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분별
빠판차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를 이해하기 위한 조건
출처 : 초기불교연구원 카페
먼저 오온이 일어남이 따라서-같이-생겨남과
몸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먼저 대끝을 참조하여 디가21제석문경 2.2~3 과 맛지마 18 꿀덩어리 경 §16을 참조하고 그리고 상윳따14:12 근원있음 경 등을 참조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있음에 이것은 있게 되고 imasmiṁ sati idaṁ hoti,
이것의 생겨남으로부터 이것은 생겨난다. imassuppādā idaṁ uppajjati.
이것이 없음에 이것은 없게 되고 imasmiṁ asati idaṁ na hoti,
이것의 소멸로부터 이것은 소멸한다.”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
빠빤차의 발생과 집적集積 그리고 영향에 대한 것입니다.
오온의 색에는 육내입처 육외입처가 있고 내입처의 의/마나시카라/결정/판단/믿음/정신작용/주의 등을 생각을 일으키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작의作意한다는 것은 의意와 함께 항상 맞대어 있는 법이 작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초선에 대한 정리를 조금 끌어다 이해를 덧붙여야 도움이 될 것입니다.
vivicceva kāmehi(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떠나서) vivicca akusalehi dhammehi(이익없는 법으로부터 떠나서)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사유와 낱낱이 생각함을) vivekajaṃ pītisukhaṃ (떠나서 생긴 희열과 즐거움을)
위 인용 글을 설명 드리자면 ‘감각이 있다고 믿거나 실재한다는 견해에서 벗어나(일시적으로나마) 생각과 낱낱이 생각함이 감각과 이익 없는 법으로부터 떠나서’입니다.
예로서, 만약 음식과 혀와 맛이 있다는 실재한다는 생각을 멈추면 음식과 혀와 맛이 ‘생각과 낱낱의 생각生角’만이 남게 됩니다.
즉 심사인 사유와 숙고가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것도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입니다.
만약 이렇게 음식과 혀와 맛이 실재한다는 견해와 생각 즉 법이 일어나면 이에 따르는 식별인 분명한 앎viññāṇa이 있게 되고, 식별viññāṇa로 인한 분명한 앎viññāṇa으로 인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으로 인하여 오온의 인지saññā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현재에도 음식도 혀도 맛도 있다는 망상적인 규정이 생겨납니다.
위 문장들은 따라서-함께-생겨남 그 진리의 방식 자체로 오온들이 생성됨을 보이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념을 형성하고 있는 명칭과 인상 자체가 실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주의 : 그러면 실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이후로 미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실재’라는 용어와 사용은 아비담마에서 있는 것이고 부처님께서 사용한 용례를 다시 찾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이 음식은 몸에 좋다’는 규정을 한다면 오온의 색에서 내입처에 배대되는 혀와 의가 형성되고 음식이라는 형상과 색이라는 외입처의 기능이 형성되게 되며 이는 식별과 촉,느낌을 지나서 인지에서 ‘이 음식은 몸에 좋다’는 망상적 규정이
인지saññā에서 다시 형성되는 것입니다.
D21-§2.2 "존자시여, 일으킨 생각은 무엇이 그 근원이며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무엇으로부터 생기며 무엇으로부터 발생합니까?“
“신들의 왕이여, 일으킨 생각은 papañca-saññā-saṅkhā(분별-인지-분별)을 가진 인지라는 분별이 그 근원이며
papañca-saññā-saṅkhā(분별-인지-분별)을 가진 인지라는 분별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일어나고
papañca-saññā-saṅkhā분별-인지-분별)을 가진 인지라는 분별로부터 생기며
papañca-saññā-saṅkhā(분별-인지-분별)을 가진 인지라는 분별로부터 발생합니다.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을 가진 인지라는 분별이 있을 때 일으킨 생각이 있으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을 가진 인지라는 분별이 없을 때 일으킨 생각도 없습니다.
S35: 248
8. “비구들이여, 아수라의 왕 웨빠찟띠의 속박은 이처럼 미묘하다. 그러나 마라의 속박은 이보다도 더 미묘하다. 비구들이여,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면 마라에게 묶인 것이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으면 빠삐만으로부터 풀려난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은 병이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은 종기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것은 쇠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는 마음으로 머무를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9.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것은 동요다.
‘나는 이것이다.’라는 것은 동요다. ···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동요다.
비구들이여, 이런 동요는 병이고 동요는 종기고 동요는 쇠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동요하지 않는 마음으로 머무를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10.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것은 혼란이다. ‘나는 이것이다.’라는 것은 혼란이다. ···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혼란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혼란은 병이고 혼란은 종기고 혼란은 쇠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혼란이 없는 마음으로 머무를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11.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이다.
‘나는 이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이다.
···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은
병이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 종기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은 쇠살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는 마음으로 머무를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S35:30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됨 경1 Samugghātasappāya-sutta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일체의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을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되는 도닦음을 설하리라. ···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일체의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을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되는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을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눈에서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눈으로부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
눈은 나의 것이다.’라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는다.
형색을 ··· 눈의 알음알이를 ··· 눈의 감각접촉을 ··· 눈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이것에서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이것으로부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왜냐하면 그것을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고,
그것에서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고,
그것으로부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고,
‘그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그것은 변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처럼 다른 상태로 되어가면서 존재[有]에 집착하고 오직 존재를 기뻐한다.
귀를 ··· 소리를 ··· 귀의 알음알이를 ··· 귀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코를 ··· 냄새를 ··· 코의 알음알이를 ··· 코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혀를 ··· 맛을 ··· 혀의 알음알이를 ··· 혀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몸을 ··· 감촉을 ··· 몸의 알음알이를 ··· 몸의 감각접촉을 ··· 느낌을 ···
마노[意]를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마노에서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마노로부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마노는 나의 것이다.’라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는다.
[마노의 대상인] 법을 ··· 마노의 알음알이를 ··· 마노의 감각접촉을 ··· 마노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이것에서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이것으로부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왜냐하면 그것을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고,
그것에서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고,
그것으로부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고,
‘그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는 그것은 변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처럼 다른 상태로 되어가면서 존재에 집착하고 오직 존재를 기뻐한다.”
4. “비구들이여, 어떠한 무더기[蘊]와 요소[界]와 감각장소[處]든지
그는 그것을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그것에서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고,
‘그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이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어떤 것도 취착하지 않는다. 취착하지 않으면 갈증내지 않는다.
갈증 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5. “비구들이여, 이것이 일체의 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을 뿌리 뽑는데 도움이 되는 도닦음이다.”
근원 있음 경(S14:12) Sanidāna-sutta
3.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은 근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근원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악의에 대한 생각은 근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근원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코지에 대한 생각(vihiṃsāvittako)은 근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근원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은 근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근원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가?
어떻게 악의에 대한 생각은 근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근원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가? 어떻게 해코지에 대한 생각은 근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근원이 없이 일어나지 않는가?”
4.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의 요소를 반연하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지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가 일어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을 반연하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사유가 일어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사유를 반연하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의가 일어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의를 반연하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기가 일어나고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기를 반연하여 감각적 욕망에 대한 추구가 일어나고
감각적 욕망을 추구하면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과 말과 마음의 세 가지로 그릇된 도를 닦는다.
5. “비구들이여, 악의의 요소를 반연하여 악의에
대한 인지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가 일어나고
악의에 대한 인식을 반연하여 악의에 대한 사유가 일어나고
악의에 대한 사유를 반연하여 악의에 대한 열의가 일어나고
악의에 대한 열의를 반연하여 악의에 대한 열기가 일어나고
악의에 대한 열기를 반연하여 악의에 대한 추구가 일어나고
악의를 추구하면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과 말과 마음의 세 가지로 그릇된 도를 닦는다.
6. “비구들이여, 해코지의 요소를 반연하여 해코지에
대한 인지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 일어나고
해코지에 대한 인식을 반연하여 해코지에 대한 사유가 일어나고
해코지에 대한 사유를 반연하여 해코지에 대한 열의가 일어나고
해코지에 대한 열의를 반연하여 해코지에 대한 열기가 일어나고
해코지에 대한 열기를 반연하여 해코지에 대한 추구가 일어나고
해코지를 추구하면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과 말과 마음의 세 가지로 그릇된 도를 닦는다.
위 문장에서처럼 인지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의 근원은
색에서 의-법에서 잘못된 정신작용으로 출발하고, 잘못된 정신작용을 그치면
인지papañca-saññā-saṅkhā(사량분별-인지-분별)이 그치게 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