
분명히 있는 듯하나 찾으면 자취 없네
단박 빈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죽은 뱀을 내놓고 산 용을 삼키리라
강남으로 가는 고산(杲山) 승수좌(昇首座)를 보내면서
사구백비(四句百非)를 모두 다 설파한 뒤에
지팡이 끝으로 해를 치며 강남으로 가는구나
조주(趙州)는 나이 80에 다시 참선하였나니
남은 자취 분명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금강산으로 가는 대원(大圓) 지수좌(智首座)를 보내면서
천산만산을 모두 다 지나면서
한가닥 주장자와 함께 한가하여라
단박에 금강산 꼭대기를 밟을 때에는
온몸 뼛속까지 눈 서리 차가우리
신광사의 판수(板首)가 감파하러 왔을 때
3현(三玄) 3요(三要)를 다 쓰되 틀림이 없었고
장님과 귀머거리를 인도해 밝은 눈을 열어 주어
항하사 겁토록 끝내 의심 없게 하였네
금강산으로 돌아가는 무주(無住) 행수좌(行首座)를 보내면서
차림새는 마치 사납게 나는 용과 같은데
주장자를 세워 들고 동쪽으로 향하나니
금강산 꼭대기를 다시 밟는 날에는
큰 소나무와 늙은 잣나무가 향기로운 바람을 떨치니
참방 떠나는 박선자(珀禪者)를 보내면서
평생의 시끄러운 세상 일을 다 쓸어버린 뒤에
주장자를 세워 들고 산하를 두루 돌아다니네
갑자기 물 속의 달을 한 번 밟을 때에는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에 돌아가리라
참방 떠나는 문선자(文禪者)를 보내면서
돌아가누나 돌아가누나
바랑은 안팎으로 여섯 구멍이 뚫려 있네
하루 아침에 고향 길을 밟게 되거든
주장자 걸어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
참방 떠나는 징선자(澄禪者)를 보내면서
어머니가 낳아준 참 면목을 찾기 위하여
주장자를 세워 들고 앞 길로 나아가네
단박에 진짜 사자를 후려치는 날에는
갑자기 몸을 뒤쳐 한 소리 터뜨리리
참방 떠나는 심선자(心禪者)를 보내면서
여러 곳에 나아가 도를 묻는 것, 다른 목적 아니요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이네
허공을 쳐부수어 한 물건도 없으면
백천의 부처도 눈 속의 모래이리라
참방 떠나는 명산자(明禪者)를 보내면서
뜻을 내어 참방하는 것 다른 목적 아니요
공겁(空劫)이 생기기 이전을 밝히기 위해서네
주장자에 갑자기 두 눈이 열리면
눈에 보이고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이 다 격식 밖의 선(禪)이리
참방 떠나는 상선자(湘禪者)를 보내면서
채찍으로 치는 공부가 눈과 서리 같거니
부디 그 중간에서 헤아리려 하지 말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쳐 구르면
마른 나무에 꽃이 피어 겁(劫) 밖에서 향기로우리니
다른 날에 와서 나와 만날 때에는
임제(臨濟)의 미친 바람이 한바탕 나타나리라
부모를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휴선자(休禪者)를 보내면서
붉은 살덩이는 어머니의 피에서 생겨났거니
그것은 오로지 부모의 힘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의 이름 없는 물건이 있어
음양(陰陽)에 속하지 않고 영원히 있다
부모를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사미(璉沙邇)를 보내면서
수십 여 주(州)의 길이 먼데
누런 잎 나부끼며 고향으로 보내 주네
당당히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만나는 날에는
마음껏 기뻐하며 하하 크게 웃으라
참방 떠나는 초선자(初禪者)를 보내면서
남쪽에는 천태산 북쪽에는 오대산
아침에는 돌아오고 저녁에 떠나는 것 참으로 신기하다
언젠가 모르는 사이에 몸을 뒤집어버리면
위음왕불 겁 밖을 뚫고 지나오리라
경선자(瓊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관문을 뚫고 나서면
산하와 대지가 거꾸로 달리나니
물 밑에서 불이 일어 허공을 사르고
초목과 총림들은 사자후를 하는구나
향선자(向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신령스런 광명이 호젓이 빛나 근진(根塵)을 벗어났나니
앉거나 눕거나 또 거닐거나 묘진(妙眞)을 나타내네
단박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내디디면
온갖 사물이 그대로 법왕(法王)의 몸 드러내리
언선자(彦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거든 부디 죽은 공[頑空]에 집착말라
죽은 공에 집착하면 도를 통하지 못하리라
어젯밤에 달이 동쪽 언덕에서 솟아나더니
날이 밝자 또 하나 붉은 해를 보는구나
수선자(修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몸과 마음이 본래 빈 것임을 분명히 알면
어디서나 가풍을 펼치기에 무엇이 방해되리
비록 모든 사물에 분명히 나타났으나
다시 그 온 곳을 찾으면 자취가 없다
성선자(成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묘한 도를 훌륭히 성취해도 별로 신기할 것 없고
다만 당사자 그 사람이 결정하는 때에 있다
허공을 쳐부수어 모두 가루 만들면
백천의 부처에 대해 결코 의심 없으리
연선자(演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크게 의심 일으키되 부디 중단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모두 다 그 의심덩이 되게 하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겁 밖의 신령한 빛이 싸늘히 담(膽)을 비추리라
인선자(仁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사물에 응할 때는 분명하나 보려 하면 공하고
티끌마다 세계마다에 그 작용 한이 없네
여기서 모르는 사이에 두 눈이 활짝 열리면
호랑이 굴이나 마구니 궁전에서도 살길이 트이리라
여선자(瓈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이 빛나는 마음 구슬을 보는가
여섯 창에 모두 나타나 조금도 차별 없다
나타나는 그곳에서 분명히 알면
산하대지가 다 같은 한 집이리라
엄선자(儼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배우는 것 다른 길 없고
용맹스레 공부해야 비로소 성취하리
단박에 허공을 가루 만들면
돌사람의 뼛속에 땀이 흐르리
소선자(紹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지금까지의 온갖 견해 모두 쓸어버리고
화두를 굳게 들어 빨리 힘[功]을 들여라
하루 아침에 어머니 뱃속에서 갓난 면목을 알아버리면
호랑이 굴이나 마구니 궁전에서도 바른 길이 뚫리리
해선자(海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거든 그 근원을 알아내야 하나니
무(無) 가운데서 묘한 도리를 구하지 말라
단박에 온몸을 던져버리면
공겁 이전 소식이 눈앞에 나타나리
현선자(玄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에는 무엇보다도 신심이 으뜸이니
씩씩하게 공부하되 채찍을 더하라
어느 결에 의심덩이가 가루가 되면
진흙소가 겁초(劫初)의 밭을 갈리라
뇌선자(雷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각(覺)의 성품에는 미혹도 없고 깨침도 없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활짝 열려 있나니
여기서 다시 묘한 도리를 구하려 하면
어느 겁에도 법의 천둥 떨치지 못하리라
의선자(義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모름지기 장부의 용맹내기를 기약하고
공부에 달라붙어 힘써야 하리
하루 아침에 마음이 끊어지고 정(情)이 없어지면
무딘 쇠나 굳은 구리쇠도 눈이 활짝 열리리라
보선자(寶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다급히 공부하여 일찌감치 의심을 결단하고
부질없는 일로 세월을 허송 말라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내 집 보배 얻으면
부처와 조사가 오더라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성선자(惺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화두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되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의심덩이를 일으키라
의심덩이 깨어져서 허공이 뒤바뀌면
거꾸로 쓰거나 가로 들거나 한 끝을 나타내리
덕시자(德侍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려거든 장부의 마음을 내야 하나니
바짝 다가붙고 항상 가지면 도가 절로 열리리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목숨이 다하면
한번 뒤엎고는 마음껏 웃고 돌아오리라
수선자(修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하루 종일 항상 바짝 달라붙어
잡고 놓고 하면서 급한 채찍 더하라
생각[情]이 없어지면 모르는 사이에 공부가 되어
허공을 쳐부순 주먹 하나뿐이리라
고선자(孤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진심(眞心)이 본래 호젓한 것임을 깨닫고 나면
거닐거나 앉거나 눕기가 많은 길이 아니다
그때 단박 물결 속에 달을 밟으면
비로소 한가로운 오호(五湖)에 가득하리
당 도원(唐道元)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은 다만 의심덩이를 일으키는 데 있나니
끊임없이 의심하여 불덩이처럼 되면
모르는 사이에 온몸을 모두 놓아버리고
항하수 모래 같은 대천세계가 한 터럭 끝만 하리라
철선자(徹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모든 인연 다 놓아버리고 철저히 공(空)이 되면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그 모두 주인공이다
단박 산을 뒤엎고 물을 다 쏟아버리면
칼숲지옥 칼산지옥에서도 빠져나올 길 있으리
담선자(曇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할 때는 부디 인정(人情)을 쓰지 말라
인정을 쓰면 도를 이루지 못하리라
한번에 그대로 추위가 뼈에 사무쳐야 하니
어찌 항아리 울림으로 종소리를 만들리
용선자(瑢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산 같은 뜻을 세워 빨리 앞으로 나가고
부디 게으름으로 세월을 보내지 말라
단박에 허공의 뼈를 때려내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격식 밖의 선이리
휴선자(休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달라붙어 부디 쉬지 말지니
뒤치고 엎치면서 ‘이 무엇인가’ 하라
위험과 죽음을 무릅써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절벽에서 손을 놓아야 바로 장부이니라
여러 선자(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모든 인연 다 놓아버리면 마음이 비고
철저히 흩어버리면 그 효험을 보리라
몸을 따르는 주장자를 거듭 들고서
어디서나 사람을 만나거든 고풍(古風)을 드러내라
참선을 하면 부디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나니
그 관문 뚫지 못하거든 한가히 보내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모두 잃어버리고
하늘과 땅에 사무치도록 털과 뼈가 차가우리
산처럼 뜻을 세워 바짝 달라붙으면
그로부터 큰 도는 저절로 열리리라
몸을 뒤집어 위음왕불 밖으로 한 번 던지면
삼라만상이 모두 한바탕 웃으리라
도를 배우고 참선하려면 산처럼 뜻을 갖고
굳건히 뜻을 세워 끊임없이 공부하라
온 하늘에 목숨 걸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속속들이 맑고 맑음이 담(膽)까지 서늘케 하리라
도를 배우고 참선하는 데는 별뜻 없나니
마치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듯 하라
두 눈이 활짝 열려 같이 밝아지면
위음왕불 공겁 이전을 환히 비추리라
당 지전선자(唐 智全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배움에는 신심이 뿌리 되나니
신심이 눈 푸른 오랑캐 중(달마)을 뛰어넘으면
마음대로 완전히 죽이고 살리리니
그로부터 악명이 강호(江湖)에 가득하리
영선자(鈴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등골뼈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다급히 채찍질하여
공겁이 생기기 전의 일을 반드시 밝혀라
갑자기 한 번 부딪쳐 허공이 찢어지면
다리 없는 쇠소[鐵牛]가 대천세계를 달리리라
난선자(蘭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용맹이 있어야 하나니
화두를 들되 혼침(昏沈)에 빠지지 말라
의심덩이를 쳐부수고 허공을 굴리면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고금을 녹이리라
명선자(明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이사는 원래 팔인데
그 누가 의심 없는가
거기서 다시 현묘한 경계를 구하면
그대로 여섯 구덩이에 떨어지리
혜선자(慧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애정을 끊고 부모를 하직하고 각별히 집을 나왔으니
공부에 달라붙어 바로 의심 없애라
목숨이 딱 끊겨 하늘이 무너지면
오뉴월 뜨거운 하늘에 흰 눈이 날리리라
왕선자(旺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바짝 달라붙어 몸을 싹 잊어버리고
부디 저 빛깔이나 소리를 따르지 말라
다만 한 번 몸소 깨칠 때에는
시방의 어느 곳이나 두렷이 밝으리라
운선자(雲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움은 마치 불덩이를 가지고 노는 것 같거니
끊임없이 가까이 지켜 사이를 두지 말라
단박에 부딪쳐 허공을 굴리면
만 리에 구름 없고 가을빛이 차가우리
연선자(然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할 때는 언제나 용맹하여
세간의 잡된 생각은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단박 어머니 태에서 갓난 면목을 움켜잡으면
찬 빛이 허공을 녹이는 것 비로소 믿게 되리라
통선자(通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산처럼 뜻을 세워 결정코 기약하고는
스승을 찾고 벗을 가려 항상 화두 지켜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철저히 온몸에 바른 눈 열리리라
지선자(志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움에는 뜻을 쇠처럼 하고
공부할 때는 항상 달라붙어라
갑자기 한 소리 탁 터지면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리라
공선자(空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바짝 달라붙어 틈이 없게 하고
마음씀을 등한히 하지 말라
맑은 못의 가을달을 번뜻 한 번 밟으면
항하수 모래 같은 대천세계에 바른 빛이 차가우리
준선자(遵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조사가 전한 그 마음 알려 하거든
부디 차갑게 앉아 애써 생각에만 잠기지 말라
번뜻 찾을 것 없는 곳에 이르게 되면
도리어 신광(神光:혜가)이 눈 속에 서서 찾던 일을 웃어주리라
심선자(心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는 일 별것 아니요
그 사람의 굳은 의지에 있다
모든 것 한꺼번에 놓아버리면
물음마다 지우(知友)이리라
담선자(湛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믿고 믿고 또 믿어 의심 없으면
담담하고 비고 통해 성품이 저절로 열리리니
그로부터 세상의 시끄러움에 끄달리지 않아서
위음왕불 겁 밖에서 마음대로 오고가리라
진선자(珍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문을 나서면 걸음걸음에 맑은 바람 넉넉한데
동서남북 어디고 아무 자취 없어라
주장자를 거꾸로 들고 두루 돌아다니지만
그것은 원래 한 터럭 속에 있는 것이네
고선자(孤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지팡이에 해와 달을 메고서 산천으로 다니나니
당당한 그 의지가 저절로 굳세지고
갑자기 짚신의 날이 끊어지는 때
한번 밟은 참다운 경계 오묘하고 오묘하네
온선자(溫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주장자를 비껴 들고 행각 길 떠나나니
그 기세는 전장에 나가는 장군과 같다
갑자기 사람을 만나 바른 법령 휘두를 때는
하늘 땅이 뒤집혀도 보통일일세
연선자(演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납자의 가풍이란 별일 아니니
한 쌍의 짚신으로 강산을 누비다가
홀연히 오던 때의 길을 밟을 적에는
모골이 시리도록 맑고 맑으리
주선자(晭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묘한 도가 분명한데 이것을 보는가
모든 것에 나타나나 대단한 것 아니다
그대 지금 확실한 이것을 알면
몇 걸음 옮기지 않고 단박 집에 돌아가리
질선자(晊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온갖 인연 다 쓸어버리면 그 효험[功]을 보겠지만
그것마저 끊어지고 마음이 사라진 곳에
물물마다 옛 풍모 드러나리
요선인(瑤禪人)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성취하는 일 별로 대단할 것 없나니
그 사람이 용맹을 기약하는 데 달렸네
물도 다하고 산도 끝나는 곳에 그대로 이르면
바퀴 같은 마음달이 모든 빛을 무색케 하리
수선인(修禪人)이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가
반드시 마음자리를 밝히고 뜻이 완전히 뛰어나야 하네
하루 아침에 찬 못의 달을 밟아 부수면
맑고 한없는 바람이 푸른 하늘에 떨치리
지선자(持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머뭇거리지 말지니
어금니를 꽉 다물고 화두에 달라붙어야 하리
갑자기 온몸에 땀이 쭉 빠지면
석녀(石女)의 눈이 분명히 활짝 열리리
요선자(了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어디에서 나와서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하고
하루 종일 항상 의심을 일으켜라
갑자기 의심덩이가 부서져 가루되면
뜨거운 유월 하늘에 눈과 서리 날으리라
희선자(希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조주(趙州)의 ‘무(無)’자 화두 하나를 들되
쉴 새 없이 부딪쳐 들어가 끊이지 않게 하라
갑자기 온몸에서 땀을 한번 쭉 빼면
산하대지가 한 군데 들어오리
양선자(良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그대로인 본 성품이 어디에 있는가
빈틈없이 빛을 돌이켜 부디 잊지 말지니
갑자기 온몸에서 땀을 한번 빼고 나면
티끌마다 세계마다 감출 것이 없으리라
신상인(神上人)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이란 원래 복잡한 것 아니요
다만 그 사람의 산 같은 의지에 달렸다
단박 한 소리에 몸소 그 땅 밟으면
온몸의 뼛속까지 눈과 서리 차가우리
보선자(普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본래 그대로여서 지어진 것 아니거니
어찌 수고로이 밖에서 따로 이치 구할 것인가
다만 한 생각으로 마음에 아무 일 없으면
목마르면 차 달이고 피곤하면 잠을 자리
행선자(行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본래 그대로인 묘한 도를 그대 아는가
딴 곳에서 찾으면 헛수고만 하리니
빛을 돌이켜 몸소 밟아보기만 하면
어디 가나 걸음마다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
원선자(元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원래 묘한 도는 자체가 비었거니
무엇하러 허망하게 글을 써서 남에게 보일 것인가
한 생각에 몸 생기기 전의 일을 알아차리면
기막힌 말과 묘한 글귀가 모두 다 티끌되리
징선자(澄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맑고 맑은 성품바다는 끝없이 넓어
어떤 부처도 감히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하나니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져 언제나 스스로 쓰고
물물마다 응해 나타나는 것 본래 천연한 그것이네
온선자(溫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는데는 조사의 관문을 지나야 하나니
관문을 지나지 못했거든 부디 등한하지 말라
갑자기 빛을 돌이켜 몸소 알아차리면
온 하늘과 온 땅에 모골이 시리리
임선자(霖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자기의 참마음은 일정한 곳 없거니
흰 종이에 묘한 말씀은 찾아 무얼하는가
한 구절에 종지(宗旨)를 밝혔다 해도
바른 눈이 열렸을 때 본원(本源)을 미혹하리
오선자(唔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는 데는 하나가 가장 중요하나니
빨리 공부 더하여 앞으로 나아가라
단박에 이 생명을 모두 잃어버리면
당당히 조사선을 깨달으리라
명선자(明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는 데는 별일이 없고
그 사람의 용맹스런 공부에 달렸다
단박에 제 생명 잊어버리면
모든 법마다 한 터럭에 통하리라
천선자(泉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를 하여 끝까지 갔을 때는
묘하고 기막힌 말 모두 마땅치 않네
갑자기 한 소리에 몸소 그 땅 밟으면
하늘 땅을 뒤엎으며 온 기틀[機]을 굴리리라
지선자(持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빨리 공부하라, 이르다 하면 늦으리니
하물며 저만치 오는 때를 기다리랴
권하노니 그대 빨리 몸을 뒤집어버리면
뼛속까지 온 하늘에 한 기틀 깨치리라
중선자(仲禪者)가 게송을 청하다
마음을 닦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
철벽(鐵璧)과 은산(銀山)도 열리리니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을
그로부터 직접 한번 보고 오리라
임금의 덕을 칭송하다
거룩한 덕 높고 높아 호젓하고 담담하니
맑고 맑은 사해바다에 상서로운 연기 이네
막야검(劍) 휘두르는 곳에 천지가 고요하고
바른 법령 행해질 때 이치와 일이 완전하다
길에 가득한 노랫가락은 황제의 덕화를 드날리고
온 성안의 칭송은 왕업을 도와 후세에 전하도다
요(堯)임금 바람과 순(舜)임금 해가 언제나 펼쳐지리니
당당한 우리 임금님 만만세를 누리소서
임금의 복위(復位)를 칭송하다
비로불에 눌러앉아 법계에 임하니
그로부터 온 우주가 맑고 편안하리
티끌마다 세계마다 모두 순조롭나니
임금의 해는 언제나 밝아 사해바다가 고요하다
연말에 은혜에 보답하며
인왕(人王)이 존귀한가, 법왕(法王)이 존귀한가
인과 법을 아울러 행하면 그것이 가장 높네
우리 임금님은 방편[權]과 여실한 도[實]를 아울러 행하거니
단단하고 굳센 그 몸[正體]은 만년의 봄일레라
임금님 덕 높고 높아 사해바다가 다 맑고
산속까지 매우 고요해 편안함을 즐기나니
때때로 자리를 깔고 앉아 별다른 일이 없어
적적하고 긴긴 날에 태평성대 감사하네
왕태후(王太后)께 올림
거룩한 마야(摩耶)부인이 천궁에서 내려와
이 삼한(三韓)의 나라에 나타나셨네
또 이 탁한 세상에 성왕(聖王)을 낳으셔서
불법을 펴서 만년토록 전하게 하시다
묘정명심(妙淨明心)*을 물으신 임금님께 답함
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妙淨明心]이란 어떤 물건인가
부디 표현한 그 말에 집착하지 마시오
산과 물과 해와 달과 또 많은 별들과
모든 것에 녹아져서 그 자체 역력합니다
임금님이 다시 평산화상(平山和尙) 찬탄하기를 청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가슴 속의 독한 기운
불조도 감히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하네
임제(臨濟)의 미친 바람이 바다 밖까지 불었나니
삼한(三韓)의 임금님 방에서 만년을 전해가리
영창대군(永昌大君)에게 주는 글
한 생각 잊을 때는 아주 분명해
아미타불은 딴 고장에 있지 않으리
온몸이 앉거나 눕거나 다 연꽃 나라요
곳곳이 그 모두가 극락당(極樂堂)이네
염시중(廉侍中)에게 주는 글
본래 완전히 이루어져 말에 있지 않거니
어찌 수고로이 입을 열어 그대 위해 말하랴
한 생각 일어나기 전에 화두를 들어
위음왕불을 번뜻 밟으면 벌써 저쪽이리라
시중 이암(侍中 李)에게 주는 글
항하사 세계를 두루 감싼 맑고 묘한 그 몸은
인연 따라 굽히기도 하고 펴기도 하네
얼굴 문으로 드나드나 자취가 없고
성인이고 범부고 그 주인 되네
시중 윤환(侍中 尹桓)에게 주는 글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매우 오묘하거니
그 가운데 어찌 정(正)과 편(偏)이 있으랴*
위음왕불 겁 밖의 신령스런 지초(芝草)는
봄바람을 기다리지 않고도 빛깔이 저절로 선명하다
이상 황석기(二相 黃石奇)에게 주는 글
말이 있기 전이라 글귀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가
묘한 말도 원래는 눈 속의 티끌이네
비야리성(毘耶離城) 유마[金粟]의 뜻*을 알고 싶은가
수고로이 입을 열지 않고 현인(賢人)을 대하였네
위복 상공(威福 相公)에게 주는 글
원래 텅 비어 한 물건도 없는데
사람들은 밖을 향해 부질없이 허덕이네
전해 받을 일정한 법 없거니
무엇하러 신광(神光:혜가)은 눈 속에 서서 구했던가
남창 전상공(南窓 田相公)에게 주는 글
한 손바닥 휘둘러 향상관(向上關)을 열어제치니
밑바닥까지 티끌을 벗고 기뻐하며
또 한번 몸을 던져 뒤집어버리면
온 땅과 온 하늘에 눈서리 차가우리
이상서(李尙書)에게 주는 글
사원을 중수하고 사방 손님 접대하니
남북의 납자들이 갔다 다시 돌아오네
이제 서방극락에 마음 두어 부지런히 염불하라
상품(上品) 연화대가 저절로 열리리라
이소경(李少卿)에게 주는 글
헛이름을 잘못 듣고 멀리까지 왔거니
정성이 지극한 곳에 윤회를 면하리라
승속과 남녀를 막론하고
한번 몸을 던져 뒤집으면 바른 눈이 열리리라
상국 홍중원(相國 洪仲元)에게 주는 글
높은 몸을 굽히고 피곤함도 잊고 멀리 산에 올라
다시 깊은 암자를 지나서 도 닦는 이를 찾았나니
도를 향하는 정성이 간절하고 알뜰하면
반드시 조사의 관문을 뚫고 지나가리라
세상의 이익과 공명이 몇 해나 가겠는가
세어보면 다만 백년뿐인 것을
하루 아침에 진공(眞空)의 땅을 밟아버리면
성인도 범부도 뛰어넘어 겁 이전을 뚫고 가리라
신상국(辛相國)에게 주는 글 ․2수
1.
신광사(神光寺)에서 헤어진 뒤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여러 해 서로 생각하면서 마음 속에 두었더니
오늘 나침에 갑자기 만나 바라보고 웃을 때
깊은 그 뜻을 누가 알 수 있으리
2.
문 앞의 한 가닥 길이 장안(長安)으로 뚫렸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돌아올 줄 모르는가
눈썹이 가로 찢어진 눈 위에 있음을 문득 깨달으면
힘들여 도 닦지 않고도 마음이 기뻐지리
각정거사(覺玎居君)에게 주는 글
겁 전에도 겁 뒤에도 그 하나는
미혹도 떠나고 깨침도 떠나 가리고 감춘 것 없어라
나는 지금 두 손으로 정성껏 건네주어
여러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하게 하리라
변선인(卞禪人)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끝내기를 기약하여
스승을 찾고 벗을 가려 맞부딪쳐 가야 한다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바닥에서 하늘까지 눈이 활짝 열리리
연선자(演禪者)에게 주는 글
당당한 묘도(妙道)는 어느 곳에 있는가
밖으로 애써 찾아다니지 말라
하루 아침에 두 눈이 제대로 활짝 열리면
물색이나 산빛이 바로 본래 마음이리라
심수좌(心首座)에게 주는 글
참마음은 본래부터 빈 것임을 깨달으면
어디로 오가든지 다니는 자취 없으리라
자취 없는 그 자리를 확실히 알면
하늘 땅을 뒤집어 바른 눈이 열리리라
각자선인(覺自禪人)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려거든 부디 강철 같은 뜻을 세우고
공부를 하려면 언제나 바짝 달라붙어야 하리
갑자기 탁 터지는 그 한 소리에
대지와 허공이 모두 찢어지리라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 ․8수
1.
깊고 고요해 말이 없으매 뜻이 더욱 깊었나니
묘한 그 이치를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앉고 눕고 가고 옴에 다른 일 없고
마음 가운데 생각 지니는 것 가장 당당하여라
2.
자성(自性)인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언제나 생각생각 부디 잊지 말지니
갑자기 하루 아침에 생각조차 잊으면
물건마다 일마다 감출 것이 없어라
3.
아미타불 생각할 때 부디 사이 떼지 말고
하루 종일 언제나 자세히 보라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저절로 생각이 붙으면
동쪽 서쪽이 털끝만큼도 간격 없으리
4.
사람들 잘못 걸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에
이 산승은 간절히 또 격려하나니
문득 생각의 실마리마저 뜨거운 곳에 두면
하늘 땅을 뒤엎고 꽃 향기 맡으리
5.
생각생각 잊지 말고 스스로 지녀 생각하되
부디 늙은 아미타불을 보려고 하지 말라
하루 아침에 문득 정(情)의 티끌 떨어지면
세워 쓰거나 가로 들거나 항상 떠나지 않으리라
6.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어 두고 부디 잊지 말지니
생각이 다하여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에서는 언제나 자금광(紫金光)을 뿜으리라
7.
몇 겁이나 괴로이 6도(六途)를 돌았던가
금생에 인간으로 난 것 가장 희귀하여라
권하노니 그대들 어서 빨리 아미타불 생각하고
부디 한가히 놀면서 좋은 기회 놓치지 말라
8.
6도에 윤회하기 언제나 그칠 것인가
떨어질 곳 생각하면 실로 근심스러워라
오직 염불에 기대어 부지런히 정진하여
세상 번뇌 떨어버리고 그곳에 돌아가자
연상인(衍上人)에게 주는 글
참선은 제 마음을 참구해 갖는 것이니
부디 다른 물건따라 밖에서 찾지 말라
적적(寂寂)하면 다시는 사념(邪念) 일지 않고
성성(惺惺)한데 어떻게 화두가 어두우랴
등골뼈는 바로 한 가닥의 쇠이며
터럭은 만 냥 금을 녹여내니
60년을 그저 이렇게 나아갈 때는
총림을 압도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게 되리
시중 행촌 이암(侍中 杏村 李巖)에게 주는 글
대지에 봄이 돌아와 세계마다 풀렸는데
살구꽃 마을[杏花村] 속에 경치가 무궁하다
남쪽에서 온 제비의 지저귐은 한가한 방안에 드는데
북쪽으로 가는 기러기 소리는 고요한 하늘을 뚫는다
비는 빨간 복숭아꽃을 씻으면서 묘한 이치를 펴고
바람은 흰 배꽃에 불면서 그윽한 종지를 떨친다
티끌마다 서쪽에서 온 뜻을 한꺼번에 노래하거니
어디 가서 애써 조사 늙은이 찾으랴
안렴사 김정(按廉使 金鼎)에게 주는 글
당당한 보배그릇이 집 안에 있는데
사바세계의 값으로 자취를 나타냈네
세 뿔은 3계 밖에 높이 뛰어났고
한 몸은 하나의 진공(眞空)세계를 둘러쌌다
하늘에 통하는 큰 입에는 서리꽃이 희고
뱃속에 가득한 식은 재는 빨간 불꽃을 피운다
이것이 바로 견고하고 오묘한 자체이니
항하사 겁에 그 작용 무궁하리
판서 박성량(判書 朴成亮)에게 주는 글
화두의 마지막 한 구절을 들되
반복하고 반복하여 의심을 일으켜라
의심하고 의심하다 의심이 없는 곳에서
허공을 걷어 엎고 한 번 크게 웃으리라
전덕림(全德林)에게 주는 글
완전한 덕으로 숲을 이루어 네 경계를 이루었나니
당당한 자체와 작용이 가장 확연하구나
그로부터는 번뇌스러운 꿈을 다시는 꾸지 않아
날마다 항상 공겁 이전의 세계로 다닌다
일을 계기로 대중에게 설법함
부디 평생의 처음 뜻을 따르고
남이 좋다 싫다 하는 것에 끄달리지 말라
좁은 입을 열 때는 뜻을 얻어야 하고
깊숙한 방울 늘 닫아둠은 세속 일을 잊기 위해서이다
때때로 티끌 번뇌 없애고
생각생각 도력을 약하게 하지 말라
백년의 광음이 얼마나 된다고
부질없이 뜬 세상의 시비를 보는가
대중에게 설법함
산과 강 온갖 형상이 별처럼 흩어졌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별것 아니니
구부러진 나무와 서린 소나무는 모두 바로 자신이며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도 다 남은 아니다
푸른 봉우리는 모두 고승(高僧)의 방이 되고
흰 묏부리는 그저 묘성(妙聖)의 집이 되니
여기서 다시 참되고 확실한 것 따로 구하면
분명 괴로운 사바세계 벗어나지 못하리라
홍시중(洪侍中)에게 주는 글
황제의 덕화 널리 퍼져 묘하고 참됨을 나타내어
삼추(三秋)의 사법(四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나니
어찌 당장에 털끝만한 기틀인들 드러내려 하겠는가
얼음과 눈은 겹겹하여 한 점 티끌도 없네
염시중(廉侍中)에게 주는 글
지극히 존귀하고 높으신 분
숲속으로 가난한 이 도인을 찾아오셨네
오늘에 존귀한 몸 무엇하러 오셨던가
세세생생에 나와 함께 참됨[眞]을 닦기 위함이리라
하찰방(河察訪)에게 주는 글 ․2수
1.
맑은 풍채 늠름한 한 지방의 관리가
숲속의 도인을 찾아주었네
멀지않아 단박에 몸을 뒤집어 내던지면
구름에 오른 두루미인 듯 뼈와 털이 차가우리
2.
날마다 온갖 문서 책상에 가득한데
얼음이나 옥처럼 맑고 깨끗해 아무런 어려움 없네
그때그때마다 판단하는 일 누구 힘을 입었던가
권하노니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춰 보라
교주(交州) 도안부(道按部)에게 주는 글
맑은 명성을 들은 지는 오래였는데
오늘 만나보매 과연 의심할 것 없구나
이(理)와 양(量)* 두 쪽 다 투철하나니
지금부터 우리나라 저절로 편안하리
지수좌(智首座)에게 주는 글
절벽에서 한번 손을 놓아버리면
삼라만상에서 눈이 활짝 열리리
그로부터는 백천의 모든 불조들
그대와 함께 같은 눈으로 하하 웃으리
윤시중(尹侍中)의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준 글
지난날 좋은 인연 있어 여기 왔나니
온 집이 엄숙하고 고요해 마음이 편안하고
노니는 꽃동산은 인가에서 머나니
깊은 산, 산속의 산과 같네
안렴사 정량생(按廉使 鄭良生)에게 주는 글
정직하고 곧은 그 뜻 누가 알 것인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잠깐도 어기지 않았네
부처를 섬기고 임금을 받드는 그 정성 지극하거니
진실로 세상에서 가장 드물다 하리
원주목사 김유화(原州牧使 金有華)에게 주는 글
책상에 가득한 온갖 문서 전연 돌아보지 않고
눈오는 날 가난한 이 사람을 찾아왔구나
숲속이라 선물할 물건 하나 없고
그저 맑은 이야기와 도를 믿는 정이 있을 뿐이네
비가 갠 뒤 안렴사에게 주는 글
비가 멎고 구름이 걷히니 날이 개어 좋은데
나라를 향한 충성에 도심(道心)도 가볍지 않네
흰 옥은 황가의 보배라 들었거니
오늘 빛나는 저 빛에 눈을 비추어 보라
옛사람의 목우송(牧牛頌)에 회답함
머리에 뿔 분명히 나타나기 전에는
흰 구름 깊이 잠긴 곳에서 한가히 졸았었네
원래 그는 꽃다운 봄풀을 먹지 않거니
무슨 일로 목동들은 채찍질하나
원정국사송(圓定國師頌)에 회답함
동해의 그윽한 바위 곁에
높고도 호젓한 봉우리
원통(圓通)하신 관자재보살님
자비 서원은 어떤 집에 임하셨나
소나무 바람은 티끌을 모두 쓸고
파도 소리 곳곳에서 만나니
보타산 위의 보살에게는
참된 얼굴 아닌 물건이 없네
고성 안상서(高城 安尙書)의 운(韻)에 회답함 ․2수
1.
천고의 높은 풍모 사람마다 있거니
어찌 오늘 새삼 보배롭다 하는가
온몸의 뼛속까지 다른 물건 없나니
이것은 원래부터 진망(眞妄)을 벗어났다
2.
중생과 부처 당당하여 본래 다르지 않지만
언제나 바깥 모양에 끄달려 서로 찾는다
물결마다 그림자마다 옳고 그름 없거니
부디 있다거나 없다거나로 구하지 말라
총석정운(叢石亭韻)에 회답함
모여선 구리쇠 간대에 돌기둥을 겸했나니
하늘이 낸 아름다운 경치에 누가 다시 보탤 것인가
사면을 돌아보면 범음(梵踵)이 진동하나니
바로 위가 도솔천 추녀인가 의심스럽다
이암거사(伊巖居君)의 운(韻)에 회답함
누가 부처님이 마가다국에서 났다 하는가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내면 천리나 어긋나리
산을 보나 물을 보나 의심 없는 곳에는
맑고 한없는 바람이 제 집에서 나온다
회양 이부사(淮陽 李副使)가 숲으로 찾아줌을 감사함
잠깐 금강산 꼭대기에 왔다가
청평산(淸平山) 속에서 서로 만나다
신심은 쇠처럼 굳고
정성은 허공처럼 크네
과거부터 가까웠기에
금생에 와서 도를 같이하게 되다
권하노니 그대여 한 걸음 더 나아가
빨리 자기 종풍(宗風)을 깨치라
공도사 혜도(空都寺 惠刀)에게 감사함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리는 칼이
오직 그 사람의 한 손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 와서 내게 은혜 베풀었나니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에 서릿바람이 난다
강남(江南)의 낙가굴(洛伽窟)에 예배하다
묘한 모양은 원래 모양 없는 것이요
소리를 관하매[觀踵] 곳곳에 통한다
내 여기 와 석굴을 보니
도리어 하나의 굴롱(窟芼)이어라
보덕굴(普德窟) 관음에 예배함
천암동(千巖洞) 속에 홀로 높고 엄하여
밤을 빼앗는 광명에 해와 달이 어둡다
물을 건너고 구름을 뚫고 와서 예배하나니
과연 자비의 칼을 잡고 천지를 움직이시네
밖에서 찾는 세상 사람들을 경계함 ․2수
1.
집안의 여의(如意)보배를 믿을지니
세세생생에 그 작용 무궁하도다
비록 모든 물건에 분명히 나타나나
찾아보면 원래 그 자취 없다
2.
누구에게나 이 큰 신주(神珠) 있어
서거나 앉거나 분명히 항상 스스로 따르네
믿지 않는 사람은 부디 자세히 보라
지금 이렇게 말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경계함 ․5수
1.
백년이래야 그저 잠깐 동안이거니
광음(光陰)을 등한히 생각하지 말라
힘써 수행하면 성불하기 쉽지만
지금에 잘못되면 헤어나기 어려우리
죽음이 갑자기 닥치면 누구를 시켜 대신하랴
빚이 있으면 원래 남의 부림 오느니라
염라 늙은이의 신문을 받지 않으려거든
모름지기 바로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리
해는 동쪽에서 오르고 달은 서쪽에 잠기는데
나고 죽는 인간의 일은 일정치 않네
입 속 세 치 혀의 기운을 토하다가
산꼭대기에 한 무더기의 흙을 보탤 뿐이네
티끌 인연이 시끄러운데 누가 먼저 깨달을까
업식(業識)이 아득하여 길은 더욱 어두워라
기어코 윤회를 벗으려면 다른 방법 없나니
조사님네들의 공안(公案)을 잘 참구하여라
2.
추위와 더위가 사람들을 재촉해 세월이 흐르나니
모두들 얼마나 기뻐하고 얼마나 근심하는가
마침내 흰 뼈다귀 되어 푸른 풀에 쌓이리니
황금으로도 젊음과는 바꾸기 어려워라
3.
죽은 뒤에 부질없이 천고의 한을 품으면서
살았을 때 한번 쉬기를 아무도 하려들지 않네
저 성현도 모두 범부가 그렇게 된 것이니
어찌 본받아 수행하지 않는가
4.
어제는 봄인가 했더니 오늘 벌써 가을이라
해마다 이 세월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네
이름을 탐하고 이익을 좋아해 허덕이는 사람들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한 채 부질없이 백발일세
5.
한종일 허덕이며 티끌 세속 달리면서
머리 희어지니 이 몸 늙어질 줄 어찌 알았던가
명리는 문에 가득 사나운 불길되어
고금에 몇 천 사람을 불살라버렸던가
강남(江南)의 구리송(九里松)에 제(題)함
10리는 연꽃이요 9리는 소나무인데
산에 있고 물에 있어 그것이 같지 않구나
그 중간의 바람과 달은 산도 물도 아니지만
땅을 비추고 하늘을 흔들면서 공겁까지 가도다
소요굴(逍遙窟)의 천연석 나한에 제(題)함
자유로이 소요(逍遙)하며 몇 겁을 지났던고
깊은 산 석굴에서 공(空)을 관하기 좋아한다
권하노니 그대는 빨리 머리 돌이켜
최상의 문중에서 단박 도를 깨쳐라
이엄존자(利嚴尊者)의 탑에 제(題)함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의심을 풀었나니
지금까지 당한(唐漢)에는 남은 자취 있다
내가 와서 탑에 예배함은 다른 뜻이 아니라
다만 이 삼한(三韓)에 조사의 도풍을 떨치기 위해서라네
동해(東海)의 국도(國島)에 제(題)함
원통(圓通)의 좋은 경치를 뉘라서 알겠는가
천만 사람 모여와 돌아갈 줄 모르네
나도 와서 관자재(觀自在)를 친히 참배하나니
천둥 같은 하늘 소리를 울려 온갖 근기 응해 주네
천 잎새 연꽃 대좌는 몇 천 년을 지났던가
높고 거룩한 천불(千佛)은 고금에 일반이다
나는 와서 말없는 설법을 친히 듣나니
그것은 위음왕불 나오기 전 소식이다
동해(東海)의 문수당(文殊堂)에 제(題)함
문수의 큰 지혜는 지혜로 알기 어렵나니
들어 보이는 모든 것 그대로 다 기틀이다
물은 초록이요 산은 푸른데 어디가 그곳인가
하늘이 돌고 땅이 굴러 그때를 같이하네
오대산(五臺山) 중대(中臺)에 제(題)함
지팡이 짚고 한가히 노닐면서 묘봉(妙峯)에 오르나니
성현의 끼친 자취가 본래 공하지 않구나
신비한 천연의 경계가 막힘이 없어
만 골짝 솔바람이 날마나 지나가네
동해(東海)의 보타굴(寶陀窟)에 제(題)함
원통(原通)의 그 경계를 뉘라서 알건가
예나 이제나 처음부터 끊일 틈 없이
큰 바다의 조수가 뒤치며 밀려와 굴에 가득 차나니
범음(梵踵)은 현묘한 그 기틀을 열어 보이네
‘소리는 소리 아니고 빛깔은 빛깔 아님[聲不是聲色不是色]’을 송(頌)함
소리와 빛깔이 원래 제자리에 머물거니
빛깔[色體]을 소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버드나무에 꾀꼬리 울고 꽃은 피어 웃을 때
신령한 광명이 곳곳에 밝음을 비로소 믿으리
환암(幻庵)이 오위주송(五位註頌)*을 베껴가지고 와서 보라 하기에 그 앞에 제(題)함
조동(曹洞)의 종풍은 어떤 것인가
곤륜산(崑崙山)과 백로주(白鷺洲)가 둘이 함께 겹쳤네
군신(君臣)과 편정(偏正)이 서로 섞여 작용하나
저쪽에 앉지 않는 이것이 바로 작가(作家)이니라
‘일체법을 분별*하되 분별상(分別想)을 내지 말라’ 하신 옛스님의 말씀에 제(題)함
위 없는 열반은 모든 것에 통하여
분별하는 이 세간을 떠나지 않았나니
분별하는 거기서 분별하는 생각 없으면
길고 짧고 푸르고 누름이 고풍을 드날리리
감선자(旵禪者)가 오위주송을 베껴썼기에 그 앞에 제(題)함
자상한 가풍을 뉘라서 알건가
편(偏)과 정(正)은 원래 자체가 각각 다르다
그 경계의 한가운데를 알고 싶은가
흑백이 분명하게 나뉘어지기 전이네
청평산(淸平山)에 머물면서
10여 년 동안 강호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가슴 속이 절로 활짝 열렸네
내가 성취한 일 묻는 이가 있으면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며 피곤하면 잔다 하리라
옮겨가면서 스님네[同袍]에게 붙임
봄이 오면 기러기는 북쪽 변방에 왔다가
가을이 오면 예와 같이 남으로 가네
도 닦는 이의 생활도 모두 그와 같거니
몸이 가고 몸이 오는 것 의심할 것 없네
광주목사(廣州牧使)에게 부침
모든 일은 그대에게 있거니 자세히 살펴보라
꿈속의 뜬 세상일 아무 이유 없느니라
백년 동안 시끄러운 부질없는 영욕도
우리 집에서는 한 순간이라
묘령(妙靈)비구니가 머리를 깎다
불조의 그윽한 문을 누가 감히 열건가
누구나 바라지마는 오지 못했었다
오늘 아침에 마지막 풀을 뿌리채 깎았나니
광겁(曠劫)의 무명이 당장에 재가 되리라
동생 묘연 비구니가 머리를 깎다
무명의 거치른 풀을 뿌리째 깎았나니
당당한 자성(自性)의 계율이 스스로 원만하리
지금부터는 어떤 그릇된 길도 밟지 말고
바위 위음왕불 겁 밖의 근원을 뚫으라
부처님오신날[佛誕日]
일곱 걸음 걸은 것도 오히려 틀렸거늘
하늘 땅을 가리킨 것 그 더욱 잘못이네
그때 그런 허물 저지르지 않았던들
운문(雲門)의 아픈 방망이와 꾸짖음을 면했을 것을*
출산상(出山像)을 찬탄함
설산(雪山)에서 6년 동안 굶주림을 참다가
산을 달려나옴은 큰 일 하기 위해서였는데
도를 이루어 법륜을 굴린다고 부질없이 말했다가
그 말이 천하에 퍼져 입의 허물 이루었다
사람마다 코는 우뚝하고 두 눈은 가로 찢어졌는데
무슨 일로 주리고 떨려고 설산으로 갔던가
한 번 샛별 보고 도를 깨쳤다 말한 뒤로는
그때부터 그 자손들 깜깜하게 눈 멀었네
지공(指空)을 찬탄함
마가다국에서 반야경을 보다가
문득 세 곳에서 온몸을 단박 잊었다
그때 만일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었더라면
무엇하러 남천축으로 가서 보명(普明:지공의 스승)을 뵈었던가
아아
대원국(大元國)에서 잠자코 앉았으매 아는 사람 없었으나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 있었네
등산상(登山像)을 찬탄함
설산에 오르기 전에 두 눈이 파랬는데
무엇하러 차갑게 앉아 6년 고행했던가
주리고 떨며 머리털은 길고 몸은 바짝 여위었으나
바른 눈으로 볼 때에는 그저 쓸데없는 짓이네
달마(達磨)를 찬탄함
양왕(梁王)과 맞지 않아 부끄러이 떠났나니
소실봉(小室峰) 앞에서 성이 나 말 않다가
신광(神光)에게 독한 화살 쏜 뒤에는
몽두(蒙頭) 쓰고 합장하여 하늘에 알려준다
죽망달마(竹網達磨)를 찬탐함
향지국(香至國:달마스님의 고국)의 왕궁에 복없이 머무는데
서쪽 바람이 불어오매 동쪽으로 나왔나니
노호(老胡:달마)는 아무데도 편히 머물 곳이 없어
남의 집 대그물 속으로 달려들어갔구나
관음(觀踵)을 찬탄함
여여(如如)히 움쩍 않고 몇 봄과 가을인가
보름달 같은 인자한 얼굴 천하에 가득하다
이미 두렷이 통하고 자재하게 보거니
어찌 수고로이 머리 위에다 머리를 포개는가
자찬시제(自讚詩題)
쯧쯧, 이 촌뜨기 중이여, 하나도 봐줄 만한 것 없나니
자세히 살펴보면 털끝만한 행(行)도 없다
얼굴은 자비스러운 듯하나 마음 속은 가장 독하여
부처와 법을 비방하니 그 허물 하늘에 찬다
너에게 보시하는 자 복밭이라 할 수 없고
너를 공양하는 사람 3악도에 떨어지리
가슴에 손을 대매 모양은 사람 같으나
뱃속에는 원래 조그만치 진실도 없네
부처와 스님을 비방하매 마음이 가장 독하거니
지금에는 온몸을 드러낼 수 없구나
아아, 이 널판자 짊어진 이[擔板漢]*여
분노와 어리석음 버리지 못했으매
마음[心意心識]은 뒤바뀌었고
참선을 말하려 함부로 입을 열면
혀 끝이 잇따라 어수선하다
일찍 고요히 선정에 들지 못해
한종일 허덕이며 행랑으로 달리나니
남에게 코를 쥐여도 잘 웃으면서
남에게 입 열기를 용납하지 않으며
아무 때고 방망이를 함부로 쓰면서
옳거나 그르거나 척루(脊)를 물리친다
허공을 쳐부수어 뼈를 내고
번갯빛 속에 토굴 짓나니
내 집 가풍을 묻는 이 있으면
이 밖에 다른 물건 없다 하리라
지공(指空)을 찾아뵙고
내 종지(宗旨) 잃었나니
쯧쯧 이 눈먼 사람
도로 대롱 속에 들어갔구나
발원(發願)
원하노니 나는 세세생생에
언제나 반야에서 물러나지 않고서
저 본사(本師)처럼 용맹스런 의지와
저 비로자나처럼 큰 각과(覺果)와
저 문수처럼 큰 지혜와
저 보현처럼 광대한 행과
저 지장처럼 한없는 몸과
저 관음처럼 30응신(應身)으로
시방세계 어디에나 나타나
모든 중생들을 무위(無爲)에 들게 하며
내 이름 듣는 이는 3도(三途)를 면하고
내 얼굴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며
이렇게 항사겁(恒沙劫)을 교화하여
필경에는 부처도 중생도 없게 하여지이다
원컨대 모든 천룡(天龍)과 팔부신장(八部神將)님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몸 떠나지 않아
어떤 어려움에서도 어려움 없게 하여
이 큰 발원을 성취하게 하여지이다
발원하고서 삼보에 귀명례(歸命禮)합니다
발 문
이상은 왕사 보제존자가 사방으로 돌아다닐 때 일상의 행동을 한마디, 한 구절 모두 그 시자가 모아 「나옹화상 어록」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 제자 유곡(幽谷)․굉각(宏覺) 등이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세상에 간행하려고 내게 그 서문을 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서문이란 유래를 쓰는 것인데, 그 유래를 모르고 서문을 쓰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오. 장님이 길을 인도하거나 귀머거리가 곡조를 고른다면 그것이 될 일이겠는가. 나는 그것이 안되는 일인 줄 알 뿐 아니라, 더구나 백담암(白淡庵)의 서문에서 남김없이 말했는데 거기 덧붙일 것이 무엇 있는가.”
그랬더니 그들은“그렇다면 발문(跋文)을 써 주시오” 하면서 재삼 간청하므로 부득이 쓰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넓은 그릇과 맑은 뜻을 엿볼 수 없거늘, 어떻게 그것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듣건대, 부처는 깨달음[覺]을 말하고 그 깨달음으로 중생을 깨우치며 자비로써 교화한다 하니, 그것은 우리 유교로 말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에 깨달을 사람을 깨닫게 하고 인서(仁恕)로 교(敎)를 삼는 것이니, 그것이 같은가 다른가.
우리 군자[先儒]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방에 큰 성인이 있으니 천하를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으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는데, 탕탕하여 아무도 그것을 무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도는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유불(儒佛)이 서로 비방한다’고 한다.그러나 나는 서로 비방하는 것이 그름을 안다.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요,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만 극치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이 서로 맞서 비방할 뿐이요, 중니(仲尼)와 모니(牟尼)는 오직 한 덩어리의 화기(和氣)인 것이다.
이제 이 어록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믿을 수 있으니, 언제나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닦아 임금을 축수하고 나라를 복되게 함으로써 규범을 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임금은 이 분을 존경하여 스승으로 삼았으니 이 어록을 간행하여 세상을 깨우침이 마땅할 것이다.
정사년(1377) 첫여름 하순(下旬) 어느 날에 단성보리 익찬공신 중대광계림군 이달충(端誠輔理翊贊功臣重大翠鷄林呼李達衷)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삼가 쓴다.
보제존자 삼종가
(普濟尊者 三種歌)
1. 백납가(百歌)
백번 기운 이 누더기
분소의(糞掃衣)여
온갖 헝겊 주워와 알맞게 기웠나니
베옷 입은 위의가 어디로 가나 족하건만
그 재미 아는 사람 옛날부터 드무네
내게 가장 알맞으니
어찌 헤아려 생각하랴
4은(四恩)*이 가벼울수록 복은 더욱 떳떳하다
마음대로 이 물건을 가지고는 다른 일이 없나니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고향을 보호한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만판 입어도 편안하구나
그때그때 입어도 스스로 편리하네
헌 누더기 그 안에 특별한 일 무엇인가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차마시며 피곤하면 잠자네
누덕누덕 꿰매어 천조각 만조각인데
깁다가 못 기운 곳 녹다 남은 눈과 같네
사람들 모두 믿기 어렵고 가지기도 어렵건만
미더워라, 음광(飮光:가섭존자)은 사철로 가졌었네
겹겹이 기웠으매 앞도 뒤도 없어라
오래도록 지녀옴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음광(飮光)만이 그것을 깊이 믿었기에
누더기로 제일 먼저 조사의 등불 전하였네
자리도 되고
애정을 끊었거니
원래 석가의 자손이 어찌 영화를 구할건가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무심히 입었나니
늘상 입고 지내니 도가 바르다
옷도 됨이여
추위와 더위를 막으며
곱거나 밉거나 대중을 따르매 늘상 그러하여라
그렇게 선이나 악을 도무지 짓지 않거니
무엇하러 구태여 깨끗한 곳에 가려 하리
철따라 때따라 어김없이 쓰이며
다른 소중한 물건 보다 쓰기 쉬우니
때때로 마시는 죽은 소화되기 어려우나
헌 누더기는 해마다 꿰매 입기 편리하네
이로부터 고상한 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가난한 가운데서 부하면 만족할 줄 알고
부한 가운데서 가난하면 만족하기 어렵지만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만족할 줄 알리라
음광(飮光)이 끼친 자취 지금에 있구나
백 번 기운 누더기 남은 자취 총령(葱嶺) 서쪽에 있고
동토(東土)에 전해와서는 납자(衲子)라 하니
음광의 끼친 자취 지금도 남아 있네
한 잔의 차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한 잔의 차가운 차를 다시 사람들에게 보일 때
아는 사람이야 오겠지만 만일 모르면
새롭게 새롭게 한없이 보여주리
일곱 근 장삼이여
가풍을 드날리니
집안의 세밀한 일들이 지극히 영롱하다
이런 재미를 그 누가 알는지 모르겠구나
서역에는 음광(飮光)이요 동토에는 조주[趙老]라네
조주스님 재삼 들어보여 헛수고했나니
음광(飮光)이 제일 먼저 일어나 장삼 입었고
조주(趙州)가 거듭 일어나 동토에 전했나니
천하총림이 모두 백 번 기운 누더기네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 한들
어찌하여 헌 누더기 해같이 밝은가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추며 공겁(空劫) 이전부터
홀로 신령한 빛을 비추어 만물을 일으켰네
우리 집의 백납장삼만이야 하겠는가
비록 이 누더기가 다 헤졌다 해도
삼라만상이 한없이 말하나니
모든 법이 공(空)으로 돌아간다네, 백 번 기운 누더기여
이 누더기옷은
얼마든지 입어도 언제나 편리하다
이익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여 누가 만족했던고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구하여 믿고 귀의하여라
매우 편리하니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사철로 편리하며
총림 어디로 가나 걸림이 없고
인연 따라 입음에 위의가 극진하네
늘상 입고 오가며 무엇을 하든지 편리하구나
미우나 고우나 대중을 따르매 그것으로 법다운 모습이니
비단옷을 입은 이 아무리 존귀한들
무심한 이 누더기만 하겠는가
취한 눈으로 꽃보는 일 누가 구태여 하겠는가
누더기의 맛은 원통(圓通)의 깨달음에 있고
꽃을 보는 취한 눈은 그 맛이 미혹에 있으나
누더기 입는 일을 누가 감히 하겠는가
도에 깊이 사는 이라야 스스로 지킨다
도 닦는 이의 깊숙한 거처를 아는가 모르는가
마음과 법을 다 잊었거니 어찌 둘이 있으랴
천 개의 등불은 어두운 방을 비추어 똑같이 만든다
이 누더기 얻은 지가 얼마인가 아는가
필시 지녀온 지 오랜 세월 지났으리
베 빛깔을 분간할 수 없이 기운 지 오랬거니
그 바탕 녹다 남은 눈 같고 안개 같구나
몇 해나 추위를 막았던가
이 누더기는 원래 한가하니
일없는 선정 가운데 무슨 일이 있는가
띠풀암자는 예와 같이 푸른 산을 마주했네
반쯤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쯤만 남았구나
앞은 날아가고 뒤에 남은 것 더덕더덕 걸려 있다
걸음걸음 비로자나의 정수리거니
걸음걸음 가면서 또 무엇을 구하랴
서리치는 달밤, 띠풀암자의 초암에 홀로 앉았으니
띠풀암자에 홀로 앉아 있기를 다시 구하랴
천만 가지 차별에서 내 고향 잃었거니
참도[眞道]는 서리치는 달밤에서 나온다네
안팎을 가릴 수 없이 모두가 깜깜[蒙頭]하다
이런 맛은 원래 세상에 없으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 맛 알건가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의 이 깜깜한 맛을
이 몸은 가난하나
한 물건도 전연 없는 가난한 도인이
값할 수 없는 보배구슬을 어떻게 쓰는가
그 스스로 만물을 내어놓는 봄이라네
도는 끝 없어
고요하고 쓸쓸한데 누가 그와 함께하랴
홀로 숲속에 앉아 모든 일 쉬었나니
세간의 어떤 물건이 확실한 진종(眞宗)인가
천만 가지 묘한 작용 다함 없어라
한가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예의는 비단옷 같고
문 앞에서 손님 맞이할 때에도 평상시 같으며
불전에서 향불 사르고 예불하는 데도 통하네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이 사람을 웃지 말라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며 또 끊어짐도 없어
소리를 뛰어넘고 빛깔도 뛰어넘어 스스로 한가하거니
세상에 만나는 사람들 비방이나 칭찬 없네
선지식 찾아 진실한 풍모를 이었으니
평산(平山)과 서천의 지공(指空)을 친히 뵈었네
원제(元帝)가 믿어 개당할 때에는 천하에 펼쳤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종풍을 떨치었네
헤진 옷 한 벌에
나물밥에 누더기로 의당 도를 향하여
홀로 앉았거나 홀로 다니거나 걸림 없었고
스스로 찾아 도를 물은 일 옛날부터 드물었네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주장자 거꾸로 잡고 두루 돌아다녔네
예나 지금이나 납자에게는 다른 일이 없나니
몸에는 헤진 옷이요 손으로는 용(龍)을 살리네
천하를 횡행해도 안 통할 것 없었네
원래 큰 도는 그 자체가 원만한 공(空)이며
시방의 모든 법계도 간격이 아니거니
납자의 돌아다님에 무엇이 안 통하랴
강호를 두루 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고
화엄경의 선재동자 선지식을 찾아서
법계를 쉬지 않고 두루 다녔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은 알 수 없네
원래 배운 것이라곤 빈궁뿐이라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공(空)을 배워야 하네
진공(眞空)을 배워 얻으면 그것이 참도학[眞道學]이니
분명히 배운 후에는 공이면서 공 아니리
이익도 구하지 않고
자리(自利)는 원래 자리가 아니어서
남을 위해야만 자리가 자라나나니
남을 해치는 자리는 전연 이익이 없네
이름도 구하지 않아
이름을 구하면 반드시 높은 지위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저절로 교만이 생기거니
무엇 때문에 남은 생에 이런 마음 가질 건가
누더기 납승, 가슴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생각도 마음도 없으매 성품에 생멸 없는데
이름이나 이익을 구하는 사람 어찌 이 맛을 알랴
이 맛의 영화는 세상 영화 아닌 것을
바루 하나의 생활은 어디 가나 족하니
바루 안의 나물밥으로 능히 만족 느끼며
선(善)도 닦으려 하지 않고 그저 무심뿐인데
무슨 일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
언제나 한결같아 물러나지 않으리라
오래 힘써 공을 이루면 마음 거울 밝아지리니
어찌 수고로이 다시 무생(無生)을 깨치려 하겠는가
만족한 생활에
부자가 되었거니
온 세계가 보물창고인들 무엇에 쓰랴
누더기 한 벌 헤진 때에 이미 만족할 줄 알아
내 집의 재보(財寶)를 간직해 왔네
또 무엇을 구하랴
내 집에 보배가 가득한데
친구 집에서 취해 누웠다 일어나선 고향을 떠났네
옷 속에 매어 둔 보배구슬을 모른 채 떠나
멀리 타향에 가서 오랜 세월 보냈네
우습구나, 미련한 사람들 분수를 모르고 구하네
전생에 심은 복이 전연 없는 것 같고
금생에도 박복하여 복을 짓기 어렵나니
그리하여 세세생생에 시름만 거듭되네
전생에 지은 복임을 알지 못하는 이는
악인(惡因)의 악함이여, 업이 그 악을 따르고
선인(善因)의 선함이여, 선이 따라와
선이거나 악이거나 그 인(因)은 어긋남이 없느니라
하늘 땅을 원망하면서 부질없이 허덕인다
그것은 하늘이나 땅이 닦아 이룬 것 아니라
제가 그렇게 닦아 제가 얻는 것이거니
내 복을 밖에서 찾아도 찾을 길 없느니라
몇 달이 되었는지
스스로 산에 살아
한 해가 다 가도록 산을 싫어하지 않나니
고사리 캐고 땔나무 주워 밥 먹으면서
한 평생 헤진 누더기를 싫어하지 않노라
몇 해나 되었는지
해마다 해를 보내는데
늙거나 젊거나 죽는 데는 먼저와 나중이 없다
이 몸 절로 늙어가는 것 생각하지 않으면서
누더기 속에서 해마다 해를 보내네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니
애써 마음 쓰지 않으며 자연에 맡겨두네
헤진 누더기 속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가
참지혜가 끝이 없어 겁 밖에 현묘하네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원래부터 공도(公道)는 막힘이 없어
노인의 머리와 얼굴에 재와 티끌을 끼얹나니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오직 이 누더기 한 벌로 남은 생을 보내는구나
자연 그대로의 옷과 밥은 선정(禪定)이 제일이네
저절로 ‘나’가 없어 3독을 버린 뒤에야
무엇하러 승당에서 애써 좌선하랴
2. 고루가(奇歌)
이 마른 해골이여
지금 이것이 마른 해골임을 모르면
어느 겁에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리
이 물건이 뜬 허공 같음을 알아야 하네
몇천 생(生)이나
생사에 윤회하면서 잠깐도 머물지 않고
사생육도(四生六道) 쉼 없는 곳을
돌아왔다 다시 가면서 몇 번이나 몸을 받았나
축생이나 인천(人天)으로 허망하게 허덕였던가
먹이 구해 허덕이나 마음에 차지 않아
이기면 남을 해쳐 제 몸을 살찌우다가
엄연한 그 과보로 업을 따라 태어나네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내 뼈는 어디에 흩어져 있는가
이 세계나 다른 세계에 남김이 없이
오며 가며 흩으면서 그치지 않았으리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권하노니 그대는 머리 돌려 빨리 행을 닦아라
전생의 과보가 무슨 장애되리오
원명(圓明)한 본 바탕 성품바다는 맑으니라
한량없는 겁토록
3아승지를 지나
처음도 끝도 없는 공겁으로부터
이 자체는 원래 모자람이 없었건만
가엾어라, 떠도는 사람들 스스로 미혹하구나
성왕(性王)에 어두워
취해서 깨지 못했으니
어리석음과 애증이 인정(人情)과 더불어 있었네
지금까지 함께 살던 것 다른 물건 아니건만
탐욕과 어리석음에 취한 듯 자기 영혼 몰랐었네
6근(六根)은 이러저리 흩어져 치달리고
검고 희며 누렇고 푸름이 저마다 도량이네
모든 것이 분수대로 제 자리에 편안하거니
어찌하여 제 심왕(心王)을 깨치지 못하는가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할 줄 알았으니
먼 과거로부터 가까이해 온 것들을 떠나지 못해
어리석음과 애증이 공덕을 없애건만
지금도 또 그것들을 가까이하는 줄 모르네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할꼬
머리 돌려 생각생각에 무상(無常)을 생각하라
머리 돌려 생각하고 생각하여 생각이 다하면
갑자기 터지는 한 소리에 제 성품이 꽃다우리
이 마른 해골이여
스스로 고향을 잊어버려
오랫동안 고향으로 가는 길이 거칠어 있네
만일 누구나 탐욕과 분노로 벗을 삼으면
그 때문에 수행하는 이들 제 고향을 잃으리라
매우 미련하고 깜깜하여
자비 없나니
가여워라, 떠돌이 아들은 스스로 길을 잃었네
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구업, 세 가지의 의업으로
끝없이 죄를 지어 다시 슬픔 더하네
그 때문에 천만 가지 악을 지었네
끝없이 지은 죄 태산같이 무거워
세상마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 좋아하지 않나니
원래 그 과보는 무간지옥에 있네
하루 아침에 공하여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본다면
황학루(黃鶴樓)를 지을 때 누가 기둥 세웠던가
황학이 한 번 떠나 다시는 오지 않고
지금은 온 세상이 텅 비어 있네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늘히 몸을 벗으리
이 뜻을 어찌하면 자세히 볼꼬
어떤 물건이나 인연을 만나도 별것 아니요
봄꽃이나 가을달이 똑같이 싸늘하리
그 때를 놓쳤으니
어느덧 머리에는 눈 서리 올랐는데
세상의 탐욕은 늙는 줄 모르지만
늙거나 젊거나 죽는 일은 먼저와 나중이 없네
가장 좋은 시절이라
평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참으로 드물거니
종자 심고 도를 닦되 미진한 구석없게 하고
한가히 노닐면서 좋은 시절 잃지 말라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따라 나는구나
힘쓰고 애태우며 오욕에 미혹되네
빛깔과 소리를 탐해 벌이 술잔에 떨어지듯
몸과 목숨 잃는 것 부처님이 슬퍼하네
권하노니 그대는 지금 빨리 머리를 돌이키라
삼계는 편치 않거니 왜 그리 오래 머무는가
빨리 윤회의 화택 속에서 나와
열반의 참 즐거움에 언제까지나 살아라
진공(眞空)을 굳게 밟고 바른 길에 돌아가라
진공에 돌아가기는 진실로 어렵나니
고금의 납자들은 어떤 것을 의지했던가
지금부터는 조계(曹溪)의 한마디에 의지하여라
모였다 흩어지고
항상 모였다 흩어지는 뜬구름같이
감도 없고 옴도 없는 것에 서로 미혹되어
여기저기 모였다 다시 흩어진다
오르고 빠짐이여
둥우리에 올라 살고 구멍에 빠져도 살아
차별된 여러가지 중생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니
생사는 아득한데 업의 바다는 깊어라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마음 편치 않구나
아무데도 편치 않아 고해에 잠겼을 때
부처님은 세 수레*로 문 앞에 서서
화택에서 끌어내어 여여한 마음에 앉게 한다
그러나 한 생각에 빛을 돌이킬 수 있다면
마지막 의지처인 자기 부처 찾으리
허공 같은 그 자체에 부처가 있나니
자연 그대로인 부처를 어디 가서 찾는가
단박에 뼛속 깊이 생사를 벗어나리라
본래 얕은 것도 아니요 깊은 것도 아니라
서로 만났어도 분간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분간하기 어려움은 본래 깊기 때문이네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무거운 남의 물건 진 것은 없느니만 못하나니
괴롭고 쓰라린 인연을 어떻게 하면 깨달을까
머리에 뿔이 없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머리에 뿔이 있거나
있고 없는 머리의 뿔은 그 바탕이 같나니
갖가지의 형상은 마음이 지은 것이라
3도를 기어다니며 어찌 깨닫겠는가
세세생생에 자꾸 씨앗을 그르치면
처음도 끝도 없는 괴로운 곳에 나리리
3도의 괴로운 과보를 어떻게 떠나리
갑자기 선각의 가르침 만나
육조는 경전 읽는 소리 듣고 도를 깨쳤으니
3장(三藏)의 부처님 말씀 왜 뒤에 남았는가
중생들 인도할 때에 입이 먼저 열렸네
여기서 비로소 잘못된 줄 분명히 알았나니
축생이나 귀신의 세계도 마음이 지은 것이요
천당도 지옥도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
옛 성인들은 본래 마음을 크게 깨달은 사람이다
혹은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어리석은 마음을 익혀 삼독(三毒)이 일어났지만
삼독이 공(空)함을 익혀 안다면
보리의 제 성품은 저절로 삼매(三昧)이리
혹은 탐욕과 분노로
망령되이 허덕거려 번뇌가 새로운데
번뇌와 보리가 하나임을 알 때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공겁(空劫)의 몸이리라
곳곳에서 혼미하여 허망한 티끌 뒤집어써서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자기 몸 괴롭히는 줄 알지 못하네
사람마다 물욕으로 사랑과 미움 생기거니
무슨 일로 지금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려 하는가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본래의 그 면목은 어디 있다 하겠는가
어찌하여 불조(佛祖)는 자취를 감췄는가
눈만 뜨면 모두가 본래 주인인 것을
어디서 참사람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청정 본연의 참 법신을 볼 수 있을까
모두 비어 한 물건도 없다고 말하지 말라
삼라만상이 다 본래 그 사람이네
나기 전에 잘못되었고
전생의 인(因)에서
엄연한 전생에 수행하지 않은 사람
잘못된 그 과보가 엄연히 이 생에 있나니
이 생에 닦지 않는 사람 후생에 괴로우리
죽은 뒤에 잘못 되어
금생에 지은 연(緣)에서
선업이나 악업의 인은 먼저와 나중이 없으니
부디 금생에 악업을 짓지 말라
금생에 지은 업으로 후생에 과보 받으리
세세생생 거듭거듭 잘못되었으나
생사에 윤회하는 것 그 악법 때문이니
생사에 윤회하면서 그 괴로움 계속되리
원하건대 머리 돌이켜 정각(正覺)으로 돌아가라
한 생각에 무생(無生)을 깨달아내면
마음도 법도 무생(無生)이라 본래 나지 않으니
본래 나지 않는 것 어디 있는가
봄이 오니 온 누리에 풀이 청정하구나
잘못되고 잘못됨도 원래 잘못 아니리
당당히 깨친 뒤에는 끝내 잘못이 없고
고금의 성현들은 찾아도 그 자취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진실한 깨달음이네
거칠은 것에도 집착하고
애정에 떨어져
눈으로는 빛깔 탐하고 귀로는 소리 찾네
괴로움인 줄 알지 못하고 쾌락에 얽매여
물욕에 끌려다니면서 한 평생을 보낸다
미세한 데에도 집착하여
구하는 마음 있어
세상의 이름과 이익에 무심하지 못하나니
금과 은과 옥과 비단에 번뇌를 내어
물욕으로 탐내면서 괴로움 더욱 깊어진다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전연 깨닫지 못하다가
집착함이 어째서 잘못인 줄 알지 못하나니
마치 경솔한 부나비가 불을 탐하고
꽃술 찾는 벌이 향기와 맛에 집착하는 것 같네
갑작스런 외마디소리에 후딱 몸을 뒤집으면
지금까지의 허깨비는 바로 빈 몸이었네
본래의 면목은 어디 있는가
물건마다 일마다 새롭고 또 새롭네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리라
여여해서 흔들리지 않는 무위(無爲)의 즐거움
마음이나 법도 본래 그와 같아서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는구나
혹은 그르다 하여
좋지 않은 마음이 생겨 눈썹을 찌푸리고
갑자기 나쁜 말로 그를 나무라노니
그런 사람은 원래 선(善)이 아주 적었으리
혹은 옳다 하여
애정과 탐욕을 자주 일으켰다가
이별하는 고통 속에 빠져 있나니
삼현십성도 구제하기 어렵네
시비의 구덩이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근심하다가
좋다 기뻐하고 싫다 근심하는 것이 어찌 다르랴
눈썹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셋도 아니요 하나도 아니며, 그렇다고 둘도 아니니라
어느 새 몸이 죽어 백골무더기뿐이니
마음도 비고 경계도 고요한데 이 무슨 무더기인고
세간의 어떤 물건이 죽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랴
불과 바람은 먼저 떠나고 백골무더기뿐이네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하지 못하네
온갖 것으로 장엄된 보배는 고향에 있었나니
중생들은 탐애(貪肯)로 허덕거리지마는
오직 부처님은 6화(六和)*로 자재를 행하셨네
이 마른 해골이
이것을 어찌할까
한 무더기 마른 뼈를 어떻게 보호할까
전생에 수행하지 않았거늘 지금 누가 보호하랴
혹은 진흙 구덩이에 있고 혹은 모래밭에 있네
한번 깨치면
큰 문이 열리고
깨친 사람의 뼈는 여섯 신통 트인다
예전에는 비싼 값으로 그 뼈를 사서
높은 누대(樓臺) 위에 부도를 세웠다
광겁의 무명도 당장 재가 되어서
원래 밝고 어두움과 번갯불 천둥은
큰 허공 속에서 숨었다 나타나지만
큰 법이야 원래 무슨 차별 있으랴
그로부터는 항하사 불조의
끝없는 지혜의 해가 허공에 가득 비치리니
삼라만상에 아무 의심 없어지고
큰 도는 여여하여 모자람이 없으리라
백천삼매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부러워하지도 않거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부처와 중생이 다 같은 무리니
여러분은 여기서 조금도 의심 말라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자세히 보아라
신령한 광명은 홀로 두루 비추어 빈틈없나니
본래의 참성품은 모든 반연 끊었고
참지혜는 끝없고도 무심하니라
무슨 허물 있는가
지극히 영롱하여
한 점의 티도 없이 모든 것에 통하나니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는 경계가 되고
지혜로운 사람 곁에서는 모두 다 순종하네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 되나니
물건마다 일마다 그 자리이며
티끌마다 세계마다 내 고향이라
라라리리 한마디에 태평하네
쟁반에 구슬 굴리듯 운용할 수 있다면
생사는 끊임없이 업의 바다로 흐르는데
떠돌이 아들은 고향떠난 지 얼마나 되었던가
생각하는 업의 바다 아직도 흐르는구나
겁석(劫石)도 그저 손가락 퉁길 사이에 지나가리
돌아올 겁석도 그 수가 항하사 같거니
고향 떠난 떠돌이 아들 오래됨을 어떻게 알리
앞뒤가 아득하고 한참 아득하구나
법도 없고
무엇으로 통할까
고요하고 아득하여 무지(無智)에 싸여 있네
적멸(寂滅)한 성품 안에서는 어떤 맛도 보기 어렵지만
어려운 중에도 이치와 일 두 가지는 공(空)하기 어렵네
부처도 없고
무엇으로 음미(吟味)할까
본래부터 성인도 없고 또 범부도 없고
원래 큰 바탕에는 더하고 덜함 없어
부처와 중생이 모두 똑같네
마음도 없고 물질도 없네
경계도 비고 마음도 고요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나니
경계와 마음, 마음과 경계를 어떻게 말할까
마음과 경계, 경계와 마음, 마음도 경계도 없네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이렇지 않은 것은 이런 것 가운데 이렇지 않은 것이요
이런 것은 이렇지 않은 것 가운데 이런 것이다
이런 것 가운데 이렇지 않은 것은 그대로가 이치인 것이요
이렇지 않은 가운데 이런 것은 이치 그대로가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치 그대로가 일이요, 일 그대로가 이치라 하지마는
거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나니
봄이 오면 여전히 온갖 꽃피고 오가는 새들은 갖가지로 지저귀며
풀이 푸른 언덕에는 소치는 아이 노래하네
추울 때는 불 앞에서 나무조각 태운다
더울 때는 그늘로 가 음지에서 쉰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대로가 진실이라
일마다 물건마다 부처의 참뼈이네
3. 영주가(靈珠歌)
신령한 이 구슬
이 노래 부르나니
온갖 보배 장엄이 항하사 세계를 둘러싼다
원래 이 보배는 값할 수 없는 보배라
사바세계 값으로 매기면 더욱더욱 어긋나리
지극히 영롱하다
한 점 티가 없거니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한 점의 티도 없다
적멸(寂滅)하고 응연(應然)함을 누가 헤아릴까
티끌같이 한없는 세계에 그 자체는 헛꽃[空華] 같네
그 자체는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는데
두렷이 밝고 고요히 비치어 일마다 통하고
밝고 분명하며 끊김이 없고
처음도 끝도 없이 겁(劫) 밖에 통하네
사람마다 푸대 속에 당당히 들어있어서
큰 활동은 봄과 같아 모자람이 없나니
물건마다 일마다에 진실한 바탕 완전하고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 주인이 되네
언제나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오면서 쓰고 가면서 쓰매 그 쓰임새 풍족하다
이제껏 이 보배는 다함이 없어
원래 허공에 가득하며 자체는 바람 같네
마니구슬이라고도 하고
물건으로 이름을 붙이나
자체는 허공과 같아 그림자도 형상도 없다
어떠한 물건도 일도 다른 데서 생긴 것 아니거니
반드시 만물이 있어 그 이름을 얻는다
신령한 구슬이라고도 하니
그 성품 신령하나니
실제로 업이 있어 생을 받고 실제로 업을 지어간다
전생에 후생의 인(因)을 짓고 그 인이 없어지지 않아
사생육도에 온갖 모습이 된다
이름과 모양은 아무리 많아도 자체는 다르지 않네
봄이 오기 전에 만물을 다 알 수 있는가
만물을 다 알려면 괜스레 수고로울 뿐
한 항아리의 봄으로 전체를 알아야 하리
세계마다 티끌마다에 분명하여
한 줄기 신령한 광명은 고금에 빛난다
티끌마다 세계마다 모두 다른 것 아니요
자기의 신령한 광명이 환한 그것이라네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여라
한 점 신령한 광명에 또 무엇이 있는가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으면 한갓 힘만 허비하리라
밝고 밝은 보배달이 가을 강에 가득하네
배고픔도 그것이요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자기 조금도 어김없는데
어김없는 그것은 다른 데서 오는 것 아니라
인연 따라 작용하는 제 고향집이니라
목마름도 그것이니
조주 노스님 사람들에게 차 한 잔 대접했다
이 작용을 의심 않고 이 작용을 잘 알면
의심 않는 이 작용은 다른 것이 아니네
목마름 알고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자기 집에 사는가
여여(如如)한 것만이 여여한 이것이라
여여하지 못하면 또 다시 어긋나리
아침에는 죽먹고 재(齋)할 때는 밥먹으며
목마르면 아이 불러 차 한 잔 마시노라
문 밖에 해는 지고 산은 고요하나니
앞창에 달은 밝고 흰 구름 흩어지네
피곤하면 잠자기에 어긋남이 없어라
천 가지 세상 일 모두 다 어긋나지 않네
목동은 해를 향해 봄풀 위에서 자는데
어부는 저물어 와서 모래 언덕에 배를 대네
어긋남도 그것이요
산은 산이라
조각조각 흰 구름은 앞산을 지나가네
솔솔 부는 맑은 바람은 소나무에 걸리고
재승(齋僧)은 연기 나는 절을 한가히 오고 가네
바름도 그것이라
물은 물이라
책상머리의 폭포는 잔잔히 떨어진다
문 밖에는 푸른 산, 반은 푸른 하늘인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수고로이 입을 열어 미타염불 할 것 없네
한 걸음도 옮기지 않는 거기가 바로 네 집인데
무엇하러 사방을 향해 입을 열어 염불하랴
무심한 그 자리가 모두 어긋나지 않는데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집착하지 않으면
적멸(寂滅)한 성품 가운데서 무엇에 집착하랴
만물을 내는 봄도 그와 같아서
만물을 내면서도 집착하지 않거니
세간에 있어도 자유로우니 그가 바로 보살이라
소리 듣고 빛깔 보는 것 다른 물건 아니다
일마다 물건마다에 주인이라 이름하나니
물건마다 일마다가 곧 보살이니라
이 마음구슬은
분명하고 똑똑히 모든 물건에 따르지만
그 자체는 허공과 같아 안도 바깥도 아니어서
거짓으로 이 마음구슬이라 이름하였네
붙잡기 어려우니
영롱한 그 정체를 누가 붙잡을 수 있으리
멀고 먼 겁 동안을 홀로 높고 둥근데
범부도 성인도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려워라
분명하고 영롱하나 붙잡기 어려움이여
영롱한 그 정체를 누가 얻을 수 있으랴만
그 가운데서 깜깜한 공[頑空]에 집착 말라
버들은 푸르고 복숭아꽃은 붉은데 오얏꽃은 왜 흰가
형상도 없으면서 형상을 나타내고
경계와 마음이 둘이 아닌데 경계와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경계가 고요하고 마음이 비면
허깨비처럼 텅 빈 데서 묘함이 절로 밝네
가고 옴에 자취 없어 헤아릴 수 없구나
이리저리 자재함을 누가 알 수 있으리
아득한 겁 동안을 홀로 높고 허공처럼 평등하거니
이 도는 무심이라야 비로소 얻느니라
쫓아가도 따르지 못하는데
애써 찾지 말지니라
마음 두고 있는 이 그 누구인가
누가 가고 누가 찾기에 쫓아가도 따르지 못하는가
앞도 없고 뒤도 없어 더더욱 아득하네
갑자기 스스로 온다
무엇이 갔다 오는가
경전에는 ‘감도 없고 옮도 없다’하였거니
분명한 부처님 말씀을 헤아려 하지말라
가까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며 가고 오는 것도 아니네
잠시 서천에 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옴이여
발로는 갈 수 없으나 능히 돌아왔네
큰 법은 원래 얻을 수 없다지만
봄바람에 복숭아꽃 오얏꽃은 곳곳에 피어있네
놓아버리면 허공도 옷 안에 드는데
허공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네
비로자나의 한 몸을 어떻게 말할까
봄이 온들, 만물들 무슨 뜻이 있는가
거둬들이면 작은 티끌보다 쪼개기 어렵다
털끝만큼도 허락하지 않아 실로 쪼개기 어렵고
백천만의 입으로도 분명히 말하기 어렵거니
여기서 찾지 못하면 어디서 얻어오리
헤아릴 수 없어라
영롱한 그 성품이여
만법을 내는 그 바탕 뚜렷하고 텅 비었다
끝도 없고 처음도 없으며 늘고 주는 것도 없이
홀로 빛나는 신령한 광명은 고금을 통해 있네
견고한 그 몸이여
그 수명 어찌 헤아리리
여여해 움쩍 않으매 금강(金剛)이라 이름했네
분명하고 똑똑하며 늘거나 줄지도 않나니
꼬물거리는 중생까지도 그 본성(本性)의 왕이 되네
석가모니는 그것을 제 마음의 왕이라 불렀나니
부처와 중생들의 성품의 왕이 되네
그 성품의 지혜는 원만하고 밝아 걸림 없으매
봄처럼 음양을 고르게 내는구나
그 작용이 무궁무진한데도
가거나 오거나 작용하거니 그 작용 어찌 끝 있으리
봄이 오면 뭇나라가 한꺼번에 봄이 되어
온갖 생물들 다시 새로워져 봄이 끝이 없어라
세상 사람들 망령되이 스스로 잊는구나
허망하게 허덕일 때 고향 길이 거칠고
나고 죽음 아득하여 앞길 끊어졌나니
고금의 떠돌이 아들들 제 고향 잃었도다
바른 법령 시행되니
무심의 행이로다
만일 누구나 바로 말하고 바로 행하면
양 극단[二邊]이나 중도(中道)에서 어찌 길을 그르치리
그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행이니라
누가 그 앞에 서랴
어찌 그대 없는가
열반회상에서는 석가가 높았는데
용화세계 삼회(三會)에는 미륵이 주인되리니
세간이나 출세간의 주인에게는 존귀함 있네
부처도 마구니도 모조리 베어 조금도 안 남기니
이치로는 완전하나 일로는 빠뜨렸으니 일없이 놀지 말라
이치로는 완전하나 일로는 빠뜨렸으면 어떻게 바로잡을까
납자들은 그 가운데 머물지 말라
그로부터 온 세계에 다른 물건 없고
이치와 일이 완전한데 누가 고쳐 말할 건가
자기 스스로 절로 통했거니
버리지 않아도 저절로 다른 물건이 없네
강에는 피만 가득하여 급히 흐른다
있느니 없느니 다툼이 쉬지 못하니
윤회하는 생사가 언제나 다할 건가
생사는 끝없이 업의 바다로 흘러간다
눈으로 보지 않고
앞의 반연 끊어져
삼라만상이 눈앞에 가득한데
죽은 사람 아니라면 어찌 보지 못하는가
본래 면목은 스스로 원만하였거니
귀로 듣지 않으나
어찌 소리 없던가
향엄(香嚴)이 대나무 때릴 때* 어찌 소리 없던가
소리 들어 도를 깨치고 소리와 빛깔 벗어나면
옛날의 그 향엄이 바로 문 앞에 오리
보도 듣도 않음이 진짜 보고 들음이라
소리 듣고 빛깔 봄을 어떻게 말한 건가
다만 일에 있어서 일없음을 깨달으면
빛깔 보고 소리 들음이 진짜 보고 들음이리
그 가운데 한 알의 밝은 구슬 있어서
소리와 빛깔 속에서 제 자리에 편안한데
무슨 일로 요새 사람 밖을 향해 구하는가
마음이 곧 물건인 것, 그것이 귀하니라
토하거나 삼키거나 새롭고 새로워라
본래 거두고 놓는 것이 바로 제 참몸이니
당당한 그 정체는 늘거나 주는 법 없고
분명하고 똑똑하여 겁 밖에서 새로워라
마음이라고도 하고
본래 마음 없는데
경계가 있으면 마음도 따라 본심이 생겼다가
경계가 고요해지면 마음도 그에 따라 사라지나니
본래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경계도 아니다
성품이라고도 하는데
성품에는 생멸 없으니
본래 청정한 자체는 두렷하며 평등하다
성품은 허공과 같아 일정한 장소 없고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네
마음이든 성품이든 원래 반연의 그림자라
마음과 법은 본래 형체와 그림자 같아
한낮의 형체와 그림자는 걸음걸음 서로 따르나
앞 경계 없어지면 그림자도 따라서 사라진다
만일 누구나 여기에 의심 없으면
들고 오는 물건마다 모두 다 기틀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오로지 묘한 바탕이거니
어찌 수고로이 밖을 향해 귀의하랴
신령스런 자기 광명 언제나 빛나리
한 줄기 찬 기운이 두렷한 거울 같아
삼라만상이 모두 그 앞에 나타나니
삼라만상은 진실로 거울의 그림자다
도(道)라고도 하고
도는 형상 없으며
큰 도는 원래 이름도 없다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끊어지는 것도 아니라
처음도 끝도 없어 겁 밖에 평등하다
선(禪)이라고도 하나
우는 아이 달래나니
동남에도 있지 않고 서쪽에도 있지 않은데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노란 잎사귀 붙들고서
불자들은 승당 앞에서 벽을 향해 앉았네
선이나 도란 원래 억지로 한 말이거니
원래부터 묘한 도는 본래 그러한 것을
본래 그러한 묘한 도를 뉘라서 만들어내리
영원히 홀로 높아 천지보다 먼저 있는데
비구니도 여인으로 된 것임을 진실로 알면
파랑 노랑 빨강 하양은 그 누가 만든 건가
봄이 오면 예와같이 복숭아꽃 절로 붉어
모든 것이 분명하거니 왜 깨치지 못하는가
걷는 수고 들이지 않고 저곳에 도착하리
너나 나나 이제껏 아직 그렇지 못한 것을
처음도 끝도 없고 멀거나 가까움도 없어
본래 그러한 묘한 도는 바탕이 비어 있네
부처도 없고
중생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지만
집어오는 모든 물건 다 기틀이라
본래의 그 면목은 원래부터 차별 없다
마구니도 없으니
부처와 중생과 마구니
산과 강, 모든 만물들
앓는 눈의 헛꽃 같구나
마구니도 부처도 뿌리 없는 눈[眼] 속의 헛꽃인 것을
이 뜻을 알지 못하면 또 어찌할까
모든 것은 다 다른 물건 아니나
눈먼 사람이 집에 가는 길을 잃은 것 같네
언제나 날로 쓰면서 전혀 아무 일 없으나
자성(自性)이 인연 따라 일에 응한다
분명한 부처와 조사들 찾아도 알 수 없으나
봄이 오면 여전히 장미는 자주빛이다
신령한 구슬이라 하면 나무람을 받으리
참이름은 붙일 수 없고 자체는 허공꽃이니
아득한 겁 밖에서 늘지도 줄지도 않고
온갖 법을 능히 내거니 그 작용 어떠한가
죽음도 없고
누가 저 허공이 끝나거나 생기는 일 보는가
저 큰 허공은 끝나거나 생기는 것 아니거니
원래부터 그 바탕은 죽음이 없네
남도 없이
가여워라, 아득하고 끝없는 정(情)
대지에 봄이 와 만물을 내지마는
한 항아리의 봄뜻은 본래 남이 아니다
항상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다니며
대지의 사람들 몸은 어디서 생겼는가
대지와 비로자나는 진실로 한몸이라
야인(耶人)은 대지를 떠나지 않고 다니네
때에 맞게 거두거나 놔주니
가을달 봄꽃이요 겨울에는 눈이 있다
여름의 뜨거운 볕은 누구 힘인가
바람이 오고 바람이 가면 그 철을 알 수 있네
자재하게 들고 씀에 골격이 맑아라
큰 바다의 맑은 물
온갖 배들 오가지만 맑은 것 같아
본래 청정하여 겁 밖에 평등하다
머리도 없고
자체가 두렷하나니
자체에 머리 없으면 뒤와 앞이 끊어지고
한 알의 두렷한 광명은 안팎이 없어
시방세계 어디고 모두 다 둘러쌌네
꼬리도 없는데
누가 고쳐 말할 건가
자성의 보배구슬은 꼬리도 머리도 없이
분명하고 똑똑하여 겁 밖에 평등하나니
만일 제 성품을 든다면 본래 이룬 부처이리
서거나 앉거나 분명하여 언제고 떠나지 않는구나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 같아 언제나 함께하듯
법성(法性)은 원래부터 먼저와 나중 없어
형체와 그림자가 동시에 서로 따라다니듯 하네
힘을 다해 쫓으나 그는 떠나지 않고
마음 그대로가 물질이거니 무엇을 따로 들리
해마다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누구를 위해 붉은가
곳곳의 푸른 버드나무에는 말을 맬 만하거니
있는 곳을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네
이 몸과 마음과 함께 있나니
나도 아니요 남도 아니라 잡기가 어렵지만
자기 스스로 찾아보면 본래 그 사람이리
하하하
우스워라
꽃을 들고 대중에 보인 것, 본래 그러하거니
음광(飮光)이 지은 미소가 무얼 그리 신기하리
부처의 뜻과 조사의 마음은 본연(本然)에 합한 것을
이 어떤 물건인가
만나거나 만나지 않거나
마음법은 원래 공하면서 공하지 않나니
물건마다 일마다 분명하고 똑똑하나
찾고 찾아보면 또 그 자취 없으리
1, 2, 3, 4, 5, 6, 7
오직 부처만이 깊고 깊은 그 뜻을 알리라
부처와 조사의 그윽한 문이 곳곳에 밝아
8월 단풍에 때는 가을이로다
세어 보고 다시 세어 보아도 그 끝이 없구나
세어 보고 또 세어 본들 그 수 어찌 다할 건가
항하의 모래수는 모두 셀 수도 있어도
세고 또 세 보아도 역시 끝이 없어라
마하반야바라밀!
날마다 밝고 밝은 부처해가 밝도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분명히 밝고
일마다 물건마다 바라밀이네
나옹화상 승원가(懶翁和尙僧元歌)
승원가(僧元歌)*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세사탐착 그만하고 世事貪着其萬何古
참괴심을 이와다서 慙愧心乙而臥多西
한층염불 어떠하뇨 一層念佛何等何堯
어젯날 소년으로 昨日少年乙奴
금일백발 황공하다 今日白髮惶恐何多
아침나절 무병타가 朝績那殘無病陀可
저녁나절 못다가서 夕力羅未多去西
손발접고죽난인생 手足接古死難人生
목전애 파다하다 目前頗多何多
금일이사 무사한달 今日以士無事旱達
명조를 정할손가 明朝乙定爲孫可
고생고생이 주어모아 困困而拾我會我
몇백년 살라하고 幾百年生羅何古
재물 부족심은 財物不足心隱
천자라도 없잔나니 天子羅道無殘難而
탐욕심을 물리치고 貪欲心乙揮耳治古
정신을 떨쳐내여 精神乙振體出餘
기묘한 산수간애 奇妙旱山水間厓
물외인이 되려문다 物外人而道汝文多
사람되기 어렵거던 人道其難業去等
맹구우목 같다하니 盲龜遇木如陀何而
불보살 은덕으로 佛菩薩恩德以奴
이몸되야 나왔으니 此身道也出臥是以
이아니 다행하냐 伊安耳多幸何也
부처님 은덕으로 佛體主恩德乙奴
촌보도 잊지말고 寸步道忘之末古
아미타불 어서하야 阿邇陀佛於西何也
극락으로 돌아가자 極樂乙奴歸我可自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불쌍코 가련하다 殘傷古可憐何多
백년도 못다사는 百年刀牟多生隱
이한몸을 구지믿아 以一身乙具之未陀
무산재미 보라하고 無散慈味見羅何古
먹고남은 전답사기 飮古餘隱田沓四其
쓰고남은 재물로난 用古餘隱財物以難
시사로 경영하야 時土老脛營何也
무익한 탐심으로 無益旱貪心乙奴
정상애 보랴한다 頂上厓寶羅限多
깨치려는 주인공아 覺治餘隱主人公我
석숭이도 재물로 죽고 石崇耳刀財物奴死古
원단이도 구잔나니 苑丹耳刀君殘羅而
가난계 유여계와 艱難界有餘界臥
잘되기 못되기난 (自+乙)刀其未刀其難
전생애 지은대로 前生造隱大奴
이몸되야 나올적에 此身刀也出來除介
하늘이 정한대로 마련하 天定以奴馬鍊何也
재천명백 하얏거던 在天明白何也去等
초목끝애 이슬같은 草木末露如隱
위태한 이목숨을 危太旱以命壽乙
천년밖애 살라하고 千年外厓生羅何古
그대도록 빌더구나 其大道奴乞加其那
진심악생 얼굴우에 嗔心惡生顔太上禮
대면하기 애달도다 對面何其哀納通多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목전애 보는 것이 目前厓見銀去是
낱낱이 거울이요 枚枚治鏡于以堯
귀끝애 듣난 것이 耳末厓聞難去是
낱낱이 거울이니 枚枚治鏡于以耳
못듣난야 주인공아 未聞難也主人公我
못보난야 주인공아 未見難也主人公我
나의용심 모르거던 吾意用心毛練去等
남을 보고 깨칠아문 南乙見古覺治我文
진소진 한소광도 秦蘇晋漢小光道
재물로 깨치거는 財物奴覺治去隱
너는어찌 모로난다 汝隱何之毛奴難多
기별없는 모진병이 期別無隱惡眞病以
일조애 몸애들어 一朝厓身愛入於
삼백육신 골절마당 三百六身骨絶馬當
마디마디 고통할제 寸寸苦痛割除
팔진미 좋은음식 八珍味造隱飮食
좋다하고 먹어보라 好陀何古飮古寶羅
최친지친 모아들어 最親至親會我入於
지성으로 근하야도 至誠乙奴勤何也道
냉수밖에 못먹게다 冷水外其未食介多
아이고 주인공아 哀而古主人公我
전생애 원수로서 前生厓怨讐奴西
빚값애 든병이 債報厓入病耳
우황으로 어찌하며 牛黃乙奴何之何面
인삼으로 보기하야 人三乙奴保其何也
편작에 들이민들 鞭作如加依迷人達
천명을 어찌하리 天命乙何爲耳
천금을 허비하고 千金乙虛費何古
만재를 다들여도 萬財乙皆入於道
노이무공 뿐이로다 勞耳無功分而奴多
어와가소롭고 가소롭다 於臥可笑吾古可笑吾多
불법을 우스여겨 佛法乙于笑內幾
염불한번 아니하고 念佛一番不以何古
호활부려 다니다가 毫活呼如單耳多可
병중애 후회하야 病中厓後悔何也
기전나야 불공하며 其前那也佛供何面
관음보살 급히불러 觀踵菩薩急希呼
목말라 샘파기로 項乾羅井未破其老
본래없난 네정성을 本來無難汝情誠乙
임갈계사 아당하달 臨渴界四我當何達
어떤부처 응감하리 何隱佛體應惑何耳
염라대왕 부린차사 閻羅大王使忍差使
영악하고 험한사자 令惡何古險限使者
너문전애 당도하야 汝門前當到何也
인정없이 달라들어 人情無是達那入於
벽력같이 잡아내제 霹靂可治者所來除
갈때마다 사귄주인 去大馬多交主人
죽자사자 친한벗이 死自生自親限友至
네죄예 대신가리 汝罪禮代身去耳
생각건대 그누구이시며 生覺建大其誰在是面
사랑하고 귀한지를 肯仰何古貴限圍乙
몰래 생각하는 毛來而生覺何隱
처자권속 일가중애 妻子眷屬一家中
대신갈이 그누구인고 代身去而其誰有古
한평생 주야없이 限平生晝夜無而
추위더위 생각잖고 寒爲署爲生覺殘古
천심 만고하야 千深萬古何也
근심으로 장만하고 懃心以奴莊萬何古
욕심으로 일워나온 慾心以奴成奴生隱
옥지옥답 가장기물 玉地玉¿家莊器物
노비우마 천재만재 奴婢牛馬千財萬財
아무리 아까온달 我毛耳我可溫達
어디가 인정하며 何而去人情何面
지고가며 안고가랴 負古去面抱古去也
빈손으로 나았다가 空手以奴出我多可
빈손으로 들어가니 空手以奴入練去伊
백년탐물 일조진을 百年貪物一朝塵乙
친구없신 어둔길에 親古無信冥間路
할길없난 고혼이쇠 割吉無難孤魂以金
시왕전애 추열할제 十王殿推列割除
우두나찰 마두나찰 牛頭那刹馬頭那刹
좌우편애 열립하야 左右片列立何也
번개같은 눈을뜨고 番介如隱目乙浮古
벽력같은 모진소래 霹靂如隱惡眞聲
일시에 호통하며 一時禮呼痛何面
추상같안 창검으로 秋霜如歎創劍以奴
옆옆이 들서기매 腋腋被擧西其每
바로하라 호령할제 直奴何羅呼令割除
골절이 무너지고 骨節耳頹頷於之古
만신이 피빛이라 萬身耳血色治羅
어느친구 훗날보리 何隱親古後發見耳
처자권속 일가마다 妻子眷屬一家馬當
나를죽었다고 슬피운달 我乙死多古哀被哭達
저런줄 어이알리 底彦拙練耳知耳
슬포고 서론지라 悲抱古庶論之羅
고성대성 통곡하고 高聲大聲痛哭何古
자손친척 남아닌달 子孫親戚他不以達
죽은부모 생각하야 死隱父母思覺何也
천도하자 의논하기 薦度何自議論何其
천만중에 몇낱이고 千萬中厓幾枚治古
울기난 그만하고 哭其難其萬何古
초상삼상 가는날애 初喪三喪去隱日愛
산명수 덜잡으면 生命壽除乙捉夫面
그대도록 설잖나니 其大道奴설殘難伊
내연고 의탁하고 我年故依托何古
남무눈을 위로하야 他無目乙慰老何也
마지마라 하거만은 摩之馬羅何去萬隱
죄은 너지은대로 罪隱汝造如道
벼락은 내당커던 霹惡隱我當去等
설상가상 무산일고 雪上加霜無散事古
생전부귀 많은자손을 生前富貴多子孫乙
사람마중 불바하달 人岩馬中不所何達
죽은후애 더옥설다 死隱後加玉雪多
평생애 지은죄를 平生造隱罪乙
역력히 상고하야 曆曆希相考何也
팔만사천 무변옥애 八萬四千無邊獄厓
중한죄로 마련하고 重恨罪奴磨鍊何古
그남은 적은죄로 其餘隱小隱罪奴
소되건이 말되건이 牛爲建耳馬爲建而
개짐생 뱀구렁되면 犬獸生蛇岩九令爲面
어떠한 좋은일로서 何等恨善事奴西
인도애 환생하리 人道厓還生何耳
생각건대 더옥설다 生覺建大加玉說多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맹세하고 염불하야 盟誓何古念佛何也
석가세존 권한염불 繹迦世尊勸恨念佛
십륙관경 이를말삼 十六觀經謂乙馬三
일몰관이 제일이라 日沒觀而第一羅
서산애 지는해를 西山知隱年乙
뜨는 눈 감는 눈 開目閉目厓
안전애 걸어두고 眼前厓掛於置古
아미타불 대성호를 阿邇陀佛大聖號乙
주야없이 외오다가 晝夜無是誦吾多可
정념이 도망하고 定念而道亡何古
잡념이 서돌거던 雜念而西道乙去等
부지런히 자책하야 勸勸何耳自何也
환생할가 근심하여 還尙活可懃心何以
세사같이 애착하야 世事可治肯着何也
일구월심 공부하리 日久月深工夫何耳
세사생각은 적어지고 世事念隱小去只古
염불이 주장되야 念佛而主丈道也
일심염불 어떠하뇨 一心念佛何等何堯
염불경 구경하고 念佛脛翫景何古
지성으로 염불하면 至誠矣奴念佛何面
염불인 성명자는 念佛人姓名字隱
염라대왕 명부안내 閻羅大王冥府案內
반다시 빼가고 必多是拔去古
극락세계 연화우에 極樂世界蓮花上禮
명백히 기록하고 明白希記錄何古
관음세지 대보살이 觀踵勢至大菩薩耳
중매되야 다니다가 中媒道也多而多可
이목숨 다할적에 以命壽盡割底計
무수한 대보살과 無數恨大菩薩果
수많은 성문연각 數多恨聲門緣覺
각각이 향화잡고 各各而香火執古
쌍쌍이 춤을추며 雙雙而舞乙秋面
백천풍류 울리시고 百千風流鳴理是古
경각간애 왕생하리 頃刻間厓往生何耳
극락세계 장엄보소 極樂世界莊嚴見小
황금이 땅이되고 黃金以地而爲古
칠보연못 넓은못이 七寶澤廣隱池是
처처애 생기시나 處處現氣是乃
가득이 되어있고 滿澤而馱臥有古
물아래 피연모래 水下伸如沙來
순색으로 황금이요 旬色疑奴黃金而堯
땅속애 연화꽃안 地中厓蓮花花讚
청련화 황련화와 靑蓮花黃蓮花臥
적련화 백련화와 赤蓮花白蓮花臥
수레바퀴 같은연화 車厓朴古可歎蓮花
사철없이 피여있고 四節無時伸如有古
칠보는 자자한대 七寶難自自恨大
청색이면 청광이요 靑色而面靑光以堯
황색이면 황광이요 黃色而面黃光以堯
청황적백 사색광명 靑黃赤白四色光明
서로서로 상잡하고 西奴西奴相雜何古
향취난 미묘한데 香臭難美妙恨大
그우애 누각집이 其上厓樓閣家耳
허공중애 생기시나 虛空中厓生其是乃
칠보로 장엄하니 七寶奴莊嚴何耳
황금 백은이요 黃金白銀耳堯
유리주와 마노주로 琉璃柱臥馬瑙柱奴
색색으로 바치시고 色色矣奴所治是古
칠층난간 지은우애 七疊軒間造隱上厓
칠보망을 둘러치고 七寶網乙揮如治古
칠보향수 보배목이 七寶香水寶拜木以
칠보로 둘녔어라 七寶奴揮如西羅
청학백학 앵무공작 靑鶴白鶴鸚鵡孔子
가응가곤 공명등이 可鷹可鵾功名等而
가지가지 새짐생이 可卿可卿鳥金生而
칠보연못 향나무새애 七寶池香樹間厓
이리날라 저리가고 一以飛那切以可古
저리날라 이리오니 切耳飛那一以來耳
가며오며 우는소래 去面來面鴨隱聲厓
소리마다 설법이요 聲以馬當說法以堯
청풍이 소소하며 淸風以蕭蕭何面
칠보행수 요동하고 七寶行樹撓動何古
은경당경 나는소래 彦脛當脛出隱聲厓
백천풍류 울리시고 白千風流泣而是古
들리는 소래마다 聞而隱聲哀麻當
염불설법 뿐이로다 念佛說法忿以奴多
그뿐인가 저극락은 其分仁加底極樂隱
농사를 아니하야도 農事乙不以何也道
의식을 생각하면 衣食乙生覺何面
의식이 자래하고 衣食而自來何古
잠잠하고 생각하소 黙黙何古生覺何小
젊을때에 못한염불 少年時未恨念佛
늙은후에 할길없다 老懃後厓割吉無多
무상살귀 인정없어 無常殺鬼人情無西
이십전 삼십전애 二十前三十前厓
한정없이 죽난인생 限定無是死難人生
여기저기 무수하니 如其底其無數何而
늙거던 염불하자 老去等隱念佛何自
칭탄말고 염불하소 稱歎末何念佛何小
평안할제 못한염불 平坐割除未恨念佛
병든후애 할길없다 病入後割吉無多
오늘내일 이날저날 今日明日此日這日
엄벙덤벙 디나다가 嚴犯加犯過內多可
뜻없이 죽어지면 意無是死去之面
한빙지옥 화탕지옥 寒氷地獄火湯地獄
동주지옥 철상지옥 銅柱地獄鐵牀地獄
가지가지 깊은지옥애 可枝可枝深隱地獄厓
찢어내며 베여오며 裂底出面斬也來面
지지거니 삶아거니 煮之去耳烹馬去耳
하룻밤 하룻낮애 壹夜壹晝厓
만번죽으며 만번사라나니 萬邊死其面萬邊脫羅來而
수많은이 되랴하고 誰多臨而道也何古
바쁜말 저른신탈 婆分說節隱伸脫
가지가지 칭탈로서 可枝可枝稱脫奴西
엄첩은 세엄사마 嚴處隱世嚴師馬
염불애 배도거던 念佛厓拜道去等
이세상애 살아있어 以世上生我有西
잘입고 잘먹어도 乽被古食去刀
한나잘 베고푸고 一那乽腹古布古
한나잘 추운것도 一那乽寒隱去刀
참기 어렵거든 忍其難吾去隱
하물며 백천만겁 況物面百千萬劫厓
간단없이 대고통을 間短無是大苦痛乙
그다지 업산너겨 其大之無散乃其
호활불여 행할소냐 毫活不如行割小也
가령인생 내인사를 可怜人生我人事乙
칭찬한달 무어하며 稱讚恨達無於何面
회방한달 시기하랴 悔謗恨達時氣何也
일컬어 고락을 稱耳苦樂乙
팔풍애 일위여도 八風厓一謂汝刀
바람같안 인간사를 風岩如坦人間事乙
알은체 바이말고 知建體婆而末古
여농 여맹하야 如聾如盲何也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인사불성 부대되어 人事不成夫大道如
아미타불 어서하자 阿邇陀佛於西何自
우리부처 대성존이 于耳佛體大聖尊而
거짓말로 쇠기시랴 去之末奴欺其是也
비방심 먹지말고 誹謗心饋之末古
이만인생 되얏을제 耳萬人生道也悉除
극락국 연화대를 極樂國蓮花臺乙
손바닥에서 결단하자 自掌中厓決斷何自
나무아미타불 南無阿邇陀佛
이봐세상 호걸들 立我世上毫傑野羅
이고득락 하올법을 離苦得樂何吾乙法乙
사십구년 설법중애 四十九年說法中厓
가초가초 뵈였건만은 可抄可抄見餘建萬隱
오탁악세 말법중애 五濁惡世末法中厓
행득인신 되었으니 幸得人身道也産耳
죄상이 중한지라 罪上耳重恨之羅
육도만행 쓸데없어 六道萬行悉大業西
제법문을 맹기시니 諸法門乙孟器是耳
염불하야 극락감은 念佛何也極樂可文
말세라사 유익한줄 末世羅事有益恨珠乙
변지상애 관찰하리 邊地上厓觀察何耳
문수보현 대보살과 文殊普賢大菩薩果
삽삼조사 역대성현 揷三祖師歷代聖賢
차차로 봉지하사 次次奴奉持何事
지금까지 유통하니 至今可至流通何耳
우리같안 죄악범부 于耳可歎罪惡凡夫
염불말고 어찌알꼬 念佛末古何之謁古
도리천 제석님도 忉利天帝繹主道
천상인군 되었을제 天上人君道也悉除
칠보궁전 조흔집애 七寶宮殿好隱家厓
천상락을 수하다가 天上樂乙受何多可
천상복이 진해지면 天上福而盡內之面
생전죄로 떨어져서 生前罪奴落於底西
지옥도애 든다하니 地獄道厓入多恨耳
인간애 약간호걸 人間厓若干毫傑
하물며 믿을소냐 下物面美達孫也
염불은 염치없어 念佛隱廉恥業西
일생애 말잡고 소잡은 一生厓馬執古牛執隱
도수장이 지악인도 屠牛場耳至惡人道
임종애 염불하야 臨終厓念佛何也
지옥보를 소멸하고 地獄報乙消滅何古
극락으로 바로가리 極樂矣奴所奴去而
일념으로 염불을 一念無奴念佛乙
시방세계 항사불이 十方世界恒沙佛而
한가지로 찬탄하고 同可之奴讚歎何古
역대성현 봉지로다 歷代聖賢奉持奴多
아미타불 염불법은 阿邇陀佛念佛法隱
온갖일에 걸림없어 溫可事厓碍臨業西
승속남녀 물론하고 僧俗男女勿論何古
유식무식 귀천간애 有識無識貴賤間厓
소업을 폐치말고 所業乙購治末古
농부거던 농사하며 農夫去加農事何面
노난입애 아미타불 遊難口厓阿邇陀佛
직녀거던 길삼하며 織女去加績三何面
노난입애 아미타불 遊難口厓阿邇陀佛
금생애 이타하고 今生厓利他何古
행주좌와 이어하면 行住座臥耳於何面
후생극락 어려울까 後生極樂難乙可
많은즉 육자염불 多隱則六字念佛
적은즉 사자염불 小隱卽四子念佛
행주좌와 어묵간애 行住坐臥語黙間厓
고성이나 은념이나 高聲以那隱念以那
대소간 육자사자 염불을 大小間六子四子念佛乙
근력대로 염불해도 懃力大奴念佛何刀
슬픈것은 아미타불 悲惑去隱阿邇陀佛
조흔이도 아미타불 好隱耳刀阿邇陀佛
노난입애 잡담말고 遊難口厓雜談末古
아미타불 말벗삼아 阿邇陀佛言友三我
염염애 아미타불 念念厓阿邇陀佛
시시애 아미타불 時時厓阿邇陀佛
처처애 아미타불 處處厓阿邇陀佛
사사애 아미타불 事事厓阿邇陀佛
일생애 이러하면 壹生厓壹練何面
극락가기 어려온가 極樂去其難奴溫可
하루살이 작은벌레 一日殺而小隱虫耳
천리말을 붙잡으면 千里馬乙挾者吾面
천리가기 어렵잖고 千里去其難吾殘古
금석이 중하야도 金石耳重何也道
광대선애 실어두면 廣大船厓載於斗面
만경창파 깊은물에 萬頃滄波深隱水厓
순신간에 건너가리 順息間厓濟乃去耳
우리같안 죄악인도 于以如歎罪惡人道
아미타불 염불덕애 阿邇陀佛念佛德厓
석가여래 대비선을 繹迦如來大悲船乙
배삯없이 얻어타고 船價無是得加乘古
염불삼매 법해수애 念佛三昧法海水厓
언저시 저어내여 言這是這於內女
방편돛대 높이달고 方便楫大高被達古
정진노를 가져잡고 精進勞乙具持執古
제대성현 인접길애 諸大聖賢引接路
아미타불 옥호광을 阿邇陀佛玉毫光乙
훤출이 비치시고 還出耳照治是古
사십팔원 대원풍을 四十八願大願風乙
태허공애 빗겨뵈니 太虛空厓非戒見耳
십만억 국토밖을 十萬億國土外乙
경각간애 왕생하리 頃刻間厓往生何而
이아니 염불선이 而安耳念佛船耳
만선중애 상선이라 萬船中厓上船耳羅
그아니 장할소냐 其安耳長割孫也
이보세상 어르신네 耳寶世上長老信來
우리도 이맘저맘 다버리 于耳道其心這心多婆而古
신심으로 염불하야 信心矣奴念佛何也
선망부모 천도하고 先亡父母薦道何古
일체중생 제도하야 一切衆生濟渡何也
세상사 다버리고 世上事多婆而古
연화선을 얻어타고 蓮花船乙得加乘古
극락으로 어서가자 極樂矣奴於書去自
극락세계 좋단말을 極樂世界好歎言乙
승속남녀 다알거늘 僧俗男女多知去乙
어서어서 저극락애 於西練西底極樂
속히속히 수이가자 速耳速耳受耳可自
나무아미 타불성불 南無阿邇陀佛成佛
발 문
이상은 왕사 보제존자가 사방으로 돌아다닐 때 일상의 행동을 한마디, 한 구절 모두 그 시자가 모아 ‘나옹화상 어록“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 제자 유곡(幽谷)․굉각(宏覺) 등이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세상에 간행하려고 내게 그 서문을 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서문이란 유래를 쓰는 것인데, 그 유래를 모르고 서문을 쓰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오. 장님이 길을 인도하거나 귀머거리가 곡조를 고른다면 그것이 될 일이겠는가. 나는 그것이 안되는 일인 줄 알 뿐 아니라, 더구나 백담암(白淡庵)의 서문에서 남김없이 말했는데 거기 덧붙일 것이 무엇 있는가.“
그랬더니 그들은“그렇다면 발문(跋文)을 써 주시오” 하면서 재삼 간청하므로 부득이 쓰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넓은 그릇과 맑은 뜻을 엿볼 수 없거늘, 어떻게 그것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듣건대, 부처는 깨달음[覺]을 말하고 그 깨달음으로 중생을 깨우치며 자비로써 교화한다 하니, 그것은 우리 유교로 말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에 깨달을 사람을 깨닫게 하고 인서(仁恕)로 교(敎)를 삼는 것이니, 그것이 같은가 다른가.
우리 군자[先儒]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방에 큰 성인이 있으니 천하를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으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는데, 탕탕하여 아무도 그것을 무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도는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유불(儒佛)이 서로 비방한다‘고 한다.그러나 나는 서로 비방하는 것이 그름을 안다.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요,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만 극치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이 서로 맞서 비방할 뿐이요, 중니(仲尼)와 모니(牟尼)는 오직 한 덩어리의 화기(和氣)인 것이다.
이제 이 어록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믿을 수 있으니, 언제나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닦아 임금을 축수하고 나라를 복되게 함으로써 규범을 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임금은 이 분을 존경하여 스승으로 삼았으니 이 어록을 간행하여 세상을 깨우침이 마땅할 것이다.
해제(解題)
나옹 혜근(懶翁惠勤)스님의 어록을 ‘나옹화상어록(懶翁和尙語錄)”이라 한다. 이 어록에 실려 있는 스님의 행장과 탑명에 의하면, 스님은 영해부(寧海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牙)씨이고, 아버지는 선관령(膳官令:궁중의 음식을 관리하는 직책)을 지냈다.
스님의 나이 스무 살 때(1340년) 친구의 죽음을 보고 생에 의문을 가져서 공덕산(功德山) 요연(了然)스님께 출가하였다. 이후 회암사(檜巖寺)로 가서(1344년) 밤낮으로 수도하던 중 크게 깨치고 1348년 중국으로 가서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화상(指空和尙)을 친견하고 한 해를 머물렀다(다른 기록에 의하면 스님은 8살 때, 당시 고려에 왔던 지공스님에게서 보살계를 받았으며, 그 보살계첩이 지금도 전한다). 그 다음해에는 휴휴암(休休艤)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그 후 평산 처림(平山處林:임제종 양기파)스님에게서 불법을 이어받고 강남(江南) 등지를 행각하였다. 다시 지공스님을 찾아뵙고서 그에게서 선지(禪旨)를 전해 받았다. 이때 법의(法衣), 불자(拂子), 범어(梵語)로 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이후 광제선사(廣濟禪寺)에서 개당설법을 하였고(1356년), 다시 지공스님을 뵌 후 고려로 돌아왔다(1358년), 10여 년만의 귀국이었다.
내원당에서 심요법문을 한 후 신광사(神光寺)에 주지로 있었다(1361년). 그 후 구월산(九月山)과 금강산(金剛山)에 계셨으며, 청평사에 계실 때(1367년) 지공스님이 보낸 가사와 편지를 받았고, 4년 후 회암사에서 지공스님의 사리를 친견했다.
1370년 스님이 51살 때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서 공부선(功夫選)을 주관하였다. 여기에서는 선과 교를 총망라하여 시험을 보았으나 오직 환암 혼수(幻庵混修)만이 스님의 인정을 받았다. 이때 당시의 국사이며 화엄종의 대종사인 설산(雪山:千熙)스님을 방석으로 때린 사건이 이 어록에 실려 있다. 이듬해 8월 왕사(王師)로 봉숭되어 금란가사와 법복 및 바루를 하사받았다. 그 후 4년간은 병란에 불타버린 회암사 중창에 전력하였다.
그동안에 공민왕이 돌아가시고 우왕이 즉위하여 다시 왕사로 추대되었으나 회암사를 낙성한 직후에 중앙 대간(臺¡)들의 압력으로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그 처소를 옮겨가던중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하시니(1376년 5월 15일) 세수는 57세이고 법랍은 38세이다.
스님은 자기의 죽음을 스스로 ‘열반불사(¿槃佛事)‘라고 하였는데, 스님의 열반 후 10여 년 이내에 신륵사 이외에도 금강산, 치악산, 소백산, 사불산, 용문산, 구룡산, 묘향산 등 7개 소에 이색(李穡)이 찬한 탑비가 세워졌고, 또 원주 영전사(令傳寺)에도 탑비가 세워졌다.
스님의 어록은 ‘어록(語錄)‘과 ‘가송(歌頌)’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시자 각련(覺璉)이 수집한 어록에는 상당법어 29칙, 짧은 글 25칙, 이색이 찬한 탑명과 문인 각굉(覺宏)이 쓴 행장이 실려 있다.
이 상당법문의 형식상 특색은 첫째 특별한 구분의 기준 없이 스님이 중국 광제선사에서 개당한 때의 법문을 시작으로 하여 스님의 행장과 거의 비슷한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법문에 대해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상당법문에는 공민왕과 그 왕비인 승의공주에 대한 수륙재(水陸齋)에서 행한 법문을 비롯하여 영가를 위한 법문이 특히 많다. 그리고 대어(對語) 6칙, 감변(勘辨) 3칙, 착어(着語) 1칙은 무척 특색있는 법문이다.
법문의 내용은 주로 간절하게 화두를 참구할 것을 말하였다. 즉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는 먼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해야 하며, 하루 종일 화두를 들어서 마침내 저절로 의심이 일어나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없어지지 않는 지경이 되어 크게 깨침에 가까웠다고 한다. 특히 화두공부를 점검하는 10가지를 모아서 ‘공부10절목(工夫十節目)‘이라 하였다. 또 법문을 하면서 주장자, 죽비, 불자, 할 등을 사용하였고, 영가에 대한 법문에서는 주장자 대신에 죽비를 사용하였다.
시자 각뢰(覺雷)가 편집한 가송(歌頌)에는 완주가(翫珠歌) 60구, 백납가(百歌) 40구, 고루가(奇歌) 52구의 노래 세 수[三種]를 비롯하여 게송, 찬(讚), 발원문, 405구의 장편 가사인 승원가(僧元歌) 그리고 스님의 ‘노래 세 수‘에 대해 이색이 쓴 후기가 함께 실려 있다.
게송은 단순히 풍경을 읊은 것을 비롯하여 계명(戒銘:이름을 지어주면서 그 이름을 풀이하여 지어주는 글), 여러 선인(禪人)을 떠나보내며 당부하는 것, 게송을 청하기에 주는 것, 임금의 덕을 칭송한 것, 옛사람의 송(頌)에 답한 것, 세상을 경계한 것, 제(題)한 것 등 여러가지를 모은 것이다. 승원가에서는 아미타불을 염불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누이동생에게 준 글 등에서도 아미타불을 염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법장(法藏)비구가 스님의 삼종게를 계승하여 보다 장편으로 발전시킨 백납가 200구, 고루가 144구, 영주가 300도 실려 있다.
이렇게 수집된 어록은 환암 혼수가 교정을 하고 문인인 각우(覺, 또는 覺), 각변(覺卞), 각연(覺然), 유곡(○○), 굉각(宏覺) 등이 힘을 모아 간행하였다.
그런데 이색의 서문에 의하면 “옛 본을 교정하여 출판하려고 내게 서문을 청한다”고 하였고, 백문보(白文¿)의 서문은 지정(至正) 23년(1363)에 씌어졌다. 이때는 스님께서 신광사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볼 때 스님께서 신광사에 거주하던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서 스님의 어록이 한 번 편집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이색에 의해 ‘옛 본‘이라 한 것인 듯하다. 결국 스님의 어록은 두 번 편집된 것으로 그 처음은 중국에서 돌아온 얼마 후에 있었고, 다음은 열반하신 후의 것으로 지금 전하는 것은 이것이다.
27. 휴휴암(休休庵) 주인의 좌선문(坐禪文)*
^휴휴암은 나옹화상이 강남(江南)에 가서 행각할 때 여름결제를 한 철 보낸 곳이다.
좌선하는 이는 지극한 선(善)에 도달하여 저절로 또렷또렷해야 한다. 생각들을 완전히 끊어버리되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욕심 속에 있으나 욕심이 없고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을 떠난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에서는 함부로 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함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고, 집착없이 항상한 빛이 나타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밖으로는 흔들려도 움직이지 않고 안으로는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음을 좌(坐)라 하고 빛을 돌이켜 되비추고 법의 근원을 철저히 깨치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좋고 나쁜 경계에 뇌란하지 않고 빛과 소리에 끄달리지 않음을 좌(坐)라 하고, 일월보다 밝게 어둠을 밝히고 천지보다 큰 힘으로 중생을 교화함을 선(禪)이라 한다. 차별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정(定)에 드는 것을 좌(坐)라 하고,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지(枕別智)를 가짐을 선(禪)이라 한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불꽃같이 작용하나 본체는 여여하고 종횡으로 오묘하나 일마다 거리낌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한다. 간략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상세히 말하자면 글로써는 다하지 못한다.
나가대정(那伽大定:부처님의 선정)은 동정(動靜)이 없고 진여의 묘한 바탕은 생멸이 없어서, 바라보지만 볼 수 없고 귀기울이지만 들을 수 없으며 텅 비었지만 빈 것이 아니며 있으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다. 크기로는 바깥 없을 정도로 큰 것을 감싸고 작기로는 안이 없을 정도로 작은 데에도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는 그 광명이 무량하고 대기(大機)와 대용(大用)은 무궁무진하다. 뜻 있는 사람은 잘 참구하되 정신을 바짝차려 확철대오하겠다는 마음으로 입문하여 와! 하는 한마디가 터진 뒤에는 수많은 신령함이 모두 본래 구족하리라. 이 어찌 마군이와 외도들이 스승 제자 되어 전수하는 것과 같겠으며, 유소득심으로 궁극의 경계를 삼는 것과 같겠느냐!
차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退翁性徹 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4
해제(解題)7
․보제존자어록 서․ 李穡 15
․서․ 白文¿ 17
․탑명․ 李穡 21
․행장․ 覺宏 31
1. 어 록․ 覺璉
1. 상당법어…59
2. 짧은 글…127
2. 게 송․ 覺雷
1. 노래[歌]․3수…171
2. 송(頌)…185
․발문․ 李達衷 303
․보제존자 삼종가․ 法藏 305
․나옹화상 승원가․ 懶翁 345
[附錄] 懶翁集五臺山 月精寺藏版
^宗衆
休休庵主坐禪文朝鮮佛敎通史 下
일러두기
 ̄1. 편집체제는 부록으로 실은 오대산 월정사판 “나옹집”을 따랐다.
2. ‘나옹화상 승원가‘의 원문은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書)에 있는 것을 싣고, “한국불교가사전집”(이상보 편저, 1980. 9, 집문당)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3. 문단의 단락은 원문에 따르되 어록은 상당법어와 짧은 글로 나누고 일련번호는 편집과정에서 달았다.
4. 부록으로 실은 원문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1940년에 발행한 ‘나옹집(懶翁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