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 성립과 번역<금광명경>은 인도에서 대개 4C경 성립되었다고 추정된다.
대승경전의 하나의 특성인 경전의 書寫 聽聞 受持讀誦에 의하여 재난을 면하는 등의 공덕을 설하는 부분이 금광명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초기 대승경전에 많이 들어 있는 공통점이다.
4C경의 북인도는 집권적인 굽타 왕조(320-500)가 통치하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왕권의 영향을 받아 대승경전의 특징을 많이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광명경>의 산스크리트 원명은 [Suvar aprabh sa-stra]이다. 한역은 北양 元始(412~427)때에 曇無讖(385~433)에 의해 4권으로 번역된 것을 필두로 하여 陳의 眞諦 번역, 後周의 那 多 번역, 隋나라 大興善寺의 寶貴 彦琮 費長房 등이 597년에 번역한 <合部金光明經> 8권, 唐의 義淨이 번역한 <金光明最勝王經>의 다섯 본이 모두 현존한다.
이밖에 부분적인 異譯이 5종 있다. 이 중 담무참본이 원본에 가장 가까우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까지 4권본이 많이 유통되었으나 8세기 이후, 고려 때에 와서는 의정의 8권본이 존중되었다. 의정본<금광명최승왕경>은 줄여서 <最勝王經>이라고도 하며, <금광명경> 5本 가운데 최후에 나온 것으로 내용이 가장 완벽하다.
우리나라 고려대장경에는 <합부금광명경> 8권과 <금광명최승왕경> 10권이 담무참역과 함께 편입되었다. 이 경전은 범어 원전이 남아있는 경전중의 하나로, 아시아 전역에 분포 번역되었는데, 위의 漢譯을 비롯하여 티베트어 카르무크어 몽고어 만주어와 근대에 와서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한글대장경에도 수록되어 있다.
경의 특징
이 경은 참회멸죄라는 내성적 종교적 인간으로서의 행동을 가르침과 동시에 호국안민 왕도 자기희생 利他 등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몇가지 중요한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 밀교적인 요소가 짙은 점을 들 수 있다.
敎主 釋迦牟尼佛을 호위하고 있는 四佛 이 후에 밀교의 胎藏曼多羅의 四方四佛로 되는 점, 四天王呪를 설하고, 弁才天의 呪法供養, 堅宇地神과 散脂大將의 주법, 大吉祥川의 供養法, 三十二味의 香藥法 등을 설하는 등으로부터 이 경전을 밀교경전으로 취급하는 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금광명경은 본격적인 밀교경전이라고는 하기 어렵고 밀교적 요소를 점점 많이 포함해 나가는 시기에 속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금광명경은밀교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 밀교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경에는 法身을 강조하고 있다.
경의 제목인 金光明, 金光明最勝王은 佛法身의 異名이라고 볼 수 있다.
법신은 영원하신 진리의 몸을 말한다. 생멸유전을 거듭하는 덧없는 육신이 아니라, 중생의 귀의처가 되며, 여래의 本源인 영원한 몸을 말한다.
그리고 금광명경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護國의 경전이라고 하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전의 여러 품에서 四天王에 의한 국가의 보호나 현세 이익적인 신앙이 설해진다.
사천왕이란 沙門天王, 提頭佶 天王, 田比留勒叉天王, 田比留博叉天王을 말하며, 이들은 모두 帝釋宮의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主王天들로서 각각 무량한 백천귀신과 선신들을 거느리고 불법을 수호하고 또 정법을 수지하는 무량한 국토를 지켜주고 있다.
그리하여 이 금광명경을 유포하고 소지, 독송하며 정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나 국왕에게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국토를 보호하고, 외적의 침입이나 기근과 질병 등 각종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준다.
그러나 <금광명경>의 반야정법을 수지하지 않고 신앙하지 않는 나라나 국왕에게는 사천왕과 무량한 선신은 그 곁을 떠난다. 그러므로 국가를 안전하게 지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천왕과 그 권속신을 수호해야 할 것이고 사천왕과 그 선신들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반야정법을 수호해야 함이 강조된다.
경의 내용4권본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 [序品]에서는 諸經의 王인 본경의 깊은 뜻을 듣고 수지하고 독송하며 해설하는 자는東方阿, 西方無量壽, 南方寶相, 北方微妙聲인 四方四佛을 비롯하여 세간을 보호하는 諸天과 용왕 등이 이 사람을 수호한다고 설한다.
제2 [壽量品]은 왕사성의 信相菩薩이 부처님의 수명 80세에 대하여 깊은 의문을 일으킬 때에 사방사불이 홀연히 나타나 부처님의 수명은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 法身으로상주불변하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의 공덕이 이 세계 안에 두루 비치고 있으며 가득히 차고 있음을 역설한다. 그런 다음 열반의 깊은 뜻과 법신 응신 화신의 三身에 대해 설하고 있다.
제3 [懺悔品]은 그 밤에 신상보살의 꿈에 金鼓의 광명 혁혁함을 보고 또 그 鼓音이 스스로 참회의 공덕을 찬탄함을 듣고, 깨어난 뒤 부처님 앞에 이르러, 꿈속에서 보고 들은 사실을 말씀드린다. 곧 金鼓의 음성은 능히 중생의 모든 고통과 모든 악을 제거하고 또한 능히 모든 바라는 바를 만족케 할 뿐만 아니라 북소리의 설법에 귀를 기울여 자타의 악업을 참회하면, 악으로서 멸하지 않음이 없고, 복으로서 얻지 못함이 없다고 설한다.
제4 [讚歎品]은 신상보살이 過去世에 金龍尊인 국왕이었을 때 언제나 제불의 상호공덕을 찬탄하고 또 찬불의 공덕에 의하여 꿈에 金鼓를 보고, 그 참회의 가르침을 듣고 보살도 이루기를 서원한다. 그 인연에 의하여 지금 금고의 梵音을 만나게 된 것을 설한다.
이 참회품과 찬탄품은 금고광명의 가르침과 金光明懺法의 공덕을 역설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실린 참회를 통한 죄의 소멸법은 송나라에 이르러 知禮에 의해 [金光明最勝懺儀]라는 의식절차가 만들어진 근간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천태대사 智 의 [法華三昧懺儀]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전래되는 예불의식의 기본이 되고 있다.
제5 [空品]에서는 이 몸은 허망하여 빈 마을 같고 六根에는 각각 번뇌가 있어 서로 모르니 四大가 참이 아니라 인과 연이 모여서 있는 것이며, 無明이란 그 자체가 없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생과 멸이 본래 없건만 한 생각이 잘못되어 생긴 것이니 삿된 견해의 근본인 번뇌를 모두 끊겠다고 서원을 세운다. 법성진여의 大道에 도달하도록 空無相을 설하는 이 품은 금고광명의 가르침에 준하는 수행의 要諦를 설하고 있다.
제6 [四天王品]에서는 사천왕에 의한 정법수호를 역설하여, 국가의 보호와 국민들의 어려움을 사천왕이 물리쳐 준다고 설한다. 우리나라 및 중국에서 이 경을 鎭護國家經典으로 존숭하게 된 것은 바로 [四天王品]등의 품에서 사천왕과 大辯天등의 여러 신들이 이 경을 신봉하고 있기때문에, 이 경을 독송하고 강설하는 국왕과 백성을 수호하여 국난과 기아와 액병 등을 제거하고 국가안온과 풍년을 가져다줌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이것은 사천왕을 통하여 국가를 보호하고 조국을 수호하는 의지와 가호력이 있음을 말하므로, 이 경은 후세에 호국경으로 신라나 고려시대에 <인왕경>과 함께 성행하고 신앙의대상이 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제7 [大辨天神品]은 대변천녀가 이 경의 선포자에게 지혜와 변재를 수여하는 것을 설한다.
제8 [功德天品]은 공덕천녀가 경의 호지자에게 資具와 보물을 주고, 경을 弘布할 것을 설한다.
제9 [堅基地神品]은 지신 堅基가 경을 듣는 공덕에 의하여 그 위력을 증가시키고, 이에의하여 持經者 및 국토를 수호함을 설한다.
제10 [散脂鬼神品]은 귀신의 主인산지귀신이 이 경의 유포되는 어떠한 시기나 장소에 따라서 그 설하는 자와듣는 자를 보호함을 설한다. 이상 5품은 제천 귀신이 지경자를 수호하는 것을 설하여 경의 유통을 권장한 것이다.
제11 [正論品]은 부처님이 견뇌지신에게 過去 力尊相인 국왕이 양위에 즈음하여 태자 信相에게 보여준 治國의 要道를 설한다. 즉 국왕은 스스로 정법을 지니고 모범을 만민에게 보이며, 권선징악을 엄정히 하고, 종신토록 악을 행하지 않는다.
언제나 정법을 수행하는 자에게 친근하여 악인을 멀리하면 제천이 애호하고 인민이 따르며 국토가 안온하여지지만, 이와 반대로 정법을 경시하고, 악을 없애고 선을 장려하지 않으면 민심이 離反하고 천신이 돌보지않는 까닭에 국가는 멸망한다고 설한다. 이것은 곧 국왕이 법을 호지하면 천신이 국가를 수호하는 것을 밝혀서 경의 유통을 권장하는 것이다.
제12 [善集品]은 부처님이 과거세에 善集王이었을 때 아촉불의 전신인 寶冥比丘를 따라서 이 경을 듣고, 경에 공양하기 위하여 갖가지 보배를 중생에게 보시한다. 이 선한 因에 의하여 많은 복덕을얻고, 따라서 정법을 성취함을 설한다. 앞 품에서 설한 바 국왕이 정법을 수지하여 善果를 받는 실례를 보인 것이다.
제13 "鬼神品"은 부처님께서 공덕천에 대하여 이 경을 듣고 지니는 공덕은 경 가운데에서 부처님을 보는 것을 얻을 뿐만 아니라, 많은 귀신과 용왕 등이 보호하게 됨을 설한다.
제14 [授記品]은 신상보살과 그 두 아들, 아울러 法座에 모인 1만의 천자에게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기별을 준다. 경을 듣는 공덕이 허망하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제15 [除病品]은 보리수신에게 부처님의 전신인 流水長者의 아들이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天自在光王 치하의 수많은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한 과거의 인연을 설한다.
제16 [流水長者子品]은 앞의 장자의 아들이 그의 두 아들과 함께 水路를 막고 장차 죽음에 직면한 수많은 물고기를 구하는 부처님의 본생담이다.
제17 [捨身品]은 부처님이 과거세에 배고픈 호랑이에게 자기 몸을 보시하고, 보살행을 행한 인연을 설한다. 正法을 위하여 한 몸을 아끼지않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제18 [讚佛品]에서는 무량의 모든 보살과 신상,보리수신 등이 게송으로써 부처님의 身相, 지혜, 공덕 등을 찬탄한다.
제19 [囑累品]은 세존께서 친히 설하신 법을 모든 보살과 제천, 용왕, 귀신 등에게 위촉하여 입멸하신 후에 선포하게 하고, 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스스로 지니고, 남들에게도 지니게 하기를 서원하고, 모두 다 환희하고 만족케 하는 것으로써 문장을 끝맺는다.
이와 같이 이 경은 4권으로 되어 있으며 경의 구조적 특징은 다른 대승경과 큰 차이는 없으나 사천왕의 보호, 심지어 하늘신장이 이 경을 옹호하고 있음을 각 품마다 강조함은 후세에 불교인들이 하늘신장을 숭배하는 신앙으로까지 전개되는 근거가 되었다.
경의 유포와 그 주석서 <금광명경>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드날리는 데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국가수호와 재앙을 쫓고 복을 다스리는 현세이익적인 신앙이 강조된다.
예로부터 모든 불교국에서는 <인왕호국반야경>과 더불어 <금광명경>을 독송하면 사천왕이 국왕과 국토를 수호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퇴치하며, 이 경을 선포하는 자는 大辯才天이 지혜와 변재를 부여한다고 하여 국가적으로나 종교적 또는 개인적으로 불교국가에서 크게 신봉되었다.
신라와 고려에서도 매우 존숭된 호국경전의 하나이다. 특히 <법화경><인왕경>과 함께 호국삼부경이라 불리우며 사천왕 신앙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경전이다. 신라에서 당나라의 침략소식을 듣고 四天王寺를 세운 것이나 사찰입구에 사천왕을 모신 天王門을 세운 것 등도 다름 아닌 이 경의 [사천왕품]에서 근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려때에는 이 경의 내용에 따라 불심을 깨우치는 도량을 열면 국왕과 나라가 보호받게 된다고 하여 호국의 목적에서 <금광명경>을 所依로 하는 金光明經道장이나 金光明法會가 행해졌다.
이 도량은 1041년(靖宗 7) 5월과 1047년(문종 1) 8월 등을 비롯하여 총 31회에 걸쳐서 개최되었음이 <高麗史>에 기록되어 있다. 또 4권본 8권본 10권본 등이 모두 [참회품]으로서 이 경의 근본주장을 표명하고 있는데, 이 참회품에 실린 참회멸죄의 淸規에 의거하여 우리나라 불교예불의식의 정형인 찬탄 참회勸請 隨喜 廻向의 五悔가 정립되었다.
[참회품]을 근거로 하여 만든 [金光明最勝懺儀]와 함께 현재 전래되는 불교의식의 기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서역 여러 나라에서 사천왕이 숭배되었던 것이나 중국에서 金光明懺法이 유행한 것은 재앙을 쫓고 복을 이끈다고 하는 이 경전의 신앙에 근거한다.
이러한 사상적 내용에 의하여 각국에서는 호국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하여 <仁王般若經>과 더불어 이 경을 호국경전으로 많이 수지 독송하였다. 현재 네팔에서는 9대 법보(반야경 법화경 능가경 십지경 보현행원품 보요경 비화경 여래삼업비밀경 금광명경)의 하나로서 불교도들에게 매우 존숭되고 있기도 하다.
이 경에 대한 우리나라 승려의 주석서는 9종이 있다. 이들 중 유일한 현존본이라고 전해지는 <金光明最勝王經略贊>(5권)은 신라의 고승 憬興의 찬술로서 <대정신수대장경>에도 수록되지 않은 귀중한 본이다.
그리고 신라의 승려 勝莊의 <金光明最勝王經疏>(8권)는 원본은 현존하지 않으나, 특히 일본의 학승들에 의하여 존숭되었으며 그들의 저술속에 자주 언급된 바 있다. 1964년에 일본 승려들의 저술 속에 언급된 이 소의 내용으로부터 최근 복원되었다. 이외에 신라의 사상가들 가운데 이 <금광명경>에 대한 주석서를 남긴 예를 살펴보면 원효가 疏 8권, 경흥이 略意 1권, 太賢이 述記 4권, 料簡 1권 등이 있다.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불교를 수용하려던 경향이 농후했던 신라불교로서는 이 경의 수지 독송 공덕을 깊이 찬양하였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다수의 주석서가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것에는 수나라 天杻大師의 <金光明經玄義> 1권, 吉藏의<金光明經疏> 1권, 그리고 일본 空海의<最勝王經開題> 1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