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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放生)의 종교와 살생(殺生)의 신앙

통융 2016. 4. 22. 12:42
방생(放生)의 종교와 살생(殺生)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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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면 밝은세상
2016.04.25 09:00 입력

 

통융 스님

 

방생(放生), 글자의 뜻처럼 생명을 놓아 준다는 것은 생명을 살린다는 것이다.

방생은 불살생(不殺生)인 것으로 불교에서만 있는 독특한 계율이다.

불교의 10선행(善行) 중에 첫 번째가 불살생이다. 살생에 대한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모든 생명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나와 인연되어 있고 모두가 '한 몸 · 한 생명체'라는 인드라망(因陀羅網, Indermang)의 그물망으로 연결된 연기법(緣起法)으로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햇살과 공기와 바람과 물과 이 모든 자연이 나를 만들고 내 이웃도 나와 같이 공생 공존하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살생을 하면 결국 나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생의 유래는 금광명경金光明經<유수장자자품流水長者子品>에서

 의사인 유수장자가 두 아들을 데리고 시골을 다니다 큰 늪에 이르렀는데, 그 늪의 물이 거의 말라,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는 불쌍한 생각에 물을 찾아보니 누가 물길을 막아 놨다. 그들은 왕에게 사실을 알리고 왕이 내어 준 코끼리의 도움을 받아 물길을 허물고 늪에 물을 가득 붓고 먹을 것을 찾아 보시했다.

 나중에 천상에 태어난 고기들은 유수장자의 은혜를 갚기 위해 그의 집에 내려와 진주와 영락과 수많은 꽃을 뿌렸다고 한다.

그 때부터 방생이라는 행사를 실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타 종교나 신앙은 불살생,  방생이라는 계율이 없다

그들의 초기 신앙에 보면 신을 위해 재물을 살아있는 양이나 동물을 죽여서 피를 바치거나 고기를 바친다.

그러니 어찌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만들 수가 있겠는가.

1600217일 로마의 캄포데이 피오레 광장에서 죠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가 살아 있는 체로 화형을 당했다. 이유는 '지구는 돈다'고 주장한 것이 신의 창조론에 위배 된다는 이유다.

당시의 종교재판에서는 신이 창조한 모든 우주는 고정 불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유일신을 믿는 신앙은 인간 우월주의에서 출발하며 모든 동식물 및 자연은 신과 인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희생 되어도 상관이 없다고 믿는다또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신을 부정하거나 모독하면  신의 이름으로 처형 되거나 이단으로 취급한다. 그동안 많은 종교전쟁 이 그랬고 오늘날 까지도 신을 앞세워 테러와 폭력 등 온갖 살생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러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보다 무려 2100년 전에 벌써 모든 우주는 변한다고 했다.

한 순간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함을 이야기 해다.

그리고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나라고 하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리고 이러한 진리를 바로 알아 깨달으면 열반적정(涅槃寂靜)에 든다고 했다.

이러한 원리가 연기성에 의해서 일어나는 진리를 알지 못하면 나라는 아상(我相)에 집착하여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벗어날 수가 없고 살생과 테러를 서슴없이 하기 때문에  일체개고(一切皆苦)가 된다고 했다. 이러한 삼법인(三法印)을 우리 중생에게 깨닫게 한 것이 부처의 대 원력이며 중생구제의 자비행인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방생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는데

가장 먼저 해야 할 인간 방생 중에 생명이 연기법으로 인연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무지에서  일깨워주는 것이고,

관심과 자비심을 가지고 이웃을 돌아보면 지금도 가난과 기아와 물 부족 등 자연 재해로 피해를 입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남이 아닌 나의 가족이고 또 다른 나임을 자각한다면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이해하며 보시하고 봉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내 주위 사람에게 좋은 말 감사한 말 한마디가 또한 방생심이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등등 남에게 좋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행복 에너지를 방생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주위 사람에게 욕하거나 나쁜 말로 죽여 버린다, 너는 안 된다. 잘 되나 봐라, 등등의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이 방생의 반대인 살생이 된다.

우리가 알고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방생 생활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런데 일부 불교에서 행하는  방생들이 미꾸라지 잡아다가 다시 물속으로 보내주는 것이 방생쯤으로 알고 있는  잘 못 된 이해와 행사로 일관하는 것이 안타깝다.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많은 사찰이나 단체에서 방생의 의미를 바로 알고 친환경 살리기 운동과 연계한 자연보호, 동식물 먹이 주기와 종자보호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인간 방생 중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실질적인 자원봉사와 인성교육, 연기사상을 이해시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이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들이라 하겠다.

 

방생의 참된 의미를 바로 알고 행하는 운동을 불교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타 종교 여러 단체에서도 해야 한다.

생명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과 자연도 함께 소중함을 일깨우고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고 느끼는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결국 이웃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면 지구환경이 살고 결국 나를 살리는 것이 된다…….




대경일보 dkilb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