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하는 것이 불교다.
불교는 영생하는 종교다.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이 영생인데
신을 우상하는 종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말하는 영생과 불교에서 말하는 영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을 우상화하는 영생은 신이 만든 영혼이 죽으면
신에게로 가서 영생한다는 이원론적인 영생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생은 연기법이고
무아사상에서 나타난 일원론적 영생이다.
즉 그들의 삶은 신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없는 무아이니
늘 주종의 관계로 산다.
하지만 불교의 무아 사상은
내가 우주 전체가 되는 주인공으로 신도 내 안에 산다.
연기법은 모든 존재는 개별적으로 나투지 못하고
모두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전체가 하나이다.
즉 우주 법계가 하나이기 때문에 영생한다.
또 모든 존재는 찰나찰나 생멸하기 때문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
그러니 내가 없는 무아이니 그 자체가 또한 영생이다.
불교는 윤회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윤회를 인정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불교는 오히려 윤회를 끊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업연에 의존하는 중생은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유식에서 말하는 8식으로 윤회하는 것을 영생하는 것으로 착각하나
그 8식을 끊어내는 것이 불교이다.
불교는 과거나 미래를 인정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오직 지금 일어나 있는 그대로가 늘 지금 밖에 없다.
지금은 늘 지금일 뿐이다.
그래서 영생한다는 것이다.
뜻으로는 충분히 알겠는데
확신이 들지 않습니까?
내가 없고 시공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미래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는데요.
그 허무하게 느끼는 것이 지금 그대가 분별하는
중생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모든 의식하는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멈추는 그 것? 을 관찰 해 보라.
늘 오직 지금 순간 순간을 확철히 알아차려 보라.
그 순간에 무슨 허무가 있고 걱정이 있고 괴로움과 두려움이 있겠는가.
그 순간이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념념상속으로 이어진다면
오늘이 그날이고 오늘이 내일이며
내일이 오늘이다.
그것이 '참 깨어 있는 삶인 불교'라 하고
그래서 불교는 영생하는 종교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