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 총서 에서>
해제(解題)
조주 종심(趙州從諗:778~897, 全諗이라고도 함)스님은 조주(曹州)의 학향(郝鄕, 혹은 靑丘 緇丘人이라고도 함) 출신으로 속성은 학(郝)씨이다.
스님은 어린 나이에 고향의 호국원(護國院, 조당집에는 龍光寺라고 함)으로 출가하여 경과 율을 익히지 않고 곧바로 참선을 하였다. 그러다가 은사스님을 따라 지양(池陽)에서 남전 보원(南泉普願:748~835)스님을 참례하고 입실하였다. 그 후 남전스님이 입적하기까지 40여 년을 시봉하였다.
스님이 남전스님에게서 깨달은 인연에 대해서는 어록의 처음에 실려 있는데, 그 시기는 스님의 나이 20세 전후인 듯하다. 그리고는 곧 이어 제방의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고 그 도행을 널리 익힌 것으로 보인다. 어록 가운데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90년 전, 마조대사 문하에서 80여 선지식을 친견하였는데….”
남전스님이 입적하신 후 스님의 나이 60이 되어 제방에 행각을 나섰는데, 이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일곱 살 먹은 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스님이 행각하면서 문답했던 선지식으로서 이 어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스님들은 마조, 백장, 약산, 도오, 위산, 임제, 대자, 동관, 운거, 투자, 수유, 보화, 동산, 낙포, 설봉, 한산, 습득, 풍간 등 대략 20여 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임제스님과의 인연은 특이하다. 즉 두 분 스님은 출생한 곳도 같은 조주(曹州)이면서 훗날 교화를 펴신 지역도 같은 진주(鎭州)이다.
스님의 나이 80이 되어 행각을 그만두고 고향 근방의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서 청빈하게 살았다. 어록에 의하면 스님께서 처음 세속에 나왔을 때에 두행군(竇行軍)이라는 신도가 스님께 절을 지어드리고서 진제선원(眞際禪院) 또는 두씨네 동산[竇家園]이라고 하였다 한다. 스님께서는 관음원에 주석하신 이후 오랫동안 이곳에 살면서 납자들을 지도하다가 120살에 입적하셨다.
스님의 입적 연대에 대하여 어록의 행장(行狀)에서는 무자년(戊子年, 868년 또는 928년) 11월 10일에 단엄히 앉은 채로 입적하셨다고 하였지만, 일반적으로는 「전등록(傳燈錄)」의 기록에 따라서 당(唐) 건녕(建寧) 4년(897) 11월 2일, 세수 120에 오른쪽으로 누워서 입적하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주스님의 행장이나 어록 등을 전하는 것으로는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제13권, 제14권 이외에도 「조당집(祖堂集)」 제18권, 「전등록(傳燈錄)」 제10권, 「연등회요(聯燈會要)」 제6권, 「오등회원(五燈會元)」 제4권, 「송고승전(宋高僧傳)」 제11권 등이 있다.
그런데 「고존숙어록」 속의 기록에 의하면, 조주스님의 어록이 처음 정리된 것은 후당(後唐) 보대(保大) 11년(953)이다. 또한 「고존숙어록」에서 물물대관(物物大觀)이 쓴 중간(重刊) 서(序)에 의하면, 위색장주(渭賾藏主)가 이것을 중간하면서 조주스님 등 20여 스님에 대한 기연을 따로 수집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두 48권 중에서 조주스님에 관한 것은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3권은 ‘조주진제선사어록 및 행장 권상(趙州眞際禪師語錄幷行狀卷上)’이라 제목하였고, 제14권은 ‘조주진제선사어록지여(趙州眞際禪師語錄之餘)’라 하여 그 나머지를 싣고 있다. 제14권의 끝에 있는 게송 중 십이시가(十二時歌) 이외의 4수는 조주스님이 지은 것이지만 나머지 2수는 그 내용으로 볼 때 스님이 지은 것은 아니지만 스님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중간하면서 실은 것 같다.
이 어록에는 약 520여 가지의 기연들을 싣고 있는데, 거의가 일상의 간결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임제스님의 할(喝)이나 덕산스님의 방(棒)에 비견하여 조주스님의 선은 구순피선(口脣皮禪)이라 평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조주스님의 무(無)자 공안은 종문의 제1공안처럼 보편화되어 있다. 또 ‘뜰 앞의 잣나무’, ‘청주의 베옷’, ‘진주의 큰 무우’ 등의 공안도 조주스님의 인연에서 채택되었다. 「벽암록(碧巖錄)」 100칙 가운데서 조주스님의 인연에 관한 공안이 12칙이나 된다. 설봉스님이 조주스님을 가리켜 “고불 고불(古佛古佛)”이라 한 면목을 드러내는 것 같다.
또 이 어록에는 신라스님과의 대화나 당말(唐末) 신라(新羅) 사람들이 중국 산동반도에 세운 절인 신라원(新羅院)을 방문한 기록도 보인다.
차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退翁 性徹 /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 /4
해제(解題) /7
조주록上
1. 행 장… 19
2. 상 당… 29
1.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 …29
2. 남전스님과의 여러 인연들 …30
3. 뜰 앞의 잣나무 …34
4. 일생동안 총림을 떠나지 않고 …37
5. 조주의 주인공 …38
6. 조주의 한마디 …43
7. 진정한 선사는 만나기 어렵다 …47
8. 다가오는대로 비춰주는 구슬같이 …51
9. 본분사(本分事)로써 지도한다 …52
10. 용녀가 구슬을 바치다 …54
11. 조주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55
12. 이조가 골수를 얻었다는데 …56
13.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은데 …59
14. 불생불멸의 도리 …60
15. 생사를 벗어나는 길 …61
16. 사람 얻기 어렵다 …62
17. 금강선(金剛禪)을 버려라 …62
18. 부처님 머리 위에 눌러앉아서 …63
19. 큰 도는 눈앞에 있다 …64
20. 제3생의 원수 …66
21. 저절로 된 일 …67
22. 하나의 도인 찾기 힘들다 …67
23. 부처 불(佛)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68
24. 각자의 선과 도 …69
25. 생각하는 그 자는 누구냐 …69
26. 제1구의 도리 …70
27. 긴 한숨으로 대답하다 …70
28.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71
29. 청주의 베옷은 일곱 근이다 …73
조주록下
1. 상 당(나머지 말)
1. 금부처는 용광로를 지나지 못한다 …99
2. 조주의 돌다리 …120
3. 큰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123
4. 시비가 있기만 하면 본마음을 잃는다고 하니 …125
5. 조주스님의 가풍 …136
6. 경전의 뜻과 조사의 뜻 …141
7. 앉은 채로 왕을 맞이하다 …148
8. 조주의 관문 …149
9. 설봉스님에게 괭이를 갖다 주어라 …151
10. 경론도 불법은 아니다 …152
11. 차를 마셔라 …156
2. 게 송
1. 십이시가(十二時歌) …181
2. 탑(塔)불사를 보고 노래함 …188
3. 제방의 견해가 분분함을 보고 노래함 …189
4. 어고(魚鼓)를 노래함 …190
5. 연꽃을 노래함 …191
6. 조왕(趙王)이 바친 스님의 진찬(眞贊)에 부침 …192
7. 조주스님을 곡함(2수) …193
[附錄] 古尊宿語錄卷第十三
趙州眞際禪師語錄幷行狀卷上
古尊宿語錄卷第十四
趙州眞際禪師語錄之餘
일러두기
1. 조주록의 편집체제는 임제록을 기준으로 하여 상권은 행장과 상당으로 하권은 상당과 게송으로 나누었다.
2. 문단은 원본에 따라 나누고 각각의 제목은 중심내용이나 기연에 따라 붙였다.
3. 부록의 원문은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제13과 14를 실었다.
4. 스님들의 생몰 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店, 1979)과 「중국불학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 方舟出版社)을 참고하였다.
조주록 上
1. 행장
스님은 남전(南泉:748~835)스님의 문도이다. 속성은 학(郝)씨이며, 본시 조주(曹州) 학향(郝鄕) 사람으로 법명은 종심(從諗)이다. 진부(鎭府)에 있는 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스님께서는 칠백 갑자*나 살았다! 무종(武宗)의 폐불법란(廢佛法難:842~845)이 있자, 저래산(岨崍山)으로 피신하여 나무 열매를 먹고 풀옷을 입으면서도 승려로서의 위의(威儀)를 바꾸지 않으셨다.”
스님께서 처음 은사스님을 따라 행각하다가 남전스님 회하에 이르렀다. 은사스님이 먼저 인사를 드리고 나서 스님(조주)이 인사를 드렸는데, 남전스님은 그때 방장실에 누워 있다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불쑥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瑞像]은 보았느냐?”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누워 계신 여래를 보옵니다.”
남전스님은 이에 벌떡 일어나 물었다.
“너는 주인 있는 사미냐, 주인 없는 사미냐?”
“주인 있는 사미입니다.”
“누가 너의 주인이냐?”
“정월이라 아직도 날씨가 차갑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는 기거하심에 존체 만복하소서.”
남전스님은 이에 유나(維那)를 불러 말씀하셨다.
“이 사미에게는 특별한 곳에 자리를 주도록 하라.”
스님께서는 구족계를 받고 난 다음, 은사스님이 조주(曹州)의 서쪽 호국원(護國院)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으로 돌아가 은사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이 도착하자 은사스님은 사람을 시켜서 학씨에게 알렸다.
“귀댁의 자제가 행각길에서 돌아왔습니다.”
학씨 집안 친척들은 몹시 기뻐하며 다음날을 기다렸다가 함께 보러 가기로 하였다. 스님께서는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속세의 티끌과 애정의 그물은 다할 날이 없다. 이미 양친을 하직하고 출가하였는데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리고는 그날 밤으로 짐을 챙겨 행각에 나섰다.
그 후 물병과 석장을 지니고 제방을 두루 다니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스님께서는 나이 80이 되어서야 조주성(趙州城) 동쪽 관음원(觀音院)에 머무셨는데, 돌다리[石橋]에서 10리 정도 되는 곳이었다. 그때부터 주지살이를 하셨는데, 궁한 살림에도 옛사람의 뜻을 본받아 승당에는 전가(前架:승당 앞에 설치된 좌선하는 자리)나 후가(後架:승당 뒤쪽에 설치된 세면장 등)도 없었고, 겨우 공양을 마련해 먹을 정도였다. 선상은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노끈으로 묶어 두었는데,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려 하면 그때마다 허락치 않으셨다. 40년 주지하는 동안에 편지 한 통을 시주에게 보낸 일이 없었다.
한번은 남방에서 한 스님이 와서 설봉(雪峰:822~908)스님과 있었던 일을 거론하였다.
“제가 설봉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태고적 개울에 찬 샘이 솟을 때는 어떻습니까?’
설봉스님이 말하였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아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마시는 이는 어떻습니까?’
‘입으로 들이마시지 않는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셨다.
“입으로 들이마시지 않으면 콧구멍으로 들이마시겠군.”
그 스님이 스님(조주)께 물었다.
“태고적 개울에 찬 샘이 솟을 때는 어떻습니까?”
“쓰다[苦].”
“마시는 이는 어떻습니까?”
“죽는다.”
설봉스님은 스님의 이 말을 듣고 찬탄하였다.
“옛 부처님이시다, 옛 부처님이시다!”
설봉스님은 이런 일이 있은 뒤로 학인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뒤로 한번은 하북(河北)의 연왕(燕王)이 군사를 이끌고 진부(鎭府)를 점령하기 위하여 경계까지 이르렀는데, 기상(氣象)을 보는 사람이 아뢰었다.
“조주 땅은 성인이 사는 곳이라 싸우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연왕과 조왕(趙王)은 연회를 베풀고 싸우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연왕이 물었다.
“조나라에 훌륭한 분이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화엄경을 강의하는 대사님이 계시는데, 절개와 수행이 높으십니다. 만약 그 해에 큰 가뭄이 들어 모두 오대산에 가서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면, 대사께서 돌아오기도 전에 감로 같은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이에 연왕은 말하였다.
“그다지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또 한 사람이 말하였다.
“여기서 120리를 가면 조주 관음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선사(禪師) 한 분이 계시는데 나이와 승랍이 높고 도를 보는 안목이 밝습니다.”
그러자 모두 말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상서로운 징조가 아니겠는가.”
두 왕이 수레를 풀고 이미 절 안에 이르렀는데, 스님께서는 똑바로 앉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셨다. 연왕이 물었다.
“인왕(人王)이 높습니까, 법왕(法王)이 높습니까?”
“인왕이라면 인왕 가운데서 높고, 법왕이라면 법왕 가운데서 높습니다.”
연왕은 그렇다고 하였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물으셨다.
“어느 분이 진부(鎭府)의 대왕입니까?”
조왕이 대답하였다.
“저올시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은 그저 산야에서 남루하게 지내다 보니, 미처 찾아뵙지도 못했습니다.”
잠시 후 주위사람이 대왕을 위하여 설법을 청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주위사람이 많은데 어찌 노승더러 설법하라고 하십니까?”
이에 주위사람에게 명하여 스님 주변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문원(文遠)이라는 사미가 있다가 큰소리로 말하였다.
“대왕께 아룁니다. 그 주위사람이 아닙니다.”
그러자 대왕이 물었다.
“어떤 주위사람 말입니까?”
“대왕에게는 존호(尊號)가 많아서 스님께서는 그 때문에 설법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왕이 말하였다.
“선사께서는 이름 따위는 개의치 마시고 설법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아십시오. 과거세의 권속은 모두가 원수입니다. 우리 부처님 세존의 명호는 한 번만 불러도 죄가 소멸하고 복이 생기는데, 대왕의 선조들은 사람들이 이름을 입에 담기만 해도 금방 성을 냅니다.”
스님은 자비롭게도 지치는 줄 모르고 많은 설법을 하셨다. 그때 두 대왕은 머리를 조아리고 찬탄하며 존경해 마지않았다.
다음날 두 왕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연왕 휘하의 선봉장이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임금에게 오만하게 대하였음을 힐책하기 위하여 새벽에 절 안으로 들어왔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듣고 나가서 영접하니 선봉장이 물었다.
“어제는 두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어째서 제가 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맞아 주십니까?”
“그대[都衙]가 대왕만 같다면 노승도 일어나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오.”
선봉장은 이 말을 듣고 스님께 두 번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뒤 조왕은 사신을 보내 스님을 모시고 공양 올리고자 하였다. 스님께서 성문에 다다르자 온 성안이 모두 예의를 갖추고 영접하였다. 스님께서 성안에 들어와 보배수레에서 내리자마자, 왕은 절을 올리고 스님께 전각[殿]의 가운데 자리에 앉으시라고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이마에 손을 대고 내다보면서 말하였다.
“계단 아래 서 있는 이들은 무슨 관청의 책임자입니까?”
주위사람들이 말하였다.
“여러 절의 노스님들과 대사 대덕들입니다.”
“저 분들도 각기 한 지방을 맡아 가르침을 펴는 분들인데, 그 분들이 계단 아래 서 있다면 노승도 일어나겠습니다.”
그러자 왕은 모두 전각 위로 오르도록 하였다.
이 날 법회[齋宴]가 끝나려고 할 때, 승려든 관원이든 위로부터 아래까지 차례차례 한 사람이 질문 하나씩을 하도록 하였다.
한 사람이 불법에 대해 묻자 스님께서는 멀리 바라보면서 물었다.
“무얼 하는건가?”
“불법을 묻고 있습니다.”
“노승이 이미 여기에 앉아 있는데, 어디에 무슨 법을 묻는건가? 두 부처님은 함께 교화하지 않는 법이오.”*
왕은 여기서 그만두도록 하였다. 그때 왕비[王后]가 왕과 함께 곁에서 스님을 모시고 서 있다가 여쭈었다.
“선사께서는 대왕을 위하여 마정수기(摩頂授記:부처님께서 수기하시면서 제자의 이마를 만져주심)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손으로 대왕의 이마를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노승만큼 장수하소서.”
이때 스님을 임시로 가까운 절에 계시도록 하고, 날짜와 장소를 택하여 선원을 세우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스님께서는 사람을 시켜 대왕에게 알렸다.
“만약 풀 한 포기라도 건드리면 노승은 다시 조주로 돌아갈 것이오.”
그때 두행군(竇行軍)이란 사람이 과수원 한 곳을 희사하였다. 그곳은 일만 오천 관의 값이 나가는 땅이었는데, ‘진제선원(眞際禪院)’ 또는 ‘두씨네 동산[竇家園]’이라고 불렀다.
스님께서 그 절에 들어오시자 바다 같은 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때 조왕은 예의를 다하여 연왕이 유주(幽州)에서 조정에 아뢰어 받은 금란가사[命服]를 바쳤으며, 진부(鎭府)에서는 위의를 갖추어 이를 영접하였다. 스님께서는 굳이 사양하며 받지 않으시니, 곁엣 사람들이 상자를 스님 앞에 옮겨 놓으면서 말하였다.
“대왕께서는 선사님의 불법을 위하시기 때문이니, 이 옷을 꼭 입으시기 바라십니다.”
“노승은 불법을 위하기 때문에 이 옷을 입지 않습니다.”
곁에서 말하였다.
“그렇지만 대왕의 체면을 보아 주십시오.”
“그게 속관(俗官)에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마침내 대왕이 몸소 옷을 들어 스님 몸 위에 걸쳐드리면서 두번 세번 절하고 축복해 드리자, 스님께서는 그저 받기만 할 뿐이었다.
스님께서는 조주(趙州)에 2년을 살았는데*, 세연을 마치려 하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태워버리되 사리를 골라 거둘 것 없다. 종사의 제자는 세속 사람들과는 다르다. 더군다나 몸뚱이는 허깨비니, 무슨 사리가 생기겠느냐. 이런 일은 가당치 않다.”
스님께서는 제자를 시켜 불자(拂子)를 조왕에게 보내면서 말을 전하였다.
“이것은 노승이 일생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한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무자(戊子)년 11월 10일에 단정히 앉은 채로 임종하셨다. 그때 두씨네 동산에는 승속의 수레를 끄는 말과 수많은 사람의 슬피우는 소리로 천지가 진동하였다. 이리하여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는데, 비탄의 눈물은 쿠시나가라(부처님이 열반하신 곳)에서 황금관(棺)이 빛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높다란 안탑(鴈塔)*을 세우고 특별히 커다란 비석을 세웠는데, 「진제선사광조지탑(眞際禪師光祖之塔)」이라 시호하였다.
후당 보대(保大) 11년(953) 4월 13일에 한 학인이 동도(東都) 동원(東院)의 혜통(惠通)선사께 옛스승 조주스님께서 교화하신 유적을 찾아 묻고는 절하고 물러나오자, 이에 붓을 주어 기록토록 하였다.
2. 상당
1.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무엇이 도입니까?”
“평상시의 마음이 도이다.”
“그래도 닦아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고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을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느냐?”
스님께서는 이 말끝에 깊은 뜻을 단박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
2. 남전스님과의 여러 인연들
남전스님께서 상당하시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밝습니까, 어둡습니까?”
남전스님께서 곧 방장실로 돌아가버리자 스님께서는 법당에서 내려와 말씀하셨다.
“이 노장이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못했다.”
그러자 수좌가 말했다.
“노스님의 대답이 없었다고 하지 말게. 자네가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니.”
스님께서는 대뜸 후려갈기면서 말씀하셨다.
“이 몽둥이는 정작 당두 늙은이가 맞아야 하는 거지만….”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불법이)있음을 아는 이는 어디로 갑니까?”
“산 밑 시주 집에 한 마리 물소가 되는 거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 삼경에 달이 창을 비췄다.”
스님께서 남전스님 회하에서 노두(爐頭)를 맡았다. 대중이 운력으로 채소를 다듬고 있는데, 스님이 승당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불이야!”
대중이 한꺼번에 승당 앞으로 달려가자, 스님께서는 승당 문을 잠가버렸다. 대중이 어쩔 줄을 몰랐는데 남전스님께서 승당 창으로 열쇠를 던져 넣자 스님께서는 곧 문을 열었다.
스님께서 남전스님 회하에 있을 때였다. 우물 누각에 올라가 물을 푸다가 남전스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기둥을 끌어안고 다리를 매단 채 소리질렀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남전스님이 사다리를 오르면서 말씀하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스님께서는 잠시 후 다시 가서 사례를 드렸다.
“아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전스님 회상의 동당과 서당의 수좌가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는데, 남전스님께서 승당으로 들어와서 고양이를 치켜들면서 말씀하셨다.
“말을 한다면 베지 않겠지만, 말하지 못한다면 베어버리겠다.”
대중이 말을 하였으나 아무도 남전스님의 뜻을 계합하지 못하자 당장에 고양이를 베어버렸다.
스님께서 늦게야 밖에서 돌아와 인사드리러 가니 남전스님께서는 앞의 이야기를 다 말해 주고 물으셨다.
“그대 같으면 고양이를 어떻게 살리겠느냐?”
그러자 스님께서 신발 한 짝을 머리에 이고 나가버리니 남전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다른 것[異]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같은 것[類]입니까?”*
남전스님께서 두 손으로 땅을 짚자 스님께서 발로 밟아 쓰러뜨리고 열반당으로 돌아가 안에서 소리질렀다.
“후회스럽다, 후회스러워!”
남전스님께서 듣고는 사람을 보내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묻게 하니 “더 밟아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하셨다.
남전스님께서 욕실을 지나가다가 욕두(浴頭)가 불 때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물으셨다.
“무얼 하는가?”
“목욕물을 데웁니다.”
“물소가 목욕하도록 부르러 오는 걸 잊지 말게.”
욕두는 “예” 하고 대답했다. 저녁이 되어 욕두가 방장실로 들어오자 남전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 때문에 왔는가?”
“물소께서는 가서 목욕하시기 바랍니다.”
“고삐는 가져 왔는가?”
욕두는 대답이 없었다.
스님께서 문안드리러 오자, 남전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제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자 남전스님께서 물으셨다.
“고삐는 가지고 왔느냐?”
스님께서 앞으로 불쑥 다가가서 남전스님의 코를 틀어쥐고 잡아끌자 남전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기는 하다만, 너무 거칠구나.”
스님께서 남전스님께 물으셨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고서 스님께서는 달리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남전스님께서 문득 방장실로 돌아가버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장이 평상시는 잘 지껄이면서 묻기만 하면 한마디도 못한다.”
시자가 말하였다.
“큰스님께서 대답을 못하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스님께서는 별안간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남전스님께서 갑자기 방장실의 문을 닫아버리고는 빙 둘러 재를 뿌리면서 말씀하셨다.
“말을 할 수 있다면 문을 열겠다.”
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하였으나 모두 남전스님의 뜻에 계합하지 못하자 스님께서는 “아이고, 아이고!” 하셨다.
남전스님께서 문을 열자 스님께서 남전스님에게 물으셨다.
“마음이 부처가 아니며 지혜가 도가 아니라면, 그래도 허물이 있습니까?”
“있다.”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남전스님께서 앞서 했던 말을 그대로 하자 스님께서는 바로 나가버렸다.
3. 뜰 앞의 잣나무
스님께서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무도 분명하여 격을 벗어난 장부라도 여기를 벗어날 수는 없다. 노승이 위산(潙山)에 갔을 때 한 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고 묻자 위산스님은 ‘나에게 의자를 가져다 주게’ 하였다. 종사라면 모름지기 본분의 일로 납자를 지도해야 한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승이 90년 전 마조(馬祖)대사 문하에서 80여 선지식을 친견하였는데, 모두가 솜씨좋은 선지식들로서 가지와 넝쿨 위에 또 가지와 넝쿨을 만드는 지금 사람들과는 달랐다. 성인 가신 지가 오래되어 한 대(代) 한 대가 틀리게 나날이 다르다. 남전스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이류(異類) 가운데서 행(行)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대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요즈음은 주둥이가 노란 어린 것들이 네거리에서 이러쿵저러쿵 법을 설하여 널리 밥을 얻어먹고 절을 받으려 하며, 3백명이고 5백명이고 대중을 모아놓고는 ‘나는 선지식이고 너희는 학인이다’라고 하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정한 가람입니까?”
“두 갈래로 머리 땋아올린 소녀다.”
“누가 그 가람에 사는 사람입니까?”
“두 갈래로 머리 땋아올린 소녀가 아이를 뱄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남전스님을 친견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까?”
“진주(鎭州)에는 큰 무가 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태어나셨습니까?”
스님께서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서쪽하고도 저 서쪽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법에는 별다른 법이 없다는데, 그 법이란 무엇입니까?”
“바깥도 비고 안도 비고, 안팎이 다 비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의 참 법신은 무엇입니까?”
“다시 무엇을 의심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마음자리[心地] 법문입니까?”
“고금의 표준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객 가운데 주인[賓中主]입니까?”
“산승은 색씨에게 묻지 않는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객[主中賓]입니까?”
“노승에게는 장인어른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일체 법이 항상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승은 조상의 휘호(諱號)를 부르지 않는다.”
그 스님이 또 물으려 하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은 그만 대답하겠다.”
4. 일생동안 총림을 떠나지 않고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형제여! 오래 서 있지 말라. 일이 있거든 거론해 볼 것이요, 일이 없거든 자기 자리[衣鉢下]에 앉아 도리를 캐는 것이 좋다. 노승은 행각하면서는 죽 먹고 밥 먹는 두 때만 잡된 마음에 힘을 썼을 뿐 나머지는 별달리 마음을 쓴 곳이 없었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출가란 몹시 먼 일이 될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만물 가운데 무엇이 가장 견고합니까?”
“욕을 하려거든 서로 주둥이가 맞닿을 만큼 해야 하고, 침을 뱉으려거든 너에게서 물이 튈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아침 저녁으로 쉼이 없는 때는 어떻습니까?”
“승려 가운데는 그처럼 세금을 두 번 내는 백성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한마디[一句]입니까?”
“그 한마디만 붙들고 있으면 그대는 늙고 만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만약 한 평생 총림을 떠나지 않고서 5년이고 10년이고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도 그대들을 벙어리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그런 다음에는 부처님도 너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내 목을 베어라.”
5. 조주의 주인공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형제여! 그대들은 바로 제3생의 원수* 안에 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다만 옛날의 행위만을 고칠 뿐, 옛날의 사람은 고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대들이나 나나 스스로 출가하여 이제껏 일 없이 지내왔는데 새삼스럽게 20명, 30명씩 몰려와 선을 묻고 도를 묻는 것이 흡사 내가 그대들에게 선이나 도를 빚지고 있기라도 한 것 같구나. 그대들이 나를 선지식이라고 부른다면, 나도 마찬가지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노승이 말장난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저 옛사람들에게 누를 끼칠까 두려워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그대는 스물 네 시간의 부림을 받지만 나는 스물 네 시간을 부릴 수 있다. 그대는 어느 시간을 묻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주의 주인공입니까?”
스님께서 “이 통테 매는 놈아!” 하고 호통을 치니 학인이 “예” 하고 대답하자, 스님께서는 “통테나 제대로 둘러라”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 본분의 일입니까?”
“나무가 흔들리면 새들이 날아가고 고기가 놀라면 물이 흐려진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바보 같은 사람입니까?”
“내가 그대만 못하다.”
“저는 스님을 이길 도리가 없습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바보가 되었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분별간택함을 꺼려할 뿐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지금 사람들의 병통입니다.”
“이전에 누가 나한테 물었으나 5년 동안을 뭐라고 대답을 못했다.”
어떤 관리가 물었다.
“단하(丹霞:739~824)스님이 나무 불상을 태웠는데 원주는 무엇 때문에 눈썹이 빠졌습니까?*”
“관리의 집에서는 생것을 익히는 일은 누가 합니까?”
“하인이 합니다.”
“그 사람 솜씨가 좋군요.”
한 스님이 물었다.
“비목선인(毘目仙人)이 선재동자의 손을 잡고 티끌수만큼의 부처님을 보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그 스님의 손을 잡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얼 보느냐?”
한 비구니가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위입니까?”
“아이를 낳지 마라.”
“스님께서는 관계하지 마십시오.”
“내 그대와 관계한다면 어찌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주의 주인공입니까?”
“촌놈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왕이 선타바*를 찾는 것입니까?”
“그대는 노승이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 가운데 현[玄中玄]입니까?”
“무슨 현 가운데 현을 말하느냐? 일곱 가운데 일곱, 여덟 가운데 여덟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선타바입니까?”
“고요한 곳에 스바하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법이며 법 아님[法非法]이라 함은 무엇입니까?”
“동서남북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천지사방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 가운데 현입니까?”
“이 스님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나이가 일흔 너댓은 되었을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왕이 선타바를 찾을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벌떡 일어나 몸소 차수(叉手)를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어찌 감히, 어찌 감히!”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입니까?”
“칙칙 섭섭!”*
한 스님이 물었다.
“조주에서 진부까지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3백리다.”
“진부에서 조주까지는 얼마나 됩니까?”
“거리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 가운데 현입니까?”
“현(玄)한 지가 얼마나 되느냐?”
“현한 지가 오래 됩니다.”
“노승을 만났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현(玄) 때문에 이 바보가 죽을 뻔했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자신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가 보이느냐?”
6. 조주의 한마디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래 참선을 해 온 납자라면 진실치 않은 사람 없고, 고금을 통달치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신참이라면 반드시 이치를 캐야 한다. 그대들은 이 쪽의 3백, 5백 또는 천 명의 대중을 쫓아가거나, 저쪽의 비구, 비구니 대중을 쫓아가지 말라. 총림에 주지한답시고 자칭하면서 막상 불법에 대해 물으면, 마치 모래를 볶아 밥을 짓는 것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한마디 말도 할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도리어 남은 그르고 나는 옳다고 하며 얼굴에 열을 올리니, 세간 사람들이 법답지 못한 말들을 내놓게 한다. 진실로 이 뜻을 밝히고자 한다면 노승을 저버리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여래가) 세속에 있으면서 여러 보살을 위하여 설법함은 모두 옷을 걸쳐 주는 따위의 일입니다.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도하십니까?”
“그대는 어느 곳에서 나를 보느냐?”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법당 안의 모든 스님들이 이 스님의 말을 모른다.”
다른 한 스님이 있다가 말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가 말해라. 나는 듣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진정한 교화는 자취가 없으니 스승과 제자가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누가 너더러 와서 물으라 시키더냐?”
“딴 사람이 시킨 게 아닙니다.”
스님께서는 별안간 그 스님을 후려쳤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이 일은 어떻게 해내야 합니까?”
“나는 너를 이상하게 여긴다.”
“어떻게 해내야 합니까?”
“나는 네가 해내지 못한 걸 이상하게 여긴다.”
“보임(保任)하면 됩니까?”
“보임하건 보임하지 않건 마음대로 해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알음알이[知解]가 없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무얼 말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선상에서 내려와버리자, “바로 그것입니까?” 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불법은 멀고 먼데, 어떻게 마음을 써야 합니까?”
“그대는 앞사람이나 뒷사람이나 천하를 장악했다가도 죽을 때 가서는 자기 몫은 반푼어치도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세상 사람은 보배를 귀하게 여기지만, 사문은 무엇을 귀하게 여깁니까?”
“어서 입 다물어라.”
“입만 다물면 됩니까?”
“입을 다물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주의 한마디입니까?”
“반 마디도 없다.”
“스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노승은 한마디가 아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만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습니까?”
스님께서 한 발을 내려뜨리자 그 스님이 얼른 신발을 내밀었다. 스님께서 발을 거두고 일어서자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어떤 속인 관리가 물었다.
“부처님께서 계실 때에는 일체 중생이 부처님께 귀의하지만, 부처님이 멸도하신 다음에는 일체 중생이 어디에 귀의합니까?”
“중생이란 있은 적이 없다.”
“지금 묻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더 무슨 부처를 찾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4은3유(四恩三有)에 보답하지 않는 자도 있습니까?”
“있다.”
“어떤 자입니까?”
“이 아비 죽인 놈아! 가만 보니, 너는 다만 이 한 물음이 모자랐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뜻입니까?”
“아무 것도 베풀 것이 없다.”
7. 진정한 선사는 만나기 어렵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형제여! 과거를 뉘우쳐 미래를 닦으면 될 뿐이다. 만약 뉘우치지 않는다면 그대들은 지옥에 묶일 것이다. 노승이 이 곳에 30여 년을 있으나 선사라고는 한 명도 찾아온 적이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와서는 하룻밤 자고 한 끼 먹고는 편하고 따뜻한 곳으로 서둘러 떠나버린다.”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문득 선사가 찾아온다면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3만근의 쇠활은 생쥐를 잡기 위해서 당기지 않는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제여! 남쪽에서 오는 사람은 짐을 내려주고, 북쪽에서 오는 사람은 짐을 더 실어 주어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윗사람을 가까이 하여 도를 물으면 도를 잃고, 아랫사람을 가까이 하여 도를 물으면 도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형제여! 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말하면 삿된 법이 따라서 바르게 되고, 삿된 사람이 바른 법을 말하면 바른 법이 따라서 삿되진다. 제방에서는 보기는 어렵고 알기는 쉬우나, 이곳에서는 보기는 쉬워도 알기는 어렵다.”
한 스님이 물었다.
“선악에 혹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우뚝 벗어날 수 있습니까?”
“우뚝 벗어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우뚝 벗어나지 못합니까?”
“바로 선악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한 비구니가 물었다.
“이제껏 내려왔던 말씀 말고 한마디 가르쳐 주십시오.”
스님께서 “이 불에 타 깨진 쇠물병아!” 하고 호통을 치자 비구니는 쇠물병에다 물을 담아 와서 “대답해 주십시오” 하니 스님께서는 웃으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세계가 변하여 캄캄한 굴이 된다는데, 그때 이 몸은 어느 길로 떨어집니까?”
“점칠 수 없다.”
“점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촌놈아!”
한 스님이 물었다.
“말[言]도 없고 뜻[意]도 없어야만 비로소 한마디[句] 얻었다고 하겠지만, 이미 말이 없는데 무엇을 가지고 한마디라고 합니까?”
“높아도 위태롭지 않고 가득 차도 넘치지 않는다.”
“지금 스님께서는 가득합니까 넘칩니까?”
“그대가 내게 묻는 바에야 어찌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신령스러움이란 어떤 것입니까?”
“깨끗한 땅 위에 똥 한 무더기를 싸놓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명확한 뜻을 말씀해 주십시오.”
“나를 어지럽게 하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법신은 작위(作爲)가 없어서 어느 법수(法數:법의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럼 말하는 것은 허용됩니까?”
“무슨 말을 하느냐?”
“그렇다면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웃으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이며, 무엇이 중생입니까?”
“중생 그대로가 부처이며, 부처 그대로가 중생이다.”
“둘 가운데 어느 것이 중생입니까?”
“묻고 또 묻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큰 도에는 뿌리가 없는데 어떻게 받아들여 설명해야 합니까?”
“바로 그대가 제접하여 설명하고 있다.”
“뿌리가 없다 함은 또 어떻습니까?”
“이미 뿌리가 없으니 어디에다 그대를 얽어매 두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도 귀신에게 들킵니까?”
“들킨다.”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구하고 찾는 데 있다.”
“그렇다면 수행을 하지 않겠습니다.”
“수행하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외로운 달이 허공에 떠오를 때, 빛은 어디서 생깁니까?”
“달은 어디서 생겼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듣자오니 스님께서는 ‘도는 수행하는 데 속하지 않으니 물들지만 말라’고 하셨다는데, 무엇이 물들지 않는 것입니까?”
“안팎으로 점검해 보아라.”
“스님께서도 점검하십니까?”
“점검한다.”
“스스로에게 무슨 허물이 있어서 스스로 점검하십니까?”
“그대에게는 무슨 일이 있느냐?”
8. 다가오는대로 비춰주는 구슬같이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일은 마치 손바닥에 있는 밝은 구슬과 같아서, 변방사람이 오면 변방사람이 나타나고 중국사람이 오면 중국사람이 나타난다. 나는 한 줄기 풀을 가지고 열 여섯 자 되는 금빛 부처님 몸[丈六金身]으로 쓰기도 하고 장육금신을 가지고 한 줄기 풀로 쓰기도 하니, 부처 그대로가 번뇌며 번뇌 그대로가 부처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는 누구에게 번뇌가 됩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번뇌가 된다.”
“어떻게 해야 면할 수 있습니까?”
“면해서 무얼 하려느냐?”
9. 본분사(本分事)로써 지도한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곳에서 본분사(本分事)로 학인을 지도한다. 만약 나더러 그들의 근기에 따라 지도하라 한다면, 으레껏 3승12분교로 지도할 것이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누구의 허물인가? 뒤에라도 솜씨좋은 선지식을 만난다면, 내가 그들을 저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하여라. 다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본분사로 그를 지도할 따름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고 하는데, 그러면 마음 그대로가 아닌 것을 저에게 헤아려 물을 수 있게 해주시겠습니까?”
“마음 그대로인 것은 그만두고라도, 그대는 무엇을 묻는다는 것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옛 거울은 닦지 않아도 비칩니까?”
“전생은 인(因)이고 금생은 과(果)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3도(三刀)가 떨어지지[落]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빽빽하다.”
“떨어진 다음에는 어떻습니까?”
“아득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3계를 벗어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가둬 놓을 수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우두(牛頭:594~657)스님이 사조(四祖)를 뵙기 전에는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다 공양을 올렸는데, 뵙고 난 다음에는 무엇 때문에 새들이 꽃을 물어다 공양 올리지 않았습니까?”
“세간에 맞춰주기도 하고 맞춰주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흰구름이 자재로이 노닐 때는 어떻습니까?”
“봄바람이 곳곳마다 한가로이 부는 것만이야 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넓은 땅 위의 흰 소[露地白牛]입니까?”
“달빛 아래서는 색깔이 필요없다.”
“흰 소는 무엇을 먹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씹는 것이 없다.”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응당 이럴 뿐이다.”
10. 용녀가 구슬을 바치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으로 하려고 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세 번을 후려치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를 저버렸다고 하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문답이 있으면 모두 분별[意根]에 떨어지는데 스님께서는 분별에 떨어지지 않고서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
“물어보아라.”
“그럼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에서 시비하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용녀(龍女)가 몸소 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데 무엇을 바쳤습니까?”
스님께서는 두 손으로 바치는 시늉을 했다.
11. 조주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곳의 불법은 어렵다고 말하면 쉽고, 쉽다고 말하면 어렵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는 어려우나 알기는 쉽지만, 이 곳에서는 보기는 쉬워도 알기는 어렵다. 이것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천하를 돌아다녀도 된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조주에서 왔다고 한다면 조주를 비방하는 것이 되고, 조주에서 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매몰시켜버리는 것이니, 그대들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눈에 닿기만 해도 스님을 비방함이 되는데, 어떻게 해야만 비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비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벌써 비방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바로 수행하는 길입니까?”
“수행을 알면 되겠지만, 수행을 모른다면 자칫 인과에 떨어질 것이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 그대들에게 말하는 법을 일러주겠다. 만약 누군가 묻거든 다만 ‘조주에서 왔다’고만 하라. 갑자기 ‘조주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라고 묻거든, 그저 ‘추우면 춥다 하고 더우면 덥다고 하더라’고 하여라. 그래도 다시 ‘그런 일을 물은 것이 아니다’ 하고 묻는다면, 다만 ‘무얼 묻는 게냐?’ 하여라. 그래도 다시 ‘조주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라고 묻는다면, 그에게 ‘스님께서 오셨을 때, 그대에게 전하신 말씀이 없었다. 그대가 만약 조주의 일을 알고자 하거든 직접 가서 묻도록 하라’고 말해 주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앞뒤를 돌아보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앞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그만두고 너는 누구한테 묻느냐?”
12. 이조가 골수를 얻었다는데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은 아난에게 전하였는데, 달마는 누구에게 전하였는지 말해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이조(二祖)가 골수를 얻은 것은 어찌 됩니까?”
스님께서 “이조를 비방하지 말라” 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달마가 또한 말하기를 ‘밖에 있는 자는 가죽을 얻고 안에 있는 자는 뼈를 얻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안에 있는 자는 무엇을 얻었겠는가 말해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골수를 얻은 도리는 무엇입니까?”
“가죽이나 알아내도록 하여라. 여기 내게는 골수란 있지도 않다.”
“무엇이 골수입니까?”
“그렇다면 가죽도 만져보지 못했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그처럼 당당하심이 스님의 제모습[正位]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수긍치 않은 자가 있음을 아느냐?”
“그렇다면 다른 모습이 있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이냐?”
“누가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까?”
“마음대로 불러라.”
한 스님이 물었다.
“상상근기라면 한번 건드리기만 해도 깨닫겠지만 하하근기가 올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대는 상상근기냐 하하근기냐?”
“스님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이야기에 주인공이 없구나.”
“저는 7천리를 달려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심통부리지 마십시오.”
“그대가 이렇게 묻는 한 심통을 부리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그 스님은 하룻밤만 자고 바로 가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방계(傍系)를 이어받지 않은 자는 어떻습니까?”
“누구 말이냐?”
“혜연(惠延)이 말입니다.”
“무엇을 묻느냐?”
“방계를 이어받지 않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손으로 그를 어루만져 주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납승 문하의 일입니까?”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진여(眞如)니 범성(凡聖)이니 하는 것은 모두 꿈속의 말입니다. 무엇이 참된 말씀[眞言]입니까?”
“그 두 가지를 다시는 말하지 말라.”
“두 가지는 그만두고 무엇이 참된 말씀입니까?”
“옴 부림 파트!”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주입니까?”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정(定)입니까?”
“정(定)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 때문에 정하지 않은 것입니까?”
“살아 있는 것,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에도 끄달리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학인 본분의 일입니까?”
“끄달리는구나, 끄달려.”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은 30년 만에 활을 한번 당겨 두 발에 성인 반쪽을 쏘아 맞혔는데, 오늘 스님께서는 완전히 맞혀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불쑥 일어나 가버리셨다.
13.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은데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따져서 가림을 꺼릴 뿐이다’ 하였다. 말로 표현했다 하면 그것은 따져서 가림이 되고 분명함이 된다. 그러나 나는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은데, 도리어 그대들이 애지중지하겠느냐?”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이미 분명함 속에도 계시지 않다고 하셨는데, 또 무엇을 애지중지한다는 것입니까?”
“나도 모른다.”
“스님께서 이미 모르신다면 무엇 때문에 분명함 속에도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까?”
“묻는 일은 됐으니, 절이나 하고 물러가거라.”
14. 불생불멸의 도리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법이란 본래 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말을 꺼냈다 하면 나는 것이요, 말을 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할 것도 없으니, 여러분은 무엇을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도리라고 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벌써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이 아닙니까?”
“이 놈이 그저 죽은 말만 알아듣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따져서 가림을 꺼릴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꺼냈다 하면 그것은 따져서 가리는 것이 되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을 가르치시겠습니까?”
“왜 옛분의 말씀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
“거기까지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따져서 가림을 꺼릴 뿐이다.”
15. 생사를 벗어나는 길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경전을 보아도 생사 속에 있고 경전을 보지 않아도 생사 속에 있으니, 그대들은 어떻게 벗어나겠는가?”
한 스님이 불쑥 물었다.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되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예리한 칼날이 잘 드는 때는 어떻습니까?”
“나의 예리한 칼은 어디가 잘 드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마침 잘 됐다!”
16. 사람 얻기 어렵다
상당하여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대중은 다 왔는가?”
“다 왔습니다.”
“한 사람이 더 오면 그때 말하겠다.”
한 스님이 말하였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 얻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17. 금강선(金剛禪)을 버려라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나니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니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너는 그 물음 하나로 됐다.”
스님께서 법문할 때[參次] 말씀하셨다.
“밝기도 하고 밝음 이전이기도 하여 어둡다고 하자니 밝아지려고 하는데, 그대들은 어느 쪽에 있느냐?”
한 스님이 말하였다.
“양쪽 어디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중간에 있겠구나.”
“중간에 있다고 하면 양쪽에 있는 것이 됩니다.”
“이 중이 여기 나에게 얼마간 있더니 이런 말을 다 하지만, 3구(三句)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설령 벗어난다 해도 역시 3구 속에 있으니 그대는 어찌하겠느냐?”
“저는 3구를 부릴 수 있습니다.”
“왜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사방에 통달하는 것입니까?”
“금강선(金剛禪)을 버려라!”
18. 부처님 머리 위에 눌러 앉아서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납자라면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그대로 눌러앉아야 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에 그대로 눌러앉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19. 큰 도는 눈앞에 있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큰 도는 눈앞에 있는데 보기가 어려울 뿐이다.”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눈앞에 무슨 물건이 있길래 제게 보라고 하십니까?”
“강남이건 강북이건 네 마음대로 해라.”
“스님께 사람들을 위하는 방편이 어찌 없으시겠습니까?”
“아까는 무얼 물었더냐?”
“법계에 들어오면 ‘있음’을 알게 됩니까?”
“누가 법계에 들어오느냐?”
“그렇다면 법계에 들어와서 나갈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싸늘한 재나 죽은 나무가 아니라 꽃비단이 백 가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법계에 드는 경계에서의 작용이 아닌지요?”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것이 실다운 이치라면 어디서 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대는 한 번 더 말하도록 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만 가지 경계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 혹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사람이 혹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그대는 불법이 있음을 믿느냐?”
“불법 있음을 믿는 것은 옛사람이 이미 말씀해 놓았으나 누가 혹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왜 내게 묻지 않느냐?”
“이미 물었습니다.”
“혹했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과 지금 사람 사이에 가까운 데가 있습니까?”
“가깝다면 가까운 것이겠지만, 같은 한 몸은 아니다.”
“어째서 같지 않습니까?”
“법신은 법을 설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신이 법을 설하지 않는다면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나는 여기에서 답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법신이 법을 설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나는 여기에서 너의 아비를 구하고자 하나 그는 끝내 나오지를 못하는구나.”
“학인이 서로 보지 못한다고 말할 때 그곳에 서로 통함[廻互]이 있습니까?”
“서로 통하는 도리를 헤아려냈구나.”
“그것을 헤아릴 수 없다면, 서로 통함이란 무엇입니까?”
“그렇게 하지 않음은 그대 자신이다.”
“스님의 경계를 남들이 헤아릴 수 있습니까?”
“사람이 더욱 가까워지면 도는 더욱 멀어진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숨으십니까?”
“나는 지금 너와 이야기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어찌 전신(轉身)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그래야만 맞기 때문이다.”
20. 제3생의 원수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교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금생의 일이지만, 교화시킬 수 없는 사람은 제3생의 원수이다. 만약 교화하지 않는다면 일체 중생을 떨어뜨리게 될까 두렵고 교화한다 해도 역시 원수이니, 그대들은 교화하겠느냐?”
한 스님이 말하였다.
“교화하겠습니다.”
“일체 중생이 그럼 그대를 보느냐?”
“보지 못합니다.”
“어째서 보지 못하느냐?”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이느냐?”
“스님께서는 중생이 아니옵니다.”
“죄를 알았으면 됐다.”
21. 저절로 된 일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용녀가 마음으로 몸소 부처님께 바쳤던 것은 모두가 저절로 그렇게 된 일이다.”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이미 저절로 된 일이라면, 무엇 때문에 바치셨습니까?”
“바치지 않는다면, 어찌 저절로 그렇게 되는 줄을 알겠느냐?”
22. 하나의 도인 찾기 힘들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되려는 사람은 8백 명이나 있어도 도인 한 사람은 찾기 힘들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도 없고 사람도 없는 곳에 수행이 있습니까?”
“그 두 가지를 없앴다 해도 백천만억의 수행이 있다.”
“도인이 올 때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수행하지 말라.”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꼼짝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흰 구름이 머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천문(天文)은 모른다.”
“그래도 주객이야 없겠습니까?”
“나는 주인이요 그대는 손님인데, 흰 구름은 어디 있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매우 훌륭한 사람이 형편없이 보일 때는 어떻습니까?”
“대들보로 쓸 재목을 망가뜨려 놓았구나.”
23. 부처 불(佛)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부처 불(佛)자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사람들을 위하지.”
“어떻게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깊은 뜻[玄旨]을 알지 못하면 생각만 고요히 해도 헛수고로다.”
“깊은 것[玄]은 그렇다치고, 무엇이 뜻[旨]입니까?”
“나는 근본을 붙잡지 않는다.”
“그것은 깊은 것이고, 무엇이 뜻입니까?”
“그대에게 대답함이 뜻이다.”
24. 각자의 선과 도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각자에게 선(禪)이 있고 도(道)가 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도냐고 그대들에게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겠느냐?”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이미 각자에게 선과 도가 있는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말씀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그대의 떠도는 혼을 위함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위해야 합니까?”
이에 스님께서는 뒤로 물러나 말씀이 없었다.
25. 생각하는 그 자는 누구냐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한가로이 지내지 말고 부처를 생각하고 법을 생각해라.”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 자신의 생각입니까?”
“생각하는 자는 누구냐?”
“짝이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바보야!” 하고 꾸짖으셨다.
26. 제1구의 도리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제1구에서라면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서라면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며, 제3구에서라면 자기도 구제하지 못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제1구입니까?”
“조사와 부처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다시 묻는 것이 좋겠다.”
학인이 다시 묻자 “다시 인간과 천상으로 간다” 하셨다.
27. 긴 한숨으로 대답하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그가 물어오지 않은 것도 아니요, 내가 대답해 주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한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얼 가지고 대답하십니까?”
스님께서 길게 한숨을 쉬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 그렇게 대답하신다면, 저를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대가 방금 나를 긍정했더라면 내가 그대를 저버린 것이지만, 그대가 나를 긍정하지 않았으니 내가 그대를 저버린 것은 아니다.”
28.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 오늘 저녁 답을 하겠으니, 물을 줄 아는 사람은 나오너라.”
한 스님이 나오자마자 절을 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구운 벽돌을 던지고 구슬을 빼앗아오려 하였더니 이젠 굽지 않은 벽돌뿐이로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에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입니까?”
“응신이다.”
“저는 응신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대에게는 응신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공중에 떠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은 이름이 무언가?”
“아무개입니다.”
“밝은 달이 공중에 떠서 어느 곳에 있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마침 열엿새일 때는 어떻습니까?”
“동쪽은 동쪽, 서쪽은 서쪽이지.”
“무엇이 ‘동쪽은 동쪽, 서쪽은 서쪽’입니까?”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제가 전혀 알지 못할 때는 어찌해야 합니까?”
“나는 더 모른다.”
“스님께서는 도리가 있는 줄을 아십니까?”
“나는 나무토막이 아닌데, 어찌 모르겠느냐?”
“알지 못한다 하시니, 정말 좋습니다.”
스님께서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도인입니까?”
“내가 전에는 ‘불인(佛人)’이라고 말했었지.”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꺼낸다거나 손발을 꿈쩍거린다거나 하면 그 모두가 저의 그물 가운데 떨어지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이것을 떠나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점심을 먹고 아직 차를 마시지 않았다.”
마대부(馬大夫)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수행을 하십니까?”
“제가 만약 수행한다면 큰일 나지요.”
“스님께서 수행하지 않으시면서 누구더러 수행하라 하십니까?”
“대부야말로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찌 수행한다 하겠습니까?”
“대부가 만약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인왕(人王)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겠소? 굶주림에 허덕이며 꽁꽁 얼어붙은 경지에서 풀려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오.”
대부는 이에 눈물을 흘리며 절하고 물러났다.
29. 청주의 베옷은 일곱 근이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물어올 것도 아니요, 내가 대답할 것도 아니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차수(叉手)하거나 합장하지 말라. 나도 선상이나 불자로 대답하지 않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생각과 기억으로는 미칠 수 없는 곳은 무엇입니까?”
“이쪽으로 오너라.”
“이쪽으로 오는 것은 미칠 수 있는 곳입니다. 무엇이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까?”
스님께서는 손을 일으켜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것을 뭐라고 부르느냐!”
“손이라고 부릅니다만 스님께서는 뭐라고 부르십니까?”
“백 가지 이름으로 나는 말할 수 있지.”
“스님의 백 가지 이름에는 미칠 수 없겠으니, 우선 뭐라고 부릅니까?”
“그게 바로 그대가 생각과 기억으로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생각과 기억이 미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무엇입니까?”
“석존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이 그대의 스승이다.”
“조사와 부처라면 옛분들이 다 말씀해 놓았는데, 무엇이 생각과 기억으로도 미칠 수 없는 곳입니까?”
스님께서 다시 손가락을 들어올리면서 말씀하셨다.
“뭐라고 부르겠느냐?”
그 스님이 한참을 잠자코 있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뜻 말하지 못하고 다시 무엇을 의심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나는 귀가 어두우니 큰 소리로 물어라.”
그 스님이 다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나의 가풍을 물으니 내가 그대의 가풍을 알겠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온갖 경계가 한꺼번에 일어날 때는 어떻습니까?”
“온갖 경계가 한꺼번에 일어난다.”
“한 번 묻고 한 번 대답함은 일어난 것입니다. 무엇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선상(禪床)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 스님이 막 절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문답을 기억하겠느냐?”
“기억합니다.”
“어디 한번 기억해 보아라.”
그 스님이 말을 꺼내려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눈앞의 부처입니까?”
“불전(佛殿) 안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양만의 부처입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 그대로가 그것이다.”
“마음 그대로인 것이라 해도 그것은 테두리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 없는 것이다.”
“마음 있음과 마음 없음을 제가 가려내도 괜찮습니까?”
“마음 있음과 마음 없음이 이미 네게서 다 가려졌는데, 더 이상 내게 무슨 말을 하란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멀리서 와 스님께 귀의하온데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사람들에게 말해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나의 가풍이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지 않아도 이미 4해(四海)에서 몰려들어 스님께 귀의하는 것은 어찌합니까?”
“그대는 바다일지라도 나는 바다가 아니다.”
“바다 속의 일은 어떻습니까?”
“내가 한 개를 낚아올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도 가까이할 수 없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조사와 부처가 아니다.”
“가까이하지 못한 걸 어찌합니까?”
“그대에게 ‘조사도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물건도 아닌 것이다’라고 말하면 되겠느냐?”
“그게 무엇입니까?”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조사이거나 부처이거나 중생이다.”
“그렇게만 해서도 안 됩니다.”
“결국 너하고는 이야기가 안되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평상심(平常心)입니까?”
“늑대나 여우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슨 방편을 써야만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습니까?”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것은 그만두고 이제껏 무얼 들어왔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듣자오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빛깔 따라 달라지는 마니주’라는 것이 있다는데, 무엇이 본래 색깔입니까?”
스님께서 그 스님의 이름을 부르니 “예” 하고 대답하자 “이 쪽으로 오너라” 하니, 그 스님은 이 쪽으로 와서 다시 물었다.
“무엇이 본래 색깔입니까?”
“자, 색깔 따라 달려가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평상시의 마음이 된 사람도 교화를 받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문전은 밟아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쪽 사람을 침몰시킨 것이 아닙니까?”
“아주 훌륭한 평상심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제가 보임(保任)할 물건입니까?”
“미래제(未來際)가 다하여도 가려내지 못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이가 수행을 많이 한 사람입니까?”
“절 안의 강유(綱維:대중의 기강을 통솔하는 직책. 유나)이다.”
“저는 이제 막 왔기 때문에 이 집안일이 어떤지 전혀 모릅니다.”
“그대는 이름이 무언가?”
“혜남(惠南)입니다.”
“모른다는 그것이 참 좋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배우고자 하나 그것은 스님을 비방하는 것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비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이름이 무언가?”
“도교(道皎)입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거라, 이 쌀통아!”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큰 뜻입니까?”
“크고 작을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스님의 큰 뜻 아닙니까?”
“털끝만큼이라도 있으면 만겁토록 여여하지 못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은 본시 한가한데 사람 스스로가 시끄럽다’ 하는데, 이것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나오는 족족 죽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한 이 말씀은 부정논법[斷語]입니다. 무엇이 부정논법 아닌 것입니까?”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만한 상호입니까?”
“나는 어려서 출가한 이후로 눈병을 앓아본 적이 없다.”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부디 그대가 비로자나의 원만한 상호를 길이 보기를 바라노라!”
“부처님과 조사가 계실 때에는 부처님과 조사가 서로 전하지만, 부처님과 조사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누가 전합니까?”
“예나 지금이나 모두 내 일[分上]이다.”
“그 전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들도 모두 생사에 속하는 것이다.”
“조사스님을 매몰시키지 마십시오.”
“그럼 무엇을 전하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범(凡)도 성(聖)도 다했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는 부디 고승대덕이 되거라. 나는 불조께 폐나 끼치는 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멀리서 조주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는데, 어째서 보이지 않습니까?”
“내 허물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공중에 떠 있을 때, 방안의 일은 어떻습니까?”
“나는 출가하고부터 살 궁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금시(今時)*를 위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 병도 못 고치면서 어찌 남의 병을 고치겠느냐.”
“제가 의지할 곳이 없게 되는 건 어찌합니까?”
“의지한다면 땅을 디디고, 의지하지 않는다면 동쪽이건 서쪽이건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마음이 헤아리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누구를 헤아리는가?”
“자기 자신을 헤아립니다.”
“둘이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물병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무어냐?”
“물병입니다.”
“정말 훌륭하다. 그 끝과 겉을 보지 않음이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근본으로 돌아감입니까?”
“돌아가려 하면 곧 어긋나버린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여의지 않고서 어떻게 해야 해탈할 수 있습니까?”
“말을 여의는 것이 해탈이다.”
“조금 전에 아무도 저를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여기까지 왔느냐?”
“스님께서 어찌 가려내지 못합니까?”
“나는 벌써 가려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이 아니면 지혜에 즉(卽)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 한마디 해주십시오.”
“내가 그대만 못하다.”
“무엇이 귀결점입니까?”
“귀결점이다.”
“어느 귀결점 말씀입니까?”
“내가 귀결점이거늘, 그대는 말을 물을 줄 모르는구나.”
“묻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귀결점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무엇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습니다.”
“정말 훌륭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대로 본받아라.”
“어디를 말씀입니까?”
“남의 자리를 차지하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공겁(空劫) 가운데는 누가 주인입니까?”
“내가 그 안에 앉아 있다.”
“무슨 법을 설하십니까?”
“그대가 묻는 것을 말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옛 말씀에 ‘텅 비고 밝아 스스로 비춘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스스로 비춤’입니까?”
“남이 비추지 않음을 말한다.”
“비춤이 닿지 않는 곳은 어떻습니까?”
“그대는 말에 떨어졌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바로 그것[的]’입니까?”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왕입니까?”
“주부(州府)의 대왕이다.”
“스님이 아니십니까?”
“그대는 모반을 일으켜 왕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의 마음입니까?”
“그대는 마음이고 나는 부처이니, 받들 것인지 아닌지를 그대 스스로 살펴라.”
“스승이 없는 건 아니나 받들어 모실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를 교화해 보아라.”
“3신(三身) 가운데 어느 몸이 본래 몸입니까?”
“하나만 빠져도 안 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이 나라에서 어느 분이 조사이십니까?”
“달마스님이 오신 이래로 이 쪽에서는 모두가 조사이다.”
“스님께서는 몇 번째 조사이십니까?”
“나는 순서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곳에 계십니까?”
“그대 귓속에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근본도 버리지 않고 지말도 좇지 않으니 무엇이 바른 길입니까?”
“매우 훌륭한 출가승이로다!”
“저는 여태 출가한 적이 없습니다.”
“귀의불하고 귀의법하라.”
“나갈 집이 있습니까?”
“곧장 집을 나서면 된다.”
“그를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집 안에 앉아 있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눈 밝은 사람은 모든 것을 본다는데, 빛깔도 봅니까?”
“후려쳐버려라!”
“어떻게 후려칠 수 있습니까?”
“힘을 쓰지 말라.”
“힘 쓰지 않고 어떻게 후려칠 수 있습니까?”
“힘을 썼다 하면 어긋나버린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의 큰 뜻은 누구를 위함입니까?”
“다만 금시(今時)를 위한다.”
“그럴 수 없는데야 어찌합니까?”
“누구의 허물이냐?”
“어떻게 알아들어야 합니까?”
“지금 같아선 아무도 알아들을 자가 없다.”
“그렇다면 아무 데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없다고 하지는 말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일을 다 마친 사람은 어떻습니까?”
“정작 큰 수행을 하지.”
“스님께서도 수행을 하십니까?”
“옷 입고 밥 먹는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은 일상사인데 수행이랄 것이 있습니까?”
“그럼 말해 보아라. 내가 매일 무얼 하더냐?”
최랑중(崔郞中)이 물었다.
“큰 선지식도 지옥에 들어갑니까?”
“내가 맨먼저 들어가지.”
“큰 선지식이신데 어째서 지옥에 들어갑니까?”
“내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낭중을 만날 수 있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날 때는 어떻습니까?”
“천지차이로 벌어진다.”
“털끝만큼도 차이가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천지차이로 벌어진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잠들지 않는 눈입니까?”
“범안(凡眼)과 육안(肉眼)이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비록 천안(天眼)을 얻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육안의 힘이 이와 같다.”
“어떤 것이 잠자는 눈입니까?”
“불안(佛眼)과 법안(法眼)이 잠자는 눈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대유령 꼭대기까지 쫓아갔으나 무엇 때문에 의발을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스님께서 누더기를 잡아당기면서 말씀하셨다.
“이 옷은 어디서 났느냐?”
“이것을 물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겠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합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는 것은 어떻게 구분합니까?”
“그대도 한 개를 가졌고 나도 한 개를 가졌다.”
“이것은 합치는 것입니다. 무엇이 흩어지는 것입니까?”
“그대가 합쳐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길을 잘못 들지 않는 것입니까?”
“마음을 알고 성품을 봄이 길을 잘못 들지 않는 것이다.”
“밝은 구슬이 손바닥에 있을 때, 빛이 납니까?”
“빛이 없지는 않으나 무엇을 구슬이라고 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신령스런 싹에 뿌리가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는 어디서 왔느냐?”
“태원(太原)에서 왔습니다.”
“정말 훌륭하다. 근원이 없다니.”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부처가 되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몹시도 힘을 들이는구나.”
“힘을 들이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부처가 되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둔하고 어두워 한번 들떴다가 한번 가라앉고 하는데, 어찌해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스님께서 그대로 자리에 앉아계시기만 하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스님께 진실로 여쭌 것입니다.”
“그대의 어느 곳이 들떴다 가라앉았다 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범(凡)에도 있지 않고 성(聖)에도 있지 않으니 어떻게 이 두 갈래 길을 면할 수 있습니까?”
“두 갈래를 없애고 오면 대답해 주마.”
그 스님이 “안녕하십니까?”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인사말은 어디서 나왔느냐? 여기에 있을 때는 나에게서 나왔다 하겠거니와, 시장에 있을 때는 어디서 나오겠느냐?”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정하지 못하십니까?”
“내 그대에게 가르쳐 주마. 왜 ‘오늘은 바람이 좋습니다’ 하고 말하지 못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대천제(大闡提:성불할 가망이 없는 사람)입니까?”
“내가 대답해 주면 그걸 믿겠느냐?”
“스님의 지중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천제인(闡提人)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이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
“갑자기 나타나면 어찌합니까?”
“데리고 가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작용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작용은 없지 않으나 나타나는 건 누구냐?”
한 스님이 물었다.
“공겁(空劫)에도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무엇을 공겁이라고 하느냐?”
“한 물건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로소 수행이라고 하겠는데, 무엇을 공겁이라고 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출가입니까?”
“높은 명성도 따라가지 않고, 더럽고 허물어짐도 구하지 않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한 법도 가리키지 않고서 무엇이 스님의 법입니까?”
“나는 묘산(茆山:唐代 道敎의 중심지)의 법은 설하지 않는다.”
“묘산의 법은 말씀하지 않으신다니, 무엇이 스님의 법입니까?”
“너에게 묘산의 법은 설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더냐.”
“그게 바로 스님의 법입니까?”
“나는 이제껏 이것으로 사람들을 가르친 적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눈앞에서 홀로 벗어나는 한 길입니까?”
“둘도 없고 셋도 없다.”
“눈앞의 길에 제가 나아가도 됩니까?”
“그러면 천리만리 어긋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부처님 이마 위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나는 그대 발 밑에 있다.”
“스님께서 어찌하여 저의 발 밑에 계십니까?”
“그대는 원래 향상사가 있는 줄을 몰랐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합당한 것입니까?”
“그게 바로 네가 합당치 못한 것이다.”
“무엇이 합당치 못한 것입니까?”
“앞 구절에서 알아내도록 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분명한 뜻입니까?”
“그만, 그만! 더 말하지 말라. 나의 법은 미묘하여 생각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한 스님이 물었다.
“너무나 깨끗하여 한 점 티끌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구덩이에 빠지고 굴 속에 떨어진다.”
“무슨 허물이 있어서입니까?”
“그대가 그런 사람을 몰아넣기 때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출가하여 위 없는 깨달음을 맹세코 구할 때는 어떻습니까?”
“아직 출가치 않았을 때는 깨달음에 부림을 받지만, 출가하고 나서는 깨달음을 부릴 수 있다.”
한 선비가 스님 손에 있는 주장자를 보고 말하였다.
“부처님은 중생의 바람을 빼앗지 않는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스님께 손에 든 주장자를 달래도 되겠습니까?”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는 법입니다.”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노승도 부처님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절 밖에 나왔을 때 한 노파가 밭에서 모종 심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사나운 범을 만나면 어찌하겠소?”
“마음 쓸 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님께서 “퉤퉤!” 하니 노파도 “퉤퉤!” 하였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아직도 그게 남아 있구나.”
한 선비가 하직 인사를 하며 말하였다.
“저는 여기 있으면서 스님께 오래도록 폐를 끼쳤으나, 스님께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뒷날 한 마리 나귀가 되어 와서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내게 안장 매는 법을 가르쳐 주게.”
스님께서 도오(道吾:769~835)스님의 처소에 갔을 때, 승당에 들어가자마자 도오스님이 말하였다.
“남전의 화살 한 발이 왔구나.”
“화살을 보십시오.”
“지나갔다.”
“명중하였습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백골이 썩어 흩어지고 한 물건만이 길이 신령스러울 때는 어떻습니까?”
“오늘 아침도 바람이 인다.”
한 스님이 물었다.
“3승 12분교는 묻지 않겠습니다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물소가 새끼를 낳았으니 잘 보아라.”
“그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만국이 와서 조공(朝貢)을 올릴 때는 어떻습니까?”
“사람을 만나도 부르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에 어떻게 깨끗이 씻어냅니까?”
“내하(奈河)의 물은 흐리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급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문수보살을 친견할 수 있습니까?”
“이 멍충아! 어디 갔다 오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량입니까?”
“그대는 도량에서 와서 도량으로 간다. 전체가 다 도량인데 도량 아닌 데가 어디냐.”
“싹이 아직 트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갈라진다.”
“냄새 맡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같은 한가로운 공부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수량을 헤아립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로 헤아림에 구애받지 않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하나, 둘, 셋, 넷, 다섯.”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세계에 밤낮이 없습니까?”
“바로 지금이 낮이고 밤이다.”
“지금을 물은 것은 아닙니다.”
“난들 어찌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가섭의 두타의(頭陀衣)는 조계의 길을 밟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라야 입을 수 있습니까?”
“허공은 세간에 나오지 않고, 도인은 전혀 알지 못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섞여도 잡스럽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오래도록 채식만 해왔다.”
“그래 가지고 초연할 수 있겠습니까?”
“공양을 다 마쳤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옛사람의 말씀입니까?”
“잘 들어라, 잘 들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꺼리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나는 청주에서 베옷 한 벌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출가한 사람입니까?”
“천자도 배알하지 않고 부모가 도리어 절을 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얼굴을 서로 마주하는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대가 바로 얼굴을 마주한 자이다.”
조주록 下
1. 상당(나머지 말)
1. 금부처는 용광로를 지나지 않는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금부처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부처는 불을 건너지 못하며, 진흙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참부처는 안에 앉아 있다. 보리, 열반, 진여, 불성 등은 모두 몸에 걸치는 옷으로서 그 역시 번뇌라고도 이름한다. 문제삼지만 않으면 번뇌랄 것도 없는데 진실된 도리가 어디에 성립하겠는가. 한 마음이 나지만 않으면 만법은 허물이 없으니, 다만 이치를 궁구하면서 이삼십 년 앉아 있으라. 그래도 알지 못하거든 내 머리를 베어 가라.
꿈 같고 허깨비 같은 허공꽃을 무어라 애써 붙들려는가.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 또한 한결같으니 이미 밖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 다시 무엇에 매이겠는가. 마치 양처럼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입에 주워 넣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내가 약산(藥山:745~828)스님을 뵈었을 때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물어오면 다만 ‘개 아가리를 닥쳐라’ 하는 말로 가르치라고 하였다. 그러니 나 역시 말하리라. 개 아가리를 닥치라고. ‘나’라고 여기면 더럽고, ‘나’라고 여기지 않으면 깨끗하다. 그렇게 사냥개처럼 얻어 먹으려고만 해서야 불법을 어디서 찾겠느냐.
천 사람이고 만 사람이고 모조리 부처 찾는 놈들뿐이니, 도인은 한 명도 찾을 수 없구나. 만약 부처님[空王]의 제자가 되려거든 마음을 병들게 하지 말아야 하니, 가장 고치기가 어렵다. 세계가 있기 전에도 이 성품은 있었고 세계가 무너질 때라도 이 성품은 무너지지 않으니, 나를 한 번 본 다음에도 딴 사람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주인공일 따름이니, 이것을 다시 바깥에서 찾은들 무얼 하겠는가. 이런 때에 고개를 돌리지 말라. 곧 잃어버린다.”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부처의 향상인(向上人)입니까?”
“소 끌고 밭 가는 이일 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다급한 일입니까?”
“내가 그렇게 말한다면 너는 어찌하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너에게 말해 주겠다. 급히 신발을 신고 물 위로 말을 달려 장안에 이르러도 신발 끝에는 물기도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쳐올[四山相逼]* 때는 어떻습니까?”
“길 없는 곳이 바로 여기 조주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옛 궁전에 왕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기침을 한 번 하셨다.
“그러시다면 신(臣)은 폐하께 아룁니다.”
“도적이 몸을 들켰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염주 한 꿰미로도 다 셀 수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느 분의 법을 이어받으셨습니까?”
“종심(從諗)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바깥에서 갑자기 누가 ‘조주는 무슨 법문을 하더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할까요?”
“소금은 비싸고 쌀은 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너는 부처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출가입니까?”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님과 조사가 서로 끊이지 않는 곳은 어떻습니까?”
“누락됨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본래 근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 근원은 병이 없다.”
“일 다 마친 곳은 어떻습니까?”
“다 마친 사람만이 안다.”
“그러할 때는 어떻습니까?”
“나에게 이름을 지어다오.”
한 스님이 물었다.
“순수하여 잡됨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매우 좋은 질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고요하여 아무 할 것 없는 사람은 공(空)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공에 떨어져 있다.”
“결국에는 어떻게 됩니까?”
“나귀도 되고 말도 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상(床)다리이다.”
“그게 바로 그 뜻입니까?”
“그것이라면 빼 가지고 가거라.”
한 스님이 물었다.
“아주 깨끗하여 티끌 한 점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여기 나는 고용살이하는 놈은 두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봉황이 날아도 다다르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어디로부터 날아오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실제 이치의 지위에서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다 그 속에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한마디[一句]입니까?”
스님께서 “응!” 하고 대답을 하자, 그 스님은 다시 물으니 “나는 귀머거리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갓난아기도 6식(六識)을 갖추었습니까?”
“급한 물살에서 공을 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온갖 것이 다가올 때는 어찌합니까?”
“나와는 백 걸음이나 떨어져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나는 어려서 출가한 뒤 고행을 하여 살림살이는 팽개쳐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4구(四句)를 여의고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항상 그 속에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명의인 편작(扁鵲)에게는 무엇 때문에 병이 있습니까?”
“명의인 편작도 침상과 베개를 여의지 않는다.”
다시 말씀하셨다.
“한 방울의 감로수로 대천 세계를 널리 적셔 준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넓은 땅 위의 흰 소입니까?”
“이 놈의 짐승아!”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인의 모습입니까?”
스님께서는 곁눈질로 그를 보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아직도 계단이 가로놓여서 종종걸음으로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내게는 그런 한가로운 놈을 가까이할 만한 공부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한 생각 마음이 일기만 하면 인천(人天)에 떨어지고, 곧장 한 생각 마음이 없어진다 해도 그 권속에 떨어질 때는 어떻습니까?”
“나뿐만 아니라 역량있는 선지식이라도 너에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비구니가 물었다.
“무엇이든 했다 하면 모두가 찌꺼기에 떨어지고 맙니다. 스님께서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대답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비구니를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물을 가져 와서 솥에 더 붓고 끓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반야바라밀입니까?”
“마하반야바라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람을 무는 사자입니까?”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 나를 물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떠나서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기침을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옛사람을 비방치 않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대는 어떤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한마디입니까?”
“무어라 하였느냐?”
“무엇이 한마디입니까?”
“두 마디가 되었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오로지 부처님 한 분만이 선지식이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마구니의 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보리(菩提)입니까?”
“이것은 천제(闡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인의 모습입니까?”
“훌륭한 후손이로다.”
한 스님이 물었다.
“고요하고도 고요하여 아무 붙들 곳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그대 등 뒤에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가람입니까?”
“따로 더 무엇이 있느냐?”
“누가 가람 속에 있는 사람입니까?”
“나와 그대다.”
한 스님이 물었다.
“두 용이 구슬을 서로 다툴 때, 누가 얻은 자입니까?”
“나는 그저 보고 있을 따름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인과를 떠난 사람입니까?”
“그대가 묻지 않았다면 나도 참으로 모를 뻔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여러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제각기 다르게 말하는데, 무엇이 진짜 코끼리입니까?”
“가짜 코끼리는 없으나 알지 못한 것은 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첫마디입니까?”
스님께서 기침을 하였다.
“바로 그것입니까?”
“나는 기침도 못하겠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큰 바다는 모든 강물들을 받아들입니까?”
“큰 바다는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어째서 모릅니까?”
“나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인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스승입니까?”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
한 스님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에게도 스승이 있습니까?”
“있다.”
“누가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십니까?”
“아미타불, 아미타불!”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학인의 스승이십니까?”
“구름은 산에서 나오려는 기세나 물은 골짜기로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없다.”
“그걸 물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네가 스승을 인정치 않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제방에서는 모두가 입으로 말을 하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지도하십니까?”
스님께서는 발꿈치로 화로를 툭 쳐 보였다.
“바로 그것입니까?”
“마침 내 발꿈치를 알았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큰 길을 가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이 소금 암거래하는 놈아!”
“그럼, 큰 길을 갈 때는 어떻습니까?”
“내 신분증[公驗]을 돌려다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본래의 몸입니까?”
“나를 알게 된 뒤에도 다만 이 놈일 뿐, 다른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스님과는 한 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비단 금생뿐만 아니라 천생만생토록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동쪽 벽에다 호로병을 걸어 둔 지 언제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모나거나 둥글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모나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다.”
“그럴 때는 어떻습니까?”
“모나고 둥글다.”
한 스님이 물었다.
“도인끼리 만났을 때는 어떻습니까?”
“옻그릇을 내놓는다.”
“이치[諦]는 어찌해 볼 수 없습니까?”
“이치가 없지는 않지만 볼 수는 없다.”
“결국은 어떻습니까?”
“이치를 잃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가도 도달하지 못하고 물어도 도달하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도달하고 도달하지 못함을 도인은 침 뱉듯이 본다.”
“그 가운데 일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땅에다 침을 뱉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대가 조사의 뜻이라 부르지만 않았다면 오히려 그런건 있지도 않다.”
“본래의 것이란 무엇입니까?”
“너와 나의 눈이 마주 보는 것 말고, 다른[第二] 주인공이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모양과 위의(威儀)를 갖추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지금은 알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모두 다 불가사의함을 갖추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남방에 가서 불법을 좀 배우고자 하는데, 어떻습니까?”
“남방에 가거든, 부처가 있는 곳은 급히 달아나고 부처 없는 곳에도 머물지 말라.”
“그렇다면 저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버들개지 버들개지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긴급한 곳입니까?”
“한 번 묻고 한 번 대답하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세 치 혀를 빌리지 않고 금시(今時)에 의지할 수 있습니까?”
“내가 너에게 맞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너는 어떻게 이해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망망한 우주에 사람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스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그래야 마땅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두 용이 구슬을 다투는데 누가 차지한 자입니까?”
“잃은 자라도 손해 본 바가 없고, 얻은 자라도 쓸 곳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인의 모습입니까?”
“이게 뭐냐?”
한 거사가 가사를 바치며 물었다.
“이런 옷을 입으면 옛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내던지며 말씀하셨다.
“예냐, 지금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동입니까?”
“손은 펴고 다리는 펴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를 뵙지 않았을 때는 어땠습니까?”
“땔나무도 많고 물도 많았다.”
“뵈온 다음은 어땠습니까?”
“땔나무도 많고 물도 많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저 자신입니까?”
“죽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발우를 씻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비로자나불의 스승입니까?”
“흰 낙타가 왔느냐?”
“왔습니다.”
“끌고 가서 풀을 먹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승이 필요없는 지혜입니까?”
“나는 그대를 가르친 적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가깝고도 절실한 한마디입니까?”
“말에 떨어졌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입을 빌리지 않고도 문답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 때다.”
“스님께서는 문답해 주십시오.”
“나는 일찍이 꺼내보지 않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이조(二祖)께서 팔을 끊은 것은 응당 무슨 일을 위한 것입니까?”
“분골쇄신한 것이다.”
“누구에게 공양 올립니까?”
“오는 이에게 공양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은 어찌하여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합니까?”
“너는 스님이 아니냐.”
한 스님이 물었다.
“낮은 햇빛이요 밤은 불빛인데, 신령스런 빛은 무엇입니까?”
“햇빛과 불빛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꼭 맞게 질문한 곳입니까?”
“틀렸다.”
“무엇이 묻지 않는 곳입니까?”
“앞 구절에서 알도록 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인의 모습입니까?”
스님께서는 손으로 얼굴을 만지더니 차수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함이 없는 것입니까?”
“이것은 함이 있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외양간에서 소를 잃었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먼 길을 왔으니, 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소서.”
“문 안에 들어오자마자 얼굴에다 침을 탁 뱉어 줄 걸 그랬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바로 들어가는 한 길입니까?”
“회남(淮南)에서 배가 왔느냐?”
“모르겠습니다.”
“야아! 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잣나무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언제 성불합니까?”
“허공이 땅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허공은 언제 땅에 떨어집니까?”
“잣나무가 성불할 때까지 기다려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무엇 때문에 절 안에서 내 욕을 하느냐?”
“저에게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나는 절 안에서 그대를 욕할 수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앞이빨에 털이 났다[板齒生毛].”
한 스님이 물었다.
“가난한 자가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엇을 갖다 드려야 할까요?”
“가난하지 않다.”
“스님께 구걸하는 걸 어찌하시겠습니까?”
“다만 가난을 지킬 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변신보살은 무엇 때문에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합니까?”
“엷은 비단을 대고 보는 것과 같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하늘 무리들의 감로수는 어떤 사람이 마십니까?”
“그대가 갖다 주어서 고맙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하늘과 땅을 초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런 사람이 있거든 곧 와서 알려다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가람입니까?”
“절 문과 법당이다.”
“무엇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입니까?”
“본시 나는 것이 아니니 지금이라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조주의 주인공입니까?”
“대왕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급한 일인지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오줌 누는 것이 작은 일이긴 하나 내가 몸소 가야만 되는 일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장육 크기의 부처님 몸[丈六金身]입니까?”
“겨드랑이에 옷깃을 달아라.”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르겠거든 다른 사람에게 재단해 달라고 하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제게 의심이 있을 때는 어찌합니까?”
“큰 일이냐, 작은 일이냐?”
“큰 일입니다.”
“큰 일이라면 동북쪽에서 보고, 작은 일이라면 승당 뒤에서 보라.”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이가 부처의 향상인(向上人)입니까?”
스님께서는 선상을 내려와 그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말씀하셨다.
“이 놈이 이만큼 크니 세 토막으로 내도 되겠다. 무슨 향상과 향하를 묻느냐?”
한 비구니가 물었다.
“무엇이 가장 비밀한 뜻입니까?”
스님께서 손으로 그녀를 꼬집으니 비구니가 말하였다.
“스님께서도 이런 것이 있으시군요.”
“네가 이런 것을 가졌다.”
2. 조주의 돌다리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노승이 30년 전 남방에 있을 때 화롯가에서 주인도 없고 객도 없다[無賓主]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이를 거론한 사람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대왕의 이런 공양을 받고 무엇으로 보답하시겠습니까?”
“염불을 하지.”
“거지도 염불을 할 줄 압니다.”
“시자를 불러서 그에게 돈 한 푼 주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병풍이 찢어지긴 했으나 골격은 아직 남아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바뀌지 않는 뜻입니까?”
“말해 보아라. 이 들오리가 동쪽에서 날아갔느냐, 서쪽에서 날아갔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 소식을 어디서 들었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티끌 세속에 있는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차와 소금 살 돈을 보시해라.”
한 스님이 물었다.
“대이삼장(大耳三藏)이 세 번 국사를 찾았으나 보지 못하였다*는데, 국사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삼장의 콧구멍 속에 있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뜬 나무 구멍을 만났을 때는 어떻습니까?”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오래도록 바위 계곡에 살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왜 숨어버리지 못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절을 하여라.”
그 스님이 말을 계속 하려고 하자 스님께서 문원(文遠)사미를 불렀다. 문원이 오자 스님께서는 꾸짖으며 “조금 전에 어디 갔다 왔느냐?” 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자기의 본 마음입니까?”
“나는 소 잡는 칼을 쓰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오래도록 조주의 돌다리에 대해서 들어왔으나 와 보니 외나무다리만 보입니다.”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볼 뿐, 조주의 돌다리는 보지 못하는구나.”
“무엇이 돌다리입니까?”
“건너오너라. 건너오너라!”
다시 말씀하셨다.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성이 무엇입니까?”
“상주(常州)에 있다.”
“나이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소주(蘇州)에 있다.”
3. 큰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시비가 있기만 하면 어지러히 본 마음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대답할 만한 말[分]이 있는가?”
한 스님이 나와서 시자를 한 번 툭 치면서 “왜 스님께 대답하지 않는가?” 하니 스님께서는 곧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뒤에 시자가 물었다.
“아까 그 스님은 알고 그랬습니까, 모르고 그랬습니까?”
“앉아서는 선 사람을 보고, 서서는 앉은 사람을 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道)입니까?”
“담장 바깥이다.”
“그것을 물은 것이 아닙니다.”
“무슨 도를 물었느냐?”
“대도(大道)입니다.”
“큰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먼지를 털어버리고 부처를 볼 때는 어떻습니까?”
“먼지를 터는 건 없지 않으나 부처를 본다는 건 어림없는 일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병 없는 몸입니까?”
“4대와 5음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천제(闡提)입니까?”
“왜 보리(菩提)를 묻지 않느냐?”
“무엇이 보리입니까?”
“바로 이것이 천제이다.”
스님께서 언젠가는 손가락을 오므리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주먹이라고 부르는데, 여러분은 무어라고 부르는가?”
한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어찌 경계로써 사람을 가르치려 하십니까?”
“나는 경계로써 사람을 가르치지 않는다. 만약 그대에게 경계를 보여주었다면 그대를 그 자리에서 매몰시켜 버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손은 어쩌시겠습니까?”
스님께서는 그만 작별 인사를 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한 번 묻고 한 번 대답하는 것은 모두 천마나 외도에 떨어지고 설사 말이 없다 하더라도 그들이 쳐놓은 넓은 그물에 걸립니다. 무엇이 조주의 가풍입니까?”
“그대는 물을 줄을 모르는구나.”
“스님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네 말대로라면 20대는 맞아야 되겠다!”
4. 시비가 있기만 하면 본마음을 잃는다고 하니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시비가 있기만 하면 어지러히 본 마음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대답할 말[分]이 있는가?”
한 스님이 나와서 사미의 뺨을 한 대 때리고 휙 나가버리자, 스님께서는 방장실로 돌아갔다. 다음날이 되자 시자에게 물었다.
“어제 그 스님은 어디 있느냐?”
“그때 바로 가버렸습니다.”
“30년이나 말탄 주제에 나귀한테 차이다니.”
한 스님이 물었다.
“이렇게 찾아온 사람도 스님께서는 맞이해 주십니까?”
“맞이해 준다.”
“이렇게 찾아오지 않은 사람도 스님께서는 맞이해 주십니까?”
“맞이해 준다.”
“이렇게 와서는 스님이 맞이해 주심에 따르겠습니다만, 이렇게 오지 않는 경우에 스님께서는 어떻게 맞이해 주시렵니까?”
“그만, 그만! 더 말하지 말라! 나의 법은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다.”
진부(鎭府)의 대왕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높으신 연세에 치아가 몇 개나 남아 있습니까?”
“어금니 한 개뿐입니다.”
“그럼 음식을 어떻게 씹으십니까?”
“한 개뿐이지만 차근차근 씹지요.”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보배 구슬입니까?”
“큰소리로 물어라.”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물을 줄을 모르는구나. ‘크고 작음은 묻지 않거니와 무엇이 학인의 보배 구슬입니까?’ 하고 왜 묻지 못하느냐?”
그 스님이 얼른 다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마터면 이 놈을 놓칠 뻔했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양쪽 다 고요하고도 고요한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법을 펴시렵니까?”
“금년은 풍파가 없는 해로다.”
“대중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는데 무슨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오늘은 나무를 끌어다가 승당을 짓자.”
“그게 바로 학인을 지도하는 것입니까?”
“나는 쌍륙(雙陸)이나 장행(長行:쌍륙놀이의 일종) 같은 놀이는 할 줄 모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진실한 사람의 몸입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그리 말씀하시면 저는 알기 어렵습니다.”
“너는 나에게 진실한 사람의 몸을 묻지 않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냐?”
“아무개입니다.”
“함원전(含元殿:長安에 있는 당나라 때의 궁전) 안과 금곡원(金谷園:洛陽 근처에 있는 정원) 속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7불의 스승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고 싶으면 자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도는 사물의 밖에 있는 것도 아니요, 사물의 밖에 있는 것은 도가 아닙니다. 무엇이 사물 밖의 도입니까?”
스님께서 별안간 후려치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마십시오. 뒤에 사람들을 잘못 때리게 됩니다.”
“용과 뱀은 구분하기 쉬우나 납자는 속이기 어렵다.”
스님께서 대왕이 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은 채 손으로 무릎을 치면서 말씀하셨다.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어려서 출가하여 이제 이렇게 늙고 나니, 사람을 보고도 선상을 내려올 힘도 없습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충직한 말입니까?”
“너의 어미는 못 생기고 추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은 그 사람은 어떻습니까?”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여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충직한 말입니까?”
“쇠몽둥이나 맞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스님께서는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으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한 등불이 백천 등불을 켜는데, 그 한 등불은 어디서 켜졌습니까?”
스님께서는 한 쪽 신발을 툭 차내면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납자라면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근본[根]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照]을 따르면 종지를 잃는다’고 할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이 말에 대답하지 않겠다.”
“스님께서 대답해 주십시오.”
“그래야 마땅하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생각할 수 없는 경계입니까?”
“어서 말해 보아라, 어서 말해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밤에는 도솔천에 올라가고 낮에는 염부제에 내려오는데,* 그 중간에 어째서 마니구슬은 나타나지 않습니까?”
“뭐라고?”
그 스님이 다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바시불이 일찍이 마음에 두었으나 지금까지도 그 묘(妙)를 얻지 못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경계는 어떻습니까?”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옷 속의 보배입니까?”
“이 한 물음은 무엇을 꺼려하느냐?”
“이것은 물음입니다. 무엇이 보배입니까?”
“그렇다면 옷까지도 잃어버린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만리에 여관 하나 없을 때는 어찌합니까?”
“선원에서 잔다.”
한 스님이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집집마다 문 앞의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얼굴을 마주하여 서로가 건네 주면 큰 뜻을 다 합니까?”
“말소리를 낮추어라.”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곳은 어떻습니까?”
“너에게 말소리를 낮추라고 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눈앞의 한마디입니까?”
“내가 너만 못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나타나 온 사람은 누구입니까?”
“불, 보살이니라.”
한 스님이 물었다.
“신령스런 풀이 아직 나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깨진다.”
“냄새 맡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선 채로 죽은 놈과 같다.”
“제가 어울려도 됩니까?”
“누가 오더라도 그에게 말을 걸지 말라.”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경전의 가르침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갓 출가하여 계도 받지 않았으면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묻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성스러움입니까?”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이 평범함입니까?”
“성스럽지 않은 것이다.”
“평범하지도 성스럽지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훌륭한 선승이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두 거울이 마주하면 어느 것이 더 밝습니까?”
“그대의 눈꺼풀이 수미산을 덮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이제 막 총림에 들어왔사오니 스님의 가르침을 바랍니다.”
“아이고, 아이고!”
한 스님이 물었다.
“앞 구절은 이미 지났고 뒷 구절을 밝히기 어려울 때는 어찌합니까?”
“무어라고 불렀다 하면 틀린다.”
“스님께서 구분해 주십시오.”
“자꾸 묻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높고 험해서 올라가기 어려울 때는 어찌합니까?”
“나는 높은 봉우리에 오르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과 짝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이 아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종승(宗乘)에 관해서 한마디 해 주십시오.”
“오늘은 그대 관리에게 줄 돈이 없소.”
한 스님이 물었다.
“제게 별다른 질문이 없으니 스님께서도 별달리 대답하지 마소서.”
“괴상하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3승의 가르침 말고, 어떻게 사람을 가르치십니까?”
“이 세계가 생긴 이래로 해와 달이 바뀐 적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세 곳[三處:根․境․識]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식(識)을 떨어버립니까?”
“식이란 그 분수 밖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여러 기틀들이 모여들 때, 그 가운데 일은 어떻습니까?”
“내 눈은 본시 바르므로 그 가운데 일은 말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깨끗한 곳에도 머무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대는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가 그런 사람입니까?”
“그만 두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만법의 근원입니까?”
“용마루, 대들보, 서까래, 기둥이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두공(斗拱:기둥 위에서 대들보를 받치는 나무)이 차수하고 있는 것을 모르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놓아버려라.”
한 스님이 물었다.
“‘길에서 통달한 도인을 만나거든 말로도 대하지 말고 침묵으로도 대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무엇으로 대해야 합니까?”
“진주(陳州)에서 온 사람은 허주(許州) 소식을 못 듣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입을 여는 건 함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함이 없는 것입니까?”
스님께서는 손을 그에게 내보이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함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함이 없는 것입니까?”
“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함이 있는 것이다.”
5. 조주스님의 가풍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佛]이란 한 글자를 나는 듣기 좋아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묻기를 “스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하니 스님께서는 “부처님, 부처님!”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금시(今時)를 다했을 때 무엇이 아주 분명한 곳입니까?”
“금시(今時)를 다했을 때는 그것을 묻지 말아라.”
“무엇이 분명한 것입니까?”
“너더러 묻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습니까?”
“너무 커서 바깥이 없고, 작은 것으로 치자면 안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4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죽음을 모른다.”
“그것은 스님의 입장입니다.”
“그렇지.”
“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십시오.”
“4구를 여의고 백비를 끊었으니 무얼 가지고 가르친단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안으로는 한 물건도 없고 밖으로는 구할 것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근본으로 돌아가서 종지를 얻는다’는 것입니까?”
“너에게 대답하면 어긋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의심하는 것입니까?”
“너에게 대답하면 어긋난다.”
“출가한 사람도 속될 수가 있습니까?”
“출가는 좌주(座主:강사) 그대의 문제이니 출가하고 출가하지 않고를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상관하지 않으십니까?”
“그것이 곧 출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승도 제자도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은 본래 그 자체가 완전하다.”
또 말씀하셨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가 없는 것이다.”
“끝을 볼 수 없는 때는 어떻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깨끗하나 맑지 않고 뒤섞였으나 흐리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맑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다.”
“그게 무엇입니까?”
“가엾은 놈!”
“무엇이 시방에 통달함입니까?”
“금강선(金剛禪)을 버려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주머니 속의 보배입니까?”
“무엇을 꺼려하느냐?”
“써도 다함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자기 것도 무거우냐?”
또 말씀하셨다.
“쓰면 무겁고 쓰지 않으면 가볍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의 분명한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침을 뱉었다.
“그 가운데 일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또 땅에다 침을 뱉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입니까?”
“행을 떠나라.”
한 스님이 물었다.
“참으로 쉬는 곳을 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치면 쉬지 못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물음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평상시의 말과 어긋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사방에서 산이 조여올 때는 어찌합니까?”
“빠져나온 자취가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여기에 와서 말하지 못할 때는 어떻습니까?”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말합니까?”
“말할 수 없는 곳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이 있기만 하면 모두가 정수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정수리 밖의 일입니까?”
스님께서 문원(文願)사미를 부르니 문원이 대답하자 “오늘이 며칠이냐?”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비로자나불의 스승이십니까?”
“험담하지 말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니 오직 따져서 가림을 꺼릴 뿐이다’ 하였는데, 어떻게 해야 따져서 가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그래도 그것은 가리는 것입니다.”
“이 촌놈아! 어디가 가려내는 것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누가 3계(三界) 밖의 사람입니까?”
“내가 3계 안에 있는 걸 어찌하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있음과 있지 않음을 아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네가 만약 다시 묻는다면 내게 일부러 묻는 것이다.”
6. 경전의 뜻과 조사의 뜻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남방의 총림으로 가고, 여기에는 있지 말라.”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이 곳은 어떤 곳입니까?”
“나의 이 곳은 땔나무 숲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이가 비로자나불의 스승입니까?”
“성품이 그 제자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종지를 얻는 때는 어떻습니까?”
“몹시 바쁜 놈이로구나.”
“안녕하십니까?”
“그 인사는 어디서 났느냐?”
유상공(劉相公)이 절에 들어와 스님께서 땅을 쓸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대선지식께서 무엇 때문에 티끌을 쓸어내십니까?”
“밖에서 들어왔어.”
한 스님이 물었다.
“날카로운 칼이 칼집에서 나올 때는 어떻습니까?”
“새까맣다.”
“바로 물었을 때는 어떻게 흰 칼을 알아봅니까?”
“그런 쓸데없는 공부는 없다.”
“사람 앞에서 차수하고 있는데, 어찌하시겠습니까?”
“언젠가 그대가 차수하는 것을 보았었지.”
“차수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누가 차수하지 않은 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이 힘을 얻은 곳입니까?”
“그대가 힘을 얻지 못하는 곳이 어디냐?”
“무엇이 스님께서 학인에게 보여주시는 법입니까?”
“눈앞에 학인이 없다.”
“그렇다면 세간에 출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몸조심하라” 하고 작별인사를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스님께서 주먹을 쥐고 머리 위에 얹으니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도 그런 것이 있으셨군요.”
스님께서 모자를 벗으면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내가 무얼 가졌느냐?”
“마음이 멈추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살아 있는 이것이 바로 심식의 부림을 받는다.”
“어떻게 해야 심식의 부림을 받지 않습니까?”
스님께서는 고개를 떨구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도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이것은 생긴 것이지만 도는 생기고 없어지는 데에 속하지 않는다.”
“원래 그런 것입니까?”
“이것은 원래 그런 것이지만 도는 그렇지 않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조사의 뜻을 알면 바로 경전의 뜻을 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이류 가운데 행함[異類中行]입니까?”
“옴 부림, 옴 부림!”
한 스님이 물었다.
“높고 험하여 오르기 힘들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스스로 꼭대기에 살고 있다.”
“조계로 가는 길이 가파른 걸 어찌합니까?”
“조계로 가는 길은 험하다.”
“지금은 무엇 때문에 도달하지 못합니까?”
“그 길이 높고 험하기 때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보배 달이 공중에 떠 있는 것입니까?”
“나는 귀를 막아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털끝만한 차이라도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거칠다.”
“기연에 응할 때는 어떻습니까?”
“굽힌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입니까?”
스님께서는 손을 펴서 옷을 털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와 부처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은 곳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모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방편[權機]을 무어라고 부릅니까?”
“방편이라고 부르지.”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요즘에서야 총림에 들어와서 잘 모르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총림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더욱 모르겠지.”
한 스님이 물었다.
“옛부터 큰스님들은 무엇으로 사람을 가르치셨습니까?”
“그대가 묻지 않았더라면 나는 옛 큰스님이 있는 줄도 모를 뻔했다.”
“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소서.”
“나는 옛 큰스님이 아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 꽃이 피어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습니까?”
“이것은 참되고 실답다.”
“그런 일은 어떤 사람에게 해당됩니까?”
“나도 해당되고 그대도 해당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어떤 사람이냐?”
“길을 곧바로 질러갈 때는 어떻습니까?”
“곧바로 질러가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玄) 가운데서 현을 끊지 않음입니까?”
“그대가 나에게 묻는 이것이 현을 끊지 않음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부처 꽃이 피어나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습니까?”
“이미 피어났다.”
“참됩니까, 실답습니까?”
“참되면 실답고, 실다우면 참되다.”
한 스님이 물었다.
“4은(四恩)과 3유(三有)에 보답치 않은 자도 있습니까?”
“있다.”
“누구입니까?”
“이 배은망덕한 놈아!”
한 스님이 물었다.
“가난한 사람이 오면 그에게 무얼 주시겠습니까?”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주의 진짜 주인은 누구십니까?”
“나는 종심(從諗)이다.”
어떤 노파가 물었다.
“저는 다섯 가지 장애를 가진 몸이라는데 어떻게 면할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천상에 나기를 바라고 할멈은 길이 고통 바다에 빠지기를 바라노라!”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하늘에 떠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아직 계단 아래 있는 놈이구나.”
“스님께서 계단 위로 이끌어 주십시오.”
“달이 지거든 만나러 오너라.”
7. 앉은 채로 왕을 맞이하다
스님께서 언젠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약산(藥山)에 도착하여 한 구절을 듣고 나서는 지금까지도 넉넉히 배가 부르다.”
스님께서 방안에서 좌선하고 있을 때, 소임자가 대왕이 뵈러 왔음을 알렸다. 대왕이 절을 다 마치자 주변사람들이 물었다.
“나라의 왕이 오셨는데 무엇 때문에 일어나지 않으십니까?”
“그대는 여기 나를 모르는가? 하급 사람이 오면 절 문까지 나가서 맞이하고, 중급 사람이 오면 선상을 내려가서 맞이하고, 상급 사람이 오면 선상에 앉은 채로 맞소. 대왕을 중급이나 하급 사람이라 부를 수 없으니, 대왕을 욕되게 할까 두렵소.”
대왕은 매우 기뻐하며 스님께 진부(鎭府)에 오셔서 공양 받으실 것을 두 번 세 번 청하였다. 스님께서 주원외(周員外:員外는 정원 외에 두는 관직명)에게 물었다.
“그대는 꿈에라도 임제스님을 보았는가?”
원외가 주먹을 세우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
“이쪽에서 봅니다.”
“어느 곳에서 임제스님을 보았는가?”
원외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물었다.
“주원외는 어디서 왔는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습니다.”
“날아왔다 날아가는 늙은 까마귀가 아니겠느냐.”
8. 조주의 관문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시비가 있기만 하면 어지러히 본 마음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대답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
나중에 어떤 스님이 낙포(洛浦)스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낙포스님은 이를 딱딱 부딪쳤다. 또 운거(雲居)스님에게 말하자, 운거스님은 “뭘 그럴 것까지 있겠는가!” 하였다. 그 스님이 스님께 말씀드리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남방에서는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무어라고 하려는 차에 그 스님이 옆 스님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스님은 밥을 다 먹었는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스님께서는 거기서 그만두었다.
스님께서 「금강경」을 보고 있을 때 한 스님이 문득 물었다.
“‘모든 부처님과 그분들의 위 없는 깨달음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왔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이 경입니까?”
“금강반야바라밀경,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셨다. …”
“그게 아닙니다.”
“내 스스로 경의 뜻을 어쩌지 못한다.”
한 스님이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밖에 나갔을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조주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그저 보았다고만 해야 되겠지요.”
“나는 한 마리 나귀인데 그대는 어떻게 보느냐!”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조주의 관문이 있음을 아느냐?”
“관문을 상관하지 않는 자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 소금 암거래하는 놈아!” 하고 꾸짖으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형제들이여! 조주의 관문은 통과하기 어렵다.”
그러자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주의 관문입니까?”
“돌다리다.”
한 스님이 설봉에서 왔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여기에 머물지 말라. 나의 이 곳은 다만 피난하는 곳일 뿐, 불법은 모두가 남방에 있다.”
“불법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네가 아무리 설봉에서 왔다 하더라도 판대기를 진 놈[擔板漢]일 뿐이다.”
“저 쪽의 일은 어떻습니까?”
“너는 왜 어젯밤 자리에 오줌을 쌌느냐?”
“깨고 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어! 똥까지 쌌군.”
9. 설봉스님에게 괭이를 갖다 주어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내게는 굴에서 나온 사자도 있고 굴 속에 들어있는 사자도 있는데, 다만 사자 새끼를 얻기가 어렵다.”
그때 한 스님이 손가락을 퉁겨서 응수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게 뭐냐?”
“사자 새끼입니다.”
“내가 사자 새끼라고 부른 것도 벌써 허물인데, 너는 한술 더 떠 깡충깡충 뛰기까지 하는구나.”
스님께서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설봉에서 왔습니다.”
“설봉은 무슨 법문으로 납자를 가르치더냐?”
“스님께서는 늘 말씀하시기를 ‘온 시방세계가 사문의 외눈[一隻眼]인데, 너희들은 어디다 똥을 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대가 돌아가는 편에 괭이를 갖다 주어라.”
스님께서 옷을 대중에게 나눠 주니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모두 다 주고 나면 무얼 입으십니까?”
스님께서 “호주자(湖州子:호주에서 온 스님)야!” 하고 불렀다. 그 스님이 “예!” 하고 대답하자 스님께서 말하였다.
“무얼 입겠느냐?”
10. 경론도 불법은 아니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세계가 있기 전에도 이 성품은 있었고, 세계가 무너질 때라도 이 성품은 무너지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이 성품입니까?”
“5온, 4대이다.”
“이것 역시 무너지니 무엇이 이 성품입니까?”
“4대, 5온이다.”
정주(定州)에서 한 좌주(座主:강사)가 오자 스님께서 물었다.
“무슨 공부[業]를 익혔는가?”
“경․율․론을 듣지 않고도 강의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손을 들어 보이면서 “이것도 강의할 수 있는가?” 하니 좌주가 어리둥절하며 무슨 말인지 몰라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네가 듣지 않고 강의할 수 있다 하여도 그저 경론이나 강의하는 놈일 뿐이니 불법이라면 아직 멀었다.”
“스님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불법이 아닙니까?”
“설령 그대가 묻고 답할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경론에 속하는 것이요, 불법은 아직 아니다.”
좌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한 행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북쪽 절[北院]에서 왔습니다.”
“그 절은 이 절과 비교해서 어떠냐?”
행자가 아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곁에 서 있는 한 스님에게 대신 대답하게 하니 그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 절에서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웃고 나서 다시 문원사미에게 대신 말하게 하자, 문원이 말하였다.
“행자는 도리어 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한 좌주에게 물었다.
“무슨 공부[業]를 해왔는가?”
“유마경을 강의합니다.”
“유마경에 ‘걸음마다 도량이다’라고 하였는데 좌주는 어느 곳에 있는가?”
좌주가 아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전익(全益)을 시켜 그 대신 말하게 하니 전익이 말하였다.
“다만 이 한 물음으로 도량을 알 수 있습니까?”
“그대의 몸은 도량 안에 있는데,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느냐? 어서 말해 보아라.”
“스님께서는 저의 마음을 찾으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럼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심소[心所] 안에 있지 않다. 법(法)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을 초월하여 아는 것이다.”
“이미 심소[心數:心所]에 있지 않다면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찾으십니까?”
“그대가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은 눈, 귀, 코, 혀, 몸, 뜻을 초월해서도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말할 수 없습니까?”
“내 침이나 핥아 먹어라.”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법화경을 본 적이 있느냐?”
“보았습니다.”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누더기를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절[阿練若]이란 이름을 빌려 세상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였는데,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 스님이 절을 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누더기를 입고 왔느냐?”
“입고 왔습니다.”
“나를 속이지 말라.”
“어떻게 해야 속이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살 궁리를 해야지, 내 말을 따르지 말라.”
스님께서 한 좌주에게 물었다.
“익힌 공부[業]가 무엇인가?”
“유마경을 강의합니다.”
“누가 유마힐의 할아비인가?”
“저올시다.”
“무엇 때문에 도리어 자손을 위하여 말을 전하는가?”
좌주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11. 차를 마셔라
스님께서 하루는 상당하니 한 스님이 나오자마자 절을 하였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합장하며 “몸조심하여라!” 하고 작별인사를 하셨다.
또 하루는 한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질문 하나 해 보아라.”
“무엇이 선(禪)입니까?”
“오늘은 날이 흐리니 대답하지 않겠다.”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느 방면에서 왔느냐?”
“온 방면이 없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등을 돌리니 그 스님이 좌구를 가지고 따라 돌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우 좋구나. 방면이 없음이여!”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3천리 밖에서 만나거든 농담하지 말라.”
“그런 적이 없습니다.”
“버들개지를 잡아라, 버들개지를 잡아라!”
풍간(豊干)스님이 오대산 아래 이르러 한 노인을 보고 말하였다.
“문수보살이 아니십니까?”
“두 문수가 있을 수 없지.”
풍간스님이 절을 하였는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한 스님이 이것을 이야기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풍간이 외짝눈[一隻眼]은 갖추었다.”
그리고서 스님은 문원으로 하여금 노인이 되고 자신은 풍간이 되어서 말씀하셨다.
“문수보살님이 아니십니까?”
문원이 말하였다.
“어찌 두 문수가 있겠나?”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문수보살님, 문수보살님!”
스님께서 새로 온 두 납자에게 물었다.
“스님들은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를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왔었습니다.”
“차를 마시게.”
원주(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왔던 사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스님께서 “원주야!” 하고 부르니 원주가 “예!” 하고 대답하자 “차를 마셔라!” 하셨다.
스님께서 운거(雲居)에 이르자 운거스님이 말하였다.
“연만하신 분이 어찌 머물 곳도 못 찾으십니까?”
“어느 곳에 머물면 되겠소.”
“앞 쪽에 옛 절터가 있습니다.”
“그럼 스님이나 머물도록 하시오.”
스님께서 또 수유(茱萸)에 이르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연만하신 분이 어찌 머물 곳도 못 찾으십니까?”
“어느 곳에 머물면 되겠소.”
“연만하신 분이 머물 곳도 모르는군.”
“30년을 말 타던 주제에 오늘은 도리어 나귀한테 차이다니.”
스님께서 또 수유스님의 방장실에 가서 위아래로 훑어보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평지에서 헛디뎌 넘어지면 어찌합니까?”
“그저 마음이 거친 탓이오.”
스님께서 하루는 주장자를 들고 수유산의 법당에 올라 동서로 왔다갔다하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물을 찾습니다.”
“나의 이 곳에는 물이란 한 방울도 없는데, 무얼 찾는단 말이오?”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벽에다 세워놓고 바로 내려와버렸다.
오대산 가는 길에 한 노파가 있었는데, 언제나 스님을 떠보려 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오대산 가는 길이 어느 쪽입니까?”
“똑바로 가십시오.”
그 스님이 가자마자 노파가 말하였다.
“또 저렇게 가는군.”
스님께서 이를 듣고 바로 가서 물었다.
“오대산 가는 길이 어느 쪽입니까?”
“똑바로 가십시오.”
스님께서 가자마자 노파가 말하였다.
“또 저렇게 가는군.”
스님께서는 돌아와 대중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씀하셨다.
“그 할멈이 내게 간파당했다.
스님께서 한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불을 집어 보이면서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이것을 불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내가 이미 말해버렸다.”
스님께서는 불을 집어 올리면서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서주(舒州)로 가면 투자(投子:819~914)스님이란 분이 있다. 가서 절하고 묻도록 하라. 인연이 맞으면 다시 올 것 없고, 맞지 않거든 다시 오너라.”
그 스님이 바로 떠나서 투자스님의 처소에 이르자마자, 투자스님이 물었다.
“근래 어디서 떠나왔는가?”
“조주를 떠나서 특별히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조주 노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더냐?”
그 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모두 말하자 투자스님은 선상을 내려와 너댓 걸음을 걷더니 다시 앉으며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돌아가 조주스님께 이야기해 드려라.”
그 스님이 다시 돌아와 말씀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럼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큰 차이는 없다.”
동산(洞山:807~869)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장혜(掌鞋)에서 왔습니다.”
“스스로 푸느냐, 남에게 의지하느냐?”
“남에게 의지합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던가?”
그 스님이 아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허락하신다면 어기지 않겠습니다.”
보화(普化)스님이 생채를 먹고 있는데 임제(臨濟:?~867)스님이 보고 말하였다.
“보화는 꼭 한 마리 나귀 같구나.”
보화스님이 나귀 울음소리를 내자 임제스님은 곧 그만두었는데 보화스님이 말하였다.
“꼬마 임제가 그저 외짝눈은 갖추었다.”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다만 본분의 먹이풀[本分草料]을 주어라.”
보수(保壽)스님이 호정교(胡釘鉸:釘鉸는 땜장이)에게 물었다.
“정교 아닌가?”
“그렇습니다.”
“허공도 땜질할 수 있는가?”
“조각난 허공을 가져오십시오.”
보수스님이 별안간 후려치면서 말하였다.
“뒤에 말 많은 스승이 너에게 설명해 줄 것이다.”
호정교가 뒤에 이를 스님께 말씀드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얻어맞았느냐?”
“허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방 터진 틈도 못 때우면서 그에게 허공을 조각내라는 거냐?”
호정교는 거기서 알아차렸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 이 한 방 터진 틈을 때워 보아라!”
스님께서 길을 가던 중에 한 노파를 만났는데 노파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조주의 동쪽 절, 서쪽에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스님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느 ‘서(西)’자를 써야 할지 말해 보아라.”
그러자 한 스님은 “동서의 서(西)자입니다” 하였고 다른 한 스님은 “의지하여 쉰다는 서(栖)자입니다” 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두 사람은 모두 소금과 쇠를 감정하는 관리는 되겠다.”
스님께서 시랑(侍郞)과 함께 정원을 거니는데 토끼가 달아나는 것을 본 시랑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대선지식이신데, 토끼가 보고는 무엇 때문에 달아납니까?”
“제가 살생을 좋아한 탓이지요.”
스님께서 언젠가는 한 스님이 마당을 쓸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그렇게 쓸어낸다고 깨끗해지느냐?”
“쓸면 쓸수록 많아집니다.”
“어찌 먼지를 털어버린 자가 없겠느냐?”
“먼지를 털어버린 자가 누구입니까?”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운거스님에게 가서 물어 봐라.”
그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가서 물었다.
“누가 먼지를 털어버린 자입니까?”
운거스님은 “이 눈먼 놈아!” 하였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느냐?”
“칠팔년 됩니다.”
“노승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내가 한 마리 나귀가 된다면 어떻게 보겠느냐?”
“법계에 들어가서 보겠습니다.”
“나는 이 중이 이 한 가지는 갖춘 줄 알았더니 숱하게 공밥만 퍼먹었구나.”
“스님께서 일러 주십시오.”
“어찌 ‘꼴[草料] 속에서 봅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느냐.”
스님께서 채두(菜頭:나물반찬을 맡은 소임)에게 물었다.
“오늘은 생채를 먹느냐, 익힌 것을 먹느냐?”
채두가 채소 한 줄기를 들어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많다.”
어느 속인 행자가 절에 와서 향을 사르는데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는 저기서 향을 사르며 예불하고, 나는 또 너와 여기서 이야기한다. 바로 이런 때 남[生]이 어느 쪽에 있느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어느 쪽입니까?”
“그렇다면 저 쪽에 있지.”
“그렇다면 이미 먼저입니다.”
스님께서는 웃었다.
스님께서 문원사미와 입씨름을 하였는데, 이기면 안되고 이긴 쪽이 호떡을 내기로 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한 마리 나귀다.”
“저는 나귀 새끼입니다.”
“나는 나귀 똥이다.”
“저는 똥 속의 벌레입니다.”
“너는 그 속에서 무얼 하느냐?”
“저는 그 속에서 여름을 지냅니다.”
스님께서는 “호떡을 가져 오너라!” 하셨다.
스님께서 진부(鎭府)의 내전(內殿)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깃대에 깃발 한 조각이 없어진 것을 보고 한 스님이 물었다.
“깃발 한 조각은 하늘로 날아갔습니까, 땅으로 들어갔습니까?”
“하늘로 올라가지도 않고 땅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럼 어디로 갔습니까?”
“떨어졌다.”
스님께서 앉아 계시는데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자마자 스님께서는 “몸조심하거라” 하였다. 그 스님이 무엇인가를 물어보려 하는데 스님께서는 “또 그러는군” 하셨다.
스님께서 한번은 처마 앞에 서서 제비가 지저귀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이 제비의 재잘거림이 사람을 부르는 말 같구나.”
한 스님이 말하였다.
“그 말이 달콤하십니까?”
“아름다운 곡조인 듯 들리는가 하더니, 다시 바람에 실려 다른 곡조에 섞이는구나!”
한 스님이 하직인사를 하러 가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겠느냐?”
“민(閩) 땅으로 가겠습니다.”
“민 땅에는 큰 전쟁이 있으니 피해야 할 것이다.”
“어디로 피합니까?”
“그럼 됐다.”
한 스님이 올라가 법을 물으려는데 스님께서 머리에다 누더기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물러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내가 대답치 않았다고 말해서는 안 되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누구하고 짝을 했느냐?”
“물소하고 짝을 했습니다.”
“훌륭한 스님이 무엇 때문에 짐승하고 짝을 하는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짐승이다.”
“어찌 긍정할 수 있겠습니까?”
“긍정치 않는 건 그렇다치고, 나에게 그 짝을 돌려다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승당 안에 조사가 있느냐?”
“있습니다.”
“불러 와서 내 발이나 씻게 하여라.”
승당의 두 스님이 서로 미루며 제1좌를 맡으려 하지 않자 소임자가 스님께 아뢰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둘을 모두 제2좌로 삼아라.”
“제1좌는 누가 합니까?”
“향을 올려라.”
“향을 올렸습니다.”
“계향, 정향….”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떠나 왔느냐?”
“서울에서 떠나 왔습니다.”
“동관(潼關:낙양과 장안 사이의 요새지)을 지나왔느냐?”
“지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소금 암거래하는 놈을 붙잡았다.”
한번은 죽은 스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죽은 사람 하나를 무수한 사람들이 보내는구나” 하시고는 다시 “수많은 죽은 자들이 산 사람 하나를 보내는구나” 하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이 살았습니까, 몸이 살았습니까?”
“몸과 마음 모두 다 살아 있지 않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죽은 놈이다.”
한 스님이 고양이를 보고 물었다.
“저는 고양이라고 부릅니다만, 스님께서는 무어라고 부르십니까?”
“고양이라고 부르는 건 너다.”
진주(鎭州)의 대왕이 스님을 뵈러 오자 시자가 와서 “대왕이 오십니다” 하고 알리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께서는 만복하소서!”
“아직 오시지 않았고 방금 절 문 아래 도착하셨습니다”
“대왕이 또 오시느냐?”
변소[東司] 위에서 문원(文遠)을 부르자 문원이 “예!” 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변소에서는 너에게 불법을 말할 수 없다.”
한번은 불전(佛殿)을 지나다가 시자를 부르니 시자가 “예!” 하자 스님께서 “훌륭한 불전의 공덕이다” 하셨는데 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스님께서 임제에 이르러 막 발을 씻는데 임제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마침 발을 씻고 있었소.”
임제스님이 가까이 와서 귀를 기울여 듣는 시늉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알았으면 아는 것이요, 몰랐거든 다시 입을 놀리지 않는 것이 어떻겠소?”
임제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가버리자 스님께서는 “30년 동안 행각하다가 오늘은 남을 위해 잘못 주석(註釋)을 내렸구나” 하셨다.
스님께서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갔을 때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을 보자 말씀하셨다.
“오래도록 한산과 습득의 소문을 들었는데 와서 보니 다만 두 마리 물소 밖에는 안 보이는구나.”
한산과 습득이 소가 싸우는 시늉을 하니 스님께서 “저런, 저런!” 하셨다.
한산과 습득은 이를 악물고 서로 바라보았다. 스님께서는 바로 승당으로 돌아왔는데, 두 사람이 찾아와 묻기를 “아까의 인연은 어떻습니까?” 하자 스님께서는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하루는 두 사람이 스님께 물었다.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오백 존자께 예배하고 왔네.”
“오백 마리 물소들이야, 그 존자들은.”
“무엇 때문에 오백 마리 물소들이라 하는가?”
한산이 “아이고, 아이고!“ 하자 스님께서는 “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스님께서 행각할 때 두 암주를 만났는데, 한 사람은 갈래머리를 땋아올린 동자 모습이었다. 스님께서 문안인사를 하였으나 두 사람은 별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튿날 이른 새벽 갈래머리 땋아올린 동자가 밥 한 솥을 가지고 와서 땅에 내려놓더니 세 몫으로 나누었다. 암주는 자리를 들고 가까이 가서 앉고 갈래머리 동자도 자리를 가지고 가까이 가서 마주 앉았으나 역시 스님은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스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자리를 가지고 가까이 가서 앉았는데, 갈래머리 동자가 스님을 노려보니 암주가 말하였다.
“일찍 깨웠다고 말하지 마시오. 또 밤길 가는 사람이 있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왜 이 행자를 가르치지 않소?”
“그는 마을 집 아이요.”
“하마터면 그냥 놓칠 뻔했군.”
그러자 갈래머리 동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암주를 노려보면서 말하였다.
“많이 지껄여서 무얼 하오?”
갈래머리 동자는 이때 산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스님께서 경을 보고 있는데 문원사미가 들어오자 경을 비스듬히 보여주었다. 사미가 그냥 나가버리니 스님께서 뒤따라가서 붙들고 말씀하셨다.
“어서 말해라, 어서 말해!”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니 스님께서는 방장실로 돌아가셨다.
한번은 사미동행(沙彌童行)이 찾아뵈러 오자 스님께서는 시자더러 “저 애를 보내라”고 일렀다.
시자가 행자한테 “스님께서 가라고 하신다” 하니 행자가 곧 작별인사를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미동행은 문 안에 들어왔으나 시자는 문 밖에 있구나.”
스님께서 행각할 때, 큰스님 한 분이 사는 절에 이르러 문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자마자 말씀하셨다.
“있느냐, 있느냐?”
큰스님이 주먹을 치켜올리자 스님께서 “물이 얕아서 배를 대기가 어렵구나” 하고는 그냥 나와버렸다.
또 한 절에 이르러 큰스님을 보고 “있느냐, 있느냐?” 하였는데 그도 주먹을 치켜올렸다. 스님께서는 “놓아주고 빼앗으며 갖고 쥐기를 능숙하게 하는구나” 하고 절을 하며 나와버렸다.
스님께서 하루는 염주를 집어들고 신라(新羅)에서 온 장로에게 물었다.
“거기에도 이것이 있소?”
“있습니다.”
“이것과 얼마나 닮았소?”
“그것과 닮지 않았습니다.”
“있다 하면서 어째서 닮지 않았다는 거요?”
장로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신라는 신라, 큰 당나라는 큰 당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스님께서 손가락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하는 인사도 모르느냐.”
스님께서 행각할 때 대자 환중(大慈寰中:780~862)스님에게 물었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體]을 삼습니까?”
대자스님이 말하였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을 삼습니까?”
스님께서는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나왔다. 다음날 스님께서 마당을 쓰는데 대자스님이 보고는 물었다.
“반야는 무엇으로 바탕을 삼습니까?”
스님께서 빗자루를 놓고 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가버리자, 대자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갔다.
스님께서 백장(百丈:720~814)스님께 갔는데 백장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남전(南泉)에서 왔습니다.”
“남전은 무슨 법문으로 학인들을 가르치던가?”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도 우뚝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백장스님이 꾸짖자 스님께서 놀라는 얼굴을 하니 백장스님이 말씀하셨다.
“좋구나. 정말 우뚝하도다.”
스님께서는 춤을 추면서 나갔다.
스님께서 투자(投子)스님의 처소에 가서 마주 앉아 공양을 할 때였다. 투자스님이 시루떡을 스님께 먹으라고 주니 스님께서는 “먹지 않겠소” 하고는 이내 떡을 내려 놓으셨다. 투자스님이 사미를 시켜서 스님께 떡을 주니 스님께서 떡을 받아들고 사미한테 3배 하니 투자스님은 잠자코 있었다.
어느 스님이 스님의 진영(眞影)을 그려 바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나를 닮았으면 나를 때려 죽일 것이요, 닮지 않았다면 당장 불살라 버려라.”
스님께서 문원과 길을 가다가 한 조각의 땅을 가리키면서 “여기에다 검문소를 하나 지었으면 좋겠다” 하니 문원이 얼른 가서 그 곳에 서면서 “신분증[公驗]을 가져 오시오” 하였다.
스님께서 대뜸 따귀 한 대를 때리자 문원이 말하였다.
“신분증은 틀림없다. 지나 가시오.”
스님께서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서 떠나 왔느냐?”
“오대산에서 떠나 왔습니다.”
“문수보살은 보았느냐?”
그 스님이 손을 펴 보이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손을 펴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문수보살을 보기란 어렵다.”
“그저 조바심이 나 죽을 지경입니다.”
“구름 속의 기러기도 못보면서 어찌 사막 변방의 추위를 알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이렇게 멀리서 와서 귀의하오니 스님께서는 한 번 가르쳐 주십시오.”
“손빈(孫臏)의 문하에서는 무엇 때문에 거북을 잘라 점을 쳤느냐?”
그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영화를 누리는가 하였더니, 두 다리가 잘렸군.”
스님께서 수좌(首座)와 함께 돌다리를 둘러보다가 수좌에게 물었다.
“이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이응(李膺)이 만들었습니다.”
“만들 때 어느 곳부터 손을 댔는가?”
수좌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평소에 돌다리 돌다리 하면서도 손댄 곳을 물으면 모르는군.”
한 신라원(新羅院)의 주지가 스님을 공양에 청하니 스님께서 앞에 이르러 물었다.
“여기가 무슨 절인가?”
“신라원입니다.”
“그대와 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운거산에서 왔습니다.”
“운거스님은 무슨 말씀으로 가르치더냐?”
“어떤 스님이 묻기를 ‘영양이 뿔을 나무에 걸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하자, 운거스님이 대답하시기를 ‘육육은 삼십육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운거사형이 아직도 계시는구나.”
이번에는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높으신 뜻은 어떻습니까?”
“구구는 팔십일이다.”
한 노파가 날이 저물어서 절에 들어오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얼 하려는가?”
“재워 주십시오.”
“여기가 어디라고….”
노파는 “하하!” 크게 웃고 가버렸다.
스님께서 밖에 나갔을 때 한 노파가 바구니를 들고 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디 가는가?”
“조주의 죽순을 훔치러 갑니다.”
“갑자기 조주를 만나면 어쩔려고?”
노파는 다가와서 스님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스님께서 한번은 원주가 생반(生飯)을 놓아주고 있는 것을 보노라니, 까마귀들이 보고는 모두 날아가버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까마귀들이 너를 보고는 왜 날아가버리느냐?”
“제가 두려운 게지요.”
스님께서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서 대신 말씀하셨다.
“제게 살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강서(江西)에서 왔습니다.”
“조주는 어디다 두었느냐?”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께서 불전을 지나다가 한 스님이 예불드리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대 때리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예불하는 건 좋은 일 아닙니까?”
“좋은 일도 없느니만 못하다.”
스님께서 한번은 동관(潼關)을 찾아갔는데 동관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동관이 있음을 아시오?”
“있음을 압니다.”
“신분증이 있는 이는 지나갈 수 있지만 없는 이는 지나갈 수 없소.”
“갑자기 어가(御駕)가 올 때는 어찌하시겠소?”
“역시 점검하고 보내지요.”
“그대는 모반을 일으키겠구려.”
스님께서 보수사에 갔는데 보수(寶壽)스님은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얼굴을 돌리고 앉았다. 스님께서 좌구를 펴는데 보수스님이 일어서자 스님께서는 그냥 나와버렸다.
스님께서 남전스님 회하에 있을 때 남전스님께서 물소 한 마리를 끌고 승당으로 들어와 빙빙 잡아 돌았다. 수좌가 이에 소 등을 세 번 두드리자 남전스님께서는 그만두고 가버렸다. 스님께서 뒤에 풀 한 묶음을 수좌 앞에 갖다놓자 수좌는 대꾸가 없었다.
한 거사가 스님을 뵙고 찬탄하기를 “스님은 옛 부처님이십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그대는 새 여래일세”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열반입니까?”
“나는 귀가 먹었다.”
그 스님이 다시 묻자 스님께서는 “나는 귀머거리가 아니다” 하고는 게송을 읊었다.
임운등등 대도를 밟은 자
열반의 문을 마주하였어라.
그저 앉아서 가없는 법을 생각하니
내년 봄도 봄은 봄일세.
謄謄大道者 對面涅槃門
但坐念無際 來年春又春
한 스님이 물었다.
“나고 죽는 두 길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스님께서 이에 게송을 읊었다.
도인이 나고 죽음을 물으나
나고 죽음을 어찌 논하랴.
사라쌍수 아래 한 연못에
밝은 달은 천지를 비춘다 하나
그것은 말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는 것이요
정혼을 희롱함이다.
저 나고 죽음을 알고자 하는가
미친 사람 꿈속의 봄을 이야기함이로다.
道人問生死 生死若爲論
雙林一池水 朗月耀乾坤
喚他句上識 此是弄精魂
欲會箇生死 顚人說夢春
한 스님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난을 당했을 때 불꽃 속에 몸을 숨기신다는데, 스님께서는 난을 만나면 어디에 몸을 숨기십니까?”
스님께서는 이에 게송을 읊었다.
그는 부처님에게 난이 있다고 말하나
나는 그에게 난이 있다고 하리라.
다만 내가 난을 피하는 것을 보라
어디에 따라올 수 있는가.
이는 있고 없음을 말함도 아니요
오고 감이 또한 오고감이 아니다.
내 그대를 위해 재난의 법을 말하니
맞딱뜨려서 알도록 하라.
渠說佛有難 我說渠有災
但看我避難 何處有相隨
有無不是說 去來非去來
爲你說難法 對面識得來
2. 게송
1. 십이시가(十二時歌)
닭 우는 축시(丑時)
깨어나서 추레한 모습을 근심스레 바라본다
군자(裙子)도 편삼(褊衫)도 하나 없고
가사(袈裟)는 형체만 겨우 남았네
속옷에는 허리 없고 바지에는 주둥아리가 없다.
머리에는 푸른 재가 서너 말
도 닦아서 중생 구제하는 이 되렸더니
누가 알았으랴! 변변찮은 이 꼴로 변할 줄을.
鷄鳴丑 愁見起來還漏逗
裙子褊衫箇也無 袈裟形相些些有
裩無腰袴無口 頭上靑灰三五斗
比望修行利濟人 誰知變作不喞●
이른 아침 인시(寅時)
황량한 마을 부서진 절은 참으로 형언키조차 어려운데
재공양은 치워버리고 죽 끓일 쌀 한 톨도 없다.
무심한 창문과 가는 먼지만 괜스레 바라보나니
참새 지저귀는 소리 뿐, 친한 사람 아무도 없다.
호젓이 앉아 때때로 떨어지는 낙엽소리 듣는다
누가 말했던가, 출가인은 애증을 끊는다고
생각하니 모른 결에 눈물 적신다.
平旦寅 荒村破院實難論
解齋粥米全無粒 空對閑窓與隙塵
唯雀噪勿人親 獨坐時聞落葉頻
誰道出家憎愛斷 思量不覺淚沾巾
해뜰 녘 묘시(卯時)
청정함이 뒤집혀 번뇌가 되고
유위공덕(有爲功德)은 속진(俗塵)에 덮이나니
무한전지(無限田地)를 일찍이 쓸어본 바 없어라.
눈썹 찌푸릴 일만 많고 마음에 맞는 일은 적나니
참기 어려운 건 동촌(東村)의 거무튀튀한 늙은이
보시 한번 가져온 일이란 아예 없고
내 방 앞에다 나귀를 놓아 풀을 뜯긴다.
日出卯 淸淨却飜贊爲煩惱
有爲功德被塵幔 無限田地未曾掃
攢眉多稱心少 ●耐東村黑黃老
供利不曾將得來 放驢喫我堂前草
공양 때의 진시(辰時)
사방 인근에서 밥짓는 연기만 부질없이 바라보노라
만두와 찐떡은 작년에 이별하였고.
오늘 생각해보며 공연히 군침만 삼킨다.
생각을 지님은 잠깐이요 잦은 한탄이로다
백 집을 뒤져봐도 좋은 사람 없어라.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차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는 발끈 화를 낸다.
食時辰 煙火徒勞望四隣
饅頭鎚子前年別 今日思量空嚥津
持念少嗟嘆頻 一百家中無善人
來者祇道覓茶喫 不得茶噇去又嗔
오전의 사시[巳時]
머리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가 청을 받아 촌중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에 처량한 꼴, 차라리 죽고 싶어라.
오랑캐 장가와 검은 얼굴 이가는
공경하는 마음은 조금치도 내지 않고
아까는 불쑥 문앞에 와서 한다는 말이
차 좀 꾸자, 종이 좀 빌리자고 할 뿐이네.
禺中巳 削髮誰知到如此
無端被請作村僧 屈辱飢悽受欲死
胡張三黑李四 恭敬不曾生些子
適來忽爾到門頭 唯道借茶兼借紙
해가 남쪽을 향하는 오시(午時)
차와 밥을 탁발하여 도는데는 정한 법도가 없으니
남쪽 집에 갔다가 북쪽 집에 다다르고
마침내 북쪽 집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일 수 없다.
쓴 가루소금과 보리 초장
기장 섞인 쌀밥에 상추무침
오로지 아무렇게나 올린 공양이 아니라며
스님이라면 모름지기 도심이 견고해야 된다고.
日南午 茶飯輪還無定度
行却南家到北家 果至北家不推註
苦沙鹽大麥酢 蜀黍米飯虀萵苣
唯稱供養不等閑 和尙道心須堅固
해 기우는 미시(未時)
이때에는 양지 그늘 교차하는 땅을 밟지 않기로 한다.
한번 배부르매 백번 굶주림을 잊는다더니
오늘 이 노승의 몸이 바로 그렇도다
선(禪)도 닦지 않고 경(經)도 논하지 않나니
헤진 자리 깔고 햇볕 쐬며 낮잠 잔다.
생각커니, 저 하늘의 도솔천이라도
이처럼 등 구워주는 햇볕은 없으리로다.
日昳未 者回不踐光陰地
曾聞一飽忘百飢 今日老僧身便是
不習禪不論義 鋪箇破席日裏睡
想料上方兜率天 也無如此日炙背
해 저무는 신시(申時)
오늘도 향 사르고 예불하는 사람은 있어
노파 다섯에 혹부리 셋이라.
한 쌍의 부부는 검은 얼굴이 쭈글쭈글
유마차라! 참으로 진귀하구나.
금강역사여, 애써 힘줄 세울 필요없다네
내 바라보노니, 내년에 누에 오르고 보리 익거든
라훌라 아이한테 돈 한푼 주어 봤으면.
晡時申 也有燒香禮拜人
五箇老婆三箇癭 一雙面子黑●●
油麻茶實是珍 金剛不用苦張筋
願我來年蠶麥熟 羅喉羅兒與一文
해 지는 유시(酉時)
쓸쓸함 밖에 무얼 다시 붙들랴.
고상한 운수납자 영영 끊기고
절마다 찾아다니는 사미승은 언제나 있다.
격식을 벗어난 말 입에 오르지 않나니
석가모니를 잘못 잇는 후손이로다.
한가닥 굵다란 가시나무 주장자는
산에 오를 때뿐 아니라 개도 때린다.
日入酉 除却荒涼更何守
雲水高流定委無 歷寺沙彌鎭常有
出格言不到口 枉續牟尼子孫後
一條拄杖麤●藜 不但登山兼打狗
황혼녘 술시(戌時)
컴컴한 빈 방에 홀로 앉아서
너울대는 등불을 영영 보지 못하고
눈앞은 온통 깜깜한 금주(金州)의 옷칠일세.
종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럭저럭 날만 보내니
들리는 소리라곤 늙은쥐 찍찍대는 소리뿐
어디다가 다시 마음을 붙여볼까나
생각다 못해 한번 바라밀을 뇌워본다.
黃昏戌 獨坐一間空暗室
陽燄燈光永不逢 眼前純是金州漆
鍾不聞虛度日 唯聞老鼠鬧喞啾
憑何更得有心情 思量念箇波羅蜜
잠자리에 드는 해시(亥時)
문앞의 밝은 달, 사랑하는 이 누구인가
집안에서는 오직 잠자러 갈 때가 걱정이리라.
한벌 옷도 없으니 무얼 덮는담
유가 유나(維那)와 조가 5계(五戒)는
입으로는 덕담하나 정말 이상하구나
내 걸망을 비게 하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인연 물어보면 전혀 모르는구나.
人定亥 門前明月誰人愛
向裏唯愁臥去時 勿箇衣裳著甚蓋
劉維那趙五戒 口頭說善甚奇怪
任儞山僧囊罄空 問著都緣總不會
한밤중 자시(子時)
마음경계가 잠시라도 언제 그칠 때 있더냐
생각하니 천하의 출가인 중에
나같은 주지가 몇이나 있을까
흙자리 침상 낡은 갈대 돗자리
늙은 느릅나무 목침에 덮개 하나 없다네.
부처님 존상에는 안식국향 사르지 못하고
잿더미 속에서는 쇠똥냄새만 나는구나.
半夜子 心境何曾得暫止
思量天下出家人 似我住持能有幾
土榻床破蘆● 老楡木枕全無被
尊像不燒安息香 灰裏唯聞牛糞氣
2. 탑(塔)불사를 보고 노래함
원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졌거든
어찌 돌쌓는 수고를 하랴.
아득한 훗날 보고 이름을 새겨둠은
나와는 아득히 거리가 멀다.
누군가가 물어온다 하여도
끝내 한 획도 가르쳐 주지 않으리.
本自圓成 何勞疊石
名邈彫鑴 與我懸隔
若人借問 終不指畵
3. 제방의 견해가 분분함을 보고 노래함
조주(趙州)의 남쪽, 석교(石橋)의 북쪽
관음원(觀音院) 안에는 미륵불이 계시는데
조사께서 남기신 한 쪽 신발은
지금까지 찾아도 찾지 못했네.
趙州南石橋北 觀音院裏有彌勤
祖師遺下一隻履 直至如今不得
4. 어고(魚鼓)를 노래함
4대가 이루어짐도 조화의 공덕이니
소리를 내는데는 속 빈 것이 가장 중하다.
내 범부에게 말해 주지 않는다고 수상히 여기지 마라
궁조(宮調)와 상조(商調)가 다르기 때문이로다.
四大猶來造化功 有聲全貴裏頭空
莫怪不與凡夫說 只爲宮商調不同
5. 연꽃을 노래함
신기하여라, 뿌리와 싹은 눈 덮인 듯 산뜻하구나.
언제 서천에서 떠나왔는가
진흙탕이 얕고 깊음을 사람들 모르다가
물 위에 나오고서야 하얀 연꽃임을 비로소 아는도다.
奇異根苗帶雪鮮 不知何代別西天
淤泥深淺人不識 出水方知是白蓮
6. 조왕(趙王)이 바친 스님의 진찬(眞贊)에 부침
푸른 개울에 비친 달이요
맑은 거울 속의 얼굴이라.
우리 스님 우리를 교화하시니
천하의 조주스님이시여.
碧溪之月 淸鏡中頭
我師我化 天下趙州
7. 조주스님의 죽음을 애도함(2수)
스님께서 사수(●水)를 떠나시사 왕과 제후들을 움직이시고
심인(心印)의 빛은 잠기고 불자(拂麈)를 거두어 드렸소이다.
하늘에 안개와 비 내려 솔 덮인 산마루의 달을 가리우고
창해의 높은 물결, 사람 건네주는 배를 엎어버렸다.
등불 하나 꺼지니 파순이 기뻐하고
두 눈 거듭 어두워짐에 도반들은 시름하네.
비록 훤히 깨달은 구름 밖의 나그네일지라
스님의 책상 물병 볼 때마다 새삼 눈물 흘리리.
師離●水動王候 心印光潛麈尾收
碧落霧霾松嶺月 滄溟浪覆濟人舟
一燈乍滅波旬喜 雙眼重昏道侶愁
縱是了然雲外客 每瞻甁几淚還流
불일(佛日)이 서쪽에 기울고 조사의 심인(心印)은 깨어졌나니
진주가 흙탕물 못[丹沼]에 잠기니 달은 빛을 숨겼소이다.
방장실에 걸린 진영 향로 연기 서글퍼라
바람 이는 선당에 솔바람 소리 가늘게 울리네.
한짝 신발로 잠깐 오셨다가 교화의 자취 남기니
5천축 그 어느 곳에서 돌아가시는 모습 만나오리까.
공을 아는 제자들 슬픔과 기쁨은 끊었다지만
하얀 휘장 대하니 눈물 저절로 흘러내리네.
佛日西傾祖印● 珠沈丹沼月沈輝
影敷丈室爐煙慘 風起禪堂松韻微
隻履乍來留化跡 五天何處又逢歸
解空弟子絶悲喜 猶自●然對雪幃
조주록 주
*조주스님은 120세를 살았는데(778~897) 그 날짜수가 700갑자(甲子)에 해당한다.
*조주(趙州)는 진부(鎭府)에 속하였으므로, 지중한 예의로써 알렸다.【원문 주】
*이 구절은 경에 나오는 말씀이다.【원문 주】
*조주(趙州)는 진부(鎭府)인 듯하다.
*안탑(鴈塔):청정한 수행승을 위하여 세운 탑을 말한다.
*이류(異類):이(異)는 다른 것, 류(類)는 같은 것. 이류중행(異類中行)은 보살이 성불한 후 6도(六道) 가운데 윤회하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행을 말한다.
*○○쪽 각주 참조.
*첫번째 생(生)에는 어리석은 복을 짓다가 견성(見性)하지 못하고, 두 번째 생에는 어리석은 복을 받고서 악업을 짓고, 세 번째 생에는 어리석은 복이 다해 쏜살같이 지옥에 들어가니, 어리석은 복 짓는 일은 3생에 걸친 원수라는 뜻이다.
*단하스님이 추운 날 목불을 불살라 불을 쬐고 있는 것을 원주가 보고 비방하였다. 스님이 사리를 찾고 있다고 하자 원주는 목불에 어찌 사리가 있겠느냐고 꾸짖었는데, 그 후 원주는 눈썹이 빠졌다.
*선타바:원래는 소금, 그릇, 물, 말[馬]을 뜻하는 말. 왕의 마음을 잘 아는 총명한 신하가 제때제때 알아서 이것들을 바친 데서 유래하여 지혜로운 이를 가리킨다.
*도교에서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외우는 기도문.
*‘스님께서 물으셨다[師問]’ 다음에 문장이 탈락된 듯하다.
*금시(今時):바로 지금의 경계.
하권
*인생의 4고(四苦:生․老․病․死)와 같은 곤란이 한꺼번에 닥쳐오는 것을 말한다.
*인도 대이삼장이 장안에 왔는데 타심통(他心通)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왕이 혜충국사에게 시험해 보라고 하여 국사가 삼장에게 물었다. “타심통을 얻었다니 정말이오?” “부끄럽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시오.” “스님께선 한 나라의 국사가 되어 가지고 어찌 인도에 가서 뱃놀이를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잠자코 있다가 다시 물었다. “지금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시오.” “스님께선 한 나라의 국사가 되어 어째서 천진교(天津橋)에 가서 원숭이 놀음을 구경하십니까?” 국사가 잠자코 있다가 세 번째 같은 질문을 던지니 삼장이 어쩔 줄 몰랐다. 국사가 “이 여우 도깨비야, 타심통이 무슨 말이냐” 하고 꾸짖자 삼장은 말이 없었다.
*무착(無著:310~390?)이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쓸 때, 밤에는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낮에는 염부제로 내려와 집필했다는 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