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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내 안에 이미 있다.

통융 2023. 2. 13. 17:10

 

깨달음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지 마십시요.

진리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이미 있습니다.

다만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입니다. 

 

왜냐면 오염된 마음이 참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염된 마음은 지식 혹은 알음알이로 안다는 마음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온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의 본성은 참 마음이고

때가 끼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지 못하는 때를 오염된 식견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즉 깨달음 진리는 외부에서 거창한 무엇을 얻거나 변화되는 모습의  신통이나 기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서 참 주인공을 만나는 것,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참 마음인 있는 그대로의 앎, 

그것이  깨달음이며 기적이고 영적 변화인 신통입니다. 

 

참 마음은 누구나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참 마음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 마음이니 순수의식이니 진아니 하는 것은 방편으로 쓰는 말이지

그 것이 실제 한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망상입니다. 

 

불교에서는 내 안에 늘 존재한 참마음을 불성이라고 합니다. 

왜 불성이라고 하느냐면 부처님이 연기법을 통해 깨닫고 보니

모든 존재는 스스로 이미 완전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본성도 부처의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는 중생이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이해나 생각의 영역이 아닙니다.

모든 생각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지만 순간 일 뿐입니다.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한 순간도 쉼없이 영속합니다. 

그러면서도 독립된 존재는 또한 없습니다. 

서로 연결된 그물처럼 존재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있는 그대로 볼 뿐, 들을 뿐, 할 뿐 일 때

모든 생각을 묶어두는 집착과 신념에서 벗어납니다.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며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흘러보냅니다. 

 

진정한 자유나 깨달음은 오직 스스로의 체험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지금 있는 그대로 일 때

관념이 아닌 실제한다는 것

 

나는 무엇이나 될 수 있는 것이지 나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찾으려고

자꾸 밖을 향해봤자 헛수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옛 선인들의 살림살이들을 기웃거려 봅시다. 

봄을 찾아다니다 찾지 못하고 지쳐서 집에 와보니  내 집 뜰앞에  이미 봄이 와 있더러고

노래한  대익(戴翼 )의 봄을 찾아서(探春) 라는 시입니다.

終日尋春不見春(종일심춘불견춘)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나섰으나 보지 못하고
杖黎踏破幾重雲(장려답파기중운) 지팡이 짚고 구름 낀 험한 길 헤매 다니다
歸來試把梅梢看(귀래시파매초간) 돌아와 시험 삼아 매화가지 잡아보니
春來枝頭己十分(춘래지두기십분)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완연히 와 있네.

중국 당나라의 비구니인 무진장(無盡藏) 스님의 오도송입니다.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돌아다녔어도 봄은 보지 못하고
芒鞵蹈遍隴頭雲(망혜도편롱두운) 짚신짝이 다 해어지도록 구름 덮힌 산봉우리까지 헤매고 다녔네
歸來偶把梅花嗅(귀래우파매화후) 지친 몸 이끌고 돌아오니 매화향 앞뜰 가득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이런, 봄은 벌써 매화 가지 끝에 방긋거리고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