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 마음을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설명 해 놓은 것을 보면
사람의 내면에서 성품(性 성)·감정(情 정)·의사(意 의)·의지(志 지)를 포함하는 주체.마음은 지각하고 사유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며 자신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마음은 좁은 의미로서 육신에 상대되는 지각능력을 중심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넓은 의미로서 우주와 마음을 일치시키는 유심론적(唯心論的: 우주의 본체를 정신적인 것으로 보며 물질적 현상도 정신적인 것의 발현이라는 이론) 세계관의 마음 개념이 있다.
곧 원효(元曉)는 “삼계(三界: 중생이 생사 왕래하는 세 가지 세계)가 곧 마음이다.”라 하여 우주를 하나의 마음이 일으키는 현상으로 제시한다.
화엄경의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 한다.
마음을 장소 또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지(地, 산스크리트어: bhūmi)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란 온갖 심소법(心所法)들, 즉 선(善) · 불선(不善) · 무기(無記)의 온갖 마음작용들이 일어나고[生] 작용하고[住] 변화하고[異] 사라지는[滅] 공간이라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심(心=5식)이라고도 하며, 의(意=6식)라고도 하며, 식(識=7=자아의식,8식=잠재의식)이라고도 하며, 심의식(心意識)이라고도 한다
엄정한 원인과 결과의 법칙 하에, 일어나고[生] 작용하고[住] 변화하고[異] 사라지는[滅] 그러한 법(法, 구체적 존재)이다.
마음은 5온(五蘊)의 법체계에서 식온(識蘊)에 12처(十二處)의 법체계에서 의처(意處)에, 18계(十八界)의 법체계에서 7심계(七心界)에,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심법(心法)에 해당한다.
마음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마음은 진여 불성 부처 불법 도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표현 수단인 방편으로 쓴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이름 붙여서 나타낼 수 없는 불가사의다.
광대 무량 무변 하다. 하지만 늘 살아서 항상 한다.
마음은 안다고 하지 않는다. 알 수 없다. 깨닫 는다.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다.
마음은 불생불명이다. 마음을 공하다고 한다. 공하다 해서 허공과 같다고 한다.
미국 허공이 다르고 한국 허공이 다르지 않듯이 너 마음 따로 내 마음 따로가 아니다.
선에서는 마음이라는 말을 쓰고 경전에서는 공이라는 말을 쓴다.
불교는 불성이라하고 서양 종교는은 여호아라하고. 도교에서는 도라하고 역이라하고
온 세상은 한 마음(일심)이다.
결국 진리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은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는 것 무위법(할 일 없다)이며 삼계가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만법귀일 일귀하처다.
세속의 공부는 말로써 이해하는데 (유위법) 분별 조작 망상인 가짜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마음을 말로 알 수 없다. 마음을 보는 마음이 둘이 아니다. -이심전심
내가 내마음을 안다는 것은 가짜다. 자기 마음을 안다는 것은 중생심인 분별심이다.
몸 생각 느낌을 분별하는 것이 모두가 마음이지만 그 마음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팔만사천 대장경이 한 마음을 설명한 내용이다.
이상은 이론적인 마음에 실체에 대한 이해를 시키기 위해서 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마음을 설명으로 나타내 보였다.
이러한 이론적인 설명을 통해서 마음을 이해 한다고 마음의 본질을 아는 것은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마음의 본질을 알 수 있을까?
&&&&& 다음의 대화에서 참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보자.
*마음은 본래 없다고도 있다고도 할 수 없다.
* 마음이 무엇입니까?
미소를 짓는다.
*마음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차탁은 노랗고 찻 잔은 희다.
* 네, 마음을 물었는데 무슨 말을 합니까?
날이 차가운데 따스한 보이차 한잔 하시지요.
이상의 대화 속에서
마음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이 어떻게 생기고 머물며 변화고 없어지는지를 듣고 싶은데 귀와 눈과 생각 등으로 마음을 보려하니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을 알려주고자 하는 사람은 알뜰하게
마음의 실체인 생(있음)과 나타내 머뭄(보임)과 변화(쓰임)까지 공손히 보여주고 있다.
마음이 무엇이냐? 진리가 무엇이냐? 불법이 무엇이냐? 모두가 하나의 진리에 있다.
*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서 잘 쓸 것인가.
숭산스님은 세가지의 마음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1,마음이 집착하는 마음
2,마음과 하나가 되는 마음
3,마음이 없는 마음이 있다.
1,마음이 집착하는 마음은 일반적인 중생의 마음이다.
감각적인 마음으로 분별심으로 나타내는 마음이다.
2,마음을 관찰하고 집중하여 마음 자체가 되는 마음이다.
명상을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요가, 만트라(주문)을 외우던지 한 가지 마음으로 유지 한다.
마음이라는 대상이 있다는 생각으로 그 대상이 되는 상태를 찾아 하나가 되는 상태를 말한다.
3, 마음이 없는 마음 혹은 거울 같이 맑은 마음으로 말하는데
마음을 깨달은 상태, 혹은 진리의 이치를 깨달아 쓰는 상태가 마음없는 마음이다.
* 실례를 보자.
집안 응접실 쇼파에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즐거운 오락 프로를 보고 았는 중이라 티비에 몰입하여 즐겁게 웃고 있다.
강도가 몰래 들어와 티비를 보고 잇는 사람에게 칼을 드리대며 돈을 요구한다.
그 사람은 즐겁던 마음이 갑자기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떨고 있다.
이럴 때 그 마음은 외부의 상황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갔다 왔다하는 상태다.
이러한 마음은 작은 마음이다...... 1번의 마음이다.
어떤 사람이 명상을 하면서 깊은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날도 강도가 들어 왔다.
칼을 목에 드리대며 돈을 요구한다.
그는 삼매(깊은 요가,수행,등) 상태라서 생사를 초월한 상태이다.
그의 마음은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한 공의 세계만 있을 뿐이다.
그럴 때는 전혀 동요되지 않는다.
돈을 내 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해도 죽음이 두렵지 않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2번째의 하나된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의 마음으로 유지된 것이 끝나면 다시 돌아가서 지난 과거의 일에 집착하게 된다.
깨달은(선정) 사람에게는 강도가 들어오면 초연하다.
강도가 요구하는 것을 내어준다. 그리고 그 강도에게 더 필요한 것을 도와 주려한다.
연민이 생간다. 그리고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마음으로 강도에게 자비로움을 보낸다.
강도가 그에게 감동된다.
어떻게 이렇게 생사 앞에서 담담하고 여유로운지를 그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순화되는 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마음이 깨달은 자의 마음이다. 보살의 대자대비의 화현이다.
그 마음은 전혀 없다. 오직 자비와 상대의 마음밖에 없다..................3의 마음없는 마음이다.
분별하는 음이 없어졌기 때문에 늘 여여할 뿐이다. 인연연기의 중도의 도리다.
우리는 마음을 바로 알아서 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