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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면 밝은세상 (신라시대에도 문화혁명의 시기가 있었다 )
통융
2011. 2. 18. 22:18
신라를 대표하는 황룡사와 그 벽에 노송을 그려 새가 날아 앉았다는 솔거의 이야기는 당시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 본다.
신기에 가까운 그림 솜씨를 가진 솔거는 신라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인간이 신과의 대치되는 歷史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그린 그림이 새가 날아와 앉았다는 이야기는 神만이 창조할 수 있는 생명의 歷史觀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힘으로 生命性을 부여하는 도전행위의 계기가 됨은 물론 人本主義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보겠다.
즉 신과 인간이 동일시되는 직.간접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계기이며 본보기였던 사례라하겠다.
비약된 견해인지는 모르지만 유럽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와 같은 神權주의에서 人權주의의 文化혁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유럽의 보편적 역사를 기원이전과 기원후를 비교해 보면 기원 이전의 역사는 신본주의 였으며 기원이후는 인본주의 역사로 크게 구분할여 볼 수 있듯이 인본주의는 인간 위주의 생각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구성주의였다면 신본주의는 신의 장에서 바라보되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구성주의였다.
유럽에서는 중세이후인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신본 위주의 사상이었으나 르네상스이후로부터 인본주의로 신도 인간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대상으로 확산되어간다.
오늘날 까지 서구 역사는 절대적 신권의 구성에서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동양의 석가는 인본주의도 아니고 신본주의도 아닌 완전 해체주의 였으며 하나로 귀착하는 본성주의 였다.
본성이란 신과 인간을 둘로 구분하여 보지 않고 각각의 개체를 인정하는가 하면 그 개체 하나하나가 모여서 큰 하나로 불이일체성(不異一體性)으로 바라봄인데 이는 노장 사상의 근본정신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들어서면서 인본주의가 시작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고려 이전까지는 신본주의 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고려말 조선이 들어서면서 정도전과 유교의 사상인 인본주의로 사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천년의 역사를 가꿔오던 신라의 시대상황을 바라보면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를 도전했던 때가 있었다고 보는데 이를 솔거의 등장이라 본다.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고 거기에 새가 날아와 앉았다는 사실의 기록은 모든 신격에서 인격으로 창조된 예라 볼 수 있겠다.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지위를 획득하는 사회적 변화를 읽을 수 있겠는데 이는 당 시대적 사회 변화로 문화적 혁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솔거가 현존하던 시대와는 500년 뒤에 쓰여진 삼국유사의 짧은 기록으로 유추하기는 역부족인 감이 있으나 오늘날 까지 현존하는 당시 문화유물 이나 여러기지 사료 등을 참고하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며 좀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정신적 문화의 변천과정을 찾고 연구할 때 좀더 사실적인 신라 천년의 바른 문화와 역사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기에 가까운 그림 솜씨를 가진 솔거는 신라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인간이 신과의 대치되는 歷史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그린 그림이 새가 날아와 앉았다는 이야기는 神만이 창조할 수 있는 생명의 歷史觀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힘으로 生命性을 부여하는 도전행위의 계기가 됨은 물론 人本主義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고 보겠다.
즉 신과 인간이 동일시되는 직.간접적으로 나타내 보여주는 계기이며 본보기였던 사례라하겠다.
비약된 견해인지는 모르지만 유럽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와 같은 神權주의에서 人權주의의 文化혁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유럽의 보편적 역사를 기원이전과 기원후를 비교해 보면 기원 이전의 역사는 신본주의 였으며 기원이후는 인본주의 역사로 크게 구분할여 볼 수 있듯이 인본주의는 인간 위주의 생각으로 세상을 분별하는 구성주의였다면 신본주의는 신의 장에서 바라보되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구성주의였다.
유럽에서는 중세이후인 르네상스 이전까지는 신본 위주의 사상이었으나 르네상스이후로부터 인본주의로 신도 인간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대상으로 확산되어간다.
오늘날 까지 서구 역사는 절대적 신권의 구성에서 인본주의적 시각으로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동양의 석가는 인본주의도 아니고 신본주의도 아닌 완전 해체주의 였으며 하나로 귀착하는 본성주의 였다.
본성이란 신과 인간을 둘로 구분하여 보지 않고 각각의 개체를 인정하는가 하면 그 개체 하나하나가 모여서 큰 하나로 불이일체성(不異一體性)으로 바라봄인데 이는 노장 사상의 근본정신도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자가 들어서면서 인본주의가 시작되었으며 한반도에서는 고려 이전까지는 신본주의 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 고려말 조선이 들어서면서 정도전과 유교의 사상인 인본주의로 사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천년의 역사를 가꿔오던 신라의 시대상황을 바라보면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를 도전했던 때가 있었다고 보는데 이를 솔거의 등장이라 본다.
솔거가 황룡사 벽에 노송을 그렸고 거기에 새가 날아와 앉았다는 사실의 기록은 모든 신격에서 인격으로 창조된 예라 볼 수 있겠다.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지위를 획득하는 사회적 변화를 읽을 수 있겠는데 이는 당 시대적 사회 변화로 문화적 혁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솔거가 현존하던 시대와는 500년 뒤에 쓰여진 삼국유사의 짧은 기록으로 유추하기는 역부족인 감이 있으나 오늘날 까지 현존하는 당시 문화유물 이나 여러기지 사료 등을 참고하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며 좀더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정신적 문화의 변천과정을 찾고 연구할 때 좀더 사실적인 신라 천년의 바른 문화와 역사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직접서술]